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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석성읍 앞 콩죽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여읍 앞에 이르러 김호일이 사는 마을을 물으니 규암(窺岩)90) 마을에 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암 나루를 건너 김 생원 집을 찾아갔는데, 사랑채가 마침 비어있었다. 사랑 앞에서 서성거리니 소동(小童)이 안에서 나왔다. 그래서 김 생원의 거취를 자세히 물으니 주막에 갔다고 대답하였다. 소동과 주막집으로 가다가 길에서 김 생원을 만났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하는 말이, 수백 리 밖에서 누추한 곳을 찾아준 것이 실로 뜻밖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랑에 들어가 안부를 물으니, 그간에 그 동생 김호선(金浩善)이 부인상을 당했다고 하였다.안채에서 삶은 밤 한 그릇을 대접해 주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모두 나룻가 객점으로 나와 술을 사서 마셨다. 수북정(水北亭)91)에 올라 잠시 구경하였는데 정자는 규암 절벽 위에 있었다. 난간 앞에는 백강(白江)92)이 흐르고, 정자 뒤에는 푸른 벼랑이었다. 곳곳이 높은 봉우리고 사방은 강모래로 정취가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눈에 담긴 풍경은 흥양(興陽)의 쌍충사(雙忠祠)93)보다 더 아름다웠다. 정자의 사방 벽에 고인의 제영(題詠)이 많이 있었으나 바빠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작은 나루를 건너 백강서원(白江書院)94)에 가서 참배하고 봉심하였다. 신독재(愼獨齋)95) 김 선생과 백강(白江)96) 이 선생이 배향되어 있었다. 《심원록(審院錄)》에 이름을 적었다. 그길로 백강 나루를 건너 김 진사 집으로 들어가 잠시 쉬고 나서 뱃사공을 불러 배를 타고 낙화암(落花巖)97)을 지나 고란사(皐蘭寺)98) 앞에 이르러 육지에 내렸다. 고란사에 오르니 암자는 큰 강가 절벽 아래 있었고, 낙화암은 그 왼쪽에 있고, 조룡대(釣龍臺)99)는 그 오른쪽에 있었다.사방에 펼쳐진 강과 산은 모두 정감에 젖게 하였고, 굽이굽이 흐르는 모래와 강물은 모두 아름답고 수려하였다. 절에는 책을 보는 관동(冠童)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유숙하였다. 30리를 갔다. 모래는 밝고 물은 푸르며 산은 수려하였지만, 평생 보아온 것이기도 하고 내가 갈 길이 바쁜 관계로, 여러 날 동안 머무를 수가 없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早發, 抵石城邑前豆粥店朝飯。 抵扶餘邑前, 問金浩一所居村, 則居在窺岩村云。 故越窺岩津, 訪金生員家, 則舍廊適空。 廊前徘徊之際, 有小童自內而出, 故詳問金生員去就, 則答以往于酒家。 偕小童往酒家, 路上逢金生員。 則寒暄前所言, 數百里之外, 委訪陋巷, 實是意外。 仍入舍廊, 得問伊間, 遭其弟浩善之妻喪云矣。 自內間待之以一器熟栗矣。 移時談話後, 皆出津頭店, 沽酒以飮。 上水北亭暫玩, 則亭在窺岩絶壁上。 檻前百江, 亭後蒼崖。 處處峯巒而面面江沙, 無非多情, 滿目景處, 勝於興陽 雙忠祠矣。 亭之四壁。 多有古人題詠。 而忙未記之可歎。 越一小津, 往白江書院, 瞻拜奉審, 則愼獨齋金先生、白江李先生腏享矣。 書名《審院錄》。 仍越白江津, 入金進士家, 暫憩後, 招津夫乘船, 過落花岩, 抵皐蘭寺前下陸。 上皐蘭寺, 庵在大江上絶壁下, 落花岩在其左, 釣龍臺在其右。 面面江山, 皆是多情;曲曲沙流, 盡爲佳麗。 寺有讀書冠童數人, 與之同留宿。 行三十里。 沙明水碧, 秀麗群山, 平生所見, 以吾行忙之致, 不得數日留連, 可歎可歎。 규암(窺岩)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이다. 수북정(水北亭)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 절벽 위에 있는 누각으로, 광해군 때에 양주 목사로 있던 김흥국(金興國)이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었다. 백강(白江) 충청남도 부여의 북부를 흐르는 강이다. 쌍충사(雙忠祠)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전기 무신 이대원(李大源, 1566~1587)과 정운(鄭運, 1543~1592)을 배향하였다. 백강서원(白江書院) 부산서원(浮山書院)을 말한다. 1719년(숙종 4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집(金集)과 이경여(李敬輿)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같은 해에 '부산(浮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군수 정연달(鄭然達)을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에 의해 1980년에 복원되었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이다. 자는 사강(士剛)이고,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아버지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1585~1657)이다.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ㆍ봉암(鳳巖)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세종의 7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이극강(李克綱)이다. 저서로는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낙화암(落花巖)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에 있는 바위로, 삼국시대 백제의 의자왕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고란사(皐蘭寺)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절이다. 앞에는 백마강이 흐르고, 그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 조룡대(釣龍臺)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 가에 있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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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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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비가 왔다. 매우 늦게 출발하여 인주원(仁州院)에 이르러 묵었다. 雨。 最晩發程, 至仁周院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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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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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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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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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정오 무렵에 들어왔다. 午間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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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새벽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소령(疏嶺)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재동(齋洞)에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曉食後發行, 至疏嶺秣馬。 至齋洞, 日已昏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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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三十日 곡성(谷城) 역곡(驛谷)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천평(泉坪)에 이르러 묵었다. 至谷城驛谷, 秣馬療飢。 至泉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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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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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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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卄一日 화옥이 말 때문에 일을 망치게 되어 내지(內地)로 들어갔다고 하였으므로 다시 용전(龍田)에서 머물렀다. 聞華玉致敗於馬事, 入去內地云, 故更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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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卄二日 지난밤에 크게 천둥과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리더니 다음날에 종일토록 크게 바람이 불었다. 去夜大雷電雨雹, 自翌終日大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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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卄九日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 부내(府內)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읊어 용성(龍城)의 석사(碩士) 장계회(張啓晦)에게 주었는데, 대개 오수(獒樹)에서부터 동행하였기 때문이다.객사에서 만난 백면서생(逆旅相逢白面郞)용성 걸사의 성씨 당당도 하여라(龍城杰士姓堂堂)천 리 길 동행하며 나랏길 구경하였는데(千里同行觀國路)그대는 호두3)의 향기 지닌 사람이구려(高名抉許虎頭香)만마동(萬馬洞)4)에서 율시 한 수를 읊었다.만마를 어느 해에 지나갔던가(萬馬何年過)야윈 말 타고 이날을 증명해 보네(羸驂此日證)깊은 골짜기라 하늘이 작아 보이고(洞深天爲小)개간된 산이라 길이 평평하네(山闢路因平)촌락은 벼랑 따라 늘어져 있고(村落緣崖仄)사천은 눈으로 뒤덮여 더욱 맑네(沙川助雪淸)고인 냇물에 산 기운은 빼어나니(水渟山氣秀)통하는 곳에 완영이 자리하였네(通處是完營) 曉頭登程, 至府內朝飯, 至參禮留宿。 是日偶吟一絶, 贈龍城 張碩士 啓晦, 盖自獒樹同行故也。 "逆旅相逢白面郞, 龍城杰士姓堂堂。 千里同行觀國路, 高名抉許虎頭香。" 於萬馬洞吟一律曰, "萬馬何年過? 羸驂此日証。 洞深天爲小, 山闢路因平。 村落緣崖仄, 沙川助雪淸。 水渟山氣秀, 通處是完營。" 호두 호두(虎頭)는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귀인의 상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관상 보는 사람이 반초(班超)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제비의 턱이고 범의 머리인지라 날아서 고기를 먹을 것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燕頷虎頭, 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고 하였는데, 그 후에 과연 그 말대로 서역(西域)을 평정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만마동(萬馬洞) 현재 전북 완주군 남관으로, 남원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만마관(萬馬關)이 있어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로 인하여 전주천을 만마탄(萬馬灘)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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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여 황화정(皇華亭)5) 안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길에서 곡강(曲江)의 척형(戚兄)을 생각하며 율시 한 수를 읊었다.금호의 어진 아우와 곡강의 형(琴湖賢弟曲江兄)약속한 날 찬바람 속에 먼 길 함께 떠났네(約日寒風共遠征)금산으로 먼저 간 것은 일 때문이나(先去金山緣有事)완부에 늦게 온 건 실로 정리가 아니로다(晩來完府實非情)금강에 혹여 외로이 나는 기러기 지나가면(錦江倘過孤飛雁)초포에 벗을 부르는 꾀꼬리 한창 울어대리(草浦方吟喚友鸎)상사6)의 무리 안에 가난한 서생들7)(上舍叢中窮措大)청춘을 헛되이 보내 과거 급제 못하였네(靑春虛送未成名)이성(尼城)에 이르러 묵었다. 未明發行, 至皇華亭中火。 路上憶曲江戚兄, 咏一律曰, "琴湖賢弟曲江兄, 約日寒風共遠征。 先去金山緣有事, 晩來完府實非情。 錦江倘過孤飛雁, 草浦方吟喚友鸎。 上舍叢中窮措大, 靑春虛送未成名。" 至尼城留宿。 황화정(皇華亭) 전북 익산군 여산면 마전리 황화정 동네에 있던 정자로,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역에 있었던 황화정은 전라도 신구(新舊) 전라도관찰사들이 교대하는 장소였는데, 국왕으로부터 전라도관찰사로 제수받으면 여산 황화정(皇華亭)에서 신·구 임무 교대식인 교귀식(交龜式)을 치르고 전주 조경묘에 숙배(肅拜)하는 것이 순서였다. 상사 상사(上舍)는 생원과 진사의 별칭으로, 옛날 태학에서 생원과 진사는 상사(上舍), 즉 위채에 거처하였기 때문이다. 곤궁한 서생들이 원문의 '조대(措大)'는 초태(醋駄)에서 유래한 말로, 가난한 서생을 말한다. 어떤 선비가 가난하여 식초를 지고 동네를 돌면서 팔아 생계를 꾸리던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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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또 주동(鑄洞)에 가서 이야기하고 오는 길에 박 승지(朴承旨)를 만나고 왔다. 又往鑄洞談話, 而來路見朴承旨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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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각종 물품을 사고, 영주인(營主人)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쳤다.해 저문 뒤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朝飯後, 貿各種物品, 付家信於營主人。 晩後發程, 至參禮留宿。 行三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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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차동에 머물렀다. 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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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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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감기 때문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以感氣不得出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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