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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학(吳致學) 시권(試券) 1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吳致學 吳致學 남원 해주오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15_01_A00001_001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작성한 시권(試券)으로, 진사시(進士試)의 부(賦) 답안지로 추정된다. 오치학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당시 59세였다. 시권의 오른쪽 상단에는 오치학의 성명과 나이, 본관, 거주지 및 4조가 실려 있다. 그의 부친은 오우상(吳佑常), 조부는 오창익(吳昌翊), 증조는 오언기(吳彦基)이며, 외조는 절충장군 행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 윤치영(尹致永)으로 본관은 남원이었다. 오치학은 이 과목에서 '次上'의 성적을 얻었지만, 현존하는 사마시(司馬試) 방목(榜目)에서는 오치학의 성명을 확인할 수 없다. 오치학의 시권은 이보다 2년 뒤인 61세 때 작성한 것이 또 하나 전하고 있다. 이때 부의 시제(試題)는 '不中科故經術益明'으로, 과거에 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술(經術)이 더욱 밝아졌다는 의미이다. 6언 절구의 형식으로 작성된 장문의 글이다. 이 답안지의 앞부분에는 '八天'이라는 글자가 상하 세 군데나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응시자가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받은 일종의 접수번호이다. 이렇게 제출된 시권은 통상 채점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조(四祖)가 적혀 있는 오른 쪽 부분의 피봉과 글을 쓴 왼쪽 부분을 분할하게 되는데, 이 시권은 그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八天'을 쓴 방향도 일반적인 형식과는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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料標忠義房員一名正月下四月下二月下三月下五月下六月下七月下八月下九月下十月下十一月下大米伍斗田米㱏斗戊午正月 趙昌根戶曹[着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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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學吳致學年五十九本海州居南原父學生 佑常祖學生 昌翊曾祖學生 彦基外祖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尹致永本南原八天八天 八天不中科故經術益明 賦羲觀光而用賓 豈易言夫書哉周比年而考藝 不亦悅乎學而科中規於用經 旣窮堅而不墜益之時義大矣 所文獻之足徵曰皇朝之中科 掌文學而一藝盖多出於明經 官博士而五更家東海而穿壁 天朝夕其納策人解頤於說詩 夫見屈而歸余名何遅於題鴈 開石渠而貢士業猶疎於述蛾 復何恨乎有司生此國而思皇 蘇刺服而不徒經有術於用科 董下帷而奚啻可匡傅而摭實 儀造秀於司馬經何由而得明 筮榮貴於點龍科之設而有規 文以補焉掌故夫何書之不讀 學而優則審博觀於經而多術 儀衛武之琢玉兪不中而兪篤 艶南容之磨圭經在玆而可徵 賴克生於多士科之故而明之 以使媚于天子魯思泮而薄採 伊豁然而貫通啇宅序而三居 蘊奧旨於瀜會無少大而從于 登澤宮而合藝自東南而來者 追辟雍而應製可靑編而潛思 文亹亹而顯哉仰先哲之玄謨 舜嵬嵬而欽若次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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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서현선(徐顯善)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丙戌十月 日 柴場主幼學徐顯善 南原安生員宅 丙戌十月 日 徐顯善 南原安生員宅 전라북도 남원시 [着名]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임실 관기 순흥안씨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86년(고종 3) 10월에 서현선(徐顯善)이 안생원댁(安生員宅)에게 선산의 일부를 전문 3냥을 받고 팔면서 그 증거로 작성해 준 수기. 1886년(고종 3) 10월에 서현선(徐顯善)이 작성한 수기이다. 서현선의 시장(柴場)은 남원 안생원댁의 산소와 맞닿아 있었는데, 안생원이 몇 보의 땅을 누누이 간청하였다. 따라서 서현선은 부득이 너비 5파, 길이 6, 70파를 한정하여 안생원에게 3냥에 팔기로 허락하고, 이후에 문제가 생기면 이 수표를 근거로 하여 검토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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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記 丙戌十月 日右手標事段鄙之柴場與南原安生員宅山所聯界而累累懇請數步之地故不得已右柴場廣五把長六七十把爲限以捧價參兩文許賣於右前爲去乎日後若有相佐之端以此標憑考事柴場主幼學徐顯善[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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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보응(李輔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十三年月日 李輔應 行縣令 光緖十三年月日 李輔應 金溝縣令 전라북도 김제시 行縣令[着押] 금구 도장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Z011_01_A00001_001 1887년(철종 24)에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 이보응(李輔應)이 작성하여 전라도(全羅道) 금구현(金溝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887년(철종 24) 10월에 전라도(全羅道) 금구현(金溝縣) 하서면(下西面) 제일도장리(第一都莊里) 제1통 제1호에 사는 당시 51세인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通訓大夫前行陽川縣令兼南陽鎭管兵馬節制都尉) 이보응(李輔應)이 작성하여 금구현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이때 그는 홀아비로 있으면서, 동생 양응(陽應, 41세)과 제수 연안이씨(延安李氏, 36세), 그리고 아들 재인(載仁, 27세), 며느리 의성김씨(義城金氏, 30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또한 2명의 노비를 데리고 있었다. 호주가 살았던 금구현 하서면 제일도장리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도장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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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三年 月 日金溝縣考戊子式成籍戶口帳內下西面第一都莊里第一統第一住戶鰥通訓大夫前行陽川縣令兼南陽鎭管兵馬節制都尉李輔應年五十一戊戌本全州父學生 景植祖學生 悳源曾祖學生 東發外祖學生劉宗翰本江陵率弟幼學 陽應年四十一戊申嫂李氏齡三十六癸丑籍延安率子幼學 載仁年二十七壬戌婦金氏齡三十籍義城賤口奴一千年丁巳婢粉容年丙辰戊子戶口相凖行縣令[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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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오자화(吳自和)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壬午四月十日 標主吳自和 壬午四月十日 吳自和 標主吳自和[着名] 남원 둔덕 함양오씨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임오년 3월 그믐날에 오자화(吳自和)가 30냥을 빌리면서 매달 초하루에 5푼씩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상대방에게 작성해 준 수표. 임오년 3월 그뭄날에 오자화(吳自和)가 30냥을 빌리면서 매달 초하루에 5푼씩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상대방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오자화는 오는 7월 그믐에 장한촌(長漢村) 후록에 있는 금양산지의 시초(柴草)를 방매할 때에 본전과 이자를 함께 갚기로 다짐하였다. 장덕홍(張德洪)이 증인으로 참여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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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壬午四月十日〔三月晦日〕右標事當此窮春各項所用萬分時亟故右處錢三十兩每朔五分例得用而報限七月晦內長漢村後麓禁養山地柴草放賣時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事標主吳自和[着名]訂人張德洪[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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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학(吳致學) 시권(試券) 2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幼學吳致學 吳致學 남원 해주오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15_01_A00001_001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오치학(吳致學)이 작성한 시권(試券)으로, 진사시(進士試)의 부(賦) 답안지로 추정된다. 오치학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당시 61세였다. 시권의 오른쪽 상단에는 오치학의 성명과 나이, 본관, 거주지 및 4조가 실려 있다. 부친은 오우상(吳佑常), 조부는 오창익(吳昌翊), 증조는 오언기(吳彦基)이며, 외조는 절충장군 행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 윤치영(尹致永)으로 본관은 남원이었다. 오치학은 이 과목에서 '次下'의 성적을 얻었는데, 현존하는 사마시(司馬試) 방목(榜目)에서는 오치학의 성명을 확인할 수 없다. 오치학의 시권은 이보다 2년 전인 59세 때 작성한 것이 또 하나 전하고 있다. 이때 부의 시제(試題)는 "鞠有黃華"로, "국화에는 황국(黃菊)이 있다"는 의미인데, 『예기(禮記)』 월령편(月令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6언 절구의 형식으로 작성된 장문의 글이다. 이 답안지의 앞부분에는 '七天'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응시자가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하면서 받은 일종의 접수번호이다. 이렇게 제출된 시권은 통상 채점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조(四祖)가 적혀 있는 오른 쪽 부분의 피봉과 글을 쓴 왼쪽 부분을 분할하게 되는데, 이 시권은 그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七天'이라는 글자도 원래는 오른쪽의 피봉과 왼쪽의 답안 부분을 경계로 하여 위아래에 세 번 적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한 번만 기재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형식과는 조금 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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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學吳致學年六十一本海州居南原父學生 佑常祖學生 昌翊曾祖學生 彦基外祖折衝將軍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尹致永本南原七天鞠有黃華 賦松有心焉後歲 迭且代於春秋竹曰筠則寒雪 候以別於草木后是月而按物 推時序之餞迓憬彼鞠之黃華 發根抵之形氣秋屬金而色尙 儀帝王之則柯比諸物則黃鞠 明天地之大節蒼彼龍兮爰駕 總章按以月令驗春色之屬水 時則維其屬秋寒初迓於土牛 玄鳥歸而鴈來朝中俱於星柳 陰初盛而陽襄顧時令之茂對 葵在園而莫論曰有鞠兮焉如 菽登田而奚取中於物而晦根 固衆芳之所在華則花於獨秀 奚凡草之同歸居中黃而植培 哉戌土而發英果其色之維何 歸庚金而生花于是秋也鞠有 時匪豳之績玄黃黃者爲其華 色豈夏之乘朱移灰管而茂葉 扶壯陽而托根象旬萌而生苗 循坤陰而達枝華積中而發外 三百朞之受氣不曰黃夫鞠耶 十千種之古芬天一度於千會 時方殷而命和日在房而昏見 物以燕而欽昊平西東之作成 可靑編而潛思悅耳目之所覩 仰先哲之玄謨何所獨無漸義 陳旣往而微虧是以死有升詑 芬至今而未沫風猶挹於百代 台後辰而永言事可觀於千秋 綴蕪辭而興吁次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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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보응(李輔應)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二十年月日 行縣令 李輔應 光緖二十年月日 金溝縣令 李輔應 전라북도 김제시 行縣令[着押]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금구 도장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Z011_01_A00001_001 1894년(고종 31)에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 이보응(李輔應)이 금구현(金溝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94년(고종 31)에 금구현(金溝縣) 하서면(下西面) 제일도장리(第一都莊里) 제2호에 사는 당시 57세인 이보응(李輔應)이 금구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홀아비로 있으면서, 동생 계응(桂應, 47세)과 제수 연안이씨(延安李氏, 32세), 그리고 아들 재욱(載彧, 33세), 며느리 의성김씨(義城金氏, 36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또한 2명의 노비 가운데 1명은 도망을 갔고 1명은 죽었다. 호주가 살았던 금구현 하서면 제일도장리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도장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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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十年 月 日金溝縣考甲午式成籍戶口帳內下西面第一都莊里第 統第二戶鰥通訓大夫前行陽川縣令兼南陽鎭管兵馬節制都尉李輔應年五十七戊戌本全州父學生 景植祖學生 悳源曾祖學生 東發外祖學生劉宗翰本江陵率弟幼學 桂應年四十七戊申嫂李氏齡三十二癸丑籍延安率子幼學 載彧年三十三壬戌婦金氏齡三十六籍義城賤口奴一千逃婢粉容故行縣令[着押][周挾無改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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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김구해(金龜海)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甲辰四月日 官 金龜海 甲辰四月日 靈巖郡守 金龜海 전라남도 영암군 官[着押] 14개(적색, 정방형)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HIKS_Z017_01_A00003_001 1784년(정조 8)에 영암군수(靈巖郡守)가 김구해(金龜海) 및 자손 형제의 역(役)을 면제하며 발급한 완문(完文). 1784년에 靈巖郡守가 金龜海에게 발급한 完文. *備邊司의 關을 인용한 巡使道의 關이 연차로 접수되었는데 국왕이 六道를 구휼할 것을 의논함에 富民으로 하여금 담당하여 구제할 뜻으로 엄히 신칙하였다. 이때 西終面 毛亭里에 사는 幼學 金龜海가 이 뜻에 感發하여 관에 고하여 지난 2월 중순에 饑民 600餘口에게 관의 分賑하는 예에 따라 捐出하여 90餘石을 분급했으니 褒賞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김귀해뿐만 아니라 자손형제 간에 혹 軍丁과 將官, 約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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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대 광산김씨가(光山金氏家) 삼효자(三孝子) 표창완문(表彰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정치/행정-명령-완문 孔夫子誕降二千四百十年月日 大成學院 孔夫子誕降二千四百十年月日 [고종대] 大成學院 光山金氏門中 전라남도 영암군 8개(적색, 정방형, 7.0×7.0), 30개(적색, 정방형, 1.7×1.7)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고종대에 대성학원(大成學院)에서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 모정리(茅亭里) 삼효자(三孝子)에게 발급한 표창완문(表彰完文). 高宗代에 大成學院에서 靈巖郡 郡西面 茅亭里 三孝子에게 발급한 表彰完文. *大成學院에서 卓行異蹟을 수집하여 表彰紀念하던 중에 全南有司 및 儒林의 薦狀을 살펴보니 靈巖郡 郡西面 茅亭里에 金禮聖, 金箕陽, 金在敏 三孝子가 있으니 鋟梓하여 碑閣을 세워 길이 懿蹟이 전해지도록 먼저 완문을 발급한다고 명함. *상태: 成冊 1冊(4張), 四周雙邊, 半郭 24.8×19.7㎝, 有界, 8行?字, 上內向二葉花紋魚尾, 발급자 부분만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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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이교의(李敎儀) 준호구(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十一年乙酉式 行郡守 李敎儀 光緖十一年乙酉式 靈光郡守 李敎儀 전라남도 영광군 行郡守[着押] 靈光郡戶口(흑색, 방형), 1개(적색, 정방형) 영광 홍농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Z016_01_A00002_001 1885년(고종 22)에 영광군(靈光郡)에서 이교의(李敎儀, 4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凖戶口). 1885년(고종 22)에 靈光郡에서 李敎儀에게 발급한 凖戶口. 이교의는 이때 慶基殿守門將으로 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의 무관 품계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는 45세로, 동갑인 처 海州吳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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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교의(李敎儀) 준호구(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十四年戊子式 行郡守 李敎儀 光緖十四年戊子式 靈光郡守 李敎儀 전라남도 영광군 行郡守[着押] 靈光郡戶口(흑색, 방형), 1개(적색, 정방형) 영광 홍농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Z016_01_A00002_001 1888년(고종 25)에 영광군(靈光郡)에서 이교의(李敎儀, 48세)에게 발급한 준호구(凖戶口). 1888년(고종 25)에 靈光郡에서 李敎儀에게 발급한 凖戶口. 당시 48세였던 그는 동갑인 처 海州吳氏와 아들 起學(29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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