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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奉敎進士奉直郎韓養吾爲通德郞者康熙二十二年二月 日忠義衛時丁正丁九別加幷超判書 參判臣 李[着名] 參議 正郎 佐郞假郎廳臣裵[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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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 吏曹 進士通德郞韓養吾 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 吏曹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判臣 尹[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7년(숙종 13) 9월 23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王命)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내려 준 교첩(敎牒). 1687년(숙종 13) 9월 23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王命)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내려 준 교첩(敎牒)이다. 문서 오른 편에 보이는 '봉교(奉敎)'라는 표현은 '왕명을 받들어서'라는 의미이다. 문서의 내용은 한양오에게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제수한다는 것이었다.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세조(世祖)의 릉(陵)을 말하며, 참봉의 품계는 종9품(從九品)이었다. 이 문서를 받을 당시 한양오가 지니고 있는 품계는 정5품(正九品) 상계(上階)인 통덕랑(通德郞)이었다. 따라서 정5품의 품계를 지니고서 종9품의 직에 제수된 셈이다. 이런 경우를 '품고직비(品高職卑)'라고 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관직을 받으면 관직명 앞에 반드시 '행(行)'이라는 글자를 넣도록 되어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인 '품비직고(品卑職高)'일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수(守)'라는 글자를 적었다. (규격 5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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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進士奉直郎韓養吾 康熙二十二年二月十八日 吏曹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判臣 李[着名] 佐郞假郎廳臣裵[着名]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敎牒). 1683년(숙종 9년) 2월 18일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한양오(韓養吾)에게 발급한 교첩이다. 한양오의 품계(品階)를 봉직랑(奉直朗)의 통덕랑(通德郞)으로 올려 준다는 내용이다. 봉직랑은 종5품 상계(上階)요, 통덕랑은 정5품 상계였다. 따라서 한양오의 품계는 두 단계 상승한 셈이었다. 호(號)를 반환(盤桓) 자(字)를 호연(浩然)이라고 했던 한양호는 1646년(인조 24년)에 실시한 병술년(丙戌年) 식년시(式年試) 진사시 합격자였다. 그는 진사시에 합격한 후 한 때 성균관에 머물며 문과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과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사후에 남원 고암서원(高巖書院)에 배향될 정도로 많은 선비들로부터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훗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천거(薦擧)를 받아 광릉참봉(光陵參奉)까지 지낸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은 세조(世祖)의 능(陵)을 말한다. 한편 교첩의 오른편을 보면 본 문서를 발급해 준 날짜 왼편으로 '충의위시정정정구별가별초(忠義衛時丁正丁九別加幷超)'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한양오가 '충의위에 속해 있을 때인 '정년정월(丁年正月)"과 정년구월(丁年九月)에 받았던 별가 혜택을 이번 인사에 모두 반영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년이란 강희 16년(1677, 숙종 3년)을 말한다. 하지만 한양오가 충의위에 근무한 기간이 정확히 언부터 언제까지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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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康熙二十六年九月二十三日奉敎進士通德郞韓養吾爲通德郞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六年▣…▣日行判書 參判臣 尹[着名] 參議 正郎 佐郞假郎▣(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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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 韓養吾 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 肅宗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8년(숙종 14) 12월 27일에 숙종이 한양오(韓養吾)를 조봉대부행광릉참봉(朝奉大夫行光陵參奉)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敎旨). 1688년(숙종 14) 12월 27일에 임금이 한양오(韓養吾)를 조봉대부행광릉참봉(朝奉大夫行光陵參奉)에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下階)요, 참봉의 품계는 종9품(從九品)이었다. 따라서 '품고직비(品高職卑)'의 규정에 따라 광릉참봉이라는 직명(職名) 앞에 '행(行)'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그런데 한양오가 광릉참봉으로 제수된 때는 이 교지를 받기 1년 전인 강희(康熙) 26년(1687년, 숙종 13)이었다. 다만 당시에 한양오가 지닌 품계는 정5품(正九品) 상계(上階)인 통덕랑(通德郞)이었다. 따라서 이번 교지는 한양오의 품계를 올려주기 위해 발급해 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편 문서 맨 왼쪽을 보면 '무십이별가(戊十二別加)'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이는 한양오가 무년(戊年) 12월에 받았던 별가(別加)의 혜택을 이번 인사조처에 반영하였다는 의미이다. 무년 12월은, 바로 이 교지가 주어진 때와 동년동월(同年同月)이었다. 따라서 한양오는 별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지를 받게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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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韓養吾爲朝奉大夫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七年十二月二十七日戊十二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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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영주(韓永柱)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七年三月日 韓永柱 光武七年三月日 高宗 韓永柱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5_001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영주(韓永柱)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관고(官誥).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영주(韓永柱)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비서원은 조선 말기에 시종원(侍從院) 소속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독립되어 나간 관청으로,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과 기록을 담당하던 승정원(承政院)의 역할을 계승한 것이다. 비서승은 비서원 소속의 관직으로 주임관(奏任官)에 해당하는 관직이었다. 한영주 뿐만 아니라, 한영주의 아들 한관섭(韓寬燮)도 같은 시기에 관으로부터 같은 관직을 받았는데, 문서의 기재형식이나 관인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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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4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九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九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9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통례원인의(行通禮院引儀)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9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통례원인의(通訓大夫行通禮院引儀)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인의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통례원은 국가의 각종 의례를 관장하던 관서이며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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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通禮院別儀者光緖十四年九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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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八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八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8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장악원주부(行掌樂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8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장악원주부(通訓大夫行掌樂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주부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 (行)'을 붙였다. 장악원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주부는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였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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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掌樂院主簿者光緖十四年八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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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섭규(李燮奎) 고신(告身) 5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李燮奎 光緖十四年十一月 日 高宗 李燮奎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HIKS_Z019_01_A00001_001 1888년(고종 25) 11월에 고종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상서원주부(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888년(고종 25) 11월에 국왕이 이섭규(李燮奎)를 통훈대부상서원주부(通訓大夫行尙瑞院主簿)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문신 품계이며, 주부는 종6품이어서 '품계가 높은 데 비해 관직이 낮음'을 의미하는 '행(行)'을 붙였다. 상서원은 국왕의 새보(璽寶)·부패(符 牌)·절월(節鉞)을 관장하던 관서로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시호, 자격, 토지 및 노비 등을 하사하면서 그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이다. 이섭규의 본관은 홍주(洪州)이며 자는 서오(瑞五)이다. 1817년(순조 17)생으로 합격 당시 임실(任實)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의 양부는 이병균(李秉均)이며, 생부는 이진균(李珍均)이다. 이섭규는 1852년(철종 3)에 식년진사시에 합격한 뒤에 음관(蔭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사헌부 감찰, 돈녕부 판관, 공주 진관, 장악원 주부, 상서원 주부 등을 역임했다. 그의 고신 12점이 홍주이씨 가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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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燮奎爲通訓大夫行尙瑞院主簿者光緖十四年十一月 日[印](背面)吏吏朴華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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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令正三品任中樞院議官叙奏任官六等者光武七年十月二日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金嘉鎭 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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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圭喆任崇仁殿叅奉叙判任官八等者光武四年十一月 日宮內府大臣議政府贊政宮內府臨時署理李乾夏[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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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한양오(韓養吾)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康熙二十八年正月日 韓養吾 康熙二十八年正月日 肅宗 韓養吾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05_001 1689년(숙종 15) 정월 숙종이 한양오(韓養吾)를 조산대부행광릉참봉(朝散大夫行光陵參奉)으로 제수하면서 내려 준 교지. 1689년(숙종 15) 정월 임금이 한양오(韓養吾)를 조산대부행광릉참봉(朝散大夫行光陵參奉)으로 제수하면서 내려 준 교지이다. 조산대부는 종4품 상계(上階)였다. 한양오는 1년 전인 강희(康熙) 27년(1688, 숙종 14) 12월에 종4품 하계(下階)인 조봉대부(朝奉大夫)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불과 한 달 만에 품계가 한 단계 상승한 셈이었다. 문서 왼편에 보이는 '기정별가(己正別加)'란 한양오가 기년(己年)에 받은 별가의 혜택을 이번 인사에 반영하였다는 의미이다. 기년은 본 교지가 발급된 강희 28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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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韓養吾爲朝散大夫行光陵叅奉者康熙二十八年正月 日己正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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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幼學韓尙箕進士三等第四十一人入格者乾隆十二年二月▣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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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관섭(韓寬燮)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정치/행정-임면-관고 光武七年三月日 韓寬燮 光武七年三月日 高宗 韓寬燮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용정 청주한씨가 전주 덕진 청주한씨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20_01_A00015_001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관섭(韓寬燮)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관고(官誥). 1903년(광무 7) 3월에 고종이 한관섭(韓寬燮)에게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행비서원비서승(行秘書院秘書丞)의 증직(贈職)을 내리면서 발급한 칙명이다. 비서원은 조선 말기에 시종원(侍從院) 소속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독립되어 나간 관청으로,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과 기록을 담당하던 승정원(承政院)의 역할을 계승한 것이다. 비서승은 비서원 소속의 관직으로 주임관(奏任官)에 해당하는 관직이었다. 한관섭 뿐만 아니라, 한관섭의 부친 한영주(韓永柱)도 같은 시기에 관으로부터 같은 관직을 받았는데, 문서의 기재형식이나 관인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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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 공명첩(空名帖) 1 고문서-교령류-공명첩 정치/행정-임면-고신 光武七年十月二日 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金嘉鎭 光武七年十月二日 金嘉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1개(적색, 정방형) 임실 범오 홍주이씨가 전주 덕진 홍주이씨가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全北地方의 古文書』1․ 2․ 3, 1993․1994․1995.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HIKS_Z019_01_A00017_001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 1903년(광무 7) 10월 2일에 의정부찬정대신훈일등(議政府贊政大臣勳一等) 김가진(金嘉鎭)이 임실에 사는 홍주이씨가(洪州李氏家)의 누군가를 정3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으로 서임하면서 발급한 공명첩이다. 조선 후기에 국가의 재정이 궁핍해지자 정부에서는 백성들로부터 돈이나 쌀 등을 받고서 사령장을 발급하였다. 이 사령장을 납속첩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첩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채 발급한 사령장이 있는데 이를 공명첩이라고 한다. 공명첩을 받은 경우, 그 첩에 기재된 관직에 실제로 나아가 업무를 수행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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