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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최경태(崔京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未三月二日 崔京泰 石洞齋 辛未三月二日 崔京泰 石洞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미년에 최경태가 보낸 서간 신미년(辛未年) 3월 2일에 족종(族從) 최경태(崔京泰)가 석동재(石洞齋)에 보낸 서간(書簡)이다. 자신은 긴급한 일 때문에 외지에 있다가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며 분배금 2냥을 갑자기 마련할 수 없어 부치지 못하니 양해 바란다고 하였다. 피봉의 발신자는 전동(典洞)에 사는 최경태(崔京泰)이고 수신처는 석동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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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此時靜中氣體候一如萬旺伏頌且禱族從省候依前者耳就分排金貳兩近日緊急事故連日作客昨日還家猝然不能辦備不付今回以此下諒之地千萬伏望耳餘不不候禮辛未三月二日族從崔京泰拜上(皮封前面)席洞齋回納(皮封背面)典洞謹拜候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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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최용환(崔龍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至月十七日 崔龍煥 至月十七日 崔龍煥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최용환이 보낸 서간 1920년 11월 17일에 최용환(崔龍煥)이 보낸 서간이다. 상대방이 말한 서원의 일은 이미 글로 한번, 뵙고서 한번 터놓았으면 그만인데 어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냐며 80의 상대방이 배운 것이 '거조수상(擧措殊常)' 4자 뿐이며, '년소배의 해괴한 버릇'이란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물었다. 본인과 두홍(斗洪)은 문임(門任)으로서 단직가(壇直家)에 묻기도 하고 문중에 의논도 하였으나 논의를 정하지 못하여 생긴 일인데 상대방의 편지에 '세월을 보내려는 계책이다'라고 꾸짖으니 이는 사사로운 욕심에 선의(先誼)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문자상으로 따지기에 자신은 역부족이라고 하였다. 1920년 11월 16일에 손호풍(孫浩豊)이 보낸 서간에 대한 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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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示院事旣是以書以面一攄罷則已矣何若是激人心肝而期欲滔人於不義之地耶年八旬所學只是擧措殊常四字而事之經歷書之問答上決無如許之涇渭矣且質疑之端何其煩多一問一答知其裏由之不然而審文字上質疑之事在於往日耶來日耶以往以來警不見致疑於人也有何別別質疑之事耶且同年少輩曰駭怪之習此何許說耶龍煥斗洪卽鄙之門任而以父老之分付敢請尊座則此是反不重耶年八旬見聞之道奚啻止此峨瞞之習何如是太多而侮人甚耶問於壇直家僉論之日鄙族光煥之曰家平和共同之說豈不切之弄矣哉此論方今鄙門中擬議曰足同非紛拏尙未得定論而至此矣來書中迂延歲月之計致責而事旣至此難可沒合說或設合決非好事云云箇中之意想爲人所誘也以彼以此百端於請期欲拜分軍未知其意何居折不相分入是前日之同源本誼期欲相分豈非今日之循私爲疎耶稱有義性者豈其如是哉如或有人心者則胸循私欲而背先誼乎殆用歎恨此禁山之似逢說尤可笑可笑我時之不幸自致而行之習耶玆一文字上前後舞弄之狀所謂班門弄斧也諒之恐好恐好至月十七日 崔龍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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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최광환(崔光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巳三月十九日 光煥 崔尹七 辛巳三月十九日 崔光煥 崔尹七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1년에 최광환이 보낸 서간 1941년 3월 19일에 족제 최광환(崔光煥)이 최윤칠(崔尹七)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문중의 수록(收錄)하는 일 때문에 어제 집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동헌비고(東獻備考)』 단(單) 값은 영수증을 보낼 테니 걱정 말고 보내 달라고 하였다. 만약 이론(異論)이 생기면 이 영수증으로 증명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동헌비고』(단)은 이병두(李秉斗) 저작으로 1939년 석판본(石板本)으로 간행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책이다. 별지에 1941년 3월 24일 최광환(崔光煥)이 최윤칠(崔尹七)에게 작성해준 영수증(領收證)이 있다. 『동헌비고』 단(單) 값으로 30원을 받았다고 하였다. 피봉은 부안군(扶安郡) 옹정리(甕井里)에 사는 최광환(崔光煥)이 부곡(富谷)에 사는 생원(生員) 최윤칠(崔尹七)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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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최상열(崔想烈)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十一月十五日 相烈 己丑十一月十五日 崔相烈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축년에 최상열이 보낸 서간 기축년 11월 15일에 최상열(崔相烈)이 족조(族祖)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객지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족보 종이에 관한 일로 강용문(姜龍文)의 집에 가서 그의 나태함을 꾸짖었다며, 혼란한 세상과 순조롭지 못한 날씨 탓도 있으니 이달 25일에는 완납할 것이라고 하였다. 보사(譜事)의 완급이 백지(白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여 강용문을 나무랐으며, 현재 자신은 집안의 용사(冗事)로 인하여 직접 가지 못하고 글로 고하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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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최동한(崔東漢)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戌九月十九日 東漢 甲戌九月十九日 崔東漢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4년에 족종 최동한의 서간 1934년 9월 19일에 족종(族從) 최동한(崔東漢)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국화 피는 계절에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일 없다고 하였다. 용건은 자신의 집안 문임(門任) 규례가 엄절하지 못해 망령되게 자천(自薦)하여 집안의 비난이 이르렀으며, 위토답(位土畓)으로 자기를 살찌우는 자와 족산(族山)으로 남과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문임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하니 자기에게 잘못을 돌리고 다시 선정하라고 하였다. 피봉의 발신자는 부안군(扶安郡) 입하면(立下面) 우반리(愚磻里)에 사는 최동한(崔東漢)이며 수신처는 유절암(留節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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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詢靖體上以時萬旺閤內勻安仰溸仰溸 族弟以門中收錄事日昨還巢憊苦已耳就悚東獻備考單金領收證仍呈勿慮 惠送之計伏望耳如有攜貳之論則指此領收證可考爲好耳餘不備上禮辛巳三月十九日族弟光煥拜上--領受証一金參拾円也右金은東獻備考單費로領受ᄒᆞᆷ辛巳 三月二十四日領受人崔光煥(印)崔尹七氏殿(皮封前面)富谷崔生員允七氏座下(皮封背面)甕井謹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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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최병태(崔秉兌)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三月二日 秉兌 辛三月二日 崔秉兌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1년에 최병태가 보낸 서간 1931년 3월 2일에 족제(族弟) 최병태(崔秉兌)가 보낸 서간(書簡)이다. 화창한 봄날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기복인(朞服人)인 자신은 나머지 도세(賭稅)를 보내려고 노력은 하지만 기필할 수 없으니 너무 꾸짖지 말라고 하였다. 1931년 3월 11일 같은 내용의 최병태 간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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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정복영(鄭福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戌正月六日 鄭福永 甲戌正月六日 鄭福永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4년에 정복영이 보낸 서간 1934년 1월 6일에 정복영(鄭福永)이 보낸 서간이다. 해가 바뀐 때에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상중의 자신은 억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용건은 상대방이 1930년에 빌려 간 원금과 이자 84원을 이달 20일 내에 청산해 줄 것과 기한을 어기면 소송을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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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白謹詢歲換體度迓新萬安伏溸區區罪生頑縷苟存已耳 就尊座昭和五年度借用元金參拾圓利子을依證書斷定例以爲結算則利子金額五拾四円也合元利金八拾四円也則今月念內期於淸數如何若過右期必擧訟爲計以此海諒俾無至生梗之至伏望餘不備疏甲戌正月六日罪生鄭福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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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팔홍(崔八洪)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三月二日 八洪 席洞齋 辛三月二日 崔八洪 席洞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某年)에 최팔홍이 보낸 서간 작성년도의 간지(干支)가 앞에 신(辛)자가 들어가는 해의 3월 2일에 기복 족종(朞服族從) 최팔홍(崔八洪)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봄철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근래에 며칠 앓았으나 지금은 조금 나았다며 도조(賭租) 남은 것을 상대방의 말대로 준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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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承審仲春體候安相而閤節倂爲泰平乎仰溸區區且祝族從近以身憂數日見苦今則小愈耳第所示賭租零條依敎遵行計以此諒會企望企望耳餘在姑留畧此不備謝禮辛三月二日朞服族從 八洪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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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承審春日方和氣體候萬安而閤節亦爲相平乎伏溸區區且祝朞服族弟省依以是爲幸耳第所示賭稅零條事當周旋乃可然錢穀間與受如是極貴之際融通與否不可期必以此下諒而勿爲厚誚伏望耳餘在略此不備謝禮上辛三月二日朞服族弟秉兌拜謝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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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 한득재(韓得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拾陸年辛未正月初 林鳳岐 韓得才 乾隆拾陸年辛未正月初 林鳳岐 韓得才 [着名] 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751년(영조 27) 1월에 임봉기)가 기남사작에 있는 논을 한득재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51년(영조 27) 1월에 임봉기(林鳳岐)가 기남사작(技南四作)에 있는 논을 한득재(韓得才)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임봉기는 이 논을 매득하여 경작하여 오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기남사작에 있는 신자답(薪字畓) 3두락지이며, 부수로는 2부 7속이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7냥이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임봉기(林鳳岐)와 필지(筆摯) 김서봉(金瑞鳳)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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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拾陸年辛未正月初▣日韓得才處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以自己買得耕食是如可技南四作▣(伏)在薪字畓三斗落只所耕貳負七束㐣兩作幷以價折錢七兩依數交易捧上▣▣(爲遣)▣▣▣兩丈幷以此人處永永放賣▣(賣)爲去乎此後幸有雜▣(談)是去㝳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幼學林鳳岐[着名]茟摯幼學金瑞鳳[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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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서수헐(徐受歇) 시장매매명문(柴場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康熙二十四年乙丑三月二十五日 朴莫失 徐受歇 康熙二十四年乙丑三月二十五日 朴莫失 徐受歇 [着名] 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685년(숙종 11) 3월에 박막실이 하동육작에 있는 시장(柴場)을 서수헐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 1685년(숙종 11) 3월 25일에 박막실(朴莫失)이 하동육작(下東六作)에 있는 시장(柴場)을 서수헐(徐受歇)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매매명문이다. 박막실은 많은 세미(稅米)를 납부할 방법이 없어서 이 시장을 부득이하게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시장은 성자(聖字) 시장(柴場)으로 거래가격은 벼 17두(斗)이다. 이 거래에는 시장주(柴場主)인 박막실(朴莫失)과 필집(筆執) 강재문(姜載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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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二十四)年乙丑三月二十五日徐受歇前明文▣▣所致莫重稅米納上之▣(道)出處無路故下東六作聖字柴場處價折正粗十七斗以交易捧上爲遣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後众子孫族數中若有雜談是去㝳持此文記告 官卞正事柴塲主 朴莫失[着名]茟執幼▣(學) 姜載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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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조광오(趙光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十月初二日 趙光五 光緖十五年己丑十月初二日 趙光五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89년(고종 26) 10월에 조광오가 부안현 부남면에 있는 가옥을 모씨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9년(고종 26) 10월 초2일에 조광오(趙光五)가 부안현(扶安縣) 부남면(扶南面)에 있는 가옥을 모씨(某氏)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광옥은 자신이 매득한 부남면 신동리(新洞里)에 있는 초가 2간(間)과 납자(納字)에서 경작한 전답의 1부(負)를 팔았다. 거래가격은 5원(円)이며,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건네 주어 뒷날 달리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가대주(家垈主)인 조광오(趙光五)와 증필(證筆) 최순환(崔順煥)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는 다른 문서와 점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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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五年己丑十月初二日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伏在扶南新洞里草家二間果納字所耕一負㐣価■[結]錢文五円依數捧上是遣新旧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憑考事家垈主 幼學 趙光五[着名]證筆 幼學 崔順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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