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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최기홍(崔基洪)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昭和六年二月三日 金在乾 崔基洪 昭和六年二月三日 金在乾 崔基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1년 김동건이 최기홍 앞으로 써 준 영수증 1931년 김동건(金東乾)이 최기홍(崔基洪) 앞으로 써 준 영수증이다. 현금 12원을 수령(受領)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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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최재홍(崔在洪)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昭和六年一月二十一日 村田判雄 昭和六年一月二十一日 村田判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1년 촌전열웅이 최재홍 앞으로 써 준 영수증 1931년 촌전열웅(村田列雄)이 최재홍(崔在洪) 앞으로 써 준 영수증이다. 현금 8원 48전을 수령(受領)하였다는 내용이다. 촌전열웅은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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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임야조사위원회(林野調査委員會) 통지서(通知書)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昭和八年四月二十五日 朝鮮總督府林野調査委員會 崔基洪 昭和八年四月二十五日 朝鮮總督府林野調査委員會 崔基洪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3년 4월 25일,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에서 최기홍에게 보낸 통지서 1933년 4월 25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임야조사위원회(林野調査委員會)에서 최기홍(崔基洪)에게 보낸 통지서(通知書)이다. 불복신고사건(不服申告事件)에 관하여 심사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건과 연관하여 호적을 제출해야 할 2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모두 최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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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등화일(安藤和一) 전보(電報) 초(草) 고문서-서간통고류-전보 개인-생활-전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안등화일이 최기홍에게 보내기 위하여 작성한 전보의 초안. 경성(京城)에 사는 안등화일(安藤和一)이 부안(扶安)의 최기홍(崔基洪)에게 보내기 위하여 작성한 전보의 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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假處分決定扶安郡東津面內基里申請人 金洛庠仝郡上西面嘉五里申請人金炯植仝郡東津面鳳凰里申請人金珪相仝郡扶寧面瓮中里被申請人崔基洪仝郡保安面牛東里被申請人 崔炳郁仝郡扶寧面瓮中里被申請人崔基洪右當事者間ノ假處分申請事件ニ付當裁判所ハ債權者ノ申請ヲ相當ト認メ保証トシテ金參拾兩也ヲ供託セシメ決定スルコト左ノ如シ扶安郡扶寧面蓮谷里所在道洞山(一名席洞山)ヨリ斫伐シタル松枝七百五拾五束ヲ申請人ニ之ヲ?ニ引渡スヘシ大正十一年一月二十三日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印]朝鮮總督府判事尾家仁六前同日於前同廳此ノ正本作成ス朝鮮總督府裁判所書記鄭泰澔[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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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 기소명령(起訴命令)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大正十年十一月十九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大正十年十一月十九日 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1년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의 기소명령 1921년 11월 19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정읍지청(井邑支廳)의 기소명령(起訴命令)이다.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김규상(金珪相)과 김석술(金錫述)이 최병욱(崔秉郁)을 상대로 낸 동산가처분신청(動産假處分申請) 사건에 대해 최병욱에게 기소를 통보하였다. 기소명령은 본안 소송(本案訴訟)의 계속(係屬) 전에 가압류나 가처분 명령이 발부되었을 경우, 명령을 발한 법원이 채무자의 신청에 의하여 본안 소송의 제기(提起)를 명하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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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籍簿照合濟[印]申告書申告年月日 : 大正 年 月 日總代認印 : [印][印]所有者綠故者住所氏名印 : 全羅北道扶安郡保安面牛東里五百八十九番 崔炳郁[印]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及住所氏名印 : (資格) 道 郡 面 里 番土地所在 : 扶安郡扶寧面蓮谷里(席洞山西麓)地目 : 林野四標 : 東 路 南 路〃 西 金珪相林 北 로面積 : 一000地籍届 : 隆熙四年六月九日 名義人 : 崔炳郁證明又登記種類番號年月日舊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新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貸付年月日及指令番號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事由其他參考事項 : 十四代祖崔生明以下宗中財産證據書類 壹通地籍届面積十二町六反二畝十五步內綠故林野所有權査定願表記申告書記載의綠故林野을綠故者 의所有에御査定하기로別紙證據書類寫相添林野調査令施行規則第九條에依야出願홈大正年 月 日 右全羅北道知事 殿一, 申告書은一里洞마다調製야他의里洞의分을混入치말事二, 住所氏名은本籍地居住者에在야民籍簿又은戶籍簿와一致케고寄留者에在야寄留者의登錄簿又은寄留簿와一致케야此와同一의文字를用야明瞭히記載이可홈但申告者가林野所在面外에居住境過에前記書類의抄本을添付홈이可홈三, 林野內에介在土地는地籍圖에登錄치아니것슨林野가아니라도總히申告이可홈 地籍圖에登記林野는申告치아니홈四, 地目은土地調査令第二條의規定에依할事五, 利害關係人으로부터申告할경우에는其住所利害關係人될事及氏名을(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欄에記入이可홈六, 共有地의申告書에는代表者의住所氏名을記入고別히各自의住所氏名을記載連名書을添付이可홈七, 表中(證明)은土地에關舊證明規則及不動産証明令에依證明(登記)은不動産登記令에依야登記(地籍届)는舊森林法第十九條의地籍届(貸付)는國有地貸付에係할者로홈前記의關係가有土地는此를別筆로셔申告이可홈八, 官廳에셔通知書는(申告書)을(通知書)로이可홈九, 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立旨,立案,完文又는賜牌等을有것슨其寫를添付이可홈十, 所有者又는綠故者住所氏名欄은所有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綠故者)의三字을抹消고綠故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所有者)의三字을抹消이可홈十一, 登記又證明의種類年月日番號欄의內明治四十五年三月三十一日以前에受것은舊欄에記入이可홈十二, 貸付年月日及指令欄에는國有地의貸付에限야記載할것스로셔種類의下에有料無料의別을記入이可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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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의 가처분결정(假處分決定) 증명서(證明書)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정치/행정-보고-신청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22년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의 가처분결정에 대한 증명서. 1922년 1월 23일에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光州地方法院井邑支廳)이 내린 가처분결정(假處分決定)에 대한 증명서(證明書)이다. 부안 동진면・상서면에 사는 김낙상・김형식(金炯植)•김규상(金珪相)이 부안 부령면・보안면에 사는 최기홍(崔基洪)・최병욱(崔炳郁)・최기홍(崔基洪)을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이에 재판소는 당사간의 가처분신청에 대해 채권자(債權者)의 신청을 상당하다고 인정하여 보증금 30냥을 공탁하도록 하고,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 도동산(道洞山)에서 간벌(間伐)한 솔가지 755속을 신청인에게 인도(引渡)하라고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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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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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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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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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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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民籍簿照合濟[印]申告書申告年月日 : 大正 年 月 日總代認印 : [印][印]所有者綠故字住所氏名印 : 全羅北道扶安郡保安面牛東里五百八十九番 崔炳郁[印]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及住所氏名印 : (資格) 道 郡 面 里 番土地所在 : 扶安郡扶寧面蓮谷里(席洞山西麓)地目 : 林野四標 : 東 金珪相林 南 本人田〃 西 金洛進畓 北 路面積 : 一五000地籍届 :隆熙四年六月九日 名義人 : 崔炳郁證明又登記種類番號年月日舊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新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貸付年月日及指令番號 : 種類 番號 年 月 日 名義人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事由其他參考事項 : 十四代祖崔生明以下宗中財産證據書類 一通地籍届面積十二町六反二畝十五步內綠故林野所有權査定願表記申告書記載의綠故林野을綠故者 의所有에御査定하기로別紙證據書類寫相添林野調査令施行規則第九條에依야出願홈大正 年 月 日 右全羅北道知事 殿一, 申告書은一里洞마다調製야他의里洞의分을混入치말事二, 住所氏名은本籍地居住者에在야民籍簿又은戶籍簿와一致케고寄留者에在야寄留者의登錄簿又은寄留簿와一致케야此와同一의文字를用야明瞭히記載이可홈但申告者가林野所在面外에居住境過에前記書類의抄本을添付홈이可홈三, 林野內에介在土地는地籍圖에登錄치아니것슨林野가아니라도總히申告이可홈 地籍圖에登記林野는申告치아니홈四, 地目은土地調査令第二條의規定에依할事五, 利害關係人으로부터申告할경우에는其住所利害關係人될事及氏名을(前記以外의申告者의資格)欄에記이可홈六, 共有地의申告書에는代表者의住所氏名을記入고別히各自의住所氏名을記載連名書을添付이可홈七, 表中(證明)은土地에關舊證明規則及不動産証明令에依證明(登記)은不動産登記令에依야登記(地籍届)는舊森林法第十九條의地籍届(貸付)는國有地貸付에係할者로홈前記의關係가有土地는此를別筆로셔申告이可홈八, 官廳에셔通知書는(申告書)을(通知書)로이可홈九, 私有又는綠故의證據될만立旨,立案,完文又는賜牌等을有것슨其寫를添付이可홈十, 所有者又는綠故者住所氏名欄은所有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綠故者)의三字을抹消고綠故者로부터申告할境過는(所有者)의三字을抹消이可홈十一, 登記又證明의種類年月日番號欄의內明治四十五年三月三十一日以前에受것은舊欄에記入이可홈十二, 貸付年月日及指令欄에는國有地의貸付에限야記載할것스로셔種類의下에有料無料의別을記入이可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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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大正) 연간 최병욱(崔炳郁) 소유임야(所有林野) 신고서(申告書) 4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전라북도 부안군 원형 적색4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대정 연간에 최병욱이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 대정(大正) 연간에 최병욱(崔炳郁)이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全羅北道)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이다. 최병욱은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면서 그의 14대조(代祖) 최생명(崔生明) 이하 종중재산인 부령면 연곡리의 임야 12정(町) 가운데 3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하였다. 신고한 토지의 면적은 동쪽 최병욱의 논(畓)에서 남쪽의 구(溝)을 지나 서쪽 김계상(金桂相) 임야 표지에서 북쪽 길 표시까지이다.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지로 강점한 전후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대하여 대규모의 조사사업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임야수탈 정책상 일반토지와 마찬가지로 임야도 자본투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확립과 그 이전(移轉)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임야 소유관계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일제는 종래 한국의 토지·임야 소유제를 반(半)봉건적 소유제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사적 소유제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식민지 수탈의 양대 기초로 삼았다. 일제당국은 이 사업의 목적이 토지조사에서 제외된 임야와 임야 내 개재지(介在地)의 소유권, 경계를 법적으로 확립함으로써 종래 분쟁의 화근이었던 혼란스런 권리관계를 명백히 하여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한국임정의 정비에 자료를 제공함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적은 한국 임야에 근대적인 등기제도를 도입해 지번제(地番制)를 창설함으로써 삼림수탈의 주대상이던 국유임야를 최종적으로 사유임야의 소유관계를 재편해 확고부동한 소유권만을 재공인함으로써 임야에 대한 권리확보 및 이용을 편리하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 하에서 일본인 임업자본가를 보호 육성하고 일본인 이민들에게 창출된 국유임야를 분급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국유임야 창출의 극대화 및 법인과 사유임야 소유권의 재법인을 통해 한국인의 소유권과 사유림을 약탈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1916년 시험적 준비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9년간 1차 사정사무(査定事務)가 완료되었고, 이에 부수하는 2차 재결사무(裁決事務)는 조선총독부임야조사위원회의 주관으로 1919년 개시되어 1935년 비로소 완결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이래 임야사점(林野私占)이 확대되어 소유자나 다름없는 지위를 점유해 특수한 연고관계를 가진 상당수의 임야를 연고권만을 법인한 국유림으로 귀속시켰다. 한국의 주체적 임야조사였다면 당연히 민유로 사정되어야 할 한국민의 임야를 연고림이라는 명목으로 국유화한 면적만도 무려 337만 5000정보에 달한다. 한편, 임야조사사업으로 일본인의 기존 임야점유가 합법화됨은 물론, 강제로 편입된 국유임야가 최종적으로 법인됨에 따라, 일제와 결탁한 일부 한국인들이 임야를 대부 또는 불하받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임야조사사업 항목 참고.) 한편, 최병욱 명의(名義)의 토지에 대한 신고서의 모든 사항을 기록한 해는 융희 4년(즉,1910년)인데 토지신고일은 대정(大正)으로만 기재되어 있어 정확한 신고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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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大正) 연간 최병욱(崔炳郁) 소유임야(所有林野) 신고서(申告書) 3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大正 年 月 日 崔炳郁 全羅北道知事 전라북도 부안군 원형 적색4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대정 연간에 최병욱이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 대정(大正) 연간에 최병욱(崔炳郁)이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연곡리(蓮谷里)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라북도(全羅北道)에 신고하면서 작성한 신고서이다. 최병욱은 보안면(保安面) 우동리(牛東里)에 살면서 그의 14대조(代祖) 최생명(崔生明) 이하 종중재산인 부령면 연곡리의 임야 12정(町) 가운데 1.5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하였다. 신고한 토지의 면적은 동쪽 김계상(金桂相) 임야 표지에서 남쪽의 최병욱 밭(田)을 따라 서쪽 김낙진(金洛進)의 논(畓)을 지나 북쪽 길 표시까지이다. 일제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우리나라를 완전히 식민지로 강점한 전후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대하여 대규모의 조사사업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임야수탈 정책상 일반토지와 마찬가지로 임야도 자본투자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확립과 그 이전(移轉)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임야 소유관계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일제는 종래 한국의 토지·임야 소유제를 반(半)봉건적 소유제도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근대적인 사적 소유제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하여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식민지 수탈의 양대 기초로 삼았다. 일제당국은 이 사업의 목적이 토지조사에서 제외된 임야와 임야 내 개재지(介在地)의 소유권, 경계를 법적으로 확립함으로써 종래 분쟁의 화근이었던 혼란스런 권리관계를 명백히하여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한국임정의 정비에 자료를 제공함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적은 한국 임야에 근대적인 등기제도를 도입해 지번제(地番制)를 창설함으로써 삼림수탈의 주대상이던 국유임야를 최종적으로 사유임야의 소유관계를 재편해 확고부동한 소유권만을 재공인함으로써 임야에 대한 권리확보 및 이용을 편리하게 하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보장 하에서 일본인 임업자본가를 보호 육성하고 일본인 이민들에게 창출된 국유임야를 분급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국유임야 창출의 극대화 및 법인과 사유임야 소유권의 재법인을 통해 한국인의 소유권과 사유림을 약탈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1916년 시험적 준비조사를 거쳐 1917년부터 1924년까지 9년간 1차 사정사무(査定事務)가 완료되었고, 이에 부수하는 2차 재결사무(裁決事務)는 조선총독부임야조사위원회의 주관으로 1919년 개시되어 1935년 비로소 완결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이래 임야사점(林野私占)이 확대되어 소유자나 다름없는 지위를 점유해 특수한 연고관계를 가진 상당수의 임야를 연고권만을 법인한 국유림으로 귀속시켰다. 한국의 주체적 임야조사였다면 당연히 민유로 사정되어야 할 한국민의 임야를 연고림이라는 명목으로 국유화한 면적만도 무려 337만 5000정보에 달한다. 한편, 임야조사사업으로 일본인의 기존 임야점유가 합법화됨은 물론, 강제로 편입된 국유임야가 최종적으로 법인됨에 따라, 일제와 결탁한 일부 한국인들이 임야를 대부 또는 불하받게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임야조사사업 항목 참고.) 한편, 최병욱 명의(名義)의 토지에 대한 신고서의 모든 사항을 기록한 해는 융희 4년(즉,1910년)인데 토지신고일은 대정(大正)으로만 기재되어 있어 정확한 신고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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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신고서 정치/행정-보고-신고서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연곡리 임야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 소유의 연곡리(蓮谷里) 임야(林野)를 추가로 신고하면서 제출한 서류이다. 신고 이유는 물론 소유 관계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추신서(追申書) 1’의 수정본으로 보인다. 신고 시점은 명시되어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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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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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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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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