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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축문(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壬子九月辛未朔十五日乙酉 壬子九月辛未朔十五日乙酉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임자년에 작성한 축문식 임자년에 작성한 축문양식(祝文樣式)이다. 미사용이다. 축문을 손으로 쓰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하여 미리 프린트 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제삿날은 9월 15일로 되어 있다. 임자년은 1972년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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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郎公諱沫行狀〔墓碣〕公諱沫系出全州始祖諱 阿封完山君諡文成七傳至諱克成正德丁卯進士丙子文科奉列大夫藝文館檢閱翰林以獻納爲親乞外行錦山郡守治績清簡頌碑豊口淑夫人吳氏副正漢相女公之考妣也公天性豁達器局卓異孝敬彌篤躬執炊饌晨夕甘旨寒署裘葛殫誠竭力有患侍湯之勤藥餌之節百方救調及其易簀哀毁踰禮居喪禮法一如朱文公家禮時稱卓孝學問夙就反復經籍博涉性理巨細畢擧條理不紊與滄浪成文濬道義滄浪曰文章餘事喫緊工夫可獎後學齊家以寬嚴敎子有規矩世稱無㦖君子官吏曺正郞在職未幾無意仕進勇退桑里配淑人礪山宋氏文府使期忠女是生一子一女子諱德立號晴浦進士主簿文章鳴世女適安東權恊文判書吉昌君晴浦公子諱㠎叅奉權恊子權信中右相子權必中察訪子權景中子權正中子權近中子權審中縣監子權偉吏曹判書㠎是生二子長諱是萬僉樞次諱義萬叅奉子諱宗健主簿子諱益亨奉事餘不盡記公之世代旣遠遺稿㪚逸故后孫秉甲僅得古家流傳者請記余不敢辭爲之記傍裔斗洪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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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당(月塘) 최담(崔霮) 묘갈(墓碣)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嘉善大夫行漢城右尹全義李基敬撰 李基敬 崔霮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이기경이 작성한 월당선생 최담의 묘갈의 초안○ 내용 모년에 이기경(李基敬)이 월당선생 최담(崔霮)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墓碣)의 초안(草案)이다. 모년에 이기경(李基敬)이 월당선생 최담(崔霮)의 묘비에 사적(事蹟)이나 덕행(德行)을 후세에 알릴 목적으로 작성한 묘갈(墓碣)의 초안(草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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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이병은(李炳殷) 문간공송애선생신도비명(文簡公松崖先生神道碑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歲丁酉二月初吉 李炳殷 歲丁酉二月初吉 李炳殷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7년에 이병은이 작성한 문간공 송애 최광지의 신도비명. 1957년에 이병은(李炳殷)이 작성한 문간공(文簡公) 송애(松崖) 최광지(崔匡之)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이다. 그는 월당(月塘) 최담(崔霮)의 맏아들로, 1389년(창왕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였다. 이병은은 송애가 문종조의 명신(名臣)이었던 동생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와 마찬가지로 출처(出處)가 분명했다고 칭찬했다. 최덕지는 앞으로 화(禍)가 닥치리라 생각하고 미리 은퇴했는데, 송애 역시 단종(端宗)의 즉위 1년 전에 기미를 알고 연촌보다 일찍 조정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최광지의 첫째아들은 옹암(甕菴) 최생명(崔生明)이며, 그 아들, 즉 최광지의 손자가 바로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이다. 최광지는 특히 그가 문과 급제할 때 받았던 합격증서 홍패(紅牌)가 고려시대의 홍패로서는 매우 드물게 오늘날까지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이 홍패는 왕명의 직인이 찍혀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고려시대의 홍패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공문서 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홍패는 2020년 4월에 보물 제2062호로 지정되었다. 이 신도기를 지은 이병은은 본관이 전의(全義)이며, 호는 고재(顧齋)이다. 완주 출신으로,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고재집(顧齋集)』 12권 6책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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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최공묘갈명(愚村崔公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우촌 최공 묘갈명의 일부분 우촌(愚村) 최공(崔公)의 묘갈명(墓碣銘)이다. 최공의 자(字)는 자화(子華)였다. 이름은 알 수 없다. 묘갈명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으로 판단된다. 나중에 최공의 묘갈명을 지을 때 참고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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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박세채(朴世采) 산당집발(山堂集跋) 고문서-시문류-발 교육/문화-문학/저술-발 崇禎乙丑葛月初吉 朴世采 崇禎乙丑葛月初吉 朴世采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685년(숙종 11) 박세채가 지은 산당집의 발문 1685년 박세채(朴世采)가 지은 산당집(山堂集)의 발문이다. 물론 전사본이다. 남계(南溪)라는 호로 잘 알려진 박세채는 조선후기의 문신이다. 그리고 산당집은 조선 전기의 학자 최충성(崔忠成)의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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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송치규(宋穉圭) 상지재유사발(尙志齋遺事跋) 고문서-시문류-발 교육/문화-문학/저술-발 崇禎四庚寅冬至翌日 宋穉圭 崇禎四庚寅冬至翌日 宋穉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30년에 송치규가 지은 상지재 유사 발문 1830년(순조 30) 송치규(宋穉圭)가 지은 것이다. 상지재유사(尙志齋遺事)의 발문이다. 물론 전사본이다. 송치규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6세손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였다. 그리고 상지재(尙志齋)는 전남 화순에 있는 구강서원(鷗江書院) 내의 건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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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최기홍(崔基洪) 표창문(表彰文) 고문서-시문류-문 교육/문화-문학/저술-문 歲己卯重陽月 基洪 歲己卯重陽月 崔基洪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 최기홍이 작성한 표창문 1939년 최기홍(崔基洪)이 작성한 표창문(表彰文)이다. 참봉(參奉) 최재홍(崔在洪, 1865~1937)이 최씨가문을 위해 노력한 내용을 표창하는 내용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의(義)와 이(利)의 사이에서 의를 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석동산 산송 과정에서 족조(族祖) 봉암(蓬庵)과 족숙(族叔) 오산(梧山)이 14년 동안 헌신한 공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선영(先塋) 회복에 자손들이 마음과 힘을 합쳐야 사람들이 최씨에게 씨족(氏族)이 있고 첨족(僉族)이 성의와 힘이 있다고 할 것이다. 참봉 최재홍이 종채(宗債) 1,000여 금(金)을 갚아주었으니 이런 일은 성효(誠孝)가 천리에서 근원하고 인욕의 사사로움을 잊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로써 후손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최재홍의 자는 공집(公執), 호는 석당(石堂)이다. 혜릉참봉(惠陵參奉)을 역임했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태인의병(泰仁義兵)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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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彰文夫義利之際天理人欲之分非其心出於正其行由於善者則鮮不以人而滅天焉故君子之觀人必於是此在淑世哲賢之所難而況今時途日趍汚下仁善之道將閉塞而蔑如矣乎惟吾席洞自遭中葉之山變子姓蕩析族祖蓬庵族叔梧山兩丈獻身十四年之間纔得歸正只〖至〗今頌功而不衰逮夫近禮宿火復燃一門翁然多小用度槪出於各派與諸族祖宗事雖曰責在子孫而搶攘之際能協心彈力圖所以復塋域披書賭白者亦可謂崔之有氏族而僉族之有誠力也至其算計之有所未及則參奉在洪多所周章矣而當報之宗債千餘金亦蕩而不受寒門舒力非徒感惠其誠孝之篤有非根於天理之公而忘人欲之私者安能如是乎足可謂後昆之模範而垂之不朽耳以余不肖亦黽勉於十七年之久詳其顚末故命余記其事遂忘拙序次歲己卯重陽月不肖基洪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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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계처사(石溪處士) 최명룡(崔命龍)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석계처사 최명룡의 묘갈명 초안 석계처사(石溪處士) 최명룡(崔命龍)의 묘갈명(墓碣銘)이다. 수정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안으로 보인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어서 묘갈명을 쓴 사람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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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계(巖溪) 최연손(崔連孫)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개인-전기-묘문 旁孫 命龍 謹撰 崔命龍 崔連孫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최명룡이 작성한 암계공 최연손의 묘갈명 병서 초안 모년에 최명룡(崔命龍)이 암계공 최연손(崔連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 초안(草案)이다. 최연손의 자는 자윤(子胤), 호는 암계(巖溪)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합격하였는데, 생원시에서는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판결사(都承旨判決事)를 역임했다. 암계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릉(江陵)에는 그의 추모비[去思碑]가 세워져 있다. 암계는 어렸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히 대하며 말을 부드럽게 하고 봉양하였다. 그의 유순하면서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행동거지가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으며, 사방에서 그의 행실에 탄복하였다. 또한 그는 경전(經傳)의 깊은 뜻과 하락(河洛)의 도서(圖書)가 지닌 심오한 이치에 대하여도 통달하였을만큼 학식이 깊었다. 공의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전주최씨는 병마절도사 최전(崔湔)의 딸이며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증손이다. 부부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윤조(潤祖)이고, 작은아들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역임한 엄조(渰祖)이다. 딸은 좌랑 정기수(鄭期壽)에 시집갔다. 그리고 손자 2명과 손녀 1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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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최옥학(崔鈺鶴) 십대조고조비축문(十代祖考祖妣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종교/풍속-관혼상제-축문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鈺鶴 庚戌九月癸丑朔十五日丁卯 崔鈺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70년에 최옥학이 지은 십대조고조비 축문 경술년인 1970년에 최옥학(崔鈺鶴)이 지은 본인의 십대조고(十代祖考)와 십대조비(十代祖妣)의 축문(祝文)이다. 제삿날인 9월 15일에 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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