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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박진호372)에게 주다 贈朴甥珍浩 자리 위의 보배373)는 그대에게 아주 견줄 만하니 席上奇珍擬汝深좋은 바탕에 한 점의 흠도 범하지 못하게 하라 莫將良質點瑕侵솔은 어려서 심을 때부터 하늘 찌르려는 뜻이 있고 松從穉植干霄志물은 작은 물길 때부터 바다에 이르려는 마음 있네 水自涓流到海心하루를 인으로 돌아가도 자기로 말미암아 이루니374) 一日歸仁由己致평생 경을 견지하면서375) 신이 임한 듯 해야 하네 平生持敬若神臨비록 내가 창려의 공업376)이 없어서 부끄러우나 縱吾愧乏昌黎業농이377)가 훗날에 아마 지금을 회복하리라 隴李他年倘復今 席上奇珍擬汝深, 莫將良質點瑕侵.松從穉植干霄志, 水自涓流到海心.一日歸仁由己致, 平生持敬若神臨.縱吾愧乏昌黎業, 隴李他年倘復今. 박진호 김택술의 2녀 중 둘째 사위이다. 자리 위의 보배[席上奇珍] 유자(儒者)의 훌륭한 재주와 학문을 비유하는 말이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자리를 권하자, 공자가 모시고 앉아서 "유자는 자신의 자리 위에 진귀한 보배를 준비해 놓고서 초빙해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儒有席上之珍以待聘.]"라고 하였다. 《禮記 儒行》 하루를 …… 이루니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있다는 뜻이다. 《논어》 〈안연(顔淵)〉에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하는 것이다.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있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달려있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다. 경을 견지하면서 원문의 '지경(持敬)'은 성리학에서 심성을 수양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북송(北宋)의 정이(程頤)는 '경'을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 두 가지로 설명하였다. 창려의 공업[昌黎業] 창려(昌黎)는 창려백(昌黎伯)에 추봉(追封)된 한유(韓愈)를 말한다. 창려의 공업(功業)은 한유가 공맹(孔孟)의 유도(儒道)를 진흥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노장(老莊) 사상이나 불교 등을 이단(異端)으로 극력 배척하였던 일을 말한다. 농이(隴李) 흔히 한대(漢代)의 대장군 이광(李廣), 당대(唐代)의 이백(李白) 등을 배출한 명가(名家)인 농서 이씨(隴西李氏)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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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壬戌 임술년(1922)관례(冠禮)를 할 때 부친 및 조부의 장자 그리고 지자(支子)46)의 장자가 있는데, 예가(禮家)들 중에는 간혹 적자는 있지만 적손은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또 지가(支家)는 전중할 것이 없다고 여겨서 모두 중자(衆子)로 보아 조계(阼階)47)에서 관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에서는 단지 '장자(長子)'라고만 했고 '적손(適孫)'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며, 단지 '장자(長子)'라고만 말하고 '종자(宗子)48)의 장자(宗子之長子)'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조부가 있거나 없음 또 종가와 지가를 막론하고 장자들은 모두 '장자(長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의(冠義)〉에서는 "조계에서 관례를 치러서 이를 통해 대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49)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아들이 이미 그 부친을 대신하여 조계를 주관하는 자라면 전중하는 것을 기다린 이후에 장자가 되어 마치 복상제도에서 삼년상을 치르게 되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에 종자와 함께 사는 지자의 장자라고 한다면, 아마 마땅히 조계에서 관례를 치르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 조계는 관례를 하는 지자의 장자가 장래에 주관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가 대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이 답서에서 말씀하셨다."장자가 조계에서 관례를 치르는 것은 종자나 지자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다는 말은 아마도 맞는 것 같다." 冠時, 有父及祖之長子, 及支子之長子, 禮家或以爲有適子無適孫.又以爲支家無所傳重, 皆作衆子看, 而不冠於阼階, 然小子竊以為未必然.《禮》但曰'長子'而不曰'適孫', 但曰'長子'而不曰'宗子之長子', 則是不論祖在不在宗家支家, 凡長子皆可曰長子也.冠義曰 : "冠於阼以著代也." 此子既是將代其父主阼階者, 則不必待有所傳重而後, 得爲長子, 若制服三年者也.若與宗子同居支子之長子, 則恐當不冠於阼, 何也? 以此阼階, 非此子將來之所主故也.伏乞下批.○ 先生答書曰 : "長子冠於阼階, 不問宗支皆然之喻, 恐得之." 지자(支子) 서자의 의미도 있지만, 적장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지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조계(阼階) 관혼상제를 치를 때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동쪽섬돌이다. 종자(宗子) 종가의 맏아들이다. 조계……나타낸다 《예기(禮記)》 〈관의(冠義)〉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적자의 경우에는 동쪽 계단 쪽에서 관례(冠禮)를 치러서, 이를 통해서 대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빈객의 위치에서 초(醮)를 하고, 세 차례 관(冠)을 씌워주어, 점진적으로 존귀하게 되니, 이처럼 세 차례 관(冠)을 더해주는 것에는 성인(成人)이 되어, 더욱 공경스럽게 대한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관례를 치른 뒤에는 그에게 자(字)를 지어주니, 성인의 도리에 해당한다.〔故冠於阼, 以著代也. 醮於客位, 三加彌尊, 加有成也. 已冠而字之, 成人之道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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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壬戌 임술년(1922)김감역이 쓴 매산(홍직필)의 제문을 베껴서 올려드리고, 아울러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저의 견해로는 그 문장이 매옹을 기롱하고 비웃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자헌대부, 성균관 좨주'라는 아홉 글자를 사용하였지만, 그것은 좋은 제목이 아닙니다. 아래 문장에서 벼슬자리는 빈사(賓師)에 이르렀고, 귀함은 열경(列卿), 공경대부(公卿大夫)에 올랐으며, 옹수(擁篲),50) 추풍(趨風)51) 등 휘황찬란하게 포장한 말들은 모두 처음의 제목을 메조지 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현인군자를 칭송함에 있어서 맨 처음을 인작(人爵)의 영화로움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그에게 천작(天爵)52)의 실상이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장수하고 해로했다는 말은 비록 '사람의 복경(福慶)'이라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여항의 부로(父老)를 칭송했다면 가능하겠지만 일국의 종사(宗師)를 칭송했다면 맞지 않습니다.그 조예를 논함에 있어서 "농암(김창협)과 삼연(김창흡)의 여운을 연마하고, 미호(김원행)와 근재(박윤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갔다."53)라고 했으니, 이는 곧 공자와 주자의 단서와 율곡과 우암의 학통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전인의 옛것을 다 이어받고 본심의 편안함을 한결같이 따랐다"54)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 학문은 대부분 말과 귀로 들은 것이고, 그 행실은 단지 자기 마음의 편안함만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말이 이 지경에 이른 것만 해도 이미 너무 심한 것인데, 다시 말하기를 "관직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요순같은 성군으로 만들고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공업을 이루지 못하고, 초야로 물러나서는 명아주와 콩잎 따는 것을 그치게 하지 못하였다."55)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보탬이 없었다는 뜻이니, 어찌 현자를 귀하게 여긴 것입니까?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계야(저부)의 춘추의리를 보존하여56) 건괘(乾卦) 초구(初九)의 상57)을 잘 살피고, 진(陳) 태구(大丘)58)의 도가 넓다[道廣]59)는 말을 품고서 쾌괘(夬卦)의 오효(五爻)에 대해 점을 쳤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마음으로 시비를 알아 감히 자신의 재주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음(陰)을 가까이하여 화를 면하면서 도가 넓다는 말에 비견하였으니, 이 또한 현자에게서 무엇을 취한 것입니까? 이리하여 매옹의 현명함은 땅에 떨어져 매몰되었고, 다시는 매옹의 본래면목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대개 남의 제문에서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큰 악습이거늘 하물며 선생으로 호칭하고 문인이라 일컬으면서도 매옹에게 참으로 흠이 있는가 없는가의 실상을 논하지 않았으니, 김 씨의 문장은 실상을 말한 것인가요? 아니면 스승을 무고한 것인가요? 그 윤리와 상식을 어긴 것이 어찌 명교(名敎)를 어그러트린 죄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미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매문(梅門)의 제현들이 현명하여 (김감역)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고, 의리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 이 문장을 배척하여 물리치지 않고 묵묵히 수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제가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무릇 친구가 의론함에 있어 잘못이 있고 행실에 실수가 있다면, (그 친구가) 살아있을 때는 질책하고 비난하는 등 모든 것을 다하는데, 이는 그가 반성하여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죽은 뒤에는 그가 대답하여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각도 없으니 내버려두고 다시 말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오랜 친구에 대하여 말을 하지 않는 계율이 있었는데, 하물며 제전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낼 때 그가 무언무지(無言無知)하다 생각하고 멋대로 비난하고 조소한다면, 이것은 불인(不仁) 중에서도 심한 것입니다. 김 씨와 같은 행동은 스승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친구에게도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근세의 유림 중에서 간혹 결론 나지 않는 의론과 서로 대립하고 있는 사안으로 인하여 고하는 문장 속에서 비난하는 뜻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대단히 정의(情誼)도 없고 예의도 없는 행위이니, 어찌 '친구를 버리면 백성들이 투박하게 된다.'60)는 구덩이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마땅히 경계할 일이지 본받을 일은 아닙니다. 만약 그 사람의 언행이 세교를 해칠만한 것이 있다면, 스스로 마땅히 훗날에 별도로 논해야 할 것이니 이런 생각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일찍이 여호(黎湖) 김령(金令)이 '김감역이 매산을 제사 지내면서 쓴 제문에서, 스승과 제자관계이면서 그 말이 이와 같을 수 있는가. 의심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문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가부를 결단할 수 없었다. 이제 그 본문을 기록한 것을 보고, 또 고명한 그대가 변론한 여러 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간담이 떨렸다. 보내온 편지에서 '매옹 문하의 제현이 어찌 이 문장을 배척하여 물리치지 않았는가.'라고 하니, 참으로 의문이 든다. 내가 전재(임헌회)선사를 수십 년 동안 섬겼지만 일찍이 선사가 김 씨의 뇌사에 대하여 온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고, 숙재(조병덕)와 인산(仁山) 두 문하는 내가 일찍이 직접 만나보았지만 들은 것이 없었고, 입헌(한운성)과 오곡(홍용관)61)의 문자에서도 또한 그렇게 운운한 것을 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김 씨가 일찍이 치전(致奠)62)에서 스스로 이 뇌문을 짓지 않았는데, 문고(文稿)에는 올라간 것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결단코 받아서 상설(象設)의 아래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일찍이 교남(嶠南-영남)의 사류(士流)에게 '김평묵(金平黙)이 매산 문하를 배반한 졸개'라는 설이 있는 것을 들었는데, 어찌 이 사람 외에 또 패악스럽고 오만하며 불공한 죄를 저지른 자가 있단 말인가? 임석영(林奭榮)이 일찍이 김 씨가 지은〈임규직전(任圭直傳)〉을 보았는데 매산 문하에 대해 불손한 말이 있었고, 심운가(沈雲稼)가 또한 말하기를 '홍재구(洪在龜)가 늘 매옹을 헐뜯으니 심 씨 어른이 그를 '그대가 후생의 젊은이로서 감히 이처럼 한다면 이후에는 다시는 오지 말라.'라고 꾸짖었다.'라 하였다. 나는 홍 씨가 김 씨의 사위인데, 김 씨가 매옹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이 있었다면 사위가 어찌 감히 이렇게 했을까 의심하였다. 이제 이 뇌사를 가지고 살펴보건대, 김 씨가 사론(士論)에 대하여 어찌 감히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김 씨가 심운가가 자신을 질책하는 편지의 답서에서 또한 전재선사를 언급하면서 '명성과 지위가 크게 드러난 사람이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자헌과 좨주에 관한 말이다. 숙재의 상을 위로함에서는 또한 '나라의 불행이'라고 일컬었으니, 그 심기의 괴팍함이 원래 이와 같았다.】" 金監役祭梅山文, 鈔來呈上, 覽詳焉.以淺見見之, 其文之譏嘲梅翁, 殆無餘地.蓋其劈頭資憲大夫成均館祭酒九字, 已是不好題目.而下文位極賓師, 貴躋列卿公卿大夫, 擁篲趨風等輝煌鋪張之語, 皆所以結果劈頭題目也.贊賢人君子, 而首以人爵之榮鋪張之, 則其無天爵之實可知矣.遐壽偕老雖曰人之福慶, 以此而贊閭巷父老, 則可, 而贊一國之宗師, 則非也.其論造詣, 則曰 : "理農淵之韻, 泝渼近之源," 則是未及與聞乎孔朱之緒栗尤之統矣.曰"咸述乎前人之舊, 一循乎本心之安," 則是其學也, 多涉乎口耳之得, 其行也, 只從乎己心之安矣.言至於此, 亦已甚矣, 乃復曰 : "進不能有君民之業, 退不止藜藿之採." 是則一無補乎斯世也, 何所貴於賢者也.又進而曰 : "存季野之春秋, 而觀象於乾初, 懷大丘之道廣而玩占於夬五," 則是心知是非而不敢自用, 比陰免禍而自擬道廣矣, 亦何所取於賢者也? 於是乎梅翁之賢, 剗地埋沒, 而不復得爲梅翁矣.凡在他人祭文譏嘲已是惡習, 而況既號先生而稱門人, 則未論梅翁之有疵無疵.金文之是實是誣? 其悖倫乘常, 爲得免名教之罪也? 此則既然矣.所可疑者, 當時梅門諸賢, 明非不足於知言, 義非不嚴於尊師也, 何不斥退此文, 而泯默受之也.小子因此而思之, 凡於朋友議論之差, 行己之失, 其生也規責譏諷, 無所不至者, 冀其有所省悟也.及其已沒之後, 彼既不能答述而道逹己意, 又不能有知而領會人意, 則置之勿復道可也.故古人有不道舊故之戒, 而況於設奠祭侑之時, 謂其無言無知, 恣意譏嘲, 則是不仁之甚者也.若金氏之舉 則勿論於師, 於友更不可說也.竊見近世儒林中, 亦或因未決之議, 相持之案, 有畧寓譏切之意於告文中者.此於幽明閒, 非情非禮之大者, 而豈不歸於遺故民渝之科乎? 此恐在所當戒而不在當效也.若其人之言之行, 有足以害世教, 則自當別論於他日也, 未知此意如何?○ 先生答書曰 : "曾聞黎湖金令言'金監役祭梅山文, 既是師生而其言如此, 可疑也已.然愚未曾見其文, 故無一辭可否之斷矣.今承錄得本文, 而又有高明所辨諸說, 不覺心駭而膽掉也.來書之謂梅門諸賢, 何不斤退此文者, 眞可疑也.愚事全齊先師數十年, 未聞先師一言及於金誄之未安, 而肅齋仁山兩門, 愚嘗親及而無所聞, 立軒鰲谷文字, 亦未見其云云.豈金未嘗致奠自撰此誄, 而載於文稿歟? 不然, 決非可受而侑奠於象設之之下者也.愚少也曾聞嶠南士流, 有金平黙梅門叛卒之說, 豈此外又有悖慢不恭之罪歟? 林君奭榮曾見金所撰〈任氏圭直傳〉, 有不遜於梅門之語, 沈雲稼亦言洪在龜每詆毁梅翁, 沈丈叱之曰'君以後生少輩, 敢如是, 後勿復來,' 愚疑洪是金壻, 而金於梅翁, 有尊敬意, 則渠何敢乃爾? 今以此誄觀之, 金於士論, 何敢稱冤?【金答沈雲稼規之書, 亦言及全齊先師, 而曰'名位隆顯之人.' 今此所謂資憲祭酒.及慰肅齊喪, 亦稱邦國不幸, 蓋其心氣之乘愎, 元來如此.】 옹수(擁篲) 존귀한 사람을 맞이할 때 비를 가지고 앞길을 쓸며 인도하여 경의(敬意)를 표하고 예절(禮節)을 다한다는 말. 《사기(史記)》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에서 추자(騶子)가 연(燕)나라를 갔는데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가지고 선두에 서서 길을 쓸고 인도하여 맞이하고 그 제자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수업(受業)을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추풍(趨風) 공경을 나타내기 위해 상대방의 앞을 바람처럼 빨리 지나가 지체하는 않는다는 뜻으로, 남의 풍채를 우러러봄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6년에 "극지(郤至)가 세 번 초왕(楚王)의 군졸을 만났는데 초왕을 보면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투구를 벗고 추풍했다.〔郤至三遇楚子之卒, 見楚子, 必下, 免冑而趨風.〕"라고 하였다. 천작(天爵) "천작이라는 것도 있고, 인작이라는 것도 있다. 인의충신과 선을 즐기면서 지겨워하지 않는 것이 천작이다. 공경대부는 인작이다. 옛날 사람들은 천작을 수양하면 인작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지금 사람들은 천작을 수양하면서 인작을 얻으려고 한다. 이미 인작을 얻고 나서 천작을 버린다면 미혹됨이 심한 사람이다. 결국에는 반드시 인작마저 잃어버릴 것이다.〔有天爵者, 有人爵者. 仁義忠信, 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古之人, 修其天爵而人爵從之. 今之人, 修其天爵以要人爵. 旣得人爵, 而棄其天爵, 則惑之甚者也, 終亦必亡而已矣.〕"라는 말이 있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농암……올라갔다 김평묵은 "농암과 삼연이 남긴 것을 연마하고 미호와 근재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갔다〔理農淵之餘韻, 泝渼近之的源〕"라고 하였다. 《중암집(重菴集)》 권45 〈제매산홍선생직필문(祭梅山洪先生直弼文)〉 전인의……따랐다 김평묵은 "미언대의에 대해서는 모두 전인의 옛 것을 서술하고 권서의 작용에 대해서는 본심의 편안함을 한결같이 따랐습니다.〔微言大義, 咸述乎前人之舊; 而卷舒作用, 一循乎本心之安.〕"라고 하였다. 《중암집(重菴集)》 권45 〈제매산홍선생직필문(祭梅山洪先生直弼文)〉 관직에……못하였다 김평묵은 "사군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찌 이와 같은 것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관직에 나아가 낭묘에 있게 된다면 임금을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하고, 물러나 초야에 있게 된다면 마치 맹수가 산에 있어 명아주와 콩잎을 따러 오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然士君子生斯世也, 豈容若是而已? 盖進而居廊廟之上, 則爲能使是君爲堯舜之君, 使是民爲堯舜之民, 退而處嵁嵓之下, 猶能如猛虎之在山也, 藜藿爲之不採.〕"라고 하였다. 《중암집(重菴集)》 45권 〈제매산홍선생직필문(祭梅山洪先生直弼文)〉 그리고 《한서(漢書)》 권77 〈개관요전(蓋寬饒傳)〉에도 "산에 맹수가 있으면 명아주와 콩잎도 따러 나오지 못하고,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간사한 자들이 일어나지 못한다.〔山有猛獸, 藜藿爲之不采; 國有忠臣, 奸邪爲之不起.〕"라고 하였다. 계야(저부)의 춘추의리를 보존하여 진(晉) 나라 때 소준(蘇峻)을 평정한 공신으로 벼슬이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에 이른 저부(褚裒)의 자가 계야(季野)인데, 대신 환이(桓彛)가 일찍이 그를 지목하여 말하기를 "계야는 가죽 속에 《춘추(春秋)》가 있다.〔季野有皮裏春秋〕"라고 했던 데에서 기인한 말이다. 건괘(乾卦) 초구(初九) 《주역(周易)》 〈건괘(乾卦)〉에서는 "초구는 잠겨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初九, 潛龍, 勿用.〕"라 했고, "잠겨있는 용이니 쓰지 말아야 함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潛龍勿用, 陽在下也.〕"라고 하였다. 진태구(陳大丘) 후한(後漢) 말기의 명사 진식(陳寔)을 말한다. 그가 일찍이 태구현 장(太丘縣長)을 지냈기 때문에 진 태구라고 일컫게 되었다. 진식은 영천(潁川) 사람으로, 일찍이 당고(黨錮)의 화(禍)에 연루되었다가 사면되었다. 당시 천하에 권세를 떨치던 환관 장양(張讓)의 아버지가 죽어 영천으로 돌아와 장사를 지냈는데, 온 군(郡)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으나 명사(名士)들은 하나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장양이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던 차에 진식이 홀로 가서 조문하였다. 나중에 조정에서 다시 당인(黨人)들을 모두 처벌하였으나 진식은 죽음을 면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62 〈진식열전(陳寔列傳)〉 도가 넓다 〈취성정화병찬(聚星亭畫屛贊)〉에서 "아, 진자는 신령스런 산악이 빼어난 기운을 모아 낳았네. 글은 깊고 규범은 아름다우며 도는 넓고 마음은 공평하였네. 올곧은 행동과 공손한 말이 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여, 말거나 펼침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네. 거의 가함도 가하지 않음도 없었다고 말하리라. 몸을 바쳐 대중을 편안케 하고 환관에게 조문하여 나라를 온전케 하였네. 환하게 밝은 마음은 가을달이나 차가운 강바람과 같았네.〔猗歟陳子! 神嶽鍾英. 文淵範懿, 道廣心平. 危孫汙隆, 卷舒自我. 是曰庶幾, 無可不可. 獻身安衆, 弔竪全邦. 烱然方寸, 秋月寒江.〕"라고 하였던 것을 말한다. 친구를……된다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에서 "벗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풍속이 야박해지지 않는다〔故舊不遺則民不偸.〕"라고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곡(鳌谷) 매산 홍직필의 아들이다. 치전(致奠)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친족 및 사우 관계에 있는 자가 제물(祭物) 및 제문(祭文)을 가지고 찾아가서 조문하는 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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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壬戌 임술년(1922)오진영이 영가(永嘉) 김 씨가 홍취여(洪聚汝)에게 답한 편지에 대해 변론한 것을 보여주시니, 제 소견에 상의할 곳이 한두 가지가 있어 감히 질문을 드립니다. 매옹(梅翁)이 석릉(김매순)을 천거했을 때 오곡(鳌谷)은 이미 그가 만년의 절조를 훼손할지 알고 있었으니, 마땅히 간언하여 그치게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찌 그것을 권할 이치가 있습니까? 그가 이미 그렇게 행한 이후에 자식의 입장에서 부친을 위해 과실을 숨기고 자신에게 돌리는 도리를 지켜야 하니, 그가 '울면서 권하다가 힘써 따라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옳지 않으니, 이는 이치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한 조목 중에서 '머리를 숙이고 통렬하게 울었다.'는 한 구절 외엔 아마도 모두 무필(誣筆)63)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또 '조정의 명을 어기기 어렵고, 격렬한 자극이 염려스럽다'고 한 말은 바로 한쪽의 비난으로, 권귀(權貴)64)에 달려가 붙는 자들이 조목조목 따지고 밝히는 것은 다만 자신들의 허물을 무겁게 하고 저쪽이라는 증거를 실증할 따름입니다. '고립되어 위험한 지경에 처한 유림을 위하여 미연에 해를 끼치려는 마음을 방지한다'고 한 말은 당시에 권귀의 심술과 행사(行事)는 또한 남곤과 심정 무리들이 현인을 죽이고 올바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는데, 장차 어떻게 다른 사람의 믿음을 얻어 뒷날의 의론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까? 이런 문장들은 연원과 관계된 일이니 마땅히 공적으로 상의해서 터럭만큼도 미진한 것이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제넘고 경솔하게 아뢰어 궁극의 가르침을 구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下示吳震泳辨嘉金答洪聚汝書, 於淺見有一二可商者, 敢此取質.梅翁之薦石陵也, 鳌谷既知其虧損晚節, 則宐諫止之不暇, 豈有勸之之理乎? 及其既遂之後, 在人子爲親諱過歸已之道, 其曰泣勸勉從者未可, 便謂害理也.然則此一欵, 俯首痛泣一句外, 恐難全作誣筆也.且謂朝廷之難違, 激觸之可慮, 則正一邊所譏, 趨附權貴者, 其所以分疏辨白, 適足以重其累而實彼證也.謂爲孤危之儒林, 防禍心於未然, 則當時權貴之心術行事, 又不至如袞貞輩之戕賢毒正者, 將何以取人信絕後議乎? 此等文字, 事關淵源, 當公共商議, 勿使有一豪未盡者.故僭易奉白, 以求究極之教, 未知先生以爲如何? 무필(誣筆) 무함하는 글을 말한다. 권귀(權貴) 권력자와 귀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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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임공 제단비 學生林公祭壇碑 오호라! 이것은 휘가 기태(基兌), 자 윤중(允仲)인 평택 임공의 제단이다. 제단은 예에 의거하여 제사지내는 장소이니, 제사 지내는 대상의 신위(神位)이다. 옛날의 왕은 천지와 산천과 풍우에 제사를 지냈으니, 이에 왕으로부터 선비까지 묘수(廟數)499) 이외에 먼 조상에게 기도할 일이 있으면 제사를 지냈다.500) 이에 춘추 시대에는 나라를 떠나는 자는 묘를 바라보고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 지내는 대상은 바로 묘에 묻힌 사람이었으니 신에게 제사 지냈던 고례와 이미 다르게 되었다. 후대에 조상의 묘를 잃어버린 자도 또한 그렇게 하였는데, 이는 나라를 떠날 때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예가 비로소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지역을 기억하지만 그 봉분을 잃어버린 자가 그 장소에 나아가 그렇게 하는데, 죽으면 마땅히 같은 무덤을 쓰는 의리는 곧 배필이므로 곁에 묻는다는 것에 의탁하여 그렇게 하니,501) 예가 비록 변하였지만 그 의로운 행동이 생긴 바를 따져보면 오히려 춘추 시기에 묘소에서 제사지내는 의리를 얻었다고 하겠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예가 더욱 변하여 증거도 의탁하는 것도 모두 없는데 그렇게 하니, 곧 제단이 묘소를 대신하는 사물로만 알고 다시 묘소에 제사지내는 뜻은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다.공은 철종 신해년(1851) 38세 때 어떤 일로 외출하였다가 시간이 오래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인 최씨가 아들 재호(在鎬)와 함께 온 정성을 다 쏟아 찾아다녔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드리다가 문득 슬피 울며 자결하려고 하였으니, 49년의 세월을 줄곧 그러하였다. 병자년(1876)에 병이 위독해지자 손자 승옥(承玉)에게 이르기를 "너의 조부의 나이를 따져보니, 지금 86살이다. 그의 건강을 헤아려보면 절대로 생존해 있을 이치가 없다. 또한 너의 부친도 이미 죽고 나 또한 곧 죽을 것이니, 지금 이후로 희망은 끊기고 일은 곤궁하게 될 것이다. 너의 조부를 위해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라. 또한 제단을 마을 뒤에 쌓고 나를 그 옆에 묻어주고서 세시(歲時)에 같은 날로 제사를 지내라."라고 하였다. 이에 승옥이 그 말을 따라 거행하였으니, 정읍군 고부면 죽산리가 바로 그곳이다.내가 생각하건대, 전배들이 외출하였다가 돌아오지 않은 자에 대해 상제의 연한(年限)을 논한 것이 똑같지 않는데, 지금 최 유인의 '희망은 끊기고 일은 곤궁하다.'는 말로 한정을 짓는다면 논의는 정해질 것이다. 제단을 쌓아 반드시 '나를 그 곁에 묻어라'라고 하였으니, 다만 근래 세속에서 묘를 대신하여 제사 지내는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의리에 의탁하여 일으킨 것'에 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변례(變例)에 대처하는 의리와 암암리에 합치되는 예로 본다면 마땅히 현명한 부인이라 칭해야 할 것이오, 한갓 정절만 지킨 것이 아니다. 오호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골육이 땅으로 돌아가면, 혼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는데, 공자가 칭송하였다.502) 공이 비록 불행하게도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모든 사람의 삶은 다 흙으로 돌아가니, 거리의 원근은 따질 것이 못 된다. 이에 어둡지 않은 영혼이 현명하고 정숙한 부인과 함께 돌아가 영원토록 효성스런 자손의 제사를 받는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것으로 충분히 공을 위로할 것이기에 이렇게 글로 쓴다.공은 충간공 성미(成味)의 후손으로, 부친은 노흥(魯興)이며 모친은 울산 김씨이다. 최 유인은 본관이 전주이다. 아들은 재호(在鎬)이며, 딸은 김해 김사범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승옥(承玉)과 승연(承衍), 그리고 한봉(漢鳳)이며, 증손자는 선동(善東)이다. 嗚呼! 此, 平澤林公諱基兌字允仲之祭壇也.壇據禮祭場也, 則所祭神位也.古之王者祭天地山川風雨, 於是自王至士, 廟數外有禱焉祭.於是春秋時有去國者, 望墓爲壇而祭, 則所祭乃墓也, 已異於祭神之古禮.後世之失祖墓者, 亦然, 則又非去國一時之爲, 而禮始變矣.然有記其地而忘其封者, 卽其所而爲之, 有託於死當同穴之義者卽配匹藏側而爲之, 則禮雖變而究其義起, 猶得春秋祭墓之義.至近日而禮益變, 幷與無證無託而爲之, 則認壇爲代墓之物, 而無復祭墓之意矣.公生以哲宗辛亥年三十八, 有事出外久不還.其妻崔氏與子在鎬, 竭誠尋求, 又晨夕祝願, 輒悲咽欲隕, 積四十九年如一歲.丙子疾革, 謂孫承玉曰, 計汝祖年壽, 今爲八十有六.料其禀質, 萬無生存之理.且汝父已死, 吾又將死, 今焉而後, 事窮望絶, 爲汝祖服喪行祭.又築壇里後, 葬我其傍, 歲時同日行祭.承玉遵而行之, 井邑郡古阜面竹山里, 此其地也.余謂前輩論出不還者, 喪祭其年限不一, 而今崔孺人之限以事窮望絶者, 論始定矣.壇必謂葬我其傍, 則不但如近俗代墓之爲, 而有見乎所謂託義而起者, 可知矣.其處變之義, 暗合之禮, 宜稱賢媛, 不徒貞節已也.嗚呼! 古人有言曰 : "骨肉歸復于土, 魂氣無不之也." 孔子稱之.公雖不幸遭此, 凡人之生, 均復于土, 則地之遠近, 有不足較.乃若不昧之靈, 歸與賢貞之配, 共享孝孫之祭於無窮者, 豈非幸哉.是足以慰公而可書也.公, 忠簡公成味之後, 父魯興, 妣蔚山金氏.崔孺人, 籍全州.男在鎬, 女金海金士範.孫承玉承衍漢鳳, 曾孫善東. 묘수(廟數) 예법에 따라 제사를 지내야 할 대수(代數) 안의 조상에 대한 사당의 숫자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천자는 사당이 7개이며, 제후는 5개이다. 먼 조상에게……지냈다 《상변통고》 〈시제(時祭)〉에서 " 먼 조상의 묘(廟)는 조묘(祧廟)가 되는데, 조묘는 둘이 있어서 향(享)과 상(嘗)의 제사만 지내고 그친다. 조묘에서 나가면 단(壇)을 하고, 단에서 나가면 선(墠)을 한다. 단과 선에서는 기도할 일이 있어야만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다. 죽으면……그렇게 하니 부부는 죽으면 의리상 같은 무덤에 함께 장사지낸다는 것에 의탁했다는 말은 비록 그 정확한 봉분을 알 수 없지만 그 부근에 묻혔으므로 그곳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것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옛 사람이……칭송하였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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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칠석에 회포를 쓰다 七夕書懷 어제 아침 객을 보내고 낭주383)에 이르러 昨朝送客至浪州칠월칠일이라 오늘 밤 또 이 누대 찾았네 七七今宵又此樓소슬한 가을바람384)에 오동잎이 떨어지고 淅瀝金風梧葉墜드높은 푸른 하늘385)엔 화성이 흐르네386) 崢嶸碧落火星流세상의 명성과 이익 무엇이 꿈이 아니랴 塵寰聲利誰非夢호해의 구름 안개도 모두 수심에 찼구나 湖海雲烟總是愁강가의 풀은 가을이 와도 죽지 않으니 江草秋來猶不死장차 백리혜처럼 소를 먹여 살찌우리라387) 將同百里飯肥牛 昨朝送客至浪州, 七七今宵又此樓.淅瀝金風梧葉墜, 崢嶸碧落火星流.塵寰聲利誰非夢, 湖海雲烟總是愁.江草秋來猶不死, 將同百里飯肥牛. 낭주(浪州) 전라북도 부안(扶安)의 고호이다. 가을바람 원문의 '금풍(金風)'은 가을바람이나 서풍(西風)을 뜻한다. 오행(五行)의 금(金)은 계절에 있어서는 가을, 방위에 있어서는 서쪽이 된다. 푸른 하늘 원문의 '벽락(碧落)'은 하늘이라는 뜻의 도가(道家) 용어이다. 화성이 흐르네 음력 7월이 되었음을 말한다. 화성(火星)은 대화성(大火星)으로 28수 가운데 하나인 심성(心星)의 별칭이다. 《시경(詩經)》 〈국풍(國風) 칠월(七月)〉 시에 "칠월에 화성이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면, 구월에는 추우니 새 옷을 입혀 주어야 한다.[七月流火, 九月授衣.]"라고 하였다. 백리해처럼 …… 살찌우리라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원문의 '백리(百里)'는 백리해(百里奚)로 춘추 시대 진(秦)나라 사람이다. 초나라 성왕(成王)이 백리혜가 소를 잘 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소를 치게 했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에 "백리해는 작록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소에게 꼴을 먹이면 소가 살이 올랐다. 이에 진 목공은 그가 천한 신분인 것도 잊고서 그에게 정사를 맡겼다.[百里奚爵祿不入於心, 故飯牛而牛肥. 使秦穆公忘其賤, 與之政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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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헌 족숙 낙청 을 애도하다 挽毅軒族叔【洛淸】 옛날에 향삼물421)이 있었는데 在昔鄕三物공은 실로 두 가지를 갖췄으니 公實備二曰시례는 선대의 법도에서 말미암고 詩禮自先範충신은 고을422)에서 칭송받았지 忠信稱十室만년에 다시 원대한 일 추구해 晩更求遠大화문에 입문하여 배웠다네423) 華門深尺雪하늘은 왜 긴 수명에 인색해서 天胡靳遐齡뜻한 일을 못 마치게 하였는고 志事尙未卒공은 나를 두텁게 돌봐주었는데 公曾眷我厚종친의 정만 친밀한 게 아니었네 非直宗誼密삼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을 때 三載淹床日후손을 부탁한 뜻 얼마나 절절했나 託孫意何切이 뜻을 어찌 감히 잊으리오만 此意豈敢忘형세상 장애가 있으니 어찌 하리오 柰渠勢有掣궤연424)에 비록 재차 곡을 하지만 象生雖再哭졸렬한 만사는 이제야 처음 짓네 蕪詞今始掇소상425)이 멀지 않음을 아나니 常期知不遠만사를 부치는 마음 슬프다오 寄哀心惙惙 在昔鄕三物, 公實備二曰.詩禮自先範, 忠信稱十室.晩更求遠大, 華門深尺雪.天胡斬遐齡, 志事尙未卒.公曾眷我厚, 非直宗誼密.三載淹床日, 託孫意何切.此意豈敢忘, 柰渠勢有掣.象生雖再哭, 蕪詞今始掇.常期知不遠, 寄哀心惙惙. 향삼물(鄕三物) 주(周)나라 때 향학(鄕學)에서 인재를 육성하던 육덕(六德), 육행(六行), 육예(六藝)의 세 가지 교과 과정을 말한다.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 "향학(鄕學)의 삼물 즉 세 종류의 교법(敎法)을 가지고 만민을 교화한다. 그리고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에 올려 보낸다. 첫째는 육덕이니 지ㆍ인ㆍ성ㆍ의ㆍ충ㆍ화요, 둘째는 육행이니 효ㆍ우ㆍ목ㆍ연ㆍ임ㆍ휼이요, 셋째는 육예이니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이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 一曰六德, 知仁聖義忠和, 二曰六行, 孝友睦婣任恤, 三曰六藝, 禮樂射御書數.]"라고 하였다. 고을 원문의 '십실(十室)'은 본래 열 가구쯤이 사는 작은 마을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한 고을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열 집이 되는 작은 읍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신한 자가 있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하였다. 화문에 입문하여 배웠다네 원문의 '화문(華門)'은 계화도(繼華島) 문하(門下)로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말한다. 계화도(繼華島)는 본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계화도(界火島)인데, 간재가 이곳에 정착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중화(中華)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계화도(繼華島)라고 고쳐 불렀다. '심척설(深尺雪)'은 '정문입설(程門立雪)' 고사에서 유래하여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으려는 정성을 뜻한다. 《宋史 道學列傳 楊時》 궤연(几筵) 원문의 '상생(象生)'은 궤연을 이른다. 상생(象生)은 제사를 지낼 때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상징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살았을 때와 똑같이 받든다는 의미이다. 소상 원문의 '상기(常期)'는 소상(小祥)을 이른다. 《의례(儀禮)》 〈사우례(士虞禮)〉에 "1년이 되면 소상제를 지내는데 그 축사에 '이 상사를 올립니다.'라고 한다.[朞而小祥, 曰薦此常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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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壬戌 임술년(1922)《중용》 32장의 대본(大本)65)은 체용(體用)을 갖추고 있고, 정(靜)과 동(動)이 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용장구》에 의거해보면, 처음에는 의심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반드시 대본을 정(靜) 한쪽에 소속시켜놓고, 1장(首章)에 나오는 대본(大本)과 똑같이 보려 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문장을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 설과 같다면 《중용장구》에서는 마땅히 '성의 본체'라고 말해야지, '성으로 여긴 바의 전체'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그 중(中)을 다하여 터럭만큼의 치우침이나 기울어짐이 없다.'고 해야지, '터럭만큼의 인욕의 거짓으로 뒤섞인 것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66) 이것은 이미 비교적 분명하게 밝혀진 것입니다. 《주자어류》에서 대본(大本)은 중(中)이고, 대경(大經)은 용(庸)이라는 가르침 또한 족히 하나의 큰 증거가 될 수 있으니, 《주자서절요기의(朱子書節要記疑)》》67)에서 낸 차(箚)는 진실로 바꿀 수 없는 의론입니다. 얼마 후 《사서비지(四書備旨)》를 보니, 역시 대본을 세우는 것으로써 성을 다할 수 있다고 여겼고, 하나의 사심도 섞이지 않아 만리(萬理)를 다 갖춘 것으로써 성을 다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또 사욕이 그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없고 만리(萬理)를 다 갖춘 것으로써 "고요하고 깊은 그 연못이여"를 풀어내니, 만약 사욕이 없는 것으로써 성을 다하는 진성(盡性)을 미발(未發)에 소속시킨다면 과연 말이 되겠습니까? 제가 이 한 의미에 대하여 감히 《중용장구》를 버리고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중용장구》를 버리고 대본을 미발에 소속시키지 않은 자이니, 견식이 어떠함을 막론하고 문리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사단(四端)과 도심(道心)이 반드시 절도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68) '친상(親喪)에 슬피 우는 것이 도심이 아니겠는가'마는 그러나 간혹 몸을 훼손하여 목숨을 잃는 데에 이르거나 슬픔이 상정(常情)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발하여 절도에 맞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불선함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악을 미워하는 것이 어찌 도심이 아니겠는가'마는 그러나 간혹 자신의 부끄러움이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서 깊이 자리를 잡거나 잠시 부끄러움을 알지만 안으로 깊이 살피지 않는다거나, 죽을 자를 죽이지 않고 죽이지 않아야 할 자를 죽인다면 이것은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손님과 주인이 올라가는 것을 양보하는 것이 어찌 도심이 아니겠는가'마는 세 번 양보하는 것은 중절이지만, 간혹 한두 번에 그치거나 많게는 4-5번에 이른다면 이것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인과 못난 사람을 알아서 시비를 구별하는 것이 어찌 도심이 아니겠는가'마는 그러나 그 덕의 고하를 알아서 옳다고 여기는 것이 그 실상에 걸맞고, 그 악의 대소를 알아서 비난하는 것이 그 정상(情狀)에 들어맞은 연후에 절도에 맞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악이 적다고 헤아리는 것에 실수가 있다면 이것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루어 말해가면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으니, 사단에 절도에 맞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과 도심에 과불급이 있다는 것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中庸》三十二章大本, 該體用兼動靜.據章句, 初無可疑, 其必欲屬之靜一邊, 而與首章大本同看者, 未知其看文字何法也? 若如其說, 則章句當曰'性之本體'而不當曰'所性之全體', 當曰'極其中而無一毫之偏倚', 不當曰'無一毫人欲之僞以雜之矣.' 此既較然明者.《語類》大本中也, 大經庸也之訓, 又足爲一大證案.則記疑所箚, 信其爲不易之論也.俄見四書備旨, 亦以立大本爲能盡其性, 一私不雜, 萬理畢該, 爲盡性之事.又以私欲罔間萬理畢具, 釋淵淵其淵, 如以無私而盡性, 屬之未發, 則其果成說乎? 小子於此一義, 敢以爲舍章句而爲說, 則已不舍《章句》, 而屬大本於未發者, 未論見識之如何, 即其文理之未逹也.四端道心之未必中節.如'親喪哀哭, 豈非道心', 然或毀至滅性, 哀不及情, 則是發不中節.'羞己不善, 惡人有惡, 豈非道心,' 然或長留胷中而作有所, 一時知恥而不內省, 或可殺者不殺, 不可殺者殺之, 則是發不中節.'賓主讓登, 豈不是道心,' 然三讓是其中節, 或止於一再, 多至四五, 則是過不及也.'知賢不肖而是非之 豈非道心,' 然知其德之高下, 而是之稱其實, 知其惡之大小而非之得其情, 然後乃爲中節, 不然惡少失其權量, 則是過不及也.推類說去, 莫不皆然, 四端之有不中節, 道心之有過不及, 若是其著矣. 《중용(中庸)》 32장의 대본(大本) "오로지 천하의 지성자만이 천하의 대경을 경륜할 수 있으며, 천하의 대본을 세울 수 있으며, 천지의 화육을 알 수 있으니, 어찌 다른 것에 의지할 필요가 있는가? 정성이 돈후하고 절실함은 仁이며, 깊고도 깊음은 연못이며, 광대함은 천이다. 진실로 총명하고 성자의 지혜로써 천덕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唯天下至誠, 爲能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知天地之化育. 夫焉有所倚?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其孰能知之?〕"라고 하였다. 《중용(中庸)》 32장 터럭만큼의……안 됩니다 "대경(大經)은 오품(五品)의 인륜이요, 대본(大本)은 본성에 간직하고 있는 전체(全體)이다. 오직 성인의 덕은 지극히 성실하고 망령됨이 없기 때문에 인륜에 있어, 각기 당연함의 실제를 다하여 모두 천하와 후세의 법이 될 만하니, 이른바 경륜이란 것이다. 본성(本性)의 전체에 있어, 한 털끝만한 인욕(人慾)의 거짓도 여기에 섞임이 없어, 천하의 도에 온갖 변화가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른바 세운다는 것이다. 천지의 화육에 있어, 또한 그 지성무망(至誠無妄)함이 묵묵히 합함이 있고, 단지 듣고 보아 알 뿐만이 아니다. 이는 모두 지성무망(至誠無妄)한 자연의 공용이니, 어찌 딴 물건에 의지한 뒤에야 능한 것이겠는가〔大經者, 五品之人倫, 大本者, 所性之全體也. 惟聖人之德, 極誠無妄, 故於人倫, 各盡其當然之實, 而皆可以爲天下後世法, 所謂經綸之也. 其於所性之全體, 無一毫人欲之僞以雜之, 而天下之道千變萬化, 皆由此出, 所謂立之也. 其於天地之化育, 則亦其極誠無妄者有黙契焉, 非但聞見之知而已. 此皆至誠無妄自然之功用, 夫豈有所倚著於物而後能哉.〕"《중용장구(中庸章句)》 〈32장〉 《주자서절요기의(朱子書節要記疑)》 이황(李滉)이 처음으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에 소를 붙인 책이다. 사단과……아닙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53 〈맹자(孟子)3 공손추(公孫丑)〉에 "측은(惻隱) 수오(羞惡)에도 역시 중절과 부중절이 있다. 만약 측은지심이 발해서는 안 되는데 측은지심이 발하고 수오지심이 발해서는 안 되는데 수오지심이 발하면 곧 중절하지 못한 것이다.〔惻隠羞惡也有中節不中節. 若不當惻隠而惻隠,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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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준영에게 올림 上炳菴金丈(駿榮) 癸卯 계묘년(1903)보내주신 편지에서 《논어》의 '재아(宰我)가 상(喪)에 대해 물은 장(章)'69)에서 《논어의의(論語疑義)》에서 경원보씨(慶源輔氏)는 윤 씨가 재아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것70)을 실수라 하였는데,71) 이것이 의심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의보씨는 윤 씨의 뜻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 씨는 단지 물음을 제기한 본뜻만 말했을 뿐이요, 말이 옳고 그른 것까지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이점은 주자가 이 설을 재아(宰我)가 질문한 것의 아래에 두고 전장(全章)의 아래에 두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의보씨의 설과 같다면 주자의 제설(諸說)에서 재아의 과실에 말한 것은 분명하고도 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윤 씨 설을 취했겠습니까?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72) 권하주(圈下註)에서 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73) 대개 퇴계는 '비위(非謂)' 두 글자가 '말(末)이 곧 근본(本)이다'까지 그친다고 보았으니 이는 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74)에서 리(理)를 본(本)으로 여기고, 사(事)를 말(末)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자안설(朱子按說)》에서는 "네 조목은 모두 정조(精粗) 본말(本末)이 그 나뉨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동일함을 밝혔다."고 했으니, '조말(粗末)'이라고 말한 것은 《소학》을 가리킨 것이고, '정본(精本)'이라고 말한 것은 《대학》을 가리킨 것입니다. '리는 하나'라고 말한 것은 《소학》과 《대학》의 소이연(所以然)을 가리킨 것이 명백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암이 '비위(非謂)' 두 글자로써 본(本)과 통한다고 한 것은 이곳에서 보면 아마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下示《論語》宰我問喪章, 疑義輔氏雖以尹氏不言宰我之過爲失, 然恐輔失尹之意也.蓋尹氏只說發問之本意而已, 未及說得失也.觀朱子置此說於宰我問之下, 而不置於全章之下, 則可知矣.若如輔說, 則凡朱子諸說, 說宰我之過者, 可謂明且嚴矣, 而何以取尹說也?子夏之門人小子章圈下註, 退尤二說之異.蓋退溪之以非謂二字止於末即是本看者, 以程子說後四條, 認理爲本, 認事爲末.然朱子按說曰: "四條皆以明精粗本末, 其分雖殊, 而理則一", 則其云粗末者, 是指小學也, 其云精本者, 是指大學也.其云理則一者, 是指小大學之所以然者, 可謂明白矣.然則尤菴之以'非謂'二字通本, 便在此看者, 恐得正義, 未知如何. 《논어(論語)》……장(章) 재아가 묻기를 "삼년상은 기년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한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 삼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삼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만합니다."라 하자 공자는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느냐?"라 하니, 재아는 "편안합니다."라 하였다. 공자는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 하거라. 군자는 거상할 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리 하거라."라 했다. 재아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삼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이니, 재여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則爲之!"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윤……하였는데 윤씨가 말하길, "상기(喪期)를 줄여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도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재아는 성인의 문하에서 직접 배운 자로서 이것을 여쭤본 것은 마음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감히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라 했다.〔尹氏曰: "短喪之說, 下愚且恥言之, 宰我親學聖人之門, 而以是爲問者, 有所疑於心而不敢强焉爾."〕 《논어집주(論語集註)》 〈陽貨〉 실수라 하였는데 慶源輔氏曰: 尹氏說固忠厚. 然宰我之失, 終在但其致問之時, 猶出於情. 實較之, 後世匿情行詐, 而口不相副者, 則猶為無隠耳.〕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양화(陽貨)〉 자하(子夏)의 문인소자장(門人小子章) 자유가 말하길,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으나, 이는 지엽적인 일이요, 근본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라 했다. 자하가 그 말을 듣고서 "아! 언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게을리 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역으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오직 성인이시다."라 했다.〔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應對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如之何?" 子夏聞之, 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唯聖人乎!"〕 《논어(論語)》 〈자장(子張)〉 퇴계와 우암의 두 학설은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에서 정자가 "蓋與第一條之意, 實相表裏, 非謂末卽是本, 但學其末而本便在此也."라고 한 말에 대해, 퇴계는 '非謂'가 '末卽是本'까지 걸린다고 보았고, 우암은 '本便在此也'까지 걸린다고 보았던 것을 말한다. 정자설(程子說)의 후 네 개의 조 또 말하길,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곧 형이상(形而上)의 일이니, 이치에 대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오직 근독(謹獨)에 있는 것이다."라 했다. 또 말하길 "성인의 도는 다시 정(精)과 조(粗)가 없으니,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는 일로부터 의리를 정밀히 깨달아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관통(貫通)하면 단지 한 가지 이치일 뿐이다. 비록 쇄소응대(灑掃應對)의 일이라도 다만 그 소이연(所以然)이 어떠한가를 찾아보아야 한다."라 했다. 또 말하길 "모든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으나 본(本)과 말(末)을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쇄소응대(灑掃應對)가 바로 그러한 일이니, 〈여기에도〉 반드시 소이연(所以然)이 있다."라 했다. 또 말하길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올라가면 곧 성인(聖人)의 일에 도달할 수 있다."〔又曰: "灑掃應對, 便是形而上者, 理無大小故也. 故君子只在謹獨." 又曰: "聖人之道, 更無精粗, 從灑掃應對與精義入神, 貫通只一理. 雖灑掃應對, 只看所以然如何." 又曰: "凡物有本末, 不可分本末爲兩段事.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又曰: "自灑掃應對上, 便可到聖人事."〕라고 하였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자장(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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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乙巳 을사년(1905)저는 일찍이 '군자의 도는 어려서는 배우는 것이니, 자라서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75)고 들었습니다. 만일 그저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의 책만을 읽고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마도 군자라고 부르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근래에《율곡전서》를 읽어보니 그가 나라를 다스리고(經國) 세상을 구제하는(濟世)의 방책에 대하여 큰 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궁리와 수신은 경국(經國)과 제세(濟世)의 근본이고, 법령에 관한 문장은 경국과 제세의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이 튼튼하면 가지가 번성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학자는 마땅히 성현이 저술한 책을 잘 완미하여 천지의 큼, 인물에 대한 분별, 윤상(倫常)의 중요함 등에 대해 힘써 그 극치를 궁구하며, 성현의 행적을 표준으로 삼아 뜻의 진실함과 거짓, 마음의 사악함과 바름, 몸의 닦음과 닦지 못함에 대해 잘못된 점을 제거하고 옳은 것을 이룬다면 치국평천하의 일은 들어다 놓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그러나 백성이 태어난 이래로 인재의 성취는 치우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맹공작(孟公綽)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는 될 수 없었고,76) 자로(子路)는 인(仁)하지는 못하였지만 천승의 나라에 그 군(軍)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77) 율곡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 두 선생을 논함에 있어 "성리를 논한 책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고 정밀하다"고 말하였고, "오묘한 생각과 정미한 연구는 유현(幽玄)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서는 큰 재주는 없다"고 하였고, 또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재주는 부족했다"고 말했으니,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이것 또한 궁리 안의 일이고, 궁리를 벗어나서 별도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선비들은 태극(太極)과 성명(性命)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애써 탐구해서 종신의 사업으로 삼지 않음이 없으나 경국과 제세의 방도에 관해서는 '족히 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통유(通儒)가 되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 현명한 군주가 있어서 사림을 선발하여 등용하고 태평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오늘날 선비 중에 경국과 제세의 방책을 익히지 않은 자가 전부(田賦)를 다스리고 예악을 바르게 하며, 법령을 정하고 권량(權量)을 알맞게 하는 절차에 대하여 장차 어떻게 조처하겠습니까? 옛날에는《소학》에서 육례를 가르쳤고, 공자는 "예에서 도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비록 경제가 쇠잔하고 교육이 느슨해져서 절목의 자세함에 대해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남은 제도가 다행히 보존되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방책에 대하여 책을 읽고 일에 응대하는 여가에 별도로 연구하고 강구하면서 다른 날에 재주를 펼칠 수단으로 삼는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竊聞君子之道, 幼而學之, 欲壯而行之.若徒能讀孔孟程朱子書, 而無堯舜君民之志, 則恐不足以謂君子也.近讀《栗谷全書》其於經國濟世之方, 未嘗不把作一件大事.竊疑窮理修身, 經濟之本也, 章程文爲, 經濟之支也.本固則支達, 必然之理也.學者固當玩繹乎聖賢之書, 天地之大, 人物之分, 倫常之重, 務要窮極其致, 準的乎聖賢之行, 意之誠僞, 心之邪正, 身之修否, 務要去彼就此, 則治國平天下之事, 特舉而措之耳.然自生民以來, 人才之成就, 不能無偏.是故公綽之不欲, 未可爲滕薛之大夫, 子路之未仁, 能治千乘之賦.至於栗翁之論晦陶兩先生, 既稱之曰"性理之書深造精微", 曰"妙思精研, 洞見幽玄," 而却曰"無經濟大才," 曰"自度才不足," 自非全體備具者, 終不能免於此也.然此亦窮理中事, 非外窮理而別爲一事也.見今之士, 於太極性命之蘊, 無不費力探究, 做終身事業, 而至於經國濟世之術, 則視以爲不足爲, 亦不得爲通儒也.如使世有賢君選用士林, 期臻太平, 則今之士之不習經濟者, 其於制田賦正禮樂定律令嘉權量之節, 將何以措之? 古者小學教之以六藝之文, 孔子曰"遊於藝," 今雖經殘教弛, 節目之詳, 不可復見, 然其遺制之幸存而未泯者, 及治國安民之策, 於讀書應事之暇, 另加講究, 以爲他日應用之需, 可也.未知尊意以為如何. 군자의……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고자 함이다.(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 맹공작(孟公綽)은……없었고 공자가 말하기를 "맹공작(孟公綽)은 조씨(趙氏)와 위씨(魏氏)의 가로(家老)가 되는 것은 충분하지만 등(滕)나라와 설(薛)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안 된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공작(公綽)은 아마도 청렴하고 욕심이 적으나, 재능이 부족한 자인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자로가……있었습니다 맹무백(孟武伯)이 자로(子路)에 대해 묻자, 공자가 "유는 천승의 나라에 그 군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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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丙午 병오년(1906)《맹자》 수장대문(首章大文)과 《맹자집주》의 여러 리(利) 자는 전부 제나라 왕이 자기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저는 형기에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어른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선생께서는) "《맹자집주》에서 '리(利)를 구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말의 뒤 리(利) 자는 마땅히 의리(義理)의 리(利)로 보아야 한다. 만약 형기(形氣)의 리(利)로 본다면 천리를 따라서 몸을 죽이고78) 생명을 버리는79) 경지가 어떻게 형기의 리(利)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저(택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자무불리(自無不利-이롭지 않음이 없다)"의 리(利)는 즉 제4절 《맹자집주》의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의 리(利)이고,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제3절 《맹자집주》의 '리(利)를 구하는 해로움'과 정확하게 대(對)를 이룹니다. 리(利)를 구하는 해로움이 임금의 형기의 해로움이 된다면, "인의는 일찍이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리(利)는 마땅히 임금 형기의 리(利)가 되기 때문에 이른바 리(利)는 즉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추대하는 리(利)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추대하는 것은 형기의 리(利)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죽이고 생명을 버린다는 것은 변처(變處)80)입니다. 만약 변처로써 말한다면, 천리를 따르다 사망하는 해로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욕을 따르다 이익을 얻고 해로움을 멀리하는 것도 있으니 이처럼 판단하여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장(章)의 의미는 아마 단지 '인의를 하면 이로움이 있고, 리(利)를 구하면 해가 있다'는 상식적인 도리를 말한 것일 뿐 아직 변처를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른께서 다시 생각한 가르침이 있다면 자세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지금 천지가 어둡고 귀신과 물여우가 멋대로 날뛰어서 주군(州郡)의 학교가 허물어지고 성현의 경전 또한 타서 사라지려고 하지만, 박괘(剝卦)의 마지막 남은 양(陽)이 다하는 이치는 없으니 반드시 이렇게 말살됨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늘도 믿을 수 없어서 저 무리들로 하여금 그 독을 멋대로 뿌리게 한다면 성묘(聖廟)를 지키는 유생과 사문(斯文)을 책임지는 장덕(長德)81)은 그 무너짐을 구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아니면 관면(冠冕)을 찢어버리고 통곡하며 세상을 피하여 은둔해야 합니까. 어제 한명의 사우(士友)를 보니, 도적놈이 우리 집으로 들어와 우리 조상의 사당을 헐고 우리의 선계(先系)를 불태우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공자와 맹자를 암송하며 본받는 자들이라면 비록 누항의 궁핍한 유자(儒者)일지라도 마땅히 목숨을 버리고 한번 싸워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일에 힘쓸 수 있는 자라면, 어찌 우뚝하게 위대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성(先聖)과 선조(先祖)의 관계, 그리고 사문과 집안일과의 관계는 일찍이 친소의 구분, 많고 적은 차이가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궁핍한 유자는 또 장덕의 교임(校任)과 비교할 때 차이가 있으니, 만약 일일이 죽는 것으로 책임을 지운다면 시중(時中)의 의론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孟子》首章大文, 與《集註》諸'利'字, 皆因齊王利國之言, 從形氣邊說去, 迷見看得如此.頃承函筵所教, 曰 : "《集註》'不求利而自無不利'下利字, 當以義理之利看.若以形氣之利看, 則有循天理而殺身舍生之地, 何以爲形氣之利云云." 澤述妄疑'自無不利'之利, 即第四節《集註》'仁義未嘗不利'之利, 仁義未嘗不利, 即第三節《集註》'求利之害'之的對也.求利之害, 既爲人君形氣之害, 則仁義未嘗不利之利, 自當爲人君形氣之利, 所謂利者, 即親我戴我之利也.親我戴我者, 不可謂形氣之利乎.至於殺身舍生之云, 乃變處也.若以變處言之, 則非惟循天理而有死亾之害, 亦有徇人欲而得利遠害者, 似未可如此斷定.蓋此章義意, 恐是只言仁義有利, 求利有害之常理也, 不及說變處也.凾筵有夏商之教, 幸望詳細示之也.今天地晦冥, 鬼蜮縱橫, 州郡校宮, 彼將圮毁之, 聖賢經傳, 又將焚滅之, 剥陽無可盡之理, 則必不至如是之抹摋.然如或天不可諶, 使彼輩得肆其毒, 則守聖廟之儒生, 任斯文之長德, 其將顛倒往救, 繼之以死乎? 其將棄冠裂冕, 痛哭遯世乎? 昨見一士友, 以寇盜入家毀我祖廟焚我先系爲譬, 而謂誦法孔孟者, 雖陋巷窮儒, 皆當舍命一爭, 有死糜悔.迷見以爲如有能辦此舉者, 豈不卓然偉烈哉? 然先聖之於先祖, 斯文之於家事, 未嘗無親疎之分, 衆獨之異.窮儒又與長德校任有間, 若一一責之以死, 則似非時中之論, 未知如何. 몸을 죽이고 공자가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생명을 버리는 맹자가 "어물(魚物)도 내가 원하는 바요, 웅장(熊掌)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어물(魚物)을 버리고 웅장(熊掌)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겠다.〔孟子曰, 魚, 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변처(變處) 常數가 아니라 變數에 해당하는 의미이다. 장덕(長德) 덕망을 갖춘 원로학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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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 김장에게 올림 上炳菴金丈 丁未 정미년(1907)보여주신 편지에서 리(利) 자에 대한 분석은 변론이 명백하고 인용이 정확하여 한번 읽어 내리자 가슴이 씻은 것처럼 시원하니, 사문(師門)들에게 질문한다 하더라도 미혹됨이 없을 것입니다. 대단히 감격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의 건괘 리(利) 자의 "만물을 이롭게 하니 의(義)와 족히 화합할 수 있다."는 주에서, 주자는 "만약 만물로 하여금 각각 이로운 바를 얻게 하면 의(義)와 화합하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물(物)은 만물로서,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으로 하여금 임금 노릇을 할 수 있게 하고, 신하로 하여금 신하 노릇 할 수 있게 하며,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 할 수 있게 하고, 자식으로 하여금 자식 노릇 할 수 있게 하면서, 그것을 미루어 나아가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만물로 하여금 각각 이로운 바를 얻게 하는 것이고, 또한 만물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는 아마 자기 스스로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곤괘 2효에 "강습하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주자는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어버이를 기쁘게 하며, 붕우를 사귐에 있어서는 붕우들에게 믿음을 받는 것은 모두 학습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하나도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섬긴다고 말하고, 교제한다 말하며, 충성하고, 기쁘게 하며, 믿음 있게 한다는 것은 모두 자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니 여기에서 리(利) 자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군주가 나의 충성을 얻고, 어버이가 나의 즐거움을 얻으며, 붕우가 나의 믿음을 얻는다면, 이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에 또한 만물이 스스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 있으니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下示利字之辨, 剖析明白, 引據的當, 讀下一遍, 胸次如洗, 可以質之師門而無惑.感幸感幸.至於《易》乾卦'利'字, 利物足以和義註, 朱子曰 : "使物各得其所利, 則義無不和." 竊意物者, 即萬物也, 如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之類, 是已.能使君爲君, 臣爲臣, 父爲父, 子爲子, 推類以往, 莫不皆然, 則是所謂使物各得其所利也已, 亦萬物之一也.利物之中, 恐有已自無不利之意.坤卦'不習無不利', 朱子曰 : "事君則忠於君, 事親則悅於親, 交朋友則信於朋友, 皆不待習而無一之不利也." 曰事曰交曰忠悅信, 皆主己而言, 此'利'字, 蓋謂利己也.然其君得我之忠, 親得我之悅, 朋友得我之信, 此則利物也.利己之中, 亦有物自無不利之意, 未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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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田士狷 乙丑 보내주신 편지에서 풍조의 급박함을 탄식하고, 후진의 실각을 근심으로 여기며, 교육가의 말만 숭상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변통하려고 생각하시니, 가히 세도의 근심과 아주 뛰어난 견해를 우러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통변하겠다는 뜻만 나타내고 통변하겠다는 법을 가리키지 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가려운 자가 긁어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천루한 저로 하여금 그 방법을 보이게 하시니, 이는 어찌 보고 듣는 것을 귀머거리와 맹인에게 질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보고 듣고자 하는 것은, 귀가 밝고 눈이 밝은 자와 일찍이 다른 적이 없은즉, 무매한 저의 견해도 통변을 바람이 고명과 같다는 것 또한 오래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끝내 소견도 없고 듣는 것도 없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은즉, 공손히 우리 형과 같이 사광(師曠)과 이루(離婁)의 재주를 지닌 자가 지시하는 것을 기다려서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부디 자주 상세하게 교시해 주시는 게 어떨는지요. 다만 생각해보건대 속세의 유자들은 통변의 이야기를 잠깐 듣기만 하면 비웃음과 비난이 반드시 사방에서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름지기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통변의 일은 삼대가 서로 계승한 것과 같아서5) 삼강오상(三綱五常)6)처럼 항상 떳떳이 따라야 할 것과 문질삼통(文質三統)7)처럼 손익한 것과 같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학문에 있어서 마땅히 만세에 떳떳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부문(浮文)8)과 강변(强辯)9)은 교육에 있어서 가히 때에 따라 손익해야 할 것입니다. 그 통변을 비웃은 자는 한갓 삼대의 상인만 알고 삼대의 손익은 모르는 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다만 두려운 것은 우리가 통변하는 방법이 시의에 적절하지 못하여, 혹 폐단을 제거하려다 폐단을 생성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한 점도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상세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惠書嘆風潮之急, 而患後進之失脚, 悶敎育家之尙言, 而思欲通變, 可仰世道之憂超誨之見.然但示變之之意, 而不指變之之法, 則使人如痒者之待爬.反欲淺陋者示其方, 則豈非責視聽於聾瞽者乎? 雖然, 聾瞽之欲視聽,未始異乎聰明者? 則昧見之欲通變, 與高明同者, 亦非不久矣.終無奈無所見無所聞, 則恭俟, 曠婁之才如吾兄者, 指畵而奉行焉.幸亟詳示如何.弟念世儒乍聞通變之說,笑譏之必四至.然是則不須慮也.此正如三代相繼, 三綱五常之常因, 文質三統之損益.道德倫理, 學問之當萬世常因者也.浮文强辯, 敎育之可隨時損益者也.其笑通變者, 不幾乎徒知三代之常因而不知三代之損益者乎? 但恐吾之所以變之者, 不能適其宜, 而或至於去弊而生弊也.此又當精審而詳定也. 삼대가 서로 계승한 것과 같아서 《논어 · 위정》의 집주에, 마융이 "인습한 것은 삼강과 오상을 이르고, 가감한 것은 문ㆍ질, 삼통을 이른다." 라고 하였다.〔所因, 謂三綱五常, 所損益, 謂文質三統.〕주희는 "삼강과 오상은 예의 대체이니, 삼대가 서로 계승하여 모두 그대로 인습하고 변경하지 않았으며, 가감한 것은 문장과 제도 중에 약간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三綱五常, 禮之大體, 三代相繼, 皆因之而不能變, 其所損益, 不過文章制度小過不及之間.〕"라고 하였다. 삼강오상(三綱五常)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을 말한다. 三綱은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이다. 五常은 유교의 다섯 가지 중요한 인륜으로, 仁, 義, 禮, 智, 信이다. 문질삼통(文質三統) 하·은·주 삼대의 정사를 말한다. 문질(文質)은 하(夏)나라는 충(忠)을, 은(殷)나라는 질(質)을, 주(周)나라는 문(文)을 숭상한 것을 말하고, 삼통(三統)은 하나라는 정월(正月)이 인월(寅月)이어서 인통(人統), 은나라는 축월(丑月)이어서 지통(地統), 주나라는 자월(子月)이어서 천통(天統)임을 말한다. 《論語 爲政 馬氏註》 부문(浮文) 실용에 아무 소용이 없는 부박(浮薄)한 문장이다. 강변(强辯)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거나 굳이 변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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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백형 남두 이 방문하다 기사년(1929) ○아래도 같다. 省菴白兄【南斗】見訪 【己巳○下同】 십 년 동안 시를 수창함이 제일성이었으니 十載詩酬第一聲맺은 교분은 원래부터 담박한 정이었지 結交元是淡如情작은 뜰의 매화 버들에 일찍 동풍이 불고 小園梅柳東風早깊은 밤의 은하수에 북두성이 기우누나 五夜雲河北斗傾여곽 먹으며431) 미천한 분수에 족함을 스스로 알고 藜藿自知微分足가업 이어서432) 고가의 명성 저버리지 않았네 箕裘不負故家名돌아와 아내에게 술을 상의해도433) 얻을 길 없어 歸謀婦酒無由得서실에 가득한 맑은 운향434)만 들이 마시네 吸取芸香滿室淸 十載詩酬第一聲, 結交元是淡如情.小園梅柳東風早, 五夜雲河北斗傾.藜藿自知微分足, 箕裘不負故家名.歸謀婦酒無由得, 吸取芸香滿室淸. 여곽 먹으며 원문의 '여곽(藜藿)'인데, 여곽은 명아주 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이라는 뜻으로, 빈궁한 자의 거친 음식을 뜻한다. 가업 이어서 원문의 '기구(箕裘)'는 키와 갖옷으로 선대의 훌륭한 가업을 잇는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훌륭한 야공(冶工)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갖옷을 만들 줄 알고, 훌륭한 궁인(弓人)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키를 만들 줄 안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고 하였다. 돌아가 …… 상의해도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나오는 "집에 돌아와 아내와 상의했더니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오래 전부터 한 말의 술을 보관해두었으니 그대의 갑작스런 쓰임에 대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歸而謀諸婦, 婦曰: 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需.]"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운향(芸香) 다년생 향초인데, 좀을 물리치는 향기를 지녔기에 책을 보관하는데 두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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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재에서 희숙과 함께 읊다 百千齋 同希淑吟 만 곡435)의 맑은 장강을 따라서 沿盡長江萬斛淸명원으로 돌아오니 온갖 꽃들 환하네 歸來名院百花明조용히 경물을 보면 참 정취 많으니 靜觀景物多眞趣풍요436)를 변성으로 짓지 말아야지 莫把風謠作變聲석 달 봄에 술 놀이 낙국에서 행하고 酒政三春行樂國하룻밤 담론으로 수성을 깨트리네437) 談鋒一夜破愁城지기였던 종아438)의 당년 곡조라도 鍾牙知己當年調어찌 지금 한 방에서 듣는 것만 하리요 爭似如今一室聽 沿盡長江萬斛淸, 歸來名院百花明.靜觀景物多眞趣, 莫把風謠作變聲.酒政三春行樂國, 談鋒一夜破愁城.鍾牙知己當年調, 爭似如今一室聽. 만 곡[萬斛] '곡(斛)'은 용량의 단위로, 만곡은 대단히 큰 양을 말한다. 풍요(風謠) 시를 말한다. 본래 민요를 말하는데, 이를 통해 민생의 고락을 살필 수 있으므로 고대에는 민정을 시찰할 때 풍요를 채집하여 조정에 올렸다. 수성을 깨트리네 시름을 잊는 것을 말한다. 원문의 '수성(愁城)'은 시름을 성벽(城壁)에 비유한 것으로, 유신(庾信)의 〈수부(愁賦)〉에 "허다한 수성은 공략해도 끝내 부서지지 않고, 허다한 수문은 흔들어도 끝내 열리지를 않네.[攻許愁城終不破, 蕩許愁門終不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庾開府集 卷1》 종아(鍾牙) 서로를 잘 알아주었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를 말한다. 백아는 춘추 시대 거문고 명인이었고, 종자기는 음률을 잘 구별하였다.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백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주하는지를 알았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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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田士狷 乙丑 저들은 세력이 세고 우리들은 세력이 약하니, 화의(和議)가 병의 빌미가 된다는 것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론(正論)과 편설(偏說)은 번갈아 승부가 되고, 하늘의 공정함과 사람의 삿됨은 상호 굴신하니, 화의의 실행에 통절하게 격분되어 도리어 쇠퇴한 우리 힘을 진작시켜 일으킬 수 있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존부장의 이번 거사는 후사를 함께 이루기를 도모하고자 한 것인데, 단지 족히 선사의 무함(誣陷)함만 깊게 하여 저들의 아비도 없고 의를 그르친 그 입을 천년 뒤에 실행시킬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 형께서 죽음으로써 간쟁할 날이니, 힘쓰고 힘쓰십시오.사자가 토끼를 잡는 법에서 더욱 악을 미워하는 엄격함을 우러러 볼 수 있군요. 주자가 이른바 임금과 어버이에게 무례한 자를 보거든 매가 새나 참새를 쫓아내듯 하라고 한 말씀10)이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토끼와 참새는 지나치게 번성하고, 사자와 매는 매우 약하니, 아마도 일을 이루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비록 그렇지만, 방향에 따라 무리가 모이고 사물은 무리대로 나뉘니,11) 사자와 매는 저절로 사자와 매일 것이요, 토끼와 참새는 그대로 토끼와 참새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스스로 그 힘을 강하게 하여 저들이 끝내 우리들에 의해서 잡히고 축출되는 바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彼張吾衰, 和議之爲祟, 誠然誠然.然正論偏說, 迭爲勝負, 天公人私.互爲屈伸,安知不有痛切激厲於和議之行而反以振起吾力之衰憊者乎?但恐尊府丈此擧, 欲圖後事之同濟, 而適足以深先師之誣, 實彼輩無父悖義之口於千秋也.此吾兄以死諫爭之日也, 勉之勉之.獅子搏兎法,尤仰惡惡之嚴.朱子所謂見無禮於君親者,如鷹鸇之逐鳥雀者, 非此之謂耶.但兎雀太盛, 獅鷹太弱, 恐難濟事.雖然.方以類聚, 物以羣分, 獅鷹自獅鷹, 兎雀自兎雀.只在吾輩自强其力, 使彼終爲吾之所搏逐耳. 주자가……한 말씀 응전은 모두 매의 종류로 군주에게 무례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를 보면 매가 새들을 쫓듯이 몰아냄을 뜻한다. 《춘추좌전 문공 18년 조》 계문자가 임금에게 한 말이다. 비록……나뉘니 《주역 · 계사 상》에 "事情의 방향은 類에 따라 모이고 물건은 무리로써 나뉘기 마련이다.〔方以類聚, 物以羣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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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田士狷 丙寅 근자에 형께서는 자주 구름과 부평초처럼 떠돌아서, 그리움이 있어 편지를 쓰고 싶어도 장소가 없고, 편지가 있어 답하고 싶어도 어느 곳에 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푸른 하늘과 맑은 강은 비록 이 때문에 변하지 않겠지만, 다만 두렵기는 세찬 바람과 사나운 우레12)에 미쳐 서로 도모하지 못한 것을 우려합니다. 호남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어떤 판본이건 불문하고, 절대 용동(龍洞)에 허락해선 안 된다는 그대의 견해는, 유독 머리를 끄덕이게 합니다. 백리 먼 길을 급히 간 것도 더욱 흔복(欣服)할 만합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의 큰 일이 있으니 의심이 있으면 서로 헤아리기를 꺼리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곧바로 서로 고쳐나간다면 어찌 실수가 있을지를 근심하겠는지요. 이전에는 항상 생각하기를 형께서는 불과 뜻은 크고 말은 높지만, 행실이 혹 말을 덮지 못하는 광자(狂者)라고 여겼는데, 근일의 일로 보건대 비록 먼저 말을 행하고 뒤에 말이 따르는 군자라고 일컬어도13) 지나치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도래본(島來本)14)은 내가 진실로 형께서 부득이 용동에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형 또한 일찍이 스스로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비로소 송씨(宋氏)로 인해서 형께서 이 판본까지도 아울러 깊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께서 일을 꼼꼼히 하고 말을 삼간다는 것이 이와 같을 줄 생각을 못했습니다. 대의를 끝내 지키고 대사를 이룰 자, 형이 그 사람입니다. 간옹(艮翁)의 집안사람 중에 다만 전일중(田鎰中) 한 사람이 있다고 운운하며, 세간의 공정한 의론이라고 한 것은 진실로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가히 믿고 주인으로 삼아 근심이 없습니다. 원컨대 형께서도 항상 행실이 말을 덮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혹 많은가를 자성(自省)하여, 힘써 한번 옛 모습을 변화시켜 전체의 군자를 이뤄내기를 바라는 마음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近兄多作雲遊萍蹤, 有懷而書之無所, 有書而答之何地.靑天白河,雖不以此而少變, 但恐疾風迅雷, 不及相謀, 是所慮也.湖藏勿問何本, 絶不許龍, 高見獨點一頭.而百里急駕, 更可欣服.吾人尙有種種大事,有疑焉不禪相確,有過焉隨卽相梂,何患有失.前此乎常謂兄不過爲志大言高, 行或不掩之狂者, 以近日事觀之, 雖謂之先行言後從之之君子, 不爲過也.何也.島來本,吾固心認兄之不免投龍.兄亦未嘗自言不投.始因宋氏, 知兄之幷與此本而深藏.不圖兄密事愼言之若是也.終能守大義成大事者, 兄其人乎.艮翁家中, 只有田鎰中一人云者, 世間公議, 眞不虛矣.吾輩可恃以爲主而無憂爾.願兄亦常自省行不掩言者, 尙或多乎,務要一變故態, 而成全體君子, 區區不勝其望焉. 세찬 바람과 사나운 우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만일 세찬 바람과 빠른 우뢰와 폭우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낯빛을 변하며 비록 밤중이라도 반드시 일어나서 의관을 정제하고 앉는다.〔若有疾風迅雷甚雨, 則必變, 雖夜必興, 衣服冠而坐.〕"라고 한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근일의……일컬어도 《논어 · 위정편》에,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자신(其)이 말할 것을 먼저 실천하고, 이후에 뒤따르게 할 것이다.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 而後從之.〕 "라고 하였다. 도래본(島來本) 바다에서 건너온 판본으로, 하동수정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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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 올라 登高 상심한 태수생442) 북녘 바라보는데 北望傷心太瘦生한양성은 망망하여 보이지 않구나 茫茫不見漢陽城한 하늘의 운세는 언제나 돌아오나 一天運氣何時復만국에 병란 먼지 곳곳마다 다투네 萬國兵塵在處爭온 세상에서 누가 초당의 꿈 깰꼬443) 大界誰醒草堂夢봄빛도 두견새 소리에 다하는구나 春光且盡杜鵑聲불평444)이 호방한 정으로 변해 나오니 不平化作豪情發동풍에 열 말의 맑은 술445) 마신다오 十斗東風浥聖淸 北望傷心太瘦生, 茫茫不見漢陽城.一天運氣何時復, 萬國兵塵在處爭.大界誰醒草堂夢, 春光且盡杜鵑聲.不平化作豪情發, 十斗東風浥聖淸. 태수생(太瘦生) 삐쩍 마른 사람을 지칭한다.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희롱 삼아 두보(杜甫)에게 준 시 〈희증두보(戱贈杜甫)〉에 "묻노니 작별한 뒤로 어찌 그리 수척해졌나, 모두가 전부터 괴로이 시 읊조린 탓이로세.[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라고 하였다. 누가 …… 깰꼬 누가 나라를 구제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유비(劉備)가 남양(南陽)의 초당(草堂)으로 제갈량(諸葛亮)을 방문했을 때 제갈량이 자고 일어나 "큰 꿈 누가 먼저 깰고, 평소에 나 스스로 아노라.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고, 창밖의 해는 더디더디 기운다.[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불평(不平)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불만스런 마음을 가리킨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대체로 사물이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우나니, 본래 소리가 없는 초목을 바람이 흔들어서 울게 하고, 본래 소리가 없는 물을 바람이 출렁이게 해서 울게 한다.[大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撓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라고 하였다. 맑은 술 원문의 '성청(聖淸)'은 맑은 술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권27 〈위서(魏書) 서막열전(徐邈列傳)〉에 "평소 취객들이 청주를 성인이라 하고, 탁주를 현인이라 일컫습니다.[平日醉客謂酒清者爲聖人, 濁者爲賢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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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동에 이르러 여러 벗과 함께 읊다 2수 到萬壽洞 同諸友吟 【二首】 비 내리고 바람 치는데 또 해가 지니 雨打風飜又夕陽강 하늘 가의 면화446)가 추워질까 겁내네 江天吉貝㤼微凉백겁을 겪은 산은 생생하여 색을 더하고 山經百劫生添色쇠한 봄에 이른 꽃은 시들어도 향기 품네 花到殘春死抱香난쟁이 배부름과 동방삭의 주림447)도 다 헛꿈인데 侏飽朔飢皆幻夢제비와 기러기처럼 오고가며 각기 바쁘네 鷰來鴻去各奔忙이별시 지어 길이 슬퍼할 것 없나니 無將賦別長悽黯고향이 다른 고을에 있지 않아서라네 不是家山在異鄕옛적의 풍물에다 또 꽃은 피었는데 昔年風物又花明보는 것마다 마음 아프니 병든 마경448)이네 觸目傷心病馬卿이별에 익숙한 반평생 백발만 재촉했으니 慣別半生催白髮짬을 내 만난 한 자리가 곧 삼청449)이지 偸閒一席卽三淸사람 만류하는 비가 뜻이 없지 않을텐데 挽人天雨非無意수레를 재촉하는 동군450)은 너무 박정하네 促駕東君太薄情가슴 속의 청하451)를 열 길이나 내뿜으니 胸裏靑霞噓十丈먼 하늘 저물녘에 채색 무지개로 변하네 長空暮化彩虹成 雨打風飜又夕陽, 江天吉貝㤼微凉.山經百劫生添色, 花到殘春死抱香.侏飽朔飢皆幼夢, 鷰來鴻去各奔忙.無將賦別長悽黯, 不是家山在異鄕.昔年風物又花明, 觸目傷心病馬卿.慣別半生催白髮, 偸閒一席卽三淸.挽人天雨非無意, 促駕東君太薄情.胸裏靑霞噓十丈, 長空暮化彩虹成. 면화 원문의 '길패(吉貝)'는 면화와 목면을 어울러 가리킨다. 난쟁이 …… 주림[侏飽朔飢] 부귀빈천을 비유한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 때 동방삭(東方朔)이 자신의 지위와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제에게 "난쟁이는 키가 석 자 남짓밖에 안 되지만 한 자루의 곡식을 받고, 돈 240을 받는데, 신 삭은 키가 9자 남짓이나 되지만 역시 한 자루 곡식을 받고 돈 240을 받으므로, 난쟁이는 배가 불러서 죽을 지경이고, 신 삭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신의 말을 채용할 만하시면 예우를 그들보다 다르게 해 주시고, 채용할 만하지 못하면 파면해 주시어, 장안의 쌀만 축내도록 하지 마소서.[朱儒長三尺餘, 奉一囊粟, 錢二百四十. 臣朔長九尺餘, 亦一囊粟, 錢二百四十. 朱儒飽欲死, 臣朔飢欲死. 臣言可用, 幸異其禮, 不可用, 罷之, 無令但索長安米.]"라고 하였다. 《漢書 卷65 東方朔傳》 병든 마경 병치레하고 있는 저자 자신을 사마상여(司馬相如)에 빗대서 한 말이다. 원문의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때의 사부가(詞賦家)인 사마상여를 말한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삼청(三淸) 도교(道敎)에서는 삼청경(三淸境)의 준말로, 이른바 삼존(三尊)이 거하는 최고의 선경(仙境)을 말한다. 수레 재촉하는 동군 빨리 가는 봄을 말한 것이다. '동군(東君)'은 봄을 맡은 신 이름으로 봄을 가리킨다. 봄은 동방(東方)과 청색(靑色)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불리우는 이름이다. 청하(靑霞) 푸른 노을로 고원한 뜻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탄식의 뜻으로도 쓰여 중의로 비유한 것이다. 남조(南朝) 시대 시인 강엄(江淹)의 〈한부(恨賦)〉에 "성대한 청하의 기이한 뜻이, 긴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버렸네.[鬱青霞之奇意, 入脩夜之不暘.]"라고 하였는데, 이선(李善)은 "청하의 기이한 뜻은 의지가 높은 것이다.[青霞奇意, 志意高也.]"라고 해석하였다. 《文選 卷16 恨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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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어제 옹정(甕井)에 오신 행색을 보았고, 오늘은 석관(石館)에서 보내온 정겨운 편지를 받으니, 직접 대면을 하던지 편지를 받던지 간에 모두가 다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저 또한 장차 형을 물 위의 부평초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쑥대 사이에서 뒤따르고자 한 것은, 어찌 단지 곤궁한 거처에 여러 가지 끌리는 일로 형이 안타까워하기 때문만 이겠습니까? 현광(玄狂)은 이미 일을 맞이한 후창(後滄)이고, 후창은 아직 일을 맞이하지 못한 현광이지만, 그 발자취의 선후에 곤궁함이야 어찌 차이가 있겠습니까?매번 보건대 사람들은, 유림의 액운과 세운이 궁극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인은 세상을 선택하는 방법이 없고, 세상에 처하는 방법이 있은즉, 우리들이 이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이 어찌 아마도 미진한 바가 있어서 줄곧 우졸한 병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처세의 방법은 변치 않는 것과 변화하는 것, 죽음과 삶을 통틀어 말하자면, 우활하고 졸렬함을 변화시켜서 능통하고 솜씨 있는 자가 된 사람은, 형체는 살지만 몸은 죽은 대로 귀결되지 않음이 드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처한 바가 끝내 정당함을 얻었는지 스스로를 돌이키지 않을 수가 없고, 또한 스스로를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사이에 큰 일이 있지만 단지 우리들이 능하지 못할 뿐입니다. 당신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허다한 배포(排布)17)도 모두 뜬구름이 될 뿐이라, 일체의 시비에 대해서 기를 토해낼 것이 없다는 것은 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형께서는 매번 견강으로 스스로를 매번 허여하여, 남이 피곤하여 기운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굶주린 쥐만도 못하게 여겼거늘, 한번 환난을 겪고 나더니18) 이 말을 갑자기 발언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시험 삼아 옛사람으로서 복자(伏雌)를 삶고 염이(扊扅)19)를 태운 자가 형의 오늘날과 비교해서 어떠한지를, 후래의 배포와 토기가 어떠했는지를 보십시오. 또한 우리들의 현재 일삼는 바는 날마다 몇 말의 쌀을 먹고 백만의 군대를 몰아서 변방을 소탕하는 것과 같지 않고, 오직 의리를 밝히고 난적을 토벌하여 오늘날과 훗날의 이목을 일깨우는데 있을 뿐입니다. 돌아보면 비록 기진맥진하지만 마음은 죽지 않고 혀도 여전히 남아있고 붓도 몽당이 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의 재주로도 이런 상황을 면치 못하고 도리어 이에 남은 용기를 더욱 북돋으라고20) 나같이 비열한 자를 질책하시니, 어찌 일찍이 약한 장수에 강한 군졸이 있다는 말을 듣기나 하셨습니까? 진실로 당신의 말씀이 한때의 비분강개하고 상심한 나머지 나온 것으로 다른 뜻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단지 이 한마디 말이 이미 듣는 자로 하여금 기운을 잃게 하니 형도 조금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昨見甕旅行色, 今奉石館情書, 以面以書, 在在傷心.弟亦行將追兄於水萍風蓬之間者, 豈但以窮居百掣見暽於兄.蓋玄狂己當之後滄, 後滄未當之玄狂轍迹先後之涸, 豈有間哉.每見人說儒林之厄世運之極.然聖人無擇世之術, 有處世之法, 則吾輩所以處此世者, 豈非有所未盡而一向爲迂拙所祟也耶.但處世之法, 通常變死生而言, 則變迂拙而爲通巧者, 鮮不歸形生心死.然則吾輩所處終得正當耶, 不可以不自反, 亦不可以不自信.自信自反之間, 大有事在, 顧吾未之能焉.高見以爲如何.許多排布總成浮雲,一切是非,無緣吐氣,是何喩也.兄每以堅剛自許, 見人疲薾, 不啻餒鼠若也, 而一經空柫此言之猝發何也.試看古人烹伏雌炊扊扅者, 視兄今日果何如, 後來排布吐氣又何如.且吾輩目下所事, 非如日食數斗米, 驅百萬兵, 掃蕩徼塞確在明義理討亂賊喚醒今與後耳目.顧雖㱡㱡心不死矣, 舌尙任矣, 筆不禿矣, 何爲而出此言也.以兄之材不免此狀,乃以益賈餘勇責卑劣如弟者豈曾聞弱將之下有强卒乎.固知盛喩出於一時慨傷之餘非有他也,只此一言已使聽之者喪氣則兄亦少未之思也. 배포(排布)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애써 행하는 일이다. 한번 환난을 겪고 나더니 《맹자 · 고자 · 하편》에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라고 하였다. 복자(伏雌)를 삶고 염이(扊扅)를 태운 자 《孟子 · 萬章上》에, 춘추 시대 백리해가 일찍이 초나라에서 남의 소를 기르며 지낼 때, 진 목공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주인에게 몸값을 주고 백리해를 재상으로 발탁한 뒤 잔치를 열었다. 그때 마침 백리해의 옛 아내가 재상의 관아에서 삯일을 하다가 남편을 알아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기를 "백리해여! 다섯 마리 양의 가죽으로 이별하던 때가 생각난다. 암탉을 삶아 먹이고, 문빗장으로 밥을 지었네. 오늘날엔 부귀하여 나를 잊었단 말인가?〔百里奚, 五羊皮, 憶別時. 烹伏雌. 炊扊扅. 今日富貴, 忘我爲?〕"라고 하였다. 백리해가 그 노래를 듣고 누구냐고 물어보니 바로 자기의 옛 아내였으므로 다시 그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남은 용기를 더욱 북돋으라고 《春秋左氏傳 · 成公2年》에, 춘추 시대 제나라 고고(高固)가 진나라 군진으로 돌입하여 혼자서 휘젓고 돌아온 뒤에 자기 군사의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하여 "용기가 필요하다면 나의 남은 용기를 팔아 주겠다. [欲勇者, 賈余餘勇.]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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