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오극경에게 답함 기묘년(1939) 答吳極卿 己卯 편지를 주고받음에 진실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 같으니, 어떤 즐거움이 이 같으며 어떤 행운이 이와 같겠습니까. 또한 왕래하는 편지의 내용이 으레 하는, 안부를 묻는 한가한 말이 아니고, 모두 배움에 관한 설명과 예에 관한 논의이니, 그 공부는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그 도움은 덕행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편지에서 "하늘이 앞서지도 않고 뒤지지도 않게 우리 두 사람을 똑같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으니 단지 한때의 기쁨과 다행만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공론이니 의론이 맞지 않아 구차하게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거니와 보내신 편지에서 염려하신 어긋나는 폐단이 있겠습니까. 무릇 세상에서 도를 논하다가 끝내 서로 어긋나는 것은 모두 사적인 것입니다. 일종의 사설(邪說)이 도를 해치고 세상을 재앙에 빠뜨리는 것은 이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맹자는 이를 막으라는 가르침을 내리고 주자는 그 사람을 목 베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88). 이제 저의 허약한 자질로 맹자와 주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는 스승을 무함한 자의 사설(邪說)을 변박(辨駁)하고자 했는데, 변박을 미처 완벽히 하기도 전에 제 자신이 먼저 재앙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굳세게 의리를 밝히고 스승을 보호하는 데에서 나오고 일찍이 한 터럭이라도 사적인 의도와 객기가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뜻을 함께하는 벗들과 더불어 고금의 일을 논하고 의심스럽고 불명확한 내용을 강론했는데, 비록 한두 가지 다름이 있었지만 어찌 감히 대번에 사적인 의도와 객기를 부려서 불평을 야기하여 어긋남에 이르렀겠습니까. 제가 비록 못났지만 결단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우려하지 마십시오.계배(繼配)의 별독별탁(別櫝別卓)은 감히 퇴옹이 맞지 않다고 말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고, 또한 초배(初配)와 차별이 있다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세속 사람들이 삼취 이후에 별독별탁하는 것은 실제로 차별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예가 아닙니다. 퇴옹이 조처한 바와 세속이 행하는 것이 뜻은 비록 같지 않을지라도 어찌 세속 사람들이 선현에게 핑계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이 점을 염려하여 말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가례증해(家禮增解)》에서 인용한 퇴계의 설이 정도가에게 준 편지와는 서로 상반된다는 것은 이 설명 중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마도 《예기》 〈내칙(內則)〉에 이른바 '시아버지가 죽으면 시어머니는 늙은 것이다'라는 것으로, 이미 주부의 일을 며느리에게[於婦] 맡겼을 것이니, 아마도 상복을 입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고, 마지막에는 《예기》 〈상복소기〉에 근거하여 "그 남편이 비록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그 처[其妻]는 또한 마땅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부(於婦)'라고 할 때의 부(婦)에 해당하는 자는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는 자가 아닙니까? 또 '기처(其妻)라고 할 때의 처(妻)에 해당하는 자는 이미 늙어버린 시어머니가 아닙니까? 형은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어머니와 조모가 모두 살아계시지 않은 이후에 처가 마땅히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는다는 뜻은 이 설명 속에 있습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사계(김장생)가 이 설명을 본 것 또한 저 견해와 같습니다. 여기에 기록하여 올립니다.우리들은 세상의 막대한 예절에 대해 오히려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어찌 작고 작은 것을 살피겠습니까? 깨우쳐 주신 것은 이런 것들인데 저의 견해도 그렇습니다. 다만 우연히 《퇴계집》을 보다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심력이 미칠 수 있는 것은 먼저 한두 가지를 행하여 옛것을 점차 회복하는 계기로 삼으니, 우리들은 또한 이런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논의한 포은의 일은 제 설명에 대하여 간혹 문답이 맞지 않은 것이 있거나 간혹 다른 사람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른바 편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잠시 놓아두었다가 만나서 토론할 수 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書往書來, 眞朝暮遇也, 何喜如之! 何幸如之! 又其所以往來者, 非例寒暄間言語, 而皆學說禮論, 功存竆格, 而資成德行者. 則來喻"天之不先不後, 而生吾兩人於并世者, 似不偶然, 而非但爲一時之喜幸也." 盖道者, 天下之公論, 論不合而不茍然唯諾, 則有之焉, 有來喻所慮乖張之弊也? 凡世之論道, 而終至於乖張者, 皆私也. 若乃一種邪說, 足以害道而禍世者, 則不在此限, 故孟子有言距之訓, 朱子有人誅之教. 今以弟之孱劣, 誤學孟朱, 欲辨誣師者之邪說, 辨未及盡, 而身先嬰禍. 然其心則斷斷然出於明義而閑師, 不曾一毫使得私意客氣也. 况與同志之友論古今講疑晦也, 雖有一二異同, 何敢遽用意氣, 致不平而至乖張乎? 弟雖無狀, 决非其人, 勿慮焉.繼配之別櫝別卓, 非敢索言退翁之未當, 亦非謂有差別於初配. 但以世俗人之三娶以後, 別櫝別卓則實出於差別, 是非禮也. 退翁所處, 世俗所行, 意雖不同, 安知世俗人之不藉口於先賢乎? 區區從初以是爲慮而言之, 非有他意也. 增解所引退溪說之與答鄭道可書相反者, 即於此說中見之矣. 始曰'若其母, 恐所謂舅沒則姑老, 已付主婦之事於婦矣, 疑若不當服.' 終據喪服小記, 而曰'其夫雖已死, 其妻亦當服.'於婦之婦字, 非從夫服者乎? 其妻之妻字, 非已老之姑乎? 兄於何見得? 母若祖母, 俱不在然後, 妻當從夫服之意, 於此說中乎? 願更詳之也. 沙溪之看此說, 亦如鄙見者, 茲錄呈. 吾輩於世莫大之節, 猶惧不守, 何察察於小小? 所喻是矣, 鄙見亦然. 但偶見《退集》而發此疑問爾. 然心力可及者, 先自一二行之, 以爲復古之漸, 吾輩亦不可忘此意也. 所論圃隱事, 於鄙說或有問答不值者, 或有不盡人言者, 所謂書不如靣者此也. 且可閣置, 以俟面討耳. 맹자는……주었습니다 《맹자(孟子)》〈공손추 하(公孫丑下)〉편에서는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 했고, 주자의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는 "사설이 정도를 해치는 것은 사람마다 공격할 수 있는 것이며 반드시 성현만이 하는 것이 아니니, 《춘추(春秋)》의 필법에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죽일 수 있는 것이며 사사만이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蓋邪說害正, 人人得而攻之, 不必聖賢, 如春秋之法, 亂臣賊子, 人人得而誅之, 不必士師也〕"라고 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오극경에게 답함 기묘년(1939) 答吳極卿 己卯 노란 국화꽃이 피고 밝은 달이 있는 가을은 일 년 중에서 가장 좋은 때인데, 이 좋은 때를 당하여 어진 벗들과 마음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좋은 때를 헛되이 보낸다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편지가 이때에 도착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노란 국화꽃을 마주보며 밝은 달에 비추어 읽으니 위로와 기쁜 마음이 어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는 것만 못하겠습니까? 하늘이 저로 하여금 형을 의지하여 이런 즐거운 때를 즐기게 하니 또한 일 년 중에 가장 즐거운 일이라 할 수 있으니 스스로 축하하고 축하했습니다. 의론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는 바로 그 말을 보면 되고, 마음으로 기뻐하는 곳은 일찌감치 맞아떨어지니 더 이상 말할 꺼리가 없습니다. 비유컨대 오성(五聲)과 육율(六律)이 고하와 장단이 있기 때문에 서로 덜고 보태어서 음악을 이루어 즐거워할만한 점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또한 어떻습니까?퇴계의 설에서는 이미 "그 처는 마땅히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또 "그 어머니도 마땅히 따라 입어야 한다"라고 말 했습니다. 그가 말한 처는 부인이고 어머니는 시어머니이니, 이것은 바로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 부인은 마땅히 남편을 따라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종복(從服) 여부의 구별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적부가 있고 적손부는 없다고 말한 경우는 《의례》 〈상복(喪服)〉의 자하전(子夏傳)의 "적자가 있다면 적손은 없으니 부인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한 문장에 근거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적자가 있다면 적손이 없다'는 것은 부친과 조부의 입장에서 자식과 손자를 보며 한 말입니다. 자식과 손자는 비록 지위가 낮지만 가장 연장자이어서 장차 선대의 중책을 전수할 자라면 적자와 적손으로 명명하여 중시여기는 것입니다. 자식이 살아있다면 중책은 마땅히 자식에게 전수해야 하고 손자에게 전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적자가 있다면 적손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인의 경우에도 이와 같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계시면 손부를 위하여 소공복을 입지 않습니다. 만약 자식과 손자를 부친과 조부에 견준다면, 그들의 존귀함은 비할 바가 없고 중책도 곧 부친과 조부에게 있으니, 감히 '적자가 있다면 적손이 없다'는 예로 부친과 조부 사이에서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인 또한 이와 같으니, 시어머니가 계시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할 바가 아닌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반대쪽을 비춰볼 수 있겠습니까?포은의 일은 형이 반드시 일점의 과오도 없는 경우로 보고자 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날에 과오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훗날에 세운 큰 절개에 해가 되지 않음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니, 탕왕과 안연과 같은 성인도 또한 과오가 있었는데 하물며 현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현자를 위하여 과실을 숨기는89) 것은 비록 미덕일지라도 정밀한 의리를 분석할 때는 숨기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명쾌하고 직설적으로 설파하니, 이것은 숨기는 태도를 후세가 보고서 교훈으로 삼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리는 주자의 책 중에서 볼만한 곳이 있으니 자세하게 고찰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형이 지으신 〈왕가계통설(王家繼統說)〉중에 "일찍이 김 모가 지은 동국사(東國史)를 보니 동생 모씨를 황태자로 봉한 것에 대하여 금수만도 못하다고 한탄하였다. 이제 간옹이 이른바 '그 기미에 비롯함이 있음을 알 수있으니 저 사람이 말한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고 한 말을 보았으니, 만일 그렇다면 이 '금수만도 못하다'는 말은 간옹이 열어놓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두근거리게 하여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태자라는 호칭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조정에서 정한 것이니 김 모가 자신의 견해로 문장을 쓴 것이 아니라면 금수를 운운하는 것은 또한 매우 온당치 않다. 그러나 김 모가 황태자라고 말한 것은 태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호칭한 듯하다.】 우리 선사의 말씀 중에 '영종[영조]이 경종을 황형으로 삼고, 숙종을 황고로 삼았으니, 이것은 또 누가 가르쳐서 말한 것입니까?'90)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지 연재(송병선)가 매산(홍직필)이 후에 고친 견해를 유념하지 않고서 '본속(친속)으로 차례를 정한다'는 처음 부분만을 가지고 잘못 이해하여 전례(典禮)를 어겨 사군(嗣君)으로 하여금 살펴보아 법으로 삼게 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선사께서 다음과 같이 변론하셨습니다. "사군(嗣君)이 매산의 훗날 정견을 쓰지 않고 단지 본속으로 차례를 정한 것은 본래 예관의 실수이니 어찌 전례를 어겼다 하여 매산을 뒤미처 허물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연재의 설과 같다면 매산 이전 영종 때에 숙종과 경종의 칭호에 대해 본속으로 차례를 정하는 것은 어디를 살펴보아 법으로 삼아야 했겠습니까? 또 장차 퇴계의 수숙설(嫂叔說)91)을 살펴보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찌 공론이 될 수 있겠습니까."92)영종이 반드시 숙종을 호칭하여 조(祖)라 하고, 경종을 호칭하여 부(父)라고 해야만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은 채 크게 의혹을 일으켜 극단까지 추론하고는 마지막에는 갑자기 나라의 말기에 동생을 아들로 일컬은 오류를 간옹이 그 근원을 열었다고 돌립니까? 고명하신 그대의 지혜롭지 않은 한마디 말이 이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형에게 있어서는 신중하게 생각한 도리가 아니고, 지금이나 훗날이나 절대불변의 의론이 되기는 어려우니, 제발 빨리 고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黃花素月, 一年最良之辰, 當此良辰, 而不得與良友話心, 則可謂虛負良辰矣. 何幸惠翰來墜此際? 對黃花映素月而讀之, 慰喜之心, 何下面談? 天使我賴兄, 而樂此良辰, 亦可謂一年最快之事, 自賀自賀. 若夫議論之相差, 正見其話, 心樂處早已脗然, 亦自無話可說. 譬之五聲六律, 有高下長短, 故互相損益而成樂, 而見其可樂也, 此又如何?退溪之說, 既曰: "其妻當從服." 又曰: "其母亦當服." 其曰妻者婦也, 母者姑也, 此正說姑在而婦當從夫服也. 來喻曰'似不及姑在則從服與否之別,' 竊所未曉. 至於有適婦無適孫婦之云, 據〈喪服〉傳, 有適子無適孫, 婦亦如之之文而言之也. 盖有適子無適孫者, 以父祖而視子孫之辭也. 子孫雖卑, 最長而爲將傳先世之重者, 名以適子適孫, 而視之爲重. 子在, 重當傳子, 而不當傳孫, 故有適子無適孫固也. 而婦亦如之, 故所以姑在則不爲孫婦服小功也. 若子孫之視父祖, 則其尊無比, 其重即在父祖, 不敢以有適子無適孫之例, 區別於父祖之間. 故婦亦如之, 姑在則否, 非所可論也, 豈可以此而作反照乎? 圃隱事, 兄必欲作無一点過錯看, 故有此許多說話. 然殊不知前之有過, 不害爲後之大節, 以成湯顏淵之聖焉, 而且有過, 况賢者乎? 爲賢者諱, 雖是美德, 至於剖析精義, 不得掩諱去處, 不得已明直說破者, 恐後世視以爲訓故也. 此義也, 朱先生書中, 有可見處, 詳考之如何?盛作王家繼統說中云, "嘗見金某所著《東國史》, 以弟某封皇太子, 嘆禽獸之不若. 今見艮翁所謂知其漸有自而無恠彼所謂也. 若然者, 是禽獸之不若, 艮翁啟之也." 此何說也? 使人心悸, 不知所喻.【且皇太子之稱, 雖不成說, 必是朝家所定, 非以金某自見立文, 則禽獸云云, 不亦未安乎? 然其云皇太子者, 似以太上皇在故, 有此誤稱也.】鄙先師說中, 英宗之以景宗爲皇兄, 肅宗爲皇考, 是又誰教之之云? 只以淵齊不念梅山後來之改見, 但執本屬定次之始, 誤乃謂乖謬典禮, 使嗣君視以爲法. 故辨之曰"嗣君之不用梅山後來定論, 只以本屬定次者, 自是禮官之失, 何得以乘乖謬典禮, 追咎梅山耶? 若如淵齊之說, 則梅山之前, 英宗時, 肅宗景宗稱號之以本屬定次者, 何所視法耶? 其將曰視法於退溪嫂叔之說, 豈得爲公論乎云爾?" 非謂英宗必稱肅宗曰祖. 景宗曰父而後可也. 胡乃不加詳審, 大致疑難, 推到其極, 終之遽以國末, 稱弟爲子之謬, 歸之於艮翁啓源乎? 不意高明一言之不智, 至於此也. 此在兄既非慎思之道, 在今與後難得爲不易之論, 千萬亟爲刪改, 如何? 현자를……숨기는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성공(成公) 9년 조에 "존자를 위해서는 부끄러운 일을 숨기고, 현자를 위해서는 과실을 숨기고, 친자를 위해서는 병을 숨겨 주었다.〔爲尊者諱恥, 爲賢者諱過, 爲親者諱疾〕" 하였다. 영종[영조]이……것입니까 간재는 "사군이 매산의 정론을 따르지 않은 것에 있어서는 그 자체로 예관의 잘못으로 귀속되는데, 어떻게 매산을 미루어 허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매산 이전에 영종은 경종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왕세제(王世弟)라 지칭했는데, 이후 종묘에서 축사를 올리며 경종을 황형(皇兄)으로 삼고 숙종을 황고(皇考)로 삼았다. 《소학(小學)》의 〈후서(後序)〉에서도 숙종을 성고(聖考)라 지칭했다. 이것은 또 누가 교시하여 이처럼 한 것인가? 만약 퇴계의 수숙에 대한 설로 그 폐단을 일깨울 수 있다 한다면 이것을 공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至於嗣君之不用梅山定論, 自屬禮官之失, 何得追咎梅山耶? 然則梅山之前, 英宗是景宗之弟, 故稱王世弟, 及後宗廟祝辭, 以景宗爲皇兄, 以肅宗爲皇考. 小學後序, 亦稱肅宗爲聖考. 是又誰敎爲之? 若曰退溪嫂叔之說, 有以啓其弊也, 是可謂公論乎?〕"라 했다.《간재집(艮齋集)前篇》 권14 〈간연재잡식 신해(看淵齋雜識 辛亥)〉 퇴계의 수숙설(嫂叔說) "명묘(明廟)께서 승하하여 인성왕후(仁聖王后)의 복제를 결정할 때, 퇴계는 처음에 수숙(嫂叔)간에는 상복을 입지 않는다는 《의례(儀禮)》의 문장을 인용하였지만, 나중에는 기대승의 논의를 따라 계체(繼體) 관계에 있는 모자간의 상복으로 결정하여 결국 3년상을 시행하였다〔明廟昇遐, 仁聖王后服制, 退溪初引儀禮嫂叔無服之文, 從奇高峰之論, 以繼體母子之服爲定, 遂行三年之制〕" 《월정집(月汀集》 권4 〈漫錄〉 사군(嗣君)이……있겠습니까 "영종[영조]이……것입니까"에 대한 주석 참고.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봉규에게 보냄 병자년(1936) 與朴鳳圭 ○丙子 몇 해 전에 당신이 선친 가헌공(可軒公)의 행장(行狀)을 청하는 일로 나에게 왔었습니다. 그리고는 호남과 영남의 시비를 물었지만 제가 자세하게 모두 말할 겨를이 없어서 우선적으로 음성의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상황을 들어 당신에게 대답하자, 당신이 '만약 우리 선친이 세상에 살아계신다면 반드시 분명하게 분별하여 엄하게 꾸짖을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이 선친께서 절개를 위해 죽은 마음을 미루어 선친께서 반드시 스승의 절의를 무함한 음성의 오진영을 꾸짖으실 것을 안 것이라고. 또한 이로써 당신이 스승을 무함한 사람을 기필코 꾸짖을 선친의 행장을, 일찍이 스승을 무함한 사람을 꾸짖은 저에게 받으러 왔다고 알았습니다. 나는 진실로 이미 당신 선친의 대절(大節)을 앙모했고, 또한 이에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간의 뜻이 같음을 느꼈습니다.그래서 자못 당신의 선친의 덕을 형용하는 데에 마음을 다하고, 당신의 선친에게 누가 없기를 바라며, 나에게도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는데, 어찌 당신이 이미 저의 문장을 받고서 또 다시 변덕을 부려 선친의 문집의 서문을 음성의 오진영에게 받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문장을 청하는 까닭은 어찌 선친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빛남을 증가시킬 수 없을 뿐만이 아니니, 선친이 반드시 꾸짖을 사람에게 달려가서 절을 하고 문장을 청한 만큼 선친에게 누를 끼치고 욕되게 한 것은 이미 말할 것이 없고 선친의 신령이 장차 "나에게 계술(繼述)93)을 잘 하는 훌륭한 아들이 있는가."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말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당신의 말로써 당신의 몸을 살펴본다면 죄를 피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스스로 처리하여 뒷마무리를 잘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한갓 당신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특히 선친을 위해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年前執事, 以請先丈可軒公行狀事來僕也. 詢以湖嶺是非, 僕不暇詳悉, 而首舉陰吳誣師狀以對, 執事不曰若使吾先人在世, 則必明辨嚴斥矣乎? 僕於是知執事推先公死節之心, 而知其必斥誣師節義之陰吳也. 又以是知執事之欲受必斥誣師人之先公之文, 於曾斥誣師人之金澤述也. 僕固已仰先公大節, 而又於此感幽明之同志也. 頗盡心於狀德, 而幸在先公爲無累, 在僕爲無愧矣, 何圖執事既受鄙文, 又復二三其德, 至受先集玄晏於陰吳也? 夫所以請文於人者, 豈非欲增光先公乎? 今也非惟不能增光, 乃趍拜先公必斥之人而請文焉, 則累汙先公, 已無可言, 而先公之靈其將曰"余有善繼述之肖子矣乎?" 是不待僕言而即以執事之言勘執事之身, 則罪無所容逃矣. 未知執事何以自處而善後也. 僕所云云, 非徒爲執事, 恐特爲先公而惜之也. 계술(繼述) 계지술사(繼志述事)로, 선왕(先王)이 품은 뜻과 하던 일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19장에 "효도란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부모의 일을 잘 전술하는 것이다. 〔夫孝,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명찬구에게 답함 경오년(1930) 答明粲九 庚午 오늘날 예교(禮敎)가 사라져서, 세상에서 돈독한 학자라고 칭하는 자들이 평생 정력을 다하여 의칙(儀則)을 강정(講定)하다가도 사소한 이해에 구애되어 삽시간에 대절(大節)을 어기고 범한 자가 있음은 이 무슨 까닭일까요. 단지 구이(口耳)사이에 절문도수(節文度數 예의 형식)의 예(禮)만 빙자하고, 일찍이 심전(心田 마음바탕) 위에서 시청언동(視聽言動)을 예에 합치시키는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예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네 가지 조목31)이 도학의 정본(定本)이 되어 잠시라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소기(小記)〉에 이르기를 "삼년상이 있는 자는 두 번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삼년상이 아닌 자는 두 번 제사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생이 죽었는데 처자가 없는 경우 궤연(几筵)을 사계(沙溪)의 설에 의거하여 일 년 만에 철거하는 것이 마땅한 듯합니다. 노비의 삼년복은 본디 본족(本族)의 오복(五服)과 견주어 논할 것이 아닙니다. 수암(遂菴)에게서는 다만 노비의 제사를 삼년 지낸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는 설이 있는데 온당한 듯합니다.남계(南溪)가 말하기를 "본생(本生) 조부를 모시며 봉양한 자는 제주(題主)에 종조(從祖)라 한다."고 하였고, 도암(陶菴)은 말하기를 "본생 조부가 후사가 없으면 사당에 반부(班祔)하고 종부라고 제주한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본생 조부는 칭호는 종조이고 상복은 대공(大功)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판단하면 삼년복이 없는 자로 출후(出後)한 자식이 3년간 궤연을 받드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경호(鏡湖)가 말하기를 "본생가에 만약 남주(男主)가 될 만한 다른 친족이 없다면 출후한 자식이 백부 숙부라고 제주하여, 임시로 그 제사를 섭행(攝行)하고 여주(女主)는 쓰지 않으니 이는 혐의를 분별하고 종통(宗統)을 중시하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근거하면 출가한 딸이 와서 제사를 주관하고 출후한 자식이나 손자가 3년 상을 섭행하는 것 또한 미안합니다. 하물며 출가한 딸의 상복은 기년에 그침에랴.우암이 말하였습니다. "예에 근거하면 주인이 연고가 있으면 소상과 대상을 지내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은 곡만 하고 변제(變除)한다. 이 날 약간의 제품(祭品)을 기일의 제의(祭儀)와 같이 차린다." 수암은 말하기를 "부친상의 소상과 대상에서 장자가 병이 들었으면 날을 가려 물려 거행하는 것이 옳다. 이는 정례(正禮)이다."고 하였습니다. 수암에게는 또 만일 어려움이 있으면 곧 개자(介子)32)를 뽑아 대행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또 마땅히 우암의 '주부가 주인과 함께 동시에 제복(除服)하지 못하면 후일을 기다려 자리를 설치하여 곡하고 제복한다.'는 설을 방조(傍照)하여, 주인의 병이 나은 후에 허위(虛位)를 설치하거나 혹은 묘소로 가서 곡을 하고 제복함이 마땅한 듯합니다. 見今禮敎掃地, 世之號爲篤學者, 竭其精力, 講定儀則於生平, 而拘些利害, 違犯大節於霎時者亦有之, 此曷故焉? 只憑節文度數之禮於口耳間, 不曾向心田上用視聽言動合禮之功爾.益知非禮四勿, 爲道學定本, 而不可須曳離也, 小記曰有三年者, 則爲之再祭, 觀此則無三年者, 不再祭可知也.弟死無妻子者几筵, 依沙溪說朞年而撤恐宜.奴婢三年本非可與本族五服比論者, 遂菴只有奴婢祭三年未聞之說恐當.南溪曰爲本生祖侍養者, 題主以從祖, 陶菴曰本生祖無從班祔于廟, 以從祖題主.蓋本生祖, 以稱則從祖也, 以服則大功也.以此斷之, 則無三年者而出後子之子, 三年奉几筵未穩.鏡湖曰本生家若無他親可爲男主, 則出後子以伯叔父題主, 權攝其祀, 而不用女主, 別嫌重統之義, 據此則出嫁女來主其祭.而出後子若孫, 攝行三年亦未安.且况出嫁女服, 只止於朞年也乎.尤菴曰據禮, 主人有故, 則不得練祥, 餘人只哭而變除.是日略設祭品如忌日儀, 遂菴曰父喪練祥.長子有病, 擇日退行爲可.此皆是正禮也.遂菴又有如難卽差使介子代行之說.若然則又當旁照於尤菴主婦不得與主人同除, 則待後日設位哭除之說, 主人病愈後設虛位, 或往墓所, 哭而除服恐宜. 네 가지 조목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이 인(仁)의 조목을 물었을 때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답한 네 가지 조항을 말한다. 《論語 顔淵》 개자(介子) 적장자 외의 중자(衆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한유성종연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韓有聲 鍾淵 戊辰 예전 음인(陰人 오진영)의 화를 만나 사생(死生)이 닥쳐올 때에 함께 화를 당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찍이 지나며 안부를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직 그대만이 편지를 보내서 위로하고 은덕으로 나를 권장해주니 그 풍모가 탁연하여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이러한 시기에 그대의 이런 행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기에 나의 감사함에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때때로 청풍이 동남쪽에서 불어오면 문득 '이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우리 운남(雲南) 사시는 분의 소식이다.'라고 하면서 흠뻑 맑은 바람에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바람은 허공의 실체가 없는 형상임에도 오히려 그대가 있는 곳에서 불어왔기 때문에 마음의 기쁨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뜻을 같이하는 그대의 편지 한통이 지금 내 책상위에 놓여 있음에 어떠하겠습니까? 도를 근심하고 세상일에 번뇌하는 절절한 언사와, 도를 안고 세상을 피하려는 간절한 뜻이 나를 깨우쳐주는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처럼 기쁘고 마음 트이는 일이 근래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옥(獄) 중에서 상서(尙書)를 읽고, 배 안에서 대학(大學)을 공부한다."라는 말씀은 지금 시절의 의리에 딱 들어맞아서 사람을 잘 인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일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주자(朱子)가 이른바 "한 숨결이라도 남아있으면 조금의 게으름도 용납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 이미 설파하여 남음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오히려 굶주리면 먹고 졸리면 잠을 자면서 얼마나 많은 숨결이 앞에 남아있는지 모르면서도 세도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조금이라도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 강학하는 제자들이 있어서 그 즐거움이 어떠하신지요?"라는 축하의 말은 그대의 밝은 지혜로도 한 가지 일을 잘못 헤아림을 면치 못했습니다. 즐거움이란 기쁨 이후에 얻어지는 것인데 이미 기쁨이 사라졌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제 원로들이 모두 떠나고 늙은이 중 여전히 선비의 명성을 띠고 있는 자가 드뭅니다. 그리하여 인가의 자제들 중 서책을 끼고 방황하는 자들이 기약하지 않고 스스로 이르는데 나 또한 오늘날 청년들의 독서가 그 이름만으로도 매우 귀하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대처럼 바깥에서 막연히 생각하면 우리 가운데 볼 만 한 자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나 모두 명성만 있을 뿐 실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믿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배우는 자는 진실한 공부가 없어서 서로가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의 죄는 만방과 관계가 없고, 만방의 죄는 그 책임이 나에게 있다."33)라는 가르침처럼 가르치는 자의 허물은 배우는 자와 관계가 없지만, 배우는 자의 허물은 가르치는 자에게 과오가 있으니 이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대는 오랫동안 학문을 돈독히 하고 지조를 지켜 우뚝 빼어난 선비가 되어서, 기쁘게도 한 고을의 믿음이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요사이 학문하는 절도를 자세히 알지 못해 울적해하다가 원기산(元氣山)에 집을 짓고 학생들에게 강독하고 있다."라는 것을 편지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주자(朱子)께서 이르시기를 "공자의 덕은 태화원기(太和元氣)"라고 하였은즉 그대가 강론하고 있는 공자의 유훈과 남은 가르침 또한 천지의 원기가 아니겠습니까? 천지의 원기를 원기산에서 강론하고 있으니 사람과 땅이 서로 어울리고 이름까지 부합합니다. 이는 고시(古詩)에 이른바 "정자 가운데 이르기도 전에 명성이 이미 좋다."34)라는 것과 진실로 부합합니다. 이제 그 실질을 확충하여 부합시키는 일은 오직 그대의 힘쓰는 여하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일상의 진덕수업(進德修業)하는 교수의 과목들을 적어 보내서 나로 하여금 참고할 수 있게 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사람이 사람 되는 실질은 윤리강상(倫理綱常)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위아래로 모두 어두워져 윤리강상이 실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친권이 박멸하고, 군신이 평등하며, 이혼하고 스스로 중매하며, 나이가 많아 쓸모없다는 등의 설이 결국 공론(公論)과 상식이 되었음에도 막는 이가 없습니다. 사륜(四倫)이 이와 같으니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금수가 되어가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 기수(氣數)가 변천하여 이적(夷狄)에게 물들어 이처럼 큰 화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대도 선비라는 자가 지위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금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분통함과 근심으로 절반이라도 이를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작금의 선비들은 구하려는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삼년상을 틈타 혼례를 행하여 부자(父子)의 은혜를 해치고, 선왕의 법을 범하여 올바른 가정의 시작부터 어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비단 한, 두 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윤리 강상을 무너뜨리고 몸소 금수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차마 한다면 무슨 일인들 차마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일을 보고 들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담이 떨리고 심장이 꺾입니다. 그대 또한 이런 말을 들으면 크게 놀라고 깊이 애통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금일 선비들이 마땅히 강론하여 밝혀야 할 것이 윤강(倫綱), 두 글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내 말을 그르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그대 또한 이 뜻을 잘 생각하여 보존하고, 수행하여 행동의 다스림으로 삼으십시오. 또 언어로 삼아 드러내고 저술하여 문장으로 삼으십시오. 나아가 안으로 가정에서 실천하고 밖으로 고을에까지 미치게 한다면 풍속이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윤강(倫綱), 두 글자를 하나의 큰 제목으로 삼아서 높이 선창하고 자세히 깨우쳐주어 크게 포상하고 무겁게 폄하(貶下)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의 도에 많은 도움이 있게 하는 것이고 실로 천지의 원기를 도와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진덕수업의 나머지로 삼고 미루어 나가 학생을 교수하는 과목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저 성리(性理)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는 윤리강상의 본원(本源)이 되고, 문장의 묘함은 또한 윤리강상의 시용(施用)이 됩니다. 오늘날의 화는 아시아 풍조나 유럽 사조의 동탕함에서 오로지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리설이 밝혀지지 않은 까닭에 어두워졌다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윤리 강상의 도가 밝게 행해진다면 마을의 민요마저도 문장의 쓰임이 되는데 흠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성리설의 다툼은 도리어 서로 싸움을 초래하기에 이르고, 문장의 기이함은 쉽게 배우의 희롱으로 귀결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학문으로 이름난 선비들 중, 그 상류는 현담(玄談)이나 공리(空理)를 설하여 명목만을 다투고, 그 하류는 교묘하고 화려함을 다투어 꾸미는 것만 힘씁니다. 그리하여 서당의 급한 임무는 윤리 강상의 원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대사임에도 여기에 마음을 극진하게 쓰지 않으니 늘 그 점을 개탄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은근하고 같은 뜻을 가짐에 감동하여 이렇게 말이 크게 길어졌으니 부디 산만하다고 꾸짖지 마시고 더욱 헤아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曩遭陰禍, 死生迫頭, 同禍幾人以外, 未嘗見過而問焉者.惟賢座致書以慰藉之, 用德以勸獎之, 風義卓然, 令人可感.然賢座此時此爲, 非以私也, 乃以公也, 則吾之感之, 亦豈有他? 時有淸風自東南來者, 輒曰此吾雲南同人信息也, 未嘗不恰然而醉風.是虛空無形之物, 猶以其自仙鄕方面而來故, 心悅之若是, 矧玆一幅華函, 實出乎吾同人心畵, 而現墜於吾案乎.而切切然憂道憤世之辭, 懇懇然抱道遯世之志, 有所警發於陋劣者爲多.其所欣豁, 蓋比來初事.獄裏尙書舟中大學之喩, 可謂切中時義, 亦可謂善導人也.然此事約而言之, 朱子所謂一息尙存不容小懈者, 已道破無餘.今吾輩尙此飢打食困打眠, 不知其幾多息在前, 安可諉以世道無柰而少懈於自治乎? 屛墻有徒, 其樂何如之賀? 賢座之明, 不免一籌錯料.樂由說而後得, 旣無其悅, 安有其樂? 但今長德幷逝, 老蒼而尙帶士名者亦鮮.故人家子弟之挾書彷徨者, 不期而自至, 吾亦以今日年少之讀書, 其名可貴故受之.自外而遙想, 其中似有可觀者, 然敎與學者, 皆以其名而不以其實.故上無孚感之動人, 下無朴實之用功, 可謂胥失之矣.然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則敎者有過, 無以學者, 學者有過, 過在敎者, 是之愧耳.久知賢座敦學有守, 蔚爲秀士, 充然喜一方之有恃.然猶以未悉近日爲學節度爲鬱, 玆承結屋元氣山中, 與朋徒講貫, 朱夫子謂孔子之德爲太和元氣, 則卽此賢座所講孔子之遺訓餘敎, 亦非天地元氣乎? 講元氣乎元氣之山, 人地相得, 名與之符.是則古詩所謂未到亭中名己好者, 充其實而符之, 惟在賢座自勉之如何.何不幷以日間進德修業牌下敎授課目而示之, 使膚淺者有所取法也? 竊惟人所以爲人之實, 以倫綱在也.見今上黲下瀆, 倫喪綱墮.親權撲滅, 君臣平等, 離婚自媒, 年多不用等說, 遂成公論常式而莫之遏.四倫如此, 友道之信, 尤不待言矣.人而禽獸, 慘不可說也.噫! 氣數變嬗, 夷狄染化, 致此大禍.爲士者無位無權, 無可禁之術.其憤痛憂惻, 思所以救得一半分之心, 豈得已乎? 乃或近日之爲士者, 不惟無思救之心, 甚而至於乘三年之喪而行婚嫁, 賊父子之恩, 犯先王之法, 乖正家之始者, 不但一二數焉.其與於喪倫墮綱而身親爲獸行, 莫大於此.而所謂是可忍孰不可忍者, 聞見所及, 不覺膽掉而心折也, 賢座聞此, 得無大驚深痛者乎.吾故曰今日士子之所當講明者, 倫綱二字是已.賢座如不以鄙言爲非, 請自存之爲思慮, 修之爲行治, 發之爲言語, 著之爲文字, 以至內而用於家庭, 外而及於鄕黨, 大而化之風俗.另以倫綱二字, 立一大題目, 高唱細喩, 大褒重貶.使世道得有多少裨益, 寔扶植天地元氣之道也, 以此爲進德修業之餘, 推而作敎授朋徒之課目, 如何如何? 若夫性理之奧, 雖爲倫綱之所本源, 文章之竗, 亦爲倫綱之所施用.然今日之禍, 謂不專由於亞風歐潮之動盪, 而以性理說不明之故, 則疑若迂矣.苟倫綱之道明行, 里巷謠諺之作, 亦足爲文章之用而無欠矣.而况性理之爭, 反致戈戟相尋, 文章之奇, 易歸徘優作弄乎.而今之士之號爲學問名家者, 其上者談玄說空, 名目之是競, 下者騁巧鬪靡, 雕繪之是勤.至於堂下急務, 扶植倫綱元氣一大事, 不甚致意焉.此尋常慨歎于中者, 玆於俯詢之勤, 感聲氣之密邇, 不免發之太長, 幸不誚以冗蔓而加諒否. 내 몸의……있다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서경》 〈탕고(湯誥)〉 정자……이미 좋다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 시 중에 "주인은 금 거북 풀어 술 산 노인이니, 정자 가운데 이르기도 전에 명성 이미 아름답네(主人定是金龜老, 未到亭中名已好)"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문진보》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극명 병회에게 답함 신유년(1921) 答楊克明 秉晦 辛酉 그대의 선조인 백수(白水)선생은 일찍이 우리 고을의 선덕(先德)임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스럽게도 덕을 고찰하고 상론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당신께서 《백수유집(白水遺集)》을 보여주시어 더욱 명리(名理)의 설과 돈실한 행동이 진실로 천문(泉門)35)의 고족(高足 뛰어난 제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가 받들어 다 읽고 나니 저의 어리석은 견해를 깨우쳐줌이 많아서 감사하고 다행스러움이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감의 일은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은 "교정자의 안목이 반드시 작자의 안목보다 높아야 일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실질적인 말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미 스승의 명이 있었으니 제호어로(帝虎魚魯)의 변별36)에 대해서는 어찌 힘을 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서문과 발문에 이르러서는 그대가 말씀하신 "우리 선생님을 버리고 누구를 향하겠는가?"라는 말씀이 진실로 옳습니다. 선생님은 비록 한계가 엄격하시지만 지극한 정성이라면 금석 또한 뚫는데 이를 것입니다. 또 이 문장은 일반적인 요구와는 다름이 있기 때문에 어찌 끝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오직 그대의 진실한 노력 여하에 달려있지, 타인에게 의지할 것이 없으니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尊先祖白水先生, 昔嘗聞知爲吾省內先德.竊恨無由考德而尙論.頃蒙示以遺集, 益知名理之說, 敦實之行, 允爲泉門高足.謹奉卒業, 有以啓發昧見者多, 感幸何已.校讐之役, 鄙何敢當? 古人云校正者之眼目, 必高於作者之眼目, 乃得濟事, 此眞實際語也.雖然旣有師命, 帝虎魚魯之辨, 則安敢不效力也? 至於序跋, 高明所喩, 舍吾先生而向誰者, 誠得之先生之鐵限.雖嚴至誠所到, 金石亦透.且此文字, 有異於恒例酬應, 則豈有終不遂願之理乎? 此則惟在高明誠力如何, 非他人所得與也, 惟諒裁焉. 천문(泉門) 한천(寒泉)의 문정(門庭)이라는 뜻으로 이재(李縡, 1680~1746)의 학파를 뜻한다. 한천은 그의 호로 그는 조선 후기 성리학(性理學)의 대가이다. 제호어로(帝虎魚魯)의 변별 제호어로(帝虎魚魯)는 초서 형태가 비슷해서 구별하기 힘들다. 이를 변별한다는 것은 교감을 의미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극명에게 답함 계해년(1923) 答楊克明 癸亥 오늘 동짓날 그대의 편지를 받고 학업과 밝은 덕이 아울러 빛나고 분수에 따라 깊이 독서하시어 여행 중에도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음을 알고서 나의 마음에 족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나아가 "계구(戒懼)하는 것이 부족하고 작은 사특함을 제거하기 어려워 날로 허물이 쌓인다."라고 근심하시었는데 그것이 곧 공자가 말한 극기(克己)이고, 맹자가 말한 구방심(求放心)입니다. 그것을 일관되게 꿰뚫으면 우리는 능히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벗은 간절히 그것을 근심하시니 스스로 기약한 제이등인을 범치 않으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것을 듣고 기뻐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 나를 쫓아 절차탁마하겠다는데 이르러서는 구익(求益)을 급히 하여 먼저 외(隗)로부터 시작한다는37)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비록 내 몸이 미치지 못하지만 어찌 감히 끝내 침묵하여 그대의 은근한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오호라! 기(己)는 사사로움입니다. 한번 사사로움이 행해지면 억만의 선행이 사라지고 그것을 몸에 두면 몸이 망하고, 가정에 두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에 두면 국가가 망하고, 천하에 두면 천하가 망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아성인 안자(顔子)께서 일삼은 것이고 정자(程子)께서 경계하신 것으로 그와 같이 명백한데도 저 어두운 이들은 일찍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달게 그 욕망을 따르는 자들은 그만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간간이 사공(事功)에 뜻을 둔 자들도 가정, 국가, 천하에 급급하여 예(禮)가 아닌데 움직이고, 의(義)가 아닌데 일삼는 것을 걱정할 겨를이 없습니다. 비록 요행히 일을 이루고 공(功)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진실한 덕을 잃고 성현의 법문(法門)을 잃은 것이니 도리어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동중서(董仲舒)가 이른바 "그 의만을 바르게 행하고 그 이익은 꾀하지 않는다. 그 도만 밝히고 그 공은 계산하지 않는다."38)라는 두 마디가 족히 최고의 목표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극기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안회(顔回)는 그 마음에 삼 개월 동안 인(仁)을 어김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삼 개월 이후에는 때때로 인을 어기는 것을 면치 못한 즉 이는 마음을 놓친 것입니다. 이를지나 더 나아갔다면 변화해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맹자께서는 "학문의 도는 다름이 아니라 그 놓친 마음을 구할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방일자자(放逸自恣)한 것이 방심(放心)임을 알지만,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합리(不合理)한 것이 방심이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구하는 도는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기(記)에는 구용(九容)39)이 있고 어(語)에는 구사(九思)40)가 있습니다. 구용을 갖추어 불면이중(不勉而中)에 이르고, 구사를 갖추어 불사이득(不思而得)에41) 이른다면 그것이 곧 구방심(求放心)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부디 도(道)와 의(義)에 힘쓴다는 동중서의 훈계와 구용(九容), 구사(九思)의 방도에 뜻을 더한다면 전날의 근심이 족히 근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는 모두 생각을 분별하고 행동을 독실하게 하는 일이니, 이에 앞서 박학심문(博學審問)의 공부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벗처럼 천분이 약간 노둔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편지 중 "가난하여 유학할 수 없는 이 상재(傷哉)의 탄식42)은 어찌하겠습니까?"에 이르러서는 천고지사의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그러나 또한 천명이 있으니 분수 밖에서 구해서는 안 됩니다. 옛사람들이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서 힘써 행한다면 일이 절반은 넘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총명예지(聰明睿知)는 모두 경(敬)으로부터 나온다."43)라고 했으니 이는 모두 우리 벗의 분수에 들어맞아서 수용해야할 훈계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나이 40에 성취도 없이 또 세모를 맞이하여 다만 형주(荊州)자사 도간(陶侃)의 "살아서는 무익하고 죽어서는 알려짐이 없다."라는 한 구절을 쓸쓸히 읊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몸을 세간에 남겨두어 후진들에게 전거(前車)의 거울이 될 수 있다면 또한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卽承南至日惠函, 知學體有相, 與陽德幷昭, 隨分劇讀, 不以旅遊而少弛, 已足以慰相愛者心.又進而憂戒懼之未實, 隱慝之難除, 尤悔之日積, 此正孔子所謂克己, 孟子所謂求放心.透此一關, 吾人之能事畢矣.吾友切切然惟是之憂, 其不犯第二等人自期者斷斷矣.聞此而喜, 幾乎不寐.至於欲從淺陋而淬礪之, 則亦可見急於求益, 先從隗始之意也.顧雖躬之不逮, 安敢終於噤嘿以孤勤意乎? 嗚呼! 己者私也.一私之行, 億萬衆亡矣, 在身亡身, 在家亡家, 在國亡國, 在天下亡天下, 豈不畏哉? 顔聖之所事, 程子之所箴, 若是其明切, 而彼昏狂之曾不念知.而甘循其慾者, 已矣不足道, 間有有志事功者, 急於家國天下, 不暇恤於一動之非禮.一事之不義, 雖其幸而事成而功立, 其亡己之實德, 亡聖賢之法門, 則顧不大歟? 要之董子所謂, 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兩語, 足以爲究竟法, 此豈非克已之極致乎? 孔子曰, 回也其心三月不違仁, 三月之後, 不免有時乎違仁, 卽此是心之放也.過此以往, 乃化之之聖也.故孟子曰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人皆知放逸自恣之爲放心, 而不知心之少不合理者, 卽是放也, 求之之道, 當如何? 記有之曰九容, 語有之曰九思, 九容而至於不勉而中, 九思而至於不思而得, 則此豈非求放心之極致乎? 幸於道誼之訓, 二九之方, 加之意焉, 則向之所憂者, 不足憂矣.雖然此皆思辨行篤之事, 前此有博學審問工夫.而如吾友之天分稍魯者, 最不可闕.其於貧無以遊學, 何此傷哉之歎? 所以墮千古志士之淚也.然亦有命焉, 不可分外求之.古人云但於己知處, 力行之, 則思過半矣, 又曰聰明睿智.皆由敬出, 此又爲吾友分上適中受用之訓也, 如何如何? 澤述四十無成, 又此歲暮, 怛然而傷心, 只誦陶荊州生無益死無聞之句耳.然留此物於世間, 作後進前車之鑑, 則亦不爲無益也耶. 외(隗)로부터 시작한다 선종외시(先從隗始)의 의미이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그 의만을……않는다 동중서는 천인책(天人策)에서 "대개 인인(仁人)은 그 의리를 바르게 하고 이익은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은 생각지 않는다.[正其誼不謀其利 明其道不計其功]" 《漢書 卷56 董仲舒傳》 구용(九容) 군자가 수신하는 아홉 가지 몸가짐으로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바르게, 입은 신중하게, 말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한다.[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 《禮記 玉藻》 구사(九思)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로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집중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의리를 생각한다.[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논어》 〈계씨(季氏)〉 불면이중(不勉而中), 불사이득(不思而得) "성(誠)의 경지에 이르면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과불급(過不及)이 없고,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터득해서 자연히 도에 합치되는데, 이런 분이 바로 성인이다.〔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중용장구》 〈제20장〉 상재(傷哉)의 탄식 "가슴 아프구나! 살아서는 봉양도 제대로 못했고, 죽어서는 예를 갖추지도 못하였네.〔傷哉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也〕"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나오는 말로 가난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총명예지(聰明睿知)……나온다 "총명예지가 모두 이 공경으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로써 하늘을 섬기고 상제에 제향하는 것이다.[聰明睿知皆由是出, 以此事天饗帝.]" 《논어집주》 〈헌문(憲問)〉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극명에게 답함 경오년(1930) 答楊克明 庚午 그리워하던 차에 받은 편지 한통은 백붕(百朋)도 어찌 이보다 값지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물음이 있었는데 답이 없으니 아마도 저를 버리셨네요?"라는 말에 대해서는 제가 저버린 것이 부끄럽고 무거워 천금 또한 가볍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 상자를 열어보니 과연 봄에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서신 가운데 나를 일깨우는 말이 있어서 곧바로 답장을 썼을 터인데, 지금 무슨 말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답장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망망하여 답장의 유무를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자질이 혼약하여 50이 되기도 전에 정신이 막히고 혼미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가련히 여겨 용서해주시고 노여워 마십시오. 비록 그러하나 나의 어두움은 자질의 병이지 몸의 병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땅히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리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병은 자세히 헤아려보니 곧 몸이 받은 절실한 병폐로 다스리지 않으면 낫지 않고, 약을 쓰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림은 심히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다만 급히 도모하는 것의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통쾌하게 보고 통쾌한 말을 들어서 제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44)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찌 〈7계(七啓)〉45)의 수단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지 않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일찍이 금강산을 노닐었는데 비로봉(毗盧峯)에 올라서 창해를 굽어보니 마치 작은 연못 같았고, 저 열도(列島)에 웅거해서 각자 주인 노릇하는 이들은 작고도 작아보였습니다. 구룡폭포를 보니 천장길이의 흰 비단에 만곡(萬斛)의 진주인 양, 멀리서 바라보니 눈을 놀라게 하였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진실로 천하의 장관이었고 평생의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최칠칠(崔七七 최북)46)의 광우(狂愚)함을 비웃었으나 또한 그 절속(絶俗)함을 찬탄하였습니다. 또 정양사(正陽寺)에 오르니 만이천봉이 모두 반쯤 얼굴을 노출하여 운하가 걷히고 펼쳐지는 가운데 출몰하였습니다. 아침저녁의 변화가 황홀하여 기이한 형상을 형용하기 어려웠는데, 우암 송시열의 "산과 구름이 함께 흰색이라, 구름인가 산인가 구분하기 어렵더니. 구름은 돌아가고 산만 우뚝하니, 일만이천 봉우리로다."라는 시가 거의 잘 비유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산을 떠나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니 하얗기는 한겨울의 눈을 뒤집어쓴 것 같았고, 뾰족하기는 연꽃이 물위에 솟은 것 같아서 깨끗하고 맑고 상쾌하여 반점의 티끌도 보이지 않아 사람의 심신(心神)을 깨끗하게 씻어줌이 무릇 인간세상의 슬픔과 번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시에 씻어 내렸습니다. 고질병이 든 자가 금강산을 맞이한다면 그 고질병이 반드시 떠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 오객(吳客)이 광릉의 파도를 가지고 비유를 설파한 것과는 다르니 그대도 그럴 뜻이 없는지요? 발과 눈이 이르는 것을 갑자기 실행하기 어렵다면 먼저 마음으로 그 청쾌한 기상을 상상하여 그대의 가슴 사이로 흘려보낸다면, 아마도 신기(神氣)가 평안해짐을 느낄 것이니 무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견해는 어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懸念頭一書, 百朋何足多也.但有問無答遐棄等語, 愧負之重, 又千金反輕也.發視舊筴, 果有殷春書.而語多警發, 想必隨卽修謝, 而今不記將何語奉答, 則亦無有乎爾否.追想茫茫, 莫辨有無, 生稟昏弱, 未五十而精魄之遁已若此, 可哀恕而勿怒也.雖然賤子之昏, 質病非身病也.只當自治, 治亦未易.細審所示美愼, 乃肌膚所受切近災者, 不治不瘳, 不藥不治, 治亦不甚難, 只在亟圖之如何爾.見快事聞快語以祛之, 亦或一道.高明之求我以吳太子故事者, 以此也.然僕安有七啓手段耶? 無已則有一焉.僕曩遊金剛山矣, 上毘盧之峰, 俯視滄海, 小若曲沼, 彼雄據列島而各伯者, 又小之小者也.觀九龍之瀑, 千丈白練, 萬斛眞珠, 遠望駭眼, 迫視眩精, 眞天下壯觀, 生平快事.笑崔七七之狂愚, 而亦歎其絶俗.登正陽之寺, 萬二千峰幷露半面, 而出沒於雲霞卷舒中.朝暮變幻, 奇形莫狀, 宋尤菴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之詩, 差可謂善喩也.離山而遠, 通看全體, 則晧晧若大冬之封雪也, 尖尖若芙蓉之出水也, 潔淨明爽, 不見半點埃氛, 令人心神灑落.凡世間諸相可悲可惱者, 幷不覺一時消下.使有沈痾者當之, 其祛體也必矣.此又皆實事, 而非如吳客廣陵濤之設諭者, 高明其無意乎.足目之到, 如難猝辦, 先須心到, 想其淸快氣像, 而流注於胸隔間, 則庶覺神氣平怡, 不爲無益矣.未知雅見以爲如何? 오(吳)객, 태자(太子)의 고사 한(漢) 나라 매승(枚乘)이 오객(吳客)과 초 태자(楚太子)의 문답 형식으로 지은 '칠발 팔수(七發八首)'에 광릉(廣陵) 곡강(曲江)에 이는 파도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文選》 7계(七啓) 문체의 하나로 위(魏) 나라 조식(曹植)이 지은 글이다. 이러한 문체로 칠발(七發), 칠격(七激) 등의 명문이 있다. 자연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하여 이를 통해 병을 치료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최칠칠(崔七七) 최북(崔北)이다. 칠칠은 최북이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파자한 것이다. 술과 유람을 매우 좋아하여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 술에 취해 "천하의 명인(名人) 최북은 마땅히 천하의 명산(名山)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일화가 전한다. 《金陵集 卷13 崔七七傳, 韓國文集叢刊 272輯》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유백원동기에게 보냄 갑신년(1944) 與柳伯源 東起○ 甲申 옛날 완주에 있었을 때는 해마다 우리 누나에게 문후를 드리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기묘년 가을에 인사드리고 돌아왔는데, 그 겨울에 막내 며느리가 크게 병이 나서 가산을 탕진하여 구원하는 바람에 이듬해 봄에는 농토가 없어 여덟 식구가 기아에 허덕였으며,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병은 더욱더 심해졌고, 시대가 소란스러워질수록 길은 더욱 막혀서 힘도 없고 경황도 없어서 문을 닫고 5, 6년 동안 쓰러져 있었으니, 우리 누나에게 문후를 드리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매번 동생과 아이들에게 "나는 비록 이와 같다지만 너희들은 어찌 가서 문후를 드리지 않는가?"라고 말했지만, 한 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종합해보면 동기(同氣)94) 간에 인륜의 정이 박한 허물은 실제로 제가 우리 누나 내외가 멀리 나를 버리고 만 리의 먼 곳으로 집을 옮긴 뒤 한 번도 편지를 보내지 않은 것을 초래했다는 점에 있으니, 다시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잘 모르겠으나, 풍토로 인하여 기후가 다른 곳에서 칠순을 바라보는 노년에 다행히 건강에 이상은 없습니까? 고향을 생각하는 그리움은 어떻게 견디십니까? 북쪽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마음에 혼백이 녹고 애가 끊는 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생각해 볼 때, 우리 형제 여섯 명은 부모를 오래도록 모시는 복은 없을지라도, 지금 나이가 든 사람은 67세이고 젊은 사람은 46세인데 모두 생존해 있고, 아울러 배우자를 잃거나 자손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형제의 복은 또한 드문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번 어머니의 기일이 있는 따뜻한 봄에 모두 모여서 제사 지내기를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똑같이 슬하에 있는 것처럼 하여 화락한 즐거움을 다하고자 하지만, 이것은 역시 궁핍한 사람이 봄이 다 가는 때에 쉽게 마련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금년 6월 6일이 되어 이 몸이 태어난 회갑의 아침에 반드시 이를 하려고 기약했는데, 우리 누나가 갑자기 이렇게 멀리 이사 갈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제는 끝났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잘 모르겠으나, 생전에 다시 서로 얼굴을 볼 기약이 있겠습니까? 이 몸은 농사를 짓지 않고 생산한 것도 없어서 몸을 거친 골짜기에 붙여 살면서 안으로는 처자식의 봉양이 없고 밖으로는 사귈 벗도 끊었습니다. 이렇게 지낸 것이 이제 몇 년이 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가지고 생각할 때 그 감정을 어찌 다시 낱낱이 말하겠습니까? 만약 끝내 버리지 않으셨다면 행여 답장이라도 주시기 바랍니다. 昔在完城日間, 年候我姊氏, 便成課例矣. 一自己卯秋拜辭而歸, 是冬而季子婦大病, 蕩產救護, 翼春而農土沒落, 八口飢餓, 加之年益衰而病益深, 時益騷而路益梗, 無力無况, 杜門自廢五六年, 闕侯我姊氏者, 是也. 每謂弟輩兒曹, 曰: "我雖如此, 汝等豈不可以往候乎?" 而一不見聽. 總言之, 同氣間薄倫, 咎實在我所以致我姊氏內外之遐棄, 移家萬里之遠, 而并無一書之及, 復誰之怨尢? 未知風土異候, 望七老年, 幸無損攝? 越鳥南柯之思, 何以堪之? 北望馳情, 魂銷而腸斷者, 一日而屢回也. 念吾同腹六人, 雖無久待父母之福, 然今老者六十七, 少者四十六, 皆得生存, 并無喪配偶無子孫者, 兄弟之福, 亦可謂罕觀矣. 每欲於先妣忌日春和之時, 齊會行祀, 若父母生時同在膝下, 而盡湛樂之歡, 是亦竆人竆春所未易辧者. 期至今年六月六日, 此身回甲生朝而必遂之, 孰謂我姊氏遽此遠移? 今焉已矣. 非惟此焉. 亦未知生前復有相靣之期否? 此身不農不產, 栖身荒谷, 內無妻子之養, 外絕賓朋之交者, 今爲數歲, 即此而可想, 其情復何枚道? 如不終棄, 或賜回音. 동기(同氣)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극명에게 답함 경진년(1940) 與楊克明 庚辰 옛날 현자는 난세를 만나면 깊이 은둔하거나 멀리 떠나서 끝내 화를 면했습니다. 예컨대 하복(夏馥)이 임려산(林慮山)에서 나무를 가옥으로 삼은 것과47) 신도반(申屠蟠)이 양탕(梁碭)지역에서 자취를 끊은 것48) 등입니다. 오늘날이 그런 시절임에도 여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다만 그대는 날이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분연히 해냈으니 어찌 그리 용감하신지요? 올 여름 풍우로 그대의 정원에 감과 밤이 크게 손상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이것조차도 한미한 선비의 먹을거리로는 사치라고 여겨서 그것을 덜고자 했는가 하여 웃어봅니다. 나 또한 덕유산과 두류산, 두 산 사이에 뜻을 둔지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한스럽게도 늙어서 이미 농사지을 힘도 없고 자손 또한 따르는 이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는지요? 한갓 간절히 그대를 부러워할 뿐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 또한 선비가 변란에 처하는 것이니 이치를 궁구하고 식견에 전진하여 몸을 완성하고 세상을 선하게 하는 유업(儒業)의 성취를 어찌 잠시라도 잊겠습니까? 바라건대 모름지기 성인의 훈계인 "즉이학문(則以學文)"에서 즉(則)자의 뜻을 체인하여 농사짓고 나무하는 여가에 부지런히 서적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리하여 날로 성실하게 공부하여 얻은 것과 의심나는 것을 풍(風)편에 보여주시어 강론상장(講論相長)의 이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古之賢者, 遭亂世, 深藏遐擧, 卒以免禍.如夏馥之林慮樹屋, 申屠蟠之粱碭絶迹.今其時也, 而尙屬晩矣.惟賢不俟終日, 奮然能之, 何其勇也? 今夏風雨, 貴園柿栗想大損, 豈天以此謂寒士食侈而欲減之耶, 奉呵奉呵, 僕亦留意德裕頭流兩山之中久矣.但恨老矣, 旣不能服田, 子孫又無可從者, 柰何柰何? 徒切健羡而已.雖然此皆士之變處, 處變則然, 而至於窮理進識, 用究成身淑世之儒業, 何可須臾忘也? 望須深體聖訓則以學文則字之意, 耕樵餘力, 勤親簡編.日有慥慥, 以所得所疑, 因風示及, 資講論相長之益如何? 하복(夏馥)……것과 하복은 후한 때 사람이다. 영제(靈帝) 때 국정의 잘못을 거침없이 말했다가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환관들의 미움을 사 체포령이 내린다. 이에 성명과 모습을 바꾸고 임려산(林慮山)에 들어가 품팔이꾼이 되어 살다가 죽었다. 《後漢書 卷67 黨錮列傳 夏馥》 신도반(申屠蟠)……끊은 것 은사인 신도반은 한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보고 양탕(梁碭) 지역에 자취를 숨기고 은둔하여 살았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여중 태일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崔汝重 泰鎰 丙寅 근래에 비로소 그대가 봄날 용동(龍洞)의 간소(刊所)에 답한 편지를 얻어 읽어보니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며, 뜻이 간곡하고 의리가 엄격하며, 문장 또한 넓고 넓어서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그대의 진취와 수립이 이와 같은 줄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날 내가 어떤 사람에게 그대를 언급하여 "뭇사람들이 바야흐로 머리를 움츠릴 때에 서검(書檢)의 화를 함께 하였고, 동문들이 서로 무관심할 때에 제일 먼저 환난에 달려와 이치에 근거해 사람을 질책하여 스승을 어긴 죄를 바로잡아 시비(是非)를 드러내었고, 바른 도(道)로써 아버지를 깨우쳐 공사(公私)의 슬픔을 극진히 하니 예제(禮制)가 밝아졌다. 그러니 근자의 선비들 중 실제 학문에 힘쓰는 것을 나는 이 사람에게서 보았다."라고 말했더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 않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개 그대의 평소 자질은 겸손하고 겸손하여 말을 몸에서 내지 못하고, 몸이 옷을 이기지 못하는 자와 같지 않았던가요? 말없이 몸소 실천하는 것이 만석군(萬石君)49)의 순수한 자질이며, 말 많은 자가 덕이 없다는 것이 공성(孔聖)의 지극한 훈계입니다. 자장(子張)의 기세당당함은 함께 인을 행하기 어렵고50), 신정(申棖)의 분노는 강함이 될 수 없다는51) 것을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대저 하늘이 사람에게 순수지선(純粹至善)의 성(性)을 부여했으니, 비록 신명에 통하고 사해를 빛나게 하는 덕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내면의 일에 불과하여 본래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기욕(氣欲)에 가려져 그 본성을 상실한 자가 많습니다. 고로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기 때문에 효자를 기리고, 군주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충신을 포상합니다. 만일 오늘날 유적(儒籍)에 이름이 들어있는 자들이 모두 의(義)를 따르고 예(禮)로 행동한다면 그대가 비록 현명하다 해도 누가 그대를 이같이 특별히 공경하겠습니까? 바라건대 그대는 더욱 힘써서 순수지선의 성분을 확충하여 대덕(大德)의 성취를 기약하고, 소성(小成)에 안주하지 말아서 오늘날의 선비 가운데 돈실한 학문을 이루어주길 바랍니다. 나는 그대와 일찍이 동사(同社)에서 교학상장의 의가 있었기에 무릇 다른 동문들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의 선을 보고 기뻐하여 나도 모르게 세세히 여기에 이르렀으니 깊이 진심을 헤아려 주리라 생각합니다. 近始得哀春間所答龍刋書, 讀之名正言順, 意懇義嚴, 文章亦恢恢然有地步, 不圖哀進就修立之如許也.日者鄙與人語及於哀曰, 書檢同禍於衆方縮首之時, 首先急難於同室越視之際, 據理責人, 正違師之罪, 是非以著, 以道喩親, 盡公私之哀, 禮制以明.近日衿紳中, 實地敦學, 吾於斯人見之矣, 聽者不以爲不然.蓋哀之素質, 非謙謙然言若不出身若不勝者乎? 益信不言躬行爲萬石君淳質, 而有言無德爲孔聖之至訓.子張之堂堂, 難與爲仁, 而申棖之悻悻, 未得爲剛也.夫天旣賦人以純粹至善之性, 雖通神光海之德, 究不過分內事, 本非異事.但爲氣欲之蔽, 而喪失其性者多矣.故以其有不愛其親者也, 而孝子旌以其有不敬其君者也, 而忠臣褒.如使今之托名儒藉者. 擧皆由之以義, 動之以禮.哀雖賢, 誰敬異之若此哉? 惟哀勉之, 充盡性分, 期就大德, 毋安小成.而作今士中敦實學也, 鄙於哀, 曾有同社相長之誼, 非比凡他同門故, 見其善而喜, 不覺縷縷至此, 想深諒實體也.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은 한 경제(漢景帝) 때의 대부(大夫)인데 공경과 근신으로 이름이 높았다. 네 명의 아들이 모두 현달하여 만석군(萬石君)으로 불리었는데, 자식들을 훈계할 때 밥상을 마주한 채 가만히 먹지 않고 있으면 자식들이 서로를 책망하며 사죄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03 萬石君列傳〉 자장(子張)…어렵고 자장은 춘추 시대 전손사(顓孫師)의 자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함께 인(仁)을 행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신정(申棖)…없다 "공자가 '나는 아직 강(剛)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자, 혹자가 '신장(申棖)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신장은 욕심으로 하는 것이니, 어찌 강일 수 있겠는가.' 하였다."라고 하였다. 《論語》 〈공야장(公冶長)〉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여중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崔汝重 癸酉 '흑치(黑薙)의 재앙'52)에 보는 것마다 마음을 상하니 말도 차마하지 못하겠습니다. 보내온 편지에서 이른바 "복장을 변하게 하는 것이 장차 제도까지 변하게 하여 오랑캐 세상으로 몰아간다."라고 하신 말씀이 진실로 밝은 견해입니다. 저들이 색깔 옷을 조선의 옛 제도라 하여 권하는 것은 진실로 우리를 거짓으로 유인하는 술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우리나라의 옛 복식이라 하여 따르는 것은 크게 생각이 밝지 못한 것입니다. 무릇 이 백의(白衣)는 고례(古禮)를 고찰해보아도 정색이 아니요, 국전(國典)을 참고해 보아도 숭상할 것이 아니어서 본래 구구하게 이것을 지켜야 할 이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시국이 바뀐 후 저들에게 심복하지 않겠다는 특별한 색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자(箕子)도 백색을 숭상하여 수천 년의 유풍이 되었으니 족히 천하만국에 떳떳함이 되고 훗날 양기를 회복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관계가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편지에서 "구한말의 유족(遺族)이 희미한 잔영으로 남고 오직 백의(白衣) 두 글자가 있는데 저들은 통쾌하게 아울러 말살하려고 한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또한 나의 말이기도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질책할 것이 없고 우리 유자(儒者)된 자들은 죽음이 있을 뿐 어찌 차마 따르겠습니까? 오언절구 시의 비분한 묘사와 굳센 맹서는 세 번 반복하여 읽고 난 후에도 감격이 그치지 않아 나도 모르게 문득 보내온 시운을 따라 나의 뜻을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같은 뜻이기에 시가 이루어져도 다른 언사가 없으니 어찌 꼭 보위(步爲)할 것입니까? 비유컨대 새장에 갇힌 새가 서로 슬프게 호소할 따름이니 도리어 맥없이 웃습니다. 근자에 우리들 중 시에 뛰어난 자는 그대만한 이가 없습니다. 묘사가 정밀하고 결속이 견고하여 환히 빛나고 엄숙하게 울려서, 나는 실로 눈을 부릅뜨고 뒤쫓을 뿐이니 지적해 달라는 부탁은 논할 것이 못됩니다. 다만 시(詩)의 도(道)는 귀결점이 완순자적(婉順自適)에 있습니다. 그대는 현재 시의 용공이 비록 이와 같더라도 구경일착(究竟一着)에 종사하는 것을 생각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각초절(鑱刻峭絶)한 뜻은 넘치고 우유부진(優遊不盡)한 흥취가 적을까 두렵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시는 작은 도(道)이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지 가운데 "처음 뜻을 저버릴까 근심한다."라는 공부초지(恐負初志) 4글자로 이는 사람의 심목(心目)을 깨웁니다. 생각건대 근자의 동지들 중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사람으로 가히 믿을만한 사람은 희숙(希淑), 자유(子由), 그대, 그리고 여안(汝安)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안은 목숨을 부지하는 데도 힘이 넉넉지 않으니 어느 겨를에 학업을 다스리겠으며, 자유 또한 빈궁하여 진덕수업에 방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오직 희숙과 그대만이 다행히 이런 근심을 면하여 학업에 힘쓸 수 있는데, 희숙은 바야흐로 순풍에 돛단 듯 그 나아감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공부초지(恐負初志) 4글자를 그대에게서 얻어 이 학문이 사망하는 날에 도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욱 견고함을 우러를 수 있으니 어떤 기쁨이 이와 같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뜻을 저버릴까 근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거니와 진실로 저버릴까 근심한다면 처자의 허물이 어찌 그대를 구속시킬 수 있겠습니까? 구속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 덕에 나아가고 뜻을 지키는 터가 될 것입니다. 또한 "몸이 묶여 자주 사우(師友)를 따르지 못한다."라는 것으로 근심으로 삼는다면 옛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힘을 써야지 타인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자주 만나고 덜 만나는 일을 급급해하겠습니까? 대개 공(恐) 한 글자 가운데 무한한 공부가 들어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성인의 우근척려(憂勤惕慮)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공부하는 절차는 그대 또한 마땅히 알고 있을 터이니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마음을 모으고 뜻을 더하는 여하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黑薙之禍, 觸目傷心, 言之不忍.來喩所謂變黑將爲變制, 而驅之於左袵者, 眞明見也.彼以色衣謂朝鮮舊制而勸之者, 固詐誘我人之術也.我人之亦以爲故國服用而從之者, 何見義之不明也.蓋此白衣, 考之古禮而非定色.參之國典而非所尙, 本無區區守此之理.但在今日, 則爲換局後不心服之特色.而亦箕聖尙白, 數千年之遺風, 足以有辭於天下萬國.而爲他日陽復之基.是其關係, 豈不重且大歟? 來喩所謂舊韓遺族, 迷痕殘影, 惟有白衣二字, 而彼快於并滅者, 亦吾言也.餘人可無責, 爲吾儒者, 有死而已, 何忍於從之也? 五絶詩悲憤之寫, 剛毅之誓, 三復以還, 令人感激無已, 不覺輒步來韻以示志.然要之彼此一志, 詩成而無他詞, 亦何須步爲? 誓如籠鳥之相呼以訴悲爾, 還呵還呵, 第近日吾黨中工詩者, 無如賢者, 模寫精切, 結束緊固, 燁然而光, 鏘然而鳴, 吾實瞠乎後矣, 斤正非所論.但詩之道, 歸在婉順自適.今賢者見在用工, 雖不得不如此, 然有事於究竟一着, 不可不念.不爾恐鑱刻峭絶之意勝, 而少優遊不盡之趣耳.雖然, 詩是小道, 亦何足說? 最是書中恐負初志四字, 醒人心目, 念此近同志中.年下余而可恃者, 非希淑子由與賢者及汝安乎? 而安弟救死不贍, 奚暇治業, 由亦貧窮, 恐妨進修.惟希與賢者, 幸免此憂, 可以有爲, 希方順風張帆, 其進難量.而今又得此四字之喩於賢者, 可仰守道之心彌堅於斯文喪亡之日, 何喜如之? 雖然, 吾則以爲如不恐負則己, 苟能恐負, 妻孥之累, 烏得以覊絆之? 不惟不得以覊絆, 正所以爲進德酬志之地也.如以絆身而未得頻從師友爲憂, 則古人又有須用己力難仰他人之語.亦何必切切於頻踈之間也? 蓋恐之一字中, 有無限工夫在.究而論之, 聖人之憂勤惕勵, 亦不過此.其間工程節度, 在賢者亦當爲已見昭陵.玆不縷陳, 惟在會心加意之如何爾. 흑치(黑薙)의 재앙 서양문물이 밀려들어오면서 강압적으로 시행된 단발령과 검은 서양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사실을 의미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최여중에게 드림 을해년(1935) 與崔汝重 乙亥 무릇 사우(祠宇)는 서원이라 통칭하는데, 서원은 본디 독서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고, 독서는 의리를 강론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서원은 반드시 강학하는 곳이 있고, 그 강의하는 것은 선현의 도(道)입니다. 이제 무함(誣陷)하여 인가를 내고 원고를 고쳐서 선사의 도의(道義)를 말살하려는 족속들과 더불어 사우의 일을 함께 한다면, 서원의 강당에서 독서하고 강의하는 것이 무명무실(無名無實)할 뿐 아니라 도리어 선사(先師) 도의(道義)의 명과 실을 이 서원 강당에서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니, 나는 그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여러 어른들이 저 무리들을 마주하여 선사의 진영이 엄숙하게 굽어보는 아래에서 무함하여 인가한 것과 원고 고친 것을 바로잡고 성토한다면 저들이 스스로 그 죄를 알아서 창을 되돌리고 음성을 배척한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장차 마간지론(馬肝之論)54)에 부쳐서 성리설이나 경전의 뜻을 두루 뭉실하게 논하면서 이것을 독서 강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무위할 것입니다. 나는 또 여러 어른들이 애초에 저들과 변론할 뜻이 없음을 알았고, 도리어 타인들이 무함하여 인가를 내고 원고를 고쳤다는 설을 끄집어내었으니, 화사(華祠)의 여러분들이 사우(祠宇)의 일에 방해를 초래할까 두려워했다고 여깁니다. 그런즉 그들의 마음가짐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夫祠宇通稱書院, 書院本以讀書而得名, 讀書所以講義.故院必有講堂, 所講者乃先賢之道也.今與誣認改稿, 蔑先師道義者之血黨, 與同祠事, 則所謂讀書講義于院于堂者, 非惟無名無實, 反壞了先師道義之名實于院于堂, 吾不知其宅心如何也.今諸丈若對彼輩, 辨誣認討改稿於先師眞像儼臨之下, 彼自知其罪, 而倒戈斥陰則幸矣.如其不然, 則其將以是付之馬肝之論, 與之泛論性理經義而曰, 此是讀書講義, 則已極無謂.吾則以爲又知諸丈之初無意於與彼辯論, 而反恐他人惹出誣改之說, 而華祠僉席致妨祠事也, 然則其所宅心, 不難知也. 마간지론(馬肝之論) 말의 간(肝)은 원래 독이 있어서 먹지 못한다. 고기를 먹을 때에 말의 간을 먹지 않더라도 맛을 모르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이다. 즉 성인이 하는 일은 범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선 제쳐 두고 논하지 않더라도 의리를 모르는 것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晦庵集》 〈卷57 答陳安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권3 後滄先生文集卷之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서 書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지산 김장복한 에게 올림 경신년(1920) 上志山金丈(福漢) ○庚申 제가 일찍이 들으니, 선비 중에 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의 대부 가운데 현명한 이를 섬긴다1)고 합니다. 사람은 본래 현명한 사람과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그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이 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고, 현명함에도 분수(分數)가 있으니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었다고는 기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부의 신분이면서 현명함이 없는 자라면 참으로 어찌할 수 없거니와, 혹시라도 현명하기는 하지만 그 현명함이 완벽히 구비되지 못한 자가 있다면 마땅히 그 나라에서 섬길만한 사람을 택하여 섬겨야 할 뿐입니다. 만일 현명한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우뚝히 큰 절개를 지니고 학문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그 현명함은 어찌 한 나라에서만 찾기 어려울 뿐이겠습니까? 거의 한 시대에 짝할 자가 드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비 가운데 이 나라에 살면서 이와 같은 현명한 이를 모시게 된다면 어찌 하나의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위아래가 전도되고 멸망한 나라2)의 산천의 경관이 달라진 이후로 중화의 문화권에서 태어났어도 오랑캐 행실을 하고, 벼슬을 하면서도 효경(梟獍)3)같이 하는 자는 참으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간혹 고가(故家)의 세족으로 옛 음덕을 누리면서 명망을 지닌 자도 끝이 선한 자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천리에서 불어오면 풀들이 이리저리 쓰러지고, 장강이 백 번 굽이치면 파도는 출렁출렁 뒤로 물러가건만, 오직 문하(門下)께서 나라를 위하는 일념이 단사(丹沙)처럼 찬란하여, 굳은 절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어 백 번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임천(林泉)에서 도를 강론하되 머리가 셀수록 더욱 돈독히 하니, 우뚝 유문(儒門)의 영광(靈光)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이른바 절개를 지니고 학문을 갖추고 있어 한 세대의 현자가 되었다고 한 경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라 안의 지식인들이 누군들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동량처럼 믿으면서 현자를 섬기는데 마땅한 분을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심지어 저처럼 어리석은 사람조차도 이에 의지하여 타고난 성품이 민멸(泯滅)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자나 깨나 어르신을 우러러 사모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근심에 얽매이고 압박당하여 멀리 노닐려던 큰 뜻이 사그라들어 거의 다 사라진 채 목을 빼고 서쪽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길게 탄식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일전에 찾아뵙고 통자(通刺)하였으니 참으로 숙원을 이룬 것이고, 넉넉히 포용해주심을 입고 후하게 계발을 받은 것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몹시 감격스러웠습니다. '무실(務實)'4)이란 두 글자를 내려주신 것은 참으로 제 자신의 증상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므로 더욱 가슴에 새기고 싫증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는 삼가 마음속으로 감탄한 바가 있으니, 명분만 좇고 실질을 잊는 것이 선비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이런 현상이 오늘처럼 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심(心)과 성(性)에 대하여 같다고도 하고 다르다고도 하면서 능사(能事)가 이미 끝났다고 말하지만, 존심양성(存心養性)5)에 대해서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으로 쏟아내는 웅변은 황하물이 터진 것과 같고, 붓으로 써내는 씩씩한 글은 찬란하게 문장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평소의 말과 행동6)을 돌아보면 대부분 비난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이윤(伊尹)ㆍ주공(周公)의 사업과 관중(管仲)ㆍ제갈량(諸葛亮)의 정치에 대하여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듯, 땅에 그릴 듯이 훤히 알아 실책이 없는 듯 하지만 작은 일에 대한 조처를 살펴보면 맞는 것이 없습니다. 속수(束脩)7)의 예를 행하고 명첩을 지니며, 스승과 벗을 좇을 때는 예절을 법도에 맞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형제들 사이에 예의를 베풀 때에는 크게 잘못합니다. 이것은 모두 근래 선비들의 폐단에 대한 대략인데 문하께서 깊이 걱정하여 바로잡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스스로 우둔한 저를 돌아볼 때, 세상 유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부족하고, 근심할 바의 폐단은 본래부터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재주는 없고 병폐만 있는 경우이니, 천하의 버릴 물건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또한 어찌 자포자기하고서 현명한 가르침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더욱더 저를 엄격히 가르쳐 마침내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竊嘗聞士之欲爲仁者, 必事是邦大夫之賢者. 夫人固有賢否, 未可必其大夫之有賢, 賢固有分數, 未可必其賢之具備. 使其大夫而無賢者也, 則固無如之何矣, 其或賢而有不具備者, 則只當於是邦中擇其可事者, 事之已矣. 如有賢大夫於此, 卓乎其有大節, 而兼之以學問, 其爲賢也, 豈直一邦而已? 殆一世而寡儔也. 然則士之居是邦而得是賢, 豈非一大幸福也耶?一自冠屨易位, 風泉異觀, 華產而夷行, 冠紳而梟獍者, 固不足道, 間有故家世族食舊而佩望者, 亦且鮮終. 疾風千里, 靡靡草偃; 長江百折, 滔滔波頹, 惟門下爲國一念, 炳然如丹, 一節終始, 九死靡悔, 講道林樊, 皓首彌篤, 巋然作儒門靈光. 向所謂有節有學而爲一代之賢者, 即其人焉. 凡在域中士類, 孰不山仰樑恃, 幸其事賢之得所也?至如澤述之蠢蒙者, 賴有不泯彝性, 是以寤寐景慕, 積有年所. 而貧與憂謀, 纏之壓之, 遠遊壯心, 澌滅殆盡, 引領西望, 時發長喟. 日前獻刺, 寔償夙願. 而優蒙容納, 厚受開發, 思出不圖, 固已感沐. 至若務實二字之贐, 實係此身對證之良劑. 尤當佩服無斁. 因此而竊有所感歎于心者, 蓋徇名而忘實, 士之通患, 而未有若近日之甚也.曰心曰性, 是同是異, 自謂能事已畢. 而以言乎其存養則蔑如也, 口頭雄辯, 沛然河決; 筆下健辭, 爛然成章. 顧其庸言庸行, 則多可訾也. 伊周事業, 管葛政治, 指掌畫地, 若無遺筭, 觀其措諸微事․細務, 則郎當也. 束脩齎刺, 從師追友, 禮序秩然, 歸而施措唱喏塤箎之間則大謬也. 此皆挽近士弊之大畧. 而門下之所深憂而思矯之也.自顧鈍拙, 幷乏世儒之所炫耀者, 其所患之弊則固自在也. 是所謂無是才而有是病, 天下之棄材也. 雖然, 亦安敢自處暴棄而不盡心於明訓? 惟乞益加箝錘, 有以卒成之也. 선비……섬긴다 자공이 인(仁)을 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공인(工人)이 자신의 일을 잘 하려면 반드서 먼저 그 기구(器具)부터 예리하게 수리하니,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大夫) 중에 어진 이를 섬기고 선비 중에 인(仁)한 이를 벗해야 한다〔子貢問為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멸망한 나라 원문의 '風泉'은 《시경(詩經)》의 편명인 〈비풍(匪風)〉과 〈하천(下泉)〉을 지칭하는 것으로, 모두 쇠망하는 나라를 서글퍼하는 감회를 읊은 시이므로 쇠망하는 나라를 걱정하거나 멸망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효경(梟獍) 부모를 잡아먹는 새와 짐승을 말한다. 효(梟)는 흉악한 새로,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잡아먹고, 경(獍)은 흉악한 짐승으로 태어나자마자 아비를 잡아먹는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무실(務實) 실제적인 일에 힘쓴다는 의미이다. 존심양성(存心養性) 맹자가 말하기를 "그 마음을 다 하는 자는 그 성을 알 수 있고,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즉, 인간이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양심(良心)을 잃지 말고 그대로 간직하여, 도덕 본성을 키워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 평소의 말과 행동[庸言庸行] 〈문언전(文言傳)〉에서 "구이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으로 딱 알맞은 자이다. 평상시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상시의 행동을 삼가며, 간사함을 막고 정성을 보존하여 세상을 좋게 만들고도 자랑하지 않으니, 덕이 넓어서 교화한다. 《주역(周易)》에서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이는 임금의 덕이다.'〔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而化.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 君德也〕" 용언(庸言)과 용행(庸行)은 평상시의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주역(周易)》 〈건괘·문언전(乾卦·文言傳)〉 속수(束修) 공자가 "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나는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自行束脩之以上, 吾未嘗無誨焉〕"라고 하였다.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지산 김장에게 올림 경신년(1920) 上志山金丈 庚申 저는 호남의 비루한 유생입니다. 한 번 만나주시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도 이미 용문(龍門)에 오른 것처럼 영광스러운데 다시 사랑의 편지까지 내려주셨으니, 이는 상례를 벗어난 특별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부러진 재목이 큰 장인의 먹줄을 따르고 완고한 철이 훌륭한 대장장이의 용광로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저에게는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말거리를 삼는 자들이 저를 지나치게 후하게 대접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문하를 의심하게 하여 누를 끼쳤으니, 저 또한 죄가 있습니다.옛날에 공자와 맹자가 사람을 가르칠 때 무언지교(無言之教)8), 불설지회(不屑之誨)9)와 같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 이외에는 혹시라도 말을 그만두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른바 간곡하게 잘 타이르면서 이끈다는 것과 의문 나는 점을 서로 문답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할 뿐입니다. 삼가 근세에 대인(大人)과 큰 덕을 지닌 사람을 살펴보니, 혹은 엄숙하게 우뚝 서있기도 하고 혹은 깊은 생각으로 묵좌하기도 하니, 방문하여 무엇을 청하려는 자가 머뭇거리며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의문 나는 점이 있어 질문하려는 자가 말을 머뭇거리다가 스스로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평소에 발원(發願)한, 지팡이 짚고 천리길을 나서려던 뜻이 자리 앞에서 잠깐 사이에 시들시들 꺾이기도 하니, 아마도 그들을 진작시키고 고무시키는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문하께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들과 다릅니다. 온화한 말투는 마치 지초와 난초가 향기를 풍기는 것과 같고, 넘치는 화기(和氣)는 순한 막걸리에 취한 듯합니다. 그리고 충성스런 지조와 굳센 절개는 어떻습니까. 서리와 눈 속에서도 꿋꿋한 대나무ㆍ잣나무와 같은 지조를 지닌데다가 또 봄날의 따뜻한 햇볕과 같은 덕으로 보완하셨으니, 두터운 인(仁)과 애(愛)가 이처럼 겸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국내의 선비들이 기꺼이 문하께 달려와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성심으로 복종하는 이유이니, 제가 어리석더라도 역시 인의를 채우게 되어 지난날 인사드리고 물러나왔던 때에 갑자기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움은 참으로 세도(世道)와 관계가 되니 저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보내주신 편지에서 맹자의 큰 공은 성선(性善)에 있고 심선(心善)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스승께 여쭈었을 때 마침 바삐 물러나오느라 끝까지 논의하여 결정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만, 계발을 받고 대략 스승의 뜻을 짐작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먼저 제 뜻을 펴서 아뢰고 가르침을 구합니다.맹자의 큰 공이 성선에 있다고 하신 것은 실로 천고에 이미 정해진 공론이니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성선의 의론이 큰 공인 줄만 알고 심선의 의론 또한 큰 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므로, 마침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합니다. 맹자의 심선 의론이 어찌 〈부세자제다뢰(富歲子弟多賴)〉장에서의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10)는 말에 있을 뿐이겠습니까. 천하 사람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얻어서 리의(理義)를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어찌 사람의 마음이 모두 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왜 심선의 의론에 공이 있다고 말했겠습니까? 사람이 물욕에 이끌려 용렬하고 악한 데로 돌아가려는 까닭은 자신의 심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사람들은 성인 보기를 마치 연못과 하늘의 차이와 같아 스스로 그 경지에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일반사람과 성인은 그 성이 원래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만약 어떤 사람이 '너의 성은 요순처럼 선하다'고 알려준다면 어찌 기뻐 날뛰면서 그 욕심을 다스려 선을 회복하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일반사람들은 성인을 보면, 또 성이 비록 (성인들처럼) 선하다할지라도 성은 능동적으로 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심에 있기 때문에 성인과 보통사람의 마음은 본래부터 같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성인에게 미치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 마음의 선도 성인과 같다'고 알려주면 어찌 크게 기뻐 날뛰면서 더욱 저 악을 다스려 선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일러 맹자의 공이 또한 심선을 논함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비록 그러할지라도 성선과 심선은 둘로 나누어 구별할 할 수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심이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선하게 되는 까닭은 지선한 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이 만약 이 성에 근원하지 않는다면 어디로부터 선을 얻겠습니까? 이것으로써 성선은 심선의 근본이고, 심선은 성선이 증험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선과 심선은 또 나란히 하여 똑같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심이 이 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근본은 선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은 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말단의 경우 간혹 악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심이 본래 선하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심이 순선(純善)하다고 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맹자 또한 이미 '리와 의는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으니, 마음이 곧바로 이 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이 말한 '성은 순선하고 마음은 본래 선하다'는 것은 리(理)와 기(氣)의 구분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니, 스승의 본뜻은 삼가 아마 이와 같을 뿐일 것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澤述, 湖南鄙生也. 一被容接, 已榮登龍, 重之以耑垂寵牘, 出於拔例殊愛, 曲材之從大匠繩, 頑鐵之入良冶爐, 固澤述之幸也. 但因此而俾談者疑其有失厚之, 累於門下, 則澤述亦有罪焉.昔孔孟之教人, 自無言之教․不屑之誨, 有爲而發以外, 未嘗見言語之或舍也. 所謂諄諄善誘․難疑答問者是已. 窃觀近世大人長德, 或嚴嚴凝立, 或淵淵黙坐, 進請者趑趄而不敢, 質疑者囁嚅而自止, 使其平生發願千里杖策之志, 薾然沮喪於席間片餉之頃, 恐非所以振起皷舞之道也.至門下之接人則異於是. 藹然之辭若芝蘭之其香, 盎然之和如醇醪之是醉, 何其忠烈勁節? 霜竹雪柏之中, 又濟之以陽春光輝之德, 厚仁愛若是兼且備也. 此所以邦內士類樂趍門墙, 心悅而誠服, 澤述之蒙騃, 亦知飽仁充義, 而不欲遽離於曩日拜退之日也. 其爲感幸, 實關世道, 非直爲己私也.下喻鄒聖大功在於性善而不在於心善. 向稟於師席, 而時值忽忽辭退, 未承究論定案. 但於竅啟, 有所畧揣師意者, 故敢先布白求教.夫孟子大功之在性善, 固千古已定之公言也, 有不待言而知者. 但以人皆徒知性善之論之爲大功 而不知心善之論之亦爲大功. 故正欲表而出之, 使人知之也. 孟子心善之論, 惡乎在〈富歲子弟多賴〉章所謂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者是已? 天下之心, 既得與聖人之心無不同悅理義, 則此豈非人心皆善之謂乎? 胡爲而云, 心善之論有功? 夫人之所以甘徇物欲而歸於庸惡者, 由不知己心性之善故也. 凡人之視聖人, 若淵之於天, 自以爲不可及, 而曰'凡之於聖, 其性固自不同.' 如有告之者曰'爾性之善, 與堯舜同,' 豈不歡欣踊躍, 思欲制其欲, 而復其善乎? 凡之視聖, 又以爲性雖善矣, 性則無爲, 有爲之能, 都在於心, 而聖凡之心, 應自不同, 我何以及聖人乎? 如又有告之者曰'爾心之善, 亦與聖人同,' 豈不大歡欣大踊躍, 尢欲治其惡, 而反其善乎? 夫是之謂孟子之功, 亦在於心善之論也.雖然性善心善, 不可分而二之也, 何也? 心雖曰善, 其所以善者, 爲其具至善之性也. 心若不原於此性, 何自而有善乎? 是知性善也者, 心善之所本也; 心善也者, 性善之所驗也. 性善心善, 又不可比而同之也, 何也? 心具此性也, 故其本則善, 有爲而屬氣也, 故末或有惡. 是故謂心爲本善則可也, 謂心爲純善則大害也. 孟子亦既曰, 理義悅心, 則心之非直是理, 斷可知已. 要之老洲所謂'性純善而心本善', 理與氣之分, 一語約而盡之矣. 師席本意, 窃恐如是而已. 未知尊意以爲如何? 무언지교(無言之教) 공자가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予欲無言〕"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를 전하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가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는 운행하고 만물은 자라난다.〔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라고 대답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불설지회(不屑之誨) 상대방을 탐탁지 않게 여겨 멀리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경각(警覺)시키는 가르침을 말한다. 맹자(孟子)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도 방도가 많으니, 내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가르침도 이 또한 가르침일 뿐이다〔敎亦多術矣, 予不屑之敎誨也者, 是亦敎誨而已矣〕"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 성인은……알았다 맹자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리이고 의이다.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 때문에 리와 의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맛있는 고기 음식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心之所同然者, 何也? 謂理也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외종형 김만당희현에게 답함 갑신년(1944) 答外從兄金晚棠熺鉉 ○甲申 이전 편지에 답장을 올리지 못한 무례함에 대해서는 책망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책망하지 않으시고 더구나 다시 은혜로운 편지를 매우 은근하고 돈독하게 내려주셨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깊이 사랑하시니, 새해의 즐거움 중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생각해보니 본가에는 친종형이 없고 이성(異姓)으로 종형이 몇 명 계시지만, 오로지 형님만이 80세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돈독하게 사랑하심이 더욱 깊으니 늘그막에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제 나이가 회갑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말씀을 듣자 마음이 처량하여 말씀하신 까닭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부친과 조부 이상 4대는 장수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형님께서 아시는 바이고, 5세조는 66세까지 사셨고, 9세조까지는 족보에 생졸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만약 장수하셨다면 이치상 어찌 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10세조는 장수하여 70세까지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에서 회갑을 지낸 사람은 10세조 이후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니, 어찌 애통하고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형님이 저를 축하하는 것이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차라리 말하지 않을지언정 무슨 말로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 보답하겠습니까. 다만 기억하건대 선군께서 임종 시에 저의 손을 잡고 "너의 증조는 32세까지 살았고, 너의 조부는 43세까지 살았으며, 나는 지금 51세이니 이미 차례로 10년씩 더해졌다. 이를 가지고 이후를 추론해본다면 너는 마땅히 60세를 넘길 것이고, 너의 아들은 70세를 넘길 것이며, 너의 손자는 80세를 넘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몹시 비통하여 읊조리고자 해도 차마 읊조릴 수 없고, 들려주려 해도 차마 들려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나이가 이미 증험되었으니 자손들도 역시 장차 차례로 이를 따를 것입니다. 형님께서 외가가 침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 혹시라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생일이 아직 멀었는데 마침 형님의 편지를 받으니 심기가 촉발되어 부모님 봉양을 다하지 못한 아픔을 절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 내일 아침은 선군의 휘신(諱辰)13)입니다. 시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을 돌이켜보니 어떻게 마음을 가눌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묵묵히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前書闕覆, 無禮可誅, 尚矣無誅, 矧復惠教, 殷切周摯甚矣. 兄丈愛我之深也, 新年喜樂, 無過於此. 且念本無親從, 有異姓從若而人, 而惟兄丈親愛, 八耋愈篤, 勝於親從, 暮年慰幸, 亦何加此?至於賤年回甲之云, 聞之戚戚, 莫省所喻. 父祖以上四世無壽, 兄丈所知, 五世祖六十六世, 至九世譜無生卒, 如得其壽, 理豈不錄? 惟十世祖壽至七十, 然則吾家囬甲, 十世後初有, 豈不痛且怪焉? 今兄丈所以祝我者, 無乃反爲病我也耶? 念到于此, 寧欲無言, 將何辭以答見愛也? 但記先君臨終, 執不肖手有言曰 : "汝曾祖壽三十二, 汝祖四十三, 吾今五十一, 既遞加十年矣. 推此以往 汝當逾六十, 汝子逾七十, 汝孫逾八十." 此言絕悲, 誦不忍誦, 聞不忍聞. 然今賤年已見驗, 則子孫亦將次第準此, 而兄丈之希望外家不替者, 其或在斯歟?弧日尚遠, 適奉尊書, 觸發心機, 匪莪之痛, 自不能住. 且明晨即先君諱辰, 感時撫躳, 何以爲心? 茲不覺罄情至此. 伏想有以默會而憐之也. 휘신(諱辰) 기일(忌日)이다. 《능엄경(楞嚴經)》에서 나온 말인데 본래는 재일(齋日)이란 뜻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강양오신윤에게 보냄 신사년(1941) 與姜良五 信倫 ○辛巳 일전에 저는 존형의 동생이 편지로 물은 것에 대하여 답장을 보냈습니다. 지금 《유현연원록(儒賢淵源錄)》을 발간했는데, (그곳에) 기재된 존형의 친척 중 모씨는 존형이 은혜를 입은 죽헌공(竹軒公)이라는 것을 저의 아들에게 들어 알았습니다. 좀 더 일찍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는 타당하지 못한 점이 있는 사실을 편지로 보낸 것을 한스러워했습니다. 마음에 매우 미안합니다만,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존형의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존형의 형제가 끝내 도의로 판단하여 별일이 없게 되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우리 고조는 단지 평생토록 집안에서 의를 실천하셨기 때문에 일찍이 같은 시대의 유문(儒門)에게 문인이라 일컬어진 적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온 고을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존형의 집안과 왕래한 일은 마땅히 고조가 강씨와 재혼한 뒤라야 합니다. 죽헌공이 정조 기미년에 돌아가셨다 들었으니, 재혼한 때는 10여 년 뒤에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고조는 정조 계묘생이니 죽헌공이 죽었을 때는 17세였으므로 그 문하에 출입한 때가 재혼한 후에 시작되지 않고 반드시 일찍 아이 때부터라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따져보면 죽헌공의 문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사실이 아닌데 억지로 문인이라고 명명한다면 거짓을 저지르게 되니, 선조를 예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요즘 허위의 풍조가 성행하여 이를 말하며 통탄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설사 금지시킬 수는 없을망정 차마 그것을 돕겠는가?" 이것은 존형께서, 존형의 동생에게 준 저의 편지를 보고 저의 아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즉시 발췌하여 개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존형이 이미 이와 같은데 동생이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오히려 억지로 핑계꺼리를 만들어 "동생의 병이 회복되길 기다렸다가 발간소로 보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미 책을 만들었다면 편리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사적인 이해와 편리로 인하여 통쾌하게 의를 행하지 못함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늙었습니다. 오직 정대(正大)하게 마음을 세우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행하여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서 지하에 계시는 선성(先聖)과 선조(先祖)에게 돌아가 인사드리는 것을 책무로 삼아야 할 뿐이니, 어찌 터럭만큼의 사적인 뜻을 그 사이에 용납하겠습니까? 일이 중대하니 바라건대 반드시 존형이 당일로 늙은 몸을 부축하여 직접 가서 분명히 올바르게 바로잡은 이후에 답장해주셔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손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日前鄙與令弟書中所問. 今刊《儒賢淵源錄》所載貴族中某位, 聞諸家兒, 知其爲尊兄所蒙祖竹軒公, 恨不早知其然, 以致書不妥當. 心甚未安, 猶以事不在他, 而在兄家, 諒兄伯仲終以道義裁定, 而至於無事爲幸也. 盖鄙高祖平生, 只是居家行義, 未嘗稱門人於并世儒門, 既一鄉之所共知. 至與尊門往來, 則宜在再卺姜氏之後. 而聞竹軒公沒在正廟已未, 則再卺之日在十餘年後矣. 且鄙高祖正廟癸卯生, 而竹軒沒時, 爲十七歲, 則難信出入尊門, 不始在卺後, 而必早自成童時矣. 以此以彼, 竹軒門人, 可知非實, 非實而強名之, 則其不涉於虛僞, 而事先不以禮乎. 近日虛僞風盛, 言之痛歎, 吾儕縱不能禁, 忍助之乎? 此尊兄所以見鄙與令弟書, 對家兒言. 然則即爲拔出改正爲可者也. 兄既如此, 弟復何言? 但猶有靳托底意, 曰: "待弟病復常後送刊所." 曰若已結冊, 則難便. 是不免利害便否之私, 而行義之未快也. 吾儕今老矣. 惟以立心正大行事光明, 仰不愧天俯不怍人, 歸拜先聖先祖於地下爲務而已, 豈容一毫私意於其間哉? 事係重大, 望須尊兄即日扶老親往, 明白歸正後, 回示之, 千萬拱俟.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임정로 종원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林貞老 鍾元 乙丑 편지를 받고 탁월한 의리와 빛나는 문장으로 나처럼 음성인의 간담을 도끼로 깨트리고자 하는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대의 의리는 이미 우러러보았지만 문장이 이렇게 빛나는 것은 오늘 이후 처음 보았습니다. 예전에 우리 정로(貞老)를 깊이 알지 못했던 일이 부끄럽습니다. 이 의리와 문장을 확충시켜 나간다면 우레처럼 날카롭고 바람처럼 빠르게 앞길로 나아가 산악처럼 우뚝하고 햇살처럼 환한 목표를 향해 사특함을 변별하고 정도(正道)를 지켜서 성인을 이어 태평시대를 열 사람이 바로 그대일세. 그런데도 무엇을 돌아보며 다른 것을 구하시는가? 선사(先師)의 도를 밝히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세우는 것은 나 자신부터 주장하는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을 의지하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은 인품이 낮고 학문이 얕아 족히 경중이 될 수 없음에도 갑자기 사문의 망극한 변을 만나 음기가 홀로 높고 여섯 양기가 막혀있는데, 세상에 확연히 양묵(楊墨)을 물리쳤던 맹자 같은 사람이 없어서, 불초한 내가 나서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여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힘을 다해 분별하여 성토하다가 큰 화를 입게 되었는데 후회는 없습니다. 그대가 편지에서 "의를 밝히고 세상을 선하게 했다."라는 말씀은 어찌 감히 그렇다고 하겠습니까만, 스승을 잊고 적에게 아부했다는 것만큼은 두려워하고 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또 실질 없는 명성과 공(功)이 없는 포상을 장황하게 선양하여 심지어는 "귀의하여 의지하고 우러러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선생님께 아부하는 말이 아닙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아마도 세풍에 구속되지 않아서 끝내 모른 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겠는지요? 아니면 윤리 강상이 끊어지고 무너져서 스승을 무함(誣陷)하고 도적에게 붙은 자들이 도도하게 횡행하는데 여전히 몇 사람이 그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 세도의 다행이요, 뜻을 숭상하는 동지라 여겨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중에 부지불식간에 나에게 경도된 것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그대의 정(情) 또한 슬프다 할 수 있겠습니다. 보낸 편지 가운데 지나치게 칭송하고 지나치게 겸손한 말은 나의 뜻에 마땅치 않습니다. 오직 옛사람에게 스스로 기약할만하지 못하지만 차마 세속의 흐름에 자포자기 못한다는 그 절실함이 실로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뚜렷이 내 귀에 들어와 처연하게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내가 평일에 기대했던 것과 서로 부합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 속(俗)이라는 한 글자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속이 무엇인가요? 무릇 도의(道義)를 헤아리지 않고 시절을 따라 스스로 편한 것이 곧 그것입니다. 오직 스스로 편한 것이 그 소재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들고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도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천만 악과 사특함이 모두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요사이 음성 오진영 일파의 무함(誣陷)질과 패악이 세상의 재앙이 된 것은 결국 스스로 편함을 헤아린 것도 아니면서 크게 제멋대로 한 것이니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진실로 마음으로 세속의 생각을 끊고 몸으로 세속의 습속을 끊는다면 말과 행동이 닦아져 시절에 따르지 않고 옛것을 본받으며, 스스로 편하지 않고 옛것을 쫓아 오로지 도의로 나아갈 수 있으니, 또한 어찌 고인(古人)을 기약할 수 없겠습니까? 이것이 나와 그대가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니 원컨대 서로 힘써서 일생을 마칩시다. 그대가 편지에서 말한 "상화(相火)가 병의 빌미가 되었다."56)라는 것은 아마도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속이 답답해 그렇게 된 듯합니다. 그대처럼 견해가 밝은 사람이 그러한 병이 있을 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저 청년시절에 씩씩하게 도모할 것은 마음껏 유람하고 널리 배우며 천하의 좋은 인물들을 두루 사귀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문을 넓히고 천하의 좋은 산수를 마음껏 보면서 문장을 계발시키는 것이 어찌 지극한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사람 사는 일에는 달고 쓰고 권면하거나 나태한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옛사람이 몸소 농사짓거나 품팔이하면서도 경전을 놓지 않은 자가 있었고,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서도 학업을 성취한 자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학동을 가르치는 일은 구속되는 일이긴 하지만 밝은 창 앞에 편안히 앉아 날마다 서책을 가까이하는 일이니, 농사짓고 품팔이하며 여러 해 병을 앓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어찌 여력이 없겠습니까? 비록 자신보다 나은 이는 없다 할지라도 가르치면서 학업의 반은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고뇌하고 마음을 태우면서 상화가 빌미가 되는 데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소강절(邵康節 소옹)선생은 "분수에 편안하면 치욕이 없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께서는 "이치를 따르면 넉넉하다."라고 했는데, 비록 그대는 "학문을 근심함이 절실하고 이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 편안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안분순리(安分順理)" 4글자가 그대의 화를 내리는 좋은 약재라고 말합니다. 의가(醫家)에서 말하는 독서를 금하고 생각을 끊는 것이 그대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유의하십시오. 다시 바라노니 여행이 편안하고 덕이 진보하여 안으로는 마음이 넉넉하고 밖으로는 몸이 건강하여 제 마음의 기도에 부응해 주기를 바랍니다. 辱書, 有以見卓然者義, 燁然者文, 斧破陰膽之同聲.義固已仰, 文之燁然, 今而後始見.愧夫前此猶不深知吾貞老也.充此之義之文而進, 雷厲風迅之前途, 嶽喬日朗之究境, 辨邪衛正繼聖開平, 卽其人焉, 何待乎環顧求覓? 明先師之道, 立春秋之義, 卽自我主之, 何待乎賴人? 至於此漢, 豈足爲有無, 陋劣膚淺, 猝當師門罔極之變, 一陰獨尊, 六陽壹鬱, 世無鄒聖拳踢之廓如也, 則顧此無似, 雖欲不爲能言之徒而得哉? 竊不自量, 竭力辨討, 至被大禍而不悔.明義淑世, 豈敢云然, 忘師附賊, 是懼是免.高明乃以無實之名, 非功之褒, 張皇鋪揚, 至有歸有依仰不阿所好等語, 何哉? 無乃不囿世風, 終難坐在裏許而不之覺耶? 抑以綱絶倫斁, 陷師黨賊, 滔滔皆是, 而尙有幾箇人拔出其流, 爲世道之幸, 志尙之同, 故悲喜交極而不覺傾倒歟? 然則高明之情, 亦可謂戚矣.盖來書中, 若溢美退托之屬, 無有以當鄙意者, 惟雖未能自期於古人, 亦不忍自棄於流俗之言, 爲切實由中, 螢然入耳, 戚然動心.而一與此漢之平日自待者相符, 何其幸歟? 噫! 俗之一字, 爲陷人穽也久矣.俗者何也? 凡不揆道義徇時自便者是己.惟其自便所在, 故易入而難出.不揆諸道, 故千惡萬慝, 皆從此生.至於近日陰震一隊之誣悖禍世, 究亦不揆自便之大肆也, 甚可畏也.苟能心絶俗念, 身絶俗習, 則發言制行, 將見不徇時而傚古, 不自便而從古, 粹然一出於道義, 亦何古人之未能期哉? 此吾與子之所共勉者, 願與交勖而終身焉.喩及相火作祟, 似因訓蒙鬱墊致然.不意吾賢昭明見解之有此也.夫在靑年壯圖, 縱遊博學, 交盡天下好人物.而恢斥聞見, 觀盡天下好山水, 而助發文章, 豈不是至願? 但人事有甘苦勸逸之殊.故古之人, 有躬耕行傭而帶經者, 積年善病而成業者.矧此訓蒙, 雖云絆縶, 安坐明窓, 日親簡編, 其視耕傭積病者, 豈無餘力乎? 雖云勝己則無, 又不有學半之益乎, 又何至於惱惱煎煎相火之作祟乎? 邵子曰安分無辱, 程子曰順理則裕, 雖切於憂學而非關利欲, 其不安且順則均矣.吾故曰安分順理四字, 是降火之良劑.醫家所云禁讀絶思, 非所以治美愼者也? 幸試留意.更祈旅安德進, 內腴外睟, 慰此心禱. 상화(相火)가……되었다. 심(心)은 화(火)에 속하는데, 심은 몸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臟器)이므로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 하고 심화를 군화라고 한다. 상화는 군화와 상대되는 말로, 간(肝), 담(膽), 신(腎), 삼초(三焦)의 화를 통틀어 가리킨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