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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준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蘇 在準 丙寅 나는 졸렬하고 견해가 얕아 백에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어서 본래 남의 본보기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헤아리지 않고 음성의 적들을 주토(誅討)하여 첩첩 깊은 재앙의 그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친척이나 지인들도 두려워서 피하며 감히 가까이하지 않는데, 고명한 그대께서 일찍이 교분이 없었는데도 먼저 편지를 주시니 참으로 정성스러움이 지극합니다. 게다가 "의를 높여서 굽히지 않고 바른 깃발을 높이 세우셨다."라고 찬탄하시고 "성인 공자께서도 광(匡)땅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두시고 진(陳)땅에서 곤액을 당하셨다."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돌아보건대 비록 이를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그대의 높은 풍모는 실로 오늘날 처음 보는 바입니다. 또 오진영의 죄를 논하면서 "도깨비 같은 놈이 스승을 무함(誣陷)하고 도리어 주인을 물어서 양기를 사라지게 했다."라고 판단하시고, 저에게는 "형벌을 받더라도 웃음을 머금고 만년의 절개를 성취하기 바란다."라고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곧 옛날에 이른바 "인자(仁者)만이 사람을 미워하고, 군자(君子)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러러 공경하고 굽어서 사례하는 것이 단지 높은 풍모가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대는 나이가 아직 젊은데도 견해와 덕이 이와 같으니, 훗날 마침내 선사의 도를 전하고 7일의 우레 소리를 울릴 자가 두류산(頭流山) 아래 용성군(龍城君) 보절방(寶節坊)57)의 소재준(蘇在準)이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편지 가운데 "기질을 바로잡기 어려워 사욕이 틈을 타고 일어나며, 깊은 분노가 절로 가득차서 전전긍긍하며 편치 못합니다." 등의 말이 있습니다. 이는 편지가 왕래하는 가운데 저절로 나오는 의례적인 말이 아니고, 실제 애써 공부하고 맹렬히 성찰한 깊은 체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과 능력으로도 먼저 어렵게 여기는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대의 견해와 덕이 그처럼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확충해보면 전면의 성취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내가 "끝내 선사의 도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대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 세간의 영재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풍조를 초탈하여 이 도에 뜻을 둔 자는 드뭅니다. 도에 뜻을 둔 자는 있지만 탁연히 독립하여 시종일관 절개를 지킨 자는 더욱 드뭅니다.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똑같은 길로 도도히 흘러서 그 파란을 돌이키고 그 역류하는 물길을 막는 이가 없습니다. 그대는 재주와 뜻이 모두 우뚝하여 이러한 사실을 개탄한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타락한 풍속을 일으키고 도탄에 빠진 천하를 구제하고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장차 우뚝 솟은 두류산의 빼어난 경치를 그대의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는 덕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직 그대는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편지에서 이르길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내 얼굴을 한 번 보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대의 눈길에 화답조차 못했습니다. 또한 서로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서로 강학하는 것도 기약할 수 없으니 어찌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글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씨는 마음의 획이며, 마음은 내면이고 얼굴은 외면입니다. 이미 그 마음을 얻었으니 얼굴을 못 본들 무엇이 슬프겠습니까? 하물며 그 마음의 소리와 마음의 획으로 구해본다면 그대의 모습과 풍채를 오히려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할 따름입니다. 走陋拙踈淺, 百無一能, 本不足爲人取.竊不自量, 誅討陰賊, 深入重重禍網.人之親知, 亦且畏避不敢近, 乃高明先施於未曾通款之地, 極其殷摯.至以抗義不屈赤幟一竪贊之, 孔聖之畏匡困陳慰之.顧雖不敢當, 高明之高風, 實今之初睹也.且其所論震罪者, 直以鬼魊誣師反噬滅陽斷之, 所勗賤子者, 終以含笑斧鑊成就晩節望焉.是則古所謂仁者之惡人君子之愛人非耶? 仰欽俯謝, 又非但以高風之動人也.高明年尙少, 而之見之德也, 已如此, 他日卒傳先師之道, 轟雷聲於七日者, 非頭流山下龍城郡寶節坊蘇在準乎? 乃知書中氣質難矯, 私欲闖發, 深自憤懣, 兢惕不寧等語.非往復間自道例談, 實出眞地苦工猛省深體之餘.惟其之心之力, 先難之若是也, 故有之見之德之斯大也.充此而進, 前頭所就, 其可量乎.吾故曰卒傳先師之道者, 乃高明也.噫! 世間英才, 不爲少矣.能超脫時風, 而志乎斯道者鮮矣, 志乎道者有矣.能卓然獨立終始一節者, 尤鮮矣.此所以滔滔一轍, 回瀾障川之無其人也.高明才志俱卓, 慨歎乎此者蓋久.而思欲以起末俗之衰, 濟天下之溺也.吾將以屹屹頭流之秀色, 較看於高明撓不動摧不折之德也.惟高明加勉焉.來書謂一面陋顔於衆中, 而鄙於英眄, 和此亦無.遠地盍簪, 未易前期, 曷勝於邑? 然文心聲也, 筆心畫也, 心內也面外也.旣得其心, 未面何傷? 况持此心聲心畵而求之, 其風儀顔采, 猶有可想者乎.用是自慰而已. 용성군(龍城君) 보절방(寶節坊) 일제 강점기 때의 행정구역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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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 진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房玉範珍 丙寅 대상(大喪)58)의 졸곡(卒哭)은 7개월 뒤에 지내야 하니59) 지금 법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 지극히 옳고 지극히 옳습니다. 그러나 졸곡은 공적인 상(喪)이나 사적인 상을 막론하고 애통한 마음을 줄이는 일입니다. 더구나 예월(禮月)에 날을 점쳐서 따로 기일을 안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는 곧 부장(報葬)하면서 졸곡의 기일을 기다리는 것이니 상순(上旬)이나 중순(中旬)을 써서 길일을 급하게 잡는다는 혐의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하순(下旬)을 써야 아마도 인정과 예의를 다할 듯합니다.선사께서는 무오년(1919년, 고종의 승하) 대상에 다음해 6월 18일을 졸곡의 기일로 삼으셨는데, 이는 월초부터 9번 우제(虞祭)60)를 지내는 달을 계산하여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제넘은 소견에는 "부장한 경우 서둘러 우제를 지내고, 졸곡제는 예월을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61)"라고 예경(禮經)에 드러난 이상, 졸곡을 지낼 달에서 우제를 지낼 날짜를 뒤미처 계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감히 이번 9월 하순 중 강일(剛日)을 골라 모여서 망곡례(望哭禮)를 지내겠습니다. 평소 선사께 미처 여쭈어 질정하지 못한 것이 절로 안타깝습니다. 大喪卒哭之宜用七月, 而不從今式, 極是極是. 而卒哭, 無論公私喪, 是奪情之事. 況非禮月筮日之自有排期者, 乃是報葬而俟期者, 則不宜用上旬中旬以近渴吉之嫌, 當用下旬, 恐盡於人情禮意. 先師於戊午大喪, 以翼年六月十八日爲卒哭之期, 此則自月初計九虞月子而然. 然區區妄見以爲: "'報葬、報虞, 卒哭必俟禮月.' 旣著禮經, 則不必追計虞祭日子於卒哭之月也." 故敢於今番擇九月下旬中剛日, 相聚望哭. 自恨未及稟質於先師平日也. 대상 이해 4월 26일 순종 황제가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다. 임금의……하니 사(士)는 3개월에 장례하고 그 달에 졸곡제를 지내며, 대부(大夫)는 3개월에 장례를 하고 5개월에 졸곡제를 지내며, 제후(諸侯)는 5개월에 장례를 지내고 7개월에 졸곡제를 지낸다. 《禮記 雜記下》 김택술은 조선을 여전히 중국의 제후국으로 여긴 것이다. 9번 우제 이는 황제가 지내는 우제(虞祭)의 횟수를 가리킨다. 서둘러……한다 서둘러 장사 지낸 경우[報葬]에는 서둘러 우제를 지내고[報虞], 석 달이 지난 뒤에 졸곡제를 지낸다. 《禮記 喪服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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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에게 답함 병인년(1926) 答房玉範 丙寅 강론에 동참할 수 없다는 말씀은 비록 안타깝지만 그곳이나 이곳이나 모두 성현의 책이 있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천성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밝은 본심에 돌이켜 구하고 이치가 지극한 가르침에 질정한다면, 사람의 마음은 똑같이 옳다고 여기고,62) 선철(先哲)의 말씀은 나를 속이지 않아63) 가는 곳마다 환히 아는 것64)이 곧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믿을만 하니 멀리서 권면할 따름입니다.저더러 간옹[艮翁,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진짜 제자라는 말씀은, 아, 이 무슨 말입니까. 선사께서 헤아릴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것을 눈으로 보고도 분변(分辨)하고 토죄(討罪)하여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함정에 빠트린 자만 패악한 제자일 뿐만 아니라 구제하지 않은 자도 패악한 제자임을 면치 못합니다. 제가 무함(誣陷)을 토죄한 것은 화를 당하여도 후회가 없으니, 패악한 제자임을 면하기만 해도 다행일 것입니다. 어찌 진짜 제자임을 감히 바라겠습니까. 未由同榻講貫之喩, 雖則可恨, 彼此皆有聖賢之書, 亦同具是非之性, 苟能反求本心之明, 質之理到之訓, 則人心之所同然, 先哲之不我欺, 觸處洞然, 卽此而在矣. 此可以相恃而遙勉爾. 艮翁眞弟之云, 烏是何言? 目見先師之陷於不測, 而不辨討而救之, 不惟陷之者之爲悖弟, 亦不救者之不免爲悖弟. 吾之討誣, 遭禍而無悔, 僅免爲悖弟卽幸矣. 安敢望眞弟也? 사람의……여기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즉 의리이다.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알았다. 따라서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孟子 告子上》 선철의……않아 맹자가 "공명의는 '주공이 문왕은 나의 스승이라고 했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오.'라고 하였다."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가는……것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공자께서 "내가 안회(顔回)와 종일토록 이야기해 보니,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았다.그러나 물러간 뒤에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내가 말한 바의 이치를 충분히 드러내 밝히니,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라고 하신 경문(經文)에 "안자(顔子)는 자품이 침착하고 순수하여, 성인에 대해서 체단(體段)을 이미 갖추었다. 공자의 말씀을 들으면 묵묵히 이해되고 마음으로 깨달아 닿는 곳마다 환하여, 스스로 조리가 있었다."라고 주자가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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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정 임장상학에게 보냄 갑자년(1924) 與碧亭林丈相鶴 ○甲子 근세에 상례의 강기[喪紀]가 다 파괴된 것은 단지 고려말엽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애장(哀丈)11)께서는 하얗게 백발이 된 연세에 수척하게 산에서 여막을 지키면서, 3년 동안 채소와 고기를 끊고 백년간의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여 오랑캐의 풍속으로 물든 세상에서 멀리 포은선생의 고행(高行)을 좇으니 보고 듣는 자들이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생각건대 훗날 예교를 주창하고 밝힘에 있어 시초가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애장께서는 얼마나 다행이십니까?이로 인하여 생각해보건대, 부모를 예로써 섬기는 것은 한 가지 일의 효도이고, 도를 밝히고 덕을 이루는 것은 전체의 효도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예서(禮書)를 읽는 여가에 성현의 심법에 관한 글을 궁구하여 이른바 원대한 것을 구하여 몸으로써 그것을 체득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전수하며, 글로 써서 후배들을 깨우치시면 아득하고 은미한 실마리를 실추시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애장의 행실과 문망(文望)은 일찍이 흠모하며 우러러보던 바이고, '추운 겨울날의 송백[寒松]'과 '거센 물결 가운데의 지주(砥柱)' 같다 한 것은 또한 지난날 애장께서 평소 품으신 뜻을 우러러 헤아린 점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애장께서 한 가지 일의 효도가 이미 훌륭하다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감히 '전체의 효'를 제시하여 애장께서 더욱더 힘쓸 수 있는 바탕으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구구하게 스스로 선친과의 교분에 의지했으니, 살펴주시고 꾸짖지 마시길 바랍니다. 近世喪紀之壞盡, 不啻若麗氏之末葉也. 獨哀丈以皓然白首, 欒欒然守山廬, 絕菜肉於三霜, 報草心於百年, 遠追圃老高行於腥羶世界, 瞻聆攸暨, 孰不感歎? 意者異日禮教倡明, 未始不權輿乎, 哀丈也, 何其幸歟?因念事親以禮, 一事之孝也; 明道成德, 全體之孝也. 惟願讀禮之暇, 究觀聖賢心法之書, 以求所謂遠者大者, 體之身而推諸人, 著之書而牖諸後, 俾茫茫微緒, 得有以不墜, 如何? 哀丈之行治文望, 曾所欽仰, 寒松砥柱, 向又有仰揣雅志者. 故不欲以一事之孝已能者, 爲哀丈足, 敢以全體之孝, 贊哀丈加勉之資. 區區自附於先交之誼, 幸蒙鑑不讁. 애장(哀丈) 상중(喪中)에 있는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哀)'는 상을 치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장(丈)'은 어른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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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명혁기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魏致明赫基 ○癸酉 춘추시대는 고대 성인의 시대와 멀지 않아서 성인의 은택이 아직 다 민멸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자께서는 "뜻있는 선비는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게 될 것을 항상 잊지 않는다."16)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오늘날이 어떤 시대인데 선비들이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선비가 오늘날에 살면서 구렁 속에 시신이 뒹굴 것을 근심하지 않는 자는 참된 선비가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아! 우리들은 이미 나라가 없으니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또한 지위와 재주가 없으니 천하를 깨끗이 청소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재력과 힘이 없으니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모두 하늘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으로부터 좋은 칭송을 구하려고 한다면 어느 것에서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도를 실현할 뜻을 지니고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며 죽어서 구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편안히 여기면서 의롭지 않은 것이 털끝만큼이라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 저 상제가 부여해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성(性), 신령스럽고 밝은 심(心)17), 바르고 빼어난 형체를 완벽하고 깨끗하게18) 받들어 돌려줄 것을 기약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평생의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春秋之時, 去古未遠, 聖澤不泯, 孔子尚云: "志士不忘在溝壑." 而况今日何日, 而士子可無溝壑憂乎? 吾故曰: "士居今日, 而無憂乎溝壑者, 非真士也."噫! 吾輩既無國家, 可以致君澤民? 又無位才, 可以掃清天下? 并無財力, 可以惠人利物? 此皆不得於天者. 故求善狀於此類, 則其道無由. 惟有求志食力, 安歸溝壑, 不以一毫非義汙身, 期以完完潔潔奉還他上帝所賦純粹之性․靈明之心․正秀之形, 是爲生平之無上善狀. 如何如何? 뜻있는……않는다 맹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사냥할 적에 대부(大夫)를 부를 때 쓰는 정(旌)이라는 깃발로 사냥터를 관리하는 우인(虞人)을 불렀으나 오지 않자, 그를 죽이려고 한 일이 있었다. 공자께서 우인을 칭찬하시기를 '지사(志士)는 자신의 시신(屍身)이 도랑에 버려지더라도 한하지 않을 것을 항상 생각하고, 용사(勇士)는 전투를 하다가 자기 머리를 돌아보이 않을 항상 생각한다' 하셨으니 공자께서는 그의 어떤 점을 높이 사신 것인가? 자기 신분에 맞는 부름이 아니면 불러도 가지 않은 점을 높이 사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올바름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겠는가?〔孟子曰, 昔齊景公, 招虞人以旌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 티없이……심(心) 전우는 "대개 리는 것은 순수한 성이기 때문에 태극은 상대가 없는 진재(眞宰)가 되고, 심은 정영한 기이기 때문에 리와 더불어 간격이 없는 묘용(妙用)이 된다.〔蓋理者純粹之性, 所以爲太極無對之眞宰也, 心者, 精英之氣, 所以爲與理無閒之妙用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10 〈답양기소(答梁基韶)〉 바르고 빼어난 형체를 완벽하고 깨끗하게 전우는 "천지는 이미 나에게 굳세고 바른 형기를 부여하였다〔天地旣賦我以強壯正秀之形氣〕"라고 말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15 〈성산서사시제군(惺山書社示諸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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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국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安昌國 ○丁卯 얼굴도 뵙지 못했는데 먼저 안경을 보내주시니 마음으로 사귀는 지극한 뜻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에 미쳤겠습니까? 한번 착용함에 두 눈에 엷은 안개가 다 사라지고 새로운 달은 빛을 더하니 어떤 즐거움이 이와 같으며, 어떤 감격이 이와 같겠습니까? 생각해보건대, 저의 마음은 먼지에 뒤덮여 있으니 눈이 어두운 고통뿐만이 아닙니다. 누가 저를 위해서 탕 임금의 소반의 물95)로 씻어주고 안자의 화로의 눈96)처럼 녹게 하여 다시 타고난 면목을 회복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의 표면의 병을 구해주었으니 어찌 더 나아가 내면의 병을 치료해주지 않겠습니까? 아! 세상 사람들은 한갓 옥석으로 안경을 만들 줄은 알아도 의리로 마음을 다스릴 줄 생각하지 못하니, 무엇 때문입니까? 댁의 아들은 젊은 나이에 재주가 뛰어납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자식의 노력은 도로써 하고 문장으로 하지 않으며 말단을 버리고 근본을 취했으니, 역시 세상 사람들이 경중을 잃어버린 경우와는 다릅니다. 복숭아를 던져 줌에 구슬로 보답한다97)는 것은 옛사람의 일이거늘, 하물며 던져준 것이 복숭아가 아니라 구슬이라면 말해 뭐하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아들에 대해 마음 다스리는 것으로 힘쓰기를 바라니, 그렇게 하면 거의 보감(寶鑑, 거울, 안경)의 본색을 보존하여 보답할 줄 아는 의리를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석양에 접어드는 해와 같은 나이이니 어찌 다시 떠오를 수 있겠습니까? 장차 시름시름 하다가 그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바야흐로 떠오르는 해와 같으니 이를 채워 나아가면 도리를 명확하게 보고 의리를 정밀하게 다스릴 것이니 어찌 다만 안개를 없애고 달빛을 빛나게 하는 하나의 안경에 비유할 따름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당신이 은혜로 베풀어준 하나의 물건을 가지고 천년을 기약할 수 있는 증거물로 삼아 남겨둔다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未通顏範, 先惠眼鏡, 非心交至意, 烏能及此? 一著雙眸薄霧掃盡, 新月增輝, 何快如之, 何感如之? 念僕心鏡之埋麈, 非但眼昏之苦, 疇能爲我濯之以湯盤之水, 銷之若顏爐之雪, 使復天來面目乎? 執事既救我表病矣, 豈不進而治內疚乎? 噫! 世之人徒知用玉石爲眼鏡, 而不思將義理治心鏡者, 何哉? 賢胤妙齡茂才, 翁之所詔子之所勉, 以道而不以文, 舍末而取其本, 則其亦異乎世之失輕重者矣. 投桃報瓊, 古人事也, 况所投者非桃而瓊乎? 僕於賢胤, 竊欲以治心相勖, 庶得保寶鑑本色, 自附知報之義. 然僕向夕之日, 豈可再上? 將見窣窣而止也. 賢胤方升旭日, 充此而進, 其見理明快, 制義潔精, 豈但一對鏡子掃霧輝月之比而已哉? 然則雖把尊惠一箇物, 畱作千載相期之證品, 未爲不可, 如何如何? 탕……물 탕왕(湯王)의 반명(盤銘)에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했다.〔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대학(大學)》 전(傳) 2장 안자의……눈 주자가 만년에 안연의 극기복례의 공부를 두고, "안자의 극기는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과 같다.〔顔子克己, 如紅爐上一點雪〕" 하였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41 〈논어·안연(論語․顔淵)〉 복숭아를……보답한다 《시경(詩經)》 〈목과(木瓜)〉에 "나에게 목도(木桃)를 보내 주었는데 내가 경요(瓊瑤)로 보답하고도 보답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길이 우호하고자 해서이다.〔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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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승 서문 【임신년(1932)】 家乘序 【壬申】 부령(扶寧) 김씨(金氏)는 만력(萬曆) 갑신년(1584)에 처음으로 대보(大譜)를 만들었고, 그 뒤로 각 파에서 여러 차례 족보를 만들었는데, 우리 직장공파(直長公派)는 인릉(仁陵) 계사년(1833)과 홍릉(洪陵) 임오년(1882)ㆍ정미년(1907)에 세 차례 족보를 만들었다. 갑신년 족보는 너무 소략하였지만 법이 매우 엄격하였으니, 시대가 고대여서 질박하였다. 계사년 족보는 비록 상세하였지만 이미 법이 문란해짐을 면치 못하였고, 임오년 족보는 법의 문란함이 더욱 심하였으니, 세대가 내려오면서 변천된 때문이다. 정미년 족보를 만들 때에는 내가 정서(正書)의 일을 하여 임오년 족보의 잘못을 많이 바로잡았으나,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다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각 파의 족보가 거의 대부분 이와 같았으니, 모두 세상의 풍속에 얽매였기 때문이다삼가 일찍이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한번 족보의 법을 정하고 대동보(大同譜)를 만들어서 인륜으로 하여금 제 자리를 잡게 하고자 하였지만, 오늘날의 세도와 인심을 헤아려 볼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으니, 종중(宗中)에서 대동보를 만들자는 의론이 있다고 한다. 명분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법이 반드시 문란할 것이다. 족보가 족보답지 않기에 참여하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인데, 더욱이 또 시대의 의리에 편안하지 못한 점이 있음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만약 정미년 파보(派譜)를 기준으로 하여 대대로 쌓아 내려온 미덕은 쓰지 말고 왕세계(王世系)와 방계(旁系) 8대를 엮되 다만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정밀하면서도 간략하게 교정하고 아울러 예전에 미진했던 점을 바로잡아 가로로 8층을 만들고 글자의 모양을 작게 하여 100여 판(板)을 넘지 않도록 한 다음에 바다를 건너 벽지 같은 곳에서 수십 질(帙)을 인쇄하여 펴낸다면 법과 의리, 일 세 가지가 모두 마땅함을 얻겠지만 또한 기필할 수 없었다.그래서 우리 한 집안의 가승(家乘)을 만들었다. 위로는 단지 우리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적고, 아래로는 우리 손자의 항렬에 이르러 그쳤다. 선조의 행적이 미비한 것과 예전의 족보에 잘못된 것들은 기록하여 고증하고 안설(按說)84)을 붙였다. 이것을 몇 본(本) 베껴 자손들이 각기 소장하였다가 천기가 돌아오고 산천이 맑아져서 법이 정해지고 의리가 편안한 날에 이 본에 의거하여 파보(派譜)나 대보(大譜)에 족보를 함께 하도록 했다. 만약 그런 때가 없다면 단지 이 본을 지켜서 그 아래에 자손을 이어 기록하여 길이 우리 집안의 가법(家法)으로 삼게 할 따름이다. 扶寧之金, 始有萬曆甲申大譜, 厥後各派累譜, 而吾直長公派, 則有仁陵癸巳、洪陵壬午ㆍ丁未三譜. 甲譜雖太畧, 而法甚嚴, 時古而質也. 癸譜雖詳, 已不免法亂, 壬譜則法亂尤甚, 世降而變也. 丁譜日, 余爲正書之任, 多正任譜之失, 以位卑莫克盡焉. 各派之譜, 率多若是, 總爲世風囿也. 竊嘗欲與同志者一定譜法, 以修大同之編, 使人倫各得其所, 計今世道人心, 其道無由. 近聞宗中有大譜議, 名則美矣, 其實則法必亂, 譜不譜而有難與焉者, 而況復有時義之未安乎? 若得就丁未派譜, 勿書世德, 編王世系旁八世, 但續以子孫錄, 校得精簡, 幷正前日未盡者, 橫作八層, 細其字樣, 使不過百餘板, 越海若僻地, 印出數十帙, 則法義與事三得其當, 而亦不可必矣. 故乃作吾一家之乘, 上則只錄吾之所自出, 下則至吾孫行而止, 其有先蹟未備及誤於前譜者, 錄之攷證, 附以按說. 鈔得幾本, 子孫各藏, 使於天返河淸, 法定義安日, 依此本同譜於派若大焉. 如無其時, 但得守此本, 續錄子孫於其下, 永爲吾家家法云爾. 안설(按說) 소주(小註) 안에서 '상고하건대[按]'로 시작되는 주설(註說)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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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명에게 답함 계유년(1933) 答魏致明 癸酉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거병서(去病書)〉19)를 먼 곳까지 부쳐주셨는데 마디마디가 적절하고 타당하며 하나하나가 약석(藥石)같은 말입니다. 그 문장에서 말한 '병을 제거하는 방법'은 가장 잘 형용하였으니, 손을 씻고 경건하게 읽자니 반성하고 깨우친 점이 많습니다.사람들은 "이 늙은이(위백규를 가리킴)가 추수(推數)를 전공하여 참위설(讖緯說)을 지어 전하기까지 했다"고 말하면서 일찍이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선생 문하에 출입한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연원이 단정한데 어찌 한쪽으로 치우쳐 나아감을 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글을 읽어 보니, 평상시의 언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의 평정하고 적실(的實)함에는 참으로 이와 같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대 선친20)을 위해 〈다암처사묘갈(茶嵒處士墓碣)〉을 쓰는 것은 얼마나 큰일입니까? 그런데도 저에게 그 일을 부탁한 것은 사람들의 이른바 '택술에게 시키면 약간의 문사(文辭)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경박하며 존귀하지 않고 미덥지 않습니다. 게다가 문사마저도 없으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저를 깊이 아꼈기 때문에 생각이 한번 잘못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만두십시오. 그만두십시오. 存齋〈去病書〉, 荷此遠寄, 而言言切當, 箇箇藥石. 其云"去病", 最善名狀, 盥讀, 反省警發多矣.人言"斯翁專於推數, 至作讖緯而傳之", 嘗疑其出自渼門. 淵源端正, 豈至於不免偏就乃爾? 人言有不可信. 今讀此書, 乃知其平正的實, 不出乎日用言行之間, 果有如此者也.尊先公〈茶嵒處士墓碣〉, 何等大事? 而託之於澤述者, 不省所謂使澤述而稍有文辭, 人微言輕, 不尊不信. 而况并與文辭而無有乎? 此殆相愛之深, 而不覺一念之誤也. 已之已之. 거병서(去病書) '거병'은 이경(李㯳)의 어렸을 때의 자(字)로, 문언능(文彦能)에게 출가한,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큰누이의 외손자이다. 이 글은 위백규가 63세였던 1789년(정조13) 가을에 지은 것인데, 몸의 질병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옛 경전을 인용하여 훈계하였다. 이경은 생후 몇 달 만에 어미를 잃어 위백규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위백규가 거병이라고 부른 것은 오래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존재집(存齋集)》 권24 〈연보(年譜)〉 선친 위영복(魏榮馥, 1832~1884)을 말한다. 자는 방서(芳瑞)이고 호는 다암(茶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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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선두선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孫明先 斗宣○ 丁卯 인택(仁澤)의 언덕에서 저 연꽃봉오리를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무성했습니까? 제가 보지 못한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멀리 생각해볼 때 망가진 잎과 부러진 연뿌리가 낭자하게 눈밭에 널려 있어 쓸쓸히 사람의 정취를 감쇄시킬 것입니다. 아! 식물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너[연꽃봉우리]를 생각하는 것은 이 식물과 관련된 일이 친구를 위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똑같이 친구인데 유독 간절히 생각하여 식물에까지 미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조석으로 함께 인택가에서 읊조리고, 시물(時物)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 진실로 내 동생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멀리 그리워하는 이러한 한 생각이 반곡(盤谷)과 계유(繼裕)의 사이를 날마다 왕래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홀연히 외람되게도 편지를 보내주시니, 혼정신성(昏定晨省)98)하시는 가운데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정황을 아는 것 이외에 40세에 내부로 수습하여 정돈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진보한다는 등의 말을 보았습니다. 그 위로와 기쁨 은 속인에게 말해주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한때의 안부를 묻는 편지가 될 뿐만이 아닙니다. 옛말에 "노인의 학문은 촛불을 켠 것과 같다."99)고 말하였고, 또 "늙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더욱 사랑스럽다"고 말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40세가 비록 늦었다 하더라도 위나라 무공이 95세에 〈억(抑)〉이라는 시를 지어 경계한100) 일로 보건대, 사실은 늙지 않고 젊으니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의 재주와 뜻이 어떠한가에만 달려 있습니다. 힘쓰기를 바랍니다.김씨의 일은 자세하게 듣지 못했는데 정말로 형의 말씀과 같다면 역시 하나의 유문(儒門)의 변란입니다. 김씨가 억지로 자기 선조를 높이려고 망령스럽게 이 일을 거행한 것은 정말로 경악할 만합니다. 본가(本家)에서 조상에게 허물이 미칠 것을 생각하지 않고 허락한 것도 역시 부당한 것입니다. 이치에 의거하여 깨우쳐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따르지 않더라도 문인들이 공적으로 함께 성토하는 데에 이르면 아마도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사에게 누가 된다면 곧 누가 되는 것이지만, 음성의 오진영이 선사께서 인가해줬다고 무함하여 원고를 고치고 의절을 깨뜨리며 뜻을 미혹시킨 것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무함하고 고쳤는데도 성토하지 않는다면 선사의 마음은 천고토록 밝혀지지 않을 것이니 그만둘 수 없습니다. 제향을 함께 하는 일은 그대가 거행한 것이 아니고 이를 허락한 자의 과실이니, 실제로 선사의 덕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는 그만두어도 될 것입니다. 仁澤之陂, 瞻彼菡萏, 何其穠矣? 自我不見, 日月幾何? 遙想敗葉折藕, 狼藉雪裡, 索然落人意況矣. 噫! 植物何與, 而乃爾之思, 非管是物者爲故人故歟? 均是故人, 而其獨思之切而及乎物者 何也? 非朝夕與之吟澤畔, 感時物者, 實吾舍弟故歟? 盖此憧憬一念, 無日不往來於盤谷繼裕之間, 忽辱惠翰, 仰審省定百福之外, 見有四十收飭警發進步等語. 其爲慰喜, 盖有難與俗人道者, 非但爲一時之安報也. 古語曰"老人之學, 如炳燭", 又曰"老而好學, 尢可愛"者, 兄即其人歟. 盖四十雖云晚矣, 以衛武公九十五而作抑戒觀之, 其實非老伊少, 亦無待炳燭也. 只在當人才志如何爾. 幸惟勉.金事姑未聞其詳, 果如盛喻, 則亦一儒門之變也. 金之強尊其祖, 而妄舉此事, 固可駭. 本家之不念累及於祖而許之, 亦無謂也. 據理喻之而罷之, 則善矣. 雖其不從, 至於門人之公共聲討, 恐不必然. 此於先師累則累矣, 有非陰震誣認改稿破節幻旨之比. 誣改而不討, 則先師之心, 千古莫白, 不得已也. 若同享之, 非賢舉之, 許之者之過, 實無損於先師之德, 此不可以已乎? 혼정신성(昏定晨省) 부모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 안부를 여쭙는 일이다. 곧 어버이를 정성껏 봉양함을 뜻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는 말이 나온다. 노인의……같다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묻기를, "내 나이 칠십이라 배우고자 해도 이미 늦은 듯하다."라고 하니, 사광이 말하기를 "어찌 촛불을 밝히지 않습니까?……신은 들으니,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돋아 오를 때의 햇빛과 같고, 장성하여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오를 때의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촛불을 밝혀 밝게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촛불을 밝혀 밝게하는 것이 어둠 속에 길을 가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何不炳燭乎……臣聞之少而好學, 如日出之陽; 長而好學, 如日中之光; 老而好學, 如炳燭之明. 炳燭之明, 孰與昧行乎?〕" 하였다. 《설원(說苑)》 〈건본(建本)〉 위나라……경계한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나이 95세가 되었는데도 자신을 경계하는 〈억(抑)〉을 지어 사람을 시켜 날마다 곁에서 외게 하여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시경(詩經)》 〈억(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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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환병형에게 답함 을묘년(1915) 答尹德煥炳馨 ○乙卯 제가 처음에 족하를 만났을 때 앙연한 표정과 따뜻한 용모를 보고 사랑과 존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심중에 대해 여쭤보니 깊은 지식과 표연한 사상은 시류배에 비할바 아님을 알았습니다. 옥류동과 계화도 사이에 주선하면서 흡연한 정과 유연한 즐거움은 일찍이 오랜 친구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정이 바뀌어 영남의 구름과 호남의 달이 가고 머무름이 무상하니, 암연한 혼백과 유연한 감회는 또한 인정이 진실로 그러한 것인데, 고의(高義)와 중도(中道)를 삼가 낮추고서 편지를 홀연히 보내주시어 협연한 은혜와 충실한 감정을 마음끼리 서로 비춰주니, 이별하여 헤어진 고통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이별한지 한 달이 지났으니 우러러 생각할 때 신의 도움으로 객수의 오랜 고달픔은 물에 씻은 듯하고, 대인의 여유로움을 살펴보건대 구도의 간절함은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가 세상에 오랜 시간 동안 길이 보존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터득하는 것이 매우 드무니 무엇 때문입니까? 옛날부터 지금까지 뜻이 있는 사람은 적고 뜻이 없는 사람은 많아서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 됨으로서 함께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진실로 말할 꺼리도 안 됩니다. 저 간혹 그 뜻이 없지는 않은데 기질이 아름답지 못하여 변화의 효과를 보지 못한 자도 있고, 혹은 뜻도 있고 재주도 있는데 질병이 점점 깊어져서 연찬(硏鑽)의 공을 들일 겨를이 없는 자도 있으며, 이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하고 있는데 가난하고 궁핍하여 홀로 떨어져 살아 고루하다는 한탄을 면하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 몇 가지와 연좌된 자는 고금인물에 모두 존재하였지만 초목과 함께 썩어버렸으니 진실로 한탄할 만합니다. 이제 족하는 약관의 나이에 발원하여 천리의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방문을 했으니 그 뜻은 돈독하지 않다 말할 수 없습니다. 견해는 민첩하고 총명하니 곤란에 빠진 뒤에 분발할 필요도 없고, 움직일 때마다 승척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니, 재주는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강장한 몸은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선대가 물려준 귀중한 유업은 유학을 도울 수 있으니, 가난과 질병에 대한 근심은 고려한 가치도 없습니다. 족하는 무량한 상복(上福)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사다리를 얻고도 오히려 용맹하게 나아가 극치에 이르러 이른바 도라는 것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상천(上天)이 베푼 지극한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족하는 두려워하며 생각하기 바랍니다. 제가 들었는데 군자가 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취향이 올바른 것이라 하니, 취향이 바르면 언행과 사업은 하나도 바름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끝내는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취향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잘 꾸며서 말마다 이치에 가깝고 미봉하여 일마다 사람을 기쁘게 할지라도 끝내는 도학의 진체와는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표(嶺表)는 추노(鄒魯)의 고향이라 예부터 일컬었는데101), 근래에 와서 현인의 은택과 점점 멀어지고 도술이 점점 어두워져서 '심이 곧 리이다'는 설에 한 번 오염되자 전성(全省)에 두루 퍼졌습니다. 리라는 것은 지존지수하고 순선하여 악이 없는 것이고, 심이라는 것은 신령스럽고 지각이 있어서 공적인 것도 할 수 있고 사적인 것도 할 수 있습니다.102) 만약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심을 잡고서 순선하여 악이 없는 리라 부른다면, 심을 스승삼아 멋대로 쓰고 미친 듯이 멋대로 하는 것에 이르지 않는 자는 거의 드뭅니다.103) 족하의 현명함으로는 응당 취향(趣向)의 사정(邪正)에 대하여 훤히 알 것이니 제 말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어떻게 취사할 것을 알 것입니다. 풍기(風氣)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웠습니다. 저 하늘에 넘칠 듯한 풍조가 70개 주에 흘러넘치고 있으니, 노를 젓는 사공이 비록 잘 건너갈 수 있다 하더라도 언덕 위에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족하는 또한 성존덕성(聖尊德性)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오늘날의 급선무로 삼는다면 훗날에 맹자처럼 말을 잘 하여 이적을 물리친 공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두터이 돌봐주심에 감격하여 속마음을 쏟아내어 이에 이르렀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게 되었으니 간곡히 이해해주시고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僕之始遇足下也, 見其昂然之表溫然之容, 令人愛敬. 已而, 叩其中, 則淵然之識飄然之思, 知其非流輩比也. 得與周旋乎玉流繼華之閒, 而浹然之情逌然之樂, 曾不遜於舊要矣. 及其時移事嬗, 嶺雲湖月, 去留無常, 則黯然之魂悠然之懷, 亦人情之固然, 而枉屈高義中道, 赫蹏颺風來墜, 浹然之惠充然之感, 心心相照, 殊不覺分張之苦也. 啟旆踰月, 仰想神佑, 利稅宿憊如洗, 觀感大人之餘, 求道之切, 亦應大異前日也. 夫道之於世, 亘古長存, 而人之得之者, 甚鮮何也? 從前以來, 有志者少, 無志者多, 所以爲天下之通患, 而不可與共學者也. 如此者, 固無足道矣. 厥或有不無其志而氣質不美, 未見變化之效者, 厥或有志且才矣, 而疾病侵尋, 不暇研鑽之功者, 厥或有三者俱得, 而貧竆索居, 不免固陋之歎者. 坐此數者, 汨盡古今人物 而同腐草木, 良可歡也. 今足下發願於弱冠之餘, 訪道於千里之遠, 志不可謂不篤矣. 見解敏妙, 不待困衡趍步, 不茍動依繩尺, 才不可謂不美矣. 強壯之身足以勝重任, 青氊之業足以資遊學, 則貪病之憂, 又不足恤也. 足下所遇, 可謂無量上福, 得如此之梯, 而猶不勇進造極, 以得所謂一箇道者, 則真是靠負上天鐘愛之至恩也. 惟足下惕念焉. 竊聞君子所貴乎道者, 趍向是已, 趍向既正, 則言行事業, 無一不出於正, 而終可入聖賢之域. 趍向不正, 則雖粧撰, 得言言近理, 彌缝得事事悅人, 竟與道學真諦相去遠矣. 嶺之表, 古稱鄒魯之鄉, 而挽近以來, 賢澤漸遠, 道術浸晦, 心理一派, 殆遍全省. 盖理者至尊至粹純善而無惡者也, 心者能靈能覺, 可爲公可爲私者也. 若把或公或私之心, 呌做純善無惡之理, 則其不至於師心自用猖狂自恣者, 幾希矣. 以足下之明, 應已瞭然於趍向之邪正, 不待僕言而知所取舍矣. 不囿風氣, 從古爲難. 彼滔天風潮 震盪於七十之州, 副手梢工, 雖能利涉, 自岸上人觀之, 豈不爲慮? 請足下且將思聖尊德性之訓, 爲今日之急務, 則異時立孟氏能言距之功, 正自不難也. 感於厚眷, 傾蘊至此, 不覺觸人眼目, 幸曲諒而密秘也. 영표(嶺表)……일컫었는데 영남을 가리킨다. 영남은 원래 중국의 남쪽 지방인 대유령(大庾嶺) 등 오령(五嶺)의 남쪽에 있어서 붙인 명칭인데, 우리나라도 경상도가 조령(鳥嶺)ㆍ죽령(竹嶺)ㆍ추풍령(秋風嶺)ㆍ육십령(六十嶺) 등의 밖에 있다 하여 영남이라 칭한 것이다. 심이라는……있습니다 전우는 "심은 영각지물(靈覺之物)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믿어 大本으로 삼을 수는 없고, 반드시 성명에 근원하여 도심이 되어야 비로소 한 몸의 주재가 될 수 있다.〔心者, 不過是靈覺之物, 不可信之爲大本, 故必以原於性命者, 爲道心而始得爲一身之主矣〕"고 말하였다.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 〈답최자경(答崔佐卿)〉. 심을……드뭅니다 전우는 "'심'이 저절로 '리'됨을 알고 임의대로 행하면, 이것이 실제의 행동으로 '기'를 주재하고 거짓으로 '주리의 학'을 이름붙인 것이다〔心自認爲理, 而任意行之, 此爲實行主氣, 而假名主理之學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3 〈답전상무(答田相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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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문제창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羅在文濟昌 ○丙寅 상주가 선조고의 장례식 때 신주를 세울 수 없었던 것은 본래 저들이 압력을 가하여 서둘러 하관을 하느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니, 혹시라도 오늘날 세상에 예가 폐지되어 초래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 나중에 신주를 만들 것을 계획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만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의 의미를 따져보면, 사람이 처음 죽었을 때 혼기가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고 혼을 부르고, 속백(束帛)104)으로 죽은 사람을 받들어 그 형체를 돌이켜 광중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신혼(神魂)이 더욱 표탕하여 일정함이 없으면 속백은 오래 보존하여 길이 의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무로 만든 신주를 세워 대신하고, 우제를 지냄으로써 안정시킵니다. 만약 장례 지낼 때 나무 신주를 세우지 않은 채 혼백(魂帛)을 받든다면 삼년 동안 혼백을 묻은 뒤에는 신이 어디에 의지하겠습니까?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서 구름처럼 떠돌고 바람처럼 떠다닐 것입니다. 자손들이 이점까지 생각한다면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가(禮家)들은 장사를 지낼 때에 나무로 만든 신주를 받들지 않는다면 장례를 마치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장례에 나무로 만든 신주를 세우지 않았으면 아뢰는 글도 또한 감히 짓지 않았으니, 신과 인간 사이의 정과 예의와 관련된 중요성이 도대체 어떠합니까.일단 갑오동란 때에 집집마다 신주를 묻은 뒤로부터는 이미 신주를 다시 받들 수 없고, 또 새로 만들 생각도 하지 못하여 하관하는 날에 이르러 새로 신주를 세운 사람은 천 명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약 한두 명이라도 예를 중시하고 풍속을 불쌍히 여기는 선비가 큰 절차를 빠뜨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듣고서 마치 나무를 엮고105) 끈을 묶는106) 일처럼 케케묵은 설을 늘어놓으니, 단지 채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진부하고 우활하다 이릅니다. 이것이 수십 년 동안 짐승 같은 무리가 가득하고 예의가 사라져서 온갖 죄악이 하늘에 가득한 풍조 때문이니 갈대 하나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 번도 이런 것을 가지고 강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니, 사람들에게 한갓 비웃음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취향이 이쪽으로 가까이 오는 친구에 대해서만 더불어 말하여 간혹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주인 당신이 바야흐로 성현의 실학으로 자식들을 힘쓰게 하고 학교를 세우고 경적(經籍)을 쌓아 장차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두운 시절의 한 점 빛과 같으니, 어찌 다만 이쪽을 향할 따름이겠습니까? 이것이 즐거이 그 일에 대해 고하여 그 아름다움을 빨리 이루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아마 역시 헤아려주시고, 기꺼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哀侍之不能立主於先祖考襄禮者, 固緣彼壓渴窆之未遑, 而或無爲今世禮廢之致也歟. 竊聞以追造爲料, 而尚未之及者, 何也? 盖原禮意, 人之始死, 魂氣離散, 故復之以衣, 奉之以束帛, 反其形歸窀穸, 神魂尢飄蕩無定, 而束帛不足以久存永依. 故立主生而代之, 行虞以安之. 若葬不立主, 而仍奉魂帛, 則三年埋帛之後, 神何所憑依? 上天下地, 其將雲遊風颺矣, 爲人子孫念到于此, 豈不痛傷? 故禮家以葬而不奉主者, 爲不成葬. 葬不立主, 告辭又不敢剏製, 其爲神人情禮之關重, 顧何如哉? 一自甲午東亂, 人家埋主之後, 既不能還奉, 又不思改造, 至於窀穸日, 新立者又千無一焉. 如有一二重禮悶俗之士, 爲言大節之不可闕, 則聽之爲蒼古之說, 有若構木結繩之事, 不惟不見採, 反謂之腐迂. 此盖數十年來, 蹄跡充斥, 禮義淪喪, 滔天之風潮, 非一葦之可抗也. 故弟則未嘗以此強喻, 夫夫徒取其譏. 惟於朋知, 趣味近向此邊者, 說與而或見從矣. 哀侍方勉子以聖賢實學, 齋黌之峙, 經籍之積, 將聳觀聽也, 則此黑窣地一点光, 豈但此邊之向而已哉? 此所以樂爲之告, 而亟成其美者也. 想亦見諒而樂聞也. 속백(束帛) 묶어서 한 묶음으로 만든 5필(匹)의 비단을 이른다. 옛날에 빙문(聘問)이나 궤증(饋贈)에 사용한 예물(禮物)이다.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소사(少師), 소부(少傅), 소보(少保)는 피백(皮帛)을 손에 든다."라고 하였는데, 한(漢)나라 정현(鄭玄)의 주에 "피백(皮帛)란 것은 비단을 묶은 다음에 가죽으로 싼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공언(賈公彦)의 소(疏)에 "속(束)이라는 것은 10단(端)이다. 매단(每端)의 길이가 1장(丈) 8척(尺)인데, 모두 두 끝을 합하여 말면 총 5필(匹)이 되기 때문에 속백(束帛)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나무를 엮고 나무를 엮어 새집을 만들어 산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상고 시대에는 사람들이 적고 금수는 많아서, 사람들이 금수와 충사의 피해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에 성인이 나와 나무를 엮어 둥지를 만들어서 피해를 면하게 하니, 사람들이 기뻐하며 그를 천하에 왕이 되게 하고는 유소씨라고 불렀다.〔上古之世, 人民少而禽獸衆, 人民不勝禽獸蟲蛇. 有聖人作, 構木爲巢, 以避群害, 而民悅之, 使王天下, 號曰有巢氏〕"라는 말이 나온다. 끈을 묶는 문자가 없던 태고 시대에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 부호를 삼아서 행했던 소박한 정치 형태를 말한다. 신농씨(神農氏)가 이 결승의 정사를 행하다가, 복희씨(伏羲氏) 때에 이르러 팔괘를 긋고 나무에 새긴 최초의 문자를 만들어서 서계(書契)의 정사를 행했다는 기록이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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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련에게 답함 신유년(1921) 答金巢蓮 辛酉 이전 편지에서 물으신 말씀은 내가 감히 선사의 가르침에 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다만 의심이 축적되어서 부득불 생각하고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 만일 기질성(氣質性) 세 글자를 기운성(氣運性)이라고 간주한다면 누가 감히 의심하겠습니까? 이제 기질성 가운데 성(性)이라는 한 글자를 기운성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기질성 세 글자를 기운성으로 간주하면, 성(性)과 기(氣)가 각각 한 글자씩 점유하여 성은 이치(理致)의 실자(實字)가 되니, 이는 기질에 구애되는 이치가 됩니다. 만일 기질성의 성의 한 글자로써 기운성으로 간주한다면, 성과 기가 한 글자로 합성되어 성은 자음의 허자(虛字)에 불과하게 되니, 이는 기질의 기운을 일컫는 것이 됩니다. 실리(實理)와 사법(詞法)에 구해보아도 온당치 못한 바가 있는 듯합니다. 이제 보내온 편지를 보니 기운성이 세 글자를 해석한 것인지, 한 글자를 해석한 것인지, 분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기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해당시켰으니, 아마도 간재선생의 뜻을 살피지 못한 듯합니다. 만약에 기의 측면에 나아가 말한 것을 가지고 기운성이라고 일컫는다면, 그 말한 것이 어찌 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도리어 기질에 구애되는 리라는 설이 됩니다. 어찌 선사가 침묵하여 리를 말하지 않는 본뜻이겠습니까? 만약 또 이와 같다면 종전에 설한바, 기질성 세 글자도 무엇인들 기의 측면에 나아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건대, 따로 기운성이라는 제목을 세워서 사람을 불러 일깨우려하겠습니까? 부디 자세히 헤아려서 교시해 주시기 바랍니다.노주(老洲)181)는 천명지성(天命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두 가지 성을 체일(體一)182)과 용수(用殊)183)로 나누었습니다. 체일은 이미 리의 체일인즉, 용수도 유독 리의 용수가 아니겠는지요. 간재선생 문하에서 기질성의 성이라는 글자를 기운성이라고 간주한 것은 곧 사람들이 리라는 글자를 겸대(兼帶)하여 볼까 꺼려하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여기에서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또한 유사하지 않는 듯합니다. 보낸 편지에서 "리가 없는 기는 애매모호한 어법이고, 사문의 본의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만약 이와 같다면, 천하에 어찌 리가 없는 와석(瓦石)이 있겠으며, 리가 없는 분양(糞壤)이 있겠습니까?184) 리는 어디에도 있지만, 와석과 분양을 가리켜 리라 이름 한다면, 또한 어찌 올바른 말이겠습니까? 보내온 편지에서 "이 성(性)이 악(惡)에 어지럽혀지면 마땅히 기질성이라고 말해야 하고, 이 물이 진흙에 탁해지면 마땅히 진흙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두 구절은 정히 나의 설과 같습니다. 만약 성을 기운이라고 해석하면, 다만 마땅히 기질이라고 말해야지, 기질성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다만 마땅히 진흙이라고 말해야지, 진흙을 진흙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본래 맑은 물이라고 일컬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노주의 설과 같습니다. 만일 이 또한 "원초의 물이다" 라고 말한다면 어찌 이치에 해가 되겠습니까? 만약 혼탁하기 때문에 침묵하여 원초의 물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 물은 과연 샘 가운데의 물이 아니고 중간에 사람이 만든 물이라는 뜻입니까? 그러므로 나의 견해로는 가만히 생각하기를 기질성이 비록 잡박하지만 성은 성이고 또 진흙물이 비록 혼탁하지만 물은 물입니다.노주가 논한 기질성은 기의 측면에서 설한 것이라는 것을 누가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습니까? 다만 그 결론은 요컨대 기라고 말하지 않고 요컨대 성이라고 말하였은즉, 그 이름을 세우고 조목을 결정하는 것이 리에 있습니까? 기에 있습니까? 했을 때, 리에 있는 것입니다. 기질성의 경계를 말하자면 마땅히 기라고 말해야 하고, 본연성의 경계를 말하자면 마땅히 리라고 해야 함을, 내가 비록 자질과 재주가 둔하지만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이미 그 성이 되는 바는 기질성도 성이 되고, 본연성도 성이 되는 것은 같기 때문에, 진실로 그 기를 겸하여 가리켰다고 하여 성이라는 명칭을 불허해서는 안 됩니다. 선사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아마도 다만 기질성과 본연성이라는 경계의 구별만 주장하고, 그 성이 동일하여 하나라는 것을 빠뜨리는 혐의가 없지 않을 듯합니다. 견우인성(犬牛人性)의 성을 《주자대전》에서는 비록 기질성이라고 간주했지만,185) 《주자집주》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순수함은, 사람과 물(物)이 다르다는 글로써 보자면, 이는 기를 따라 달리 나타나는 본연성으로, 선악을 겸한 불성(不性)의 성186)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외람되게 이 견우인성의 성(性)이라는 글자는 기질성으로 보아도 맞고 본연성이라 간주해도 옳다고 생각합니다.지금 이를 인용하여 사문에서 지척한 것이 악에 물들여진 성이라 논한다면 그것은 층위가 다른 듯하니, 이 내용은 마땅히 따로 논해야 할 것입니다. 대저 리와 기를 밝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어찌 식견을 증장하고 실천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매번 근일에 이기(理氣)를 설파하는 자들의 체신과 처사를 보면, 반드시 나머지 사람들보다 더 낫지 못하고, 혹은 미치지도 못하니 참으로 괴이합니다. 어찌 성인이 이른바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지만, 말을 잘한다고 꼭 덕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187)라는 것이 이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가만히 그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습니다. 매번 사람들과 명리를 강론하고 변명하는 즈음에는 나의 마음을 돌이켜 돌아보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유자(儒者)의 강변(講辨)은 시대의 폐단을 구하고 세상의 화를 그쳐 힘쓰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과 심을 논하면서 심하게 다투는 것이 근세 유문(儒門)의 폐단이 아니겠습니까? 풍속은 금수와 같게 되어서 윤리강상(倫理綱常)이 끊어지고 파괴된 것이 금일 천하의 화란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절대로 명목(名目) 사이의 부질없는 쟁변에 힘을 쏟아서 오래 쌓인 시대의 폐단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마땅히 윤리강상 위에 급급하게 뜻을 쏟아서, 크게 일을 처리할 방도를 세워 절반이라도 세상의 화란을 그치게 해야 합니다. 이 뜻을 우리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前書之詢, 非敢有貳於師訓, 但以疑之蓄也, 故不容不思問.蓋如以氣質性三字作氣運性,則孰敢疑之.今以氣質性性之一字, 作氣運性, 故有所未達.何也.以氣質性三字作氣運性, 則性與氣, 各占一字, 而性爲理致之實字, 是謂氣質所拘之理致也.以氣質性性之一字, 作氣運性, 則性與氣, 合成一字, 而性不過爲字音之虛字, 是謂氣質之氣運也.求之實理與詞法, 恐有所未䌥也.今承來喩,不分氣運性是解三字與一字, 槩以就氣上言者當之, 似未察先生之旨也.若以就氣上言者, 謂祉氣運性.則其所言者, 豈非理乎.是則還是氣質所拘之理之說也.豈先生禁不言理之本意乎.且若如此, 則從前所說氣質性三字, 孰有不就氣上言者, 另立氣運性題目, 欲以喚醒人乎,幸細商而更敎也.老洲以天命氣質兩性, 分體一與用殊.體一旣是理之體一, 則用殊獨非理之用殊乎.師門之以氣質性性字, 作氣運性者, 非正恐人帶着理字看乎, 此之謂疑.若不相似然者.來喩, 非謂無理之氣是混淪語法, 又非師門本意, 若如此則天下又安有無理之瓦石, 無理之糞壤乎.然指瓦石糞壤而名之曰理, 則豈成說乎.來喩此性爲惡所汨, 則當曰氣質性, 此水爲況所混, 則當曰沙泥水.二句正鄙說也.若必訓性以氣運, 則只當曰氣質, 不當曰氣質性, 只當曰沙泥, 不當曰沙泥水也.謂之本淸之水則不可者, 誠如老洲說.如曰此亦, 原初之水, 則又何害理.苟以混濁之故, 禁不言原初之水.則此水果非泉中之水, 乃中間人造之水耶.故淺見竊以爲氣質性雖雜, 而性則性爾, 沙泥水雖, 混而水則水爾.老洲之論氣質性, 就氣上說去者, 孰敢曰不然.但其決案, 不曰要之是氣, 而曰要之是性, 則其所以立名定目者, 在理乎在氣乎, 言氣質性地頭, 當曰氣.言本然性地頭, 當曰理.鄙雖鈍根, 亦豈不知.但旣曰其所以爲性者,一則固未嘗以其兼指氣而不許性之名也.如師訓, 則恐不無但主地頭之別, 而遺却其性一之嫌也.犬牛人性之性, 大全雖作氣質性, 以集註仁義禮智之粹然, 人與物異者觀之, 是隨氣異見之本然性, 非兼善惡之不性之性也.故妄以爲此性字, 做氣質性亦得, 做本然性亦得.今引此以論師門所指爲惡所汨之性, 似非其倫, 此則又當別論也.夫所貴乎明理氣者, 豈非欲長識見而資踐履乎.然而每見近日能說理氣者之行已處事, 未必有勝於餘人, 而或不及爲, 絶可怪也.豈聖人所謂有言者不必有德者此耶.僕見此等人, 心竊恥之, 不欲蹈其餘轍.每與人講辨名理之際, 反顧于己心, 有所兢兢也.儒者之講辨, 務在救時之獘.而息世之禍,性鬪心戰飛失揮戟者, 非近世儒門之獘乎.禽風獸俗, 絶綱破常者, 非今日天下之禍乎.爲今之計, 絶不可肆力於名目間閒爭辨, 以助積久之時獘.正宜汲汲注意於倫綱上大理會,息得一半分世禍也.此意吾輩不可以不知也.高明以爲如何.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 1763~1833)이다. 인물성동이론에 있어서는 인(人)과 물(物)은 근본적으로 이(理)가 같을 뿐만 아니라 신(神)도 동일하다고 전제하고, 그 동일하지 않게 나타나는 이유는 형기(形氣) 때문이라 하여 호론의 인물성이설(人物性異說)을 반대하고, 낙론의 인물성동설(人物性同說)을 일원분수(一原分殊)로 설명했다. 체일(體一) 본체가 하나라는 말이다. 용수(用殊) 작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천하에……있겠는가 와석분양(瓦石糞壤)은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에서 동곽자가, "이른바 도(道)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장자는 없는 데가 없다고 하면서, 땅강아지나 개미에도 있고, 피에도 있고, 기와나 벽돌에도 있고, 똥이나 오줌에도있다네.〔東郭子問於莊子曰, 所謂道,惡乎在? 莊子曰, 無所不在. 東郭子曰, 期而後可. 莊子曰, 在螻蟻. 曰,何其下邪?曰,在稊稗. 曰,何其愈下邪?曰, 在瓦甓. 曰, 何其愈甚邪?曰, 在屎溺.〕"라고 하였다. 견우인성(犬牛人性)……간주했지만 《맹자집주(孟子集註)》 〈고자 상(告子上)〉의 '생지위성장(生之謂性章)' 가운데 '사람과 사물의 성에 차별이 없다'는 고자의 논리를 반박하여 맹자가 말한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은가?〔然則犬之性, 猶牛之性, 牛之性, 猶人之性與?〕"라고 한 대목에 주자의 주(註)는 "맹자가 또 말하기를 '만약 과연 이와 같다면 개와 소와 사람이 모두 지각이 있고 능히 운동을 하니 그 성이 다를 것이 없다.'고 하니, 이에 고자가 스스로 그 말이 그른 것을 알고 능히 대답하지 못하였다.〔孟子又言, 若果如此, 則犬牛與人, 皆有知覺, 皆能運動, 其性皆無以異矣. 於是告子自知其說之非, 而不能對也.〕"라고 하였다. 선악을 겸한 불성(不性)의 성 기질지성 (氣質之性)이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 본래의 성품을 본연지성 또는 천지지성(天地之性)이라고 했을 때, 이에 대하여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성품을 말한다. 장재((張載,1020~1077)는 저서 《정몽(正蒙)》 〈성명(誠明)〉편에서 "형체가 있은 뒤에 기질의 성이 있으니, 이를 잘 회복하면 천지의 성이 그대로 보존된다[形而後有氣質之性,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라고 하였다. 즉,'기'는 궁극적인 실재인 '태허'로 정의되며 기가 양의 영향을 받으면 표면으로 떠올라 그 기운을 퍼뜨리며, 음의 요소가 강하면 기는 침잠하여 물질세계의 구체적인 것들을 응축·형성한다고 말했다. 덕이……아니다 《논어》 헌문(憲問)에 "덕을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이에 합당한 말을 하게 마련이지만, 그럴듯한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꼭 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 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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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0 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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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 현술에게 답함 무오년(1918) 答族弟希淑 賢述 戊午 덕행과 문장, 학업을 합일해야한다는 말에서 작은 성취에 안주하지 않는 성대한 뜻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덕행은 문장과 학업을 포함하지만 학업과 문장은 덕행을 포함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세 가지에 각각 치력(致力)한다면 끝내 합일되기 어렵거니와 오로지 덕행에 힘쓴다면 두 가지는 합일을 기약하지 않아도 합일할 것이다. 때문에 말하기를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이 있다."1)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온축하여 덕행이 되고 실행하여 학업이 된다."2)고 하였으니 참으로 미더운 말씀이다. 요순과 문왕 주공은 큰 덕행으로 빛나는 문장과 드높은 공업을 이루었으니 가장 으뜸이다. 공자와 안자 이하의 여러 성현은 문장이 진실로 여기에 있었으나 곤궁하여 지위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천하를 제도하진 못했으나 옛 성인을 이어 후학에게 길을 열어준 공적은 요순보다 뛰어나다. 이윤(伊尹)과 부열(傅說), 여상(呂尙)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학업이 저같이 탁월한 것은 그들이 성인의 도를 참여하여 들었고 몸소 군자의 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훈(伊訓)과 열명(說命)3), 단서(丹書)와 출사표(出師表)4)의 문장이 또한 후인의 보배가 된 것이다. 저 한유는 비록 문장에 뛰어난 자이나 끝내는 성현의 무리로 중시하는 바가 여기 덕행에 있었기 때문에 홀로 제자(諸子)의 으뜸이 되었고 불교를 배척한 학업 또한 위대하였다. 위앙(衛鞅)과 왕맹(王猛) 같은 족속이나 유주(柳州 유종원)와 미산(眉山 소동파)의 무리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은 자들로 비루하여 끼어 줄 것이 없다. 공문(孔門)의 사과(四科)5)에서 문학의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나 정사의 중유(仲由)와 염구(冉求)가 어찌 일찍이 덕행에 힘쓰지 않았으랴. 오직 그 힘쓸 바 덕행에 전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과 정사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덕행의 안연과 염옹(冉雍)이 문학과 정사에 짧다고 말한다면 확실한 의론이 아니다. 이것이 이른바 오로지 덕행에 힘쓰면 문장과 학업 두 가지는 저절로 합일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내온 문장을 보니 문사가 씩씩하고 뜻이 확고하여 족히 나약한 사람을 일으킨다. 그러나 세운 과목의 중요성의 여부와 용력(用力)의 전일함과 느슨함에 있어 혹 구별이 작기 때문에 나의 어리석은 견해를 개진하니 살피고 정정하여 회교(回敎)하기 바라노라. 德行文章事業合一之喩, 可見不安小成之盛.然吾嘗以爲德行包文章事業, 事業文章不能包德行.故三者各致其力, 則終難合一.專務德行, 則二者不期合而自合矣.故曰有德者, 必有言, 又曰蘊之爲德行, 行之爲事業, 亶其信哉.堯舜文周之大德, 煥乎之文, 魏乎之功, 尙矣.孔顔以下諸聖賢, 文固在玆, 而窮不得位, 故雖無康濟天下, 繼開之功, 賢乎堯舜.伊傳呂葛之業, 如彼卓然者, 以其與聞聖人之道, 而躬行君子之德也.故伊訓說命丹書出師表之文, 亦足爲後人拱璧.如韓愈氏, 雖工於文者, 終是聖賢之徒, 而所重在此, 故獨擅雄於諸子, 而闢佛之業, 厥亦偉矣.至若衛鞅王猛之屬, 柳州眉山之類, 棄本逐末者, 陋矣不足齒.如孔門之四科, 遊夏之文學, 由求之政事, 何嘗不務德行者哉? 惟其所務不專, 故止於此而已.然謂顔冉之德行, 短於文與政, 則非確論也.此所謂專務德行則二者自合者也.竊觀來章, 辭壯志確, 足以起懦.然於立科之賓主, 用力之專歇, 或少區別, 故爲陳瞽見 諒訂回敎也. 덕이……말이 있다 《논어》 〈헌문(憲問)〉에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으나 훌륭한 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온축하여……된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누편(陋篇)〉에 "성인의 도를 귀로 듣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그것을 몸에 쌓아 두면 덕행이 되고, 밖으로 행하면 사업이 된다. 저 문사만을 일삼는 사람은 비루하다.〔聖人之道 入乎耳 存乎心 蘊之爲德行 行之爲事業 彼以文辭而已者 陋矣〕"라는 말이 나온다. 《근사록(近思錄)》 〈위학(爲學)〉에도 실려 있다. 이훈(伊訓), 열명(說命) 《서경》의 편명이다. 〈이훈〉은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훈계한 내용이고, 〈열명〉은 은나라 고종(高宗)과 부열(傅說)에 대한 글이다 단서(丹書), 출사표(出師表) 《단서》는 주 무왕(周武王)이 즉위할 때 강태공(姜太公)이 올린 경계의 말씀이다. 《출사표》는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북벌(北伐)할 적에 2대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표문으로 우국충정의 내용이 담긴 명문장으로 유명하다. 공문(孔門) 사과(四科) 《논어》 〈선진(先進)〉에 보면 공자께서 제자들을 평하여 "덕행(德行)에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와 중궁이고, 언어(言語)에는 재아와 자공이고, 정사(政事)에는 염유와 계로이고, 문학(文學)에는 자유와 자하이다."라고 하였다. 후세에 이를 공문 사과(孔門四科)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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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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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련 구락에게 답함 기미년(1919) 答金巢蓮 龜洛 己未 그대가 시를 써서 보여준 뜻을 때때로 한번 읊조리니 참으로 크게 탄식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건대, 산은 무너질 수 있고 옥도 부서질 수 있어도, 굳건한 마음은 변하면 안 된다고 여깁니다. 세속의 비웃음은 저들이 시끄럽게 비웃는 대로 맡겨두고, 높은 모자와 넓은 띠는 감춰서는 안 됩니다. 거세고 험한 파도와 같은 신풍조는 그대로 하늘에 닿든지 내버려두고, 우리 유학의 명맥177)이 끊겨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그 밝은 하늘이 천추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제자로서 학문에 힘쓰는 것은 끝내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이 글을 보면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산중에서 보내는 세월은 족히 기억할 만한 것이 없고, 오직 책상 위의 한 질의 서책으로 날마다 회옹(晦翁)의 가르침178)을 받듭니다. 때때로 백풍(伯豊)과 안경(安卿)179) 등 제공들의 강독이 있으니, 몹시 계발(啓發)180)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대와 더불어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示意時一諷詠, 良足浩慨.然僕謂岡可崩玉可碎, 鐵心石膓不可渝也.世笑俗嗤, 任爾喧聒, 冠峨帶博, 不可藏也.鯨濤鰐浪, 任爾滔天, 吾之洙泗一棹, 不可摧也.要之幷與皓天而千秋不返, 弟子之勉學, 終不可已也.高明見此, 又以爲如何.山中日月, 無足記者, 惟案上一部書, 日承晦翁之謦欬.時有伯豊安卿諸公之講貫, 殊有啓發之樂.而恨不與高明共之也. 유학의 명맥 수사(洙泗)는 중국 산동성 곡부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강물 사이의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보통 유가(儒家)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회옹(晦翁)의 가르침 《주자대전》를 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풍(伯豊)과 안경(安卿) 후창의 제자이거나 친구들로 함께 《주자대전》을 강독하고 있는 것 같다. 계발(啓發)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한다면 다시 더 일러 주지 않아야 한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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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답하다 기미년(1919) 答族弟希淑 己未 보내온 편지에서 먼저 부로(父老)께서 서재를 설립하여 가르침을 세운 뜻이 이처럼 은근한데도 자제들이 면학하여 몸을 성취하지 못함을 근심하였으니 이는 전 가문의 공통된 근심이다. 마지막엔 자신을 반성하고 질책하여 부형의 소망을 저버릴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기의 실질적인 병통을 근심한 것이다. 전 가문을 근심함은 인(仁)이고 자기를 근심함은 지(智)이니, 간절하고 부지런히 인지를 추구하는 자는 우리 희숙이로다. 그러나 전 가문의 근심은 서로 수양하고 면려함은 있지만 그 성취의 여부는 오로지 나에게만 있지는 않은 즉 희숙이 금일에 부지런히 애써 얻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것도 참으로 자기에게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일찍이 생각하기를 가문의 부로가 되기는 오히려 가능해도 희숙의 부형은 더욱 능하기 어렵다고〔難能可貴의 뜻〕 여겼다. 가문의 자제가 성취가 없는 것은 오히려 설명할 수 있거니와 희숙의 성취가 없는 것은 이럴 이치가 없으니 어째서인가? 몸소 경작하며 학문에 힘써 오래도록 게을리 않는 분이 누가 희숙의 엄군(嚴君)과 같았으며, 공부와 학문을 쌓아 나아갈수록 더욱 독실함이 또한 희숙처럼 염족(厭足)하지 않는 자가 있었던가. 나는 이 때문에 말하기를 "희숙의 부형의 능하기 어려움으로 보아 희숙의 학문은 반드시 성취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석년(昔年)에 선자(先子 돌아가신 부친)께서 내가 학문에 열중하기를 위하여 머리가 세도록 집안일을 하시면서 쓴 것을 달게 여기고 장원을 개척하고 묘소를 경영하며6) 숙수(菽水)를 마시면서도 후회 않으시고 불초의 학문이 성취되어 가문의 명성이 창성하기를 바라셨다. 불초 또한 이를 어버이에게 보답하는 큰일이라고 여겼다. 어찌 알았으랴, 학문은 성취하기 어렵고 생명은 유한하여 나의 학문과 부모의 생명 둘 다 기대할 수 없어 갑자기 천고의 한이 되었음을.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현양함도 헛된 지경이 되었고 자식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해 그 죄가 참으로 커서 천지를 우러르고 굽어봄에 회한한들 어찌 미칠 수 있으랴. 세월은 쉽게 잃고 좋은 기회는 지속되기 어려우니, 부디 고명한 그대는 나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때에 미쳐 일신의 학문을 완성하여 후회를 남기지 말지어다. 분방(分房 집안이 나뉨)은 오래 되었지만 친아우처럼 여기므로 외람되이 속말을 드리니 깊이 헤아려 꾸짖지 말지어다.근자에 《의례》 일단을 읽고 지은 글은 전중(典重)하고 간아(簡雅)하여 고문의 기상이 있으니 희숙이 문사로 뜻을 전달함이 이와 같도다. 선비가 삼일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한다는 것이 진실 된 말이다. 문장은 도가 보존된 바가 아니나 문장이 아니면 또한 도를 전할 수 없다. 근일에 문장이 끊김이 이보다 심할 수는 없는데 그대가 여기에 뜻을 두고 보추(步趨)가 자못 심상하지 않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힘쓰고 힘쓸지어다. 來書, 首以父老之入齋設敎, 若是其勤, 而子弟之不勉學成身爲憂, 此則全門之通患也.終之反躳責已, 惴惴焉惧負父兄之望, 是乃憂一已之實病也.全門之憂仁也, 一已之憂智也, 懇懇勤勤求厥仁智者, 其吾希淑乎.然全門之憂, 交修胥勖則有矣, 而其成與否, 有不專在我, 則希淑今日之孜孜矻矻, 不得不措者, 又不亶在於一已乎? 吾嘗以爲全門之父老, 猶可能也, 希淑之父兄, 更難能也.全門子弟之無成, 猶可說也, 希淑之無成, 無是理也, 何也? 躬耕縱學, 久而不倦, 孰有如希淑之嚴君者乎, 積功累學, 愈往愈篤, 又有如希淑之不厭者乎? 吾故曰希淑父兄之難能, 而希淑之學之必成也, 昔年先子, 爲不肖縱學, 白首幹家, 苦以爲甘, 斥庄經斧, 啜菽靡悔, 庶冀不肖之學成而昌家聲也, 不肖亦以此爲報親之大者也.孰知難成者學? 有限者壽, 兩相不待, 遽作千古之恨, 立身顯親, 旣歸虛境, 闕修子職, 其罪孔大, 俯仰穹壤, 悔恨何及.流光易失, 好會難常, 幸高明視我爲覆轍折肱, 而及時成身, 毋胎後悔也.分房雖遠, 親弟是視, 猥進肺言, 深諒不讁.近讀儀禮一段爲文, 典重簡雅, 有古文氣味, 希淑辭達, 乃若是乎.三日刮目, 眞實語也.文非道之所存, 非文亦無以傳道.近日文絶,莫此爲甚, 而高明有志乎此, 步趨頗不尋常, 幸甚幸甚.勉之勉之. 장원을……경영하며 원문은 '斥庄經斧'인데 뜻이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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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族弟希淑 甲子 풍년에는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쌀알이 흩어져도 아낄 줄 모르다가 흉년엔 배가 텅 비어 흩어진 쌀알을 구해도 얻지를 못한다. 나는 현제(賢弟)에게 유시할 것이 있다. 한창 동당에서 무릎을 좁힐 때에는 착한 말이 양양하게 충만하여 변함없이 지속되리라 여기지만 급기야 소식이 끊겨 쓸쓸하게 앉은 연후에 전날의 놀이를 회상하면 천상의 즐거움 같다. 지난번에 준 두 편지는 감사하게 받았다. 전씨를 준엄하게 질책했으니 그 마음을 깨우겠고 정씨를 명백하게 유시한 것은 그의 미혹을 돌이킬 만하여 모두 후세에 전해져 떳떳할 만하다. 이와 같은데도 깨우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면 또한 다시 어찌하겠는가. 이처럼 시비가 전도되고 착란한 날을 맞아 그대 같이 곧지만 각박하지 않고 상세하지만 번다하지 않는 문필(文筆)로 유연히 사람을 감동시키고 크게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다행히 동지 가운데 있고 더욱 더 다행히도 동종(同宗) 가운데 있는 것이 어찌 우연이랴. 나는 심히 기뻐하노라. 듣자니 올 겨울에 문장에 크게 힘을 쏟았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러한가? 뿌리가 이미 견고하고 체재 또한 갖추어져서 일은 절반이지만 공은 반드시 배가 될 것이다. 힘쓰고 힘쓴다면 강하(江河)가 터지듯이 패연(沛然 세찬 모양)하여 막지 못함을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젊어서부터 문자에 자못 우활하고 게을러 힘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이단을 물리치는 일을 당하여 문사가 뜻과 어긋나 전달하기 어려움을 느끼니 매우 스스로 후회하고 한스럽게 여긴다. 저들이 짊어진 죄가 산과 같은데도 교만하게 날뛰며 스스로 득의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단지 그들의 해미(蟹尾)와7) 같은 글을 믿는 것이니 더욱 애통하고 가증스럽다. 그렇지만 천하의 시비는 의와 불의일 뿐, 저들이 글을 쓴다면 나는 나의 의(義)를 쓸 것이니 내가 어찌 저들을 두려워하겠는가. 기억하건대 옛날에 선사께서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오이견(吳而見 오진영의 자)의 글은 기이함을 숭상하여 본받을 것이 없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종현(鍾賢 김택술의 자)의 문장은 또한 스스로 뜻을 전달하니 삼가 기이함을 숭상하는 오이견의 글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비록 근본을 중시하고 기대와 면려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문장에 능하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오이견의 문장을 취하지 않으신 뜻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할 것도 없으니 어진 아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그대가 편지에서 용감하게 나아가고 견해가 분명하여 조용히 (사문의 도를) 발휘한다고 나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전 호남의 명맥이 나 한 몸에 달려있다고 여기니,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로되 인물평8)의 잘못됨이 이 지경에 이른단 말인가. 설사 몇 가지 근사한 것이 있어도 어찌 이렇게 여러 어른 가운데에서 우열을 따진단 말인가. 어찌 사체(事體)와 예의에 합당하겠는가. 내가 희숙이 나를 알지 못한다고 여긴 것은 곧 이 점에 있고, 마땅히 갈고 닦을 것도 이 점에 있다고 여기네. 그러나 그대의 뜻은 진실로 덕으로써 사랑해 주는데서 나왔으니, 도타운 뜻을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樂歲合哺鼓腹, 粒米狼戾, 而不知惜也.饑年饉秋, 腹枵然, 而求狼戾之米, 不可得也.吾於賢弟有喩焉.方其促膝于同堂, 昌言洋洋充然, 以爲常久也, 及乎鴈斷魚沈, 索然悄坐然後, 回想前遊如天上樂也.二書向荷投示, 責田峻切, 可警其心, 喩丁爽白, 可回其惑, 皆可傳有辭於後, 若此而不警不回, 則亦復何哉? 當此是非倒錯之日, 如君直不傷刻, 詳不失煩之筆, 有能油然感人轟然警人者, 幸而在同志中, 又尤幸而在同宗中, 豈偶然哉? 吾深喜之.聞今冬大肆力于文章云, 信然否? 根旣固矣, 體又具矣, 事將半而功必倍矣.勉旃勉旃, 江河之決, 吾見其沛然莫禦也.吾則於文字, 少頗迂懶不致力.今當言距之役, 覺得戞戞乎難達, 殊自悔恨.彼邊之負罪如山, 而驕騰跳踉, 自以爲得者, 徒恃若爾輩蟹尾之文, 尤極痛憎.雖然天下是非義與不義而已, 彼以其文, 我以吾義, 吾何畏彼哉? 記昔先師雅言曰, 吳而見之文, 尙奇不足法, 又謂之曰鍾賢之文.亦自達意, 愼勿效尙奇如而見文.此雖出於重本期勉, 而非謂澤述之能於文也, 然其不取吳文之意, 較然矣, 然則不惟不當畏.亦不足畏, 未知賢弟以爲如何? 若盛喩之以進勇見明, 從容發揮與我, 至謂全湖之命脈, 在我一身.君非不知我者, 月朝之失, 一至於此.設有一二近似者, 遽此軒輊於諸丈中, 豈當乎體禮? 吾以爲希淑之不知我者, 正在此處, 所當磨礱處, 亦在於此也.然其意則固出於以德之愛, 厚意曷不領納. 해미(蟹尾) 게가 기어가는 것처럼 가로로 쓰는 글자라는 의미로 한문 이외 영어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물평 원문은 월조(月朝)로 월단(月旦)과 같아 인물평으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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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재문계안 서문 【임오년(1942)】 思敬齋門契案序 【壬午】 우리 김씨(金氏)는 군사공(郡事公 김광서(金光敍))이 처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안장되고, 대호군공(大護軍公 김당(金璫))과 직장공(直長公)이 두 아들로서 부장되면서부터 두 파의 자손이 대대로 이곳에 계장(繼葬)되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자자하게 김씨 선조의 산이라 일컬었다.우리 파는 직장공에서 나왔는데, 첨지공(僉知公)과 임실공(任實公)이 분동(粉洞)에 따로 안장된 것을 제외하고는 5,6대 23여의 신위가 모두 석동에 있다. 직장공 묘사(墓祀)는 석동의 원 재실(齋室)에서 대호군공과 함께 군사공의 제삿날에 행하였고, 계장한 여러 신위는 분동파의 재실에서 나누어 희생과 제수를 받들어 올리고 같은 날에 합사(合祀)하였는데, 지역이 조금 멀어서 의례에 혹 허물이 있었다.이에 병인년(1926) 봄에 묘 근처에 따로 병사(丙舍)를 짓고 《논어》의 가르침을 취하여 '사경재(思敬齋)'라 이름을 붙였다. 비용은 죽계(竹溪 김횡(金鋐))과 화곡(火谷 김명(金銘)) 두 선조를 배향한 유천서원(柳川書院)의 옛 제전(祭田) 19마지기[斗落]를 매각한 금액에서 내고, 각 파에 배당하여 추렴한 것을 보태어 마련하였다. 비록 그럭저럭 완공하였지만 유지할 자본을 여전히 많이 갖추지 못한 지가 거의 20여 년이 되어갔다.속수옹(涑水翁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집안을 다스리는 자는 항상 조금씩 여분을 남겨 두어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종족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어찌 유독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생각지 못한 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현재 갖추지 못한 것을 근심함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올해 10월 상정(上丁 매달 음력으로 상순에 드는 정의 날)에 제사를 지낸 뒤에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일제히 일어나 이 재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자는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빠짐없이 각기 약간의 금액을 내어 하나의 계를 세워 더욱 부지런히 축적하고 더욱 오래도록 전함으로써 가깝게는 현재의 근심을 풀고, 멀게는 재화가 넘쳐나기를 도모하였으니, 대체로 작년 가을에 10여 사람이 처음 창립한 것을 인하여 넓혀 확대한 것이다.성명을 나열해 쓰고 아울러 출연한 금액을 기록하여 '사경재문계안(思敬齋門契案)'이라 명명하고 나에게 서문을 써 줄 것을 청하니, 내가 말하였다."이런 계를 두다니, 훌륭한 일이다. 무릇 그런 뒤에야 제사에 공경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안과 밖이 동일하고 처음과 끝이 온전해야 쇠퇴하지 않음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니, 감히 서문을 기꺼이 써서 서로 힘쓰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계는 선조를 길이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위함이 있어 행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후손이 장성하는 대로 해마다 추가해 넣을 것이니, 이것이 또 기록할 만한 훌륭한 규범이다." 吾金自郡事公始葬扶之席洞山, 大護軍公、直長公以二子祔焉, 兩派子孫, 世世繼之. 邦人藉藉稱金氏祖山. 吾派出自直長公, 而僉知公、任實公, 別葬粉洞以外, 五六世二十餘位, 皆在席洞. 直長公墓祀, 自席洞元齋, 同大護軍公, 行於郡事公祀日, 繼葬累位, 分自粉洞派齋, 奉進牲需, 合祀同日, 而地稍遠, 禮或有愆. 乃於丙寅春, 別築丙舍於墓近, 取論語之訓, 扁以思敬齋. 費出竹溪、火谷二祖柳川院舊日祭田十九斗落斥賣金, 助以各派排醵而成之. 雖苟完矣, 然維持之資, 尙多未備者, 殆將卄載. 涑水翁曰: "治家者, 常須稍存贏餘, 以備不虞, 洽宗事者, 何獨不然? 況不待不虞而現病未備乎? 是歲十月上丁, 行祀之餘, 僉議齊發, 凡祀祖于是齋者, 無遺老少, 各出若干金, 樹一契, 蓄之彌勤, 傳之彌久, 用圖近紓而遠贏, 蓋因昨秋十餘人草創而張大之也. 旣列書姓名, 幷記所出金額, 命之曰'思敬齋門契案', 請余序之. 余曰: "有是哉, 善物也. 夫然後於祭思敬乎. 外內一, 始終全, 庶保不替矣. 敢不樂爲之書而交勖焉. 玆契也, 出於永慕祖先, 而非如世人一時有爲而爲之者. 故隨其長成, 逐年追入, 是又善規之可書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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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계안 서문 【병인년(1926)】 尙志契案序 【丙寅】 자신의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는 사람을 '지사(志死)'라 일컬은 것80)은 공자가 진실로 변화된 세상에 대해 말한 것이고, 맹자가 선비의 일삼는 바를 말하여 '뜻을 고상하게 가진다[尙志]'는 것으로 귀결시킨 것81)도 또한 쇠퇴한 세상을 뜻한 것이었다.세상의 풍속과 교화가 쇠퇴하면서부터 선비가 뜻을 고상하게 가지지 않음으로써 사욕의 문이 열리고 편안한 집[安宅]82)이 닫혔으며, 이욕의 길이 통하고 정도의 길이 막힌 지가 실로 오래되었는데, 게다가 앞에는 자신의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일이 발생하고, 뒤에는 목숨을 바쳐야 할 일이 있는 상황까지 더해진다면 인을 이루고 의를 취하여 지조를 잃는 데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시대가 내려올수록 백성들이 더욱 거짓된 짓을 하면서 음흉하고 괴이한 무리들이 사욕의 문에 의거하여 편안한 집으로 인식하고, 이욕의 길을 달려 바른 길을 속이는데다가 목숨을 바치고 시신이 도랑에 버려지는 상황이 닥쳐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인륜을 어그러뜨리고 도를 해치는 죄악에 빠지는 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잇달아 일어나면서 거듭 천하와 후세를 그르치니, 아, 세도의 재앙이 또한 비참해졌다.영재인 친족 사의(士毅)ㆍ문경(文卿)과 임군 정로(林君貞老) 및 내 동생 여안(汝安)은 같은 스승을 두고 같은 마을에 살면서 뜻을 함께하였는데, 비참한 재앙을 목격하고서 그 근원이 선비들이 뜻을 잃은 데에 있음을 간파함으로써 저 무리들을 통렬히 배척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았으며, 자신들이 뜻을 고상하게 가지는 것이 오히려 신실하지 못할까 거듭 두려워하였다. 이에 함께 의논하여 규례를 내고 계안(契案)을 세워 '상지계(尙志契)'라 명명하고, 매년 양(陽)의 기운이 생겨나는 날(동지)에 서로 자득한 것을 강론하고 질정하였으니, 그 마음은 바로 쇠퇴한 물결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지주(砥柱)가 되고, 그 일은 이웃한 연못이 서로 물을 대주는 격이었다.내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말하였다."무릇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고, 몸을 주관하는 바이니, 바로 선악의 기관이 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뜻을 세워라[立志]', '뜻을 지켜라[持志]', '뜻을 책망하라[責志]' 등의 말을 두었으니, 말은 비록 다르지만 뜻은 대체로 '뜻을 고상하게 가지라[尙志]'는 것과 같다.그러나 모두 이치를 궁구하고 선(善)을 밝히는 방도에 미치지 못한다. 오직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한다.83)'라는 한마디 말만이 강론하고 생각하며 묻고 변별하는 일에 속하여 선비들의 급선무가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과 사욕, 의리와 이욕을 혹 변별할 수 없어 뜻에 얻지 못한 바가 있게 된 지가 오래전일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 뜻을 겸손하게 하는 것은 앎의 일이고, 뜻을 높게 하는 것은 행위의 일이며, 뜻을 겸손하게 하는 것은 시작의 일이고, 뜻을 높게 하는 것은 끝의 일이니, 청컨대 계안 내의 사람이 먼저 뜻을 겸손하게 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뜻을 고상하게 하는 데에서 공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在壑殺身之稱志士, 孔子固以言乎變也, 孟子言士之所事而以尙志爲歸者, 其亦衰世之意歟. 自世敎衰, 士不尙志, 私門開而安宅廢, 利塗通而正路塞者, 固已久矣, 而復加之以溝壑迫前, 刀鋸在後, 則其能成仁取義, 而不陷乎失身之罪者, 蓋無人焉. 逮夫近日, 世愈降而民滋僞, 乃有陰怪之流, 據私門而認安宅, 趨利塗而欺正路, 無刀鋸溝壑之迫, 而自陷悖倫賊道之惡者, 比肩接踵而起, 重以誤天下後世. 世道之禍, 吁亦慘矣. 族英士毅ㆍ文卿、林君 貞老、及家弟汝安, 同師同閈同志也. 目見慘禍, 鞠其源在士之喪志, 旣痛斥彼流, 而知所懼, 復懼吾之尙志尙未實, 議與發例立案, 命名曰'尙志契', 用每歲陽生日, 互相講質所得, 其心乃頹波之獨柱也; 其事則麗澤之相沃也. 余聞之喜而爲之言曰: "夫志者, 心之所之, 身之所主, 乃善惡之機關. 故古人有立志、持志、責志之云, 言雖殊, 而義槩同乎尙志. 然幷未及窮理明善之方. 惟'惟學遜志, 務時敏'一語, 屬乎講思問辨, 而爲士之急務. 不然, 仁私義利, 或不能辨, 而志有所不得尙矣. 余謂遜志, 知之事; 尙志, 行之事, 遜志, 始之事; 尙志, 終之事. 請案中人之先難乎遜志, 收功於尙志. " 자신의 …… 것 제나라 경공(景公)이 사냥을 나갔을 적에 대부를 부를 때 사용하는 깃발[旌]로 원유(苑囿)를 지키는 관리를 부르자, 그 관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부름에 응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지사는 자신의 시신이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아니하고,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칭찬한 말이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이고,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는 일은 없고,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루는 일은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는 말이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보인다. 맹자가 …… 것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제(齊)나라 왕자 점(墊)이 선비는 무엇을 일삼느냐는 물음에 맹자가 "뜻을 고상하게 가진다.[尙志]"라고 답한 말이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편안한 집[安宅] 인(仁)을 비유하는 말로,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배움은 …… 한다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여짐이 올 것이다.〔惟學遜志, 務時敏, 厥修乃來.〕"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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