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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191) 萬東廟 낙양산 앞 우뚝 솟은 황묘여 巍巍皇廟洛山前특별히 이곳 동천에 숭정을 두었다네 別有崇禎此洞天깊은 은혜 위대한 공적 끝내 잊을 수 없었으니 深恩偉烈終何忘우제192)와 소사는 예로부터 그러했네 虞祭昭祠古亦然누린내 삼천리 강산에 가득하고 腥塵漠漠三千里향기로운 제수가 오륙 년 사이에 사라졌구나 芬苾寂寂五六年한밤중 우렛소리 며칠이던가 半夜雷聲知幾日온 봉우리 뭇 골짝에 찬 안개 감싸네 千峯萬壑鎖寒烟 巍巍皇廟洛山前,別有崇禎此洞天.深恩偉烈終何忘?虞祭昭祠古亦然.腥塵漠漠三千里,芬苾寂寂五六年.半夜雷聲知幾日,千峯萬壑鎖寒烟. 만동묘 1740년년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 신종을 제사 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을 말한다. 우제 장사를 지낸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 명나라 의제가 죽은 후에도 혼백을 기리며 평안하기를 바라는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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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궁암193) 泣弓巖 나이 많은 노인 그해 눈물 흘리니 大老當年淚분명 임금께서도 오셨으리라 分明天日臨스산한 한 조각의 바위가 蒼凉一片石후인들의 시가 될 수 있었네 堪作後人吟 大老當年淚,分明天日臨.蒼凉一片石,堪作後人吟. 읍궁암 송시열이 효종을 그리워하며 제삿날마다 올라 통곡하였다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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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인종의 교졸시를 차운하여 소군 태화 진석 에게 보냄 敬次仁宗巧拙詩贈蘇君太化【鎭奭】 교묘가 졸열의 무능함을 비웃어도 巧嗤拙無能졸열은 교묘와 대적하긴 어렵다네 拙與巧難敵교묘는 간혹 사특과 위선을 행하고 巧或涉邪僞졸열은 대부분 법도만을 고수하네 拙多守繩尺졸열은 매일 하루 더 나아가고 拙日進一日교묘는 날마다 하루 더 물러나지 巧日退一日졸열은 도리어 큰 날개를 떨치고 拙反奮大翼교묘는 곧 가벼운 나비도 되지 巧乃作輕蝶군자의 뜻은 견고하기가 바위와 같고 君志堅如石군자의 성품은 촘촘하기 베와 같네 君性密如織스스로 재주가 졸렬하다 말하지만 自言才拙樸배움에 힘쓰며 날마다 급히 하네 劬學日以急내가 아는 거라고는 졸렬은 곧장 이르지만 吾知拙直至교묘함은 성인도 세월을 기약해야 하니 巧聖期歲月다만 허와 실에 공들이는 것에 관계할 뿐 但係功虛實두터움과 얇음에 구애받지 마시게 不拘禀厚薄 巧嗤拙無能,拙與巧難敵.巧或涉邪僞,拙多守繩尺.拙日進一日,巧日退一日.拙反奮大翼,巧乃作輕蝶.君志堅如石,君性密如織.自言才拙樸,劬學日以急.吾知拙直至,巧聖期歲月.但係功虛實,不拘禀厚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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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정기 【임진년(1952)】 棲巖亭記 【壬辰】 대저 오직 이름난 사람이 이름난 곳에 정자와 누각을 짓고 주인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름난 정자와 이름난 누각이 된다. 그렇지 않고 범문정(范文正)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비록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하더라도 한갓 파릉(巴陵)의 아름다운 풍경일 뿐이고, 육일옹(六一翁)이 주관이 되지 않으면 비록 제정(滁亭 취옹정(醉翁亭))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여러 봉우리 가운데 숲이 우거진 골짜기일 뿐이다. 예로부터 그러하였으니, 오늘날이라고 해서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내가 나라 가운데 알고 있는 것으로 논하면 교남(嶠南 영남(嶺南)) 함안군(咸安郡) 의사(義士) 조공(曹公)의 서암정(棲巖亭)이 이것이다. 그 사람으로 말하면 연재(淵齋) 송문충 선생(宋文忠先生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충효와 지조, 절개가 있고, 학문과 도의(道義)를 이루었으니, 이름난 사람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지역으로 말하면 여항산(艅航山)79)이 그 신령함을 길러주고, 평암(平巖) 마을이 그 터전이 되었으며, 앞에 긴 시냇물이 흘러 산수의 경치가 아름답고 깨끗하며, 구름과 안개가 깊고 그윽하니, 명승지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이름난 사람과 이름난 곳이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하니, 이름난 정자라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손과 문인들이 공을 위해 이 정자를 짓고, 공이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공의 풍모를 들은 사람이 이곳에 올라 보고 즐기면서 이와 같이 공공연하게 칭송하고 찬미하는 것이 당연하다.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과 지역, 정자를 궁구하면 주객의 구분이 있다. 중니(仲尼 공자)는 참으로 따로 거처하는 장소가 없었고, 회옹(晦翁 주희(朱熹))은 비록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었지만, 그가 대현(大賢)이 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았으니, 지금 이 정자는 진실로 객 중의 객이고, 이요(二樂)의 관람과 동정(動靜)의 이치80)도 또한 참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실상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나는 이 정자에 거처하면서 선조의 일과 선사의 학문을 이어 받아 계승할 자손과 문인, 이 정자에 올라 공의 유풍을 느끼고 생각할 나라 사람과 후배들이 또한 먼저하고 나중에 할 바를 알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바로 성인 문하의 스승과 학생이 바로 철저하게 궁구해야 할 의론이니, 잘 살펴보는 자는 이 정자를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夫惟名人作亭樓乎名區而主之, 乃爲名亭名樓, 不然而無范文正以主之, 雖有岳樓, 徒然巴陵之勝狀, 無六一翁以主之, 雖有滁亭, 只是諸峯之林壑.古來然矣, 今豈有異? 以余國中所知者論之, 嶠之南咸安郡義士曹公之棲巖亭是已.之人也, 以淵齋 宋文忠先生門人, 有忠孝志節, 成學問道義, 可不謂名人乎? 之地也, 艅航之山毓其靈, 平巖之里作其址, 前有長溪, 泉石芳潔, 雲霞幽深, 可不謂名區乎? 名人名區, 相得益章, 可不謂名亭乎? 宜乎子孫門人爲之卜築斯亭, 而公之藏修乎斯也.聞公之風者, 登臨觀賞, 而公誦贊美藉藉之若斯也.雖然, 人、地與亭, 究有賓主之分.仲尼固未聞別業之居, 晦翁雖有武夷精舍, 然其爲大賢, 不在此焉.今玆之亭固賓之賓也.二樂之觀、動靜之理, 亦非其眞, 乃其實有在焉.吾意其子孫門人之居斯亭而紹述、邦人後生之登斯亭而感想者, 宜亦知所先後也.然此乃聖門師生直窮到底之論, 則善觀者, 勿謂不重視斯亭也. 여항산(艅航山)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위치한 산이다. 이요(二樂)의 …… 이치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인한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 知者樂, 仁者壽.〕"라고 한 데에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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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 우연히 읊음 秋後偶吟 가을 기러기 울고 또 북풍이 부는데 霜鴈聲聲又朔風객창 안에서 국화와 단풍 헛되이 보내네 菊楓虛負客牕中돌아가 책을 구하여 좋은 흥취 많이 생기니 歸求黃卷多佳興천고의 성인을 벗으로 삼음174)에 뜻과 기운 같지 尙友千年志氣同 霜鴈聲聲又朔風,菊楓虛負客牕中.歸求黃卷多佳興,尙友千年志氣同. 천고의……삼음 이른바 '상우천고(尙友千古)'이다. "이 세상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면 다시 옛 시대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그의 삶을 논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옛 시대로 올라가서 벗하는 것이다." 《孟子 萬章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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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 국진을 면려함 勉崔君國鎭 지성이면 법도에 맞을 것이요 至誠中規矩안목을 밝게 하면 차고 이지러짐 알리라 明眼識盈虧참된 공적이 이르길 바란다면 待到眞功積옛사람 또한 따를 만하리 古人也可隨 至誠中規矩,明眼識盈虧.待到眞功積,古人也可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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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보름날에 두승산에 오르려고 하였으나 비가 내려 그렇게 하지 못하였기에 淸和望日 欲上斗升山有雨未果 영주산을 멀리서 바라보니 또 묘연하네 望望瀛岑却渺然비가 내려 유선암 방문을 포기했다네 雨中虛負訪遊仙-두승산에 유선암이 있다.- 【斗升山有遊仙菴】꽃 더뎌 여전히 앞 봄빛을 띠고 있고 花遲尙帶前春色산은 푸르러 태고의 하늘 지나온 듯 山碧曾經太古天호남 바다 풍광이 어디에 한계가 있나 湖海風光何有限서책의 참 운치 또한 끝이 없으니 簡編眞趣且無邊-이하 글은 없다.- 【以下缺】 望望瀛岑却渺然,雨中虛負訪遊仙.【斗升山有遊仙菴】花遲尙帶前春色,山碧曾經太古天.湖海風光何有限?簡編眞趣且無邊.【以下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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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일 만종에게 보냄 경오년(1930) 與劉于一 萬鍾 庚午 그대의 자질은 순실(淳實)하고 성근(誠勤)하며 독서를 좋아하고 묻기를 잘하니 대체적으로 자질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맹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선인(善人)이라 이른다."라고 했는데, 주자는 이를 자품(資品)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자질이 있다는 것은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지만 주자는 또 말하길 "좋은 자질의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지극한 도리에 이르렀다는 말은 듣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자질은 이처럼 믿을만한 것이 못되니 족히 다행으로 여길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과 불행의 사이에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또 예로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끝내 요순(堯舜), 주공(周公), 공자(孔子)의 경지에 들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학문의 큰 방도입니다. 학자는 그 기질을 변화시키기를 추구하지만 능히 변화된 자는 드뭅니다. 비록 변화시키되 타고난 기분(氣分)의 찌꺼기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요? 그대는 돌아가서 생각해 터득하여 나에게도 알려주어 서로 교학 상장의 자질로 삼기를 청합니다. 君之資質, 淳實而誠勤, 好讀而能問, 蓋質美者也.孟子曰可欲之謂善, 朱子釋以資稟好.人之有美質, 豈非幸哉? 雖然, 朱子又曰美質易得, 至道難聞.美質之不可恃如此, 則無足以爲幸.幸與不幸之間, 將何以處之? 且從古以來, 美質不爲不多, 終不入堯舜周孔之域者, 其故何歟? 變化氣質, 爲學大方.學者求燮其質, 而能變者鮮.雖變之而不能無氣分査滓者, 又何故歟? 請歸思得之而喩我, 作相長之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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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에게 보냄 與朴 鍾基 초연히 고명(高明)한 경지를 멀리 바라보고, 탁연히 통렬하게 범루(凡陋)한 자태를 끊는다고 하였으니, 한갓 만권의 책을 읽는 것이 요긴한 말 한마디만 못한 것입니다. 작은 행실을 자긍하지 못한다면, 어찌 구인(九仞 높은)의 성공을81) 바랄 수 있겠습니까? 超然乎遠覽高明之域, 卓然乎痛絶凡陋之態, 徒讀萬卷.不如一語喫緊, 不矜細行, 豈望九仞成功? 작은……성공을 "작은 행실에 조심하지 않으면 끝내 큰 덕에 누를 끼쳐서, 아홉 길 높이의 산을 만드는 데, 공이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무너진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하였다. 《서경(書經)》 〈여오(旅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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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관에게 보냄 을묘년(1915) 寄炯觀 乙卯 지금 일에 대해서도 홀로 깨끗하였고162) 지난번의 네 의견도 또한 나와 합치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일전에 너의 계부(季父) 말로는 종중(宗中)의 중론이 이르기를 "형관(炯觀)이가 결코 법도 없이 족보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고 하였다니, 이 얼마나 중망(重望)을 받는 말이냐. 사람이 이를 얻기도 또한 쉽지 않다. 결코 부화뇌동 남을 따라하여 이 논의를 꺼낸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말거라. 對今事而獨淸, 向見汝意, 亦與吾合, 何幸如之.向日, 汝季父言, 宗中衆論謂:"觀也決非無法而譜者.", 此爲何等重望語.人而得此, 亦不易易.切勿詭隨於人, 使爲此論者, 歸於失望也. 홀로 깨끗하였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모두 탁한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 취했는데 나만 정신이 또렷하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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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서사 즉흥시 萬宗書社卽事 초강이 둘러 푸르고 두산은 높으니 楚江縈綠斗山峨백아와 종자기도 이곳을 들렀으려나223) 倘有牙期此裏過누각은 하늘로 솟고 추위에 눈이 올 듯 樓閣聳霄寒欲雪뜰 그늘은 물 같아 비취 나부껴 물결치는 듯 園陰如水翠飜波곤궁한 처지에서 생계를 어찌 꼭 물으랴 窮途活計何須問도처에 맑은 인연 또한 매우 많다오 到處淸緣亦已多저녁 무렵 옷깃 헤치니 바람 솔솔 불어 向晩披襟風細細새 시로 문득 꾀꼬리 노래에 화답하네 新詩輒動和鶯歌 楚江縈綠斗山峨, 倘有牙期此裏過.樓閣聳霄寒欲雪, 園陰如水翠飜波.窮途活計何須問, 到處淸緣亦己多.向晩披襟風細細, 新詩輒動和鶯歌. 백아와 …… 들렸으려나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그의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좋구나. 아아(峨峨)하여 태산(泰山)과 같도다." 하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좋구나. 양양(洋洋)하여 강하(江河)와 같도다."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는데, 초강과 두산을 고산(高山)과 유수(流水)에 빗대어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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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기 【병자년(1936)】 彌勒記 【丙子】 미륵(彌勒)은 석불(石佛)의 별명이다. 석씨(釋氏)는 허무를 숭상하였으니, 그의 말 중에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여래(如來)를 보게 된다."81)라는 말이 있다.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음에도 또 불상(佛像)과 사탑(寺塔)을 많이 만들어 먼 훗날까지 오래도록 전할 계책으로 삼았으니, 형상을 형상으로 여기는 것이 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허무를 숭상한다면 이런 이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한즉 그 숭상하는 바가 실제적인 체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사물의 형상에 얽매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마음과 행적이 서로 어긋남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정읍군(井邑郡) 망제산(望帝山) 내 대암(臺巖) 마을에 손뼘으로 재었을 때에 길이가 19뼘이고, 둘레가 12뼘이 되는 석불 한 구가 엄숙하게 나무 숲 사이에 세워져 있는데, 돌담으로 둘러져 있고 앞에 등대석(燈臺石)이 있으며, 거주하는 사람이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여 남녀가 기도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대체로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인지 모르지만,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이희맹(李希孟) 문안공(文安公)이 이곳에 기도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서 석관(石冠)을 더하였다고 한다. 이공은 국초(國初)와 매우 멀지 않은 사람이니, 고려 때부터 이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당시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사찰(寺刹)이 민간에 두루 퍼져 있었으니, 이곳이 스님들의 거주지였고, 이 불상이 스님들이 만든 것임을 의심할 것이 없다.아, 석씨의 학문은 진실로 망령되거니와 사물에 가탁하여 오래도록 전하는 것도 또한 비루하다. 그러나 이따금 불상이나 사탑, 옛 유적으로 인하여 비록 금지되고 파멸되는 때를 만났을지라도 오히려 부흥할 수 있었으니, 나는 저 이른바 허무를 숭상한다는 것이 끝내 있음을 숭상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게 된다는 말이 한갓 큰 소리를 쳐서 사람을 속인 것임을 알겠다. 彌勒者, 石佛之別名也.釋氏尙虛無, 其言有曰: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不相其相也, 蓋若此矣.而又多作佛像寺塔, 爲久遠計, 則相其相又無加乎此者, 何也? 無乃尙無之無是理也, 則其所尙者, 未見實得而反爲物相所累. 故自不免心跡之相戾也歟.井邑郡 望帝山中臺巖之里有石佛一, 度以指尺, 長爲十九, 圍爲十二者, 儼然立樹林間, 繞以石垣, 前有燈臺石, 居人尙掃除淸潔, 以備男女祈禱.蓋不知何代何人所造, 世傳李文安公 希孟, 禱此得顯官, 爲作石冠而加之.李公距國初不甚遠, 則想自麗以前已有.是時崇佛, 寺刹遍民間.此地爲僧居, 此佛爲僧造也無疑矣.噫, 釋氏之學固妄矣, 託物傳久亦陋矣.然往往因佛塔古跡, 雖當禁止破滅之時, 猶足以復興焉.吾知其彼所謂尙無者, 竟脫不得崇有, 而諸相非相卽見如來之云, 徒爲大言而欺人也. 만약 …… 된다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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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8 卷之二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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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천광엽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宋士千光燁 乙丑 옛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한번 스승으로 삼으면, 그 평생의 성패와 영욕을 모두 내가 책임진다"28)고 하였습니다. 저는 "다만 스승이 제자를 이와 같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식을 남에게 맡긴 경우에도 그 평생의 성패와 영욕을 역시 마땅히 그 자식으로 하여금 스승과 함께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님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지난번에 형님의 아들이 저를 완산(完山)에서 만났을 때, 어린 나이에 먼 길을 오느라 병을 앓은 나머지 감기까지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인데, 형님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아들이 홀로 떠나게 맡겨두고는 "스승에게 달려가는 것은 어려운 의리이고,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러한 아버지에 그러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형님의 부자가 이와 같이 후하게 성패와 영욕을 나와 함께 하였으니, 내가 원래 성패와 영욕을 형의 아들과 같이 하려던 마음을 어찌 감히 더욱 힘쓰지 않겠습니까? 이에 저의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니 살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昔人云: "彼一師我, 其平生成敗榮辱, 俱我任之." 余謂: "非但師之視弟如此, 託子於人者, 其平生成敗榮辱, 亦當令其子共之." 若兄者 可謂其人也.向日令子見余完山也, 穉齡遠程, 病餘觸寒. 人不堪其憂, 兄乃少不動念, 任其隻行曰: "赴師難義也, 死生有命." 乃知有是父有是子也. 既荷兄家父子之同我成敗榮辱, 若是其厚, 則我之元來同令子成敗榮辱之心, 尢豈敢不勉乎? 茲以披赤, 幸照亮. 옛사람은……책임진다 이 구절은 김택술이 《간재집(艮齋集)前篇》 권4 〈시김동훈(示金東勳)〉에 나와 있는 글을 보고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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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에게 답합 정해년(1947) 答金箕重 ○丁亥 편지에서 언급한 계유년에 의리를 처결한 것은 평소 함양한 것이 바르다는 점으로 보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고, 자결할 때 지은 모든 문장이 또 모두 굳세고 빛나며 슬프고 씩씩하니 백세의 지사들을 경계할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무후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마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 역시 "청강(晴岡, 金晁)이 자결했을 때 지은 모든 문장을 읽고 호연지기를 떨치지 않는 자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라 하겠습니다. 示及癸酉處義, 以平日所養之正, 宜其如此, 而自訣諸作, 又皆毅烈悲壯, 可以警發百世志士. 昔人云: "讀武侯出師表而不下淚者, 無人心也." 吾亦曰: "讀晴岡自訣諸作, 而不奮浩氣者, 無人心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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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설 【1939년】 百拙說 【己卯】 마음은 두 갈래로 쓸 수 없고, 재능은 겸하여 이룰 수 없다. 이 때문에 세상 물정에 능숙한 자는 마음공부에 졸렬하고, 이익을 꾀하는데 능숙한 자는 이(理)를 밝히는데 졸렬하다. 세상의 권세와 이익은 백 가지 일 뿐만이 아니고 내 심신의 이치는 다만 하나인데, 돌아보면 사람들은 모두 많은 것에 능숙하고 적은 것에 졸렬하니 또한 이상하다.그러나 오직 최군 여중(汝重)136)은 그렇지 않고 백 가지에 졸렬하고 한 가지에 능숙하려고 하여,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곳을 '백졸(百拙)'로 편액(扁額)하였으니, 마음을 쓰는 것과 재능을 이루는 것에 대해 경중(輕重)해야 할 것를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게다가 백 가지에 졸렬한 자는 비록 당장에는 부족할지라도 합산하면 항상 여유가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한 가지에 능숙한 재능이 있으면 간결함으로 번다함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백졸은 거의 여기에 가까우니, 나는 백졸이 졸렬하지 않음을 알겠다. 心不可兩用, 才不能兼成. 是故巧於世情者, 拙於心功, 巧於謀利者 拙於明理. 世間勢利不啻百途, 吾身心理只是一途, 顧人皆巧其多, 而拙其少亦可異也. 惟崔君汝重則不然, 欲其拙於百而巧於一, 扁其居以百拙, 其於用心成才, 可謂知所輕重矣. 且夫拙於百者, 雖不足於目前, 而統算則常裕如, 何也? 有一巧之能, 以簡制煩爾. 今百拙庶幾於斯, 吾知其百拙不拙. 여중(汝重) 최태일(崔泰鎰, 1899~?)의 자이다. 호는 백졸(百拙), 본관은 전주이고, 간재 전우의 제자이다. 저서에 《백졸사고(百拙私稿)》 5권 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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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죽(筇竹)의 명207) 【경오년(1930)】 笻銘 【庚午】 계찰(季札)은 주나라를 가 보았고208) 季札適周,진량(陳良)은 북쪽에 가 배웠는데,209) 陳良學北,너는 금강산을 유람하며 爾到金剛,기암절벽을 모두 밟았지. 歷盡奇絶.산지의 드문 특산품이라서만 豈獨本産,귀한 물건이라 일컬음 아니고, 乃稱物貴,공효는 천리 여로에 보이고 功在千里,광채가 아홉 마디에 더해가며, 光增九節,흙 속 등걸을 펴고 구부려 矯揉土藤,기념의 글자 지져 새겼으니, 紀念之烙.누구일까 이 물건 얻은 이는 誰歟得此,새록새록 마음에 들어 기뻐하니, 沾沾自悅,아끼는 건 너의 천연의 모습이니 愛爾天形,겉 이름은 없는데 꽉 찬 속 알맹이. 無名有實. 季札適周, 陳良學北, 爾到金剛, 歷盡奇絶, 豈獨本産, 乃稱物貴, 功在千里, 光增九節, 矯揉土藤, 紀念之烙, 誰歟得此, 沾沾自悅, 愛爾天形, 無名有實。 공죽(筇竹)의 명 공죽장(筇竹杖) 즉, 공죽으로 만든 지팡이를 노래한 명문이다. 공죽은 남쪽 지방의 대나무의 일종인데, 마디가 높고 속이 꽉 차서 지팡이를 만드는 좋은 재료로 사용되었다. 계찰……가 보고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周)나라의 예악을 참관하였다.《春秋左傳.襄公29》 진량……배웠지 《맹자》 〈등문공(滕文公)〉편에, 남방인 초나라의 진량(陳良)이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도를 배우러 북쪽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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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문 흥술의 자사 【무진년(1928)】 金士聞【興述】字辭 【戊辰】 백대에 우뚝히 서 계신 이, 성현이 아니던가? 군자의 덕의 풍화, 그러하지 않던가? 그 풍화를 듣고 일어나는 자, 선비가 아니던가? 사문(士聞)으로 자를 삼아 족제 김흥술(金興述)의 덕을 드러내는 것 또한 이런 까닭이 아니겠는가? 사문은 두 귀를 기울이되 다른 소리는 듣지말고, 오직 수사(洙泗)293)와 낙민(洛閩)294)의 풍화만을 쫑긋하여 듣고 기쁘게 받아들여서, 그 즐거움에 취하여 깨어나지 마시기를 나는 바라노라. 어쩌다 우렁찬 광풍이 귀밑에 닿아서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고 밝게 들을 것을 어기어 어두운 허물을 지을 것이 나는 아직 걱정되누나. 들으시라, 듣기에 힘쓰시라! 奮乎百世之上者, 非聖賢乎? 君子之德風, 不其然乎? 聞其風而興者, 非士乎? 士聞之爲族弟興述表德者, 其以此乎? 吾願士聞兩耳側時無他聲, 但有風自洙泗洛閩來者, 聳然而聽, 翕然而受, 怡然醉而勿醒。 還恐狂風之一到耳根轟轟, 聞不當聞, 而違思聰而咎不明也。 聞乎, 其勉哉!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을 흐르는 두 강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의 이름인데, 이곳에서 공자와 맹자가 일으킨 유학을 가리켜 쓰인다. 낙민(洛閩) 북송시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와 남송시대 민(閩 : 福建省)의 주희(朱熹)가 일으킨 성리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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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성훈에게 보냄 경신년(1920) 與田思誠壎○ 庚申 인도공의소(人道公議所)의 취지서(趣旨書) 중에 제 이름이 기재된 것은 좌하의 엄호로부터 나왔다 합니다.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이미 이 일에 대해 영향을 줄만 하지 않으니, 좌하가 사람을 잘못 추천하여 공의에 누를 끼친 것은 진실로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고, 여러 사람이 당사자를 승낙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억지로 기재해 넣은 것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궁핍하게 살면서 농사일을 하여 골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떻게 멀리 여러 사람들의 뒤를 좇아서 미력한 힘을 바치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형세상 미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 이름만 넣고 그 일을 친히 하지 않더라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명실이 부합하지 않으니 저는 부끄러운 짓이라 생각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좌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고하여 그 단체의 문서를 발간할 때 제 이름을 삭제하여 천한 사람의 분수를 편안히 해주십시오. 그것이 시종 저를 사랑하는 은혜일 것입니다. 人道公議趣旨書中, 賤名見錄出, 自座下所保云. 鄙之無似, 既不足爲輕重於此事, 則座下之謬薦人而累公議, 固失藻鑑之明, 諸公之不承諾於當人, 而冒錄其名, 恐亦未爲妥當. 且澤述竆居服田, 滾汩自遣, 何能遠追諸公之後, 庸效微力? 此又勢所不及也. 如曰存其名而不親其務, 亦無傷云爾, 則名實之不副, 竊有恥焉. 切乞座下爲告諸公, 凡干社中文字, 刪出賤名, 以安賤分, 始終相愛之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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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소 서장병갑에게 답함 계해년(1923) 7월 答近小徐丈柄甲 ○癸亥七月 이전에 받은 편지에서 최병심(崔秉心)의 비문(碑文)94)에 대해 악을 편든다고 의심하셨는데, 일이 사실과 어긋나니, 군자가 한 마디 말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됨95)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번 계화도에서 뵙고 대략 의리와 사실을 들어 아뢰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쯤은 이미 훤히 알아 마치 구름을 젖히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겠지요? 아니면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중에 있으십니까? 제가 어른에 대해 비록 노소(老少)의 다름은 있으나 삼가 도의로써 서로 기대하고자 합니다. 이제 심술(心術)과 크게 관련이 있는 일에 대해서 어찌 서로를 알지 못함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우러러 받들어 질정하니, 대략 더불어 설파해 주셔서 답답함을 풀어주기를 지극히 바랍니다. 前承下狀, 疑以黨惡於崔碑.事涉爽實, 不免'君子一言之不知.' 故頃於華拜, 略擧義理事實, 以稟白矣.未審今已快悟, 若披雲覩青? 抑尙在信疑之間耶? 澤述於丈, 雖有老少之異, 竊欲以道義相期.今於心術大關, 豈容不相悉之至此乎? 茲以仰質, 略與下破, 開鬱至望. 최병심(崔秉心)의 비문(碑文) 최병심이 간재를 대신하여 지은 〈율헌최공신도비문(栗軒崔公神道碑文)〉을 말한다. 율헌은 최병심의 선조 최득지(崔得之, 1379~1455)의 호이다. 오진영이 이 비문에 대해 〈편질동문제공(徧質同門諸公)〉에서 신도비문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라의 법도를 어겼고 식자들의 시비를 범했다."라고 비난하여 양측의 갈등이 심해졌다. 군자가……됨 이 말은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나온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군자는 한 마디 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한 마디 말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니, 말을 삼가지 않을 수 없다.〔君子一言以為知, 一言以為不知, 言不可不愼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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