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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다음 날 한씨 산재에서 자정과 함께 더위를 피함 中伏翼日韓氏山齋同子貞避暑 초각에 바람 부니 더운 기운 얼마 남지 않아 草閣飄然暑氣殘가슴 속은 여전히 세속의 티끌 허락치 않네 襟期未許世塵干청산은 마치 늘 약속한 것처럼 기다리고 靑山如待常時約황권은 여기저기 편안하게 따르도다 黃卷相隨到處安멋진 나무 맑은 바람에 매미는 시원하게 울고 秀木風淸蟬語爽긴 하늘 걷힌 구름에 제비는 멀리 날아간다 長空雲捲鷰飛寬매우 고마운 은근한 뜻 나를 일으키니 起余多謝殷勤意아우의 풍류 함께 어울리기 충분하구나 果弟風流足一團 草閣飄然暑氣殘,襟期未許世塵干.靑山如待常時約,黃卷相隨到處安.秀木風淸蟬語爽,長空雲捲鷰飛寬.起余多謝殷勤意,果弟風流足一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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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金聖九 丙寅 삼가 듣건대 창덕궁(昌德宮 순종황제)의 병환이 위중하다는데 만에 하나 승하하신다면 당연히 3년 복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선사의 정론이 있었고 근래에 일반의 민심도 모두 그렇습니다. 인심이 똑같이 여기는 곳에 천리가 있으니, 군주가 아니라는 위령(韋令)의 의론이 잘못되었음을 더욱 잘 알겠습니다. 다만 성복(成服)을 며칠로 제한을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예(禮)에 근거하면 천자는 7일 만에 빈(殯)을 하고 빈을 한 다음날에 성복한다고 했으니, 마땅히 8일을 기한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만에 하나 승하하셨을 때는 일을 맡은 유사에 대한 정식이 어떠한지 모르겠고, 태황제의 상을 치를 때의 전례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정식과 예전의 규례가 설령 모두 6일 만에 성복한다고 해도 저의 뜻은 8일을 기다렸다 성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떠합니까? 우리 황제를 왜가 낮추어서 왕이 되었는데, 만약 6일로 기한을 삼아 제후의 예를 쓴다면 이것은 왜의 명령을 따라 우리 군주를 폄하하는 것이니, 지금의 정식과 예전의 규례에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으로 혐의를 삼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성복이 이미 그렇다면 인가의 연상(練祥)과 관혼(冠婚)을 뒤로 물려서 행하는 것도 역시 마땅히 7개월 만에 졸곡(卒哭)하는 규례를 따라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竊伏聞昌德宮患候危重, 萬一不諱, 當服三年, 已有先師定論, 而近日一般人心, 亦莫不然.人心所同, 即天理所在, 益知韋令非君之論之失也.但未知成服幾日爲限.據禮天子七日而殯, 而殯之翼日成服, 則當限八日.又未知萬一不諱時, 當事有司如何定式, 及太皇帝喪時前例爲何如也.今式前例, 設皆六日成服, 鄙意竊欲俟八日而成服, 何也? 吾之皇帝, 彼降而爲王, 若限以六日而用諸侯禮, 則是從彼之令, 而貶吾君也, 恐不可以斑駁於今式前例爲嫌也.成服既然, 則人家練祥冠昏退行, 亦當遵七月而卒哭例, 未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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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 족숙에게 올림 신미년(1931) 上涵齋族叔 辛未 어제 들으니, 사인(士仁 간재 장손 전효일)이 문하에 와서 오진영을 편들고 호남을 배척한 잘못을 사죄하고, 또 제 동생을 찾아와 "그대의 맏형이 겨를이 없어 사죄하는 자리에 오지 않았으니, 이 뜻을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개 이 사람은 본디 정견(定見)이 없어서 한쪽의 꾐을 받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미 잘못을 알고 와서 사죄했으니, 마땅히 옛날의 잘못을 들춰내 그로 하여금 '선사의 사손(嗣孫)은 서로 관계를 끊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임동만(任動萬)이 이승욱(李承旭)143)과 친해져 혼인을 맺고자 하기까지 하자 선사께서 성심으로 편지를 보내 깨우쳐서 그가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살펴볼 때 우리 쪽에서 사인이 의혹을 당했던 날에 일찍이 성심으로 고해주지 않았던 것은 도리어 극진하지 못한 것이 되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昨聞士仁來謝袒震排湖之過於門下.又訪見舍弟言: "令伯氏未暇詣謝, 望告以此意"云.蓋此人本無定見, 爲一邊誘引而然.今旣知過來謝, 不當追念其舊, 使其不悟先師嗣孫無相絶之理.昔任動萬親好李承旭, 至欲結昏, 先師誠心書喩, 不以其不悟而置之.由此觀之, 此中之不曾誠告士仁見惑之日, 却爲未盡也.如何如何. 임동만(任動萬)이 이승욱(李承旭) 임동만은 전우의 스승인 임헌회의 장남이며, 이승욱은 임헌회의 제자이다. 이 내용은 전우와 이승욱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전우와 이승욱은 임헌회가 죽기 전까지 매우 절친하게 지냈지만, 임헌회 사후 갈라서게 된다. 1876년 10월 29일 임헌회가 위중하자 전우와 이승욱은 연기(燕岐)의 죽안(竹岸)에 찾아뵙는데, 이승욱은 11월 4일 조고(祖考)의 기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가하였는데 11월 16일 결국 임헌회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전우는 집촉록(執燭錄)을 썼는데, 이에 대해 이승욱은 스승을 욕보인 것이라고 하여 고산학파 내에서 큰 논란이 일어나게 된다. 정윤영이 쓴 《뇌변(誄辨)》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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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화종곤에게 보냄 경인년(1926) 與李載和鐘坤 ○庚寅 당신의 돌아가신 숙부 가장(家狀)을 영윤(令胤)이 간 이후에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말년에 동몽교관(童蒙教官)에 올랐다는 말은 자못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죽은 해가 을묘년(1915)이니 경술년(1910) 나라가 없어졌을 때와 6년 차이가 납니다. 나라가 없어졌는데 어떻게 교관의 직임이 있겠습니까? 만약에 경술년 이전이라 말한다면 갑자년(1864) 때에는 벼슬을 시작할 때이니, 어찌 말년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백 번 생각을 해봐도 묘표(墓表)를 짓는 승낙은 실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에 최군(崔君)을 보내어 그 이유를 서면으로 고하고, 가장의 초본과 사례금을 돌려보내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尊先叔父家狀,令胤去後再詳,晚階童蒙教官云者,竊有所疑.其卒在乙卯時,距庚戌無國爲六年,無國之時,豈有教官? 若云在庚戌以前,則其甲子時,方始仕之餘,豈得謂晚? 百爾思之,阡表之諾,未可以踐矣.茲遺崔君,書告其由,還呈狀草及幣金,考納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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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정에게 답함 기묘년(1939) 答趙子貞 己卯 현제(賢弟)가 어제 말하기를 "홍모(洪某)가 음성의 오진영이 나를 평하여 '문자(文字)는 능하다.'고 했다는 설을 가지고 오진영이 참으로 공심(公心)이 있다."고 했는데,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진실로 그 말과 같다면. 가평(嘉平)의 김평묵(金平黙)이 간옹(艮翁)을 평하여 "문장은 능하지만 학문은 어찌 능하겠는가."라고 말을 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시험 삼아 홍모로 하여금 다시 묻게 하기를 "그렇다면 김모의 학문은 어떠하냐?"고 하면, 오진영은 반드시 "학문은 어찌 능하겠는가."라고 하여, 또한 가평의 김평묵이 간옹을 배척한 것처럼 할 것입니다. 대개 홍모는 초학자이니 다만 문장이 능한 것이 최고의 대현인 줄만 알기 때문에 그가 오진영을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언뜻 오진영이 문장이 능한 것으로 나를 인정한 데에는 증오하는 뜻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 선함이 공심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한 번 문인이라고 불리게 되면 나머지는 볼 것이 없게 된다."64)는 말이 있기 때문에 오진영이 문인(文人)으로 나를 지목하고 자신은 학인(學人)으로 자처한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賢弟昨說, 洪某以陰震謂吾"文字則能之"之說,信其有公心,殊可笑也.信如其言,嘉金謂艮翁"文章則能之,學則何能"之說,可謂公心乎? 試使洪再問曰: "然則金某學則如何?" 震必曰: "學則何能?" 亦如嘉金斥艮翁也.蓋洪是初學,徒知能文之爲無上太賢, 故其所以尊震者亦以此也,而乍聞震之以能文許吾,意其有憎,而知其善之公心.然殊不知古有"一號文人,餘無足觀"之語, 故震以文人目我,而自處以學人也. 한 번……된다 유지(劉摯, 1030~1098)는 북송 때의 학자인데, 자손들에게 행실이 먼저요 문예는 나중이라고 가르쳐 늘 경계하기를 "선비는 마땅히 기국(器局)과 식견을 급선무로 여겨야 할 것이니, 한번 문인으로 불리게 되면 볼 것이 없게 된다.[其敎子孫 先行實 後文藝 每曰 士當以噐識爲先 一號爲文人 無足觀矣]"라고 하였다. 《송사(宋史) 권340 〈유지열전(劉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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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族弟希淑 乙丑 지난번에 박노학(朴魯學)을 만나서 묻기를 "정재(靜齋)가 고소를 면한 것은 오진영에게 화평을 청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 또한 화평을 청하면 고소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오진영을 성토하는 여러 사람이 모두 오진영에게 화평을 청하면 모두 고소당하는 화가 없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오진영과 화평하면 고소를 면할 수 있고 오진영을 성토하면 고소를 면치 못하니, 금일의 고소는 과연 오진영이 한 것이지 강대걸이 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오진영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서진영(徐鎭英)과 동실(同室)의 사람이면서 오진영을 변호하는 자인데도 그 말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이는 이창환(李昌煥)의 '금번 일은 석농(石農)이 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똑같이 오진영의 허물을 엄호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내가 박노학에게 말하기를 "금일의 고소에 대해서 그대가 이미 '오진영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즉, 그렇다면 내가 한번 전언(轉言)해서 묻겠습니다. 이제 유학자로 자칭하는 자들이 한인(韓人)을 일본관청에 고소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인간도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런 사람이 이미 인간도 아니면, 오진영이 동문인(同門人)을 원수의 처지인 일본관청에 고소해서 기어코 모함하여 죽이고자 하는 것은 마땅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런데도 그대는 여전히 '오사문(吳斯文)'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하자, 박노학이 말이 없었다. 昨見朴魯學問, 靜齋之得免告訴, 非以乞和於吳乎? 朴曰然.吾亦乞和則得免告訴乎? 曰然.討吳諸人, 俱皆乞和, 則都無訴禍乎? 曰然.吾曰和吳則得免, 討吳則不得免.今日告訴, 果吳之爲也, 非姜也.朴曰不得不謂吳事也, 此人徐鎭英一室而護吳者, 其言猶如此, 此與李昌煥今番事石農免不得之言, 同出於掩護不得也.吾謂朴曰, 今日告訴, 子旣云不得不謂吳事, 則我有一轉問.今有以儒自名者, 訴韓人于日官則如何? 曰此非人也, 此旣非人, 則吳之訴同門人于所讐之地, 期欲構殺者, 當以何物名之? 子猶稱以吳斯文可乎? 朴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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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崔以求 乙亥 일전에 나의 이름이 〈도지학행편(道誌學行篇)〉 초단(草單)4) 가운데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진실로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 또한 반드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에게서 확실히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심장이 뛰고 불안합니다. 예전에 《잠헌보감(簪獻寶鑑)》이 간행될 때에 선사의 위치와 덕망으로도 오히려 벼슬아치도 아니고 훌륭한 선비도 아니니 마땅히 그 안에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나 택술과 박중당(朴中堂)에게 명하여 가서 공평(公坪) 박모에게 부탁해 기어코 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나처럼 학문도 없고 덕행도 없어서 천만부당한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결단코 실질 없는 명성을 무릅쓰고 하늘을 속이는 죄안을 얻어서 세상에 넘치는 비웃음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대는 급히 간행소로 가서 만약 나의 이름이 있거든 초고에서 빼버리는 것이 참으로 옳을 것입니다. 내 아이들이 비록 불초하지만 나는 이것으로 제 아비를 높이고 또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우려할만한 것은 다수의 친척들입니다. 그러니 본군의 서책 이외에 부안군의 서책도 아울러 검토해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向聞賤名入於〈道誌學行篇〉草單中之說.吾固知其不可信.賢亦云必無是事, 故不以爲意矣.今再聞有人的見之說, 則心動而不安矣.昔年《簪獻寶鑑》之刊也, 以先師之位德, 猶自謂非簪非獻, 不宜在其中, 命澤述及朴中堂往囑公坪朴某, 期令勿入.况如賤子之無學無行萬萬不當者乎? 決不敢冒當無實之名, 得欺天之罪案, 而取溢世之笑囮也.賢其亟往刊所, 如有賤名, 拔去草單, 至可至可.兒輩雖不肖, 吾信其不以此尊其父而又諱之.萬有一可慮者, 多數之宗族也.本郡券以外, 扶安卷兼閱如何. 초단(草單) 아직 정서되기 이전의 것을 초단이라 하고, 정서하여 도장을 누르고 수결을 받으면 이를 정단(正單)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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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자의 묘에 우박 피해가 있었다는 소식이 스승님께 이르니 시를 지어 보냄 3수 夫子廟雹災報至師門 有詩步韻【三首】 성인의 사당에 정월 우박 쏟아지니 聖祠正月雹음기 가득함은 무슨 허물 때문인가 陰氣一何愆재앙이라는 것은 운수에 따른 것이라 災沴多由數하늘에 계신 상제와는 무관한 것이네 非關上帝天중니께서는 하나의 태극이요 仲尼一太極대덕은 음양이 합친 것이라 大德合陰陽요상한 우박이 어찌 가감하리오 妖雹何加損신령이란 본래 일정한 법 있거늘 神靈自有常유학자들 서로 어긋나고 분열하니 儒門相乖裂그 허물은 이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厥咎匪斯何삼가 조심해 예전 습관 되돌아보고 惕念回前習천지의 조화를 맞아 따르리라 導迎天地和 聖祠正月雹,陰氣一何愆?災沴多由數,非關上帝天.仲尼一太極,大德合陰陽.妖雹何加損?神靈自有常.儒門相乖裂,厥咎匪斯何?惕念回前習,導迎天地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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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재에게 답함 기사년(1929) 答朴晦哉 己巳 기망(旣望 16일 날)에 호남을 행차했을 때의 편지는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으니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척연한 감동이 있게 하였습니다. 만일 진실로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극진할 때가 곧 실학(實學)이 됩니다. 그러니 하필 독서한 연후에 학문이 된다고 구구하게 춘하(春夏) 완급(緩急)의 사이를 따지겠습니까? 또 진실로 독서를 근심한다면 비록 9개월 동안 근심하고 하루를 독서하더라도 곧 패연(沛然)히 뚫릴 것입니다. 그대는 "최간이(崔簡易)가54) 7년 동안 독서를 하지 못해 늘 걱정하다가 흉중에 근심덩어리 하나가 맺혔는데, 후에 책을 읽어서 그 응어리가 풀어지는 날에 문장을 성취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이를 두고 담론하는 자들은 "독서가 여전히 이르고 근심이 크지 못했다면 천하의 문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나 또한 생각하기를 "엄벙덤벙 날만 허비한다는 그대의 근심이 진실로 참된 것이라면 하추(夏秋)를 기다려 독서하더라도 여전히 빠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털끝만치라도 참된 것이 아니라면 그대 편지에 가득 찬 구구한 말들이 한바탕 말만 희롱하고 겉치레만 꾸며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것으로 귀결될까 두렵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근심할만한 것이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豈望湖行時書, 認出心眞, 眞令人戚然有動.苟能眞有是心, 卽此心到時, 便爲實學.何必讀書然後爲學而區區計較春夏緩急之間哉? 且眞以讀書爲憂, 雖使九月憂之, 一日讀之, 便可沛然.豈不聞崔簡易? 七年不讀書, 常以不讀書爲憂, 胸中結成憂塊一顆, 後到讀書解塊之日而成文章乎.談者猶以爲讀書尙早, 塊之未大, 不能成天下文章.由此言之, 吾亦謂高明因循費日之憂.苟眞也, 待夏秋而讀, 猶爲太早, 如有一毫未眞, 吾恐滿幅縷縷.逃歸一場弄話飾幅自欺欺人之科矣, 此眞可憂者也, 如何如何? 최간이(崔簡易) 최립(崔岦, 1539~1612)으로 간이는 호이다. 율곡의 문인으로 시(詩)와 문(文)에 모두 조예가 깊어 명나라 문인들의 칭찬을 받았다. 차천로(車天輅)의 시(詩), 한호(韓濩)의 글씨와 최립(崔笠)의 문(文)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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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을유년(1945) 與季弟汝安 乙酉 춘우(春雨) 김장(金丈)의 향사(鄕祠)는 왜변(倭變) 때 절의를 세운 현인을 위해 왜구가 물러간 뒤에 세웠으니 대저 누가 "불가하다."고 하겠느냐! 얼핏 듣건대, 너는 "내가 요청에 응하여 간 것을 일찍이 계양(繼陽)101)에 불참한 뜻과 어긋난다."고 하였다니 이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무릇 중(中)은 일정한 체(體)가 없고 때에 따라 있는 것이다.102) 저쪽은 나라가 없을 때이니 요행히 그 금법도 없다는 혐의가 있고, 이쪽은 나라가 이미 광복된 때이니 예전 금법의 유무를 추론할 필요가 없다. 비록 그렇지만 계화(繼華)103)에 불참한 것은 어찌 다만 때로써 그만두었겠는가. 그 스승을 모함하는 무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전혀 안 될 일이기에 발을 들여놓기가 더욱 어려웠다. 이는 너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春雨金丈鄕祠, 爲立節倭變之賢, 設於倭讎退逐之後, 夫誰曰"不可."? 似聞汝以余應請而往, 爲戾曾不參繼陽之義, 其未之思也.夫中無定體, 隨時而在.彼則在無國之時, 而有幸其無禁之嫌, 此則在邦國旣復之時, 而舊禁有無, 不必追論也.雖然, 繼華之不參, 豈但以時已哉? 其與陷師者輩同事, 爲不可之大者, 而尤難涉跡.此非汝亦所已知者耶? 계양(繼陽)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계화도(繼華島)에 들어가서 후학을 양성한 강당 이름이다. 여기서 계양은 간재의 향사를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무릇……것이다 《중용장구》 제2장의 시중(時中)에 대한 주희(朱熹)의 해설에 나오는 말이다. 계화(繼華) 간재가 계화도에 들어가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여기서 계화는 간재의 향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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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김명중 건식에게 드림 을축년(1925) 與族弟明仲 建植 乙丑 금일의 화(禍)로써 풀릴 수 없는 지경에 걸린 자들이 우리 김씨 중에 많습니다. 듣자하니 음성의 적들이 가장 원수로 삼는 사람이 옹김(甕金), 창김(滄金), 석김(石金)55)이라고 들었는데 마땅히 그러할 것입니다. 대개 오진영을 성토하는 일을 선창해 일으킨 자가 우리 김씨이고, 성토하는 붓을 잡은 이가 우리 김씨이며, 성토하는 글을 인포(印布)한 자도 우리 김씨입니다. 종국에 음성 무리들의 세 가지 패악한 문장을 반박해 깨뜨린 것도 우리 김씨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원독(怨毒)에 쌓인 배가 어찌 잠시라도 우리를 잊겠습니까? 또 선사께서 20년간 뜻과 절개를 지키고 만세토록 영면하신 곳도 바로 우리 김씨의 고장입니다. 호남의 큰 집안 중 선사의 문인이 많은 것이 또한 우리 김씨만한 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림을 연합하고 정론을 주장하여 저들의 간사한 모의와 패악한 행동을 타파할 이도 우리 김씨입니다. 그러니 우리 김씨를 탄압할 때에 저들은 방자하여 거리낄 행동이 없게 될 것입니다. 도적이 주인을 미워하는 것은 자고로 그러한 것이니, 나를 원수 잡듯이 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마음에 즐겨하는 것이 참으로 그럴만합니다. 일문(一門)에 화가 모인 것이 심히 헤아릴 수 없지만 다만 의로움의 여부만 보고 화(禍)의 다소는 묻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만약 사문을 없애려 한다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우리 김씨 중 많은 사람들이 만난 처지가 천추에 반드시 공정한 의론이 있을 것이니 다시 무엇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今日之禍, 罹於不可解者多吾金人.聞陰最所讐者, 甕金滄金石金, 宜乎其然也.蓋討震之役, 倡起者吾金也, 秉筆者吾金也, 印布者吾金也, 終而駁破陰黨三悖文者, 亦吾金也.彼其怨毒之腹, 豈肯須臾忘哉? 且先師卄載獻靖, 萬世考終, 乃吾金之鄕也.在湖南巨室, 先師門人之多, 又莫如吾金.則足以聯合士林, 主張正論, 打破彼之奸謀悖擧者, 吾金也.壓得吾金, 則可以恣行無憚也.盜憎主人, 自古而然, 執我仇仇, 抵死甘心者, 亶其然乎.一門萃禍, 雖甚罔測, 然但觀義之當否, 不問禍之多少.天苟喪斯文則已, 否者, 吾金多人之所遭, 千秋必有公議矣, 復何恨乎? 옹김(甕金), 창김(滄金), 석김(石金) 옹정, 창동, 석동의 김씨로 추측하나 확인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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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질영노 형린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族姪靈魯 炯麟 乙丑 돌의 정세(精細)한 것은 수영(琇瑩)이59) 되고, 거친 것은 성과 담장을 쌓는 곳으로 귀결됩니다. 곤룡포와 면류관의 화사함은 그 비단의 정세(精細)한 것이요, 갈락(褐絡)의 추함은 곧 포(布)의 거친 것입니다. 사물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가히 사람이 되어 정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용모를 움직임에 정세하지 않으면 포악하고 태만한 기운을 멀리할 수 없고, 독서가 정세하지 않으면 어떤 일의 목적이나 의도의 귀결점을 알 수 없습니다. 궁리(窮理)가 정세하지 않으면 최고 경지의 도착점을 볼 수 없고, 마음을 다스림에 정세하지 않으면 은미한 사특함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매사에 정세하지 않으면 때에 맞는 도(道)를 얻을 수 없습니다. 무릇 대소(大小), 표리(表裏), 원근(遠近), 시종(始終)이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정세해야지 거칠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이와 같습니다. 아! 돌과 포백은 완성된 자질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오직 사람만이 거친 것을 정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고, 성긴 것을 섬세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오직 힘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石之精細者爲琇瑩, 而麤疎者, 歸城垣之築.袞冕之華, 其帛之精細, 而褐絡之惡, 乃布之麤踈者也.物猶然也, 可以人而不精細乎? 動容而不精細, 無以遼暴慢之氣, 讀書而不精細, 無以識旨趣之歸.窮理而不精細, 無以見極致之到, 治心而不精細, 無以去纖隱之慝.處事而不精細, 無以得時中之道.凡小大表裡遠近始終, 罔不皆然.人之宜精不可麤也, 有如是矣.噫! 石與布帛, 見成之質, 不可得而燮也, 唯人則可以燮麤爲精.燮踈爲細, 只在用力之如何爾, 豈非幸哉? 수영(琇瑩) 아름다운 돌이다.《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奧)〉에 "문채 나는 군자여! 귀막이가 수영이며, 피변에 꿰맨 것이 별과 같도다.〔有匪君子 充耳琇瑩 會弁如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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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거 연풍에게 답함 무진년(1928) 答張文居 然豊 戊辰 침심(沈深)하고 진밀(縝密)한 것은 곧 학자의 아름다운 자질이지만, 광대(廣大)하고 고명(高明)한 것은 곧 군자의 아량입니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로 공부하는데 있어서 급한 일이요. 우유자적(優游自適)60)은 실로 도를 얻는 진전(眞詮 참된 도리)입니다. 또 밤낮으로 우근척려(憂勤惕慮)61) 하는 것은 자신을 닦는 정법(定法)이며,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할까"62)하는 것 또한 사물에 대응하는 중요한 도입니다. 그러니 학문을 진전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것이 오로지 많이 읽고 고심하며 탐색하는데 달려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모름지기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은 원래 고요함을 익혀 마음을 밝히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몸과 행동을 삼가는 소성(小成)에 안주할 것을 말하지 말고, 모름지기 높은 견해와 고원한 식견에 귀결되는 요체를 알아야 합니다. 沈深縝密, 雖學者之美質, 廣大高明, 乃君子之雅量.如恐不及, 固下功之急務, 優遊自適, 實得道之眞詮.日夕憂勤惕慮, 是謂修己之定法.天下何思何慮, 亦爲應物之要道.勿謂進學益智專繫劇讀窮索.須知澄淸本源, 元在習靜明心.勿謂安小成於飾身謹行, 須知要其歸於高見遠識. 우유자적(優游自適) 편안하고 한가롭게 마음대로 즐김. 우근척려(憂勤惕慮) 근심하고 부지런하며 두려워하고 염려함. 천하에……염려할까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하만사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랴. 천하만사는 귀결은 같은데 길이 다를 뿐이다.[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塗.]"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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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복에게 보냄 기묘년(1939) 寄炯復 己卯 듣건대, 네가 근래 모모 유림의 연원도(淵源圖) 작업에 참여하였다던데 사실이냐? 역사를 기록하는 어려움은 옛날부터 그러하였다. 그 밝은 안목을 구비하기가 어렵기도하고 또 믿을 만한 자취를 고찰하기가 어렵다. 이에 허실(虛實)을 변별하지 못함에 이르기 쉬워 끝내 성취한 바가 세교(世敎)에 공로가 없고 그저 신령과 사람에게 죄를 얻게 된다. 이는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도 말하자면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지금 세상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가짐이 어디에 있겠느냐. 애초 그 허와 실을 묻지 않고 그 공과 죄를 어떻게 논하겠느냐. 네가 비록 지식이 없다 해도 마땅히 혹 이 정도는 알 것인데 어찌하여 발을 싸매고132) 달려가서 남의 불미스런 일을 돕는 것이냐. 당장 그만 두어라. 聞汝近參某某儒林淵源圖之役, 果然否? 作史之難, 從古而然.以其旣難具得明眼, 又難考得信蹟.易致虛實莫辨, 究竟所就, 無爲功於世敎, 而徒得罪於神人也.此以持公心做事業者, 言之猶然, 而況今世之爲此等事者, 其設心何在? 初不問其虛實, 又何論其功罪? 汝雖無識, 宜或知此, 胡爲乎裹足奔走, 助成人不美事乎? 千萬已之. 발을 싸매고 '발을 싸맨다[裹足]'라는 것은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생기거나 군살이 박혔을 때에 옷을 찢어 발을 감싸고 달려간다는 뜻이다. 《회남자》에 "옛날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묵자가 듣고서 딱하게 여겨 노나라에서 달려갔다. 열흘 밤낮을 달려 발이 누에고치처럼 부르텄는데도 쉬지 않고, 옷을 찢어 발을 싸매고 달려갔다. 영에 이르러 초나라 왕에게 유세하였다.[昔者楚欲攻宋, 墨子聞而悼之, 自魯趨而十日十夜, 足重繭而不休息, 裂衣裳裹足. 至於郢, 見楚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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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명 【을사년(1905)】 勇銘 【乙巳】 사도(斯道)의 공부에 진취 얻자면, 斯學進就,그 기틀은 용기에 있으니 其機在勇,옛 사람을 보면 그 누구도 相古之人,이것을 중히 않은 이 없네. 疇敢不重.스스로 힘써 쉼 없이 가다듬은 自强不息,건괘의 상(象)에 게시된 말205) 乾象攸揭,의리를 보고도 실행하지 않음 見義不爲,공자님 말씀 이를 경계하였네. 魯論是戒.안연은 뜻을 크게 품어 顔氏志大,순임금과 내가 똑 같은 사람이었고 舜人予人,자로는 좋은 말을 따라 행하며 仲由行給,듣고도 실행이 못 따를까 걱정하였네. 惟恐有聞.선행을 보면 이내 감복하고 有善則服,잘못을 고치는데 아낌이 없어, 改過勿吝,내달리는 바람처럼 빨랐고 如風斯速,날으는 번개처럼 날쌔었네. 如雷斯迅.사나운 군졸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며 悍卒輕死,적을 맞이하여 격전하듯 하고 -사욕을 이기고 예법을 회복하고- 遇敵鏖戰【克己復禮】튼튼한 말이 힘을 다 쏟으며 健馬致力,무거운 짐을 지고 내닫는 듯이 -인(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기를-任重前進【仁爲己任】진실로 능히 이렇게 한다면 苟能如玆,용기에 거의 어긋나지 않으리. 庶幾不畔. 斯學進就, 其機在勇, 相古之人, 疇敢不重。 自强不息, 乾象攸揭, 見義不爲, 魯論是戒。 顔氏志大, 舜人予人, 仲由行給, 惟恐有聞。 有善則服, 改過勿吝, 如風斯速, 如雷斯迅。 悍卒輕死, 遇敵鏖戰【克己復禮】, 健馬致力, 任重前進【仁爲己任】, 苟能如玆, 庶幾不畔。 건괘……말 《주역》〈건괘상(乾卦象)〉에 "하늘의 운행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보아 쉬지 않고 스스로 힘쓴다.[自彊不息]"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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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太極旗 만국의 국기마다 제각기 이름 있으니 萬國國旗各有號우리나라는 일찍이 태극기로 제정하였네 我邦曾建太極旗태극 위엔 더 이상 존귀한 것 없으니 太極之上更無尊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름이로세 美號無以加於斯경술년에 한번 풍우가 몰아친 뒤로는8) 一自庚戌風雨後거의 태극기 이름까지 아울러 알지 못했네 幾與其名幷不知오직 주변이 평이한9) 일장기라 하는 것이 但見周夷日章號삼천리 땅에 두루 꽂혀 있음을 볼 뿐이었으니 三千里內遍揷籬눈으로 어찌 차마 똑바로 응시할 수 있으랴 有目何忍正面視손으로 찢어버리지 못함을 한스러워했다오 有手恨未破裂之그 뒤로 삼십육 년 세월 동안에 伊來三十六年間겨우 우리 집만 남들 따라 하지 않았네 僅不吾家隨衆爲더디게도 오늘 아침에야 옛 물건을 회복하니 遲遲今朝復舊物집집마다 대폭의 기가 긴 장대에 걸려 있구나 大幅高竿家家扉바람결에 펄럭이는 기세가 호쾌하니 風頭颺颺勢豪壯흰색 바탕의 현황10)이 광채를 더한다오 白質玄黃增光輝바라노니 나라의 존귀함이 태극과 같아 願言國尊同太極만세토록 천추토록 영원히 한결같기를 萬世千秋如一時 萬國國旗各有號, 我邦曾建太極旗.太極之上更無尊, 美號無以加於斯.一自庚戌風雨後, 幾與其名幷不知.但見周夷日章號, 三千里內遍揷籬.有目何忍正面視? 有手恨未破裂之.伊來三十六年間, 僅不吾家隨衆爲.遲遲今朝復舊物, 大幅高竿家家扉.風頭颺颺勢豪壯, 白質玄黃增光輝.願言國尊同太極, 萬世千秋如一時. 경술년에……뒤로는 경술년인 1910년에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두고 말한 것이다. 경술국치는 한일합병, 국권 피탈, 일제 강점, 일제 병탄 따위로도 불린다. 주변이 평이한 일장기(日章旗)에서 정중앙에 그려 놓은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인 일장(日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이 평이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현황(玄黃) 본디 천지(天地)를 뜻하는 말로, 태극기에서 모서리에 그려진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가리킨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는데, 태극 문양의 파랑색은 음(陰)을, 빨강색은 양(陽)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고, 네 모서리의 건괘는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극을 중심으로 한 통일의 조화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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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453)의 기일에 밤새도록 회포가 있어 先師諱辰達夜有懷 옛날의 성인과 현자를 보면 相古聖若賢예법을 제정하여 인문454)을 널리 폈으니 制禮宣人文크고 작은 예 및 상례와 변례에 大小與常變하나하나 정밀한 의리를 두었다오 一一精義存면례455)는 신중하게 거행할 일이니 緬襄愼重事어쩔 수 없이 뒷말을 해야겠네 不得己後言의절은 처음 장례와 같아야 하니 儀節同初葬터럭만큼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오 未可錯毫分어찌하여 묘소를 이장하는 일을 如何玄阡緬허술하여 보잘것없게 한단 말인가 草草不足觀천오백 명의 문도들 가운데 千五百門徒그 누가 선사의 가르침을 들었던가 誰歟得與聞다만 이 한 가지 일을 미루어보면 但推此一事예를 빠뜨림을 어찌 논할 것 있으랴 闕禮更何論비록 장례 제례의 절목이라 해도 縱云葬祭節그 책임은 본손에게 있다네 其責在本孫대종사456)에 관계되는 일이니 事係大宗師어찌 혹 이와 같이 하리오 豈容若是焉청컨대 그대는 나의 말을 듣고 請君聞我言시속에 구애된다고 하지 마소 莫謂時拘然저들의 학정이 날로 가혹해지니 彼虐日以酷오래지 않아 스스로 멸망하리라 匪久自亡殘어찌 잠깐 동안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盍俟少須臾예가 볼만하여 세인들을 용동시키리 禮觀動世人하물며 예전에 썼던 광중에는 矧聞舊壙內본디 흉해를 범함이 없다고 함에랴 自無凶害干진실로 부득이한 이유를 따져보면 苟究不得己어찌 후회하는 뜻이 넘치지 않겠는가 寧無悔意新밤새도록 나 홀로 잠 못 이루니 永夜獨不寐이내 회포를 누구와 함께 펴리오 我懷誰與宣 相古聖若賢, 制禮宣人文.大小與常變, 一一精義存.緬襄愼重事, 不得己後言.儀節同初葬, 未可錯毫分.如何玄阡緬, 草草不足觀.千五百門徒, 誰歟得與聞?但推此一事, 闕禮更何論?縱云葬祭節, 其責在本孫.事係大宗師, 豈容若是焉?請君聞我言, 莫謂時拘然.彼虐日以酷, 匪久自亡殘.盍俟少須臾? 禮觀動世人.矧聞舊壙內, 自無凶害干?苟究不得己, 寧無悔意新?永夜獨不寐, 我懷誰與宣. 선사(先師) 선사는 돌아가신 스승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지칭한다. 간재는 1922년 7월 4일에 졸하였다. 인문(人文) 예악 교화(禮樂敎化)를 이른다. 《주역》 〈비괘(賁卦) 단(彖)〉에 "천문을 관찰하여 때의 변천을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라고 하였다.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葬禮)를 지내는 일로, 곧 이장(移葬)을 말한다. 간재의 연보를 살펴보면, 1922년 9월 13일에 처음에는 익산(益山) 현동(玄洞)의 선영(先塋)에 장사 지냈다가 1945년 3월에 익산 장항리(獐項里)로 이장(移葬)하였다. 대종사(大宗師) 가장 높은 스승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유학의 대종장(大宗匠)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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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庵崔丈 세월은 빨리 흘러 해가 바뀌었습니다. 삼가 애체(哀體)는 어떻게 견디며 지내십니까. 의림(義林)이 일찍 문하에서 배우고 싶은 바람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다 이루지 못한 지 30여 년이 되었으니, 오활한 뜻과 노년이 된 나이가 마침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벽계(檗溪) 선생께서 만년에 걷잡을 수 없는 변고를 만났지만 미리 헤아리고 깊이 근심하며 사악함을 물리치고 정도를 지키려는 계책이 분명하고 확고하였으니, 노사(蘆沙) 선생과 더불어 조목이 같고 맥락이 같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선생께서 지은 《아언(雅言)》 몇 편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태극의 주재(主宰)와 명덕(明德)의 본연의 묘리를 밝혀 일종의 주기론(主氣論)을 물리친 것은 그 말이 또 노사 선생과 마치 한입에서 나온 듯하였으니, 참으로 천하의 도는 한 가지뿐임을 알겠습니다. 천지 사방에서 누가 표준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아, 천고의 종지(宗旨)를 밝히고 일세의 대방(大防)을 보존한 것은 두 선생님의 공이니, 어찌 보탬이 작다고 하겠습니까. 가령 두 선생님이 오늘날 살아 계셨더라면 어찌 백성들과 세도를 위한 계책이 될 만한 모종의 큰 의론(議論)을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미련한 여생은 우러러 물어볼 곳이 아득히 없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저도 모르게 통탄스럽습니다. 문장(文丈)께서는 벽계 선생 문하의 적통으로서 후학을 인도하여 우뚝이 사방에서 추앙을 받으니, 두 선생님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오늘날 시의(時義)를 조치한 것은 또한 비슷함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평소 배알하려는 마음은 구구하게 안부나 묻는 예를 펴기 위해서가 아니고, 일신과 집안의 큰 계책과 관련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만 가난과 병이 날로 심해지고 농사가 거듭 흉년이 들어 예사롭게 움직이는 것도 자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조금 한가해져 편달해 주실 만한 틈이 있다면 마땅히 한번 문하에 나아가 간절한 마음을 다 펴겠습니다. 日月流駛。燧穀一改。伏惟哀體。何以堪居。羲林早有掃門之願。而因循未就。今三十有餘年矣。志意之迃緩。年力之遲暮。乃至於此耶。檗溪先生晩遭履霜之變。而其豫計深憂闢邪衛正之策。光明磊落。與蘆沙先生同條而共貰。及其沒。而得所著雅言數篇而讀之。所以明太極主宰明德本然之妙。斥夫一種主氣之論者。其言又與蘆沙先生若出一口。信知天下之道一而已。天上天下。南海北海。何所不準。嗚呼明千古之宗旨。存一世之大防者。兩先生之功。豈少補云哉。若使兩先生在於今日。則豈無一副大議論可以爲生民世道計者耶.蠢蠢餘生。漫無所仰。念之及此.不覺號痛。文丈以檗門嫡傳。指引後學。屹然爲四方之所宗仰。則兩先生雖不在世。而所以措置得今日之時義者。亦不可謂無似之者矣。平日拜謁之願。非爲區區寒暄之禮。而有關於身家大計者。非止一二。但貧病日甚。年事荐險。尋常運動。未由自力。將來若有小小暇隙。可給鞭策。則當一登龍門。畢暴情懇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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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범【기홍】에게 답함 答張禹範【基洪】 어느덧 이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네. 뜻밖에 편지를 받게 되니 기쁜 마음은 마치 차가운 골짜기에 햇빛이 비치는 것 같네. 부모님의 병환은 일반적인 증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니, 나는 우러러 축원하네. 나는 여름에 과연 참담한 일을 당하였네. 평생 운명이 구름과 우레의 강과 산 속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데,134) 늙어 곧 죽을 때가 되어 오히려 더욱 심하게 되었네. 실낱 같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면 땀이 나서 등을 적신다.'는 말에서 절실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와 같이 영특한 자질로 뉘우치고 반성함이 이와 같다면 어찌 발전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더구나 현재의 분란은 짐작하기 어려움이 날로 심해지니 이 어찌 우리들이 한가롭게 지내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인가. 궁구하고 탐색하여 의리를 밝히고, 보존하고 함양하여 심지(心志)를 견고를 하여 앞날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바로 지금 당장의 급한 일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 것으로 자정(自靖)의 의리를 삼는다고 한 것은 또한 이런 의도인가. 나이가 젊고 힘이 굳세니 부지런히 힘쓰시게나. 오미(五味)는 오행의 맛이니, 목(木)의 맛은 시고 화(火)의 맛은 쓰며 금(金)의 맛은 맵고 수(水)의 맛은 짜고 가색(稼穡)의 맛은 다네. 무릇 사물은 막 형질을 갖추기 시작하면 소리와 색과 맛과 냄새가 갖춰지네. 소리와 냄새는 양이고, 색과 맛은 음이네. 그 소이연의 까닭에 대해서는 모두 일일이 연구하는 것이 옳네. 於焉一別。己隔半載。憧憧懷想。與日俱積。謂外承惠訊。私情欣豁。若寒谷見陽。堂上所愼。認是例證。涼生想必復常。區區仰祝。義夏間果見慘色矣。平生命道。坐在雲雷水山之中。至於老將死。猶復甚焉。残縷餘喘。無以爲況。奈何奈何。中夜與思。汗發沾背之云。可見警省之切。以若穎悟之姿。警省如此。安有不進之理。況時紛叵測。日甚一日。是豈吾儕宴閒偷惰之日乎。窮索而明其義理。存養而堅其心志。以爲前頭之計。此是目不急事。來喩杜門讀書爲自靖之義者。亦非此意耶。年冨力強。勉之勉之。五味卽五行之味。木之味酸。火之味苦。金之味辛。水之味醎。稼穡之味甘。凡物纔有形質。則聲色臭味具焉。聲與臭陽也。色與味陰也。若其所以然之故。則皆當一一究覈可也。 구름과……같은데 《주역》 〈둔괘〉의 운뢰둔(雲雷屯)과 〈건괘〉의 수산건(水山蹇)에서 온 말로 어렵고 힘든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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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일에 臘日 천시가 또 납제 지낼 날556)이 되니 天時又見臘平來큰 눈이 막 개어 밝은 해가 떴다네 大雪初晴朗日開옛 풍속은 오히려 납제를 전해왔고 古俗猶傳通臘557)祭새봄 가까워지니 산초술558)을 마시네 新春將近泛椒杯글 속에서 찾은 금단559)은 늦어지고 書中望望金丹暮거울 속엔 성성한 백발을 재촉하네 鏡裏星星白髮催억지로 만류해 풍패560)의 객과 읊으니 强挽同吟豐沛客가려다 못가고 몇 번이나 돌아왔던가 欲行未得幾番回 天時又見臘平來, 大雪初晴朗日開.古俗猶傳通臘4)祭, 新春將近泛椒杯.書中望望金丹暮, 鏡裏星星白髮催.强挽同吟豐沛客, 欲行未得幾番回? 납제(臘祭) 지낼 날 원문의 '납평(臘平)'은 납향(臘享)하는 날로, 동지(冬至) 이후 세 번째 술일(戌日)인 납일(臘日)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臘 底本에는 "蠟". 문맥을 살펴 수정. 산초술 산초로 빚은 술을 옛날 풍속에 신년 초하루가 되면 가장(家長)에게 헌수하였다. 금단(金丹) 도가(道家)에서 제조하는 장생불사약을 말한 것으로, 환단(還丹) 또는 구전환단(九轉還丹)이라고도 한다. 풍패(豐沛) 중국 패현(沛縣)의 풍읍(豐邑)이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인데, 이후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으로 통칭하게 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관향이 전주(全州)이고 그 선조가 함경도의 함흥(咸興) 등지에 살았으므로 함흥과 그 일대 및 전주 지방을 풍패지향(豐沛之鄕)이라고 칭하였다. 臘 底本에는 "蠟".문맥을 살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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