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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깊어 가는 겨울에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시절에 맞추어 만강(萬康)하신지요. 지난번 한사(漢師 서울)에서 강상(江上)에 도착하여 삼가 우리 선생님께서 음식을 드시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평소와 다름이 없는 것을 보고서 사사로운 정리에 기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물러나 속으로 말하기를 "오늘 사문(師門)에 절하고 내일은 부모님을 뵐 텐데 부모님의 기후 또한 강녕하시다면 멀리 원유한 나머지에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행차가 광주(光州)에 도착하여 어버이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하니, 부친의 건강이 이미 회복되었습니다. 소자가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부모님과 선생님뿐인데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모두 이처럼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것을 보니, 저 푸른 하늘에 백번 절하며 감사하고 송축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두문불출한 채 스스로 책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근은 종종 외물에 얽매이는 근심이 있었기에 돌아보고 망연자실하였으니, 열흘이나 한 달의 공부로는 문제를 해결하고 병통을 다스려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급급하게 덕을 닦고 반성하여 이 평생의 대사를 혹 우리 선생님께서 건강하실 때 성취할 가망이 있게 한다면 선생님께서 교육한 의리와 소자가 가슴에 새기고 전수받은 은혜에 거의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평소의 일은 걸핏하면 이리저리 얽매여 학문에 힘쓰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철에 따라 부모님의 봉양을 위해 문득 돌아가야 하니, 어찌 여유롭게 탐구하며 교화에 젖어서 이 쌓인 기습(氣習)의 병통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아, 성인의 시대는 멀어지고 말씀은 사라져 세상의 조류와 함께 도도하게 흘러가 버리니, 온 천하에 우리 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의 추이는 단서가 많고 선비들의 의론은 여러 갈래여서 나누어진 가운데 또 나누어져 지금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심력을 크게 가지고 출입하여 바로잡은 연후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자와 같은 후생이 누구를 따라서 취사할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아마도 끝내 그 책임을 사양하지 못하실 듯합니다. 다만 배움을 청하는 반열에 저를 일깨워 도와줄 사람이 없지만 미묘한 진리를 열어서 마음에 보존하여 서로 전수하는 규범으로 삼고자 하기에, 소자는 그 사이에서 감개함이 없을 수 없어서 부지런히 하여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몇 조목의 설은 별지에 적습니다."성인이 중ㆍ정ㆍ인ㆍ의로써 정하되 정을 주로 한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라는 대목에서 정(定)과 주(主) 두 자를 가지고 살펴보면 도리(道理)는 사람의 배정(排定)을 기다리는 뜻이 있는 듯합니다. 대저 인의(仁義)와 동정(動靜)은 실로 천연적인 것이라 절로 인력으로 범하지 못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이것을 밝힐 따름이니 어찌 정하고 주로 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이 한 구절은 바로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修道之謂敎]'라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정(定)"과 "주(主)" 2자는 바로 수도(修道)를 이른 것입니까? 지난번 선생님과 강론하는 자리에서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를 가지고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하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도는 사람과 만물이 화생(化生)하기 전에 있고,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 이하 여러 성인은 모두 이 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니, 이는 이단의 사설(邪說)과 둔사(遁辭) 가운데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우리 선생님께서 세도(世道)를 위해 분명하게 밝히고 지극히 힘쓴 곳입니다. 소자가 받아 읽고서는 저도 모르게 송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저의 소견으로는 끝내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대저 소자의 뜻은 형상(形上)과 형하(形下)를 분명하게 선후(先後)로 삼지 않는 것은 마치 오늘은 형이상자(形而上者)가 있는데 내일은 형이하자(形而下者)가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한 물건을 가지고 그 소종래(所從來)를 궁구하되, 모름지기 이 이치가 먼저 있었다고 말한다면 이 물건이 형상을 갖추기 전에 먼저 이 물건의 이치가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소자가 형이상하(形而上下)의 글자를 전후로 간주한 까닭입니다. 만약 곧장 상하(上下)의 글자로 간주한다면 한 물건의 상하 사이에 이(理)와 기(氣)로 구분하는 것이니 너무 엉성한 듯합니다. 주자(朱子)가 "형이상하로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自形而上下言 豈無先後]"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선후' 자가 어찌 소자가 말하는 '전후(前後)'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권상리(權上里)에게 답한 편지에 "이(理)는 기(氣)에 섞이지 않고, 이가 먼저이고 기가 뒤이다."라는 설을 누누이 권면하고 경계하셨는데 소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처럼 반대로 말씀하시니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까.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려고 하면 해이해지기 쉽고, 엄숙하게 가지려고 하면 좁아지기가 쉽습니다. 대저 의도적으로 한다면 크고 넓은 것과 엄숙하게 가지는 양쪽의 뜻을 실로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는 것이 어떻습니까?희로(喜怒) 등 칠정(七情)5)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정이 없습니다. 내가 남을 응대하는 일과 같은 것은 별도로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슬퍼하고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니, 어떤 정에 속하는 것입니까? 비록 기뻐하고 노여워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고 그렇지 않은지의 분별이 있으니, 마땅히 이것으로써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을 분별하여 보아야 합니까?삼가 살피건대, 「기선악도(幾善惡圖)」6)는 '성(誠)' 자 아래에 '기(幾)' 자가 있고, '기' 자 아래에 선기(善幾)와 악기(惡幾)의 권(圈)이 있습니다. 대저 발하자마자 곧 선과 악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한 '기(幾)' 자를 특별히 세운 뒤에 선기와 악기의 권(圈)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幾)의 제1층은 선과 악이 없고, 제2층에 이르러 마침내 선악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 두 기(幾) 자는 다만 한 기의 뜻을 풀이한 것입니까? 모름지기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하여 한 몸의 생리를 두루 흘러 통하게 한다면 지각(知覺)도 날로 열리니, 이른바 체와 용을 모두 들되 인(仁)이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으뜸이 된다는 것도 이 뜻입니까?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편지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곳이 있으니, 말해 보겠네. 그대는 타고난 자품이 화락하고 식견이 뛰어나기에 내심 아끼는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하지만 언제나 내가 말을 하면 받아들이기만 하고 따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 점이 늘 의아하고 답답하였네. 내 말이 어떻게 매번 도리에 맞을 수가 있겠는가. 설령 도리에 맞을지라도 어떻게 매번 서로 부합하겠는가. 그 사이에 말하지 않고 숨긴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 편지를 보고 나서 지난날 의심이 활짝 안개가 걷힌 듯하였으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이 편지를 본보기로 삼아 조금이라도 온당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끝까지 논박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구구한 나의 바람일세. 별지의 여러 조항은 자잘하게 대답할 만한 것이 없지 않지만 큰 기쁨이 여기에 있기에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네. 게다가 오전에 붕우에게 답서 한 통을 쓰느라 매우 어지러우니, 후일 인편을 기다려 주게나.【답목(答目)은 아래에 있다.】 冬令垂深。禾審燕印道體對時萬康。向自漢師到江上。伏見我先生飮饍酬應之節。不異平常。私心喜幸。退語于心曰。今日拜師門。明日拜親庭。而親而親庭氣候。亦且康適。則千里遠遊之餘。爲幸莫大矣。行到光州。聞有親癠之急。侵晨而發。比暮抵家。則親候己復常。小子依歸之地。惟親惟師。而親師之間。俱見慶幸如此。百拜彼蒼。感頌無任。返巢以後。杜門掃却。自爲看書之筞。然心地病根。種種有惹絆之患。回顧茫然。難以旬月工夫可能捄治而去之也。汲汲修省。使此平生大事。或有所成就之望於我先生康寧之日。則先生敎育之義。小子服受之恩。庶乎無憾矣。但平日事。動輒纒繞。不惟學問之不力。而隨序供候。旋卽告歸。其安能優遊薰蒸變此氣習之積病㢤。嗚乎聖遠言湮。同流滔滔。舉天之下知有吾道者。誰歟。況世趍多端。士論不一。分之又分。至於今日而極矣。則其勢。不得不有大心力人出而正之然後。可也。不然。小子後生。安知適從而取舍耶。恐先生終不得以辭其責也。但摳衣之列。無起予相長之人。而闡微發奧。以爲存心相傳之䂓。小子不能無慨然於其間而孜孜不能者也。數條說。錄在別紙。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静。以定主兩字觀之。道理似有俟人排定之意。夫仁義動靜。固天然。自有不犯人力底道理也。學問者。所以明此而已。何待於定之主之㢤。朱子曰此一節。是聖人修道之謂敎處。定主兩字。卽修道之謂歟。向於函筵。小子以形而上下之上下。看作前後之義。先生曰。然則道在人物化生之前。而羲農以下羣聖人。皆未與於斯道。此異端邪遁之尤者。此亦我先生。爲世道明辨極力處也。小子受讀。不覺悚然。然愚迷之見。終未回曉。大抵小子之意。不以形上形下爲判然先後。如今日有形而上者。明日有形而下者也。卽一物而究其所從來。須說先有此理。則此物成形之前。先有此物之理者。不其然乎。此小子所以形而上下字。作前後看矣。若直以上下字看之。則一物上下之間。分理分氣。似乎太闊矣。朱子曰。自形而上下言。豈無先後。此先後字。豈非小子所謂前後者歟。先生答權上里書。以理不雜氣。理先氣後之說。累累䂓戒。而於小子之問。如是反之。未知有何義也。心欲弘廣則易解㪚。欲莊矝則易挾隘。大抵着意爲之。則弘廣與莊矝兩段意。固難倂存。須於氣象上體認得之。何如。喜怒等七情外。更無他情。若吾之所以應於人者。別非可喜可怒可哀可懼之事。則當屬於何情耶。雖非可喜可怒。而猶有然不然之分。則當以此而分其喜怒看耶。?按幾善惡圖。誠字下有幾字。幾字下有善幾惡幾之圈。夫纔發便有善有惡。何必特立一幾字而后。又有善幾惡幾之圈耶。然則幾之第一層。無善無惡。而至於第二層。而乃有善惡耶。抑或二幾字。只是註解一幾之義者歟。須收斂管攝。使一身生理。周流通徹。則知覺亦日開。所謂體用兼舉。而仁爲四德之長者。亦此義歟。答附畧曰。書中有開眼處。請言之左右天姿樂易。見識超詣。心乎愛矣。實不淺尠。而每瞽說之下。見其領受。不見其詰難。此一節心常訝欝。吾之言安能每每當理。設或當理。安能每相符合。無乃其間有未發之隱情乎。見此書而後。宿昔所疑。霍然霧除。豈非䙡事。繼今而往復。須以此書爲法。少有未安。勿憚到底掊擊。是區區之望也。別紙諸條。非無可小小仰復者。所大喜在此。不暇他及。且午前。作答書一幅於朋友。眩甚容竢後便。【答目在下】 칠정(七情) 《예기》〈예운(禮運)〉에 "무엇을 인정이라 하는가? 희로애구애오욕이니, 7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이다.[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弗學而能.]"라고 하였다. 기선악도(幾善惡圖)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통서(統書)》에 나온다. 그 책에 "성무위(誠無爲) 기선악(幾善惡)"이라고 하였는데, 성(誠)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기(幾)는 선악(善惡)이 갈리는 분기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도식(圖式)이 《심경(心經)》 2권 2장에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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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에 원재 어른의 시에 차운함 除夜次遠丈韻 세밑에 객창 아래 멍하니 앉아서는 歲暮羇牕坐嗒然책상 위의 옛사람 책을 어루만진다 摩挲案上古人篇한밤중 여기저기 산엔 눈 남아있고 亂山殘雪三更夜만리 하늘 밝은 은하수엔 별 성그네 明漢疎星萬里天솥 안에 금단 생기기만 부질없이 기다리며 空待金丹生鼎裏머리끝에 흰 서리 내릴까 겁나는구나 怕將霜白撲頭邊누가 나를 일으켜 진경을 찾게 할까 誰歟起我尋眞境고상한 풍격 갖추신 어진 원로 계시니 爲有高風遠老賢 歲暮羇牕坐嗒然,摩挲案上古人篇.亂山殘雪三更夜,明漢疎星萬里天.空待金丹生鼎裏,怕將霜白撲頭邊.誰歟起我尋眞境,爲有高風遠老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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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 자정이 왔기에 南山齋子貞見訪 눈 내린 달밤 조각 배로 서로 찾다보니 一棹相尋雪月天산음에서의 옛일이 다시 금년에도 있구나 山陰故事又今年희미한 등잔 외로운 마을 밖에서 깜빡이고 殘燈點點孤村外푸른 하늘 외기러기 나는 곳까지 아득하네 碧落迢迢獨鴈邊오랜 바위 비 오는 산장에서 택수212)를 생각하고 石老雨庄懷澤叟티끌 사라진 두악에서 영주의 신선산인가 물었지 塵晴斗岳問瀛仙나아가고 숨는 도처엔 불필요한 물건 없어 行藏到處無長物두 소매에 이는 맑은 바람 시원함을 깨닫네 雙袖淸風覺爽然 一棹相尋雪月天,山陰故事又今年.殘燈點點孤村外,碧落迢迢獨鴈邊.石老雨庄懷澤叟,塵晴斗岳問瀛仙.行藏到處無長物,雙袖淸風覺爽然. 택수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그가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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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재에서 여러분과 송별함 別南山齋諸君 한 해 마지막에 남산에서 객들 읊조리며 돌아가는데 歲暮南山客賦歸바닷가 하늘은 고요하고 기러기 소리마저 드물구나 海天寥廓鴈聲稀파도가 옛 나루터를 울리니 한스러움 아득하고 波鳴古渡悠悠恨바람이 긴 길에 불어오니 옷이 살랑거린다 風送長程拂拂衣너무 쉽게 늙어 알려진 것 없는 내가 부끄럽고 愧我無聞偏易老굳건히 날 듯 뛰어나게 걷는 그대들 두렵구나 畏君逸步健如飛봉래산 영주산 지척에 명승지가 많이 있으니 蓬瀛咫尺多名勝내년 봄에 바람 쐬고 읊는 기약 어기지나 마시오 風咏來春且莫違 歲暮南山客賦歸,海天寥廓鴈聲稀.波鳴古渡悠悠恨,風送長程拂拂衣.愧我無聞偏易老,畏君逸步健如飛.蓬瀛咫尺多名勝,風咏來春且莫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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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한 피인의 질문에 의답함 擬答彼人不薙髪理由之問 머리카락은 부모가 남겨주고 스승이 가르쳐주고 성인이 법으로 삼는 것으로서 몸의 문장(文章)입니다. 머리카락을 없애는 것은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고, 스승을 무시하는 것은 성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스승을 무시하고 성인을 무시하여 몸의 문장을 없앤다면, 이것은 죽은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과 똑같다면,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죽은 상태가 되는 것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지키며 변치 않으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를 빼앗지 않는 것도 오늘날 세상에서 공인하는 것인데, 어찌 굳이 우리 유자들에 대해서 의심을 한단 말입니까? 髪者, 親之遺, 師之敎, 聖之法, 而爲身之章者也.無髪是無親, 無親是無師, 無師是無聖也.無親無師無聖, 而去身之章, 是庸有別於死人矣乎? 同是死人, 則無戴吾髪而死, 得以無愧於吾心之爲愈.故守而不移者, 此其由也.不奪人之信敎, 亦今世之公認, 何必至於吾而疑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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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洪韋軒 戊寅 당신 아버지의 비석 세우는 일에 보낸 원조금이 이처럼 적은데, 성대한 마음이라 말해주시고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니, 부끄러워 감히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편지에서 남방에 70여질의 문집을 보냈는데 한 사람도 힘을 보탠 자가 없다는 것은 무슨 곡절입니까? 아니 70여 집이 모두 가난하여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인색하여 그런 것입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리와 이익의 관계에 투철하지 못한 소치이고, 또한 이로써 오늘날 학자들을 살필 수 있으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敬碑助金, 若是薄者, 謂之盛念, 謂之感謝, 愧不敢言.但所喩南方七十餘帙, 無一助力者, 則是何委歟? 豈七十餘家, 皆窶者歟? 吝者歟? 有不可知, 然大都是透不得義利關之致, 而亦可以觀今世學者矣, 可歎可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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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문 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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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영모재 상량문 密陽朴氏永慕齋上樑文 먼 조상을 추모하여 그 생각 보존하니이에 전대에 지었던 것 보겠네뜻을 잘 계승하여 그 일 전술하니이에 오늘의 긍당이 있게 되었네이것이 자손이 우러러 사모하는 방법이요생도들이 학업을 익힐 장소를 얻게 되었네생각건대 밀양 박씨는 대대로 벼슬한 집안으로능주 서쪽 토구의 고을을 지켰네당부114) 같은 것은의리를 보관한 것 길이 받들고모 수 모 언덕에선영의 나무 그늘 대대로 보호하네한 구역 기둥과 글방은실로 진군의 정자115)이고백년의 구림은이 어찌 계씨의 침문이겠는가상로 내릴 때 처창한 생각116) 깃들이고조석으로 바라보며 절하는 정성 펼치네동상과 서실에서친척의 정 즐거워 하고봄가을 예서와 경서로자제들의 학업 점검하네이에 지은 지 오래되어서는기울고 넘어지는 근심 없지 않네담장은 다시 높아진 위태로움 보겠고서까래는 너무 지나치게 꺾임이 있네낙양의 정자117)는비록 족히 말할 것 없지만안영의 실려118)는절로 전수받은 것이 있네창업하고 보호하여자손들로 하여금 이을 수 있게 하고집을 지음에 법을 이루었으니선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네여러 의론이 일제히 같아공사를 바야흐로 일으키네일은 크고 힘은 부족하니옛날 그대로 따르려 하고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썩으니형세가 장차 다시 새롭게 하는데 이르네이에 깎고 세워계사119)와 당실의 위치 정하고저기에 도끼질 하고 톱질하여동량과 두공의 재목 실어오네목수들은 능히 그 책임 다하고마을 사람들은 즐거이 그 일에 달려가네혼중120)의 익진121)이이괘(離卦)의 문명한 상서에 응하고그림자 측량하니 갑경122)의 방향이라사방의 풍기가 모이는 줄 알겠네그런대로 합하고 아름다우니위나라 형의 선거와 같고123)높고 화려하니장노의 미송을 생각하네124)오직 명예를 길이 마칠 것을 헤아리니장차 며칠 되지 않아 이루어지네긴 들보를 들어 올림에짧은 노래 짓네어영차125)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126)문산의 맑은 기운 성대하네강루127)가 지척이라 추로128)를 바라보니성교가 넘쳐흘러 상서로운 기운 통하네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붓같이 높은 봉우리 삼태성처럼 나열하였네만 리의 무민129) 가까이 바라보이니밤마다 달빛은 가을 연못에 비치네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한 쌍의 벽학이 하늘에 들리도록 우네누가 장차 철곽으로 오랑캐 방어하여우리 의복을 오랑캐 복식으로 바뀌지 않게 할까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지석의 맑은 강 쉼 없이 흐르네하늘 끝에서 북두성에 기대 서울 바라보니바라건대 질병 없이 천수를 누리기를어영차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위에는 덕산이 있어 첩첩의 산 열렸네즐비하게 늘어선 네 척의 봉분에천추토록 향기로운 제향 쇠하지 말라어영차 들보 아래쪽으로 던지니아래엔 후손들 결사를 많이 맺었네구물의 청전130) 여기에서 볼 것이니대대로 이어서 성대하게 유아한 이 많겠네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천지는 고문의 운수 되돌리고산천은 원기의 빼어남 내려주어자식은 효도하고 신하는 충성하여가문의 기업 영원히 전하고집집마다 현송하여대대로 사림의 법도 있게 하소서 追遠而存其思。聿覩前世之創。善繼志而述其事。玆有今日之肯堂。是子孫瞻慕之方。得生徒肄業之所。惟密陽簪纓之族。守綾西菟裘之鄕。若堂若斧。永奉衣履之藏。某水某邱。世護松梓之蔭。一區阿塾。實是甄君之亭。百年邱林。此豈季氏之寢。寓霜露悽愴之思。伸朝夕瞻拜之誠。東廂西室。悅親戚之情。春禮秋書。課子弟之學。玆當經歷之久。不無傾圮之憂。垣墉見復上之隉。榱桷有大過之橈。洛陽亭館。雖不足言。晏嬰室廬。自有所受。創業垂護。使子孫可繼。作室底法。念先考攸休。僉議齊同。功役方作。事巨力綿。非不欲於因舊。歲久物敗。勢將至於改新。鑿斯築斯。定階所堂室之位。斧彼鋸彼。輸棟樑欂櫨之材。梓匠能勝其任。閭里樂赴其役。昏中軫翼。應三离文明之祥。景測甲庚。知四方風氣之聚。始有富有。同衛荊之善居。輪焉煥焉。念張老之美頌。惟永終是度。將不日而成。聊擧修樑。爲述短唱。兒郞偉抛樑東。文山淑氣鬱蔥蔥。降婁咫尺瞻鄒魯。聲敎洋洋瑞彩通。兒郞偉抛樑南。高峰如筆列台三。嫠閩萬里膽望近。夜夜月廻秋水潭。兒郞偉抛樑西。一雙碧鶴聞天啼。誰將鐵郭防洋竺。毋我衣裳易介蹄。兒郞偉抛樑北。砥石江淸流不息。倚斗望京天一方。庶無疾病壽千億。兒郞偉抱樑上。上有德山開疊嶂。累累成行四尺封。千秋不替苾芬餉。兒郞偉抛樑下。下有雲仍多結社。舊物靑氈監在玆。承承濟濟多儒雅。伏願上樑之後。天地回古文之運。山川降元氣之英。子孝臣忠。永傳門戶之基業。家絃戶誦。世有士林之典章。 당부(堂斧) 분묘(墳墓)를 말한다. 《예기》 〈단궁(檀弓)〉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옛날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건대, 봉분하는 것을 마치 마루처럼 쌓아 올린 것이 있고……도끼날처럼 위가 좁게 쌓아 올린 것도 있었으니, 나는 도끼처럼 하는 것을 따르겠다.' 하셨다.[昔者, 夫子言之曰:吾見封之若堂者矣,……見若斧者矣, 從若斧者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진군(甄君)의 정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의 부호였던 진씨(甄氏) 집안이 진군(甄君)의 대(代)에 이르러 빈한해졌다. 그래서 부모 형제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여러 영구(靈柩)를 함께 장사지내고 무덤 가에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을 담은 사정(思亭)을 지었다. 이에 당시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그 내력과 조상을 사모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상로(霜露)……생각 《예기》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낙양(洛陽)의 정자 《주자서절요》 권5 〈답진동보(答陳同甫)〉에 "거센 바람이 불어 정자가 넘어졌는데, 마치 하늘이 때맞추어 일으킨 것 같습니다. 저 낙양의 정자야 심히 부러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大風吹倒亭子, 却似天公會事發. 彼洛陽亭館, 又何足深羡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안영(晏嬰)의 실려(室廬) 안영이 나무로 만든 한 칸의 방에 거처했다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7년에 "제(齊)나라 안환자(晏桓子)가 죽으니, 그의 아들 안영이 거친 상복을 입고 나무로 지은 한 칸의 방에서 거처하였다."라고 하였다. 계사(階戺) 섬돌 양 옆에 비스듬히 놓인 돌인데 당전(堂前)의 의미로 쓰인다. 혼중(昏中) 혼지중성(昏之中星)의 준말로, 28수(宿) 중 초저녁 하늘 중앙의 남방(南方)에 보이는 별을 말하는데, 이 별을 관찰하여 사시(四時)를 확정할 수 있다. 익진(翼軫) 이십팔수 가운데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로, 남방의 별이다. 갑경(甲庚) 길흉이라는 뜻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길하다는 의미이다.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의 선후갑경(先後甲庚)에서 "갑의 앞과 경의 뒤는 길하고 경의 앞과 갑의 뒤는 나쁘다는 것이다. 이 갑과 경의 앞뒤라는 것은 음양학설상 삼합(三合)의 설과 일치된다."라고 하였다. 그런대로……같고 공자가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평가하기를 "그는 집에 거처하기를 잘하였다. 처음 소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모여졌다.' 하였고, 조금 더 장만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갖추었다.' 하였고, 부유하게 되자, '그런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하였다.[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論語 子路》 높고……생각하네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진(晉)나라 헌문자(憲文子)가 저택을 완성하자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이때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美哉輪焉, 美哉奐焉!]' 하였다." 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윤(輪)은 높고 큼을 말한 것이고, 환(奐)은 많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영차 원문의 '아랑위(兒郞偉)'는 '어영차'의 의성어로, 상량을 어영차 올린다는 뜻이다. 또는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상량문에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라는 설이 있다.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옛날에 집을 지을 때 길일을 택하여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떡이나 기타 잡물(雜物)을 싸 가지고 와서 축하하면서 이것을 장인(匠人)들에게 먹인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떡을 대들보의 상하 사방으로 던지면서 상량문을 읽고 축원을 한다. 《文體明辯附錄 卷13 上梁文》 강루(降婁) 성차(星次)의 이름으로, 규성(奎星)과 누성(婁星) 두 별이 위치한 자리를 말한다. 춘분(春分) 무렵 초저녁에 나타난다. 추로(鄒魯)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예교(禮敎)와 학문을 숭상하는 지방을 일컫게 되었다. 무민(婺閩) 무원(婺源)과 민중(閩中)의 병칭으로, 무원은 주자의 선대 고향이고 민중은 주자의 출생지인데, 곧 주자를 가리킨다. 저본의 '嫠'는 '婺'의 오자로 보고 수정하였다. 청전(靑氈)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이나 가문의 전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 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王羲之列傳 王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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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음당(陰黨)이 선사의 원고를 고친 죄를 문식(文飾)하여 말하기를 "선사의 오묘한 도와 정밀한 의리는 문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만약 우리 몇 사람이 선사께서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전수한 것으로 개수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원고를 완성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호라! 선사의 80년 동안 진리를 쌓은 공부를 문사가 당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겨서 반드시 저들의 개수와 보완을 기다린 후에 완성된다는 것입니까? 더욱 지극히 통절합니다. 陰黨文飾其改稿之罪曰, 先師之妙道精義, 有非以文字蓋者, 若非吾輩幾人以口傳心授者, 改補之, 稿不得完云.鳴呼.曾謂先師八十年眞積之工, 辭不足達其意, 必待渠輩改補而後得完乎.尢極痛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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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田士狷 丁卯 올해도 남은 날이 많지 않습니다. 하늘의 세월은 날마다 줄어들고, 세상의 어두움은 날로 심해지며, 머리털의 상설(霜雪)은 날로 더해지고, 눈앞의 죽음은 날로 핍박해 옵니다. 매번 송구봉(宋龜峰)의 '흉중의 계책은 끝내 무용하니 천하에 남아가 다신 살지 못하리라'는 시구를 낭송하면 비장하고 격렬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그대의 회포도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새해에 만남은 정히 어느 곳일는지요. 바람을 맞으며 서글플 뿐입니다. 此歲又無多月矣.天之歲月日減一日, 世之黑暗日甚一日, 鬂邊霜雪日添一日, 眼前溝壑日迫一日.每誦宋龜峰胷中大計終無用.天下男兒不復生之句.未嘗不悲壯激烈.想高懷之亦一樣也.新歲常着, 定在何地.臨風冲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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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옥범에게 답함 정묘년(1927) 答房玉範 丁卯 옛 사람들은 방소(方所)없이 널리 배워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섬기며, 돌아가시면 심상(心喪) 3년을 입는다.67)'라는 말을 보면 군부(君父)와 똑같이 존숭했으니 타인을 재차 스승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후세 사람들은 유현(儒賢)들에게 두루 배사(拜師)할 때마다 사제 관계를 정하는데,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가 죽은 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이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에게서 학업을 마쳤는데도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이는 본받을 만합니다. 더구나 선사의 가르침에, 앞서 이미 한 스승을 함께 섬겼으면 지금 더 이상 사제 관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그 도리가 더욱 정밀합니다. 古人雖博學無方而無常師, 若其服勤至死, 心喪三年, 與君父同尊之, 師宜不再稱於人也. 後世之歷拜儒賢, 輒定師生者, 未知其得當也. 近齋沒後, 梅山卒業于老洲而不稱師弟, 此可法也. 而況先師之訓, 乃謂前旣同事一師則不宜今復爲師生也, 其義尤精矣. 죽을……입는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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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명 【송기창을 격려함. 을축년(1925)】 弘和銘 【勖宋基滄 乙丑】 툭터진 하늘 땅의 너른 도량 키우고 恢恢然宏天地之弘量,훈훈한 봄 바람의 따뜻한 기운 지닐지니, 熙熙然存春風之和氣.온화한 기운은 복 쌓을 기반이고 氣和者積福之基,넓은 도량은 덕을 기를 그릇이네. 量弘者蓄德之器,덕 기르고 복 쌓음은 군자의 아름다움이니, 維德維福, 維君子休.그대 부디 힘써 넓고 따뜻함을 이루시라. 懋矣哉, 弘和之致也. 恢恢然宏天地之弘量, 熙熙然存春風之和氣。 氣和者積福之基, 量弘者蓄德之器, 維德維福, 維君子休。 懋矣哉, 弘和之致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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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세전(歲前)에 천곡(泉谷) 편에 다시 편지 1통을 올렸는데 자취가 몹시 구차하고 소홀하였기에 황공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인편이 돌아올 적에 나무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답서까지 보내 주시고, 또 누누이 가르쳐 준 말씀은 매우 간절하였습니다. 절하고 받고서 엄숙하게 읽고는 진정으로 감읍하였습니다. 대저 스승과 제자 사이는 실로 은혜와 의리가 두루 극진한 관계입니다. 여기에서 그 정을 다하지 않음이 있다면 비록 대중을 널리 사랑하고 두루 베푸는 행위가 있더라도 패덕(悖德)7)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형편없는 소자는 어버이 봉양을 부지런히 하는 일과 전수받고 강학하는 방도에 있어서 일찍이 조금이라도 남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았으니 소자가 지극한 은혜를 저버린 것이 큽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손을 저어 물리치지 않고 자식처럼 아우처럼 아껴주고 가르쳐 주시니 실로 천지와 같은 도량은 포용하지 않는 사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는 가운데 해가 또 바뀌었습니다. 삼가 선생님께서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도체(道體)는 새해를 맞아 더욱 건강하십니까? 소자는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하며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사사로운 분수에 있어서 매우 다행입니다. 소자의 나이는 또 고인이 덕을 세운 나이가 되었지만 성취한 것을 따져보면 도리어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둔8) 아래 수준에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니, 어찌 백배로 공부하여 고인이 진취(進就)한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어느새 개연히 망연자실합니다. 대저 소자의 오늘날 공부는 중단되기는 쉽고 계속하기는 어려우며, 개인적인 근심은 많고 실심(實心)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한 관문을 통과한다면 발전할 가망이 있을 듯하지만 주저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끝내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지난겨울부터 차츰 독서와 궁리의 공부를 줄이고 매양 더욱 함양하여 근본을 세우는 계책으로 삼고 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요사이 특별한 활계(活計)를 하고 있음을 들었네. 본래 가장 좋은 법문(法門)은 "잊어버리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勿忘勿助]"라는 것과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뛰어오른다.[鳶飛魚躍]"라는 것이니, 여기에 재미를 붙여 힘쓰고 힘쓰는 것이 정히 좋네. 한 장의 종이에 어리석은 말을 대략 적어서 인편을 기다린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부쳐 보내네.[문] '정주(定主)' 2자는 사람의 안배를 기다리는 듯하다.[답] 일찍이 생각건대, 《도설(圖說)》의 이 뜻은 《중용》에 이미 있으니, "진실로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응결(凝結)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네. 정하고 주로 하는 것은 바로 덕을 닦고 도를 응결시키는 일이네. 만약 도리가 천연적으로 있는 것이라 하여 마침내 인력이 개입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재성(財成)과 보상(輔相)9)은 모두 헛말일 것이네.[문] "형이상하(形而上下)"의 "상하(上下)"는 전후(前後)의 뜻으로 간주한다.[답] '상하(上下)' 2자는 《논어(論語)》에 이미 있으니,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한다."라고 하였네. 대개 도는 기(器) 가운데 있으니, 그 경계는 본래 말하기 어려우므로 성인이 '상하'라는 글자를 빌려서 형용하였지만 그 실상은 참으로 상하가 있는 것이 아니네. 상하도 오히려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한번 전환하여 전후로 여긴다면 도와 기가 이미 분리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학상달(下學上達)도 뒤에서 배워 앞으로 통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형이상하를 가지고 말하면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라고 한 주자의 이 한 조목은 과연 전후를 가지고 상하로 간주한 듯하지만, 정자와 주자의 평소 의론은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은 듯하네. 머물러 두고 생각해야지 갑자기 한 가지 설만 고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는가.[문] 마음은 크고 넓게 가지며 엄숙하게 가지는 것은 둘 다 보존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기상(氣像)에서 체인(體認)하여 얻어야 한다.[답] 이곳은 다만 손진인(孫眞人 손사막(孫思邈))의 "담력(膽力)은 크고자 하고 마음은 작고자 해야 한다.[膽欲大心欲小]"라는 한 구절을 가지고 보면 절로 참되고 정확해지네. 기상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파악하지 못한 듯하네.[문] 칠정(七情) 외에는 정이 없다.[답] 마음이 발한 것 중에 기력(氣力)이 있어 계교(計較)할 수 없는 것이 대략 이 일곱 가지가 있네. 가령 한만(閒漫)하게 발동한다면 어찌 일찍이 일곱 가지에 그치겠는가. 또 칠정도 그 실제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 정이네.[문] 「기선악도(幾善惡圖)」[답] 조치도(趙致道)의 도(圖)를 말하는가? 사람의 평상적인 정으로 말하면 기(幾)가 처음 동했을 적에는 혹 쉽게 선악으로 이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조씨의 뜻에 혹시 이런 점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통서(通書)》의 본지가 아니네. 다만 하나의 '기(幾)' 자에 이르러 잠시도 멈추지 말고 선과 악을 나누어 쪼갤 뿐이네.[문] 마음을 수렴하고 관섭(管攝)한다.……[답] 생리가 두루 흐르고 지각이 날로 열린다는 설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듯하니 매우 좋네. 다만 인(仁)이 사덕(四德)의 으뜸이 되는 것은 어찌 반드시 이로 인해 이름한 것이겠는가. 歲前泉谷便。轉上一書。跡渉苟簡。繼而惶恐。及其便回。不惟不罪。而加以下賜復書。又其教語。縷縷懇惻。拜受莊讀。衷情感泣。夫師弟之間。固恩義兼盡之地也。於此有不盡其情。則雖有其泛愛博施之行。亦不免於悖德之歸況小子無狀。其於服勤就養之節。傳習講受之道。不曾有一毫髣髴於人者。則小子之所以辜負至恩者。重矣。然而先生不之揮斥。愛之敎之。如子如弟。固知天地之量。無物不包。而其感陳愧恧。實不知所以爲心也。信後寥然。歲又改次。伏未審先生燕申道體。迓新增康。小子奉老親。無事經歲。私分萬幸。犬馬之齒。且當古人立德之年。而究厥所造。反在十五志學之下。悠悠歳月。其安能百倍其功。以追古人進就之階級㢤。思之不覺慨然自失。大抵小子今日之功。易間斷而難接續。多私慮而少實心。若得過此一關。似有向進之望而進退上下之間。竟未過此闗去。奈何奈何。自去冬來。稍減讀書窮索之功。而毎加涵餋以爲立本之計。未知得否。更乞下敎伏望。答附畧曰聞比來做別様活計。自是太上法門。勿忘勿助。鳶飛魚躍。正好此處得滋味。勉之勉之。一紙瞽説起草。俟便已久。故茲付去。定主兩字。渉於竢人排定。竊嘗謂圖說此意。中庸已有之曰。苟不至德。至道不凝焉。定之主之。卽修德凝道之事。若以道理之天然自有。而遂欲不犯人力。則財成輔相。皆虛語矣。形而上下之上下。作前後意看。上下二字。論語已有之曰。下學而上達。盖道在器中。其界至。本自難言。故聖人借上下字。形容之。其實非眞有上下也。上下猶非眞有。況一轉而爲前後。則道器不旣離矣乎。下學上達亦可看作後學而前達乎。以形而上下言。豈無先後。朱子此一條。果似以前後看上下。程朱平日之論。恐不如此。留作商量。勿遽執一說如何。弘廣矝莊。難於併行。須於氣象上體認。此處。但以孫眞人膽欲大心欲小一句看之。便自眞的。氣象之云。恐沒把捉七情外無情心之所發。有氣力無計較者。大約有此七者。若閒漫發動。何嘗止於七耶。又七情。其實好惡兩情。幾善惡圖趙致道圖耶。以人之常情言之。幾之始動。或有未易以善惡名者。趙氏之意。或有此耶。然而此非通書本旨。但當於幾一字內。不留頃刻劈破善惡耳。收斂管攝云云生理周流知覺日開之說。似是自身経歴中出。甚善。但仁爲四德之長。豈必因此而名耶。 패덕(悖德) 《효경(孝經)》 성치장(聖治章)에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을 패덕이라 한다.[不愛其親而愛他人謂之悖德]" 하였으니, 덕의(德義)에 어그러진 것을 패덕이라 한다. 열다섯……둔 《논어》〈위정〉에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섰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라고 하였다. 재성(財成)과 보상(輔相)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억제하고 모자라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한다는 것으로, 《주역》〈태괘 상(泰卦象)〉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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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에게 올림 上蘆沙先生 절하고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봄이 깊어 가는 가운데 삼가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것이 모두 고르며 음식을 드시는 것은 줄어들지 않으시며 일어나고 주무시는 것은 평소와 같으며, 장구(杖屨)는 더욱 한가로우며, 수응(酬應)하는 데 수고롭지 않으십니까. 멀리서 삼가 사모하는 소자의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소자는 늙은 부모님을 봉양하고 책을 보며 날마다 그럭저럭 지낼 따름입니다. 지난번에 사상(沙上)에서 대치(大峙)에 도착하여 김석귀(金錫龜)10)를 조문하고 인하여 강론하고 토론하여 발명한 것이 많았습니다. 대저 이 사람 같은 지조와 식견은 소자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자리에서 공부하기를 청하여 물러나 그와 더불어 조용히 강론하였으니, 소자에게는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말세에 다시 소자에게 이런 즐거움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 세상에서 스승으로 자임하는 자는 가르치고 전수할 때 대체로 옛글을 기억하고 들은 것을 가지고 강설하여 자질구레하게 안배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깊은 조예로 자득하여 대체(大體)를 두루 보아 말씀마다 본원(本源)에서 촘촘하게 내신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천만 칸의 큰 집에 많은 금은보화와 돈, 곡식을 갈무리해 두었다가 사람마다 필요한 대로 사용하더라도 고갈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소자가 진심으로 감복하여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대저 '인순(因循)' 2자는 학문하는 데 가장 병통이 됩니다. 혹은 진보하고 혹은 퇴보하며 자주 회복하고 자주 잃어서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이러하여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며 살필 줄 모르니, 일생을 망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소생은 이러한 병통에 얽매여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미 적지 않습니다. 소생의 나이는 지금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젊다고도 할 수 없으니, 일생의 득실이 다만 오늘날에 달려 있을 따름이니 어찌 매우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지극한 가르침을 내려서 평소에 돌아보며 잘못을 바로잡는 자료로 삼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기를 매우 간절히 바랍니다.지난번에 김석귀(金錫龜)와 태극(太極)을 논하면서 서로 막힌 곳이 있었는데, 김석귀가 인하여 선생님께서 전일 답한 말을 내어서 보여 준 것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태극의 설은 대저 '위허이실(位虛理實)' 4자로 다 설명할 수 있네. 「태극도(太極圖)」 상면의 한 권자(圈子)에서부터 만물화생(萬物化生) 권자11)에 이르기까지 어찌 일찍이 확정된 계층과 등급이 실제로 있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위허(位虛)라는 것이다. 다섯 층의 권자가 모두 한결같이 순백하고 담담한 것이요, 원(員)은 족하여 흠결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실(理實)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대개 통체각구(統體各具)' 4자는 본래 허위 쪽으로부터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이 「태극도」가 출현함으로부터 한두 선생이 발명한 뒤에 과연 이러한 의론이 있었습니까? 소자가 읽고 비록 만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서로 막혔던 곳이 풀린 것이 있었습니다. 또 김석귀와 신종구(申鍾求)가 강론한 말을 보니, 신종구는 태극의 제1권(圈)을 통체(統體)로서의 태극이라 하고 이하 네 권(圈)을 각구(各具)로서의 태극이라 했으며, 김석귀는 "목(木)은 만목(萬木)의 기(氣)이고 화(火)는 만화(萬火)의 기인데 오묘하게 합한 권(圈)은 또 천명(天命)의 성(性)이니, 이는 모두 통체이고 각구(各具)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미 김석귀의 설을 따르셨습니다. 소자가 처음에는 또한 옳다고 여겼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 이른바 통체(綂體)와 각구(各具)는 본래 허위(虛位)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김석귀의 말이 또한 온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태극의 다섯 권(圈)을 합하여 말하면 통체로서의 태극이요, 나누어 말하면 동하여 양을 낳는 것도 하나의 태극이니, 어찌 「태극도」의 다섯 권이 각구의 태극이 없다가 만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뒤에야 각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통체와 각구가 각기 방소(方所)가 있으니 허위의 뜻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김석귀의 설을 따른 것은 신종구의 설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입니까?"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게 함을 도라고 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음양의 권(圈)이고, "계속하여 하는 것은 선(善)이다."라고 한 것은 오행의 권이고, "갖추어 있는 것은 성(性)이다."라고 한 것은 만물의 권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 남녀의 권은 마땅히 어디에 속해야 합니까? 사람의 혈기(血氣)가 형체를 이룬 것은 곧 음양의 권이요, 사람의 오성이 감동하는 것은 바로 오행의 권이며, 사람이 만사에 두루 응하는 것은 바로 만물의 권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 남녀의 권은 또 마땅히 어디에 속해야 합니까? 선유(先儒)는 모두 하늘이 일월과 함께 모두 왼쪽으로 돈다고 하였으니, 왼쪽으로 도는 것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을 이릅니다. 그러나 일월이 하늘에 닿지 못하고 1도(度)씩 물러나고 13도씩 물러나는 것12)을 가지고 관찰하면 일월이 왼쪽으로 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이르러서는 분명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니, 어찌 일찍이 왼쪽으로 도는 때가 있겠습니까.선생님께서 일찍이 소자에게 말씀하기를 "기가 만약 잠깐 동안 맑으면 잠깐 동안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없고, 하루 동안 맑으면 하루 동안 기질지성이 없게 된다. 안자(顔子)는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았으니13) 석 달 동안 기질지성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기를 "예로부터 성현은 병이(秉彝)의 본성을 부여받은 것만 말하고, 항성(恒性)만 말했을 따름이다. 후세에 도학(道學)이 밝지 못하여 성(性)이 악하다고 하는 자도 있고, 선악이 섞여 있다고 말하는 자도 있어 성선(性善)의 도가 천하에 밝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유(先儒)가 부득이 기질성(氣質性) 세 글자를 제기하여 사람의 불선은 기에서 말미암은 것이지 성에서 말미암지 않은 까닭을 밝혔다. 후인은 선유의 어쩔 수 없는 고심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주기(主氣)의 의론을 만들어 논하였으므로 곧 이단과 같은 데로 귀결되게 되었으니, 이것이 오늘날 이(理)를 주장하는 학자의 큰 폐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자가 이 말씀을 삼가 지키고 또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기질지성(氣質之性)은 불선한 곳을 가리킨다. 하지만 미발시(未發時)에 어찌 일찍이 불선의 단서가 있겠는가. 불선하다는 말을 붙이자마자 곧 미발의 때가 아니고, 기질지성을 말하자마자 또한 미발의 때가 아니다.'라고 여겼습니다. 지난번 선생님께서 정시림(鄭時林)에게 답한 별지를 보니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이 말하기를 '기질지성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함께 생겨난 것이지 때에 따라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소자가 이전에 들었던 것과 다른 듯한데 선생님께서 또 따라서 허여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장을 덧붙임평안하다는 글자는 매우 위로가 되네. 수서(袖書)를 가지고 온 자는 또 그대의 사촌이었는데 잠깐 보았지만 신수가 범상하지 않아 덕문(德門)의 복록을 알 수 있었으니, 더욱 축하할 일이네. 병든 나는 겨울 동안 방 안에서만 지내며 봄이 돌아와 문을 열고 산색을 볼 수 있다면 나의 일이 끝날 것이라고 고대하였는데, 지금 문이 이미 열렸지만 정신이 더욱 혼미하니,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흐르기에 웃음만 나네. 별지에 대해서 절목마다 답하고 싶었지만 안개꽃이 눈에 어른거려 침침하니 자세히 볼 수도 없는데, 더구나 답장을 쓰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말미에 한두 가지만 답할 따름이니, 직접 찾아와 주기를 바라네. 형질(形質)과 기질(氣質)에 대한 설은 그대가 떠나던 날 답답함이 남아 있어 대략 기록하여 인편을 기다리다가 지금 온 인편에 별지를 함께 부치네. 나머지는 뒤에 만날 때를 기다리네.신생(申生)의 통체(統體)와 각구(各具)의 설을 지금 살펴보니 불가함이 없을 듯한데 당시 무엇 때문에 김생(金生)의 의견을 따랐는지 모르겠네. 내가 사욕에 가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태극도(太極圖)는 조화로부터 곧장 말하였으므로 기화(氣化)와 형화(形化)의 차례가 있는 것이네. 인사(人事)에서 굳이 남녀의 권(圈)을 찾는 것은 너무 구애되는 것이 아니겠는가.왼쪽으로 돈다는 의심은 그릇되었네. 도는 것은 가서 다시 돌아오는 뜻이네. 하늘이 가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실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이네. 기질이 때에 따라 있거나 없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래 내가 십분 동의한 것이 아니네. 일찍이 그대의 족인과 말한 적이 있었지만 무어라 말했는지 말의 맥락을 기억하지 못하겠네. 미발은 십분 징청(澄淸)할 때이니 기질을 한쪽에 숨어 있을 수 없네. 拜歸閱朔。春候向深。伏惟燕申偕適。飮饍無減興寢視常。杖屨益閒。酬應不勞。遠外伏慕。不任下誠。小子奉老看書。日以粗遣而已。向自沙上到大峙。吊金錫龜。因以講討。多所發明。大抵斯人之持守也見識也。小子之所罕見也。請業於三席而退。與之從容講討。小子之爲幸大矣。誰知叔世復有此樂屬於小子乎。嗚呼世之以師道自任者。其於敎授之際。多以記聞講說。淺淺排着。而惟先生深造自得。統見大體言言無非自本源上滴滴出來比如大厦千萬間。貯藏許多金帛錢榖。隨人所求。而用之不竭。此小子所以衷情感悅而不能自己者也。夫因循二字。最爲學問之病。或進或退。頻復頻失。今日如此。又明日如此。悠悠歳月不知所以察之。則其不至於枉了一生。小生只坐此病。浪費時日。已不少矣。犬馬之年。今不可謂晩。而亦不可爲早。則一生得失。只存今日矣。豈非可懼之甚者耶。伏乞下賜至誨。以爲平居顧諟之資。千萬向與錫龜論太極。有相礙處。錫龜因出先生前日所答語而示之。有曰。太極說話。大抵位虛理實四字。足以盡之。圖中上面一圈。至萬物化生圈。曷嘗有層等確定。此所謂位虛也。五層圈子。皆一味白淡淡底。圓足無欠缺底。此所謂理實也。又曰。蓋綂體各具四字。本自虛位邊說來者也。鳴呼。自此圖出。而一二先生發明之後。果有此等言論乎。小子讀之。雖不能領會其萬一。而相礙處。有將釋然者矣。且見錫龜與印鍾求有講論之語。鍾求以太極第一圈。爲綂體之太極。以下四圈。爲各具之太極。錫龜。以爲木是萬木之氣。火是萬火之氣。而妙合之圈。又是天命之性。則此皆綂體而非各具也云云。先生已從錫龜之說矣。小子初亦然之。後來思之。以先生所謂綂體各具本自虛位邊說來之義。推之。錫龜之說。亦似未安。合太極五圈而言之。則綂體之太極也。分以言之。則動而生陽。只是一太極。豈可謂太極五圈。無各具之太極。而至於萬物林林叢叢然後有各具者耶。然則綂體各具。各有方所。而非虛位之義也。先生從錫龜之說者。以其猶勝於鍾求之說耶。一陰一陽之謂道。卽陰陽圈也。繼之者善。卽五行圈也。成之者性。卽萬物圈也。然則其間男女之圈。當屬於何耶。人之血氣成形。卽陰陽圈也。人之五性感動。卽五行圈也。人之泛應萬事。卽萬物圈也。然則其間男女之圈。又當屬於何耶。先儒皆謂天與日月。皆左旋。左旋自西而東之謂也。然以日月之不及天而退一度退十三度者。觀之。則日月可謂左旋矣。至於天則分明是自東而西也。曷嘗有左旋之時耶。先生嘗敎小子曰。氣若霎時澄淸。則霎時無氣質之性。一日澄淸。則一日無氣質之性。顔子三月不違。則三月無氣質之性。又曰。從古聖賢。只說降衷。只說秉彛。只說恒性而已。後世道學不明。或有以性惡者。或有以善惡混者。而性善之道。不明於天下。故先儒不得已。而提起氣質性三字。以明人之不善。由於氣而不由於性之故也。後之人不知先儒不得已之苦心。反爲主氣論之。便同異端之歸。此今世論理家大獘也。小子謹守此說。而又自料于心曰。氣質之性。指不善處也。而未發之時。有何曾不善之端乎。纔着不善字。便非未發也。纔說氣質性。亦非未發也云矣。向見先生答時林別紙語曰。遂庵曰。氣質之性。與生俱生。非可以隨時有無云。此說與小子前所聞者。以有異。而先生又從而與之。何耶。答附平安字慰慰。袖書者。又是賢從。乍見五嶽非凡。德門福祿可知。尤以爲賀。病人冬日牢蟄。苦竢春還。開門得見山色。吾事已畢。今則戶已開矣。精神轉益陸沈。所希望。歸於錯料。可笑。別紙非不欲逐節奉答。而昏花翳眼。見亦不能仔細。況能作答語乎。其尾答一二而已。親至爲望。形氣二質說。公去之日。有餘鬱。草成俟便。今倂付所來別紙。留以竢後面。申生統體各具之說。以今觀之。似無不可。而當時緣何從金生。無乃吾茅塞而然耶。圖從造化直說。故有氣化形化之次第。人事上必尋男女之圈。不已拘乎。左旋之疑。誤矣。旋是去而復還之意。天之去而復還也。固自西而東矣。氣質之不隨時有無。本非吾之十分嚮服。曾所與令族人言者。不記其語脈云何。未發是十分澄淸時。不可以氣質藏在一邊。 김석귀(金錫龜) 1835-1885.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景範), 호는 대곡(大谷)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이다. 《맹자》에 통달하여 '김맹자'로 불렸다. 태극도(太極圖)……권자 「태극도(太極圖)」는 총 5층의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위가 제1층으로 태극 권역이며, 그 아래 2층이 음양 권역, 그 아래 3층이 오행 권역, 그 아래 4층이 남녀 권역, 그 아래 5층이 만물 권역이다. 권역이란 둥근 원을 말한다. 일월이……것 해와 달의 운행에 있어서 해는 천구(天球)를 따라 운행하여 날마다 1도씩 물러나고, 달은 날마다 13도씩 물러난다.《默山集 朞三百註解》 안자(顔子)는……않았으니 《논어》〈옹야(雍也)〉에 "공자가 말하기를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뿐이다.'라고 하였다.[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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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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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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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께 올림 上蘆沙先生 지난번에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서 삼가 기후가 편치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삼가 너무나 놀랍고 염려되었습니다. 근래 청명하고 화창한 때 한가하고 편안히 쉬며 안정된 가운데 점차 편안히 일상을 회복하셨습니까. 소생은 깊은 산속에서 칩거하며 가난한 생활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였지만 나아가 문후를 여쭈지 못하고 편지는 심부름꾼이 없어서 인편이 있는 대로 전달하느라 이처럼 구차하고 소홀하니 매양 너무나 죄송합니다. 지난번에 가문을 위한 계책을 가르쳐 주셨으니 소생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될 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뭇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며 바꿀 수 없는 지극한 의론입니다. 소생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감히 여기에 종사하여 평생 몸에 절실한 계책으로 삼겠지 않겠습니까.성리서(性理書)는 근래 겨우 다 읽었지만 조금도 효과를 보지 못하였기에 읽지 않았을 때와 다른 점이 없었으니,17) 참으로 고인의 책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다시 한 책을 많이 읽어 주된 근본을 확고히 세울 계책으로 삼고자 하는데, 「시경」, 「서경」, 「예기」 가운데 어느 것을 위주로 해야 합니까? 김석귀(金錫龜) 어느 곳으로 이사했습니까? 동문 가운데 믿을 곳은 이 사람뿐인데 그는 너무나 가난하여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끝내 완전하게 성취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시림(鄭時林)은 이 사람과 흡사하니 또한 염려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에 김생 우종(金生佑鍾)이 있는데, 소생이 향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며 교유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자품이 순실(純實)하고 화락하여 종친들은 효성스럽다고 하며 향당에서는 우애가 있다고 하니, 선비 가운데 만나기 쉬운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가난한 것이 김석귀, 정시림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름에 상을 당해 여러 해 동안 파묻혀 지내다가 지금에서야 문하에 나아왔습니다. 대저 세간에 이러한 사람은 곤궁함이 매양 이와 같으니, 이 또한 일종의 기수(氣數)의 변고입니까? 정재규(鄭載圭)는 근래 왕래합니까? 다시 바라건대 도를 위해 더욱 건강하십시오.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하(夏)나라는 고대(古代)와 가까워 충성(忠誠)한 사람이 많았으므로 충(忠)을 숭상하였으나 충폐(忠弊)가 생겼기 때문에 질(質)로 구제하였고, 질폐(質弊)가 생겼으므로 문(文)으로 구제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文)과 질(質)은 서로 반대가 되니 질에 폐단이 생기면 마땅히 문으로 구제해야겠지만 충과 질은 서로 비슷하니 충에 폐단이 생긴 것은 또 어떻게 질로 구제하겠습니까.문중자(文中子 왕통(王通))가 말하기를 "동(動)한 것은 둥글고, 정(靜)한 것은 모나다."라고 한 것에 대해 정자가 말하기를 "이는 바로 거꾸로 된 말이다. 정의 체(體)는 둥글고, 동의 체는 모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중자의 말이 불가하지 않은 듯한데 정자가 거꾸로 된 말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난번에 다른 사람과 태묘(太廟)의 제도를 논하다가 인하여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제왕가(帝王家)는 진실로 할아버지와 손자 간에 서로 계승하는 경우가 있고, 형제간에 서로 계승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이의 대수가 혹 친진(親盡)18)하지 않았지만 이미 4대가 넘은 경우가 있고, 혹 이미 친진하였지만 아직 4대가 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마땅히 한결같이 통위(統位)의 순서를 위주로 하는 것입니까? 태자(太子)의 아들인 환왕(桓王) 임(林)과 그 조부 평왕(平王)은 함께 한 소(昭)가 되는 것입니까.19) 평왕이 소(昭)가 되면 환왕이 목(穆)이 됩니까? 차자 외병(外丙)은 그 동생 중임(仲壬)과 함께 한 목이 됩니까. 외병이 목이 되면 중임은 소가 됩니까?20)사람이 외지에서 사망하였다면 그 집에서는 실로 마땅히 부음을 들은 날에 대상(大祥)과 소상(小祥)을 치러야 합니다. 만약 그 아버지가 집에서 사망하였는데 그 아들이 외지에서 부음을 들었다면, 한 사람이 부음을 늦게 들었다는 이유로 대상과 소상을 물려서 행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복을 벗는 것은 부음을 들은 달로 계산합니까?답장을 덧붙임두 통의 편지는 모두 뜻밖에 받았으니 계속 위로가 되네. 구차하고 소홀하다고 스스로 탓하는 것은 지나치네. 우리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으니, 어찌 마땅히 달려와 문안하는 것을 공경으로 삼겠는가. 정월 이후에 감기가 들었는데 이제야 떨쳐 버렸지만 팔다리가 저리고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 날로 더 심해진다는 것 외에는 말할 만한 것이 없네. 김생(金生 김우종)은 자질은 훌륭하지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애석하네. 이 한 사람을 가지고 보더라도 세간에 훌륭한 자질을 헛되이 저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계방(季方)은 이미 이 사람과 서로 친하니 힘이 닿는 대로 충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네.충ㆍ질ㆍ문의 폐단을 구하는 것에 대하여 동자(董子 동중서(董仲舒))가 이미 이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정자(程子)가 계승하여 사용한 것이네. 그러나 헤아려 볼 점이 있으니 그 실상은 점점 여는 것이지 폐단을 구한 것이 아니네. 대저 계방(季方)이 말한 것은 충ㆍ질ㆍ문 3자의 본래 뜻에 대해서 자세함이 부족한 듯하네. 동(動)은 각각 성명(性命)을 바로잡는 것이니 방(方)과 비슷하고, 정(靜)은 혼연히 한 이치이니 원(圓)과 비슷하네. 정자의 설은 이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태묘(太廟)의 위차(位次)는 예부터 여러 사람이 논하였는데, 참으로 난처한 곳이 있어 갑자기 확정할 수 없고, 또 말하자면 그 설이 매우 장황하네.대상(大祥)과 소상(小祥)은 본래 그달 내로 날을 잡아 행하지만 기일(忌日)을 정하는 것은 후세에 간편함을 따랐네. 부음을 들은 것은 조금 선후가 있으니, 날을 잡는 법도 변통할 수 있네. 혹 연월이 차이 나면 대상과 소상은 탈복(脫服)을 기다려서는 안 될 듯하네.시와 서, 예를 지키는 것은 공자가 평소에 말한 것이니, 공자는 어째서 세 가지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 평소 말하지 않았겠는가. 계방의 이 질문은 온당한지 모르겠네. 向拜下復。謹伏審氣候有不安節。伏切驚慮。比日淸和。燕申休養。漸復安常。小生跧蟄窮峽。貧病因循。當此新年。而進不能供候。書不能專人。隨便轉達。苟簡如此。每切罪悚。向敎門戶之計。非但爲小生對症之藥。誠是衆人通法。不易之至論也。生雖不敏。敢不請事於斯。以爲平生切身家計也。性理書近纔卒篇。而無一毫見效與不讀時相別處。眞是枉讀了古人書也。更欲多讀一書以爲立定主本之計。則於詩書禮三者。以何爲主耶。金錫龜搬移於何地。同門所恃。乃有此人。而其窮甚。至於無以爲計。未知終當玉成否。鄭時林洽似此人。亦可悶。此去金生佑鍾。生之在鄕里間最所從遊者也。其資稟純實樂易。宗族稱孝焉。鄕黨稱弟焉。在翰墨間不易得之人也。但其窮與錫龜時林無異焉。且以憂患喪戚。積年汨沒。今纔進去門下矣。大抵世間此等人。其窮每每如是。此亦一種氣數之變耶。鄭載圭近有來往耶。更乞爲道增康。程子曰夏近古。人多忠誠。故爲忠忠。獘故。捄之以質。質獘。故捄之以文。文與質。自是相反。則獘於質者。固當捄之以文也。若忠與質。自是相近。則獘於忠者。又何捄之以質耶。文中子曰。動者圓。靜者方。程子曰。此正倒說。靜體圓。動體方。以今思之。文中之說。似無不可。而程子謂之倒說何如。向與人論太廟之制。而因有所疑。帝王家固有祖孫相承處有兄弟相承處則其間代數或有親未盡而已過四代者。或有親已盡而未滿四代者。則當一以統位之序爲主耶。太子之子桓王林與其祖平王。同爲一昭耶。平王爲昭則桓王爲穆耶。次子外丙與其弟仲壬。同爲一穆耶。外丙爲穆則仲壬爲昭耶。人有在外而亡。則其家固當以聞訃日。爲大小祥。若其父在家亡。而其子在外聞訃。則不可以一人聞計之在後。而退行其大小祥。但除服則計其聞訃月耶。答附再書皆出於意不到。續續披慰。苟簡自咎。過矣。吾輩不相負。別有所在。豈當以趨走問安爲敬耶。正歲後感冒。今始離却。痿痺昏忘。日甚一日。外無可言。金生可謂質美而未學者。可惜。以此一人觀之。世間虛負好姿質者。何限。季方旣與此人相熟。隨力納忠爲佳。忠質文之救獘。董子己有此設。而程子承用。然有可商量者。其實漸開而非救獘也。大抵季方所言。似於忠質文三字本旨。欠消詳。動則各正性命。有似於方。靜則渾然一理。有似於圓。程子之說指。是而言耶。太廟位次。自古論者不一。誠有難處。未可卒乍指定。又言之則其說甚長。大小祥。本是此月內卜日行之。用忌日者。後世之從簡便也。聞訃小有先後。則卜日之法。可以通之。其或差以年月。則大小祥。似不當延待脫服也。詩書執禮。子所雅言。孔子何不於三者中揀其一而雅言乎。季方此問。未知穩當。 읽지……없었으니 원문은 "與不讀時相別處"이다. "別處"는 문맥이 통하지 않아 "似"의 의미로 번역하였다. 친진(親盡) 제사 지내는 대(代)의 수가 다 된 것을 말한다. 보통 임금은 5대, 평민은 4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낸다. 태자(太子)의……것입니까 환왕(桓王)은 평왕(平王)의 손자이다. 환왕의 부친인 설보(洩父)가 태자로 있다가 일찍 죽자, 평왕 사후에 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차자……됩니까 외병(外丙)과 중임(仲壬)은 모두 탕(湯)의 장자인 태정(太丁)의 아우이다. 태정이 태갑(太甲)을 낳고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죽었는데, 외병이 2년 동안 왕위에 있고 중임이 또 4년 동안 왕위에 있은 뒤에 태갑이 즉위했다는 것이 조기(趙岐)의 설이고, 탕이 붕어할 때에 외병은 나이가 2세이고 중임은 4세였으므로 나이가 조금 많은 태갑을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 정이(程頤)의 설이다. 여기서는 조기의 설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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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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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27) 김 어른【평묵】에게 올림 上重菴金丈【平黙】 《아언(雅言)》은 일찍이 어떤 사우의 집에서 겨우 한두 편을 보는 데 그쳤다가 근래 저의 고향에서 인쇄한 것이 있어 삼가 다 읽어 보았습니다. 아, 도가 밝아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훈고(訓誥)를 억지로 찾고 구이지학(口耳之學 천박한 학문)을 가져다 분변하기에 궁구한 것이 정밀하지 않아 의론이 더욱 번다하고 견해가 이미 치우쳐 논쟁이 더욱 많으니, 갈릴 대로 갈려 이렇게 극도에 이른 것입니다. 게다가 이단과 사설(邪說)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도교와 불교에 견줄 정도가 아니어서, 백성들을 금수로 만들려고 하는 자가 천하에 가득하여 놀랍고 기괴한 일이 갖가지로 나옵니다. 실로 대단한 심력(心力)과 대단한 안목(眼目)으로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가 일세에 으뜸인 자가 아니면 어찌 전복될 위기를 만회하여 한 잔의 물로 수레에 가득한 땔나무의 불을 끄는 것과 같은 근심을 면하게 하겠습니까. 노선생의 이 글은 오늘날 한 번 다스려질 운수를 감당할 수 있으니, 선생께서 수습하고 편집한 힘이 아니면 어찌 이에 미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선비들이 왕도(王道)를 귀히 여기고 패도(覇道)를 천하게 여기며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칠 줄을 알아서 갑자기 혼란에 빠져드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이 또 어느 것인들 그 은택이 아니겠습니까. 제 선생님의 「답문편(答問編)」은 도를 밝혀 세도를 지킨 공이 「아언」과 더불어 조목이 같고 맥락이 같으니, 또한 근세의 한 경전입니다. 의림(義林)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벗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게다가 시상(時象)과 풍속이 하루하루 갈수록 퇴폐해지니, 보잘것없는 사람이 누구에게 달려가며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오직 이 두 책을 받들고 산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서 자정(自靖)하는 구경(究竟)의 계책으로 삼을 따름입니다. 인사드리고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어 북쪽을 바라보며 슬퍼합니다.혹자가 "주기설(主氣說)은 실로 성선(性善)에 해가 된다. 그러나 일체 주리(主理)가 가령 기(氣)와는 간여하는 바가 없다면 악이 귀속될 곳이 없어 성선설(性善說)에 도리어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기에, 대답하기를 "악은 이치상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다만 본연(本然)이 아닐 따름이다. 이미 본연이 아닌데 기에 그 허물을 돌리니, 이것이 성현이 바로 여기에 나아가 분개설(分開說)28)을 주장하여 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한 조목은 소생이 어떤 사람과 이처럼 문답한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러러 질정하고 싶은 것이 하나가 아니지만 삼가 조섭하지 못하는 가운데 번거롭게 해 드릴 듯하므로 여기에서 그치니,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雅言。曾於一士友家。僅見一二篇而止。近因鄙鄕有印來者。謹已卒篇矣。嗚呼。道之難明久矣。强探訓誥。取辨口耳。窮覈未精。而議論愈繁。見解旣偏。而辨爭愈多.分分裂裂。到此極矣。加以異端邪說。非楊墨老佛之比。而思以禽獸生靈者。瀰漫區宇。驚怪百出。苟非大心力大眼目。智周萬物。道冠一世者。安能挽廻幾覆之轍。而免於盃水車薪之憂哉。老先生此書。足以當今日一治之運。而非先生收拾編摩之力。何以及此。今日士類知有貴王賤伯。尊華攘夷而不至遽爾淪胥者。又孰非其賜哉。鄙師答問編。明道衛世之功。與雅言同條而共貫。亦近世之一經也。義林自師門逝後。朋知渙散。加以時象風色。日深一日。藐爾人斯。誰因誰極。惟有抱此二書。入山塞竇。以爲自靖究竟計耳。拜敎無階。北望馳悵。或曰。主氣之說。固害於性善。然一切主理。使氣無所干豫。則惡無歸屬處。而於性善之說。反有碍否。曰。惡固理勢之所不能無。但非本然耳。旣非本然。氣執其咎。此聖賢正就此處分開設。以明性之本善。右一條。小生與或人問答如此。未知何如。所欲仰質者。不一。而切恐欠攝之中。致有煩惱。故止此。悚仄悚仄。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1819~1891)으로,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장(稚章), 호는 중암(重菴),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홍직필에게서도 수학하였다. 1880년(고종17) 선공감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분개설(分開說) 각기 다르다는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분석하여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고 통틀어 이해하는 혼륜(渾淪)과 상대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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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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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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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에게 올림 上蘆沙先生 삼가 생각건대, 신원(新元)에 편안히 지내시는 기체는 새해를 맞아 건강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기력은 손상됨이 없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있고 응대함에 게으르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니, 문장이 어색해서 살짝 바꾸었습니다.) 비록 건장하여 자력으로 움직이는 자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실로 대군자(大君子)께서 평소 수양의 안정됨은 혈기가 흩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이 사문(斯文)을 묵묵히 도와주어 후생인 소자가 가르침을 받을 터전이 되게 하였으니 어찌 너무나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소자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날이 오래되었고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신 은혜가 지극하였지만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없으니, 소생이 젊을 때 기회를 많이 놓쳤을 뿐만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건강하시던 때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이 또한 어찌 적겠습니까. 매양 해가 바뀌는 때면 세월을 손으로 꼽아 보면서 더욱 회한이 마음에 교차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인하여 생각하기를 '고금에 뜻을 품은 허다한 사람들이 끝내 알려지지 못한 것은 다만 중단하여 힘쓰지 않은 소치이다. 만약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여 중단하지 않는다면 어찌 이러한 지경에 이르겠는가. 선가의 시에 「이 몸을 이번 생에서 제도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제도하겠는가.[此身若不今生道, 更將何時道此身]」14)라고 하였으니, 가령 오늘 중단하여 힘쓰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자와 같게 된다면 이 생과 이 몸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일신(日新)' 2자로 재실 이름을 짓고 문미에 편액을 걸었습니다. 대개 늘 보고 성찰하자는 뜻이니, 어찌 감히 시속을 따라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이겠습니까. 지난번 가르침을 받을 적에 소생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라.[與世相忘 從吾所好]"라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소생의 병통에 딱 맞는 것입니다. 대저 소생의 집안은 중세(中世)에 쇠락하였기에 빈약하여 자력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형편인데 자손이 되어 어찌 가문을 위한 계책에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생각에 더욱더 구애되어 매번 공리(功利)와 계교(計較)의 사사로움에 빠져드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후로 매양 이러한 생각이 날 때면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8자를 가지고 여러 번 암송하곤 하였는데, 날로 가슴속이 맑아져 얽매이는 사사로움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니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그러나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밝아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으로 마음을 삼는 것은 또한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공자(孔子)는 어지러운 춘추 시대에 비록 지위를 얻지 못했지만 열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하루라도 세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주자(朱子)는 송(宋)나라 말기 어지러운 때를 만나 비록 다스리는 지위에 있지 않았지만 공경(公卿)과 재상 사이에서 부지런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혹 시사(時事)가 한 번 어긋나 그 해가 무궁할까 두려워하였으니 주자의 마음도 일찍이 하루라도 세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초학이 극기복례하는 설이 되니, 우리 문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활법(活法)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또 진재경(陳才卿)15)의 '초목의 부류는 성(性)은 있지만 인(仁)은 없다'는 설을 가지고 가르침을 청하니, 선생님께서 "진재경이 운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소생은 이것으로 인하여 내심 '인이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만물이 얻어서 사는 것이다. 피차가 충만하여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남음이 없고, 상하가 함께 유행하여 잠시도 정지하거나 멈추지 않으니 천지간에 생명을 가진 사물이라면 어찌 일찍이 인이 없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한 사물만 보고 이른바 인이라는 것을 구한다면 그 체(體)가 한편으로 치우치고 막혀서 혼연히 내면에 있는 인을 보지 못하고, 그 기가 혼매하여 애연(藹然)히 사물에 감응하는 인이 있음을 보지 못하니, 이른바 인이란 것을 장차 어디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인물동체(人物同體)라는 것은 「갖춘 것이 성이다.[成之者性]」16)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성을 갖추기 전에 실로 같지 않음이 없지만 성을 갖춘 뒤에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기가 낳고 낳는 것을 가지고 두루 유행하여 그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망연자실하여 더욱 답답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에 대해 또한 한 말씀 해 주시기를 너무나도 바랍니다. 봄 날씨가 따뜻해져 가니 도를 위해 건강에 유념해 주신다면 사림의 다행이겠습니다.답장을 덧붙임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가문을 위해 과거를 보고 싶은 마음을 그대가 이처럼 숨기지 않으니, 나도 어찌 스스로 외면한 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겠는가. 얻을 것을 근심하고 잃을 것을 근심하지 않는 자를 그대는 보았는가. 득실을 근심하면서 가문을 일으킨 사람을 그대는 보았는가. 그렇다면 가문을 위한 계책도 여기에 있지 저기에 있지 않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기생집에서 예(禮)를 강론하고 백정이 예불(禮佛)을 드리는 격이 되네. 강절(康節 소옹(邵雍))의 시에 "사생(死生)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결한다면, 그 밖의 영욕(榮辱)은 알 수 있네.[以至死生皆處了 自餘榮辱可知之]"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해야 바야흐로 장부라네. 그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고 한번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일신(日新)'이 어찌 좋은 말이 아니겠는가마는 모름지기 이곳에서 기초를 세워야 비로소 의론할 수 있네.사물마다 각각 하나로 규정짓지 못하는 곳이 있으니, 사람에게 있어서는 측은지심이 이것이네. 이 때문에 인자(仁者)가 보면 인이라고 하고, 지자(知者)가 보면 지라고 하니, 모두 측은지심이 있는데 사람의 인을 가지고 저 외물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이치는 없네. 伏惟新元燕申氣體。餞迓萬康。先生期耄之年。每見氣力無損。而終日泥塑。酬應不倦。雖强壯自力者。猶未及焉。固知大君子素養之定。有非血氣之所能移也。天之所以默佑斯文而爲後生小子受敎之地者。豈非至幸也哉。但小子從事之日。非不久矣。導迪之恩。非不至矣。而迄于今。無有所就。則不惟多失小生年富之時。而虛違先生康寧之日者。亦豈小哉。每當歲次翻易之時。則屈指歲日。而尤不無悔恨交中。因念古今有志許多人。終始無聞者。只是間斷不力之致也。若能日新又新。無容間斷。則豈至此乎。釋氏詩曰。此身若不今生道。更將何時道此身。若使今日間斷不力。而與無聞者同歸一域。則此生此身。更待何時乎。乃以日新二字。拈爲齋名。揭諸楣端。蓋常目警省之意也。豈敢爲循俗觀聽之美也。曩者敎席小生曰。與世相忘。從吾所好。此誠切中小生之病。大抵小生家。中世零替。弱不自存。爲人子孫者。安得無心於爲門戶之策乎。此念轉輾朋比。每不免有功利計較之私。此最害人心術。自後每有此念。以先生所敎此八字。三復思誦。目覺胸中灑然。無繫累之私。感感在心。曷敢忘諸。然若道成德立。可以濟世澤物之人。則以此爲心。不亦過乎。孔子當春秋昏亂。雖不得位。而周遊列國。未嘗有一日忘世之心。朱子當宋未喪亂。雖不在位。而勤勤往復於公卿宰執之間。或恐時事一差。其害無窮則朱子之心。亦未嘗一日忘乎世也。然則此爲初學克己之說。非吾門終始首尾通看活法耶。向又以陳才鄕草木之類。有性無仁之說。請業。先生曰。才卿云云。須不可曉。小生因此而自惟于心曰。仁者。天地生物之心。而物之所得而生者也。彼此充滿而無一毫之欠剩。上下同流而無一息之停掇。則天地含生之物。曷嘗有無仁者哉然今觀一物而求其所謂仁者則其體偏塞而未見有渾然在中之仁。其氣渾昧。而未見有藹然咸物之仁。則其所謂仁者。將於何處可說着乎。然則人物同體者。以成之者性以上說耶。若曰。成性之前。固無不同。而成性以後。亦有不異之可言。則以其氣之生生周流不息之謂耶。思之至此茫然增欝。伏乞此處。亦賜一段語。至祝至祝。春候向伸。爲道萬康。以幸士林答附略曰爲門戶禦侮。君之不隱情如此。吾亦安能自外而不輸情乎。患得而不患失者。君見之乎。患得失而能樹立門戶者。君見之乎。然則門戶之計。亦在此而不在彼。不能透打此關。千般萬般。皆歸娼家講屠兒禮佛。康節詩曰。以至死生皆處了。自餘榮辱可知之。如此方是丈夫人。君勿以爲己見之昭陵。更下一場大思量一陣大鏖戰。如何。日新豈非好語。而亦須此處。立定脚跟始可議到耳。物物各有一箇不容已處。在人則惻隱之心是也。是以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都是此箇物事。若以人之仁去責那物則無是理矣 선가의……제도하겠는가 이 말의 출처는 당(唐)나라 때의 선인(仙人) 여동빈(呂洞賓)이 지은 게송(偈頌)의 일부분으로 원시인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과는 다소 글자의 출입이 있다. 진재경(陳才卿) 남송의 학자 진문울(陳文蔚)로, 자는 재경, 호는 극재(克齋)이다. 주희의 문인이다. 갖춘 것이 성이다 《주역》〈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하니 이것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선이요, 이것을 이루어 갖춘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본의(本義)에 "계(繼)는 그 발(發)함을 말하고 선(善)은 화육(化育)의 공(功)을 말하니 이는 양(陽)의 일이요, 성(成)은 그 갖추고 있음을 말하고 성(性)은 물(物)이 받은 것을 말하니, 물이 생기면 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각각 이 도(道)를 갖추고 있음을 말하니 음(陰)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周易傳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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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吳士益 乙亥 음성 사람이 형에게 〈정절사전(鄭節士傳)〉을 주었다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천하가 중화 세계인데 유자(儒者)가 중화인이 될 수 없다면, 천하가 즉시 오랑캐가 된다."라는 한 구절이 있는데, 형의 고견은 어떠합니까? 저는 크게 세도(世道)에 해롭다고 여깁니다. 지난번에 현광(玄狂 전일중(田鎰中)을 만났는데 그도 그렇다고 여겨서 마침내 .드디어 각각 하나의 변론이 있었습니다. 이에 적어서 바치니 만약 온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정정하여 보내주기 바랍니다. 이것은 공공(公共)의 의리이니, 진실로 음성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로 꾸며서 꾸짖어서도 안 되고, 또한 음성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침묵해서도 안 됩니다. 요컨대 다만 반드시 '공명(公明)' 두 글자에 입각하여 이 안건을 단정해야 합니다. 어떠합니까? 聞陰人投兄以《鄭節士傳》.其中"天下華而儒不能華,則天下即夷也"一語,高見見得如何? 鄙則以爲大爲世道之害.向見玄狂,亦以爲然,遂各有一度辨論.茲錄呈,如有未當,不憚訂示.此是公共義理,固不可以出於陰而工加訶責,亦不可以出於陰而避嫌含黙.要之只消道公明二箇字,斷得此案,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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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오 삼종에게 보냄 기사년(1929) 與劉省吾 三鍾 己巳 성오(省吾)여! 그대의 이름이 삼(三)이라고 해서 내가 그 때문에 공경하였나니, 한갓 글에 따라서 뜻을 취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삼성(三省) 가운데, 충신(忠信)이 근본이 되니 사람이 충신하지 않으면 일마다 모두 진실이 없어서 악행을 행하기 쉽고 선(善)을 행하기 어렵게 됩니다. 오늘날 사기가 성행하고 충신이 사라져서 안으로는 내 마음을 속이고 밖으로는 타인을 속입니다. 그리고 위로는 군주를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며, 스승을 속이는 데까지 이르러 꺼리는 것이 없어졌으니 지극히 개탄스럽습니다. 성호는 진실로 순신한 사람이지만 혹 세상의 풍조에 갇힐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거듭 부탁합니다. 오호라! 충신한 사람만이 가히 도(道)를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괜히 행해지지 않을 것이니, 부탁하건대 그대는 이 말을 여러 동학들에게 두루 일러주기 바랍니다. 省吾乎! 君名以三, 而余欽以此, 毋徒曰應文取義.三省之中, 忠信爲本, 而人不忠信, 事皆無實, 爲惡則易, 爲善則難.見今欺詐盛而忠信亡, 內而欺心, 外而欺人, 上而至於欺君欺親欺師而無憚, 極用慨歎.省吾固淳實人, 吾猶恐其或囿於世風也.玆復申囑焉.嗚呼! 忠信之人, 可以學道.苟非其人, 道不虛行, 請君徧以此諗諸同學諸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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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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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英齋酬唱 奇尨驚丱角。璀璨倒文星。鄕國多顔色。十年始拭靑。楚纊風前競。鄭蝥竹外登。吾儕寧不老。白髮謾層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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