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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현74)이 다시 와서 글을 읽기에 平鉉重來讀書 너의 청아한 모습 사랑했으니 이십 세라 愛汝淸標是弱年차디찬 객관 개의치 않고 오래도 머무는구나 不嫌冷舘久留連속세 벗어난 몸은 마치 신선 집에 오른 듯 脫塵身似登仙宅세상 걱정하는 마음은 꼭 바다에 배를 띄운 듯 憂世心如泛海般공부는 산처럼 이미 쌓였음을 징험할 수 있었으니 可驗工夫山已積성취한 바가 달이 둥글게 되는 것처럼 우둑커니 보리라 佇看成就月將圓주인은 줄 선물이 없어 도리어 부끄러워 하니 主人還愧無爲贈다시 새로 지은 시를 가지고 훗날 만남 증명하리 且把新詩證後緣 愛汝淸標是弱年,不嫌冷舘久留連.脫塵身似登仙宅,憂世心如泛海般.可驗工夫山已積,佇看成就月將圓.主人還愧無爲贈,且把新詩證後緣. 평현 화은(華隱) 권평현(權平鉉, 1897~1969)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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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시에 차운함 김종현의 시어는 뜻이 매우 좋고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 추앙하여 존중할 만하여, 사람들을 스스로 불안하게 만든다. 次金鍾賢【金若詩語意甚好, 而推重過當, 令人不自安.】 적적한 사립문을 깨끗하게 쓸었더니 寂寂蓬門掃如淸썩은 선비를 누가 선생이라 부르겠는가 腐儒誰號作先生사방의 싸움 소리 잠시도 발들이기 어려워 四方舌戰慙難涉일단 마음 수양하려 늘그막에 경작을 멈추네 一段心田老輟耕도의 오묘함은 옛 현인을 아직 따르지 못하고 道妙未從前哲得경전의 의문은 소년의 밝은 시절로 다시 나가네 經疑還就少年明이 어찌 감히 본받을 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此何敢謂人模範농마처럼 억지로 명성만 쌓으려 하고 있는데2) 農馬智專强立名 寂寂蓬門掃如淸,腐儒誰號作先生.四方舌戰慙難涉,一段心田老輟耕.道妙未從前哲得,經疑還就少年明.此何敢謂人模範?農馬智專强立名. 농마처럼……있는데 원문 '농마(農馬)'는 늙은 농부와 늙은 말의 식견이란 뜻으로,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온 정력을 기울여서 행하다 보면 그 방면에 나름대로 하나의 성과를 거두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한유(韓愈)의 〈상양양우상공서(上襄陽于相公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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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 幽居 내 그윽한 거처에는 몇 칸 방이 있을 뿐 我有幽居屋數間한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한쪽으로는 산이 있지 一邊流水一邊山아이는 낙엽을 모아서 황혼에 들어오고 僮收黃葉乘昏入나그네 책 들고 눈 맞은 채 돌아온다 客扶靑編帶雪還소나무와 국화 우연히 있다고 도연명에 견주지 말고35) 松菊偶存休擬晉거친 밥과 물만 마셔도 안연이 아닌 게 부끄럽구나36) 簞瓢雖在愧非顔내년에는 한가한 가운데 의취를 활연관통할 것이니 年來慣得間中趣문밖 시끄러운 소리 모두 관여치 않으리라 門外塵喧總不關 我有幽居屋數間,一邊流水一邊山.僮收黃葉乘昏入,客扶靑編帶雪還.松菊偶存休擬晉,簞瓢雖在愧非顔.年來慣得間中趣,門外塵喧總不關. 소나무와……말고 일찍이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집 주변엔 소나무와 국화가 가득했다고 전한다. 거친……부끄럽구나 공자의 제자인 안연(顏淵)의 단표누항(簞瓢陋巷)의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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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 정미년(1967) ○이하 동일하다. 卽事 【丁未○下同】 유람한 후에 돌아오니 반년이나 지나서 遊餘歸來費半年놀라 바라보니 보리 물결 홀연 하늘로 흐르네 驚看麥浪忽飜天누에치는 집 울타리엔 뽕잎이 모두 져 가고 蠶家籬落桑初盡어부의 못가에선 연꽃이 동그랗게 피려하네 漁子汀洲荷欲圓쇠절구공이 갈아 광악의 선비를 따를 것이나 磨杵可追匡岳士거문고나 튕기니 죽림의 현인들에게 부끄럽네 彈琴羞作竹林賢은근히 오수가 번거롭게 다시 찾아오니 殷勤吳秀煩重到무더위 삭히려 대자리에 몸을 맡겨 본다네 消遣炎天共一筵 遊餘歸來費半年,驚看麥浪忽飜天.蠶家籬落桑初盡,漁子汀洲荷欲圓.磨杵可追匡岳士,彈琴羞作竹林賢.殷勤吳秀煩重到,消遣炎天共一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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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123)에서 여산폭포 시에 차운함 을묘년(1915) ○이하 같다. 直沼用廬山瀑布韻 【乙卯○下同】 흰 비단처럼 흐물흐물 이네를 토하며 白練䖤䖤氣吐烟절벽에 날아 흘러 곧장 냇물 만드네 飛流絶壁直成川늙은 용은 천년 동안 깊은 집에 숨어 지내니 老龍千歲深藏宅구름 끼고 비 내리니 어느 때 구천에 오를까 雲雨何時上九天 白練䖤䖤氣吐烟,飛流絶壁直成川.老龍千歲深藏宅,雲雨何時上九天? 직소 전라북도 변산에 있는 직소폭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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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을 유람하며 느낀 바 있어 遊天台有懷 천태산의 승경이야말로 이 고을 주름잡고 天台勝境擅玆鄕아득한 옛 유적지는 내 생각 끝없게 하지 古蹟茫茫我思長노불당 앞엔 푸른 물 공연히 흐르고 老佛堂前空碧水신선대 위에는 석양만이 비치도다 神仙臺上但斜陽이진사의 얽매임 없는 행동 참으로 우습고 李庠放達眞堪笑-《영주지》에 "이진사 아무개가 취하여 천태산에 올라 바위 아래 떨어져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태수의 명성 곳곳마다 향기롭네 苔叟聲名到底香다시 천년 뒤에 이 유람하려 해도 重欲斯遊千載後아름다운 경치 한결같은 푸른 빛 남겠지 應餘秀色一般蒼 天台勝境擅玆鄕,古蹟茫茫我思長.老佛堂前空碧水,神仙臺上但斜陽.李庠放達眞堪笑,苔叟聲名到底香.重欲斯遊千載後,應餘秀色一般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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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의 85세 생신에 삼가 부친의 시에 차운하여 王母八十五歲晬辰 敬次家君詩 남극75)의 밝고 밝은 빛 잠기지 않아 南極煌煌影不沈할머님께선 어느덧 팔십 세가 되었구나 重堂八耋積光陰뜨락 가득 총총히 서 있어 난초 향기 피어나고 盈庭叢立芳蘭茁잔 가득 맑은 향에 술맛은 깊어진다 滿酌淸香旨酒深인덕과 장수는 기약이 있으니 성인의 가르침 알겠고 仁壽有期知聖訓좋은 상서로움 어긋나지 않았기에 하늘의 마음 보네 善祥不忒見天心작은 정성으로 다만 바라는 건 여생도 건강하시고 微誠但祝餘年健수없이 정련한 금처럼 정신도 부디 밝으시길 神彩精明百鍊金 南極煌煌影不沈,重堂八耋積光陰.盈庭叢立芳蘭茁,滿酌淸香旨酒深.仁壽有期知聖訓,善祥不忒見天心.微誠但祝餘年健,神彩精明百鍊金. 남극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말하는 것으로 수명을 주관한다고 하는데, 그 별이 비치면 보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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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에 높은 곳에 올라 주자의 천호 시122)에 차운함 九日登高次朱子天湖韻 좋은 시절은 바로 구월의 가을이라 佳辰正屬九秋時구름과 안개 잠시 감상하고 한 번 읊고 돌아왔네 領畧雲烟一咏歸외로운 절개 스스로 지키니 늙은 국화 가련하고 孤節自持憐老菊장쾌한 마음은 아직 이루지 못해 석양빛이 애석하네 壯心未遂惜殘暉높은 바람이여 가벼운 모자를 향해 불지 말고 高風且莫吹輕帽맛 좋은 술을 누가 능히 속인에게 보내줄까 綠酒誰能送白衣내 삶은 한가한 날 틈을 낼 수가 없었기에 不是吾生偸暇日슬피 바라보니 천고의 눈물 자국 희미하구나 悵望千古淚痕微 佳辰正屬九秋時,領畧雲烟一咏歸.孤節自持憐老菊,壯心未遂惜殘暉.高風且莫吹輕帽,綠酒誰能送白衣.不是吾生偸暇日,悵望千古淚痕微. 주자의……시 《회암집》 권5에 〈九日登天湖以菊花須挿滿頭歸分韻賦詩得歸字〉라는 작품을 말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去歳瀟湘重九時, 滿城寒雨客思歸. 故山此日還佳節, 黄菊清樽更晚暉. 短髮無多休落㡌, 長風不斷且吹衣. 相看下視人寰小, 祗合從今老翠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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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집》201)을 읽고 讀龜峯集 만 길 하늘을 찌를듯한 기상이요 萬丈凌宵氣세상 놀래킨 문장 독보적이어라 獨步驚世文우뚝 솟은 세간의 영웅호걸 磊落間世豪아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셨네 吁嗟生寒門풍우가 한 번 어찌도 심했던지 風雨一何惡줄 선 기러기 깜짝 놀라 흩어지네 鴈陳各驚分깊은 못 위에 같은 덕 있어 潭上有同德흰머리로 난초 같은 말 약속했지 白首契蘭言뛰어난 솜씨 지금 어디에 있는가 逸韻今何在구봉께서 다만 구름 잠기었네 龜峯但鎖雲 萬丈凌宵氣,獨步驚世文.磊落間世豪,吁嗟生寒門.風雨一何惡?鴈陳各驚分.潭上有同德,白首契蘭言.逸韻今何在?龜峯但鎖雲. 구봉집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문집을 가리킨다. 총 11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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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계축년(1913) 上艮齋先生 癸丑 고모와 자매 및 질녀 중에서 개가(改嫁)한 자의 상복(喪服)에 대해서는 애초에 강복(降服)한다거나 강복하지 않는다는 글이 없습니다만, 저의 얕은 견해로는 비록 낳아준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개가하였을 경우에 강복하는 것은 그 대의(大義)가 본종(本宗)에서는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만약 고모와 자매 및 질녀가 이미 출가(出嫁)한 경우라면 비록 개가하였을지라도 본종에서 끊을 만한 의리가 없어 그 혈족의 은정(恩情)은 진실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복한다는 글이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 음란하고 무도하여 풍속을 손상시킨 사람이라면 마땅히 상복을 입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맞다." 姑姊妹姪改適者服, 初無降不降之文. 而淺見以爲雖所生母改適而降者, 以其大義之絶于本宗也. 若姑姊妹姪旣已出嫁, 則雖改適, 於本宗無可絶之義, 而其血屬之恩固自在也. 此所以無降服之文也. 若其淫亂無度有傷風化者, 則恐當不服之矣.○ 先生答書曰: "得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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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병오년(1906) 윤4월 上艮齋先生 丙午年 閏四月 전날에 중옥(重玉)이 질문한 '3일이 지났다(越三日)'에 대한 의문을 《서경(書經)》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소고(召誥)〉의 '3일이 지난 무신일(越三日戊申)', '3일이 지난 경신일(越三日庚申)', '3일이 지난 정사일(越三日丁巳)', '5일이 지난 갑인일(越五日甲寅)', '7일이 지난 갑자일(越七日甲子)', 〈고명(顧命)〉의 '7일이 지난 계유일(越七日癸酉)', 〈필명(畢命)〉의 '3일이 지난 임신일(越三日壬申)'은 모두 본 날짜를 포함하여 계산한 숫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성(武成)〉의 '3일이 지난 경술일(越三日庚戌)'만 본 날짜를 제외하고 계산한 것은 사관(史官)이 살피지 못한 실수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이 베끼는 과정에서 잘못 기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리(事理)에 근거해 보면, 〈무성〉에서 본 날짜를 제외하고 계산한 것이 옳은 듯하고 다른 여러 편에서 본 날짜를 포함하여 계산한 것이 틀린 듯합니다.'월(越)'은 '여기에서 저기까지 이른다'는 뜻입니다. 만약 오늘이 갑자일이라면 갑자일에서 한 번 바뀌어 을축일이라고 말한다면 하루가 지난 것이 되고, 두 번 바뀌어 병인일이라 말한다면 이틀이 지난 것이며, 세 번 바뀌어 정묘일이라 말한다면 사흘이 지난 것입니다. 이러해야 비로소 명칭이 실제와 부합하고 말에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이 갑자일인데 병인일에 사흘이 지났다고 말한다면, 을축일에 이틀이 지났다 해야 하고, 또 본 날짜인 갑자일에 하루가 지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저기까지 이른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에 명칭이 실제와 부합하고 말에 순서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부를 판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前日重玉所問越三日之疑, 以書經考之, 如〈召誥〉之越三日戊申, 越三日庚申, 越三日丁巳, 越五日甲寅, 越七日甲子,〈顧命〉之越七日癸酉,〈畢命〉之越三日壬申, 皆幷本日而計數. 然則〈武成〉越三日庚戌之獨外本日而計數者, 如非史氏照管之失, 則後人傳寫之誤也. 然以事理據之,〈武成〉之外本日計數者似是, 而諸篇之幷本日計數者似誤.蓋越者自此抵彼之意. 假如今日是甲子, 自甲子一傳而言乙丑則爲越一日, 二傳而言丙寅則爲越二日, 三傳而言丁卯則爲越三日. 此乃名得實而言有序也. 若今日甲子, 而以丙寅爲越三日, 則將以乙丑爲越二日, 又將以本日甲子爲越一日矣. 此非自此抵彼之意, 不可謂名得實而言有序也. 願可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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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 答趙受卿 戊子 물으신 동사(東史)의 의론은 큰 제목(題目)이다. 평소에 사학(史學)에 어둡고 동사(東事)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니 참으로 막막하여 대답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매번 사우(士友)들을 만날 때마다 번번이 편지에서 말씀하신 '기자(箕子)를 삭출해야 한다.[黜箕]'는 의리를 가지고 강론하고 질문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두가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최근에 한 친구의 말을 들었는데, "기자가 우리나라로 온 곳은 지금의 평양(平壤)이 아니고 바로 요동(遼東)에 있었는데, 이미 박연암(朴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설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말하기를 "요동은 조선의 옛 땅이고, 또 종통왕(宗綂王 기부(箕否))가 지금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으며, 무동왕(武東王 기준(箕準))이 익산(益山)에 와서 거주하였다. 이것은 실제의 일이니, 그렇다면 어찌 우리나라와 관련이 없다 하여 삭제하여 없앨 수가 있겠는가. 또 '출기(黜箕)' 두 글자는 어감이 좋지 않고, '대금(大金)과 대청(大淸)이 송(宋)을 도살하고 명(明)을 멸망시켰다.'는 말도 또한 사납고 성급하니, 모두 수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어떠합니까? 俯詢東史議論,是大題目.素昧史學,而尤甚於東事者,實茫然不省所對.每遇士友,輒以盛喻"黜箕"之義講質,則亦皆莫敢措一語.最後得一友之言,曰: "箕子東來,非今之平壤,乃在遼東,已有朴燕巖說." 然又以爲"遼東是朝鮮故地,且宗綂王否徙都今之平壤,武東王準來居益山,自是實事,則安得謂無關於東國而刪沒乎? 且'黜箕'二字,口氣不好,'大金大清屠宋滅明'之云,亦傷悍快,并加修正恐好"云.未知此言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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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에게 답함 정축년(1937) 答金聖九 丁丑 졸렬하고 재주가 낮아서 이미 사우들이 같은 축으로 끼워주지 않으며, 나이가 많고 행실이 어긋나서 친지들에게도 배척을 당합니다. 집에 거미줄이 쳐지고 편지의 소식도 끊어졌으며,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고 사람을 만나도 더불어 할 말이 없습니다. 옛 사람 중에 정말로 교유를 끊기를 바라는 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침 교유를 끊기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끊기게 되었습니다. 일이 줄어들고 마음이 깨끗해졌다고 느껴지니 또한 절로 방애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어진 그대가 깊이 서로 기대한 것은 보통의 교유에 비할 바가 아닌데도 아득히 소식조차 들리지 않은 지가 몇 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찍이 마음속으로 자책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특별히 은혜로운 편지를 보내 생사를 물으시고 이어서 누추한 이곳을 왕림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고마움은 형용하여 말씀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바르고 어질고 학식이 많은 그대에게 유익함을 받을 날이 다시 있게 되었으니, 아마도 행실을 고치고 자질을 변화시켜서 끝내 세상에 버림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에 옛사람이 바랐던 것은 한때 원인이 있어 한 말이고 평소의 중정(中正)한 의론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孱劣而材下, 既爲士友之不齒; 老大而行戾, 又見親知之擯斥.蜘蛛網戶, 魚鴈斷信, 出門無可往, 見人無與語.古人固有願息交而絕遊者, 則今適不求息絕, 而自至息絕, 覺得事省心清, 亦自不妨.但念於仁執之深相期待, 非比平常交遊者, 幷致漠然無聞, 爲積有年所, 則未嘗不自訟于中矣.豈圖特惠崇翰, 問訊死生, 繼有枉臨陋地之敎? 其爲感謝, 不待形喩.直諒多聞之見益, 復有其日, 而庶得以改行變材, 不終見棄於世矣.又何幸如之? 乃知古人之願, 是一時有爲之言, 非平日中正之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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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임장병룡에게 보냄 을해년(1935) 與讓村林丈秉龍 ○乙亥 옛날 어른의 집에서 어른을 모시고 시들어 가는 국화를 두고 시를 지었는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요. 시들었던 국화는 지금 다시 피어 노란 꽃잎이 사랑스러운데 우리들은 시들어 다시 소생할 기약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식물만 못한 것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국화의 성쇠는 일 년으로 계산하지만, 사림의 성쇠는 천년으로 계산하니, 요컨대 장구함과 짧음의 다름이 있을 뿐입니다. 또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사람이건 식물이건 지금 비록 시들었더라도 후에 반드시 번성하는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당으로 말하자면 선사의 도덕과 절의가 바로 그 뿌리입니다. 지금 마침내 뿌리를 찍어내고 손상시키는 오 씨와 김 씨가 있는데, 문하의 여러 사람들이 일찍이 그 사람들을 금하지도 않고 뿌리를 보호하지도 않다가 금하고 보호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다시 일종의 사람들은 진(秦)나라 사람 야윈 것을 보듯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아서 모두 손상이 되든 말든 보호를 하든 말든 묻지도 않으니, 동문을 두루 돌아봐도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훗날 우리의 도가 성대해지기를 기필할 수 없을까 염려스러우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疇昔仙庄, 陪賦'枯菊'之詩, 日月幾何? 菊之枯者, 今焉重發, 金朶可愛, 而吾人之枯, 回蘇無期, 可以人而不如物乎? 否, 不然.菊之盛枯, 以一歲計, 士林盛枯, 以千載計, 要之自有久近之異爾, 又何悶焉? 蓋不論人與物, 今雖枯而後必盛者, 以有根本在也.以吾黨言之, 先師之道德節義, 卽其根本也.今乃有斫傷之吳金, 而門下諸人, 曾不禁其人護其根, 其有禁護者, 則又以爲不必爲也.更有一般視同秦瘠, 而幷不問傷與不傷, 護與不護, 環顧同門, 無可與語者.竊恐異日, 吾道之盛, 有不可必矣, 柰如之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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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효비추기 【임신년(1932)】 純孝碑追記 【壬申】 아, 이것은 우리 종족의 선조이신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 만휴당공(晩休堂公 김억일(金億鎰))의 순효비(純孝碑)이니, 비석의 전말이 판서(判書) 서공(徐公 서준보(徐俊輔))의 명(銘)에 실려 있다.삼가 생각건대, 공은 부친의 등창에서 고름을 빨아내고, 겨울에 제비가 이르게 하였으며46), 양친의 상에 시묘살이를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순수한 효가 된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을 간절하게 간하고, 임진왜란 때 떨쳐 일어나 의병을 일으킨 것은 단지 나라가 있는 줄 알고 몸이 있는 줄 몰랐으니, 충성 또한 순수하다고 이를 만하다.순효비를 세울 당시에 충성까지 아울러 정표(旌表)했어야 했는데 미처 시행되지 못하였다가 고종 갑술년에 이르러서 충성과 효성이 뛰어나고 남다르다 하여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하였으니, 대체로 기다림 끝에 시행된 일인지라 이에 남은 유감이 없지만 명 중에 보이지 않은 것은 때가 늦었기 때문이다.지금 비석을 옮겨 건립하면서 앞면에는 증직을 첨가해 새기고, 뒷면에는 그 사실을 추가해 기록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자세한 내용을 취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종10대손 택술이 삼가 기록하였다. 嗚呼, 此我族先祖掌樂院主簿晩休堂公純孝碑也.碑之顚末, 有判書徐公銘在.竊惟公之親疽吮汁, 冬月致鷰, 二喪廬墓, 固爲純孝矣.其切諫冊儲光海, 奮擧龍蛇義旅, 只知有國而不知有身者忠亦可謂純矣 宜得幷旌其忠於當日而未及焉, 至高宗甲戌, 以忠孝卓異, 命贈通政大夫吏曹參議, 蓋有待也.於是無餘憾, 而銘中無見, 以時後也.今於移建, 添刻贈職於前, 追記其實於後, 以備觀者取詳焉.從十世孫澤述謹記. 겨울에 …… 하였으며 여름 철새인 제비가 겨울에 찾아오는 것을 효성에 감응한 일로 여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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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최춘열에게 보냄 계해년(1923) 與崔甥春烈 癸亥 옛말에 이르길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사람이 도를 알지 못하면 사람이지만 사람이 되지 못함을 말한 것입니다. 헌헌한 7척의 한갓 형체만 갖추고 오랜 백년 세월의 일생을 헛되게 보낸다면 어찌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진실심지각고공부(眞實心地刻苦工夫)102)" 이 여덟 자의 비결을 그대를 위해 읊어 주겠습니다. 모름지기 선현(先賢)의 격언을 기억하고 그 마음에 갖추어진 덕과 애(愛)를 인식하고 취하십시오. 또 사서육경(四書六經)103)을 생계로 삼고, 삼대(三代, 하 은 주)의 인물을 귀의처로 삼아서 도(道)를 회자(膾炙)처럼 즐기고 연안(燕安)을 짐독(鴆毒)같이 보면서, 앞에 놓여있는 한 길을 나아가고 나아감에 흐르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점의 찌꺼기도 남기지 말아서 온전히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古語云人不學不知道, 此言人不知道人不爲人.軒軒七尺, 徒爾具形, 鼎鼎百年, 枉過一生, 豈不惕念? 眞實心地刻苦工夫八字訣, 爲汝誦之.須記取前修格言, 認取此心德愛.四子六經作家計, 三代上人爲依歸, 嗜道義作膾炙, 視宴安如酖毒, 進進一路在前, 冉冉光陰可惜.一點莫留査滓, 十分成就好人. 진실심지각고공부(眞實心地刻苦工夫) 주희의 문인인 황간(黃榦)이 제자를 받아들일 때에 "학문은 반드시 진실한 마음 바탕 위에서 각고의 공부를 해야만 가능하다〔必有眞實心地 刻苦工夫 然後可〕"라고 일러 주었다. 《송사(宋史)》 권438 〈하기전(何基傳)〉 사서육경(四書六經) 원문에는 '書'자 대신 '字'로 되어있는데, 오자로 보아 書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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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잠 【무인년(1938)】 愼言箴 【戊寅】 금인(金人)225)의 입은 왜 봉함했나 金口胡緘,백규(白圭)의 시226)는 왜 반복하나, 白圭胡復,말은 중요한 쇠뇌의 방아쇠이니 言爲樞機,길상과 재앙이 여기서 갈리네. 吉凶是卜.옛 시와 잠언을 惟詩與箴,누구라서 독송하지 않았으랴, 疇不誦讀,그러나 얼핏 소홀히 하여 然而忽易,하릴없이 질책과 치욕을 겪네. 無由責辱.상등의 선비는 이치를 통달하여 上士達理,아무 일 없어도 정숙하고, 無事亦肅,중등의 사람은 경계할 줄 알아 中人知戒,책망을 들으면 애써 노력하네. 見責而勖.아침에 뉘우치고 저녁에 반복하는 朝悔暮復,하등의 우맹(愚氓)은 바삐 고생하니, 下愚碌碌,오호, 어린 아이들아 嗚呼小子,너희를 위하여 충고하노라. 爲爾忠告. 金口胡緘, 白圭胡復, 言爲樞機, 吉凶是卜。 惟詩與箴, 疇不誦讀, 然而忽易, 無由責辱。 上士達理, 無事亦肅, 中人知戒, 見責而勖。 朝悔暮復, 下愚碌碌, 嗚呼小子, 爲爾忠告。 금인(金人)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보았는데, 태묘(太廟)의 오른쪽 뜰에 구리로 된 사람[金人]이 서 있는데, 그 입이 세 겹으로 봉함되어 있고, 등에 '옛날의 말을 삼가던 사람'이라 새겨져 있었다 한다. 《說苑.敬愼》 백규(白圭)의 시 《시경.》의 〈억(抑)〉 중에 나오는 "흰 옥돌의 흠은 그래도 갈아 없앨 수 있지, 말 잘못해 생긴 오점은 어찌 해 볼 수가 없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구절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이 이 구절을 매일 세 번 반복해 외우자, 공자가 훌륭하게 여겨 자신의 조카사위를 삼았다 한다.《論語.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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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희숙에게 보냄 기사년(1929) 與族弟希淑 己巳 "천리(天理)와 인심(人心)은 절로 지당함이 있는데, 나는 순응하고 저는 거슬러서 체세(體勢)가 서로 같지가 않다. 이 때문에 우리 쪽 학자들은 깊이 거절하고 힘써 배격하여 저들과 화합하기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저쪽 학자들은 지리한 말과 번다한 설명으로 오직 우리에게 절교(絶交)될까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도 아마 불안한 점이 있는듯하다." 이것은 주자(朱子)가 이심경(李深卿)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 말은 우리 사문(師門)의 시비를 따지는 즈음에도 인용하여 유시할 수 있다. 지난날 희숙(希淑)이 목리(木里)에서 권순명(權純命)을 만나서 이원재(李遠齋)가 두 사람이 서로 통관(通款)하기를 요청했을 때, 권순명이 말하기를 "내가 감히 먼저 요청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뚜렷하게 통관을 '본디 바라던 바.'라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우리들에게 절교 될까를 두려워해서 마음에 불안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희숙이 말하기를 "선사(先師)를 섬기는 자로서 저들과 통관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른바 "깊이 거절하고 힘써 배격하여 일찍이 저들과 화합하기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이 한 가지일로도 저들과 우리의 순역(順逆)과 당부(當否)를 또한 판정할 수가 있다. 天理人心, 自有至當, 我順彼逆, 體勢不侔.是以爲吾學者, 深拒力排, 未嘗求合於彼, 而爲彼學者, 支辭蔓說, 惟恐見絶於我, 是於其心, 疑亦有所不安矣.此朱子答李深卿書也.此可以引喩於吾門是非之際也.向日希淑之遇權純命於木里, 而李遠齋之請兩相通款也, 彼曰我不敢先請, 顯有固所願之意.是所謂恐見絶於我, 而心有所不安者也.希淑曰事先師者, 不敢通彼者, 是所謂深排力拒, 未嘗求合於彼者也.卽此一事, 彼與我之順逆黨否, 亦可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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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 答趙受卿 戊子 스스로 묘갈(墓碣)을 만드는 것에 대해 형은 단지 이것만 알고 그 잘못을 알지 못하십니다. 완용(完用)의 적퇴석(賊退石)을 사용하여 선사의 묘갈을 만들었다가 공론으로 인하여 세우지 못한 일을 어찌 듣지 못했습니까. 이 때문에 바깥사람들이 간재(艮齋) 문인(門人)을 모조리 성토하는 설이 있게 되었습니다. 연보(年譜)를 장차 개편하려 한다면 영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진실로 좋을 것인데, 하필이면 저에게 부탁하십니까? 自作墓碣,兄但知此,不知其尤者,豈不聞用完用賊退石作師碣,因公論未竪乎? 是以外人有艮門人一并聲討之說矣.年譜如將改編,自嶠南誠好矣,何必推托於弟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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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에게 답함 기묘년(1939) 答崔以求 己卯 지난번 그대가 윤월에 돌아가신 분의 상기일자(祥忌日子)에 대해 물으시기에 윤달에 붙은 달과 날을 쓴다고 답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고 윤달의 다음 달 날짜를 쓰려고 하니, 가히 근거로 삼아 이들을 배척할 수 있는 예서(禮書)를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고찰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쟁변하는 것이 또한 수고롭지 않은가요? 세속은 무지한 데다 더욱 겸하여 이기기를 좋아합니다. 무지한자는 참으로 가엷지만 이기기 좋아하는 자는 증오스럽습니다. 무지한 자는 깨우쳐줄 수 있지만 이기기 좋아하는 자는 깨우쳐줄 수도 없습니다. 1년 전에 호중(湖中)의 어떤 사람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예설을 근거로 장례식장에서 힘써 변론했다가 어떤 사람에게 뺨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 일이 참으로 우습고 이러한 풍토가 참으로 두렵습니다. 호승(好勝)의 폐단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의 일로 보건대 그대는 가히 예를 그르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을만한데도 도리어 믿지 않고, 모 성씨의 하는 바가 이와 같다느니, 모 서원의 중론이 이와 같다느니 주장들 합니다. 아! 모성(某姓) 현조(顯祖)의 선현이 지금 생존해 계시다면 행할 바일까요? 오늘날 서원은 진실로 독서하고 강례(講禮)하는 곳입니까? 이같이 명백하고 쉽게 알 수 있는 예도 오히려 이와 같은 설로 사람들을 압도하려고 하니 그들의 이기기 좋아하는 습성을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하는 대로 방임하고 쟁변하지 않는 것이 아마도 말할 때와 침묵할 때의 올바른 도리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向問以閏月亡者祥忌日子, 答以閏所附之月日.今又以人不見信而欲用閏之此月之日, 索可據而斥之之禮書, 故考出寫送.然與此等人爭辨, 不亦勞乎? 世俗無知, 更兼好勝.無知者可哀, 好勝者可惡.無知者可喩, 好勝者不可喩.年前湖中有人據沙溪禮說, 力辨於葬會中, 被人批頰云.此事可笑, 此風可怕.而好勝之弊, 以至於此.以今事論之, 高明卽可信其爲不誤禮之人, 及不之信而曰某姓氏所行如此, 某書院僉論如此.噫! 某姓顯祖之先賢, 今生存而所行乎? 今之書院, 眞讀書講禮之所乎? 似此明白易知之禮, 猶欲以此等說, 壓倒人, 其好勝之習, 如何抵當得? 任其所爲, 勿與之辨, 恐得爲語嘿之道.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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