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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마을 집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過全州村舍 聞讀書聲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나니 何處讀書聲보내온 충고인 듯 나그네가 듣네 來砭客子聽처음엔 단산235)의 정상에서 初認丹山頂봉황새가 화락하게 운 줄 알았네 噦噦鳳鳥鳴다시 균천광악236)인 듯 기뻐했으니 再喜均天樂우르릉 천둥 소리 동정호에서 듣는 듯 轟轟聞洞庭때까치 소리237)가 천하에 가득하건만 鵙舌盈天下이 소리가 어찌해 생겨났는가 此聲胡爲生이레 동안 우레를 남겨 둔 것238) 留作七日雷하늘도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無乃天有情생각하니 옛날 주나라가 쇠퇴했을 때 念昔周衰日공자가 무성에서 빙그레 웃었네239) 夫子莞武城지금 세상은 또 어떤 세상인가 此世又何世마음과 눈이 깨어있지 않구나 有不心目醒사문이 어찌 끝내 망하겠는가마는 斯文豈終喪아마도 태평한 정치를 기다려야 하리 庶以待治平 何處讀書聲, 來砭客子聽.初認丹山頂, 噦噦鳳鳥鳴.再喜均天樂, 轟轟聞洞庭.鵙舌盈天下, 此聲胡爲生?留作七日雷, 無乃天有情?念昔周衰日, 夫子莞武城.此世又何世? 有不心目醒.斯文豈終喪? 庶以待治平. 단산(丹山) 봉황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 이름으로, 단혈(丹穴)이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새가 사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 무늬가 있으니,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丹穴之山…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皇.]"라는 구절이 보인다. 균천광악(鈞天廣樂)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列子 周穆王 註》 때까치 소리 다른 나라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지금 남만의 때까치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이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는 말이 나온다. 이레……것 복괘의 괘사(卦辭)에 "그 도를 반복하여 7일 만에 와서 회복하니, 가는 것이 이로우니라.〔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웃었네 공자께서 자유(子游)가 다스리는 무성(武城)에 가서 현가(弦歌)를 들으시고 빙그레 웃으셨다.[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는 일을 말한다.《論語 陽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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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읊다 謾吟 성도에 팔백 그루 뽕나무도 심지 못했고317) 未種成都八百桑집에 간직한 것은 적적하여 책상 하나네 家藏寂寂一書床달빛이 집을 비춰 정다운 벗이 되어주고 月光入戶爲情友솔잎은 산을 채워 양식 걱정은 아니하네 松葉盈山不慮粮일이 없을 때도 도리어 항상 두려워하고 無事還能常惕惕곤궁하게 살아도 다시 절로 양양318)하네 居窮亦復自陽陽이내 생애의 뜻과 사업이 이같을 뿐인데 此生志業如斯已누가 허명으로 분수 밖의 일을 취하리오 誰遣虛名取濫觴 未種成都八百桑, 家藏寂寂一書床.月光入戶爲情友, 松葉盈山不慮粮.無事還能常惕惕, 居窮亦復自陽陽.此生志業如斯已, 誰遣虛名取濫觴. 성도에……못했고 유산으로 남길 만한 넉넉한 재산이 없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죽음에 임해 촉한(蜀漢)의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올린 표(表)에서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와 척박한 땅 15경(頃)이 있으니 자손들의 의식은 절로 충분합니다.[成都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孫衣食自有餘饒.]"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三國志 卷35 諸葛亮傳》 양양 원문의 '양양(陽陽)'은 '양양(揚揚)'과 같은데, 득의(得意)한 모습이다. 《시경》 〈군자양양(君子陽陽)〉에 "군자가 양양하여, 왼손에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론 날 방으로 부르니, 아 참으로 즐겁네.[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 其樂只且.]"라고 하였다. 주희 집전에 "양양은, 득의한 모습이다.[陽陽,得志之貌.]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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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종형 김경문 태현 을 애도하다 ○무자년(1948) 悼外從兄金景文【泰鉉○戊子】 함께 나고 함께 죽는 것은 俱生與俱死오직 가난일 뿐이라네 惟是一貧字효성과 공손은 일신의 직분이요 孝恭一身職굳세고 깨끗함은 평생의 뜻일세 介潔平生志집안에 혈혈단신인 아들이 있는데 家有孑孑子나가서는 그와 견줄 사람이 없다네 出無一人比공의 행적이 향리에 묻히니 足跡埋鄕里그 이름을 그 누가 다시 알리오 姓名誰復識한 번 황천에 들어간 뒤로 一入黃泉後염두에 두는 사람이 전혀 없구나 無人念頭置나 홀로 애통해하기를 마지않는 건 余獨慟不已참으로 공의 특출함 때문이라네 良亦祗以異공의 솜 속의 쇠219) 같은 성품을 흠모하니 欽公綿中鐵죽어도 줏대 없이 굽실거리지 않았고 死不作骫骳공의 적자의 마음220)을 사랑하니 愛公赤子心살아서 교활한 꾀를 부리지 않았다오 生不作巧智어찌 단지 중표221) 사이일 뿐이었겠는가 豈適以中表친형제처럼 여겨 우애가 두터웠네 視若親兄誼일찍이 친애하는 정을 느꼈으니 曾經親愛情말도 하기 전에 먼저 눈물이 쏟아지네 未言先傾淚슬픈 마음이 너무나 심한지라 還恐悲太劇애사를 지으려다 그만둘까 염려된다오 欲題旋自閟 俱生與俱死, 惟是一貧字.孝恭一身職, 介潔平生志.家有孑孑子, 出無一人比.足跡埋鄕里, 姓名誰復識?一入黃泉後, 無人念頭置.余獨慟不已, 良亦祗以異.欽公綿中鐵, 死不作骫骳.愛公赤子心, 生不作巧智.豈適以中表? 視若親兄誼.曾經親愛情, 未言先傾淚.還恐悲太劇, 欲題旋自閟. 솜 속의 쇠 원문의 면중철(綿中鐵)은 용면과철(用綿裹鐵), 과철이면(裹鐵以綿), 이서과철(以絮裹鐵)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모두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성품을 비유한 말이다. 적자(赤子)의 마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여 거짓이 없는 본연의 마음을 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적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자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중표(中表) 내외종(內外從) 사촌 형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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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석에게 지어 주다 贈崔正錫 군의 객지 생활이 너무 청한함을 걱정하니 憫君旅況太淸寒찬 구들방과 거친 음식이 어찌 어렵지 않으랴 冷突粗飯豈不難두 끼로 죽을 나눠 먹었던 범로248)의 고사를 들었고 粥畫兩時聞范老눈 덮여 봉해진 한 방에 누워 있던 원안249)을 생각하네 雪封一室憶袁安옥성시킴이250) 어찌 하늘에게 아무 뜻이 없으랴 玉成豈是天無意재주 쓰임을 장차 사람들이 통쾌하게 보리라 器用應將人快看늙은이의 복 많음을 스스로 축하하노니 自賀衰翁福分好이렇게 수재를 얻어 기쁨으로 삼았구나 得玆秀士作欣歡 憫君旅況太淸寒, 冷突粗飯豈不難?粥畫兩時聞范老, 雪封一室憶袁安.玉成豈是天無意? 器用應將人快看.自賀衰翁福分好, 得玆秀士作欣歡. 두……범로(范老) 범로는 소범 노자(小范老子)로 불렸던 송(宋)나라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으로,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범중엄이 젊은 시절에 친구 한 명과 함께 산사(山寺)에 들어가 3년 동안 학문에 힘썼는데, 단지 좁쌀 두 되를 삶아 죽 한 그릇을 쑤어 놓고는 하룻밤이 지나 마침내 죽이 굳으면 칼로 나눠 네 덩이를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두 덩이씩 취해 먹었던[惟煮粟米二升, 作粥一器, 經宿遂凝, 以刀畫爲四塊, 早晚取二塊.] 고사가 있다. 《五朝名臣言行錄 卷7 參政范文定公》 눈……원안(袁安) 원안은 후한 화제(和帝) 때의 충신으로, 효성과 청렴으로 추천되어 초군 태수(楚郡太守)를 거쳐 정승을 지냈다. 원안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렸다.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을 치우고 나와서 걸식(乞食)을 하고 있는데, 원안의 집만 유독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았더니 원안이 방 안에 태연히 누워있는 것이었다.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남에게 밥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이에 낙양 영이 원안을 어진 사람이라 하여 효렴(孝濂)으로 천거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한 고사가 있다. 후에 이를 '원안고와(袁安高臥)'라 하여 선비가 곤궁함에 처해서도 굳게 지조를 지키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옥성(玉成)시킴이 옥성은 사람을 옥처럼 훌륭히 완성시켜 준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천과 우척은 너를 옥처럼 다듬어 완성시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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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苦熱 돌도 녹고 또 쇠도 녹는 때를 당하니 時當石爍又金流무더위 속에 유인의 머리가 다 희었다오 苦熱幽人白盡頭두자의 높은 누대는 눈 위를 밟는 듯하고254) 杜子高樓如踏雪청련의 큰 부채는 가을인 줄 의심하였네255) 靑蓮大扇却疑秋인연 있다면 어찌 천금 주고 사는 걸 아끼랴 有緣何惜千金買계책 없으니 한갓 시름 하나만 더할 뿐일세 無計徒添一種愁후회하노니 금년 정월 대보름날에 悔不今年上元節더위 파는256) 아이들의 노래를 함께 읊지 않음을 共吟賣暑小兒謳 時當石爍又金流, 苦熱幽人白盡頭.杜子高樓如踏雪, 靑蓮大扇却疑秋.有緣何惜千金買? 無計徒添一種愁.悔不今年上元節, 共吟賣暑小兒謳. 두자(杜子)의……듯하고 두자는 당(唐)나라 시인인 두보(杜甫)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높은 누대'는 두보의 시 〈중야(中夜)〉에 "깊은 밤 강산은 고요한데, 높은 누대에서 북신을 바라본다.[中夜江山靜, 危樓望北辰.]"라고 한 시구 가운데 위루(危樓)를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높은 누대가 하얀 구름 위로 솟아 있어 마치 눈 위를 밟고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청련(靑蓮)의……의심하였네 청련(靑蓮)은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큰 부채'는 이백의 시 〈여름날 산중에서[夏日山中]〉에 "백우선을 게을리 부치며, 푸른 숲속에 벗은 채로 있다오.[嬾搖白羽扇, 躶體靑林中.]"라고 한 시구 가운데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인 '백우선(白羽扇)'을 두고 이렇게 말한 듯하다. 즉 큰 부채를 부치니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이 일어 마침 가을인 줄 의심했다는 뜻이다. 더위 파는 옛날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흔히 아이들이 행했던 '더위팔기〔賣暑〕'라는 민속놀이를 가리킨다. 이날 아침에 서로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상대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하면 더위를 팔지 못하고 도리어 내가 상대의 더위를 사는 꼴이 된다. 더위를 많이 팔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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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철원236)행 裵哲媛行 배부인이여 진정한 철원이로다 裵夫人眞哲媛하늘이 정해준 윤 의사의 훌륭한 배필이로세 天定良配尹義士의사가 순국한 뒤 더욱 스스로 면려하여 義士沒益自勵시부모를 봉양하고 두 아들을 가르쳤다오 養舅姑敎二子갑자기 부친의 병세를 듣고 가서 살펴보니 忽聞父病往省視증세가 나쁘지 않은지라 어찌 기쁘지 않으랴 證不無幸豈無喜이미 왔고 또 여기에 머물 만하다는 旣來且可此留宿제부의 말이 참으로 은근하였지만 諸父之言良勤止부인은 지금 미망인의 신세로 今爲未亡人오직 몸가짐을 삼가야 하는데 惟當愼持己부친에게 더 이상 근심 없으니 父兮且無虞딸은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하였네 女當歸吾里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뜻을 굳혀 言訖卽決意결연히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237) 介然作不俟아아 부인의 말과 행실은 嗟哉夫人言與行참으로 음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온 것이로다238) 中行獨復允是여염 사이에서 생장했다고 들었는데 聞是生長閭閻間어디에서 왔기에 이와 같단 말인가 何處得來乃如此윤 의사와 배 철원이 부부가 된 건 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 것이로세 乃天所爲非人爾 裵夫人眞哲媛, 天定良配尹義士.義士沒益自勵, 養舅姑敎二子.忽聞父病往省視, 證不無幸豈無喜?旣來且可此留宿, 諸父之言良勤止.今爲未亡人, 惟當愼持己.父兮且無虞, 女當歸吾里.言訖即決意, 介然作不俟.嗟哉夫人言與行, 中行獨復允是.聞是生長閭閻間, 何處得來乃如此?尹義士裵哲媛是夫是妻, 乃天所爲非人爾. 배 철원(裵哲媛) 윤봉길(尹奉吉)의 아내인 배용순(裵用順, 1907~1988)으로, 철원은 명철(明哲)한 부인이라는 뜻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922년 16세에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윤봉길과 결혼하였다. 슬하에 아들 윤종(尹淙), 윤담(尹淡)을 두었다. 남편 윤봉길이 1932년 순국한 뒤 종부로서 50여 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식을 키우며 가정을 지켰다. 일어나 곧바로 떠났다오 원문의 작불사(作不俟)는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君子見幾而作, 不竢終日.]"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음(陰)……것이로다 《주역》 〈복괘 육사(六四)〉의 효사(爻辭)로, 소인(小人)들이 득세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외롭게 분투하며 바른 도(道)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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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다 登高 노년에 옛 산천을 다시 보노라니 衰年復見舊山川특별한 풍광이 눈앞에 들어오누나 別有風光入眼前강토는 어이하여 남북으로 찢겼는가 疆土如何南北裂전란으로 또다시 아시아와 유럽이 연합하도다 干戈又是亞歐連바다 너머 일천 봉우리엔 청제241)가 돌아오고 千峰海外歸靑帝인간 세상 일만 촌락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네 萬落人間起暮煙산에 올라 한 곡조 부르기로 벗들과 약속하니 約伴登高歌一曲지음이 다시 들새 통해 소식을 전해 오는구나 知音更得野禽傳좋은 술이 동이에 가득하고 안주도 소반에 그득한데 盈樽旨酒滿盤肴자리 위에 의관 갖춘 자들은 모두 옛 친구로구나 座上衣冠盡舊交봄이 지난 뒤라 낙화가 붉은 싸락눈을 이루고 春後落花紅作霰비가 내린 뒤라 방초가 교외에 푸르게 펼쳐지네 雨餘芳草綠鋪郊나라는 이미 새로운 운수가 돌아왔건만 國家已得回新運세도는 어이하여 밑바닥까지 떨어졌는가 世級胡然降末梢온종일 기우에서 풍영하는 흥취242)를 즐기고 盡日沂雩風詠趣돌아와 남은 흥취를 한 서재에 간직한다오 歸藏餘興一書巢 衰年復見舊山川, 別有風光入眼前.疆土如何南北裂, 干戈又是亞歐連.千峰海外歸靑帝, 萬落人間起暮煙.約伴登高歌一曲, 知音更得野禽傳.盈樽旨酒滿盤肴, 座上衣冠盡舊交.春後落花紅作霰, 雨餘芳草綠鋪郊.國家己得回新運, 世級胡然降末梢?盡日沂雩風詠趣, 歸藏餘興一書巢. 청제(靑帝) 봄을 주관하는 신이다. 오행에서 동방은 목(木)에 속하는데, 목은 봄과 청색을 상징하므로. 봄을 주관하는 신을 동황(東皇), 동제(東帝), 청황(靑皇), 청제 등으로 불렀다. 기우(沂雩)에서 풍영(風詠)하는 흥취 기우는 기수(沂水)와 무우(舞雩)를 가리키고,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흥취를 이른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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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재88)를 세운 지 두 번째 주갑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시 병소서 ○병술년(1946) 聚星齋再度周甲紀念詩【幷小序○丙戌】 부안(扶安)의 석동산(席洞山)에 있는 우리 선조(先祖) 군사공(郡事公)89) 묘소 아래에 예전에는 덕성암(德星菴)이 있었다가 화재를 만나 소실되어 취성재(聚星齋)를 중건하였다. 전후로 지은 이름은 모두 석천(石川) 임 선생(林先生)90)의 '김씨 집안에 덕성이 모였네.[金門聚德星]'91)라는 시구(詩句)의 뜻을 취한 것이다. 취성재를 상량(上樑)한 때가 인릉(仁陵)92) 병술년(1826, 순조26) 2월에 있어 121년이 지났다. 지금 두 번째 주갑(周甲)을 맞이하여 비록 성대한 모임을 가져 잔치를 베풀지 못한다 해도 어찌 기념하고 싶은 감회야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여러 종족(宗族)과 함께 시를 읊어 재실의 고사(故事)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유조엄무(柔兆閹茂)93) 중춘(仲春) 초하루에 군사공(郡事公)의 17세손 택술(澤述)은 삼가 쓴다.재실을 지은 해의 육갑이 거듭 돌아오니 六甲重周築室年덕성의 상서로운 빛이 갑절로 찬란하구나 德星瑞彩倍煌然시운이 중흥으로 돌아온 청구의 날이요 運回興復靑邱日절서가 온화함에 속하는 이월의 하늘일세 序屬溫和二月天진씨 정자94)만 어찌 꼭 예로부터 명성이 최고라 하리오 豈必甄亭名擅古위씨 모임95)만 굳이 전대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것 없다오 不須韋會美專前끝없는 서쪽 바다에 봉산96)이 우뚝 솟았으니 西溟無盡蓬山屹이 재실을 잘 보호하여 세상에 길이 전하리라 護得楣樑永世傳 扶安之席洞山我先祖郡事公墓下, 舊有德星菴, 而遭回祿, 重建聚星齋, 前後命名, 皆取林石川先生"金門聚德星"之詩義也.聚星抛樑之時, 在仁陵丙戌二月, 而爲百二十一年矣.今當再度周甲也, 雖不能盛會宴飮, 烏得無紀念之感哉? 玆庸構成一韻, 願與諸宗族聯賦, 以備齋中故事云爾.柔兆閹茂仲春初吉, 郡事公十七世孫澤述謹識.六甲重周築室年, 德星瑞彩倍煌然.運回興復靑邱日, 序屬溫和二月天.豈必甄亭名擅古, 不須韋會美專前.西溟無盡蓬山屹, 護得楣樑永世傳. 취성재(聚星齋)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蓮谷里) 석동산(席洞山) 남동쪽에 있는 부안 김씨(扶安金氏)인 군사공(君事公) 김광서(金光敍) 묘소의 재실(齋室)이다. 1819년(순조19)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순조2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군사공(郡事公) 후창의 17대조가 되는 김광서(金光敍)를 가리킨다. 그는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예로, 고려 말에 지고부군사공(知古阜郡事公)을 지냈다. 임 선생(林先生)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호는 석천(石川)이다. 박상(朴祥)의 문인이다. 1545년(명종 즉위년) 금산 군수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소윤(小尹)인 동생 백령(百齡)이 대윤(大尹)의 선배들을 내몰자 자책을 느껴 벼슬을 사직하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시집(石川詩集)》이 있다. 김씨……모였네 임억령이 일찍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옹정리(瓮井里)를 찾아가 〈만가(挽歌)〉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 시에 "옹정 마을엔 군자가 많고, 김씨 집안엔 덕성이 모였네.[瓮井多君子, 金家聚德星.]"라는 시구에서 보인다. 다만 임억령의 문집에 실린 시에는 김문(金門)의 문(門)이 가(家)로 되어 있다. 《石川詩集 卷3 挽歌》 인릉(仁陵)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능호(陵號)이다. 유조엄무(柔兆閹茂) 병술년(1946)을 가리킨다. 유조는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고, '엄무'는 고갑자로 지지(地支) 가운데 술(戌)에 해당한다. 진씨(甄氏) 정자(亭子)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 사람인 진씨(甄氏)가 부모의 장례를 지낸 뒤 그 곁에 사정(思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에 보인다. 여기서는 후창의 부안 김씨(扶安金氏) 집안에서 선조 김광서(金光敍)를 추모하고 제향하기 위해 지은 취성재에 비겨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위씨(韋氏) 모임 당(唐)나라 때 명문가였던 위씨(韋氏)들이 종회법(宗會法)을 만들고 화수회(花樹會)를 결성하여 원근의 친족들이 자주 꽃나무 아래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진 고사가 있다. 이로 인해 종친회를 화수회라고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시에 "그대의 집 형제들을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 꽃나무 아래 늘 모이니, 옥 항아리에 꽃이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롭네.[君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199 韋員外家花樹歌》 봉산(蓬山)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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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석이 김염재가 부쳐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지어 주다 申元石示以金念齋所寄詩 次韻以贈 어린 나이에 물고기보다 학문을 더 좋아하니109) 童年嗜學甚於魚멀리서 쇠한 늙은이를 찾아와 고서를 읽는구나 遠訪衰翁讀古書아아 이내 몸은 너에게 모범되기 어려우니 嗟我難能模範汝단지 성현을 스승 삼아 편안히 거할지어다 直師賢聖作安居학량110)의 은혜로 궁한 물고기 신세111)를 구제해주니 學粮惠澤救窮魚김씨 집안의 높은 풍도는 특별히 기록할 만하네 金氏高風可特書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일을 보기 드무니 罕見世間如許事독실하게 힘쓰고 편안히 지낼 겨를 없어야 하리 正宜慥慥不遑居풍협112) 잡고 생선 없다고 한탄하지 않나니 不將馮鋏嘆無魚본래부터 시렁 위에 천편의 책이 있다오 自有千篇架上書객을 대접할 때 좋아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 待客要須知所好주인이 어찌 꼭 가난한 생활을 부끄러워하랴 主人何必愧貧居천리 밖 두류산에서 안어113)가 소식 전해오니 千里頭流來鴈魚바로 한 통의 진중한 염재의 편지일세 一封珍重念齋書어진 스승을 기대하니 어찌 저버릴 수 있으랴 賢師期待何能負훗날에 응당 오하에 사는 사람은 아니리라114) 他日應非吳下居홀연히 물고기가 변하여 용 되기115) 어렵나니 難得成龍忽變魚여유 있게 다섯 수레 책116)을 읽어야 한다오 優遊須讀五車書천추의 맹성117)께서 밝은 가르침을 남기셨으니 千秋孟聖留明訣조예가 깊으면 그 거처함을 편안히 할 수 있다고118) 深造可能安厥居 童年嗜學甚於魚, 遠訪衰翁讀古書.嗟我難能模範汝, 直師賢聖作安居.學粮惠澤救窮魚, 金氏高風可特書.罕見世間如許事, 正宜慥慥不遑居.不將馮鋏嘆無魚, 自有千篇架上書.待客要須知所好, 主人何必愧貧居?千里頭流來鴈魚, 一封珍重念齋書.賢師期待何能負? 他日應非吳下居.難得成龍忽變魚, 優遊須讀五車書.千秋孟聖留明訣, 深造可能安厥居. 물고기보다……좋아하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요,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인데,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학량(學粮) 학업을 하는 데 필요한 양식 또는 학사(學舍)의 운영 자금을 이른다. 궁한 물고기 신세 학철부어(涸轍鮒魚)의 고사에 나오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말라 헐떡이는 붕어와 같은 신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곤경에 처해 다급한 사람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에서 다 죽어 가는 물고기가 약간의 물만 주면 살겠다고 애원을 하면서, 만약 시기를 놓치면 건어물 가게에서나 자기를 찾게 될 것이라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있다. 풍협(馮鋏)……않나니 풍협(馮鋏)은 풍환(馮驩)의 칼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에 풍환이 일찍이 제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었는데, 맹상군이 후하게 대우하지 않고 좌우로부터 천시를 받자, 풍환이 불만을 품고 손으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먹자 해도 생선이 없구나. 긴 칼아, 돌아가야겠다. 밖에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長鋏歸來乎! 出無車.]"라고 하니, 맹상군이 좌우에게 명하여 풍환의 요구를 들어주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안어(鴈魚) 기러기와 물고기가 서신을 대신 전한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편지를 뜻한다. 물고기는, 《문선(文選)》의 고악부(古樂府)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먼 곳에서 손님이 와 두 마리 잉어를 주었는데, 아이를 시켜 요리했더니 배 속에서 비단 편지가 나왔네.[客從遠方来, 遺我䨇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고, 기러기는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흉노에 억류된 소무의 소식이 적힌 비단이 한 소제(昭帝)가 잡은 기러기발에 묶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오하(吳下)에……아니리라 사람의 식견과 학문이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진보함을 비유한 말이다. 오(吳)나라 여몽(呂蒙)이 처음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그를 군정(軍政)에 참여시키면서 독서할 것을 권하자, 그 후로 여몽이 열심히 공부하여 학식이 높아졌다. 뒤에 노숙(魯肅)이 여몽과 담론하다가 학식이 몰라보게 진보한 것에 탄복하면서 "나는 그대가 무사(武事)만 아는 줄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건대 학식이 깊고 넓으니 더 이상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 아니다.〔吾謂大弟但有武略耳 至于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라고 칭찬하니, 여몽이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법이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對〕"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오하(吳下)는 소주(蘇州)를, 아몽(阿蒙)은 여몽을 가리킨 말이다. 물고기가……되기 황하(黃河)의 상류에 있는 용문(龍門)의 폭포수는 세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해(江海)의 큰 물고기 수천 마리가 그 밑에 모였다가 그 폭포를 뛰어오르는 놈은 변하여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 고사는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다섯 수레 책 원문의 오거서(五車書)는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로 많은 서책이라는 말로 수많은 서책이나 박식함을 뜻하는데,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혜시의 학문은 다방면이어서 그 서책이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이다.[惠施多方, 其書五車.]"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맹성(孟聖)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조예가……있다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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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공주 제천의 임간송134) 호철 을 방문하다 ○9수 公州濟川訪林澗松【浩喆○九首】 독락정135)에서 구산옹136)을 함께 모신 지가 獨樂亭中陪臼山어느덧 사십 칠년 세월이 흘렀구나 忽焉四十七年間어찌 생각했으랴 봄바람 속에 함께 앉았던 이들이 豈料同坐春風伴오늘 아침엔 둘 다 늙은 얼굴로 서로 마주할 줄을 相對今朝兩老顔용사의 액137)을 고하매 갑자기 태산이 무너지니138) 龍蛇告厄遽頹山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양쪽 다 비통하였네 私痛公悲徹兩間현재 무함하는 무리들이 어지러이 날뛰니 脚下紛紛誣衊輩훗날 저승에서 뵐 때 무슨 면목으로 대하리오 他年歸拜作何顔근심의 끝이 우뚝한 남산과 가지런할 뿐만 아니니139) 憂端不啻屹南山목숨 바쳐 스승께 보답함이 우리가 어찌 다르리오 致死報師吾豈間평생 밝게 분변하는 뜻이 한결같고 지성스러우니 斷斷生平明辨志위로 아래로 부끄러울 게 없어140) 당당히 고개 든다오 無慙俯仰正擡顔천리 흐르는 시냇물이 깊은 산중에서 나오고 澗流千里出深山축축 늘어진 소나무가 눈 속에 우뚝 서 있네 落落蒼松立雪間지조와 절개가 원래 저와 같이 드높으니 志節元來高似許마침내 부헌이라 쓴 재실 편액을 본다오 孚軒終見作齋顔구산옹이 부헌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141) 嘉錫孚軒自臼山초당의 현판 사이에서 광채가 나는구나 草堂生色揭楣間교화가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는 날을 기다려야142) 待看化及豚魚日비로소 사문에 부응하여 공안143)을 기약할 수 있다오 始副師門期孔顔장대한 뜻이 처음엔 아홉 길 산144)을 기필했는데 壯志初期九仞山은근한 가르침을 또한 함장145) 사이에서 받았다오 叮嚀亦受丈函間지금 와서 결국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今來竟作如何狀후창이란 두 자가 너무도 낯부끄럽게 하는구나146) 二字後滄堪愧顔돌아가는 길에 아스라한 상당산147)을 바라보니 歸路迢迢上黨山석별의 정이 아득히 운수148) 사이로 들어가누나 別懷杳入樹雲間집이 멀어서 생각만 할 뿐이라고149) 하지 마소 莫言室遠相思地만년의 절조를 서로 닦아 다시 만나야 하니 晩節交修更接顔백발에 푸른 눈으로150) 서로 만난 옛 사림의 벗이니 白髮靑眸舊士林일찍이 근심이 많았건만 아직도 시름 속에 있구나 曾經憂慮尙欽欽백육 만나151) 도를 잃으니 자신을 해친 듯하였고 道喪百六如戕己삼천리 강토를 회복하니 마음이 다소 위로된다오 疆復三千稍慰心목석 사이에 은거하며 맑아지기를 기다릴 만하니 且可待淸居木石시속과 섞여 살며 금란의 교분152)을 말한 필요 없다오 未須混俗說蘭金서풍은 날마다 수시로 성대하게 불어오는데 西風日競無時定어찌하면 제민153)들이 바른 복식으로 돌아오려나 安得齊民返正襟사문에 아무아무 자들이 수풀처럼 많지만 斯文某某積如林사람에게 흠모의 정을 생기게 하기 어렵구나 難得令人起景欽책방과 같고 자잘한 말을 하면서도154) 부끄러움이 없었고 書肆說鈴曾沒恥높은 관 넓은 띠를 착용하면서155) 도리어 마음을 속이누나 峨冠博帶反欺心아우와 형이 어찌 차마 창칼을 수선하면서156) 弟兄何忍修戈戟의리와 이욕을 모두 잊은 채 쇠와 금을 분변하랴 義利都忘辨鐵金다만 자신이 외려 그 속에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但恐自家還在裡은나라 거울157)을 가지고 내 옷깃을 여며야 하리라 可將殷鑑整吾襟 獨樂亭中陪臼山, 忽焉四十七年間.豈料同坐春風伴, 相對今朝兩老顔?龍蛇告厄遽頹山, 私痛公悲徹兩間.脚下紛紛誣衊輩, 他年歸拜作何顔?憂端不啻屹南山, 致死報師吾豈間?斷斷生平明辨志, 無慙俯仰正擡顔.澗流千里出深山, 落落蒼松立雪間.志節元來高似許, 孚軒終見作齋顔.嘉錫孚軒自臼山, 草堂生色揭楣間.待看化及豚魚日, 始副師門期孔顔.壯志初期九仞山, 叮嚀亦受丈函間.今來竟作如何狀, 二字後滄堪愧顔.歸路迢迢上黨山, 別懷杳入樹雲間.莫言室遠相思地, 晩節交修更接顔.白髮靑眸舊士林, 曾經憂慮尙欽欽.道喪百六如戕己, 疆復三千稍慰心.且可待淸居木石, 未須混俗說蘭金.西風日競無時定, 安得齊民返正襟?斯文某某積如林, 難得令人起景欽.書肆說鈴曾沒恥, 峨冠博帶反欺心.弟兄何忍修戈戟, 義利都忘辨鐵金?但恐自家還在裡, 可將殷鑑整吾襟. 임간송(林澗松) 임호철(林浩喆)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선(敬善), 호는 간송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後滄集答 卷6 答林敬善》 독락정(獨樂亭) 공주(公州)의 동쪽 30리쯤 되는 삼기촌(三岐村)에 있는 정자이다. 임호철의 선조인 임목(林穆, 1371∼1448)이 정자를 건립하고, 송대(宋代)의 명상(名相) 사마광(司馬光)의 원명(園名)인 독락(獨樂)을 본떠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금강팔경(錦江八景)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질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7 忠淸道 公州牧》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로, 구산은 그의 호 가운데 하나이다. 용사(龍蛇)의 액(厄) 사람이 죽는 액운이 든 해를 말하는데, 흔히 현인의 죽음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지내는데, 하루는 꿈에 공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용의 해이고 내년은 뱀의 해이다.[起起, 今年歲在辰, 來年歲在巳.]"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 참술(讖術)로 맞추어 보고 자신의 목숨이 다할 줄 알았더니, 실제로 그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65 鄭玄列傳》 태산(泰山)이 무너지니 공자(孔子)가 어느 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쓰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서 7일 만에 별세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태산이 무너졌다는 것은 선사(先師)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쓴 말로,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전우(田愚)의 죽음을 가리킨다. 근심의……아니니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 시에 "근심의 끝이 종남산과 가지런하여, 끝없는 근심을 걷을 수가 없어라.〔憂端齊終南, 鴻洞不可掇.〕"라고 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杜少陸詩集 卷4》 위로……없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원문의 가석(嘉錫)은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뜻으로,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황고께서 나의 초년 시절을 관찰하여 헤아리사, 비로소 내게 아름다운 이름을 내리셨으니, 나의 이름을 정칙이라 하시고, 나의 자를 영균이라 하시었네.[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余以嘉名.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교화가……기다려야 원문의 화급돈어(化及豚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단사(彖辭)에 "돼지와 물고기가 길함은 미더움이 돼지와 물고기에 미친 것이다.[豚魚吉, 信及豚魚也.]"라고 한 것을 원용한 말이다. 미더움이 돈어에 미친다는 것은, 성인(聖人)의 덕화가 매우 우둔하고 미천한 동물에까지 미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부헌(孚軒)'이란 명칭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안(孔顔) 공자(孔子)와 안자(顔子)를 합칭한 말이다. 아홉 길 산 원문의 구인산(九仞山)은 《서경》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큰 덕에 끝내 누를 끼칠 것이니, 이는 마치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여 그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공이 이루어진다는 경계이다. 함장(函丈) 스승의 자리 또는 강학(講學)하는 자리를 뜻한다. 본디 옛날에 스승의 자리와 제자의 자리에 1장(丈)의 사이를 둔 데서 나온 말로, 전하여 스승의 경칭(敬稱)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 전우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만일 음식 대접을 위한 객이 아니고 강문(講問)하러 온 객이거든 자리를 펼 때 자리와 자리의 사이를 한 길 정도가 되게 한다.[若非飮食之客, 則布席, 席間函丈.]"라고 하였다. 후창(後滄)이란……하는구나 김택술의 '후창'이란 호는 스승인 간재가 지어준 것이다.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이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호를 '후율(後栗)'이라고 지었는데, 간재가 이 일을 본떠 남송(南宋)의 호가 창주(滄洲)인 주희(朱熹)를 계승하라는 의미로 '후창'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후창이 자신을 돌아보니 스승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6 答洪韋軒》 상당산(上黨山)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운수(雲樹) 멀리 떨어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에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에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다시 함께 자세히 글을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집이……뿐이라고 일시(逸詩)에 "당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이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리오마는, 집이 멀어서이다.[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라고 하였는데, 孔子가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지, 어찌 멀어서이겠는가.[未之思爾, 夫何遠之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푸른 눈으로 원문의 청모(靑眸)는 청안(靑眼)과 같은 말로, 반가워하는 눈길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완적(阮籍)은 세속(世俗)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지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을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으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백육 만나(百六) 백육은 106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액운(厄運)을 말한다.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律歷志上》 금란(金蘭)의 교분 원문의 남금(蘭金)은 돈독한 우의(友誼)를 비유한 말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니 그 단단함이 쇠를 끊을 만하도다. 마음이 서로 같은 말은 그 향내가 난초와 같도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민(齊民)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로, 서민(庶民), 평민(平民) 등과 같은 말이다. 책방과……하면서도 원문의 서사(書肆)는 책방의 뜻으로, 책의 요점은 파악하지 못한 채 많이 읽는 것만 욕심낸다면 그저 책을 많이 쌓아둔 책방에 불과하게 된다는 뜻이다. 설령(說鈴)은 긴요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말을 이른다.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오자(吾子)〉에 "책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긴요하지 않는 것은 책방일 뿐이고, 말을 좋아하여도 중니에게 보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말이다.〔好書而不要諸仲尼, 書肆也, 好說而不見諸仲尼, 說鈴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북송의 정이(程頤)가 일찍이 문인 윤돈(尹焞)에게 이르기를 "공이 학문하는 방도를 알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굳이 많이 볼 필요가 없고 요점을 알아야 하니, 많이 보기만 하고 요점을 알지 못한다면 책방일 뿐이다.[公要知爲學, 須是讀書. 書不必多看, 要知其約, 多看而不知其約, 書肆耳.]"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3》 높은……착용하면서도 원문의 아관박대(峨冠博帶)는 높은 관과 헐렁한 띠로, 사대부의 정장 혹은 조복(朝服)을 의미한다. 창칼을 수선하면서 원문의 수과극(修戈戟)은 《시경》 〈진풍(秦風) 무의(無衣)〉에 "어찌 옷이 없어서, 그대와 솜옷을 함께 입으리오. 왕명으로 군대를 일으키거든, 우리의 창칼을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豈曰無衣, 與子同袍? 王于興師, 修我戈矛, 與子同仇.]"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돈독한 우의(友誼)가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은(殷)나라 거울 원문의 은감(殷鑑)은 《시경》 〈대아(大雅) 탕(蕩)〉에 "은나라의 거울이 멀리 있지 않아서, 하후의 세대에 있느니라.[殷鑑不遠, 在夏后之世.]"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날의 경계로 삼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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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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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일158)의 별장에 이르다 到吳允一庄 한여름에 반천 리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가니 炎天來訪半千程그 누가 알리오 이 늙은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誰識老夫相愛情선조 묘비에 정성을 다하니 아름다운 행적 전하고 誠竭祖碑傳懿蹟시골 마을에 덕이 미더우니 어리석은 백성 교화하네 德孚鄕里化蚩氓책 속에 실로 몸 편케 하는 방법이 있거니와 書中儘有安身術세상에 어찌 실상에 부합하는 명성이 없으랴 世上那無副實名그대처럼 근본 서는 건 참으로 쉽지 않나니 本立如君諒匪易이로부터 대도가 자연히 생겨나리라159) 從玆大道自然生상당산성160) 서쪽의 작천 주변에 上黨城西鵲川邊풍광 좋은 골짝 한 구역이 있구나 一區洞壑好風煙기암의 수석은 이름난 승경을 전하고 機巖水石傳名勝목령의 산세는 온전한 기운을 보이네 木嶺岡巒見氣全인정 넘치는 마을엔 옛 풍속이 남아 있고 誼洽一村餘舊俗풍성하게 여문 오곡은 좋은 밭에 무성하여라 年登五穀有良田이곳에 다시 안풍자161)가 있어 斯間復得安豐子평생 주경야독하며 천명을 즐기누나 耕讀生平自樂天서원162)에 먼 길손이 창동에서 찾아온 건 西原遠客自滄東학풍이 좋은 그대가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之君好學風시례는 용은 뒤에 여전히 남아 있고163) 詩禮猶餘龍隱後발자취는 목산에서 벗어나지 않았도다 鞋筇不出鶩山中마음은 섬돌 앞 잣나무와 같아 길이 푸름을 보고 心如砌柏長看翠몸은 정원 속 꽃과 짝하여 홀로 붉음을 보전하누나 身伴庭花獨保紅이별과 만남은 무상하니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離合無常何足道일생토록 마음에 두는 바가 같아야 할 뿐이라네 一生須要所存同 炎天來訪半千程, 誰識老夫相愛情?誠竭祖碑傳懿蹟, 德孚鄕里化蚩氓.書中儘有安身術, 世上那無副實名?本立如君諒匪易, 從玆大道自然生.上黨城西鵲川邊, 一區洞壑好風煙.機巖水石傳名勝, 木嶺岡巒見氣全.誼洽一村餘舊俗, 年登五穀有良田.斯間復得安豐子, 耕讀生平自樂天.西原遠客自滄東, 爲有之君好學風.詩禮猶餘龍隱後, 鞋筇不出鶩山中.心如砌柏長看翠, 身伴庭花獨保紅.離合無常何足道? 一生須要所存同. 오윤일(吳允一) 오원홍(吳源弘)으로, 윤일은 그의 자이다. 그 밖의 사항은 미상이다. 《後滄集 卷4 答吳允一》 그대처럼……생겨나리라 《논어》 〈학이(學而)〉에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있는 산성 이름이다. 상당은 청주의 별칭이다. 안풍자(安豐子) 당(唐)나라 때 안풍(安豐)에 은거하였던 동소남(董邵南)을 이른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의(義)를 행하고 부모를 효로 잘 봉양하고 처자식을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당대의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동생행(董生行)〉을 지어 그를 칭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동소남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여기서는 오원홍을 안풍자에 비겨 말한 것이다. 《小學 善行》 서원(西原) 청주(淸州)의 별칭이다. 시례(詩禮)는……있고 오원홍이 이곳에 은거한 뒤에도 가학(家學)을 잘 계승하고 전수함을 말한다. 시례는 가정교육 또는 가학을 뜻한다. 공자(孔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용은(龍隱)은 지명 등의 고유명사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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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벗들과 두승산423)에 오르다 同諸益上斗升山 산은 절로 푸른데 사람은 백발이 되어 山自蒼蒼人白頭납극424) 다섯 번 신으니 세월도 흘러갔네 五穿蠟屐歲華流중간에 오랜 세월 지나 뽕밭이 바다 되니 中經浩劫桑田海우선 맘껏 노닐고자 중들의 누각을 빌렸네 且借遨遊釋子樓옛날에 한 말 한 되의 술을 누가 마셨는가 昔日斗升誰酌酒삼신산이 지척이니 배를 번거롭게 찾지 않네 三神咫尺不煩舟하늘가에 저녁 구름이 다시 만나듯이 暮雲天際還相合만남과 이별 부질없이 근심할 것 없네 聚散無將作謾愁 山自蒼蒼人白頭, 五穿蠟屐歲華流.中經浩劫桑田海, 且借遨遊釋子樓.昔日斗升誰酌酒? 三神咫尺不煩舟.暮雲天際還相合, 聚散無將作謾愁. 두승산(斗升山) 전라도 고부군(古阜郡)에 있는 산이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이르는데, 남조 송(宋)나라 때 사령운(謝靈運)이 산에 오를 적에는 반드시 나막신을 신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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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에 가뭄을 걱정하며 暮春憫旱 농사를 점칠 땐 먼저 맥우425)를 보는데 歲事占看雨麥先어찌하여 봄철 내내 큰 가뭄이 드는가 如何亢旱一春全전답의 이앙 조금 늦어져 껍질 더디 터지고 田秧差晩遲開甲길가 풀도 자라기 어려워 절로 털방석 되네 路草難長自成氈구름 무지개 보며 비 내려주길 얼마나 생각했는데 幾望雲霓思惠霈또 들으니 책력에도 흉년에 속한다 하네 又聞星曆屬災年겸하여 약육강식이 만연한 이 시대에 兼玆弱肉强呑日백성들을 보니 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네 同病蒼生亦可憐 歲事占看雨麥先, 如何亢旱一春全?田秧差晩遲開甲, 路草難長自成氈.幾望雲霓思惠霈, 又聞星曆屬災年.兼玆弱肉强呑日, 同病蒼生亦可憐. 맥우(麥雨) 보리가 익을 때 내리는 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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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실196)에 제하다. 마땅히 갑신년(1944) 조에 있어야 한다. 題不忘室【當在甲申年條中】 구렁에 버려짐과 머리 잃음을 잊지 않는다고197) 不忘在壑與喪元공자와 맹자198)께서 분명한 격언을 남기셨다오 鄒魯分明有法言천사라도 거들떠보지 않음은 의가 아니기 때문이요199) 千駟寧觀非義地만인이라도 내 가서 대적함은200) 지강의 경지201)에 들어서라네 萬人吾往至剛門서책은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202) 세 시렁에 가득 채우고 書宜嗜豢盈三架소나무는 양식으로 삼을 만하니203) 후원에 빼곡히 심는다오 松可爲粮滿後園불망 두 자로 편액한 걸 그대는 비웃지 마소 二字扁楣君莫笑옛사람을 상론할204) 후생이 절로 있을 터이니 尙論自有後生存 不忘在壑與喪元, 鄒魯分明有法言.千駟寧觀非義地, 萬人吾往至剛門書宜嗜豢盈三架, 松可爲粮滿後園.二字扁楣君莫笑, 尙論自有後生存. 불망실(不忘室) 후창 소유의 토실(土室) 이름이다. 후창은 갑신년인 1944년에 〈불망실기(不忘室記)〉를 지었는데, 그 기문에 당시 일본의 폭정과 수탈이 극에 달해 의리상 욕을 받을 수 없기에 토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하다가 마지막에는 구렁에 들어가 죽겠다고 하였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구렁에……않는다고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가 "옛날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할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 불렀으나 우인이 오지 않자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공자(孔子)께서는 '지사(志士)는 자신의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용사(勇士)는 죽음을 당해 머리가 잘릴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칭찬하셨으니,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취하셨는가? 합당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은 것을 취하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원문의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으므로 공자와 맹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우인(虞人)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을 맹자가 인용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모두 언급한 것이다. 천사(千駟)라도……때문이요 천사는 4천 필의 말을 이른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맹자가 이윤(伊尹)의 마음가짐을 설명하면서 "의롭지 못하거나 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천하를 그에게 녹봉으로 주어도 돌아보지 않고, 4천 필의 말을 매어 놓는다 하더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不顧也, 繫馬千駟, 不視也.]"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인(萬人)이라도……대적함은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지 못하면 비록 미천한 사람이라도 내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지강(至剛)의 경지 원문의 강문(剛門)은 지극히 굳센 경지를 비유한 말로,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면서,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기가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고기처럼 좋아해야 하니 원문의 환(豢)은 추환(芻豢)의 줄임말로, 초식(草食) 가축과 잡식(雜食) 가축을 뜻하는데, 맛있는 고기 음식을 비유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소나무는……만하니 후창의 〈불망실기(不忘室記)〉에 토실(土室)에 몸을 숨겨 처음에는 솔잎과 마를 채취하여 연명한다고 하였는데, 이 솔잎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後滄集 卷21》 상론(尙論)할 옛사람의 일을 평론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천하의 훌륭한 선비라야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여 또다시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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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만당형장190)을 생각하며 3수 病中憶晩棠兄丈【三首】 이년이 지나도록 당형을 보지 못했는데 不見棠兄再過冬나의 상태로 당형을 미루어 알 수 있다네 以吾狀態可推公얼마나 머리가 센지는 다소 다를 터이고 淺深鶴髮差分異전후로 형제 잃은 슬픔191)은 일체 똑같으리라 先後鴒悲一體同용악에 힘써 달려갔으나 미치지 못하였고 龍岳專趨曾未及웅진에 들러 찾아뵀으나 또 허사가 되었다오 熊津歷拜又成空갑자기 몸져누워 장차 벙어리가 되려 하니 忽然臥病將成啞서로 만난들 어찌 속마음을 다 말할 수 있으랴 相對何能說盡衷사십 년 동안 기나긴 한겨울로 괴로웠는데 四十年間困大冬봄이 오자 비로소 조화옹을 보는구나 春來始見化翁公원수를 섬멸함은 예전 만남 뒤에 일찌감치 있었고 殲讐早在前逢後술을 따라 준 건 다 같이 축하한 일보다 오히려 늦었다오 酌酒猶遲一賀同서인에 대한 근심이 비록 눈에 가득하지만 憂在西人雖溢目태극기는 높이 걸려 이미 창공에 펄럭이누나 旗高太極已翻空세속에 매인 몸인지라 무궁한 설이 있으니 世途身分無窮說행여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소회를 토로하리라 倘有其時一吐衷추억하건대 유조192)의 해가 든 봄과 겨울에 憶曾柔兆歲春冬양부193)의 시론을 우리 당형에게 들었다오 兩部詩論受我公활수에 오르는 건194) 기약하지 못하거니와 活水登臨不期會천태에서 풍영하는 건195) 그 언제나 함께하랴 天台風詠幾時同궁한 길에 낙척하니 일평생의 한이요 窮途落拓平生恨늘그막에 처량하니 만사가 부질없어라 暮境凄涼萬事空당시에 기대한 뜻이 진중하였는데 珍重當年期待意지금 유복 차림이 진심 아닌 게 부끄럽구나 至今儒服愧非衷 不見棠兄再過冬, 以吾狀態可推公.淺深鶴髮差分異, 先後鴒悲一體同.龍岳專趨曾未及, 熊津歷拜又成空忽然臥病將成啞, 相對何能說盡衷?四十年間困大冬, 春來始見化翁公.殲讐早在前逢後, 酌酒猶遲一賀同.憂在西人雖溢目, 旗高太極已翻空.世途身分無窮說, 倘有其時一吐衷.憶曾柔兆歲春冬, 兩部詩論受我公.活水登臨不期會, 天台風詠幾時同?窮途落拓平生恨, 暮境凄涼萬事空.珍重當年期待意, 至今儒服愧非衷. 만당형장(晩棠兄丈) 김희현(金熺鉉, 1872~1951)으로, 만당은 그의 호이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정오(定五)이다. 후창의 외종형(外從兄)이다. 후창이 일찍이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다. 《後滄集 卷20 晩棠詩稿序》 형제 잃은 슬픔 원문의 영비(鴒悲)를 번역한 것이다. 영(鴒)은 척령(鶺鴒)의 준말로 할미새를 뜻하는데, 흔히 형제 또는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을 당하였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길이 탄식할 뿐이니라.[脊令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유조(柔兆)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병술년(1946)을 가리키는 듯하다. 양부(兩部) 양부고취(兩部鼓吹)와 같은 말로,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部隊)와 서서 음악을 연주하는 부대가 함께 연주하는 매우 기세가 성대한 음악을 뜻한다. 여기서는 음악 용어를 시의 이론에 대입하여 말한 듯하다. 활수(活水)에 오르는 건 활수는 문맥으로 볼 때 높은 정자나 누대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활수라는 말은 남송(南宋) 때 주희(朱熹)의 〈관서유감이수(觀書有感)〉 시에 "묻노니 너는 어찌 이렇게 맑을 수가 있느뇨, 근원에서 흐르는 물이 내려오기 때문이겠지.[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한 시구에서 유래하였다. 《晦庵集 卷2》 천태(天台)에서 풍영(風詠)하는 건 천태는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을 가리킨다. 풍영은 바람을 쐬며 시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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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윤봉길222)행 尹義士奉吉行 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당시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223) 우연이 아니로세 岳降當年匪偶爾한 때의 행적은 천년토록 길이 빛나고 一時之蹟光千祀칠 척의 장신은 온 천하224)를 구제하였네 七尺之身濟九有약관의 나이에 일찍부터 명성을 떨치려 했으니 弱齡早欲立大名충과 효가 지극하다고 사우들에게 알려졌다오 忠孝二字聞師友붓을 잡으면 스스로 면려하는 시를 막힘없이 썼으니 筆下滾滾自勖詩지금까지도 사람의 기운을 분발하게 한다오 至今令人氣蚴蟉보잘것없고 누추한225) 시목동에서 佌佌蓛蓛柹木洞산풍의 간고226)로써 부모를 봉양하였네 山風之幹養父母효를 옮겨 충을 하려 했지만227) 나라 없음을 어이하랴 移孝爲忠柰無國우리나라가 협소하여 대바구니 속에 있는 것 같았네 東土窄窄如在簍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려가 새 정부에 찾아가니228) 出門西走新政府백범 노인229)을 처음 만나면서 마치 구면처럼 여겼다네 初面如舊白凡叟한 조각 간담을 서로 활짝 터놓으면서 一片肝膽相照地영구의 쉽고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하였네230) 嬰臼難易各自取중국과 우리나라의 형세는 순치보거231)와 같으니 唇齒輔車中東勢고금의 논의가 과연 다름이 없겠는가 古今之論無異否팔월 상해에서 일왕을 위한 잔치가 있었는데232) 八月上海島酋宴대륙을 삼킬 듯이 기세가 몹시 등등하였다네 垂呑大陸勢甚阜계엄 상태가 서릿발 같이 삼엄하여 戒嚴肅肅如霜雪나는 새도 감히 그 뒤를 지나가지 못했는데 飛鳥莫敢掠其後편한 걸음으로 무인지경을 가는 듯이 했으니 平步躡去如無人온갖 신령이 오르내리며 좌우를 호위하였다오 百靈閃閃擁左右품속에 숨긴 한 덩이의 물건은 무엇인가 懷中一塊是何物삽시간에 천둥 벼락 치는 굉음이 울렸네 頃刻雷霆生擊掊한 사람의 순국에 열 명 대장을 모두 죽게 하고 一斃斃盡十大將가련하게도 나머지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오 可憐餘物作炙灸스스로 성명을 외치고서 춤추고 환호하며 自唱姓名舞且呼대한독립만세를 오래도록 부르짖었도다 大韓獨立萬歲久어찌 자신이 쓸 총포가 하나도 없으랴마는 那無一礮自家用웅어에 대한 구분233)이 진작부터 명백하였다네 熊魚之分早判剖윤봉길이여 윤봉길이여 尹奉吉尹奉吉의사라는 칭호가 만인의 입에서 앞다퉈 나왔도다 義士爭稱萬人口진심으로 은혜를 베푸니 민국을 찬란히 빛내고 中心載恩華民國덕을 좋아하는 자들이 함께 도우니 유럽까지 아울렀네 好德同贊幷巴歐그 큰 공로가 귀결된 바를 살펴보건대 淸看大功歸宿處조국의 온 지역을 한 비로 깨끗이 청소함일세 祖國之周掃一帚조국을 다시 얻었으니 어찌 충이 아니겠는가 復得祖國豈非忠이름 날려 부모를 드러냈으니234) 효 역시 성대하도다 掦名顯親孝亦厚예산은 높고 덕산은 무거우니 禮山高兮德山重예산과 덕산은 충효의 고을이로세235) 禮德之山忠孝部윤봉길이여 진정한 의사로다 尹奉吉眞義士몸은 떠났어도 의는 남아 있어 길이 불후하리라 身去義存長不朽 尹奉吉眞義士! 岳降當年匪偶爾.一時之蹟光千祀, 七尺之身濟九有.弱齡早欲立大名, 忠孝二字聞師友.筆下滾滾自勖詩, 至今令人氣蚴蟉.佌佌蓛蓛柹木洞, 山風之幹養父母.移孝爲忠柰無國? 東土窄窄如在簍.出門西走新政府, 初面如舊白凡叟.一片肝膽相照地, 嬰臼難易各自取.唇齒輔車中東勢, 古今之論無異否?八月上海島酋宴, 垂呑大陸勢甚阜.戒嚴肅肅如霜雪, 飛鳥莫敢掠其後.平步躡去如無人, 百靈閃閃擁左右.懷中一塊是何物? 頃刻雷霆生擊掊.一斃斃盡十大將, 可憐餘物作炙灸.自唱姓名舞且呼, 大韓獨立萬歲久.那無一礮自家用? 熊魚之分早判剖.尹奉吉尹奉吉! 義士爭稱萬人口.中心載恩華民國, 好德同贊幷巴歐.淸看大功歸宿處, 祖國之周掃一帚.復得祖國豈非忠? 掦名顯親孝亦厚.禮山高兮德山重, 禮德之山忠孝部.尹奉吉眞義士! 身去義存長不朽.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파평(坡平), 본명은 우의(禹儀), 호는 매헌(梅軒)이다. 충청남도 예산(禮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璜)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김원상(金元祥)이다.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감행하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으로 호송되어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그해 12월 19일에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개석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격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빼어난 기운 타고난 건 원문의 강악(降嶽)은 산악의 신령한 기운을 받아 훌륭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숭고(崧高)〉에 "높디높은 산악이, 우뚝 하늘에 닿았도다. 산악에서 신령한 기운을 내려, 보후(甫侯)와 신백(申伯)을 내셨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 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온 천하 원문의 구유(九有)는 구주(九州)와 같은 말로, 천하 또는 중국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보잘것없고 누추한 원문의 차차(佌佌)는 작은 모양이고, 속속(蔌蔌)은 가난하고 누추한 모양을 형용한 말로,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보잘것없는 소인들은 저 집을 소유하며, 누추한 자들은 곡식을 소유한다.[佌佌彼有屋, 蔌蔌方有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산풍(山風)의 간고(幹蠱) 산풍은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고괘(蠱卦)를 가리킨다. 간고는 《주역》 〈고괘(蠱卦)〉에 "초육(初六)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집안일을 주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孝)를……했지만 원문의 이효위충(移孝爲忠)은 《효경(孝經)》 〈광양명(廣揚名)〉에 "군자가 어버이를 효도로 섬기기 때문에 충성을 임금에게 미루어 옮길 수 있다.[君子之事親孝, 故忠可移於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문을……찾아가니 새 정부는 당시 상해(上海)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리킨다. 윤봉길은 23세가 되는 1930년 3월에 만주(滿洲)로 망명하였고, 1931년 8월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갔다가 그해 겨울에 임시정부의 김구(金九)를 찾아가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임을 호소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백범(白凡) 노인 김구(金九, 1876~1949)로, 백범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昌洙), 호는 백범ㆍ연하(蓮下)이다. 삼일 운동 후 중국 상해(上海)의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고, 1928년에 이시영(李始榮) 등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고, 1931년에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여 1932년 1월의 이봉창(李奉昌)의 의거와 4월의 윤봉길(尹奉吉) 의거 등을 지휘하였다. 영구(嬰臼)의……취하였네 영구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대신 조삭(趙朔)의 친구 정영(程嬰)과 문객인 공손저구(公孫杵臼)를 가리킨다. 진나라 경공(景公) 3년에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가 조삭의 일족(一族)을 멸족시키자, 공손저구가 정영과 함께 조삭이 남긴 고아(孤兒)를 세울 일을 논의한 끝에, 정영에게는 조삭의 진짜 고아를 보호하게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거짓 조삭의 아이라고 위장하여 산중에 숨어 있으면서 정영에게 자신을 도안가에게 밀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공손저구 자신은 가짜 아이와 함께 도안가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조삭의 진짜 고아는 정영에 의해 무난히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경공 15년에 한궐(韓厥)의 주선으로 조삭의 고아인 조무(趙武)를 조씨(趙氏)의 후계자로 삼아 예전의 지위와 땅을 회복하게 하고 동시에 조삭의 원수를 갚게 하였다. 정영은 이후 조무(趙武)가 관례식을 올리던 날에 조삭과 공산저구에게 일을 성공함을 보고하기 위해 황천으로 가야 한다고 하며 조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자살하였다. '쉽고 어려운 일'이란 공손저구가 정영과 처음 논의할 때 죽는 일은 쉽고 조삭의 고아를 세우는 일은 어렵다고 하면서, 정영에게는 고아를 세우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고 공손저구 자신은 죽는 쉬운 일을 하여 먼저 죽겠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은 공손저구의 쉬운 일을, 김구는 정영의 어려운 일을 각자 취해 행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史記 卷43 趙世家》 순치보거(脣齒輔車) 순치는 입술과 이를 말하고, 보거는 광대뼈와 잇몸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피차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여 서로 의지하는 사물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광대뼈와 잇몸이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라고 하였다. 팔월……있었는데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행사를 두고 말한 것이다. 원문의 팔월(八月)은 사월(四月)이 되어야 하는데, 후창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웅어(熊魚)에 대한 구분 곰 발바닥 음식과 물고기 음식 가운데 택일하라면 물고기보다는 곰발바닥을 택한다는 말로, 생사(生死)의 선택에 있어 구차히 살기보다 떳떳하게 의리(義理)를 따라 죽는 것을 택하는 비유로 쓰인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어물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어물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름……드러냈으니 《효경》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몸과 사체와 털과 살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산……고을이로세 윤봉길이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시량리((柿梁里)에서 태어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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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2) 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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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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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네가 특별히 방종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없고 집안을 잘 이끌고 애비의 뜻을 잇는 일194)에 마음을 두는 것을 항상 보게 되니, 이 때문에 내가 만년에 신세가 조금 안정되고 집안은 조금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위안을 받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느냐. 사방의 친구들도 또한 이따금 칭찬하지 않는 자가 없다. 다만 너는 평소 용모와 안색의 사이에 온화한 기운이 적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하고 일에 대응할 때 온당하지 못한 단서가 없지 않으니, 이것이 너의 단점이다. 이미 그 단점을 알았으니, 어찌 온 힘을 다해 맹렬하게 살피지 않으랴. 《시경》에서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의 기반이네."195)라 하였으니, 대저 온화함이란 천지가 사물을 많은 마음이요, 우리 사람이 마음에 지녀야할 기초이다. 천하의 물건은 양을 향하고 음을 등지며 온화함을 좋아하고 썰렁함을 싫어하지 않음이 없는데, 더구나 사람 마음의 향배는 어찌 이에서 벗어남이 있겠느냐. 지금부터 마음과 뼈에 새겨서 냉정하고 차가운 낯빛을 얼굴에 드러내지 말고 절박한 말은 입에서 내지 말며, 틈틈이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여 학문을 배양하며 또한 나의 허물을 말해 주고 나의 부족한 점을 충고해 주는 많은 도움을 줄 정직한 벗과 교유한다면, 이것이 네 한 몸의 복이며 한 집안의 경사가 될 것이니,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하라. 옛날 여동래는 젊어서 많이 격노하였다. 하루는 《논어》의 "자신에게 책망을 두터이 하고 남에게 책망을 가볍게 한다."는 구절을 읽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격노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기질을 변화하는 방법이다.196) 너 또한 동래 선생처럼 기질을 변화해야 한다. 每見汝別無放逸浮浪之習。而留心於克家幹蠱之業。此我於晩年。身勢稍爲安帖。家容稍爲安集也。吾之所以慰望於汝者。其心爲何如。而四方知舊亦不無種種稱道者矣。但汝平日容色之間。少溫和之氣。是以接人應物。或不無未穩之端。此汝之所短也。旣知所短。豈不十分猛省乎。詩曰。溫溫恭人。惟德之基。夫溫溫者。天地生物之心。而吾人存心之基也。天下之物。莫不向陽而背陰。好溫而惡寒。況人情向背。豈有外於此乎。自今以往。銘心刻骨。冷涼之色。勿形於顔。迫切之言。勿出於口。間間讀書玩理以培養之。又從直友强輔。能言吾過。能攻吾闕者。與之遊逐。此汝一身之福。一家之慶也。千萬勉勉。昔呂東萊。少多暴怒。一日讀論語躬自厚而薄責於人之語。終身不暴怒。此是變化氣質法。汝亦變化質氣。如東萊先生也。 애비의 뜻을 잇는 일 원문의 '간고(幹蠱)'는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고괘(蠱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되리라.〔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온화하고……기반이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동래는……방법이다 여조겸이 젊었을 때에 기질이 거칠고 포악하여 밥상이 맘에 들지 않으면 기물을 부수곤 하였다. 뒷날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한가할 때에 《논어》를 읽었는데, 〈위령공(衛靈公)〉의 "자신의 잘못은 혹독하게 꾸짖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이해해 주도록 노력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크게 깨달아 그 뒤로는 갑자기 성내는 버릇을 고치게 되었다. 《心經 卷1 損大象懲忿窒慾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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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81)에 대한 제문 祭朴學中文 하늘이 현철한 분 낸 것은 장차 큰일을 함이 있게 하기 위한 까닭인데 이에 그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그 행하는 것을 막히게 하여 혹 그 장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데 이르니, 조물주는 여기에 그 어떤 마음을 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어리고 장성할 때 효도하고 공손하며 늙어서 예를 좋아하였으니, 행실은 옥루(屋漏)82)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학문은 고금을 종합할 수 있으며, 인(仁)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 은택을 끼칠 수 있고, 지(智)는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릴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남과 절교하지 않고 화합하면서도 남과 얽매지 않는 것은 형이 거의 가까웠다고 하겠습니다. 오직 이 마경(馬卿)의 병83)과 현안(玄晏)의 질84)이 계속 이어져 남아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없어, 신음 속에 세월을 보낸 것은 겨우 요절을 면하는데 이르렀고 그 건강했던 날을 찾아보면 또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니, 어찌 덕은 넉넉하고 명에는 곤액을 당함이 이와 같습니까.오호라! 한 방에서 문을 닫은 채 고요히 지내며 병을 요양하여 사려는 점점 끊어지고 기욕은 점점 담박해져 본원의 자리에 조용하고 연구 탐색하는 즈음에 침잠하여 천하의 의리를 열람하고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을 알았던 것은 애초에 병을 요양하는 가운데로부터 터득한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혹 하늘의 뜻은 이런 질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무너진 풍속의 도도한 가운데 섞이지 않고 사도(斯道)에 힘을 다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면, 어찌 학문이 진보함에 병 또한 심해져 이런 지경에 이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오호라! 선왕의 전례(典禮)가 하루아침에 쓸어버린 듯 없어져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은 극히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에 능히 초연(超然)히 먼저 가서 숭정(崇禎)의 유민85)과 우리나라[小華]의 완인(完人)이 되는 것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또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효성으로 편모를 모시면서 봉양을 마치지 못하였고 여러 아들에게 공부를 권면하여 학업을 마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노형의 눈은 생각건대 응당 지하에서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완인이 되었는데 또 완전한 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여러 아들이 어질고 효도하니 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소원을 족히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형께서는 마음 놓고 어두운 지하에서 걱정하지 마소서.아우는 부로를 잃은 외로운 처지에 쓸쓸히 지내고 있어 여생이 근심스러웠는데 중년 이후로는 오직 형에게 의지하였습니다. 경인년(1890, 고종27)에 식구들을 데리고 가까이 가서 살게 되었는데 형은 마침 병들었고, 지금 같은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형은 또 돌아가셨습니다. 애달픈 나의 박한 운명은 단지 붕우와 지내는 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또한 능히 그 끝을 보장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형과 작별한 이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사이 세월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험한 길이 앞에 있는데 맹인은 지팡이를 잃고 풍파가 끝이 없는데 외로운 배는 키를 잃었으니, 무엇으로 기대하고 면려하여 훗날 지하에서 보고할 것으로 삼겠습니까. 天生賢哲。將以有爲也。而乃拂欝其心。室塞其行。以至或不得其壽焉。造物於此。未知其何所用心耶。幼壯孝弟。老而好禮。行可以不愧屋漏。學可以經緯古今。仁可以利人澤物。智可以圖事揆策。貞而不絶於人。和而不泥於物者。兄其庶幾焉。惟是馬卿之病。玄晏之疾。沈綿彌留。無日可起。其所以捱過得呻吟中光陰者。僅至免夭。而求其康適之日。則又不得爲三之一矣。何其優於德而厄於命若是耶。嗚呼。杜門一室。靜居養病。思慮漸熄。嗜欲漸淡。從容於本源之地。沈潛於硏索之際。閱天下之義理。會天下之至樂者。未始不自養病中得來。或者天意降此疚疾。使之不雜於頹俗滔滔之中。而得以盡力乎斯道也。豈知學進而病亦進以至於此耶。嗚乎。先王典禮。一朝掃如。時象風色。極其叵測。乃能超然先逝。不失爲崇禎之遺民。小華之完人者。又安知非天意耶。孝奉偏闈。未得終養。勉課諸郞。未見卒業。老兄之目。想應不暝於地下矣。然旣爲完人。又求完福。其不難乎。況諸郞賢孝。足以了厥考未了之願。願兄釋然無虞於冥冥之中也。弟孤露離索。餘生惸惸。中年以來。所賴惟兄。庚寅之歲。絜家就近。而兄適病焉。今也來留同塾。而兄又逝焉。哀此薄命。只有朋友一樂。而亦不能保其終耶。別兄以後。屬纊以前。未知其間日月幾何。而將誰賴依。險路在前而盲人失相。風濤無涯而孤舟失柁。其何以期勉以爲他日下報之地耶。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자는 학중, 호는 우인당(愚忍堂)·즉이재(則以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옥루(屋漏)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방구석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마음속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네가 네 집에 있을 때에 보니 옥루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마경(馬卿)의 병 마경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현안(玄晏)의 질 현안은 진(晉)나라 황보밀(黃甫謐)의 호이다. 그는 일생 풍비(風痺)에 시달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서음(書淫)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은거하며 저술을 일삼았다. 《晉書 卷51 皇甫謐列傳》 숭정(崇禎)의 유민(遺民)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남긴 백성이라는 뜻으로, 명나라는 망하고 숭정제는 죽었지만 여전히 숭정제를 황제로 여기고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겨 그 백성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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