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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황공직【호원】에게 답함 答黃公直【浩源】 여러 조목에 대해 물은 것에서 조예의 일단을 볼 수 있네. 대저 문(文)과 질(質)은 비록 경중(輕重)과 본말(本末)의 구분이 있지만 과(過)와 불급(不及)이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네. 자공이 말한 '같다[猶]'는 것141)은 경중과 본말이 없는 것을 이름이요, 공자가 말한 '조화를 이룬다[彬彬]'142)고 한 것은 과와 불급을 두어서는 안 됨을 이르는 것이네. 형체가 있은 뒤에 기질지성이 있다는 말에서 이 형(形)자는 '기로서 형체를 이룬다.[氣以成形]'143)는 말의 '형(形)'자를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형상으로 드러난다.[事物形見]'144)는 말의 '형(形)'자의 의미가 아니네. '오랑캐에 처해서는 오랑캐에 맞게 행동한다.[素夷狄 行乎夷狄]'145)는 것은 소중랑이나 홍충선146) 같은 이가 이들이네. '소(素)'는 천명이니, 그렇다면 '행(行)'은 천명을 행한다는 의미이네. 천명과 인사(人事)는 그 실상은 같네. 그러나 어리석은 나의 말로 귀숙처를 삼지 말고 다시 그대 큰 형님에게 여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기(氣)가 리(理)를 따르면 참으로 기를 말할 필요가 없지만, 다만 리를 따르지 않는 곳에서 이에 기를 말하여 그 허물을 돌립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사람의 뜻을 따라 거스름이 없으면 말을 책망할 필요가 없지만 날뛰고 깨물며 뜻을 따르지 않게 되면 이에 채찍질을 하면서 탓을 하게 됩니다.답변 : 논한 바가 맞네. 다만 마지막 단락의 말은 뚜렷하지 않다네.질문 : 한 가지 이치와 만 가지 이치에서, 한 가지는 다만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 가지 이치를 거느려서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입니다. 만 가지는 각각 따로 만 가지가 아니라 한 이치를 나눠서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만 가지입니다. 비록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만 가지이고 비록 만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입니다.답변 : 한 가지는 참으로 한 가지이고, 만 가지는 참으로 만 가지이니, 어찌 다만 하나가 아닌 하나가 있으며, 각각 만 가지가 아닌 만 가지가 있겠는가. 다만 '비록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만 가지이고, 비록 만 가지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란 말은 옳네.질문 : 리기는 먼저 리를 말하고, 물칙(物則)147)은 먼저 물(物)을 말하였습니다. 대개 리기는 만물이 탄생한 처음을 위주로 하여 위에서 위에서부터 아래를 말한 것이니, 이른바 순서대로 말한 것입니다. 물칙은 만물이 탄생한 이후를 위주로 하여 아래로부터 위를 말한 것이니, 이른바 도치하여 말한 것입니다.답변 : 옳네.질문 :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일러 주지 않는다."148)라 하였는데, '세 귀퉁이'는 아래 문장의 "내가 그 양쪽 실마리를 따져 빠짐없이 말해 줄 뿐이다."149)는 구절과 서로 상대가 됩니다. '세 모퉁이'는 '이미 말한 것을 미루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과 대략 같지 않습니까.답변 : 양쪽 실마리를 다 했다는 것은 성인이 사람을 위해 자세히 고하고 자세히 깨우쳤다는 의미이며, 세 모퉁이로 반증하였다는 것은 다만 문인을 위하여 학문에 나아가는 방법을 말한 것으로, 말이 각각 대상이 있네. 이미 말한 것을 미루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은 즉 세 모퉁이로 반증함을 이르는 것이네.질문 : "덕이 닦이지 못함과 ……"150)라는 말에서 위의 두 구에는 '능(能)'자가 없고 아래 두 구에는 '능(能)'자가 있습니다.답변 : 의를 옮기는 것과 허물을 고치는 것은 일을 행하는 실제에 나타나는 것이니 힘을 쓴다는 의미가 비교적 드러나네. 그러므로 '능(能)'자를 쓸 수 있으니, 능자는 힘을 갖춤이 되기 때문이네.질문 :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한다."'151)는 말은 맹자가 "오랫동안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았다."152)라 말한 뜻은 서로 같습니다.답변 :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한다."는 것과 "오랫동안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됨의 크고 작음은 서로 다르지만 밖으로 거짓되게 속인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네.질문 : 사단에는 절도에 맞지 않는 것과 절도에 맞는 것이 있는데, 맹자는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며, 절도에 맞는 것으로 다만 성품이 선한 것을 증명하였으니,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정(情)의 선한 것을 들어서 성이 선한 의미를 증명하였는데, 절도에 맞는 것이나 맞지 않는 것을 말할 겨를이 없었네. 俯問諸條。可見造詣一端。夫文質。雖有輕重本末之分。而不可使有過不及則均矣。子貢所謂猶。是無輕重本末之謂也。夫子所謂彬彬。是不可使有過不及之謂也。形而後有氣質之性。此形字。是氣以成形之形。非事物形見之形。素夷狄。行乎夷狄。如蘇中郞洪忠宣是也。素是天命。則行是行天命也。天命人事。其實則一也。然勿以瞽說爲歸宿。更稟於賢伯氏如何。氣順理。固不必言氣。特於不順理處。乃言氣以歸咎。譬如人乘馬行。馬從人意。無所違逆。則不必責馬。及其蹄齧不順。乃鞭策而執咎。所論得之。而但末段語句未瑩。一理萬里。一非單一。統萬里而言。則是一也。萬非各萬。分一理而言。則是萬也。雖一而實萬。雖萬而實一。一固一。萬固萬。豈有非單一之一。非各萬之萬乎。但雖一而實萬。雖萬而實一者。得之。理氣先言理。物則先言物。盖理氣。是主萬物有生之初。而自上說下。所謂正說物。則是主萬物有生之後。而自下說上。所謂倒說。是。不以三隅反則不復云。三隅下文。我叩其兩端竭焉句。相對。而三隅與告往知來。略有不同耶兩端竭。是聖人爲人申誥申諭之意也。三隅反。特爲門人而語進學之方也。語各有當也。告往知來。卽三隅反之謂。德之不修云云。上二句無能字。下二句有能字。徙義改過。是見於行事之實。而用力之意爲較著。故下能字。能字爲有力故也。居之不疑。如孟子之言久假而不歸之意。居之不疑。與久假不歸。大小雖殊而其僞飾於外。一也。四端有不中節中節。孟子不言不中節中節。但證性善而已。何也。擧情之善者。以證性善之義。中不中不暇言。 자공이 말한 같다는 것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大夫) 극자성(棘子成)이 말하기를, "군자는 질실하면 그만이지, 어찌 문식할 필요가 있겠는가。[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선생의 말이 군자답기는 하나, 실수한 것을 사마도 따라잡지 못하겠도다。문도 질과 같은 것이며, 질도 문과 같은 것이니, 범이나 표범의 털 벗긴 가죽은 개나 양의 털 벗긴 가죽과 같은 것이다。[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 猶犬羊之鞹也]"라 한 것을 가리킨다. 《論語 里仁》 공자가……이룬다 본바탕과 외양이 적절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군자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야(野)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니, 문과 질이 빈빈한 연후에 군자이니라.〔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기로서 형체를 이룬다 《중용장구》 제1장에서 주희가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경문을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하매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를 또한 부여한다.〔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 理亦賦焉〕"라고 해설하였다. 사물에 형상으로 드러난다 미상. 오랑캐에……행동한다 《중용장구》 제14장의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 하였다. 소중랑이나 홍충선 중랑은 한(漢) 나라 소무(蘇武)를 가리킨다. 그가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유폐되어, 눈과 전모(旃毛)를 씹으며 연명하였고, 북해(北海)로 옮겨진 뒤에는 들쥐와 풀 열매로 연명하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다. 홍 충선은 송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호(皓), 충선은 시호인데 금(金)에 사신으로 갔다가 15년간 유폐 당하였다. 물칙(物則) 《시경》 〈증민(蒸民)〉의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내실 적에, 누구나 하늘의 원리가 그 속에 깃들게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양심을 지니게 되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한 ……않는다 《논어》 〈술이(述而)〉에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더 일러 주지 않아야 한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則不復也〕"라고 하였다. 내가……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아는 것이 없다. 무식한 사람이 내게 물을 경우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쪽의 실마리를 따져 빠짐없이 말해 줄 뿐이다.〔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 하였다. 덕이 닦이지 못함과 《논어》 〈술이(述而)〉에 "덕이 닦이지 못함과 학문이 강습되지 못함과 의를 듣고 옮겨 실천하지 못함과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위선을……안주한다 《논어》 〈안연(顔淵)〉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자를 보면, 표면상으로는 인덕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행동은 딴판이요, 그런 위선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의심 없이 안주하고 있는데, 그런 자들이 나라에서도 겉으로 이름이 나고 집에서도 이름이 나는 것이다.〔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요순은 인의(仁義)의 성품을 타고났고, 탕왕과 무왕은 몸에 익혔고, 춘추 오패는 차용하였다. 오래도록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으니, 어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겠는가.〔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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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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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형【남헌】에게 답함 答李乃亨【南憲】 어여쁜 댕기머리가 이따금 심목(心目)간에 오가니, 이는 인정상 참으로 당연한 것이네. 편지가 도착하니, 이에 부모를 모시면서 학문하는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부탁하고 싶던 바이네. 별지의 여러 조목에서 책을 읽으면서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차분히 살펴보면, 너의 재성(才性)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의향이 좋지 않음은 아니지만, 다만 몸가짐하는 방법에 깊이 힘을 쏟지 않으니, 이는 하찮은 일이 아니네. 만약 몸가짐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지 않고서 위로 향하는 공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는 비유하자면 모래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어찌 성공할 이치가 있겠는가. 절대로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하네. 별지의 물음에 대해 나의 생각을 대략 답하였으니, 보고서 세 번 더 생각하여 올바른 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예의를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자포(自暴)라고 이르고, 내 몸이 인에 거하고 의를 말미암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155)라고 하였는데, 자포는 예의에 대해 말하고 자기는 인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따로 해당한 바가 있습니까.답변 : 자포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예의가 일을 행함에 드러난 것으로 말하였고, 자기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인의(仁義) 체용(體用)의 실상을 겸하여 들어서 말하였네.질문 : 〈격군심장(格君心章)〉156)에서 먼저 사람 기용의 잘못을 말한 뒤에 정사의 잘못을 말하였는데, 사람 기용의 잘못이 있은 뒤에 정사의 실수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정자의 주에서는 먼저 정사의 실수를 말하고 뒤에 사람 기용의 실수를 말하였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사람을 기용하는 것은 정사를 행함에 중대한 일이니 그러므로 맹자는 그 중대한 것을 먼저 말하였고, 정사의 잘못은 사람 기용의 잘못에서 많이 일어나니 그러므로 정자는 먼저 그 많은 것을 말하였네.질문 : 〈감문우장(敢問友章)〉157)에서 '백승(百乘)의 집' 이하의 여러 내용들은 다만 귀함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니, 귀함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당시에 가장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급한 것입니다. 이른바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으며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것은 모두 이런 부류를 미뤄 넓힌 것입니까.답변 : 이 장은 임금이 선비를 대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니,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거나 형제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 어찌 이에 들어가겠는가.질문 : 선악을 말할 때 모두 선을 먼저하고 악을 뒤로하며, 길흉을 말할 때 모두 길을 먼저하고 흉을 뒤로하며, 시비를 말할 때 모두 시를 먼저하고 비를 뒤로하는데, 사정(邪正)을 말할 때는 사를 먼저하고 정을 뒤로하니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주역》에서 "사특함을 막아 그 성을 보존하다."158)라고 하였는데, 사정이라 이르는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네.질문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해도 평안하고 안정되지 않습니다.……답변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지 않으면 초학자가 어찌 공부를 착수할 곳이 있겠는가.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면 오래 되어 저절로 평안하고 안정됨이 있을 것이네。또한 '마음을 기울인다.[着意]'는 두 글자에 대해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하니, 이미 거짓으로 꾸며서 좋게 보이려는 뜻이 없고 또한 남을 모방하면서 책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대는 뜻이 없다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만약 마음을 기울여 힘쓰지 않고서 앉아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네. 깊이 생각해보게나. 婉孌丱角。種種往來於心目間。此人情乏所固然。書來。仍諳侍傍學履佳迪。尤協願言。別紙諸條。可見讀書不放過。不然。安能會疑如此也。竊覵汝之才性。非不佳矣。意向非不好矣。但於持身之方。不甚着力。此非細故。若不持身端莊。而求向上之功。比如炊沙作飯。豈有有成之理。切宜識之。別紙。謹以鄙意略略答去。覽加三思。歸於稱停如何。言非禮義。謂之自暴。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自暴言禮義。自棄言仁義。別有所當耶。以自暴者言。故特以禮儀之著於行事者而言。以自棄者言。故兼擧其仁義體用之實而言。格君心章。先言用人之非然。後言政事之失。有用人之非然後。有政事之失故耶。程子註。先言政事之失。後言用人之非。何耶。用人大於行政。故孟子先言其大者。政事之失。多於用人之非。故程子先言其多者。敢問友章。百乘之家以下諸條。特言不挾貴。挾貴是當時最甚。故言之。所謂不挾長不挾兄弟。皆可類推耶。此章主言人君待士之道。挾長挾兄弟。何有於此。言善惡。皆先善而後惡。言吉凶。皆先吉而後凶。言是非。皆先是而後非。言邪正。反先邪而後正。何也。易曰閑邪存其誠。邪正之云。恐出於此。着意檢束。不得安帖云云。不着意檢束。則初學將安有下手處。着意檢束。久自有安帖處。且着急二字。儘有商量。旣無矯飾要好之意。又無依樣塞責之意。則着意何妨。若不着意勉强。而坐待其入聖。此妄人而已。念之念之。 예의를……한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보이는 말이다. 격군심장((格君心章)) 《맹자》 〈이루 상(離婁上)〉의 "등용한 인물을 군주와 더불어 일일이 다 허물할 수 없으며 잘못된 정사를 일일이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임금이 인(仁)해지면 모든 일이 인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임금이 의로워지면 모든 일이 의롭지 않음이 없게 되며 임금이 바르게 되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된다. 임금의 마음을 한 번 바루면 나라가 안정된다.〔人不足與適也 政不足間也 惟大人爲能格君心之非 君仁 莫不仁 君義 莫不義 君正 莫不正 一正君而國定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감문우장(敢問友章)〉 맹자의 제자 만장(萬章)이 벗에 대해 묻자, 맹자가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귀하다는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한다. 벗함은 덕(德)을 벗하는 것이니, 배경으로 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라고 대답하였다。이후로 그 실례를 들어 논의를 이끌어 가는데, 백승지가(百乘之家)인 맹헌자(孟獻子)와 작은 나라 임금인 비혜공(費惠公)과 큰 나라 임금인 진평공(晉平公)의 예를 들고 있다. 사특함을……보존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이(九二) 문언(文言)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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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25)에게 보냄 與鄭厚允 방장산(方丈山)에서 헤어진 뒤 두 해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형의 체후(體候)는 동정(動靜)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농사가 풍년이니 영남도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흉년이 거듭된 뒤라 위로가 될만할 듯하지만 시국이 이처럼 소란스러우니 앞으로 편안히 앉아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문(同門)의 옛 친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남아 있는 이가 이제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노쇠하여 수백 리 먼 곳에 떨어져 지내느라 서로 소식도 접하지 못하고 어려움에도 서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번 머리를 들어 동쪽을 바라볼 때마다 커다란 탄식을 이기지 못할 따름입니다. 면우(俛宇)26)가 세상에 나갔을 때 형도 더불어 나아갔으니 시사(時事)는 과연 어떤지, 처하는 곳은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늘 소식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아, 눈앞에 닥친 시색(時色)이 진펄에서 위태로움을 기다리고27) 칼이 살갗에 이른28) 듯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에 와서 절실합니다만 그럴 수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형은 근년에 산재(山齋)에 머무르셨습니까, 계정(溪亭)에 머무르셨습니까? 만년에 성정(性情)을 함양하는 운치, 영재를 키우는 즐거움이 작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난가을에 계획했다가 이루지 못한 호남행은 올가을에 다시 도모하시는지요? 저는 해마다 묶여 있는 채 벗어날 수 없어 상황이 고달프기만 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날개(새)가 앞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정(咏亭)에 기와를 얹는 일을 마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경비를 아직도 갚지 못하여 매번 이것이 근심이었습니다. 일전에 송사(松沙)29)의 편지를 받았더니 가족을 데리고 금계산(金雞山)으로 들어갈 생각이며 금계산은 옥과(玉果)와 담양(潭陽) 등에 걸쳐있다고 합니다. 연간에 황생 철원(黃生澈源)30)과 의견을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대체로 황생은 "영(靈)은 묘용(妙用)을 주재(主宰)하지 못하고 묘용을 주재하는 것은 신(神)이다. 영은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지 못하고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우는 이르기를, "이와 같다면 영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이(理)는 작용(作用)과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대체로 심(心)은 원래 허령(虛靈)한 것이고 허령한 것은 본래 오묘하게 합합니다. 이 때문에 당체(當體)로 보자면 기(氣)라고 하고 본체(本體)로 보자면 이(理)라 하고 묘처(妙處)로 보자면 신(神)이라고 합니다. 신(神)과 영(靈)이 어찌 일찍이 별도의 방향이나 처소가 있고 별도로 시기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황생은 여전히 그렇다고 믿지 않으니 또 제 견해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형께서 상세히 분변하여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체로 심(心)은 기(氣)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 진실로 각각 한 쪽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다만 기(氣)를 위주로 말하는 오늘날에는 그러한 주장을 바로잡을 근거를 도리(道理)의 측면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사(先師)께서 '정상(精爽)은 피상적인 것이다.'31)라고 말씀하신 까닭이고, 노형(老兄)이 '기(氣)를 자조(資助 돕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황생의 견해는 대체로 여기에 근원을 두면서도 지나쳐 이렇게 허령한 것은 심(心)이 아니라는 말까지 하였으니 옳겠습니까. 삼가 기억하건대 요 몇 해 사이에 형께서 황생에게 편지를 보내서 "묘용(妙用)의 운행과 정영(精英)의 발현이 곧 이른바 심(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제 생각에는 매번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묘용의 운행이 비록 이(理)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정영(精英)을 포괄하고 있으니 하단에 별도로 정영을 말하여 짝지은 것은 지나친 췌언(贅言)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理)만 말하고 정영은 간여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른바 이(理)는 작용(作用)으로 귀결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기자이(機自爾 기(機) 자체의 작용)라고 말하고 이어서 이승(理乘 이가 기를 타고 주재하는 것)의 의리를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듯합니다. 지난번에 면우(俛宇)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보았더니 간간이 지나치게 이(理)를 위주로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혼자 제멋대로 개탄하기를, "나에게 있는 도가 대공지정(大公至正)하더라도 한 번 전해지고 두 번 전해지다 보면 착오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나에게 있는 것이 먼저 잘못되었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후학들에게 이와 같은 폐단이 결코 없으리라는 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方丈一別。星霜再周。未審秋高。兄體動止何似。年形得稔。想嶺中如之耶。荐凶之餘。有若可慰。而時騷如此。未知前頭可以安坐飽喫否也。同門舊契。零星餘存。見無幾人。而又皆衰老。相滯於落落數百里之遠。音聞不相接。痛癢不相關。每矯首東望。不勝浩歎而已。俛宇之出。兄與同升。未知其時事果何如而所處又何如。遠未相悉。每切願聞。嗚乎。目前時色。如需之至泥。如剝之到膚。惠好同歸之思於斯爲切。而不可得。奈何奈何。兄近年住着在山齋乎溪亭乎。晩年恬養之趣。英育之樂。想有不淺淺者矣。前秋所營湖行而未就者。更於今秋圖之耶。弟年年絆已。出脫不得苦況苦況。未知縶籠之翼。其將有任意翶翔之日乎。咏亭蓋瓦了已有年。而債費尙未了刷。每以爲悶曰。前得松沙書。有絜家入金雞山中之意。山在玉果潭陽等地云耳。年間與黃生澈源有所論說者。蓋黃生以爲靈不能主宰妙用。而主宰妙用者。神也。靈不能具衆理應萬事。而具衆理應萬事者。神也。弟以爲如此。則靈爲無用之長物。理爲作用之別事。夫心合下是虛靈底。虛靈合下是妙合。是以以其當體則謂之氣。以其本體則謂之理。以其妙處則謂之神。神與靈。曷嘗是別有方所別有時節者哉云云。而黃生猶不信之然。又安知鄙見不有差誤處耶。願兄詳辨以示之也。大抵心有以氣言者。有以理言者。固不可各執一邊與之嘵嘵也。但在今世主氣之日。而所以捄之者。不得不於道理上加詳焉。此先師所以有精爽皮殼之語。老兄所以有氣爲資助之說。黃生之見。蓋源於此而過之。至爲此虛靈非心之語者。可乎。竊記頃年兄與黃生書。有曰妙用之行。精英之發。卽所謂心。此語於鄙意。每不能無疑。妙用之行。雖是理。而包精英在其中。下段別言精英以配之。不已贅乎。若曰專言其理。而精英無與云爾。則所謂理者。不其歸乎作用乎。此與說其機自爾。而繼言理乘之義。恐無異矣。曩見俛宇與人書。間間有主理太過處。私竊慨嘆。以爲道之在我。大公至正。而一傳再傳。猶不無差失。況在於我者。已不免先有差失乎。此後學之敝。不可保其必無也。如何如何。 정후윤(鄭厚允)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또 다른 자는 영오(英五)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 애산(艾山), 물계(勿溪)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정방훈(鄭邦勳)의 아들로 1864년(고종1) 경상도 합천에서 전라남도 장성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제자로는 정면규(鄭冕圭), 권운환(權雲煥) 등이 있으며, 합천 경덕사(景德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 《노백헌집(老柏軒集)》 49권이 있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호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명원(明遠)으로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이다. 25세 때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3년 통정대부, 비서원 승에 제수되었고 저서로는 《면우문집(俛宇文集)》이 있다. 진펄에서 위험을 기다리고 《주역》 〈수괘(需卦) 초구(初九)〉에 "먼 들녘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이(九二)〉에 "모래밭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삼(九三)〉에 "진펄에서 기다린다."라고 하여, 점점 험난한 지역에 접근함으로써 위험에 빠지게 됨을 비유하였다. 칼이 피부에 이른 《주역》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니 흉하다."라고 하고, 그 상전(象傳)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는 것은 재앙이 매우 가까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2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가학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95년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저항하였다. 황생 철원(黃生澈源)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綾州) 운곡(雲谷)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이고 자는 경함(景涵)이며 호는 중헌(重軒), 은구재(隱求齋)이다. 정상(精爽)은……것이다 《노사집(蘆沙集)》 권6 〈답박형수(答朴瑩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호흡(呼吸)의 나가고 들어옴, 영위(榮衛)의 오르고 내림이 모두 이 기(氣)입니다. 반드시 '기(氣)' 자 아래에다 '정상(精爽)'이란 글자를 붙여야 '심(心)' 자의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정상'이란 글자도 피상적인 설명에 불과합니다.【就人身而言, 噓吸之出入, 榮衛之陞降, 皆是物也. 必氣字下, 著精爽字, 方說入心字境界.然精爽亦是皮殼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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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윤에게 보냄 與鄭厚允 연전의 편지에 대해서 인편(人便)이 없어서 오랫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형의 체후(體候)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울분에 차 있고 감정이 격앙되어 여지가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때문에 몸이 손상되지 않기만 바랍니다. 먼 곳에서 걱정스러운 마음만 절실합니다. 아우는 지난여름 초에는 손자며느리의 상을 치르고 겨울 초입에는 집사람의 상을 치렀습니다. 1년 안에 질병과 시름이 거의 거르는 날이 없었으며 뒤이어 신병(身病)으로 여러 달에 걸쳐 고통을 겪고 있건만 아직도 이렇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제 상황이 참으로 의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말하지 않으니만 못하니 모두 그만두겠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형이 찬술한 〈기의(記疑)〉32)는, 해박하고 적합하며 정밀하고 상세하며 명백하고 강직한 것을 보니 선사(先師)의 지결(旨訣)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일세의 몽매한 자들을 깨우치게 하신 것이 참으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아, 오늘날의 성안에 이러한 문장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한쪽 사람들이 본다면 세 치 혀가 있더라도 다시 무슨 말로 형을 힐난하겠습니까. 한쪽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아우처럼 오래도록 고심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던 자일지라도 안개가 걷히듯 확연해지니 어찌 위안이 되고 다행스럽지 않겠습니까. 다만 시대의 조짐이 이와 같고 육신의 쇠함이 이와 같으니 강론과 토론의 자리에서 자주 뵙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쭙고자 하는 한 가지 조목이 있습니다. 심(心)은 분명히 이(理)이고 영(靈)은 그 본지(本旨)입니다. 만약 영(靈)을 자조(資助)로 여긴다면 본지에 대해서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조목에 "성정(性情) 이외에는 다시 따로 심(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아마도 지나칠 정도로 명쾌하게 말씀하신 듯합니다. '인으로 사랑하고 예로 공경하고'33)에서 이 '이(以)' 자는 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까? 쌓인 회포가 가득하지만 종이에 세세하게 다 늘어놓을 수 없으니 그저 서글픔만 절실합니다. 어느 때가 되어야 한자리에 같이 앉아 이 마음을 펼치게 될까요? 농산(農山)34) 형은 근래 안부가 어떠십니까? 겨를이 없어 아직 안부를 묻지 못하였더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年前書。無便未復久矣。未審兄體何似。憂憤慷慨。想無餘地。幸不以此致損否。遠外馳慮。徒切下情。弟去夏初哭孫婦。冬初哭室人。一年之內。疾病憂戚。殆無間日而繼以薪憂。數朔叫苦。尙此不退。殘年身況。誠難聊賴。時象不如不言。都閣之。兄所述記疑。荷此俯示。見其該洽精詳明白截直。使先師旨訣足以不墜於地。而開一世之瞽蒙者。甚不偶爾也。嗚乎誰知今日域中。有此等文字乎。使一邊之人見之。雖有喙三尺。更有何言相詰乎。不惟警一邊之人。雖如弟而宿苦疑菀。確然霧除。曷不慰幸。但時氛如此。身衰如此。未能源源於講討之末也。然有一節奉質者。心固理也。而靈其本旨也。若以靈爲資助。則其於本旨。果何如也。目曰。性情之外。更別無心。此等處。恐或不爲發之太快耶。以仁愛。以禮敬。此以字。非心之謂耶。積懷滿腔。不能縷悉臨紙只切悵恨。何時合席。以敍此意。農山兄近節何如。忙未修候。不安不安。 기의(記疑) 《노백헌선생문집(老栢軒先生文集)》 권28 〈잡저(雜著)〉 '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을 가리키는 듯하다. 전우(田愚)가 기정진의 〈납량사의(納涼私議)〉와 〈외필(猥筆)〉에 대한 변론을 지어 유포하자, 이에 대해 변무하는 글을 지어 기정진이 주리론의 입장에서 이이의 학설을 계승 보완하였음을 밝힌 글이다. 인으로……공경하고 《회암집(晦菴集)》 권67 〈잡저(雜著)〉 '원형이정설(元亨利貞說)'에 나오는 말이다.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은 성(性)이고, 생(生)하고 장(長)하고 수(收)하고 장(藏)하는 것은 정(情)이며, 원(元)으로 생(生)하고 형(亨)으로 장(長)하고 이(利)로 수(收)하고 정(貞)으로 장(藏)하는 것은 심(心)이다.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는 성(性)이고, 측은과 수오와 사양과 시비는 정(情)이며, 인(仁)으로 애(愛)하고 의(義)로 오(惡)하고 예(禮)로 양(讓)하고 지(智)로 지(知)하는 것은 심(心)이다.【元亨利貞性也, 生長收藏情也, 以元生以亨長以利收以貞藏者, 心也. 仁義禮智性也, 惻隱羞惡辭讓是非情也, 以仁愛以義惡以禮讓以智知者, 心也.】" 농산(農山) 정면규(鄭冕圭, 1850~1916)의 호(號)이며 정면규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사촌형인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의 문인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을 방문하여 충남 노성(魯城)에서 의거(義擧)를 계획하였으나 외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곽종석(郭鍾錫), 허유(許愈),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조성가(趙性家), 권병구(權秉球) 등과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저서로는 《농산문집(農山文集)》 15권 8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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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35)【우만】에게 보냄 與奇會一【宇萬】 늦봄에 복중(服中)의 체후36)가 우위(友衛)하시다니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 우제(虞祭)37)와 부제(祔祭)38), 그리고 졸곡(卒哭)39)이 차례대로 지나갔습니다. 아, 우리 선생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은 세월이 어느덧 지금에 이르렀습니까. 화창한 바람과 밝은 달40) 같은 모슷ㅂ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면봉산(面凰山)의 새 무덤에는 이미 풀빛이 푸르릅니다. 애처롭게 남아 있는 이 목숨은 어리석기만 하니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아우는 정성이 깊지 못하고 형편에 구애받아 움막을 짓고 궤연을 모시지41) 못하고 급하게 되돌아와 내 집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으니 이것이 한결같이 섬기는 도리42)이겠습니까. 아, 선생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고, 선생의 도를 실추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 어찌 우리가 독실하게 힘을 다해야 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노형(老兄)께서 더욱 스스로 힘을 쏟아 덕을 상고하려는 천하 학자들의 행렬이 선생의 뜨락에 끊이지 않게 하고 모두 선생께서 훌륭한 손자를 두셨다고 한다면 노형(老兄)께서 선생의 뜻과 공업을 이어 나가는 것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당일에 문하에 이르렀던 선비들 또한 흩어지지 않고 귀의하는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상이 내리는 치제(致祭)는 과연 이달 안에 거행하겠습니까? 유고(遺稿)를 간행하는 일은 성급하게 논의하기 어렵더라도 1년, 2년의 기한을 두고 사방에서 널리 구하여 수합하고 교감한 다음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이미 완성되었을 때 거사(居士)라고 적은 것은 제 마음에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널리 듣고 예에 밝은 선비가 반드시 신중하게 살펴서 반드시 절충해야 하겠기에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거사(居士)는 선생께서 평소에 자신을 낮추는 말이었으니 스승을 받드는 후학의 처지에서도 자신을 낮췄던 말로 스승을 일컫겠습니까. 유서(遺書)에 "노사 거사(蘆沙居士)로 충분하다."라고 하신 것은 주된 의미가 별도로 다른 데 있지 거사(居士)라는 두 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 같은 백세 종사(百世宗師)를 단지 거사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또 명정(銘旌)43)에 이미 노사 선생이라고 일컬었으니 신주(神主)의 앞면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명정과 신주의 앞면이 달리 일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선유(先儒)의 논의가 있습니다. 다시 상의하여 확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春暮服體友衛。慰慕無任。襄奉之餘。虞祔卒哭。次第經過。鳴乎。我先生不在世者。歲月已至此耶。光風霽月。日遠一日。而凰山新阡。草色已靑矣。哀此餘生。蠢蠢奚依。弟誠淺勢拘。未得築場侍几。而遽然退歸。燕處私室。此其事一之道耶。鳴乎先生之望。不可負也。先生之道。不可墜也。此豈非吾輩慥慥盡力之日耶。惟老兄益加自勵。使四方學者考德之行。不絶於先生之庭。而皆曰先生有孫。則非但老兄之所以繼述者。至矣。而當日及門之士。亦將不至渙散。而有所依歸者矣。自上致祭。果爲月內行之耶。遺稿登刊。雖難遽議。限以一年二年。廣求四方收聚校勘然後。可以下手矣向於旣成時。書以居士者。於愚意不能無疑。但博聞長禮之士。極其愼審。必有所折衷者。而不敢開喙。退而思之。終始未瑩。夫居士者。先生平日所自謙者。則後學宗師之地。亦以自謙者稱之乎。遺書有云蘆沙居士足矣者。其主意。別有所在。而不在居士二字矣。以我先生百世宗師。只稱居士者。果為穩當耶。且銘旌旣稱蘆沙先生。則粉面亦當如之。銘旌粉面。不可二稱者。又有先儒之論矣。更加商確。如何。 기회일 회일은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자이다. 기우만의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으로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손자이며 호는 송사(松沙)이다. 저서로는 《송사집》이 있다. 늦봄에 복중(服中)의 체후 조부인 기정진(奇正鎭)이 사망한 것이 1879년 12월이다. 여기서 말하는 늦봄은 1880년을 가리킨다. 우제(虞祭) 체백(體魄)을 떠난 혼령을 안정시키기 위한다는 뜻에서 매장 당일부터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신분에 따라 9번, 7번, 5번, 3번 지낸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낸다.【三虞】"라고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우(虞)는 상제(喪祭)의 이름이다. 우는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정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효자는 그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세 번 제사를 지내 안정시킨다. 아침에 장례를 치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우제를 지내는 것은 차마 하루라도 혼령이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虞, 喪祭名. 虞, 安也. 骨肉歸於土, 精氣無所不之, 孝子爲其彷徨, 三祭以安之. 朝葬, 日中而虞, 不忍一日離.】"라고 하였다. 부제(祔祭) 졸곡제 다음날 지내는 제사의 명칭으로, 소목(昭穆)의 반차에 따라 제사 지내는 것이다. 진호(陳澔)는 《예기집설(禮記集說)》에서 "부(祔)라는 말은 덧붙인다는 뜻이다. 부제(祔祭)란 조부에게는 다른 묘(廟)로 옮겨야 함을 알리고, 이번에 죽은 이에게는 이 묘로 들어가야 함을 알리는 것이다.【祔之爲言附也. 祔祭者, 告其祖父, 以當遷他廟, 而告新死者, 以當入此廟也.】" 하였다. 졸곡(卒哭) 우제(虞祭)를 모두 마친 다음 첫 번째 강일(剛日)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슬픔이 줄어들어 이후로는 무시(無時)로 하던 곡을 그치고 조석곡(朝夕哭)만 하므로 졸곡제라고 한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의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卒哭.】"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졸곡(卒哭)은 삼우제(三虞祭) 뒤에 지내는 제사 명칭이다. 처음에는 조석곡을 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밀려오면 곡을 하지만, 이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그치고 조석곡만 할 뿐이다.【卒哭, 三虞之後祭名. 始朝夕之間, 哀至則哭, 至此祭, 止也, 朝夕哭而已.】"라고 하였다. 화창한……밝은 달 황정견(黃庭堅)이 《산곡집(山谷集)》에서 주돈이(周敦頤)를 두고 "주무숙은 속이 시원스러워 비가 갠 뒤의 화창한 바람이나 밝은 달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인품의 뛰어남에 대한 비유이다. 움막을……모시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다음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갔지만, 자공(子貢)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홀로 3년을 거처한 다음에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한결같이 섬기는 도리 부모와 임금, 그리고 스승은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대부 난공자(欒共子)의 말 가운데 "백성은 부모, 임금, 스승 셋의 은혜로 살아가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國語 晉語》 명정(銘旌) 생전에 사용하던 깃발이나 따로 마련한 비단 또는 베에 죽은 사람의 관직, 성씨 등 호칭을 써서 표시한 상례(喪禮)의 기물이다. 명(銘) 또는 명정(明旌)이라고도 한다. 《가례 상례 입명정(立銘旌)》에 "강색(絳色) 비단으로 명정(銘旌)을 만든다. 너비는 온폭이고, 3품 이상은 9자, 5품 이하는 8자, 6품 이하는 7자이다. '모관모공지구(某官某公之柩)'라고 쓰고, 관직이 없으면 살아 있을 때의 호칭을 따른다.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되 명정의 길이만큼 하여 영좌의 오른쪽에 기대 놓는다.【以絳帛爲銘旌. 廣終幅, 三品以上九尺, 五品以下八尺, 六品以下七尺. 書曰某官某公之柩, 無官即隨其生時所稱. 以竹爲杠, 如其長, 倚於靈座之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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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집안 아들에게 보임 示家兒 우리 선대는 신라와 고려 시대로부터 앞뒤 수천 년 동안 문학으로 벼슬을 하여 빛나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일찍이 동방의 사대부 반열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내 위로 5~6대에 이르러 아주 사나운 운수172)를 만나 날로 쇠퇴하였으니, 증조부는 금남에서 낭주로 옮겨왔고 조부는 낭주에서 금릉으로 옮겨왔으며 선고(先考)는 금릉에서 능양으로 옮겨왔다. 반남에 남겨진 장원(莊園)은 풀이 무성하게 묵었으며, 가야산의 선영은 쓸쓸하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쓸쓸하고 외로운 혼자 몸으로 떠돌아다니며 걸식하여 그 모욕을 받은 것이 적지 않으며 난처한 상황을 만난 것이 대단히 많았으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며 말을 하면 목이 매인다. 선고 부군은 아침부터 밤까지 걱정으로 부지런하여 조금도 쉴 틈이 없었으며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빗물에 목욕하면서173)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애써서 겨우 가계를 세워 자손들이 이어나갈 토대를 마련하였다. 아! 불초한 나는 혼매하고 어리석으며 명석하지 못하며 나약하고 게을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나 자신의 측면에서는 심지(心志)가 통투하지 못하여 학문은 이룬 것이 없고, 집안의 측면에서는 대대로 전해지는 가업을 지키지 못하여 처자가 어려움에 처하였으니, 사방으로 떠돌며 남들에게 먹을 것을 의탁할 지경이 되었다. 오호라! 이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이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나라를 망친 신하와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공자가 확상의 향사례(鄕射禮)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174) 이렇게 집안을 망친 자는 또한 나라를 망치거나 전쟁에서 패한 부류가 아니겠는가. 자식의 처지에서 효도하지 못하고 사람의 처지에서 인(仁)하지 못하였으니, 비록 이전 습관을 통렬하게 고쳐서 천만의 죄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그 허물을 줄이고자 하지만 흰머리의 노쇠한 나이에 정력이 미치지 못하니 천지를 우러러보고 굽어보며 잊지 않고 근심하는데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하고 있다. 오호라! 슬프도다. 이번 생은 끝났도다. 너는 다만 스스로 도모할 것을 생각하지 않느냐. 너는 경전과 역사를 대략 섭렵했으니, 도의 대경(大經)과 옛날 성패와 존망의 원인을 조금은 알 것이다. 또한 너도 나이가 곧 40이 되니, 자신의 시비득실과 세상의 길흉화복에 대해 많이 경험했을 것이므로 좋아해야 하고 미워해야 하는 것의 취하고 버리는 향배의 구분에 대해 대략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잘 모르겠지만, 너의 마음에 뉘우치고 깨우쳐서 척연(惕然)히 이전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느냐. 아니면 멍청하게 깨우치는 것이 없이 자포자기를 당연하게 여기느냐. 천지의 성(性)을 품부 받고 부모의 기를 받아 장부로 태어나 선비의 신분으로 가문의 지극히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자손을 위한 무궁한 계책을 세워야 하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자신을 천박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위망(危亡)을 취하여 탄탄한 길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달리며 인(仁)175)을 버리고 구덩이에 몸을 던져서 안으로 부모에게 치욕을 끼치며 밖으로 향리의 조롱을 불러들이려 하느냐. 네가 무언가를 하려하지 않는다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만일 하려고 한다면 자신에게 절실한 병통을 알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은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직언을 좋아하였는데 너는 맛있는 술을 좋아하고 직언을 싫어하니, 여러 낭패가 어찌 이르지 않겠느냐. 군자는 고요함으로 덕을 기르는데 너는 항상 동작할 것만 생각하여 어지럽게 출입하니, 너는 한번 생각해 보아라, 평소의 허물이 어찌 일찍이 동작하는 것에서 온 것이 아니더냐. 《시경》에서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은 오직 덕의 기반이어라."176)라고 하였으며, 《논어》에서 "남과의 관계에서 공손하여 예의가 있으면 사해 안이 모두 형제일 것이다."177)라고 하였다. 대저 천기가 온화하면 만물이 번창하고 천기가 차가우면 만물이 시드니, 사람에게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온화함은 덕의 기반이 되며 사해가 귀의하게 됨에 이른다. 너는 쓸쓸히 외로운 몸이라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데, 성기(性氣)가 거칠고 얕은데다가 자상하고 온후한 뜻이 적어서 사물이 너를 친하게 대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너를 친하게 대하겠느냐. 이는 외로워 약한 가운데서도 더욱 외로워 약한 자이다. 많은 사람이 배반하고 친한 이도 떠나면 만승(萬乘)의 천자도 홀로 존재할 수 없는데, 더구나 필부임에랴. 이것이 내가 너를 위해 깊이 걱정하는 바이다. 근래 이래로 집안의 살림이 탕진되어 거함에 한 해를 잘 마칠 계책이 없고 움직임에 손 쓸 방법이 없으니, 너는 어떻게 늙은 부모를 봉양할 것이며 아들을 교육시켜서 위로는 자식 된 도리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아비 된 책임을 잃지 않겠느냐. 만약 변고를 만나서 거처를 옮기게 된다면 예상의 귀신178)이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려우니, 자신 한 몸도 구원하지 못하는데 부모는 어찌할 것이며 처자는 어찌할 것인가. 이는 목전의 급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게으름은 만 가지 악의 근원이며,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무익한 일은 하지 말며 무익한 사람은 가깝게 지내지 말며 한가로운 이야기를 줄이고 쓸데없는 출입을 생략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실제 일을 행하며 겸손과 공손함으로 몸가짐을 하고 온화함과 부드러움으로 집안을 이끌고 공경함과 조심함으로 사람을 대하며 자신에 대한 책망은 두텁게 하고 남에 대한 책망은 박하게 하며 행동함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든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여, 부지런히 힘써서 노력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가장 즐거운 일로 삼는다면, 어찌 만년의 공이 젊었을 때의 실수를 벌충하지179)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겠느냐. 옛사람이 초상을 치르면서 슬퍼하지 않는 자를 보고서 "이런 것을 일러 뿌리를 쓰러트린 것이라 하니, 자손이 창대하지 못할 것인져."180)라고 하였으며, 제사에 임하여 공경하지 않은 자를 보고서 "이런 것을 일러 조상을 망각한 것이라 하니, 조상을 망각하면 그 조상도 또한 자손을 잊어버리니 자손을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대저 사람이 부모를 향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무한한 선의(善意)가 모두 이를 따라서 나오게 된다. 나는 약질로 병이 많은데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데다가 항상 밖에 있으니 어찌 될지 앞일을 알 수가 없다. 또한 지금 상황은 두려울 정도라 앞날에 일어날 일은 알 수가 없으니, 만약 부자간에 서로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스러진다면 어찌 대단히 한스러울 일이 아니겠느냐. 이에 대략 속에 있는 마음을 기술하고서 미리 너를 위해 말하였는데, 옛사람이 편지 형식으로 준 의미를 본받았다. 잘 모르겠는데 백로처럼 잊어버리고 버려 버릴 것이냐, 아니면 무휼처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항상 보고서 평생 활용할 것이냐.181) 이것은 너에게 달렸다. 말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이에 그치지 않는데, 그러나 네가 만약 기꺼이 이 말들을 받아들인다면 그 말하지 않은 것은 미뤄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만 이 한 편(編)의 말도 또한 무익할 것이다. 더 이상 많은 말을 어찌 하겠느냐, 모름지기 대단히 노력하여라.질문 : 〈홍범〉의 주에서 '본받아 진술한 것[法而陳之]'182)의 법(法)과 《한사》183)에서 말한 '그 모양을 본받는다.[法其象貌]'184)의 법은 같은 의미입니까.답변 : 앞에 것은 그 이치를 본받는다는 것이고 뒤에 것은 그 모양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질문 : 우(禹)가 〈낙서〉를 받고 다만 '9를 머리에 이고 1을 아래에 밟으며, 왼쪽이 3이고 오른쪽이 7이며, 2와 4가 어깨가 되고 6과 8이 발이 된다.'185)는 것을 본받고서 일찍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는데, 기자에 이르러 비로소 뜻을 미뤄 넓혀서 말을 보탰습니다. 이는 복희가 〈하도〉를 받고서 64괘를 그려서 나열하기만 하고 다른 말이 없었는데, 문왕 · 주공 ·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괘사 · 효사 · 단사 · 상사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답변 : 그렇다.질문 : 태극이 움직여서[動] 양을 낳고 고요하여[靜] 음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유는 고요한 가운데 양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 음이 있다186)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태극의 동정은 선유가 말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답변 : 위의 한 단락은 두 체(體)가 상대하는 것이요, 아래 한 단락은 두 기가 서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질문 : 맹자는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不動心]'을 말하면서 "뜻은 지극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 뜻을 잡아 지킨다."187)라고 하였는데, 이 단락에서 다만 뜻을 들어서 말한 것은 마음이 간 바에 나아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답변 : 뜻이란 기(氣)의 장수다. 천하의 모든 일이 어찌 뜻이 서지 않고서 성취한 것이 있겠느냐.질문 :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188)는 것은 사물이 궁구해져서 앎이 지극한 일에 해당하며, "말은 도로써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일에 해당합니까.답변 :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는 것은 마음에 관해 말한 것이고, '말은 도로써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행동에 대해 말한 것이다.질문 :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수신(誠意正心修身)은 명덕을 밝히는 것에 속하고, 제가치국평천하(齊家治國平天下)는 신민(新民)에 속하니, 여덟 조목에서 '지극한 선에 그친다.'는 것은 오행에서의 토(土)나 사단에서의 신(信)과 같습니까.답변 : 말은 그럴 듯한데 비교한 대상은 아마도 정밀하지 않은 듯하다.질문 : 근래 들어 항상 이 마음을 수렴하여 억지로라도 침잠하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만 본래 학문으로 얻은 힘이 없어서 언뜻언뜻 왔다 갔다 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장난질을 하니, 눈에 보이고 귀에 보이며 생각이 일어나는 데로 따르는 것이 북소리,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빠릅니다. 이런 습관을 통렬하게 끊어내어 장차 어떻게 조금이라도 보존하여 지킬 방법이 있습니까. 또한 한가로이 노닒을 끊어버리며 세상의 교유를 멈추고 암실에 고요히 홀로 처해야만 이에 가능합니까.답변 : 이 단락에서 말한 것을 보면 누가 너를 학문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하겠느냐. 그러나 장난질을 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면서 곧바로 다시 이전처럼 하니, 어찌 말한 것과 상반되느냐. 외면의 거친 과오를 오히려 그치지 못하는데, 내면의 언뜻언뜻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어떻게 끊어버리겠느냐. 그렇다면 너의 공부는 우선 평소 자신을 이기는 것에 두어야 한다. 我先世。自羅麗來。前後數千年。文學仕宦。奕葉相承。曾不多讓於東方士大夫之列。至五六世以降。運丁百六。日就衰替。曾王考自錦南移郞州。王考自郞州寓金陵。先考自金陵遷綾陽。潘南遺庄鞠爲茂草。伽倻先隴。寂若無人。零丁孤孑。流離假乞。其受侮之不少。遘憫之旣多。念之骨寒。言之哽塞。先考府君夙夜憂勤。不遑暇寧。櫛風沐兩。血心拮据。僅能成立家計。爲予孫可繼之地。嗟余不肖。昏愚不明。懦怠不振。在身則心志不通。學問無成。在家則世業不守。妻子無賴。至於流寓四方。寄口於人。嗚乎。此何人哉此何人哉。亡國之臣。敗軍之將。聖人不與矍相之會。則此敗家之子。亦非亡國敗軍之類耶。在子爲不孝。在人爲不仁。雖欲痛革前習。以爲一分寡過於千罪萬累之中。而白首頹齡。精力不逮。俯仰耿耿。覓死無地。嗚乎痛哉。此生已矣。汝獨不思所以自爲謀耶。汝略涉經史。粗知道之大經。及古成敗存亡之所以然。且汝年將四十矣。身之是非得失。世之吉凶禍福。多所經歷。則其可好可惡取舍向背之分。想有槪焉者矣。未知汝之心有所悔悟。而思惕然懲毖者耶。懵然無覺。甘於自暴自棄而已耶。稟天地之性受父母之氣。生爲丈夫。身爲士子。有門戶至重之責。有子孫無窮之計。何苦而自視菲薄。自取危亡。舍坦道而走荊榛。曠安居而投坑塹。內而貽父母之羞辱。外耳招鄕里之嘲訕哉。汝不欲有爲則已。如欲有爲。切已病痛。不可不知。古人惡旨酒而好直言。汝則好旨酒而惡直言。種種狼狽。何所不至君子靜以養德。汝則常思動作。紛紜出入。汝試思平日愆尤。何嘗不自動作中出來耶。詩曰。溫溫恭人惟德之基。語曰。與人恭而有禮。四海之內皆兄弟也。夫天氣溫溫。則萬物和暢。天氣冷冷。則萬物彫瘁。在乎人者亦然。此溫溫所以爲德之基。而至於四海歸之。汝以隻身煢煢。無賴無聊。而加以性氣粗淺。少慈祥溫厚之意。物不親我。人誰與我。此孤弱之中。尤爲孤弱者也。衆版親離。萬乘不能以自存。況匹夫乎。此吾所以爲汝深憂者也。近年以來。家業蕩然居無卒歲之計。動無措手之方。汝何以奉養老親。敎育子男。上不失爲人子。下不失爲人父耶。若遇事變。有小小移動。則恐不免爲翳桑之鬼。一身不足血。父母奈何。妻子奈何。此不可謂非目前急故也。怠者萬惡之源。勤者無價之寶。自今日爲始。不作無益之事。不近無益之人。少閒說話。簡閑出入。以實心行實事。以謙恭持身。以和順御家。以敬謹接人。躬自厚而薄責於人。行有不得。反求於已。俛焉孜孜。爲善最樂。則安知桑楡之功。不能盖東隅之失耶。古人見臨喪不哀者曰。此謂蹶本。子孫其不昌乎。見臨祭不敬者曰。此謂忘祖。忘祖則祖亦忘其子孫。不爲之祐矣此必然之理也。大抵人有向親之心。則自然有無限善意。皆從此出也。余弱質多病。年邁增甚。而恒在外次。人事難諶且時象凜凜。前頭遭遇。有不可知。若父子不相見。而遽爾溘然。則豈非大可恨耶。玆以略述肝鬲。豫爲汝道之。以效古人授簡之意。未知遺忘廢墜如伯魯乎。記念不忘。視爲平生受用如無恤乎。此在汝而已。所欲言固不止此。然汝若肯向此裏。則其不言者。可以推及。不然。只此一篇語。亦是無益耳。多言何爲。須千萬勉旃。洪範註法而陳之之法。與漢史所謂法其象貌之法。同義否。一則法其理。一則法其象。禹受洛書。只法陳其戴九履一。左三右七。二四爲肩。六八爲足。而曾無敷言。至箕子時。始推衍增益之。如伏羲受河圖。畵列六十四卦。而無其辭。至文王周公孔子。始有卦辭爻辭彖象耶。然。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以先儒靜中有陽。動中有陰言之。則太極動靜。與先儒所說不同。上一段。是二體之對待。下一段。是二氣之互藏孟子說不動心曰志至焉。又曰持其志。此段特擧志而言者。以就心之所之處而然否。志者氣之帥。天下萬事。豈有志不立而能有所成就者哉。志以道寧。物格知至事。言以道接。修齊治平事否。志以道寧。是心邊說。言以道接。是行邊說。格致誠正修屬明明德。齊治平屬新民。則止至善之於八條目。猶五行之土。四端之信否。語則似然。而比類恐不精。入近以來。每欲收斂此心。强着沈潛功夫。而但本不有定力。乍往乍來。放浪戲謔。隨耳目思慮。捷於鼓桴影響其於痛斷刻絶之所。將何以能保其一分持守之方乎。抑絶閑遊。息世交。而處於闇室幽獨之中。斯可矣否。觀此段所說。孰不以汝爲志於學乎。然戲謔放浪。旋復如古。何其與所說相反耶。外面麤粗之過。猶不能遏止。內面乍往乍來者。何以斷置。然則汝之功夫。先在日用克己上。 사나운 운수 '백육(百六)'은 106년을 가리키는데,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卷21 律歷志上》 바람에……목욕하면서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우 임금은 몸소 삼태기와 보급을 가지고 구주(九州)의 강들을 바다로 흘러가게 하느라 장딴지의 살은 떨어지고 종아리의 털이 다 닳아 없어졌다. 소나기에 머리를 감고 거센 바람에 머리털을 빗질하였다.[禹親自操稾耜, 而九維天之川, 腓無胈, 脛無毛, 沐甚雨, 櫛疾風.]"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 객지를 떠돌며 온갖 고생을 겪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나라를……하였으니 확상은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궐리(闕里) 서쪽의 지명으로, 후대에 학궁(學宮)에서 사례(射禮)를 익히는 장소로 쓰였다. 공자가 확상의 포(圃), 즉 노나라 학궁 곁의 택지(澤地)에서 향사례(鄕射禮)를 행할 적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처럼 빙 둘러섰는데, 이때 자로(子路)에게 "패군(敗軍)한 장수와 망국의 대부와 인후가 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외에는 모두 들어오게 하라.[賁軍之將 亡國之大夫 與爲人後者 不入 其餘皆入]"라고 말하게 하자, 떠나는 자가 반 들어온 자가 반이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射義》 인(仁) 안거(安居)는 인(仁)을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의 바른길인데,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는 말이 나온다. 온화하고……기반이어라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과의……것이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사마우(司馬牛)가 일찍이 불량한 자기 형 환퇴(桓魋)를 걱정하여 말하기를 "남들은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형제가 없구나.[人皆有兄弟 我獨亡]"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나는 들어 보니,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하더라. 군자가 몸가짐을 공경히 하여 실수하지 않고, 남을 대해서도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한다면 사해의 안에 있는 사람이 다 형제처럼 되리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있겠는가.[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라고 하였다. 《論語 顔淵》 예상의 귀신 예상은 옛 지명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이곳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을 조돈(趙盾)이 지나다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제해 주었고, 그 뒤에 영첩이 진나라 영공(靈公)의 갑사(甲士)가 되어 위험에 처한 조돈을 다시 구제해 줌으로써 조돈이 죽음을 모면하였다.《春秋左氏傳 宣公2年》 만년의……벌충하지 《후한서(後漢書)》 권47 〈풍이열전(馮異列傳)〉에 "동우에서 잃었으나 상유에 수습한다。〔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는데, 동우(東隅)는 동쪽 해가 뜨는 곳이니 젊은 시절을 말하고, 상유(桑楡)는 서방 해가 지는 곳으로 만년(晩年)을 비유한다. 이런 것을……것인져 《좌전》 양공(襄公)29년조에 "위(衛)나라 석공자(石共子)의 죽음에 그 아들 도자(悼子)가 슬퍼하지 않으니, 공성자(孔成子)가 말하기를 '이를 일러 그 근본을 뽑아 버리는 짓이라 하니, 반드시 그 종족(宗族)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백로처럼……것이냐 조 간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백로(伯魯)이고, 차남이 무휼(無恤)이었다. 어느 날 간자가 훈계의 말을 쪽지에 적어 각각 두 아들에게 주고서 잘 기억해 두라고 명하였다. 3년이 지난 뒤에 물어보니, 형 백로는 훈계의 말을 잊어버려 대답을 못 하였고 쪽지도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아우 무휼은 그 말을 암송하여 잘 알고 있었고 쪽지를 꺼내라고 하자 즉시 품속에서 꺼내어 아버지에게 올렸다.《十八史略 春秋戰國 趙》 본받아 진술한 것 《서경》 〈홍범〉의 주에서 "《한지》에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림에 하늘이 〈낙서〉를 내려 주므로 이것을 본받아 진열하니, 홍범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漢志曰 禹治洪水 錫洛書 法而陳之 洪範是也〕"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한사 한나라의 사기, 즉 《한서(漢書)》를 가리킨다. 그 모양을 본받는다 미상. 9를……된다 〈홍범〉 장의 집전에서 구궁(九宮)의 수를 두고 "9를 머리에 이고 1을 아래에 밟으며, 왼쪽이 3이고 오른쪽이 7이며, 2와 4가 어깨가 되고 6과 8이 발이 된다. 이는 낙서의 수이다.[戴九履一, 左三右七, 二四爲肩, 六八爲足, 洛書之數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고요한……있다 명대의 전예형(田藝蘅)은 〈혼고시천역(混古始天易)〉에서 "태극의 처음에는 동정이 없다가 처음으로 동정할 때 천지간에 엉긴 것이 점차 녹아내리고 형체를 갖추어 점차로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양은 동하여 위로 올라가 동하는 가운데 음이 있고, 음은 고요하여 아래로 내려가 정하는 가운데 양이 있다."고 하였다. 뜻은……지킨다 맹자가 공손추와 부동심(不動心)을 논하는 대목에서 말하기를 "의지는 기운을 부리는 장수이고, 기운은 몸을 채우고 있는 것이니, 의지가 첫째요 기운이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그 의지를 확고히 세우고도 또 그 기를 거칠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持其志 無暴其氣〕"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 주 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에 이긴 뒤에 서려(西旅)에서 큰 개를 공물로 보내오자, 태보(太保)였던 소공이 〈여오(旅獒)〉를 지어 왕에게 경계한 내용 중 하나로, "뜻을 도로써 편안하게 하시며, 말을 도로써 대하소서.[志以道寧, 言以道接.]"라고 하였다. 《書經 旅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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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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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기회일에게 보냄 與奇會一 해가 바뀌는 때를 맞아 형의 체후가 약간 편안하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이래로 다시 편안한 일상을 회복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어떻게 달래고 계십니까? 형을 향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지난번에 길을 나서지 못하여 이어서 설을 쇤 뒤 열흘 안으로 한 번 가서 마음에 쌓아둔 몇 가지 생각을 여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몸의 병과 집안의 근심이 겹겹이 더해지고 가시지 않아 또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으니 한탄스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의 거취는 근래 혹시 들으셨고 궐리(闕里)47)의 회합은 과연 또한 잘 이루어졌는지요? 형께서 장차 열읍에 통지로 알려 열읍에서 1만 명까지 연명(聯名)으로 상소하게 하려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형의 진심 어린 정성이 사람을 감격하여 눈물짓게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향상(向上)의 뜻을 갖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적(夷狄)으로 변한 자가 많습니다. 일제히 한목소리를 내고 분기(奮起)하여 모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궁벽한 바다 모퉁이에 있어 사방에서 반드시 빼앗고자 하는 땅이 아니며 반드시 빼앗고자 자는 오직 왜(倭)뿐입니다. 왜(倭)가 우리를 향해 침을 흘린 것이 어찌 일조일석의 일이겠습니까. 근래 우리가 쇠약해진 것으로 인해서 제멋대로 틈을 엿보아 침입하더니 개화(開化)라는 구호를 내세워 30여 년에 걸쳐 이루지 않은 계책이 없고 이루지 못한 뜻이 없었습니다. 온 나라의 병사를 쓸어버리고 온 나라의 재물을 다 소진하였으며 청나라 군대를 요동(遼東)으로 내치고 러시아인을 여순(旅順)에서 막아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이웃 나라를 보살피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단지 우리의 원조를 끊고 우리 땅을 뺏으려는 것입니다. 수많은 비용을 소모하고 여러 해의 노고를 거듭하여 산을 뚫고 골짜기를 메꾸어 철로(鐵路)를 깔고 전기선을 설치한 것도 어찌 통상(通商)을 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장차 판도(版圖)를 마련하고 관원(官員)을 두어 아침저녁으로 왕래하기 위한 계책입니다. 겸병(兼倂)하여 하나로 합치는 것이 그들의 커다란 욕망이고 이미 정해진 계책이니, 3천 리 강토는 이제 그물 안으로 들어간 물고기 신세입니다. 아득히 먼 시골에서 올린 소장(疏章)과 각 나라의 담판이 어찌 저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흔들 수 있겠습니까. 진(晉)이 화하(華夏)의 맹주가 되었는데도 계씨(季氏)에게 뇌물을 받아 소공(昭公)이 돌아오지 못하고 건후(乾侯)에서 죽게 하였습니다.48) 이제 절역의 오랑캐 무리가 유독 왜노(倭虜)의 뇌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미 그들의 뇌물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우리나라 백성과 선비들의 여론은 거리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뜻하지 않은 행운은 전혀 없습니다. 또 형께서 매번 크게 탄식하면서 "아무개, 아무개는 모두 나라를 위해서 죽었건만, 나만 죽지 않았으니 어찌하겠는가?"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충의(忠義)로 인한 울분에 격앙되어 편안히 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죽을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꼭 그때 죽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겠습니까. 예전에 선생을 모실 때 "문산(文山)과 첩산(疊山)49)은 어찌하여 나라가 망하고 도성이 점령되는 날에 죽지 않고 도리어 몇 년 뒤 자살하라는 명을 받고 부름을 받은 날에 죽었습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선생께서 "처의(處義)가 어떠한지를 볼 뿐이다. 어찌하여 꼭 죽음이 이르고 늦음을 따지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형께서도 역시 일찍이 들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곽면우(郭俛宇 곽종석(郭鍾錫))가, 군주가 치욕을 당하여 신하로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리를 자부하고 그날 대궐로 달려 나갔지만 끝내 낭패를 당하고 돌아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거울로 삼을 만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에는 확정한 계산이 없고 일에는 좋은 계책이 없으면서 우선 눈앞에 닥치는 일만 따르기에 힘을 쏟아 시선을 가리고자 한다면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는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의리(義理)는 반착(盤錯)50)의 상황에서 잘못되기 쉽고 지기(志氣)는 전패(顚沛)되는 곳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노형(老兄)께서는 이른지 늦은지 따지지 말고 진퇴를 따지지 말며 오직 자신의 뜻을 잃지 않고 자신의 절조를 굽히지 않는 것을 궁극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옛날에는 나라가 망했을 경우에 죽을 수 있는 의리가 한가지라서 신하는 사직이 망하는 날 죽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망할 경우에 죽을 수 있는 의리가 두 가지라서 신하는 사직이 망했을 때 죽고 선비는 사람과 금수로 갈릴 때 죽습니다. 그러나 사직이 망했을 때는 간혹 죽지 않고도 여전히 절조를 온전히 하는 자가 있지만, 사람과 금수로 나뉠 때는 죽지 않고 사람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금수의 구별은 사직의 멸망보다 중요하고, 도를 위해 죽는 의리는 사직을 위해 죽는 절의보다 중요합니다. 문을 잠그고 담 구멍을 막아놓은 채 나의 복식(服飾)을 입고 나의 두발(頭髮)을 보존하다가 치의(緇衣)를 입고 머리를 깎는 재앙51)이 아주 가까이 이른 뒤에 자신의 분수를 지키더라도 어찌 늦겠습니까. 제가 자처하는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만, 득실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변고와 험액(險阨)을 당하여 더불어 마음을 얘기하고 의리를 강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직 노형(老兄)만 우러러볼 뿐입니다. 바라건대 자세히 일깨워주어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 은혜를 아끼지 않으시기를 천 번 만 번 바랍니다. 면암(勉菴)은 근래 상황이 어떠합니까? 연재(淵齋)52)는 서울에 간 지 여러 달이 지났으니 또한 이미 돌아왔겠지요? 전우(田愚)도 지난번에 상소했다고 합니다. 전날 출가하지 않았던 여식(女息)은 이제 시집을 가서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부모가 괴이한 증상, 급작스러운 질병이 생겼을 경우 발광(發狂)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건만, 자식이 된 자가 수수방관하다가 기식(氣息)이 끊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질환을 물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무슨 의리이겠습니까. 한탄스럽습니다. 노신암(盧愼庵)53)은 요사이 거조(擧措)가 어떠합니까? 근래에는 직지(直指)54)의 위엄은 산읍(散邑)의 임시 아전에게도 행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왕조의 위엄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나라에 평온함이 찾아오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온 나라 안에 비분강개하여 신포서(申包胥)55) 처럼 더불어 큰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니 나라를 보존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실타래 같은 희망이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만, 또한 하늘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臨歲回便。聞兄體薄有不安之節。未審開歲以來。趁復安常否。時憂世慮。何以慰遣。傾溯無任。義林曩行未就繼以歲後旬內。擬爲一造。以質多少積蘊矣。以身恙家憂。層疊不霽。亦未免見停。歎恨何爲。艾山去就。近或得聞。而闕里之會。果亦利就否耶 。聞兄將欲通喩列邑。令列邑限萬人爲聯疏之擧。其苦懇血心。令人感涕。然民無向上者久矣。人化爲狄者多矣。其能齊聲奮聚。有幾人乎。我國僻在海隅。非四方必爭之地。而必爭者。獨倭也。倭之垂涎於我。豈一朝一夕哉。近因我之衰弱。肆然闖入。號爲開化。三十餘年。計無不遂。志無不得。掃一國之兵。傾一國之財。逐淸軍於遼東。距俄人於旅順者。豈恤隣爲哉。特以絶吾援而奪吾地也。糜距萬之費。積數年之勞。穿山塡壑。置鐵路而設電繩者。亦豈通商爲哉。將以設版圖置官員。爲朝往夕來計也。兼倂合一。此其所大之欲。已定之計。而三千里疆域。今爲入綱之魚矣。窮鄕之疏章。各國之談判。何足以動彼之一髮哉。晉爲華夏之盟主。而受季氏之賂。使昭公不返。而卒於乾侯。今安知絶域介鱗之類。獨不醉於倭虜之賂乎。旣醉其賂。則我國之民論士論。亦無足憚矣。以此以彼。絶無萬一之幸。且聞兄每太息曰。某某人皆死於國。我獨不死。柰何柰何。此固忠憤所激。按往不得處也。然前頭可死之日。想必不少。何必以不死於曩時爲可恨也。昔侍先生問。文山疊山。何不死於國亡城敗之日。而乃死於數年後賜死被召之日耶。先生曰。惟視處義之如何。何必以死之早晏爲計耶。想兄亦曾聞之矣。郭俛宇以主辱臣死自許。而卽日赴闕。竟未免狼狽而歸。其爲失望大矣。此非今日吾輩之一副前鑑也耶。心無定算。事無良策。姑欲勉循目前。以塞視瞻。則其不至於此者。幾希矣。義理易失於盤錯之際。志氣難持於顚沛之地。願老兄不計早晩。不計進退。惟以不失吾意。不屈吾節。爲究竟之策。如何。古之亡國也。可死之義一。臣死於社稷之亡。今之亡國也。可死之義二。臣死於社稷之亡。士死於人獸之判。然社稷之亡也。則或有不死而猶全其節者。人獸之判也。則未有不死而可以爲人者。此人獸之判。重於社稷之亡。殉道之義。大於殉社之節也。杜門塞竇。衣吾服。存吾髮。以至緇削之災。切近床膚而後。爲之自靖。亦豈爲晩乎。此區區自處之意如此。未知得失何居耶。當此變險。可與話心可與講義者。惟老兄是仰。幸細細示及。不惜惠好之歸。千萬千萬。勉菴近狀何如。淵齋赴京有月。亦已回轅否。田愚向亦上疏云。未知前日未嫁之女。今爲已嫁之婦耶。如父母有怪證急疾。發狂號呼。而爲子者。袖手恬視。至於氣絶而後。乃問其疾耶。此何義理。可嘆可歎。盧愼庵近日擧措何如。近來直指之威。不能行於散邑之一權吏。王靈之不振如此。未知果能使魯有鳩乎。擧國之內。想不無忿憤。慷慨。可與有爲如申包胥者。則安知存楚之日。必無其時乎。一縷懸望。惟在於此。而亦未知天意之何如也。 궐리(闕里) 노성(魯城)의 궐리사(闕里祠)를 가리킨다. 노성은 현재의 충청남도 노성면이다. 진(晉)이……하였습니다 춘추 시대 노나라 계씨(季氏)가 전횡을 저지르자, 소공(昭公)이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소공 25년에 망명하여 제(齊)나라로 갔다가 28년에 진(晉)나라로 가서 건후(乾侯)에 머물다가 32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5, 32년 조 참조. 문산(文山)과 첩산(疊山) 송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당했을 때 절의를 지켜 원나라에 벼슬하지 않은 문천상(文天祥, 1236~1282)과 사방득(謝枋得, 1226~1289) 두 사람을 가리킨다. 문천상의 자는 송서(宋瑞)ㆍ이선(履善), 호는 문산이다. 이종(理宗)과 익왕(益王)을 섬겼고, 임안(臨安)이 함락된 뒤에도 송나라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을 일으켜 원군(元軍)과 싸웠으며, 위왕(衛王) 때 조양(潮陽)에서 패전하여 원군의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되었다. 원나라의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巻418 文天祥列傳》 사방득의 자는 군직(君直), 호는 첩산이다. 1256년에 문천상과 함께 진사에 급제하였다. 직언을 좋아하여 가사도(賈似道)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가 1267년에 사면되었다. 1275년에 신주(信州)를 맡았을 때, 원나라 군대가 침공하여 성이 함락을 당하자, 당석산(唐石山)에 은둔하여 제자를 가르치며 살았다. 송나라가 망한 뒤, 원나라 조정에서 누차 출사를 권했으나 굳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원나라 지방관이 억지로 호송하여 북경에 억류해 두었으나, 굴복하지 않고 단식하다가 죽었다. 문집에 《첩산집》이 있다. 《宋史 卷425 謝枋得列傳》 반착(盤錯)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준말로, 뿌리가 뒤엉키고 가지가 어지러이 교차된 것을 말하는데,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우후(虞詡)가 "반근착절의 상황을 만나지 않는다면 칼이 예리한지 무딘지 분간할 수가 없으니, 지금이 바로 내가 공을 세울 때이다.【不遇盤根錯節, 無以別利器, 此乃吾立功之秋.】"라고 말한 고사에서 나왔다. 《後漢書 卷58 虞詡列傳》 치의(緇衣)를……재앙 나라가 망해 치의를 입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호이다. 송병선은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으로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며, 큰아버지 송달수(宋達洙)에게 성리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경연관(經筵官), 서연관(書筵官), 시강원 자의(侍講院諮議) 등에 차례로 선임되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12월 30일에 황제와 국민과 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겨놓고 자결하였다. 저서로는 《연재집》이 있다. 노신암(盧愼庵) 신암(愼庵)은 노응규(盧應奎, 1851~1907)의 호이다. 노응규의 자는 성오(聖五),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허전(許傳, 1797~1886)의 문인이고, 최익현(崔益鉉, 1833~1907) 등을 사사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장악하였으나, 일본군의 공격과 내부의 반란으로 성이 함락되자, 아버지와 형은 살해되고 가산이 몰수되는 비운을 겪었다. 1902년 한때 조정의 관직을 맡은 적이 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다시 의병 활동을 계속하다가 1907년 결국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직지(直指) 지방에 파견되는 어사를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처음으로 조정에서 각 지방의 정사를 전담할 관원을 두어 그를 직지사자(直指使者)라 칭했던 데서 온 말인데, 그에게 수의(繡衣)를 입혔던 데서 직지수의사자(直指繡衣使者)라고도 칭하였다. 신포서(申包胥) 춘추 시대 초(楚)나라 대부이다. 오자서(伍子胥)가 오(吳)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했을 때, 신포서가 진(秦)나라 조정에 가서 7일 밤낮을 통곡하며 호소한 결과, 구원병을 얻어 국난을 타개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定公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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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勿菴【白會洙】會干墨齋 新年三日一奇遊。白首相看洗玉舟。淸夜欲闌春意動。胸中氷炭片時休。十載歸來話舊遊。逢君披豁對虛舟。人生那得乘風翰。倏忽東西遇境休。人生太半彀中遊。山怕摧車水覆舟。歲暮方尋平易路。無思無慮日休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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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산을 유람하는 제군을 보내며 送諸君遊淨土山 일곱 봉우리 우뚝우뚝 낮 구름도 걷히니 七峯兀兀午雲晴오르기도 전에 먼저 눈이 홀연 밝아지네 未陟先應眼忽明큰 들이 북으로 통해 하늘의 바람 차갑고 大野北通天飃冷세 산은 서쪽에 접해 기이한 향기 맑도다 三山西接異香淸예로부터 신령한 경계는 원래 주인 없는데 古來靈境元無主누가 선종으로 억지로 이름을 지었는가371) 誰把禪宗强錫名이곳이 예전부터 유람하는 곳이라 했으니 云是曾年遊賞處오늘 기문을 지어 제군의 가는 길 보내네 今朝題記送君行 七峯兀兀午雲晴, 未陟先應眼忽明.大野北通天飄冷, 三山西接異香淸.古來靈境元無主, 誰把禪宗强錫名.云是曾年遊賞處, 今朝題記送君行. 누가 …… 지었는가 산의 이름이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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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더위 속에 박근호ㆍ김용락 군과 함께 짓다 苦熱中 與朴君根浩ㆍ金君庸洛 共賦 폭염이 이글이글 금오492)가 노한 듯하니 虐炎赫赫怒金烏칡베 옷과 등나무 적삼에 땀이 스며 더럽네 絺服藤衫汗透汙대지가 큰 화로 같으니 응당 돌이 갈라지고 大地洪爐應石泐열흘 넘는 심한 가뭄에 벼가 마르니 어쩌랴 彌旬亢旱柰禾枯차가운 비로 타는 땅을 씻어주기 원하나니 願將冷雨洗焦土어떻게 가벼운 바람 타고 옥도로 오를까493) 安得輕風冲玉都월학 -월산과 학전은 김군과 박군의 거주지이다.- 이 나를 흥기시켜 가슴을 맑게 하고 月鶴起吾淸膈抱씩씩한 글이 용솟음치니 용 잡는 솜씨494) 보겠네 健詞水湧見龍屠 虐炎赫赫怒金烏, 絺服藤衫汗透汙.大地洪爐應石泐, 彌旬亢旱柰禾枯.願將冷雨洗焦土, 安得輕風冲玉都.月鶴【月山鶴田金朴所居】起吾淸膈抱, 健詞水湧見龍屠. 금오(金烏) 태양의 별칭이다.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三足烏]가 있다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다. 옥도로 오를까 천제(天帝)에게 가서 비를 내려주도록 하소연하겠다는 뜻이다. '옥도(玉都)'는 도교에서 말하는 천제(天帝)의 거소이다. 용 잡는 솜씨[龍屠] 뛰어난 재능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주평만은 지리익에게서 용 잡는 법을 배웠다. 천금의 가산을 탕진하여 3년 만에 기술을 이루었으나, 그 교묘한 기술을 쓸데가 없었다.[朱泙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技成, 而無所用其巧.]"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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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제 성술에게 보이다 示三從弟聲述 어지럽게 흔들리는 풍조가 폭풍 같은 형세라도 紛盪風潮勢似飇단전63)의 한 기둥을 어찌 흔들 수 있으랴 丹田一柱豈能搖문채를 싫어하니 도리어 홑옷을 입는 것이고64) 惡文還可單衣絅담박함을 좋아하니 어찌 꼭 오미로 맛을 내랴 嗜淡何須五味調참된 공부를 증험함은 저문 밤에 알겠고 驗得眞工知暮夜근본 기운을 회복함은 새벽 아침에 보겠네65) 復來本氣見平朝이 중의 지극한 즐거움을 그대 만약 안다면 此中至樂君如識옥퉁소 소리를 듣는 선가를 바라지 않으리라 不願仙家聽玉簫 紛盪風潮勢似飇, 丹田一柱豈能搖.惡文還可單衣絅, 嗜淡何須五味調.驗得眞工知暮夜, 復來本氣見平朝.此中至樂君如識, 不願仙家聽玉簫. 단전(丹田) 본래는 도가(道家)의 용어로 이마, 명치, 배꼽의 삼단전(三丹田)이 있는데 여기서는 마음을 가리킨다. 문채를……것이고 비단옷의 문채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홑옷 안에 은은하게 감추는 것을 말하는데, 군자의 도리가 날로 은은하게 빛남을 비유한다. '경(絅)'은 홑옷이다. 《중용장구》 제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너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선명하지만 날로 없어진다.[詩曰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고 하였다. 참된……아침 인의의 마음을 잘 길러서 보존해야 한다고 경계한 것이다. '참된 공부'는 곧 유학의 공부를 말한다. '모야(暮夜)'와 '평조(平朝)'는 외물을 접촉하기 전인 밤중과 새벽에 생긴 본연의 맑은 기운을 비유한 것이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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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4 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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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 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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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봉여【동익】에게 답함 答奇鳳汝【東翼】 형의 편지는 뜻밖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 우거(寓居)하여 편지를 조금 늦게 받았고 이어서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 있어 지금까지 답장을 올리는 것이 늦어졌으니 부끄러움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더운 여름이 깊어 가는데 안부가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형을 향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우가 오랜 세월 어려움을 겪은 것을 뒤미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문을 걸어 닫고 칩거하자니 이따금 무익하기만 한 끝없이 이는 회포를 가누지 못할 뿐입니다. 아, "물고기 삶는 가마솥에 물을 부으려네."111) "집 없는 장초(萇楚) 처지를 즐긴다."112)는 구절을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읊조리려니 아득한 옛날이 멀다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회포가 산처럼 쌓여 바람에 임하여 서글퍼하면서 그저 옛사람이 말한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놓고 다시 더불어 글을 자세히 논할까."113)라는 구절을 읊어 형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兄書可謂出於意外。而亦不可謂不出於意中也。但身寓他所。奉書差晩。繼而有春糧之行。一紙謝復。尙爾稽緩。愧可道耶。未審夏令屆深。體度崇適。馳溯不任。弟經艱閱劫不必追提。而杜門頹蟄。時不勝悠悠無益之懷耳。嗚乎漑釜鬵之烹魚。樂萇楚之無家。沈吟反復。不知千古之爲遠也。積懷如山。臨風悵然。只誦古人所謂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之句。而煩爲兄謝焉。 물고기……부으려네 《시경(詩經)》 〈회풍(檜風) 비풍(匪風)〉에 "그 누가 물고기를 쪄 먹을 건가. 가마솥에 물을 부으려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망해 가는 주(周) 나라를 일으키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돕겠다는 말이다. 집……즐긴다 《시경》 〈습유장초(隰有萇楚)〉에 "진펄에 보리수나무가 있으니, 야들야들한 그 가지로다. 어리고 곱고 반들거리니 너의 집 없음을 즐거워하노라."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흉년과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차라리 장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집도 없는 것이 부럽다는 뜻이다. 언제나………논할까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북쪽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장강(長江) 동쪽엔 저녁의 구름. 어느 때나 한 동이 술로 서로 만나서, 다시 한번 글을 함께 자세히 논해 볼까.【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시구에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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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숙의 월명암 시에 차운하다 次希淑月明菴韻 외로운 절 얼마나 멀리 떨어졌나 孤寺何迢絶하늘 위를 가는가 의심한다네 却疑天上行눈 앞이 처음 한 번 상쾌하니 眼前初一快세상 밖이 바로 삼청326)이구나 物外卽三淸항해327)는 주렴에 닿아서 방울지고 沆瀣當簾滴구름 노을은 섬돌에 부딪혀 생기네 雲霞觸砌生내가 돌아가면 누가 다시 찾아오나 吾歸誰復到만고토록 달이 길이 밝겠구나 萬古月長明 孤寺何迢絶, 却疑天上行.眼前初一快, 物外卽三淸.沆瀣當簾滴, 雲霞觸砌生.吾歸誰復到, 萬古月長明. 삼청(三淸)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의 천계(天界)를 가리킨다. 이는 삼동교주(三洞敎主)가 사는 최고의 선경(仙境)이다. 항해(沆瀣) 밤중에 내리는 맑은 이슬 기운으로, 선인(仙人)이 마신다는 밤중의 기[夜半氣]를 말한다.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육기를 먹고 항해를 마심이여, 정양으로 양치질하고 아침놀을 머금는다.[飡六氣而飮沆瀣兮, 漱正陽而含朝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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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에서 즉흥으로 읊다 山齋 卽事 화살 바람에 가랑 눈이 하늘에서 내리니 箭風篩雪下天衢봄 추위 두려워서 화로를 안고 앉았네 却怕春寒坐擁爐한 바가지 음료로 배를 채워도 삶은 고기보다 달고 瓢飮充腸甘鼎肉솜옷도 몸에 맞으니 여우 갖옷보다 낫구나 縕袍適體勝裘狐시공부는 습관을 바꿔 당의 음률을 따르고 詩工轉癖追唐律이학은 정밀하기 어려워 송의 유학를 믿네 理學難精信宋儒때로 객이 찾아오면 책상을 청소하고 時有客來淸掃榻대자리를 담요로 바꿀 필요도 없다네 竹團不必換氍毹 箭風篩雪下天衢, 却怕春寒坐擁爐.瓢飮充腸甘鼎肉, 縕袍適體勝裘狐.詩工轉癖追唐律, 理學難精信宋儒.時有客來淸掃榻, 竹團不必換氍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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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생도들이 독서하는 것을 보고 見社生讀書 찬 서재에서 고생하며 모인 생도들 冷齋喫苦聚諸君한사코 어찌 하여 옛글을 읽는가 抵死胡爲讀古文밤새 비바람 치는데 닭이 우나니201) 鷄唱喈喈風雨夜알겠다 저는 남이 들어주기 바라지 않음을 知渠不要別人聞 冷齋喫苦聚諸君, 抵死胡爲讀古文.鷄唱喈喈風雨夜, 知渠不要別人聞. 밤새……우나니 난세에도 자기 할 일을 한다는 뜻이다. 원문의 '개개(喈喈)'는 닭이 우는 소리이다. 《시경》 〈풍우(風雨)〉에 "비바람이 싸늘한데 꼬끼오 닭이 우네.[風雨淒淒,雞鳴喈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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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이 있어서 짓다 2수 有爲而作【二首】 말을 듣건대 문단에 고각소리 높아지자 聞說騷壇鼓角高술은 바다처럼 많고 고기가 언덕을 이룬다네 酒多如海肉成臯공훈이 유학을 부지하는 데 있다 다퉈 말하고 爭云功在扶儒術시대를 밝히는 제일의 호걸이다 자랑삼아 말한다네 誇道明時第一豪기인205)은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畸人不是自爲高지친 학은 구고206)에 있을 줄 알 뿐 倦鶴徒知在九臯홀로 앉아 반초은시를 읊조리니207) 獨坐吟來反招隱이러한 소객이 한 때의 호걸이라네 任地騷客一時豪 聞說騷壇鼓角高, 酒多如海肉成臯.爭云功在扶儒術, 誇道明時第一豪.畸人不是自爲高, 倦鶴徒知在九臯.獨坐吟來反招隱, 任地騷客一時豪. 기인(畸人) 세상과 맞지 않고 예법에 구속되지 않는 탈속한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기인이란 인간 세상에는 맞지 않으나 하늘과는 짝하는 사람이다.[畸人者, 畸於人而侔於天.]"라고 하였다. 구고(九臯) 수택(水澤)의 깊은 곳을 말하는데, 《시경》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고 하여 군자의 덕이 멀리까지 알려짐을 비유하였다. 반초은시를 읊조리니 현인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반초은(反招隱)'은 동진(東晉)의 시인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로 "작은 은자는 산림에 숨고, 큰 은자는 조시에 숨는다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라고 하였다. 《文選 卷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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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이씨 묘갈명 孺人李氏墓碣銘 유인(孺人)의 성은 이씨(李氏)이고 관향은 성주(星州)로,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증조는 지(沚), 조부는 성회(成檜)이다. 부친은 원형(元衡)이고, 모친은 경주 최씨(慶州崔氏)로, 경유(景裕)의 따님이다.유인은 천성이 온화하고 어질었다. 어릴 적에 지극한 행실이 있었고, 자라서 처사(處士) 문세정(文世楨)에게 출가하였다.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섬길 적에는 조심하고 공경하며 삼갔으며, 순종하고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집안사람을 부리고 집안일을 처리함에 온화하고 근검(勤儉)하여 확실하게 정해진 규범이 있었다. 친가에 후사가 없는 것을 늘 한스럽게 여겨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후사를 잇는 데 애쓰고 힘써 너희 어머니로 하여금 지하에서 한을 품게 하지 말라. 만일 혹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받드는 것은 외손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외손이 모시는 제사208)라는 이유로 태만하게 여기지 말라."라고 하였다. 모년 모월 모일에 생을 마쳤다. 아들 관오(貫吾)는 문학과 행실이 있었다. 손자는 희복(喜復), 희점(喜漸), 희승(喜升), 희항(喜恒), 희모(喜模), 희성(喜成)이다. 증손 이하는 그 후손이 번성하여 다 기록할 수 없다.아,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근원이 깊으면 물이 멀리 흐른다. 이 때문에 사람의 덕을 보고서 그 후손에게 복록이 있을 것을 알고, 자손이 창대한 것을 보고서 선조의 음덕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나는 문씨(文氏)가 오늘날에 자손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 당시 유인의 내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7세손 재항(載恒)이 비석을 세우는 일로 그 후면에 새길 글을 청하였다. 나는 비루하고 용렬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훌륭한 여사 보내 주어 貽以女士자손들 따르게 하였네.209) 從以孫子유인이 있었으니 孺人有焉만년 동안 밝게 전해지리. 昭垂萬年 孺人姓李。貫星州。興安君濟後。曾祖沚。祖成檜。考元衡。妣慶州崔氏。景裕女孺人天稟溫仁。幼有至行。長適處士文世楨。事舅姑奉君子。小心洞屬。承順無違。以至御家衆處家務。雍容勤儉。的有成規。常恨親家無嗣。語子孫曰。汝輩勉力。爲之繼後。無使汝母抱恨於地下。如或未爾。則守墓奉祀。非外裔之責乎。勿以非族之祀怠焉。某年月日終。子貫吾。有文行。孫喜復喜漸喜升喜恒喜模喜成。曾孫以下。其麗蕃衍。不能盡錄。嗚呼。根固者枝茂。源深者流遠。是以。觀人之德而知其有後祿。觀子孫之昌大。而知其有先蔭。吾知文氏祚胤綿延於今日者。未始非當日內助之爲也。曷不偉然。七世孫載恒。以將竪碣。請誌其陰。余以陋劣。辭不獲已。銘曰。貽以女士。從以孫子。孺人有焉。昭垂萬年。 외손이 모시는 제사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권3 〈답왕상서(答汪尙書)〉에 "송공은 외조부에게 후사가 없자 해마다 때맞춰 제사 지냈으니, 이는 그 마음 씀이 두텁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친족이 아닌 자의 제사는 이치에 이미 온당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훌륭한……하였네 《시경》〈대아(大雅) 기취(既醉)〉에 "그 따름은 무엇인가 너에게 훌륭한 여사를 줌이로다. 너에게 훌륭한 여사를 주고 자손으로 따르게 하리로다.[其僕維何? 釐爾女士. 釐爾女士, 從以孫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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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가 지은 노사선생 〈납량사의기의〉를 변석함 辨田愚所著。蘆沙先生納凉私議記疑。 ○〈납량사의(納凉私議)〉1)"분(分)이라는 것은 이일(理一) 안에 있는 세세한 조리(條理)이니 이(理)와 분(分)은 층절(層節)이 있을 수 없다. 분(分)이 이(理)의 대(對)가 아니라 '분수(分殊)'가 곧 일(一)의 대이다."○〈납량사의기의(納凉私議記疑)〉"이 말은 얼핏 보아서는 의심할 만한 점이 없다. 다만 노사(蘆沙)의 〈기경도(奇景道)에게 답하는 편지〉에 이르기를, '하늘에 이 분(分)이 원래 없었다면 사람과 사물이 어디에서 얻어 편전(偏全)2)을 지니게 되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分)이 세세한 조리라고 한 것은 훗날 사람과 사물이 얻게 되는 편본연(偏本然)과 전본연(全本然)의 근원이 될 것이다.내가 생각건대, 편(偏)과 분(分)은 원래 일관(一串)된 것이 아니다. 분(分)은 일신(一身)의 귀나 눈, 손이나 발과 같고 편(偏)은 한쪽 귀만으로 듣고 몸이 한쪽만 기능하는 것과 같다. 분(分)은 일(一) 안에 본래 있는 이(理)이고 편(偏)은 기(氣)의 측면에서 전(全)의 대가 되는 성(性)이니, 똑같이 얘기하기 어려울 듯하다."○〈변(辨)〉이(理)에 분(分)이 있으므로 물(物)에 편전(偏全)이 있다. 이(理)에 분(分)이 없다면 물(物)이 어디에서 편전(偏全)을 얻겠는가. 지금 "분(分)은 일신(一身)의 귀나 눈, 손이나 발과 같고 일(一) 안에 본래부터 있다."라고 했으니 이 설을 가지고 밝히고자 한다.귀, 눈, 손, 발 등의 백해(百骸 모든 뼈)와 백체(百體 온갖 부분)이 합쳐져 일신(一身)의 전체를 이루고 사람, 짐승, 풀, 나무 등 만상(萬象 모든 형상)과 만물(萬物 온갖 사물)이 합쳐져 천지의 전체를 이룬다. 사람 몸의 전체를 이루는 이(理)가 본래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은 알면서도 천지의 전체를 이루는 이(理)가 본래 형체가 갖추어지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은 모르는가. 사람의 귀, 눈, 손, 발이 본래부터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새와 짐승의 깃, 털, 발굽, 뿔과 풀과 나무의 줄기, 잎새, 꽃, 열매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은 과연 천명의 본연(本然)이 아니겠는가. 분(分)과 편전(偏全)이 만약 일관(一串)되지 않다면 주자(朱子)는 어떻게 덮어주고 실어주어 낳고 이루어 주는 편벽됨[偏]을 말하였겠는가.3) 또 어떻게 사람과 사물이 태어날 때 그 부여받은 형체가 치우치거나 올바른 것은 본디 처음부터 같지 않다고 말하였겠는가.4) 한 귀로만 듣고 한 쪽 몸만 기능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기(氣)가 고르지 못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어찌 이를 인용하여 주장을 펼 수 있겠는가.○〈납량사의〉"주자(朱子)가 이르기를, '태극(太極)이라는 것은 상수(象數)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에 관한 이(理)가 이미 갖추어진 것을 일컫고, 형기(形器)가 이미 갖추어져 있으나 그에 관한 이(理)는 조짐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5)라고 하였다. 상수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직 깨어지지 않은 일(一)이고 그에 관한 이(理)가 이미 갖추어졌다면 분(分)이 이미 포함된 것이 아니겠는가. 형기가 이미 갖추어졌다면 이미 정해진 분(分)이고 그에 관한 이(理)는 조짐이 없다면 일(一)의 자재(自在)가 아니겠는가."○〈납량사의기의〉"알 수 없지만, 노사(蘆沙)는 그에 관한 이(理)가 이미 갖추어진 것을 사람과 사물이 하늘로부터 받는 편전(偏全)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는가? 삼가 생각건대 이 구절에 담긴 뜻은 부자, 군신 관계가 생기기 전에 자(慈), 효(孝), 예(禮), 충(忠)의 이치가 이미 갖추어지고 사물의 미세함이 있기도 전에 사물의 미세함에 대한 이치가 이미 갖추어졌다는 것일 뿐이다. 성인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일(理一) 안에 있는 분(分)과 수(殊)의 온전한 이치를 지니고 있고, 현인(賢人)과 중인(衆人)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온전하지 못한 약간의 이치를 지니고 있고, 지극히 어리석은 자와 매우 악독한 자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전혀 바뀌지 않고 전혀 정리(情理)에 맞지 않는 이치를 지니고 있고, 조수 초목(鳥獸草木)은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치우치고 막힌[偏塞] 이치를 지니고 있어 각각 온갖 형상이 얻는 근원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노사(蘆沙)가 이른 '하늘에 원래 이 분(分)이 없었다면 사람과 사물이 어느 곳에서 얻어 이 편전(偏全)을 가지게 되었겠는가.'라는 것과 판연하게 차이가 나니 의심할 만하다."〈변(辨)〉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은 상수(象數)와 형기(形器)가 아닌 사물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람에 관한 이치는 이미 갖추어지고 사물이 생기기도 전에 사물에 관한 이치가 이미 갖추어진 것에 대해서 어찌 많은 말을 하겠는가. 저 사람이 이 의리에 대해서 반드시 모르는 것은 아니건만, 고의적으로 기질(氣質), 분수(分數), 지극히 어리석은 자, 매우 악독한 자 등의 말을 인용하여 그 설을 현혹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남을 능가하려는 사사로움을 이루었다. 아, 마음을 쓰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러한 이치(理致)의 득실은 오히려 사소한 일이다.하늘은 덮어주는 일에 치우치고 땅은 실어주는 일에 치우치며 해는 낮에 치우치고 달은 밤에 치우치며 눈은 보는 일에 치우치고 귀는 듣는 데 치우치며 손은 쥐는 데 치우치고 발은 걷는 일에 치우친다. 밝디밝은 것으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온전하고, 끊임없이 흐르는 것으로 하해(河海)를 보면 하해가 온전하며, 잎사귀 하나로 나무 한 그루를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온전하고, 하나의 사지(四肢)로 일신(一身)을 보면 일신이 온전하다. 세상에서 어떤 사물이 과연 편전(偏全)에서 벗어나겠는가. 이것을 본연(本然)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에 다시는 본연이 없게 된 지 오래일 것이다. 또한 조수 초목이 이(理)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람은 어떤 사물이라서 유독 이(理)에 본래 있는 것이 되겠는가. 사람이 이미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慈), 효(孝), 예(禮), 충(忠)의 이(理)는 어찌 유독 본래 지니게 되고 어디에 이미 갖추었겠는가. 어찌 처리하는 데만 급급하여 살필 겨를을 두지 않는가.○ 〈납량사의〉"'성(性)은 같다.'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편전(偏全)의 성(性)을 본연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분(分) 밖에 이(理)를 두는 것이다. 결국 같은 것을 주로 삼아 다른 것을 폐기한다면 성(性)은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는 사물이 된다."○ 〈납량사의기의〉"낙가(洛家)6)들이 성(性)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충(忠), 효(孝), 인(仁), 양(讓)을 가리켜 '이것은 분(分)의 수(殊)이지 본연의 성(性)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분(分) 밖에 이(理)가 있고 성(性)은 용(用)이 없는 사물이 된다. 다만 '만상(萬象 모든 형상)의 성(性)은 체(體)가 본래 온전하며 배워서 아는 사람[學知]부터 날짐승, 들짐승, 초목의 발현에 이르도록 각각 하늘로부터 받은 기(氣)에 따라서 스스로 하나의 성(性)을 이룬다고 하였으니 한 칸을 못 미치는 것[未逹一間]7)에서 아주 조금만 아는 것[一點子]8)에 이르기까지, 서로 비슷한 것[相近]에서 완전히 다른 것[絶不同]9)까지, 하늘이 내린 성인[天縱之聖]10)으로부터 지극히 어리석어 바뀌지 않는 사람[下愚不移]11)에 이르기까지 품류(品類)가 만 가지로 다르다.'라고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모두 본연의 성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변〉기(氣)의 청탁(淸濁), 수박(粹駁)은 본래 만나는 바대로 우연히 정해지지만 온갖 사물이 생겨나고 편(偏)과 전(全)이 나뉘는 것 또한 만나는 바대로 우연히 정해지겠는가. 만약 만나는 바대로 우연히 정해진다면 콩은 오이가 될 수 있고 오이는 콩이 될 수 있고 말은 뿔이 날 수 있고 소는 갈기가 날 수 있다. 상제(上帝)가 주재(主宰)하는 것과 건도(乾道)가 각각 바로잡는 것[各正]12)은 과연 무슨 일이겠는가? 편(偏), 전(全), 분(分)이라는 말을 지키려다가 상제는 주재의 기능을 놓치고 건도(乾道)는 자기의 직임을 잃는 데 이른다면 옳겠는가, 그르겠는가?만상(萬象)의 성(性)은 그 체(體)가 본래 온전하건만 발현(發現) 단계에 이르러 스스로 하나의 성(性)이 된다면, 이것이 과연 말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개의 성(性), 소의 성이 사람의 성(性)과 온전함을 함께하고 풀의 성(性), 나무의 성이 하늘의 성(性)과 그 위대함을 함께하다가 발현의 단계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하늘이 되고 사람이 되고 개나 소가 되고 풀이나 나무가 되겠는가. 말에 근거가 없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납량사의〉"천하의 성(性)은 온전하지[全] 않으면 치우쳤으니[偏], 참으로 온전하지도 않고 치우치지도 않은 성은 없다. 편(偏)과 전(全)이 모두 본연(本然)이 아니라면 천하에 그 본연의 성을 성으로 삼을 수 있는 사물은 하나도 없고 본연의 성은 영원히 허공에 매달린 비어있는 자리가 될 것이니, 장차 어디에 저 성을 쓰겠는가. 정통(正通)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본연의 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편색(偏塞)과 더불어 똑같이 본연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찌 정통을 귀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대개 분(分)이 없는 것을 일(一)로 여긴다면 그 폐단이 반드시 여기에 이르게 된다. 각정(各正)의 성(性)을 분수(分殊)에 떨어지고 형기(形器)를 범한 것으로 보아 일원(一原)으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갑변(甲邊)의 의론과 차이가 없을 듯하다."○ 〈납량사의기의〉"'기질(氣質)이 다르다면 천명(天命)의 성(性)에는 편전(偏全)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주자(朱子)는 '편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13)라고 하였다. 이것이 낙가(洛家)들이 근본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제 만약 이를 비난하여 '천하의 성(性)이 편(偏)도 없고 전(全)도 없다면 비어있는 자리가 되는 데 불과하다.'라고 한다면 어찌 남의 말뜻을 다 파악한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다양하게 살피지 않더라도 명확히 드러난다. '정통(正通)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본연(本然)의 온전함[全]을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편색(偏塞)한 것은 단지 본연의 편(偏)만 얻었을 뿐이어서 '천명의 성(性)에는 편전(偏全)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과 서로 어긋나지 않겠는가. 이를 바로잡아서 '정통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본연의 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의논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변〉주자(朱子)는 "편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14)라고 하고, 또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그 부여받은 형체가 치우치거나 바른 것은 본디 처음부터 같지 않기 때문이다."15)라고 하였다. 모름지기 이(理)에 편전(偏全)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또 이(理)는 편전이 없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연후에야 비로소 이치를 안다고 이를 수 있다. 천명의 성을 부여한 까닭은 본래 사람과 사물이 귀천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니 이것은 편전이 없음을 이른다. 만수(萬殊)의 분(分)이 일원(一原) 안에 성대하게 이미 갖추어진 것은 편전이 있음을 이른다.편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만 알고 사람과 사물에 각정(各正)의 성(性)이 없다고 하거나, 본디 처음부터 같지 않다는 말만 알고 사람과 사물에 일본(一本)의 성(性)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를 고집하여 백을 저버리고 이것을 얻느라고 저것을 잃는 것이다. 주자(朱子)가 입언(立言)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 도리어 남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남을 비난하는가. 주자는 "각정(各正)은 만물이 태어나는 초기에 얻는다."16)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정통(正通)한 자는 본연의 전(全)을 얻고 편색한 자는 본연의 편(偏)을 얻는 것을 또 어찌 의심하겠는가.○〈납량사의〉"편전(偏全)은 선(善)의 한쪽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마치 구멍에 크고 작음은 있더라도 달빛은 그대로이고, 그릇에 네모와 둥긂이 있어도 물의 성질이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이 어찌 본연이 아니겠는가."○〈납량사의기의〉"진실로 이 말과 같다면 벌과 호랑이와 원숭이의 인의(仁義)17)와 요(堯)ㆍ순(舜)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인의가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朱子)는 무엇을 가지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수연(粹然)은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18)고 하였는가?"〈변〉저 사람[간재(艮齋)]은 편전(偏全)을 본연이 아니라고 여겨 "만물의 성(性)은 그 체(體)가 본래 온전하다."라고 하였다. 편전을 도외시하고 '본래 온전하다'라고 말한다면 벌과 호랑이의 성(性)과 요순(堯舜)의 성은 과연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으니 창을 거꾸로 들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이를 만하다. 사람과 사물은 분(分)이 다르다[分殊]고 말하면 그 체(體)가 본래 온전한 것으로 반박을 하고, 사람과 사물의 성(性)이 같다고 말하면 벌과 호랑이의 원숭이로 비난을 하니 또한 정론(定論)은 없고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공격하는 것이라고 이를 만하다.○〈납량사의〉"기질(氣質)은 선악을 겸하여 진흙에 섞인 물이 짙거나 맑은 정도가 백 겹이나 되고 창문 너머 비치는 달빛이 밝고 어두운 정도가 각양각색인 것과 같다. 편전(偏全)을 기질이라고 한다면 어찌 편전을 낮추는 것이 아니겠는가."○〈납량사의기의〉"요, 순, 공자의 온전함은 진실로 본연(本然)이다. 백이(伯夷), 유하혜(柳下惠)가 청(淸)과 화(和)에 치우친 것, 안연(顏淵)과 민자건(閔子騫)이 성인의 체식을 갖추었으나 미미했던 것,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겨우 일체(一體)만 지닌 것19)이 어찌 기질로부터 말미암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유형은 선악을 겸했다고 이를 수 없다. 사람조차 이와 같으니 하물며 미물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지금 편전(偏全)을 기질로 여기려고 하지 않는다면 끝내 의심스러울 듯하다."〈변〉백이, 유하혜, 자유, 자하의 치우침은 기질의 선(善)한 부분이다. 걸(桀), 주(紂), 유(幽), 여(厲)의 포악함은 기질의 악(惡)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비록 선(善)이라는 한쪽 부분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약간 미진한 곳은 또한 선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 도리어 단지 선한 부분만 들어서 선악을 겸하지 않았다고 이른다면 되겠는가. 편전(偏全)에 대한 언급은 다시 변론할 필요가 없다.○〈납량사의〉"기질의 성을 성으로 여기지 않는 군자들이 있는데,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의 성 또한 성으로 여기지 않은 군자들이 있도다!"○〈납량사의기의〉"'기질(氣質)의 성(性)을 성으로 여기지 않는 군자가 있다.'라는 말은 횡거 선생(橫渠先生 장재(張載))의 말에 근거한다. 선생은 또 일찍이 말하기를, '모든 사물은 이 성(性)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통하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물의 구별이 있고, 가려지는 것에 두텁고 옅음이 있으므로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구별이 있다.'20)라고 하였다. 만약 위의 한 단락을 편색(偏塞)으로 여겨 본연의 성(性)에 귀속시키고 아래의 한 단락을 기질(氣質)로 여겨 성(性)으로 여기지 않는 등급으로 내린다면 문의(文義)나 사리(事理)가 모두 노사(蘆沙)의 말처럼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기질이 같지 않다면 천명의 성도 편전(偏全)이 있는가?'라고 묻자, 주자(朱子)는 '하늘이 부여한 성(性)은 편전(偏全)이 없다.'21)라고 하였으니, 편전의 성(性)이 어찌 주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근거한다면 남당(南塘)과 노사(蘆沙) 둘의 주장은 다시 자세히 논의해야 할 듯하고 천고 불변의 논의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변〉횡거 선생(橫渠先生)의 이 주장은 주된 의도를 오로지 인물의 현명함과 어리석음, 통함이나 가려짐과 열림이나 막힘[通蔽開塞], 두터움이나 옅음과 어려움과 쉬움[厚薄難易]의 구분에 두고 차례대로 얘기하였다. 문세(文勢)와 어맥(語脈)이 본연과 기질에 대해서 미칠 겨를이 없었으니 또 어찌 이 편전은 분(分)이 아니라는 오늘날의 주장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하였겠는가. 기질에서 말미암은 편전(偏全)은 본래 성(性)으로 여기지 않지만, 이분(理分)에서 비롯된 편전 또한 성으로 여기지 않는가? 편언(偏言)의 인(仁)과 전언(專言)의 인22) 또한 주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았는가. 덮어주고 실어주어 낳고 이루어주는[覆載生成] 편(偏)을 천지도 또한 성으로 여기지 않았는가. 천고 불변의 논의는 아마도 개개인이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자는 '사람과 사물의 성(性)은 부여받은 형체의 편정(偏正)이 원래 다르다. 그러나 다른 가운데 또 각자 저절로 청탁(淸濁), 수잡(粹雜)의 다름이 있다.'23)라고 하였다. 상단(上段)에서 말하는 다름[不同]은 본연(本然)의 분(分)이고 하단에서 말하는 다름[不同]은 기질의 차이[異]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는 먼저 사람과 사물이 각각 얻는 분(分)을 말하고 다음으로 부여받은 기질이 다르기도 한 것에 대해서 말하였다. 횡거(橫渠)의 이 말 또한 이러한 뜻이다. 어찌 아래 한 부분에서 기질을 말한 것을 가지고 위 한 부분에 거짓으로 연결시켜 또 기질로 간주하겠는가.○〈납량사의〉"이(理)를 이미 만사의 본령이라고 했건만, 기(氣)는 어떤 물건이기에 유독 너는 하나로 보고 나는 다른 것으로 보아 서로 배치되는가? 근세의 여러 선생이 이(理)와 분(分)을 나누어 대체로 모두가 '너는 하나[一]로 보고 나는 다른 것[殊]으로 본다.'라고 의론을 벌였다. 그 폐해는 기(氣)가 이(理)의 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가 기의 제재를 받아 '하늘이 명한 것이 성(性)이다.'는 한갓 헛된 말이 되었다."○〈납량사의기의〉"이일분수(理一分殊)는 본래 이(理)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분수(分殊)에 대해서 선현(先賢) 가운데는 곧바로 기이처(氣異處)를 가지고 말 한 자가 매우 많다. 지금 우선 틈새에 비친 해[日]로 비유하자면 틈의 길이와 크기는 본래 다르지만 단지 그 해일 뿐이다. 단지 그 해라는 것이 이일(理一)이고 틈이 각각 다른 것이 분수(分殊)이다. 이것은 앞의 일의(一義)와 병행이 가능하며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늘이 명한 성(性)이 비록 매우 온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선(善)하더라도 부여된 형기(形氣)의 차이를 어쩌지 못하여 누구도 본연(本然)을 완수할 수 없다. 비록 성(性)이 체(體)이고 기(氣)가 용(用)일지라도 역시 이(理)가 약하고 기(氣)가 강하기 때문에 가려짐이 없을 수 없다. 만약 분수(分殊)를 오로지 이(理)로 돌린다면 이(理)는 과연 기(氣)를 호령하고 기(氣)는 과연 이(理)에 순종하여 더 이상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가 없고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이 주장하기는 어려울 듯하다."〈변〉본원(本原)으로 말하자면 조리(條理)와 분수(分殊)가 본래 찬연하게 잘 갖추어졌으니 이것이 도기(道器)가 뒤섞이지 않은 곳이고 태극권(太極圈)24)이 배출(排出)된 까닭이다. 유행(流行)으로 말하자면 조리와 분수(分數)는 기(氣)에 나아가 그 실제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이 도기(道器)가 떨어지지 않는 곳이고 음양권(陰陽圈)과 오행권(五行圈)이 각각 갖추어지게 된 까닭이다. 선현 중에 기이처(氣異處)에 나아가 분수를 말하는 자가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틈새에 비치는 해로 비유하자면 틈에 길이와 크기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 길이와 크기에 따라 비추는 빛은 본래 찬연하게 해에 갖추어져 있다. 빛이 형체를 이루고 자취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틈에 나아가 실제를 볼 수 있다.이(理)가 기(氣)의 주인이라는 말이 어찌 일찍이 작용(作用)이 있고 호령(號令)을 하는 것을 이르렀겠는가. 그러나 그 이(理)가 없으면 그 일이 없고 그 이(理)가 있으면 그 일이 있다. 작용의 이(理)가 있으므로 기(氣)가 작용할 수 있고 호령의 이(理)가 있으므로 사람이 호령할 수 있다. 만약 조리(條理)와 분수(分數)를 모두 기(氣)에 귀결시킨다면 3백, 3천의 예(禮)25)가 모두 본연(本然)이 아니니 세교(世敎)와 관계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이미 '분(分)은 이(理) 안의 일이다.'라고 하면서 이어서 분수(分殊)를 오로지 해가 비치는 틈에 돌리며, 이미 '천명(天命)의 성이 십분(十分) 온전하다.'라고 하면서 이어서 분수(分殊)를 오로지 이(理)로 돌리지 않으니, '이(理)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일이며 '십분(十分)'이라는 것은 과연 몇 푼이나 되겠는가. '병행하면서 서로 장애가 되지 않음'을 알지 못하겠다.성(性)이 체(體)이고 기(氣)가 용(用)이라고 한다면 성(性)은 체(體)는 있지만 용(用)이 없는 사물이겠는가. 이와 같다면 정자(程子)가 이른바 '체(體)와 용(用)은 하나의 근원이다.[體用一原]'라는 것은 2개의 근원[二原]이 되고 이른바 '드러남과 은미함은 간격이 없다.[顯微無間]'26)는 것은 간격이 있게[有間]이 되고 이른바 '미응(未應)이 먼저가 아니고 이응(已應)이 나중이 아니다.[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27)라는 것은 선후(先後)가 있게 된다. 근세의 주기설(主氣說)은 잘못된 것이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만약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때문에 이(理)가 주인이 아니라고 의심한다면 덕을 질투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덕을 좋아한다는 말을 배척하고 성품이 악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폐기하는 것이니 그 설이 궁색함을 알 수 있다.○〈납량사의〉"오상(五常)이 사람과 사물에게 같은지 다른지는 결국 어디에서 정해지는가? 이것은 선각자(先覺者)의 말에 의해 정해진다. 주자(朱子)가 참으로 이것을 많이 논하였다. 《사서(四書)》에 대한 그의 주해(注解)와 설명에 보이는 내용은 직접 썼다는 점과 합당함으로 보자면 기록이나 편지에 견줄 바가 아니다. 《사서》의 주해에서 사람과 사물의 오상(五常)에 관해서 말한 것이 모두 세 곳이다.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에 반드시 이 이(理)를 얻은 뒤에 건순(健順)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 있게 된다.'라고 말한 것은 《대학혹문(大學或問)》에 나온다.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에 각각 이(理)를 타고나서 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의 덕으로 삼는다.'라고 말한 것은 《중용장구(中庸章句)》에 나온다. 이 두 조목은 모두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설명을 하였으니, 문리에 대략 통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변별하기가 어렵지 않다. 또 '얻어서 성(性)으로 삼는다.', '얻어서 덕으로 삼는다.'라고 한 것은 모두 모두 〈계사전〉에서 말한 성지자성(成之者性) 이하의 일에 속하지 계지자성(繼之者善) 이상의 일이 아니니, 주자의 의도는 사람과 사물의 성이 생겨날 때 이 오상을 동일하게 갖추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유독 《맹자》 '생지위성(生之謂性)' 장의 집주에서 '이(理)로 말하면 인의예지의 순수함이 어찌 사물이 온전히 얻을 바이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전우(田愚)가 살피건대, '수연(粹然)'은 어떤 본에는 '품(稟)'으로 되어 있고 '이(以)'는 '이(而)'로 되어 있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을 구분한 곳이다. -전우가 생각건대, 이 주석 또한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위 문장에서 성(性)은 형이상자(形而上者)라고 하였다.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이 성(性)을 지니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이 성(性)은 무슨 성인가? 바로 이른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이다. 이는 《중용장구》와 《대학혹문》이 같다. 만일 '사물이 어찌 온전함을 얻었겠는가.'라고 한 것을 사람과 사물을 구분하는 단안으로 여긴다면 《중용장구》의 다음 문장에서 어찌 '기품에 차이가 있으므로 과불급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대학혹문》의 다음 문장에서 어찌 '저 미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형기에 질곡되어 그 온전함을 확충하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이 두 조목은 또 모두 《맹자》 주석의 내용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내가 생각건대, 세 곳은 모두 체는 같고 용은 다르다는 설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어찌 온전히 얻겠는가.'라고 말했을 뿐이지 '사물은 함께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또한 사람과 사물이 오상을 동일하게 지녔다는 말이다. 주자(朱子)가 이 주장을 한 것이 어찌 새로운 논의를 펼치기 좋아하여 인도(人道)를 만물과 동일시한 것이겠는가.대체로 이 이치 외에 더 이상 다른 이치는 없다. 따라서 단지 다만 위 성현에서부터 인성이라는 글자를 넷으로 쪼개고 만물에까지 일관시켰다고 해서 혐의쩍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전우가 생각건대, 이상의 논의는 낙가(洛家)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더라도 일(一)이면서 분(分)이 없다면 내가 말하는 일(一)이 아니다. 그래서 《중용혹문》과 《대학혹문》에서 곧 말하기를 '새와 짐승, 풀과 나무가 생길 때 겨우 형기(形氣)의 치우침만 얻고 전체를 관통하지 못했으니, 저 천하여 사물이 된 것들은 형기의 치우치고 막힘에 구애를 받아 그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다.'28)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의 성(性)이 이 일리(一理)를 함께 지니고 있더라도, 이(理)에서 다시 나뉜 한계[分限]가 없을 수 없음을 말한다. 기(氣)는 이 이(理)를 태우고 싣는 것이므로 형기를 떠나서 분(分)을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일(一)에 분(分)이 없었던 적이 없음을 여기에서 인하여 볼 수 있다.위와 아래의 이 문의(文義)를 합하여 보자면, 《맹자》 '생지위성(生之謂性)' 장의 집주와 또한 뜻이 다르지 않다. 후세 사람들이 각각 절반씩을 점유하여 올리고 내리고 하니, 이것이 어찌 주자가 예상할 수 있었던 바이겠는가. 이를 통해 물(物)과 아(我)가 오상(五常)을 균등히 가지고 있는 것은 이(理)의 일(一)이고, 오상에 편전(偏全)이 있는 것은 일(一) 안에 있는 분(分)임을 알 수 있다. 대개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으로부터 이(理)와 분(分)이 원융(圓融)하여 간극이 없기 때문에 만물에서 성(性)을 이루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선각자들이 성을 논할 때 이(理)가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이(理)가 같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서로 주장이 괴리되는 것이 아니다.공공의 관점에서 그 묘(妙)를 논할 때는 배출(排出)의 측면에서 말하고 참되고 분명하게 그 체(體)를 가리킬 때는 즉기(卽氣)의 측면에서 밝힌다. 배출(排出)의 측면이라면 이(理)는 본래 하나이므로 이일(理一)이 주가 되어 만수(萬殊)가 그 가운데에 포함되고, -전우가 생각건대, 치우치고 온전하지 않은 것을 만수(萬殊)로 보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즉기(卽氣)의 측면이라면 기(氣)가 이미 나누어지므로 분수(分殊)가 주가 되어 이일(理一)이 그 사이에 있다. 이로부터 말에 두 가지가 있게 된 것이지 어찌 성(性)에 다양한 층절(層節)이 있겠는가. 제가(諸家)는 이(理)와 분(分)이 일체(一體)가 되는 곳으로 인하여 깊이 착안하지 못하였다. 다름을 말하면 오상(五常)을 홀로 차지하려 하고 같음을 말하면 이내 편전(偏全)을 낮추어 보니, 털끝만큼의 차이로 천리(千里)가 어긋난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납량사의기의〉"《중용혹문》, 《대학혹문》이 만약 미물(微物)만 단언(單言)하고 중인(衆人 평범한 사람)을 함께 거론하지 않았다면 노사(蘆沙)의 말과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그 문장에서 지우(知愚)와 현부(賢否)의 기품(氣稟)이 다름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또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에는 혼잡(昏雜)한 바가 있어 받은 바의 바른 것을 온전히 할 방도가 없다.'라고 하고, 또 '이른바 명덕(明德)이라는 것은 이미 폐단이 없을 수 없어 온전함을 잃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미물은 통하지 못하여 확충한 방도가 없다.'라는 것과 말의 뜻이 일치하여 유별(類別)과 체례(體例)에 다름이 없으니 '통하지 못하여 확충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본연의 성(性)으로 귀결시키고 '온전히 할 방도가 없다', '온전함을 잃었다'는 것을 기질의 성으로 귀결시키면 공평함을 잃었다는 혐의가 있지 않겠는가. 만약 누군가가 노사(蘆沙)에게 묻기를,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덕성(德性)이 균일한 것은 이(理)의 일(一)이고, 덕성에 편전(偏全)이 있는 것은 일(一)의 분(分)이다.'라고 묻는다면 장차 대답하기를 옳다고 하지 않겠는가."〈변〉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오성(五性 오상(五常))을 아울러 거론한 것은 3곳이다. 그래서 선사(先師)께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하문(下文)에서 있고 없음을 구분한 것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기품이 간혹 다르다."라고 한 것은 사람과 사물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기품(氣稟)이 같지 않음을 구분한 것이다. 사람과 사물을 구분한 것은 이미 상문(上文)인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화육(化育)하고 생장(生長)하게 한다."라는 조에 있으니 이것으로 또한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이 본연(本然)의 분(分)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체(體)는 같지만 용(用)이 다르다."29)라는 주장과 "성(性)은 체(體)이고 기(氣)는 용(用)이다."라는 주장은 동일한 권투(圈套, 올가미를 씌우는 수단)이니 많은 변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른바 낙가(洛家)와 같다는 것은 실제로는 같지 않다. 선사(先師)가 같다고 한 것은 곧 실(實)의 같음이고 제가(諸家)가 같다고 한 것은 도리어 허(虛)의 같음이다. 《중용혹문》과 《대학혹문》은 주로 천명(天命), 명덕(明德), 인물(人物)의 일원(一原)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 시말(始末)의 곡절과 다과(多寡)의 분수(分數)를 구별하였다. 그래서 초목과 금수로부터 중인(衆人)과 현인(賢人)에 이르고 성인(聖人)이 본성(本性)을 발휘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쳤다. 어맥(語脈)과 차례는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한다. 본연(本然)과 기질(氣質)에 대해서는 원래 달리 주장하였으니 구별할 겨를이 없다.《중용장구》에 "사람과 사물은 각각 부여받은 이(理)를 얻는다."라고 하였다. 또 "사람과 사물은 각각 성(性)의 자연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대학혹문》에서는 "전체를 관통함이 없다."라고 하고 또 "그 본체를 확충할 방도가 없다."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중용장구》에 대해서는 포양을 하고 《대학혹문》에 대해서는 폄훼를 하였는가.대체로 《중용장구》에서는 부여받은 본연의 묘(妙)를 말하고 《대학혹문》에서는 부여받은 분수(分數)의 이(異)를 말하였다. 이제 폄훼한 것을 보고 본연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포양한 것까지 더불어 본연이 아니라고 여기겠는가. '온전히 할 방도가 없고', '온전함을 잃는다'는 것이 곧 《중용장구》에서 말하는 "기품(氣稟)이 다르기도 하다."라는 것이고 도를 닦고 교화를 펼치는 곳이 된다.○〈납량사의〉"본체(本體)이면서도 '확충할 수 없다.[無以充]'라고 하였으니 본체가 본성의 영역[性分]이 되는가, 아니면 '무이충(無以充)' 3자에 이르러 비로소 본성의 영역이 되는가? 전체(全體)이면서도 '통할 수 없다.[不能通貫]'라고 하였으니 전체가 본성의 영역이 되는가, 아니면 '불능관통(不能通貫)' 4자에 이르러 비로소 본성의 영역이 되는가? 내가 말하기를, '본체와 전체는 곧 본성의 영역 중에 이일(理一)에 해당하는 곳이요, 확충할 수 없고 관통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그 본성의 영역 중에 분수(分殊)에 해당하는 곳이다. 두 가지 사리(事理)는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인데 지금 반드시 둘로 나누어 논하려 하니 잘못되었다.'라고 하였다."○〈납량사의기의〉"'확충할 수 없고', '통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형기(形氣)가 치우치고 막힌 병통이다. 지금 만약 반드시 성(性)의 분수(分殊)로 여긴다면 사람들을 의혹스럽게 할 것이다. 또 《대학》으로 논하더라도, '하늘이 백성을 낳으면서 모두에게 성(性)을 부여하였다.'라고 한 것은 본성의 영역 중에서 이일(理一)에 해당하는 곳이고, '기품(氣稟)이 가지런하지 않아서 모두 온전할 수가 없다.'30)라는 것은 본성의 영역 중에서 분수(分殊)에 해당하는 곳이다. '허령(虛靈)하여 온갖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는 것은 덕의 영역 중에서 이일(理一)에 해당하는 곳이고, '얽매이고 가리워져 혼매하기도 하다.'31)는 것은 덕의 영역 중에서 분수(分殊)에 해당하는 곳이니,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보는 이들이 깨달음의 계기가 되는 한 마디를 알려 주기 바란다."〈변〉'확충할 수 없고', '통할 수 없는' 것이 어찌 주자(朱子)가 초목과 조수(鳥獸)는 요(堯)의 복식을 입지 못하고 요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해서 한 말이겠는가. 단지 천명(天命)과 명덕(明德)에 근거하여 보존하고 있는 서로 다른 분(分)이 이와 같음을 말했을 뿐이다. 사람이 요의 복식을 하고 요의 말을 하면 사람들은 장차 그를 성인으로 여길 것이다. 초목과 조수이건만 요의 복식을 하고 요의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장차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할 방도가 없고', '온전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본래 기품(氣稟)이 가려졌기 때문이니 '확충할 수 없고', '통할 수 없는' 것이 사물 입장에서는 어찌 본연의 분(分)이 아니겠는가.○〈납량사의〉"'이(理)로 말하면 만물이 일원(一原)이어서 본래 인물에 귀천의 다름이 없다.'32)는 이 하나의 구절은 이른바 배출의 측면에서 그 묘(妙)를 말한 것이니, 이일(理一)이 주가 되는 것이다. '기(氣)로 말하면 그 바르고 통함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그 편벽되고 막힘을 얻은 것이 사물이 된다.'33)는 이 하나의 구절은 이른바 즉기(卽氣)의 측면에서 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니 분수(分殊)가 주가 되는 것이다."○〈납량사의기의〉"위 1절(節)은 하나의 성(性) 안에 온갖 이치를 모두 갖추고 있어 하나의 성은 이일(理一)이고, 온갖 이치는 분수(分殊)이며 사람과 사물은 이 일원(一原)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비록 온갖 이치가 분수라 하더라도 사람과 사물의 귀천이 차이가 없음에 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에 근거하면 분편(分偏)을 가지고 비교 검토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자세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아래의 1절은 도리어 기품(氣稟)에 관한 일만 집중적으로 언급했을 뿐이다. 대체로 아래 1절의 21자(字)는 이(理)가 실제적인 작용을 하는 곳을 가리킬 수 있는 일점일획(一點一劃)도 없이 노사(蘆沙)의 말이 이와 같으니 의심할 만하다."〈변〉사람이 되고 사물이 되는 것이 본연의 분수(分殊)에 달려 있지 않다면 이른바 분수라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일인가? 이른바 사람과 사물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과 사물의 구분[分]은 본래 일원(一原)에 이미 갖추어져 있으며 사람의 것도 단지 이 이(理)이고 사물의 것 또한 이 이일 뿐이다. 그래서 귀천(貴賤)의 다름이 없다고 한다. 사람과 사물의 구분은 본래 이미 미리 정해졌지만, 기(氣)에 의해 형체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 실상이 드러난다. 그래서 "기(氣)에 나아가 실상을 가리킨다."라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일음 일양(一陰一陽)을 도(道)로 여기고 정자(程子)는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것[川流不息]을 도체(道體)로 여기고 주자(朱子)는 오행(五行)을 도(道)의 체단(體段)으로 여겼다. 사람이 이치에 통달한다면 천지에 가득한 형형색색(形形色色)이 도리가 아닌 것이 없다. 만약 정통 편색(正通偏塞)을 이(理)의 실체(實體)가 아니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理)라는 글자, 도(道)라는 글자, 태극(太極)이라는 글자를 말한 이후에야 비로소 이(理)라고 이르겠는가? 일점일획 운운한 것은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든다.○〈납량사의〉"마음이 기(氣)의 분수에 해당하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갖춘 바는 성(性)이다. 마음이 성을 갖춘 것은 범인과 성인이 같지만, 마음이 성(性)을 극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범인과 성인이 다르다. 그 같음이나 다름이나 모두 그 중한 바가 성(性)에 있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은 곧 그 같은 것을 망각하고 그 다른 것을 주장하여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다르다.[聖凡異心]'는 설을 법문(法門)으로 삼았으니, 그 또한 성인의 뜻에 모순이 된다. 남당과 논변한 사람도 그 중한 바가 있는 곳은 말하지 않고, 구구하게 그 광명(光明)한 마음의 분수(分數)를 비교하여 이로써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다.[同聖凡之心]'라고 하려 하였으니, 벙통을 찌르지 못한 것이다."○〈납량사의기의〉"기질(氣質)이라는 것은 청탁 수박(淸濁粹駁)이 전혀 가지런하지 않고, 마음[心]이라는 것은 허령 신묘(虛靈神妙)가 유일무이(有一無二)하다. 남당(南塘)은 곧 이 두 가지를 변별할 수 없는 사물로 여겼다. 만약 광명(光明)에 우열 분수(優劣分數)가 없음을 지적하지 않고 단지 마음이 성(性)을 갖추는 것은 성인과 범인이 동일하다는 점만 거론하여 변석한다면 남당(南塘)의 비웃음을 받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하물며 마음[心]이 성(性)을 갖추는 것은 미물(微物)도 그러하니 어찌 남당의 의심을 풀 수 있겠는가."〈변〉심(心)과 기질(氣質)은 판연히 다른 두 가지 사물이 아니다. 청탁 수박(淸濁粹駁)에 따라 그 허령함[靈]은 분수(分數)가 없을 수 없으니 본래 이것을 가리켜 성인과 범인이 같다고 이를 수 없고, 또한 광명(光明)한 것만을 마음[心]으로 인식하여 성인과 범인이 다르다고 이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중시하는 것 외에 다시 어찌 우열 분수(優劣分數)가 없는 사물이 하나라도 있겠는가. 아니면 혹시라도 형이하(形而下)의 명덕(明德)이 있겠는가. -임전재(任全齋)34)는 명덕(明德)을 형이하(形而下)로 간주하였다.-근세의 유자(儒者)들 가운데 기질(氣質)은 신체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또 허령(虛靈)은 기질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들이 많아서 '상제가 허령을 내려주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라는 말이 있어 마침내 이것을 명덕(明德)으로 여기고 이것으로 성인과 범인이 같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그 빛이 번쩍번쩍하여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단의 설과 어찌 구별이 있겠는가.무릇 기질(氣質)이라는 것은 단지 이 몸에 있는 음양(陰陽)의 모임이고 마음[心]은 곧 그것의 정상(精爽)이다. 기(氣)에 이미 청탁 수박(淸濁粹駁)이 있다면 그 정상은 분수(分數)가 없음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다만 갖추고 있는 것은 성(性)이다. 이른바 본심(本心), 양심(良心), 인의심(仁義心)이 어찌 일찍이 성인과 범인의 다름이 있었는가. 지금 광명(光明)에 분수가 없다는 말을 보면 그 오류를 계승하고 착오를 답습한 것이 일조일석에 비롯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납량사의〉"찢어진 종이에서 녹문(鹿門) 임씨(任氏)의 의론 한 단락을 얻었는데, '다름을 말하자면 성(性)이 다를 뿐 아니라 명(命)도 다르다. 같음을 말하자면 성이 같을 뿐 아니라 도(道)도 같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얼핏 겉만 보면 사슴 곁에 있는 것이 노루이고 노루 곁에 있는 것이 사슴이라는 것35)과 같지만, 실제로는 도리의 근원을 물 샐 틈 없이 설명하였다. 이천(伊川 정이(程頤))의 '이일분수(理一分殊)' 넉 자가 녹문에 힘입어 일맥(一脈)이 동방에서 추락하지 않았도다. 그의 전서(全書)를 얻어서 살펴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납량사의기의〉"이천(伊川)이 어찌 일찍이 이일분수(理一分殊)로 성(性)을 논하였는가. 다만 〈서명(西銘)〉으로 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理)를 미루어 그 일(一)을 알게 하고 의리를 보존하여 분(分)을 세우게 할 뿐이었다.36) 양시(楊時)37), 이통(李侗)38), 주자(朱子)의 논의 또한 모두 이와 같다. 나 정암(羅整庵)39)에 이르러 비로소 이 4자를 내걸고 성명(性命)의 오묘함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가 말하기를, '기(氣)를 받은 초기에는 이(理)가 하나지만 형체를 이룬 뒤에는 분(分)이 달라진다.'40)라고 하였다. 이것은 노사(蘆沙)의 뜻과 거리가 멀다. 또 말하기를, '이일분수(理一分殊)로 성(性)을 논하면 자연히 천명(天命)과 기질(氣質)이라는 두 명칭을 세울 수 없다.'41)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더욱 어긋나게 된다. 또 그가 이기(理氣)를 하나의 사물로 인식하고 이기(理氣)가 두 가지 사물이라는 주자(朱子)의 가르침을 심하게 책망한 것은 더 말할 수가 없다.우리 동방의 임 녹문(任鹿門)이 또 나 정암이 말한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지취를 조술(祖述)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건(乾)의 건(健)이 곧 태극(太極)이고 건(健) 안에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있다. 곤(坤)의 순(順)이 곧 태극이고 순(順) 안에 원형이정이 있다. 원형이정은 곧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그러나 건(乾)의 원형이정은 여전히 건(健)일 뿐이고 곤(坤)의 원형이정은 여전히 순(順)일 뿐이다. 그렇다면 건(乾)과 곤(坤)의 태극은 자연히 서로 다름에 해가 되지 않는다.'42)라고 하였다. 또 인물성도(人物性圖)를 만들어 인권(人圈)에서는 오상(五常)과 태극(太極)을 자세히 적었지만, 물권(物圈)에서는 단지 태극만 적고 오상을 적지 않았다. 또 '혼연한 태극이 하나의 사물 안에 갖추어져 있다.'라는 주자의 학설을 논의하기를, '이것은 이 각일기성(各一其性)43)의 측면에서 천리(天理)가 완전하여 휴흠(虧欠)이 없다는 것을 이를 뿐, 하나의 사물이 온갖 이치를 구비했다는 것을 이르지 않는다.'44)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분수를 잘못 보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또 인성의 선함을 논하면서 '이는 기질 이외에 따로 선한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45)라고 하였다. 이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만약 노사(蘆沙)가 다시 살아나서 이를 본다면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리면서 장탄식을 할 것이다. 노주(老洲) 오 선생(吳先生)46)은 일찍이 나 정암과 임 녹문 양가(兩家)에 대해서 매우 많은 논의를 하였다. 이제 세 단락을 아래에 덧붙여 보여 노사 문하의 제공(諸公)이 자세히 보게끔 한다."○《노주집잡지(老洲集雜識)》에 이르기를, "정암(整庵)과 녹문(鹿門)이 똑같이 이(理)와 기(氣)가 하나의 사물임을 논하였지만, 정암은 이일(理一)에 비중을 두었고 녹문은 분수(分殊)에 비중을 두었다. 이일(理一)에 비중을 둔다면 자연스럽게 이(理)가 주가 되고 분수(分殊)에 비중을 둔다면 결국에는 기(氣)가 주가 된다. 이것을 가지고 득실을 비교하여 논하자면 정암이 아마도 흠이 적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또 말하기를, "정암과 녹문이 모두 추리(推理 이(理)를 미루어 감)의 관점에서 합일(合一)의 오묘함을 본 것은 얼핏 보자면 고묘(高妙)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궁극에는 모두 주기론(主氣論)으로 귀결되었다. 정암은 그래도 일일이 이 이(理)를 일으켜 세운 뜻이 있다. 하지만 녹문은 줄곧 기(氣)라는 한 자로 천하의 이(理)를 모두 덮어버리고는 다시는 이(理)가 이(理)가 되는 까닭을 궁구하지 않았다. 대체로 녹문의 견해는 실로 정암(整庵 나흠순(羅欽順))에 근본하였지만, 기(氣)에 대한 주장은 자못 정암을 능가한다."라고 하였다.또 말하기를, "정암은 이일분수(理一分殊)를 이(理)와 기(氣)를 말하는 저울로 삼았다. 그가 말하기를 '성(性)은 명(命)이기 때문에 같고 도(道)는 형(形)이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한 것은 매우 옳다. 성(性)은 명(命)이기 때문에 같다는 것은 바로 미발(未發)한 상태에서 이일(理一)을 가리키고, 도는 형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은 이발(已發)한 상태에서 분수(分殊)를 가리킨다. 녹문은 그의 이일분수(理一分殊)를 조술(祖述)하면서도 유독 이 말을 심하게 배척하였는데 무엇 때문인가? 끝내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에 구애되어 성(性)과 도(道)에 비록 체용(體用)의 다름이 있더라도 일원(一原)의 동일함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지 못하였다."〈변〉덕(德)에는 일정한 법이 없어 선(善)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 법이 되며 선(善)은 일정한 주인이 없이 능히 한결같음에 합한다.47)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돌아감은 같으나 길이 다르다."48)라고 하고, "나의 도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꿴다."49)라고 하고, "그것의 사물됨이 변하지 않으니 사물을 냄이 측량할 수 없다."50)라고 하고, "널리 배우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장차 돌이켜 간략하게 말하고자 함이다.51)"라고 하였다.자세히 연구하고 상세히 완미하면 경전(經傳) 안에서 이일분수(理一分殊)의 뜻을 말한 부분이 매우 많으며 이 마음[心]과 이 성(性)의 오묘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님이 없다. 주자(朱子)는 "이(理)와 기(氣)에 대해서는 이천(伊川)의 말이 뛰어난데 이일분수(理一分殊)라고 하였다."52)라고 하였다. 이일분수는 곧 이천이 평소에 하던 말이지 이것이 어찌 〈서명(西銘)〉에 인하여서만 한 말이겠는가. 정자(程子)는 또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지만, 온갖 형상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53)라고 하였다. 장자(張子)는 "성(性)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의 일원(一原)이다."54)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성(性)을 논할 수 없겠는가. 양씨(楊氏)와 이씨(李氏)가 인의(仁義)를 가지고 이일 분수(理一分殊)를 논하였으니 어찌 나씨(羅氏)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것을 들어 성(性)을 설명하였겠는가.녹문(鹿門)의 건순 태극(健順太極)에 관한 학설은 해가 없을 듯하지만 '원형이정(元亨利貞)이 곧 음양오행이다.'라는 조항의 설은 이(理)와 기(氣)를 하나의 사물로 여기는 병통이 있다. 나 정암(羅整庵)의 '성(性)은 명(命)이기 때문에 같고 도(道)는 형(形)이기 때문에 다르다.'55)라는 설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성과 도는 비록 같지만[性道雖同]"56)이라고 하였다. 만물이 화생(化生)한 다음이라면 '비록 같다[雖同]'는 것의 '같음'은 이미 분수의 같음에 해당하니 어찌 형태가 완성되기를 기다려 달라지겠는가? '형(形)' 자를 '기품이 혹 다르다[氣稟或異]'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형태와 기품은 그 의미가 현격하게 구별되니 녹문의 배척이 옳다. 다만 〈인물성도(人物性圖)〉와 기질(氣質)이 선(善)하다는 학설은 과연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 때문에 그의 말까지 폐기할 수 없으니 하물며 이 말의 잘못 때문에 다른 말의 타당함까지 폐기할 수 있겠는가.○〈납량사의〉"제가(諸家)가 사람과 사물의 성(性)을 언급하면서 한결같이 모두 이(理)를 분(分)이 없는 것이라 여기고 분(分)은 기(氣)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 형기(形氣)를 벗어난 곳에다 이일(理一)을 제한시키고 형기에 떨어진 이후에다 분수(分殊)를 국한시킨다. 이에 이(理)는 이대로 있고 분(分)은 분대로 있어 성(性)과 명(命)이 단절된다."○〈납량사의기의〉"만약 낙가(洛家)가 태극에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없고 성(性)에는 인의예지가 없다고 여겼다면 응당 '이(理)는 분(分)이 없는 사물이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만약 원형이정은 기(氣)로 인하여 비로소 존재하고 인의예지는 기(氣)에 의지하여 비로소 생겨난다고 여긴다면 '분(分)은 기(氣)로 말미암아 존재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 이(理)는 이대로 있고 분(分)은 분대로 있는 근심이 어디에 있겠는가?"〈변〉원(元)은 만물을 낳는 이(理)이고 두루 포용하고 보호하지 않음이 없으며, 형(亨)은 만물을 키우는 이(理)이고 조리와 등급이 찬연하고 밝게 드러나며, 리(利)는 만물을 완성하는 이(理)이고 제재와 차별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으며, 정(貞)은 만물을 갈무리하는 이(理)이고 대화(大和)를 보전하고 각각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한다. 이 이(理)는 하늘에서는 하늘의 이(理)가 되어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사람에게서는 사람의 이가 되어 만사의 이를 갖춘다. 이제 태극에 원형이정이 있음을 알면서도 원형이정의 이면에 사람과 사물의 편전(偏全)과 자연(自然)의 분(分)이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사람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천하의 일을 주관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하나의 몸을 가지면 이 몸을 주관하는 자가 있어야 하니 군상(君上)이 이에 해당하고, 이 몸을 낳은 자가 있어야 하니 부모가 이에 해당하고, 이 몸의 앞뒤로 태어난 자가 있어야 하니 형제가 이에 해당하고, 이 몸과 짝을 이루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 부부가 이에 해당하고, 이 몸과 동류인 자가 있어야 하니 붕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몸이 만물의 영장이라면 만물을 주재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이 몸이 천지의 마음이라면 천지를 돕는 이가 있어야 한다. 사람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하늘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늘에 대해 잘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에게서 관찰한다.하단(下段)의 〈외필변(猥筆辨)〉에서 이미 '기(機) 상의 이(理)만을 가리키면 태극이라 하고 사시(四時)의 기를 함께 거론하면 원형이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반드시 사시의 기(氣)를 함께 거론한 뒤에야 원형이정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기(氣)로 인하고', '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납량사의〉"지금 한 덩어리의 쇠가 있다고 할 때 이것으로 그릇을 만들 수 있고 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분수가 일(一)에 포함된 것이다. 이른바 찬연(燦然)하다는 것57)은 한편으로는 그릇을 만들 수 있고 한편으로는 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릇을 만드는 화로에 들어가면 그릇이 되고 칼을 만드는 화로에 들어가면 칼이 되어 각각 그 본분에 맞는 하나를 얻는다."○〈납량사의기의〉"가령 누군가가 말하기를, '경청로(輕淸爐)에 들어가면 하늘이 되고 중탁로(重濁爐)에 들어가면 땅이 되며 청수로(淸粹爐)에 들어가면 상지(上智)가 되고 탁박로(濁駁爐)에 들어가면 하우(下愚)가 되며 양강로(陽剛爐)에 들어가면 남자가 되고 음유로(陰柔爐))에 들어가면 여자가 된다. 이것은 각각 본연(本然)의 일(一)을 얻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장차 어떻게 변론하여 이를 물리치겠는가?"〈변〉사람이 되고 사물이 되며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 것은 쇠가 대야가 되고 사발이 되며 칼이 되고 검(劒)이 되는 것과 같다. 현자(賢者)가 되고 우인(愚人)이 되는 것은 쇠가 노구(爐鞲)의 긴밀함과 헐거움에 따라 단련(鍛鍊)의 정도가 정밀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한 것과 같다. 또 대야나 사발이 되고 칼이나 검이 되는 것이 쇠가 스스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주장하는 자가 존재하는 것인가?"○〈납량사의〉"이미 분(分)을 기(氣)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고 여겼으니, 사람과 사물이 동일하게 오상(五常)을 지닌 것을 본연의 성[本然之性]이라 하고 편전의 성[偏全之性]은 본연이 아니라고 하여 사람과 사물의 성(性)이 같다고 논해도 괴이할 것이 없다."○〈납량사의기의〉"편전(偏全)과 통색(通塞)은 분수(分殊)의 분(分)과 등급상 다른 점이 있다. 분수(分數)는 하늘과 땅,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전에 갖추어져 있지만, 편전(偏全)과 통색(通塞)은 도리어 부여받은 기(氣)에 달려있다. 또한 편전(偏全)은 사람과 사물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주자(朱子)는 '학지(學知) 이하로는 기(氣)의 청탁(淸濁)에 많고 적음이 있고 이(理)가 온전하거나 빠지거나 하는 것이 여기에 달려있다.'58)라고 하였다. 이제 성인과 범인이 동일하게 오상을 지닌 것을 본연(本然)의 성(性)으로 여기고 이(理)가 온전하거나 빠지는 것을 본연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떠한 장애가 있겠는가? 이와 같다면 사람의 성(性)에 대해서도 미루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변〉편전(偏全)으로 사람과 사물을 말하는 것은 본연(本然)의 분(分)이고 성인과 범인을 말하는 것은 기품(氣稟)의 이(異)이다. 만약 사람의 온전함을 본연이라고 하고 사물의 치우침을 기질이라고 한다면 사람만이 본연의 성(性)을 얻고 사물이 얻는 것은 기질의 성(性)일 뿐이겠는가. 그렇다면 솔개가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뛰노는 것59),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를 향해 타오르는 것60)이 모두 본연이 아니게 되니 천하에 자기의 성(性)을 성(性)으로 지닐 수 있는 사물이 어찌 하나라도 있겠는가.분(分)은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편전(偏全)을 도리어 부여받은 기에 달려있다고 여긴다면 사람과 사물의 분(分)은 편전(偏全)을 버려두고 다시 어떠한 분(分)이 있겠는가. 그 주장이 막히는 곳을 알 수 있으니 너무나도 생각이 부족한 것이다.○〈납량사의〉"오상이 사물에 따라 치우치거나 온전한[偏全] 것은 바로 이 이(理)의 본분이니,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편전(偏全)이 같지 않은데도 오히려 같다[同]고 하는 것은 마치 대야와 사발, 칼과 검(劍)을 쇠라고 한다면 같다고 할 때의 동(同)이지, 혼동해서 대야와 사발, 칼과 검의 차이가 없어서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편전의 성은 본연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릇이나 칼을 벗어나 쇠를 찾는 말이다."○〈납량사의기의〉"사람과 사물의 일원(一原)61)에는 오상(五常)이 있으니, 이것이 이(理)의 본분(本分)이다. 이제 오상(五常)이 기(氣)에 따라서 발현되는 과정에 전결(全缺)이 있는 것을 이(理)의 본분(本分)이라고 여기고 성(性)의 본연(本然)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주자(朱子)가 말한 '기질지성(氣質之性)이란 성(性)이 기질(氣質)에 떨어져 있는 것'62)이라는 것과 그 부류가 다르다. 이른바 기질(氣質)의 성(性)과 기질로 논하자면 대체로 성(性)이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얼음이 녹는 듯 분명한 해석인데 두 주장이 서로 어긋남이 없겠는가?"〈변〉사람과 사람이 다르고 사물과 사물이 다른 것은 기질(氣質)의 편전(偏全)이고 사람과 사물이 다른 것은 본연(本然)의 편전이다. 주자(朱子)는 "사람과 사물의 편정(偏正)은 원래 다르다."63)라고 하였다. 정자(程子)는 인(仁)을 말하면서 "편언(偏言)하면 하나의 일이지만 전언(全言)하면 4가지를 포괄한다."64)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편전(偏全) 또한 모두가 본연이 아니겠는가?○〈납량사의〉"'일(一)'로 '오(五)'를 견주어 보면 '오(五)'는 '일(一)'과 같고 '오(五)'로 서로 견주어 보면 분(分)이 여기에 존재한다. 산수(散殊)65)가 끝이 없다고 해도 모두 본분(本分)에 속하는 일이니 편전(偏全)을 낮추어 보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납량사의기의〉"일신(一身)의 관점에서 사지(四肢)를 보면 사지는 똑같이 일신이고 사지의 관점에서 서로를 보면 분(分)이 여기에 존재한다. 이것은 본래 그러하다. 그러나 어찌 사지와 분수(分殊)로 편전을 나누겠는가. 그래서 나는 분(分)과 편전(偏全)은 다르다고 말한다. 편(偏)을 말하고자 한다면 응당 사지가 마비되어 불편하거나 중풍이 들어 팔다리를 쓰지 못한 다음에야 비로소 편(偏)이라고 이를 수 있다. 낮춰보지 않고자 하더라고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변〉일신(一身)을 통틀어 말하자면 이일(理一)과 같고 온갖 부분을 가리켜 말하자면 분수(分殊)와 같다. 일신을 말하지만 백체(百體 온갖 부분)가 그 안에 있고 백체를 말하지만 일신이 그 안에 있으니, 일신 밖에 별도로 백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백체 밖에 별도로 일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일(理一)과 분수(分殊)가 각각의 범위가 있고 각각의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님이 이와 같다. 지금 일신을 사지(四肢)와 대립시켜 이일(理一)을 일신에 국한시키고 분수(分殊)를 사지에 제한하여 이일과 분수를 고정된 간격이 있는 사물로 여겼다. 이것이 본체는 같지만 작용은 다르므로 편전은 분이 아니라는 학설이 있게 된 까닭이다.○〈납량사의〉"《중용혹문》과 《대학혹문》에서 이미 음양오행설을 따라 그 강리(綱理 벼리가 되는 이)가 같음을 언급하고, 이어서 음양오행의 편전(偏全)으로 그 조건이 같지 않음을 언급하였다. 한때의 일을 앞뒤로 말하였으니 무슨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는가."○〈납량사의기의〉"음양오행의 편전은 본래 기질(氣質)에 속하고 건순오상(健順五常)의 조건은 본래 분수(分殊)에 속한다. 어찌 곧장 분수를 가리켜 편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다면 손발의 명칭이 다른 것을 편전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 되지 않을 듯하다."〈변〉장자(張子 장재(張載))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군자는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66)라고 하였다. 이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이 본연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주자(朱子)는 오행이 생겨날 때 그 성을 하나씩 갖는 것67)을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보았다. 이것은 장자(張子)의 말과 다르기는 하지만 각각 일의(一義)가 되기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본연의 분(分)이 아니라고 이를 수 없다. 간재의 〈납량사의기〉에서 이미 기질지성은 본연이 아니라고 하고 음양오행의 편전을 기질에 귀속시켜 이른바 마비, 중풍과 같은 부류로 여겼으니 매우 말이 되지 않는다.그렇다면 양강 음유(陽剛陰柔), 수윤 화조(水潤火燥)68)가 모두 본연이 아니라는 것인가. 천지 만물은 있으면 다 있으니 인체(人體)의 사지(四肢)와 백해(百骸 모든 뼈)가 더할 수도 없고 감할 수도 없이 완벽하게 충족되어 비거나 빠진 부분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태극(太極)의 대전(大全)이고 조화(造化)의 묘용(妙用)이다. 만약 "음양오행은 부여된 기에 달려있고 때가 되면 배정될 뿐이다."라고 한다면 태극은 결과적으로 헛된 명칭이 되고 조화를 행하는 자가 너무 수고롭지 않겠는가.하늘이 만물(萬物)을 낳는 것은 사람이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과 같다. 만사에 응하는 이(理)가 먼저 갖추어지지 않으면 인성(人性)의 본체에 흠결이 있게 된다. 만물을 낳는 이(理)가 먼저 갖추어지지 않으면 천명(天命)의 본원에는 소루함이 있게 된다. 천명의 본원과 인성의 본체가 다르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는 바가 아니다.주자(朱子)는 "사람과 사물의 성은 부여받은 형체의 편정(偏正)이 정녕 본래 같지 않다. 그러나 편정한 가운데 다시 절로 청탁혼명(淸濁昏明)의 차이가 있다."69)라고 하였다. 위 단락의 '본래 같지 않다.'는 것은 본연(本然)에 의한 분(分)이고 아래 단락의 '다시 절로 같지 않다.'는 것은 기에 따른 분(分)이다. 만약 위 단락과 아래 단락을 합쳐서 한결같이 기분(氣分)70)으로 귀결시킨다면 되겠는가. 凉議曰。分也者。理一中細條理。理分不容有層節。分非理之對。分殊二字。乃對一者也。○記疑曰。此語驟看。無可疑者。但蘆沙答奇景道書云。在天原無此分。則人物何處得來而有此偏全。然則此言分者細條理。將爲異日人物所得。偏本然全本然之源。愚意偏之與分。元非一串。分如一身耳目手足。偏如一耳獨聽。半身偏遂也。分是一中本有之理。而偏是氣上對全之性。恐難做一樣說也。理有分。故物有偏全。理若無分。物何自而有偏全乎。今曰分如一身之耳目手足。而爲一中之本有。請以此說明之。合耳目手足百骸百體。而爲一身之統體。合人獸草木萬象萬物。而爲天地之統體。知人身統體之理。本有於未生之前。而不知天地統體之理。本有於未形之前耶。知人耳目手足之本有。則鳥獸之羽毛蹄角。草木之枝葉花實。亦不可謂非本有矣。然則人物偏全。果非天命之本然乎。分與偏全。若非一串。朱子何以曰覆載生成之偏。又何以曰人物之生。其賦形偏正。固合下不同耶。至若獨聽偏遂。此是氣失其平。而爲未成之物也。烏可援而爲說耶。凉議曰朱子曰太極者象數未形而其理已具之稱。形器已具而其理無眹之目。夫象數未形。則未破之一矣。而其理已具。則非分之己涵乎。形器已具。則旣定之分矣。而其理無眹。則非一之自在乎。○記疑曰未審蘆沙以其理已具。爲人物所稟偏全之源乎。竊意此句指意。恐是父子君臣未生之前。慈孝禮忠之理已具。事物微細未有之先。事物微細之理已具云爾。非聖人未生之前。已有理一中分殊之全理。賢人衆人未生之前。已有幾分未全之理。下愚大憝未生之前。已有十分不移十分乖戾之理。鳥獸枯槁未生之前。已有偏塞之理。而各爲萬象所得之源也。然則似與蘆沙所謂在天源無此分。則人物何處得來而有此偏全云者。判然殊別矣。可疑。盈天盈地。若大若細。無一物而非象數與形器也。然則人未生而人之理已具。物未生而物之理已具者。何足多辨彼於此義。必非不知。而故引氣質分數下愚大憝之語。眩混其說。以濟其一時忌克之私。噫。用心如此。此等理致之得失。猶是小事也。天偏於覆。而地偏於載。日偏於晝。而月偏於夜。目偏於視而耳偏於聽。手偏於持。而足偏於行。以昭昭而視周天。則周天爲全。以涓涓而視河。海則河海爲全。以一葉而視一樹。則一樹爲全。以一肢而視一身。則一身爲全。天下何物果有外於偏全者哉。以此爲非本然。則天下更無本然久矣。且以鳥獸草木。謂非理之所本有。則人是何物。獨爲理之所本有耶。人旣非本有。則慈孝禮忠之理。豈獨爲本有而已具於何處耶。豈以急於取辨而有不暇察也耶。凉議。曰性同者。吾不曰不然。而以偏全之性。爲非本然。則是分外有理也。遂主同而廢異。則性爲有體無用之物矣。○記疑曰。洛家若指性中發出來底忠孝仁讓。而曰此分之殊。非本然之性也。則分外有理。而性爲無用之物矣。但謂萬象之性。其體本全。而自學知以下。至於翔走枯槁之發見。各隨所稟之氣而自爲一性。由未達一間。至於一點子。由相近至絶不同。由天縱之聖。至下愚不移。其品有萬不齊。是安可皆謂本然之性乎。氣之淸濁粹駁。固隨遇而適然。萬物之生。偏全之分。亦隨遇而適然者乎。若隨遇而適然。則豆可以瓜。瓜可以豆馬可以角。牛可以鬛。上帝之主宰。乾道之各正。果是何事。欲守偏全分之語。而至於上帝失其宰。乾道失其職。可乎不可乎。萬象之性。其體本全。至於發見自爲一性。此果成說乎。然則犬之性牛之性。與人之性同其全。草之性。木之性。與天之性同其大。而至於發見而後。乃始爲天爲人爲犬牛爲草木耶。言之無謂。令人代赧。凉議曰。天下之性不全則偏。固未有不全又不偏之性也。偏全皆非本然。則天下無一物能性其本然之性者。而本然之性永爲懸空之虛位。卽將安用彼性矣。所貴乎正通者。以其得本然之性也。若與偏塞者。均之爲非其本然。則何正通之足貴乎。蓋以無分爲一。其敝必至於此。其以各正之性。爲落分殊犯形器。不足以爲一原。與甲邊之議。恐無異同。○記疑曰。問氣質不同。則天命之性。有偏全否。朱子曰。非有偏全。此洛家之所本也。今若譏之曰。天下之性。旣無偏又無全。則不過爲虛位云爾。則豈得爲盡人之言者耶。此不待多般而明矣。所貴乎正通者。以其得本然之全。然則偏塞者所得。只是本然偏矣。無乃與天命之性。非有偏全者。相盭矣。若改之曰。所貴乎正通者。以其能全本然之性。則似無可議矣。朱子曰。非有偏全。又曰。人物之生。其賦形偏正。固自合下不同。須知理之非有偏全。又知理之不容無偏全。然後方可謂識理矣。天命之性所以賦予者。固無人物貴賤之殊者。是無偏全之謂也。萬殊之分。森然已具於一原之中者。是有偏全之謂也。徒知非有偏全之語。而謂人物無各正之性。徒知合下不同之語。而謂人物無一本之性者。皆執一而廢百。得此而失彼者也。旣不能盡乎朱子立言之意。而乃反譏人以不能盡人言之意耶。朱子曰。各正得於有生之初。然則正通者。得本然之全。偏塞者。得本然之偏。又何疑乎。凉議曰偏全指善一邊。如孔隙雖有大小。而月光自若。盤盂雖有方圓。而水性無恙。豈不是本然。○記疑曰信斯言也。蜂虎果然之仁義。堯舜周孔之仁義。毫無殊別矣。然則朱子何以言仁義禮智之粹然者。人與物異乎。彼以偏全謂非本然。而曰萬象之性。其體本全。外偏全而言本全。則蜂虎之性。與堯舜之性。果無毫髮差殊。可謂倒戈而自攻。言人物分殊。則以其體本全駁之。言人物性同。則以蜂虎果然譏之。亦可謂無定論。而隨其人之所在而攻之者也。凉議曰氣質是兼善惡。如和泥之水。稠淸百層。隔窓之月。明暗多般。以偏全爲氣質。豈不低陷了偏全。○記疑曰堯舜孔子之全。固當爲本然。至於夷惠之偏於淸和。顔閔之具體而微。游夏之僅有一體。則豈非出於氣質乎。此類不可謂兼善惡也。人猶如此。況於微物乎。今不欲以偏全爲氣質。恐終可疑。夷惠游夏之偏。是氣質之善一邊也。桀紂幽厲之暴。非氣質之惡一邊乎。雖以善一邊言之。其些有未盡處。亦不可謂非未善也。今乃特擧善一邊。而謂之不兼善惡可乎。偏全之云。不須再辨。凉議曰氣質之性。君子有不性者焉。人物偏全之性。君子亦有不性焉者乎。○記疑曰。氣質之性。君子有不性者焉。本橫渠先生語。先生又嘗言。凡物莫不有是性。由通蔽開塞。所以有人物之別。由蔽有厚薄。故有知愚之別。今以上一股爲偏塞。而屬於本然之性。下一股爲氣質。而降爲不性之科。恐文義事理俱難如蘆沙之言矣。問氣質不同。則天命之性。亦有偏全否。朱子曰。非有偏全。偏全之性。豈非朱子之所不性焉者乎。據此則南塘蘆沙兩說。似當更加商確。恐未可認爲千古不易之論也。橫渠先生此說。主意專在於人物賢愚通蔽開塞厚薄難易之分。而次第說來。其文勢語脈。於本然與氣質。有不暇及。又安知今日有此偏全非分之說。而豫爲準備之耶。偏全之出於氣質者。固不性焉。偏全之由於理分者。亦不性焉乎。偏言之仁。專言之仁。亦朱子不性焉乎。覆載生成之偏。天地亦不性焉乎。千古不易之論。恐非人人所得知也。朱子曰。人物之生。其賦形偏正。固自合下不同。然於不同之中。又各自有淸濁粹駁之不同。上段不同。是本然之分下段不同。是氣質之異。中庸章句。先言人物各得之分。次言氣稟或異。橫渠此言。亦是此義。豈以下一股言氣質。而賺連上一股。亦作氣質看耶。凉議曰理旣云萬事本領。氣是甚樣物事。乃獨你一我殊背馳去。近世諸先生圻開理分。大抵皆你一我殊之論。其蔽也。氣無聽命於理。理反取裁於氣。天命之性。徒爲虛語耳。○記疑曰。理一分殊。固是理中事。然分殊。先賢直就氣異處說者。極多。今且以隙日譬之。隙之長短大小。自是不同。然只是此日。只是此日。理一也。隙自不同。分殊也。此與前一義。可倂行而不相礙也。至若天命之性。雖十分大全。十分至善。無奈所賦形氣有異。莫能遂其本然。雖是性體而氣用。亦是理弱而氣强。故不能無蔽也。若以分殊專歸之理。則理果號令乎氣。氣果隨順於理。而更無不治之國。更無爲惡之人也。恐難如此立語。以本原而言。則條理分殊。固粲然已具。此道器不雜處。太極圈所以排出也。以流行而言。則條理分數。可以卽氣而見其實。此道器不離處。陰陽五行圈所以爲各具也。先賢多就氣異處。說分數者。此也。如以隙日譬之。隙雖有長短大小。而其長短大小必照之光。固燦然已具於日矣。至於光之成形著迹。則可以就其隙而見其實也。理爲氣主。曷嘗是有作用行號令之謂。然無其理則無其事。有其理則有其事。有作用之理。故氣能作用。有號令之理。故人能號令。若以條理分數。一歸於氣。則三百三千。皆非本然。其有關於世敎。爲何如哉。旣曰分是理中矣。而繼以分殊專歸於日之隙。旣曰天命十分大全矣。而繼以分殊不專歸於理。則所謂理中事。果何事。所謂十分者。果是幾分耶。未見其倂行而不相礙也。若曰性體而氣用。則性爲有體無用之物耶。如此則程子所謂體用一原。爲二原矣。所謂顯微無間。爲有間矣。所謂未應不是先。已應不是後。爲有先後矣。近世主氣之說。其失蓋原於此。若以不治之國爲惡之人。而疑理不爲主。則是見有媢德之人。而斥烝民好德之言。見有性惡之人。而廢孟子性善之說。可見其說之窮矣。凉議曰。五常人物同異。畢竟惡乎定。曰定於先覺之言。朱子之論此固多。其見於四子註說者。則手筆稱停。非記錄書疏之比。其言人物五常。凡有三處。曰人物之生。必得是理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者。大學或問也。人物之生。各得所賦之理以爲健順五常之德者。中庸章句也。此皆不區分人物。一例說去。粗通文理者。初不難辨。且得以爲性。得以爲德之云。皆屬成性以下。而非繼善以上事。則朱子之意。明以人物之生爲同五常矣。獨於孟子生之謂性章集註。以理言之。則仁義禮智之粹然者。豈物之所得以全哉。【田愚按。粹然者。本作稟。以本作而】此爲區分人物處。【田愚按。此註亦不專於區分人物。何以言之。上文旣言性形而上者。人物之生。莫不有是性。是性何性。卽所謂仁義禮智之性也。是章句或問之同矣。如以物豈得全爲區分人物之斷案。則章句下文。豈不曰。氣稟或異。故不能無過不及之差。或問下文。豈不曰彼賤而爲物者。梏於形氣。而無以充其全矣乎。此二條。又皆與孟註之云。無些子異意。愚按。謂三處俱是同體異用之說也。】然而只曰物豈得全。不曰物莫得與。則此亦人物同五常之說也。朱子之爲此說。豈喜爲刱新之論。以同人道於庶類哉。蓋此理之外。更無佗理。是以直以從上聖賢。四破人性的字。一萬物而貫之。不以爲嫌也。【田愚按。以上所論。無不與洛家同。】雖然。一而無分。非吾所謂一也。故庸學或問。卽言鳥獸草木之生。僅得形氣之偏。而不能有以通貫乎全體。彼賤而爲物者。梏於形氣之偏塞。而無以充其本體之全。此言人物之性。雖同此一理。而理中之分限。不能無也。氣所以承載此理。故雖不離形氣而言分。而一之未嘗無分於此因可見矣。合此上下文義而觀之。其與生之謂性集註。亦非有異義也。後人各占二半。就生軒輊。此豈朱子之所能料哉。是知物我均五常者。理之一也。五常有偏全者。一中之分也。蓋自統體一極。理分圓融而無間。故其成性於萬物者。又如此。故先覺論性。有言理同理不同者。非相戾也。共公以論其妙。則排出而言之。眞的以指其體。則卽氣而明之。排出則理本一。故理一爲主。而萬殊涵於其中。【田愚按。以偏而不全者。爲萬殊。殊不可曉。】卽氣則氣已分。故分殊爲主。而理一存乎其間。自是話有兩般。何曾性有多層。諸家緣理分一體處。未甚着眼。說異則欲獨擅五常。說同則乃低視偏全。差以毫釐。謬以千里。豈不信乎。○記疑曰。庸學或問。若單言微物而不倂擧衆人。則猶或可如蘆沙之言矣。今其文明明言知愚賢否氣稟之異。而曰於其所謂性者。有所昏雜而無以全其所受之正。又曰。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弊。而失其全矣。此與微物之不能通無以充者。語意一致。類例無二。而以不能通無以充歸之本然之性。無以全失其全。歸之氣質之性。則無亦有失其平之嫌乎。如有人質於蘆沙曰。聖凡均德性者。理之一也。德性有偏全者。一之分也。則將應之曰然乎否乎。就人物上倂擧五性字而言之者。有此三處。故先師云然耳。下文之區分有無。不須論也中庸章句氣稟或異非人物之區分。是就人物上區分其氣稟之不同。若人物之區分。則已在於上文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條。此亦可以知人物偏全爲本然之分也。同體異用與性體氣用之說。同一圈套。不足多卞。所謂與洛家同者。其實有不同焉。先師所謂同。卽實底同。諸家所謂同。乃虛底同。庸學或問。主言天命明德人物一原。而究別其源委曲折多寡分數。故自草木禽獸。至於衆人賢人。以至於聖人之盡性而乃已。其語脈次第。固應如此。至若本然與氣質。自是別說。有不暇區別。章句曰。人物各得所賦之理。又曰人物各循其性之自然。或問曰。無以通貫全體。又曰無以充其本體。何其褒於章句而貶於或問也。蓋章句言所稟本然之妙。或問言所賦分數之異。今見其貶者。以爲非本然。則倂與其褒者而以爲非本然耶。無以全。失其全。正章句所謂氣稟或異者。而爲修道立敎處也。凉議曰。本體而云無以充。本體爲性分耶。至無以充三字。始爲性分耶。全體而云不能通貫。全體爲性分耶。至不能通貫四字。始爲性分耶。曰本體全體。卽性分中理一處。無以充不能通貫者。卽性分中分殊處也。兩項事理。有則俱有。今必欲二而論之。謬矣。○記疑曰。無以充不能通貫。分明是形氣偏塞之病。今必以爲性之分殊。使人聽瑩。且以大學論之。天降生民。莫不與性。性分中理一處。氣稟不齊。不能皆全。性分中分殊處。虛靈具應德分中理一處。拘蔽或昏。德分中分殊處。如此說亦得否。請觀者爲下一轉語。無以充不能通。豈朱子歎草木鳥獸之不能服堯服言堯言而爲是說耶。只是據天命明德。而言其所存不同之分。有如此耳。人而服堯言堯。人將以爲聖矣。草木鳥獸而服堯言堯。人將以爲怪矣。然則無以全。失其全。在人固爲氣稟之蔽。無以充。不能通在物豈非本然之分耶。凉議曰以理言之。則萬物一原。固無人物貴賤之殊。此一節。所謂排出以言其妙。理一爲主也。以氣言之。則得其正且通者爲人。得其偏且塞者爲物。此一節。所謂卽氣以指其實。分殊爲主者。○記疑曰。上一節。言一性之中含具萬理。一性理一也。萬理分殊也。人物同此一原也。【雖萬言分殊。不害其無人物貴賤之殊。據此可見分偏之不可以相準。此一着最可領悟。】下一節却只專言氣稟事。蓋此二十一字。無一點一畵可指理之實處。而蘆沙之言如此。可疑。爲人爲物。不在本然分殊之中。則所謂分殊。果是何事。所謂人物。果從何處來。人物之分。固已具於一原之中。而人底只是此理。物底亦只是此理。故曰無貴賤之殊也。人物之分。固已素定。而至氣以成形而後。方見其實。故曰卽氣而指其實。孔子以一陰一陽爲道。程子以川流不息爲道體。朱子以五行爲道之體段。人苟達於理致。則盈天地形形色色。莫非道理也。今以正通偏正。謂非理之實體。則必言理字道字太極字而後。乃謂之理耶。一點一畵之云。令人可笑。凉議曰。心雖氣分事。而乃所具則性也。心具性。凡聖同。心不能盡性。凡聖異。其同其異。皆所重在性也。南塘乃忘其同者。主張其異者。以聖凡異心爲法門。其亦矛盾於聖人之意矣。與南塘辨者。亦不言其所重之有在。區區較其光明之分數。欲以此爲同聖凡之心。未爲箚着痛處。○記疑曰。氣質者。淸濁粹駁。有萬不齊。心者虛靈神妙。有一無二。南塘乃認兩者爲無辨之物。今不指其光明之無優劣分數。只擧心具性聖凡同者以辨之。其不被南塘之哂者鮮矣。況心之具性。微物亦然。何足以辨南塘之疑乎。心與氣質。不是判然二物。隨其淸濁粹駁。而其靈不能無分數。固不可指此而謂聖凡同。亦不可專認光明爲心而謂聖凡異。然則所重之外。更安有一物獨無優劣分數者乎。抑或有形而下之明德耶。【任全齋以明德爲形而下。】近世諸儒。多以氣質爲不囿於身體。又以虛靈爲不根於氣質。有上帝降靈坐在方寸之語。遂以此爲明德。以此爲同聖凡。此與異說其光爍爍死而不滅。何別。夫氣質者。只是此身陰陽之團聚。而心則其精爽也。氣旣有淸濁粹駁。則其精爽不容無分數。但所具者性也。所謂本心良心仁義心。何嘗有聖凡之異。今見光明無分之語。可知其承誤踵訛。非一朝一夕之故也。凉議曰。碎紙中。得鹿門任氏一段議論。苟言異則非但性異。命亦異也。苟言同則非但性同。道亦同也。此言驟看外面。殆若鹿邊者獐。獐邊者鹿。而其實說得道理原頭。無有滲漏。伊川理一分殊四字。賴此公而一脈不墜於東方歟。恨未得其全書而攷閱也。○記疑曰。理一分殊。伊川何嘗以之論性。只因西銘。使人推理而知其一。存義而立其分而已。楊李朱子所論。亦皆如此。至羅整庵始揭此四字。以爲性命之妙。無出於此。其言曰。受氣之初。其理惟一。成形之後。其分則殊。此與蘆沙之意遠矣。又曰。以理一分殊。論性。則自不須立天命氣質兩名。則其說更乖矣。又其認理氣爲一物。而深病乎朱子理氣二物之訓。則愈不可說矣。我東任鹿門。又祖述羅氏四字之旨。而其言曰。乾之健卽太極。而健之中。有元亨利貞。坤之順卽太極。而順之中。有元亨利貞。元亨利貞卽陰陽五行也。然乾之元亨利貞。依舊是健。坤之元亨利貞。依舊是順。然則乾坤之太極。自不害其不同也。又作人物性圖。人圈具書五常。太極物圈只書太極而不書五常。又論朱子渾然太極各具一物之說云。此謂卽此各一處。天理完全無所虧欠耳。非謂一物具萬理。此皆看得分殊之過。而至於如此。又論人性之善曰。此乃氣質之外。別有善底性也。此尤不可曉矣。使蘆沙復起見此。不覺蹙頞而長太息也。老洲吳先生。嘗有論羅任兩家者極多。今擧三段附見于下。使蘆門諸公看詳焉。○老洲集雜識曰。整庵鹿門均爲理氣一物之論。然整庵於理一看得重。鹿門於分殊看得重。看理一重。則自然理爲主。看分殊重。則畢竟氣爲主。以此較論得失。整庵殆其少疵矣乎。又曰。整庵鹿門皆從推理看得合一之妙者。驟看非不高妙。然其究也。皆歸於主氣。而整菴則猶有每每提掇此理之意。鹿門直以一氣字。盡冒天下之理。更不求理之所以爲理。蓋鹿門之見。實本於整菴。而其主張氣字。則殆過之耳。又曰。整庵以理一分殊。爲說理氣底枰子。其曰。性以命同。道以形異者。極是。性以命同。卽未發而指理一也。道以形異。卽已發而指分殊也。鹿門祖述其理一分殊。而獨深斥此語。何也。終是拘於人物之偏全。不能疏觀性道雖有體用之異。不害其一原之同也。德無常師。主善爲師。善無常主。協于克一。曰一致而百慮。同歸而殊塗。曰吾道一以貫之。曰其爲物不貳。則其生物不測。曰博學而詳說之。將以反說約也。細究而詳玩之。則經傳之中。說理一分殊義甚多。而無非所以明此心此性之妙也。朱子曰。理與氣。伊川說得好。曰理一分殊。理一分殊。卽伊川所雅言也。豈但因西銘而發哉。程子又曰。沖漠無眹。萬象已具。張子曰。性者萬物之一原此不可以論性耶楊李二氏以仁義論理一分殊是豈至羅氏始揭以說性耶。鹿門健順太極之說。恐無害。而其曰元亨利貞卽陰陽五行一條說。有理氣一物之病。羅整庵性以命同道以形異之說。有不可曉。中庸章句性道雖同。在化生萬物之後則雖同之同。已是該分之同。豈待形而後異哉。形字若作氣稟或異看。則形與氣稟。意義逈別。鹿門斥之是矣。但人物性圖及氣質之善之說。果不可曉。然不以人廢言。況以此言之失而廢他言之得乎。凉議曰諸家言人物之性。一是皆以理爲無分之物。分爲因氣而有。限理一於離形氣之地。局分數於墮形氣之後。於是理自理。分自分。而性命橫決矣。○記疑曰。若使洛家謂太極而無元亨利貞。性而無仁義禮智。則當曰理爲無分之物矣。若謂元亨利貞因氣而始有。仁義禮智待氣而始生。則當曰分爲因氣而有矣。今旣不然。則安有理自理分自分之患乎。元是生萬物之理。而包含徧覆。無不周徧。亨是長萬物之理。而條理等威。粲然宣著。利是成萬物之理。而裁制差別。無不恰當。貞是藏萬物之理。而保合大和。各正性命。此理也。在天爲天之理。而萬物之理具焉。在人爲人之理而萬事之理具焉。今知太極之有元亨利貞。而不知元亨利貞裏面。有人物偏全自然之分耶。人有一箇身。便須管着天下事。夫何故。有一箇身。必有主此身者。君上是也。必有生此身者。父母是也。必有此身先後生者。兄弟是也。必有此身對配者。夫婦是也。必有此身同類者。朋友是也。此身爲萬物之靈。則必有宰萬物之理。此身爲天地之心。則必有輔相天地之理。人猶如是。況於天乎。善言天者。必於人觀之。下段猥筆辨。彼旣曰單指機上之理則曰太極。兼擧四時之氣則曰元亨利貞云云。必兼擧四時之氣而后曰元亨利貞。則此非因氣待氣而何。凉議曰。今有一塊銅鐵。可以爲盤盂。可以爲刀劒。是分殊之涵於一。所謂粲然者。非東邊可爲盤盂。西邊可爲刀劍。則渾然。及其人盤盂爐而爲盤盂。入刀劒爐而爲刀劍。各得其本分之一。○記疑曰。假如有人言入輕淸爐而爲天。入重濁爐而爲地。入淸粹爐而爲上智。入濁駁爐而爲下愚。入陽剛爐而爲男。入陰柔爐而爲女。是各得其本然之一云。將如何辨破。爲人爲物。爲男爲女。是銅鐵之爲盤爲盂爲刀爲劒也。爲賢爲愚。銅鐵之遇爐鞲緊歇。而鍛鍊有精鹿也。且爲盤盂爲刀劒。是銅鐵之自爲邪。有主張者存乎否。凉議曰。旣以分爲因氣而有。則無怪其以人物同五常。爲本然之性。而偏全之性。爲非本然。有人物性同之論。○記疑曰。偏全通塞。與分殊之分。殺有不同。分雖具於天地人物未生之前。而偏全通塞。却繫於所賦之氣。且偏全非可單言於人物。亦可幷言於聖凡。故朱子言學知以下。氣之淸濁有多寡。而理之全缺繫焉。今以聖凡同五常。爲本然之性。而理之全缺者。爲非本然。有何窒礙乎。如此則人之性。可以三隅反也耶。偏全以人物言者。本然之分也。以聖凡言者。氣稟之異也。若以人之全謂本然。而物之偏謂氣質。則人獨得本然之性。物之所得。只是氣質之性而已耶。然則鳶飛魚躍。水潤火燥。皆非本然也。天下安有一物能性其性者耶。旣曰分已具於人物未生之前。而猶以偏全謂却繫於所賦之氣。夫人物之分。舍偏全而更有何分乎。可知其說之窮矣。不思之甚也。凉議曰。五常之隨物而偏全。乃此理之本分。何可同也。偏全不同。而猶謂之同者。如盤盂刀劒爲銅鐵則同之同。非以混同無盤盂刀劒而謂之同也。偏全之性非本然。離盤盂刀劒而求銅鐵之說也。○記疑曰。人物一原之中。有五常。此爲理之本分。今以五常之隨氣而發見有全缺者。謂之理之本分。而喚做性之本然。此與朱子性之在氣質者。其品不一。所謂氣質之性。與以氣質論則凡言性不同者。皆氷釋之訓。無或相戾乎。人與人不同。物與物不同。此是氣質之偏全。人與物不同。此是本然之偏全。朱子曰。人物偏正。固自合下不同。程子言仁曰。偏言則一事。全言則包四者。此言偏全。亦皆非本然耶。凉議曰。以一視五。五者同一。以五相視。分於是存。雖散殊之無窮。皆本分中事。欲低視偏全可乎。○記疑曰。以一身視四肢。四肢同一身。以四肢相視。分於是存。此固然矣。然豈可以四肢與分殊。分偏全乎。愚故曰。分與偏全不同。如欲言偏。當曰四肢或有痿痺不仁。癱瘓不遂。然後方可謂之偏。雖欲不低視得乎。統一身而言。則猶理一也。指百體而言。則猶分殊也。言一身而百體在其中。言百體而一身在其中。非一身之外別有百體。非百體之外。別有一身。理一分殊之非各有方所各有時節。如此。今以一身對四肢。而局理一於一身。限分殊於四肢。以理一分殊爲局定間隔之物。此其所以有同體異用偏全非分之說也。凉議曰庸學或問。旣從陰陽五行說來。言其綱理之一般。繼以陰陽五行之偏全。言其條件之不同。一時事而先後言之。有何可疑之端乎。○記疑曰陰陽五行之偏全。自屬氣質。健順五常之條件。自屬分殊。何可直指分殊爲偏全乎。若如此則手足之異名。而可謂之偏全。恐不成言。張子曰。氣質之性。君子有不性者焉。此言氣質性之非本然也。朱子以五行之生。各一其性。爲氣質之性。此與張子之言。雖不同。而不害其各爲一義也。此則不可謂非本然之分也。彼旣以氣質之性。謂非本然。而以陰陽五行之偏全。歸之於氣質。而與所謂痿痺癱瘓者。同科。其無謂甚矣。然則陽剛陰柔。水潤火燥。皆非本然耶。天地萬物。有則俱有。如人身之四肢百骸。加不得。減不得。完全周足。無有空闕。此是太極之大全。造化之妙用。若曰陰陽五行。繫於所賦之氣。而爲臨時排定云爾。則太極果是虛位。而爲造化者。不已勞乎。天之生萬物。猶人之應萬事。應萬事之理。不先具。則人性之體。有欠闕矣。生萬物之理。不先具則天命之原。有疎漏矣。若曰天命之原。與人性之體。有不同云。則非愚之所知也。朱子曰。人物之生。其賦形偏正。固自合下不同。然於偏正之中。又各自有淸濁昏明之不同。上段合下不同。是本然之分也。下段又自不同。是隨氣之分也。今合上下段。而一歸之氣分可乎。 납량사의(納凉私議) 기정진(奇正鎭)이 1843년에 작성한 성리학 저술로, 우주의 구성에서부터 인간의 본질에 대한 해명, 사단칠정과 인심도심(人心道心) 등 심성의 문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의 문제, 선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이체이용(理體理用)의 논리로 설명하였다. 편전(偏全) 치우침과 온전함, 부분과 전체, 소와 대의 차이 등을 나타낼 때 쓰는 성리학 용어이다. 주자(朱子)는……말하였겠는가 《중용장구》 제12장에 "천지의 큼으로도 사람이 오히려 한스러워하는 바가 있다."라고 한 데 대한 주희의 집주에 "사람이 천지에 대하여 한스러워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덮어주고 실어주어 낳고 이루어주는 편벽됨과 추위와 더위, 재앙과 상서가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人所憾於天地, 如覆載生成之偏及寒暑災祥之不得其正者.]"라고 한 것을 이른다. 사람과……않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에 보인다. 태극(太極)이라는……가리킨다 《주역전의대전》 〈역본의도(易本義圖) 복희팔괘차서지도(伏羲八卦次序之圖)〉에 〈계사전〉을 인용하여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았다.[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 아래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주희(朱熹)의 말에 보인다. 낙가(洛家) 낙론 또는 낙파라고 한다. 심(心)과 성(性)에 대한 이해(理解)의 문제로 성리학자들이 대립하여 진행된 논쟁인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낙론(洛論)은 미발은 마음의 본체로서 순선(純善)하여 선악이 없고 사람과 물건의 성은 본연지성으로 이(理)와 같으므로 같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고, 호론(湖論)은 미발한 마음의 체에도 기질의 선악이 있으며 현실에 드러나는 본연지성은 기질의 맥락 속에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과 물건의 성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에 있어 주로 서울ㆍ경기 지역에 거주한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외암(巍巖) 이간(李柬) 등이 한 파를 이루어 이를 낙론 또는 낙파라 하였으며, 충청 지역에 사는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등이 또 한 파를 이루어 이를 호론 또는 호파라 하였다. 한 칸을……미치는 것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권9 〈자한(子罕)〉에 "양씨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등급인 선인(善人)으로부터 선(善)을 충실히 하여 빛나는 등급인 대인(大人)에 이르기까지는 역행(力行)을 쌓아서 될 수 있지만, 대인이 성인이 되는 것으로 말하자면 역행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안자가 성인의 경지에 한 칸을 못 미친 이유이다.[可欲之謂善, 充而至於大, 力行之積也. 大而化之, 則非力行所及矣. 此顏子所以未逹一間也.]' 하였다."라고 하였다. 일점자(一點子) 주희가 인물지성(人物之性)에 대해 논한 대목 가운데 "기(氣)는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예컨대 춥고 따스한 것을 느끼는 것이나, 배고프고 배부른 것을 아는 것이나,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나, 이익을 좇고 해를 피하는 것 등은 인(人)과 물(物)이 모두 같다. 반면에 이(理)는 같지 않다. 그래서 예컨대 벌과 개미의 군신은 단지 그 의(義)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아는 것이 있을 뿐이며, 범과 이리의 부자는 단지 그 인(仁)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아는 것이 있을 뿐이다.[氣相近. 如知寒煖, 識飢飽, 好生惡死, 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 有一點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 有一點子明.]"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朱子語類 卷4 性理1 人物之性氣質之性》 서로……다른 것 주희가 말한 이(理)와 기(氣)의 차이를 의미한다. "만물은 근원이 하나라는 점에서 논하면 이(理)는 같고 기(氣)는 다르다. 그러나 만물의 체(體)가 다르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기(氣)는 그래도 서로 비슷하지만 이(理)는 완전히 다르다.[論萬物之一原, 則理同而氣異. 觀萬物之異體, 則氣猶相近, 而理絶不同.]" 《朱子語類 卷4 性理1 人物之性氣質之性》 하늘이 내린 성인 《논어》 〈자한(子罕)〉에 자공(子貢)이 공자를 찬양하며 "진실로 하늘이 내신 성인이시다.[固天縱之將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지극히……사람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知與下愚不移.]"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건도(乾道)가……바로잡는 것 《주역》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하늘의 도가 변화하여 각 생명의 타고난 성품이 바르게 길러지도록 한다.[乾道變化 各正性命.]"라는 말이 나온다. 편전이……아니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 1〉에 보인다. 편전(偏全)이……아니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 1〉에 보인다. 사람과……때문이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에 보인다. 각정(各正)은……얻는다 《주역본의(周易本義)》 〈건괘(乾卦)〉에 보인다. 벌과……인의(仁義)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1, '인물지성기질지성'에 "기(氣)는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예컨대 춥고 따스한 것을 느끼는 것이나, 배고프고 배부른 것을 아는 것이나,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나, 이익을 좇고 해를 피하는 것 등은 인(人)과 물(物)이 모두 같다. 반면에 이(理)는 같지 않다. 그래서 예컨대 벌과 개미에게 군신간의 의리가 있는 것은 단지 그 의(義)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아는 것이 있을 뿐이며, 범과 이리에게 부자간의 의리가 있는 것은 단지 그 인(仁)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아는 것이 있을 뿐이다.[氣相近. 如知寒煖, 識飢飽, 好生惡死, 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點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點子明.]"라는 내용이 보인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다르다 《맹자집주(孟子集註)》 〈고자〉 주자주에 보인다. "성(性)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의 이(理)이고 생(生)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의 기(氣)이니, 성(性)은 형이상이고 기(氣)는 형이하이다. 사람과 물건이 태어날 때에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없으며, 또한 기(氣)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러나 기(氣)로써 말한다면, 지각과 운동은 사람과 물건이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이(理)로써 말한다면, 인의예지의 본성을 받은 것을 어찌 물건이 얻어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사람의 성(性)이 불선함이 없어서 만물의 영장이 되는 이유이다.[性者, 人之所得於天之理也; 生者, 人之所得於天之氣也. 性, 形而上者也; 氣, 形而下者也. 人物之生, 莫不有是性, 亦莫不有是氣. 然以氣言之, 則知覺運動, 人與物若不異也; 以理言之, 則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哉? 此人之性所以無不善而爲萬物之靈也.]"라고 하였다. 안연(顏淵)과……지닌 것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자하ㆍ자유ㆍ자장은 모두 성인의 한 지체를 가졌고 염우ㆍ민자건ㆍ안연은 그 전체를 소유하였으되 광대하지 못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있다 《장자전서(張子全書)》 권14 〈성리습유(性理拾遺)〉와 《근사록》 〈도체편〉에 보인다. 하늘이……없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 1〉에 보인다. 편언(偏言)의……인(仁) 편언은 다른 개념과 상대적으로 말한 것고 전언은 전체로 말했을 때를 가리킨다. 《주자어류》에 "편언이나 전언이라는 것은, 단지 인만 말했을 때에는 곧 체로서의 인을 말하지만, 의를 말했을 때는 곧 인에서 갈라져 나온 하나의 도리라는 것이다.[偏言、專言者, 只說仁, 便是體; 才說義, 便是就仁中分出一箇道理.]", "편언은 한 가지 일이고, 전언은 인ㆍ의ㆍ예ㆍ지 네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다.[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子語類 卷94 周子之書 太極圖, 卷95 程子之書1》 사람과……있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 1〉에 나오는 말이다. 태극권(太極圈)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의 글을 지었다. 도의 맨 위가 1층으로 태극권이며, 그 아래 2층이 음양권, 그 아래 3층이 오행권, 그 아래 4층이 남녀권, 그 아래 5층이 만물권이다. 3백, 3천의 예(禮) 예의 조목이 많음을 형용하는 말로,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경례가 삼 백이고 곡례가 삼 천인데, 그 근본을 따져 보면 성경 한 가지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체(體)와……없다 체용일원(體用一源) 현미무간(顯微無間)은 정주학의 유명한 명제(命題) 중의 하나인데, 체(體)가 본질이요 본체요 이치[理]요 형이상(形而上)의 절대적 진리를 표상하는 개념으로서 미(微)를 그 속성으로 한다면, 용(用)은 작용이요 기능이요 자취[迹]요 형이하(形而下)의 현상 세계를 표상하는 개념으로서 현(顯)을 그 속성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녹문집》 권20 〈존존감기(存存龕記)〉에, 정이가 경(敬)을 주일(主一)로 설한 것에 대해서, 녹문이 "이것 역시 천기를 너무 누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其亦可謂太漏洩天機者矣.]"라고 평한 대목이 나온다. 미응(未應)이……아니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에 "텅 비어 조짐이 없을 적에 이미 만상(萬象)이 삼연(森然)히 갖추어져 있으니, 미응(未應)이 먼저가 아니고 이응(已應)이 뒤가 아니다. 예를 들면 100자 되는 나무가 근본으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로 꿰여 있는 것과 같다.[沖漠無眹,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보인다. 새와……없다 《대학혹문(大學或問)》 권1 〈경 1장(經一章)〉에 보인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 이치로써 말하면 만물은 하나의 근원이니 참으로 사람과 물에 귀함과 천함의 차이가 없고, 기로써 말하면 바르고 통하는 것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되기 때문에 귀해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저 천하여 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고, 오직 태어나면서부터 바르고 통하는 기운을 얻은 사람만이 그 본성이 가장 귀하게 되기 때문에 방촌의 사이가 허령하고 통철하여 모든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요순이 되어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을 도울 수 있는 것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명덕이라는 것이다.[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蓋其所以異於禽獸者, 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讚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체(體)는……다르다 호굉(胡宏, 1106~1161)의 《지언(知言)》에 보인다. 호굉은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서 양시(楊時)에게 배웠다. 그가 성(誠) 속에 이미 선과 악의 씨앗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석한 이른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 체는 같고 용이 다르다.'고 주장한 설을 가리킨다. 하늘이……없다 《대학장구》 〈서(序)〉에 보인다. 허령(虛靈)하여……하다 《대학장구》 경 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衆理)를 갖추고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다만 기품(氣稟)에 구애되고 인욕(人慾)에 가려지면 때로 어두울 경우가 있으나, 그 본체의 밝음은 일찍이 그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마땅히 그 발하는 바를 인하여 마침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여야 한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則有時而昏,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以復其初也.]"라고 하였다. 이(理)로……없다 《대학혹문(大學或問)》 경 1장에 보인다. 기(氣)로……된다 《대학혹문(大學或問)》 경 1장에 보인다. 임전재(任全齋) 임헌회(任憲晦, 1811~1876)로,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鼓山)ㆍ전재(全齋)ㆍ희양재(希陽齋)이다. 사슴……사슴이라는 것 왕안석(王安石)의 아들 왕방(王雱, 1044~1076)이 어릴 때 어떤 사람이 사슴과 노루를 한 우리에 넣고서 어느 것이 노루이고 어느 것이 사슴인지 묻자, 한참을 생각하다가 "노루 곁에 있는 것이 사슴이고, 사슴 곁에 있는 것이 노루입니다." 하니, 왕안석이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활달한 사유 방식을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古今說海》 그러나 주희(朱熹)는 《사서혹문》 〈논어혹문(論語或問)〉에서 경전을 해석함에 '어느 것이나 아는 바가 없어서 노루 곁 사슴, 사슴 곁 노루처럼 무한히 순환 반복하기만 하고 끝내는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다.[彼此俱昧, 而欲互以相明, 如獐邊之鹿鹿邊之獐, 循環無端, 而卒無所决其偶.]'고 하여 피차간에 정확한 분변을 하지 못하는 병폐를 뜻함. 이천(伊川)이……뿐이었다 이천(伊川) 정이(程頤)는 서명을 두고 "이치는 하나이나 분수가 다름을 밝혔다."라고 평한 바 있다. 《古文眞寶後集 卷10》 《近思錄 卷2 爲學》 양시(楊時) 1053~1135. 자는 중립(中立), 호는 구산(龜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사양좌(謝良佐), 유작(游酢), 여대림(呂大臨)과 함께 '정문 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불렸다. 그의 학문은 나종언(羅從彦)ㆍ이동(李侗) 등을 거쳐 주희에게로 이어져 이학(理學)의 형성 발전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구산어록(龜山語錄)》 등이 있다. 이통(李侗) 송나라 때 남검주(南劍州) 태생으로, 자는 원중(愿中)이며 통칭 연평 선생(延平先生)으로 불린다. 주자가 한때 그에게 수학한 바 있다. 그는 후학을 지도할 때, 강론(講論)보다는 말없이 앉아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송사(宋史)》 권428ㆍ《송원학안(宋元學案)》 권39. 나 정암(羅整庵) 명나라 때의 유학자 나흠순(羅欽順, 1465~1547)을 말한다. 정암은 호이고 자는 윤승(允升)으로, 국자감 사업(國子監司業)과 이부 상서(吏部尙書) 및 예부 상서(禮部尙書) 등을 지냈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투신하였다. 처음에는 불교의 선학(禪學)을 연구하였으나 후에 주자학으로 돌아섰다. 저서에 《곤지기(困知記)》, 《속기(續記)》, 《나정암집》 등이 있다. 기(氣)를……달라진다 《곤지기(困知記)》 권상에 보인다. 이일분수(理一分殊)로……없다 《곤지기(困知記)》 권상에 보인다. 건(乾)의……않는다 《녹문선생문집》 권19 〈녹려잡지(鹿廬雜識)〉에 보인다. 각일기성(各一其性)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오행은 한 음과 양이고, 음과 양은 한 태극이니,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였다.[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라고 하였다. 이는……아니다 《녹문선생문집》권19 〈녹려잡지(鹿廬雜識)〉에 보인다. 이것은……않는다 《녹문선생문집》권19 〈녹려잡지(鹿廬雜識)〉에 보인다. 노주(老洲) 오 선생(吳先生) 오희상(吳煕常, 1763~1833)으로 자는 사경(士敬), 호는 노주, 본관은 해주(海州),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저서에 《노주집》이 있다. 덕(德)에는……합한다 《서경》 〈상서 함유일덕(咸有一德)〉에 보인다. 이치는……다르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나의……꿴다 《논어》 〈이인(里仁)〉에 보이며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한 말이다. 그것의……없다 《중용장구》 제26장에 "천지의 도는 한마디 말로 다 할 수 있으니, 그 물건 됨이 변치 않는다. 그리하여 물건을 냄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널리……함이다 《맹자》 〈이루하(離婁下)〉에 보인다. 이(理)와……하였다 《주자어류》 권1, 〈이기(理氣)상〉에 보인다. 텅 비고……있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성(性)이라는……일원(一原)이다 《정몽(正蒙)》 〈성명(誠明)〉에 보인다. 성(性)은……다르다 《곤지기속록(困知記續錄)》 권상에 보인다. 성과……같지만 《중용장구》 제1장 제1절 주희(朱熹)의 주에 "성과 도는 비록 같지만 기품이 혹 다르기 때문에 과하고 불급한 차이가 없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른바……하다는 것 《주자대전》 권42 〈답오회숙(答吳晦叔)〉에 나오는 말이다. 해당 부분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의리를 이해하려면 모름지기 먼저 명의(名義)의 경계와 구분을 분석해 내어 각각 귀착할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마음에 절로 관통처(貫通處)가 있을 것이니, 비록 '관통(貫通)'이라고 하였으나 혼연(渾然)한 가운데 이른바 '찬연(粲然)'한 것은 애초에 어지러웠던 적이 없었다.[理會義理, 須先剖析得名義界分, 各有歸著. 然後於中自有貫通處. 雖曰貫通而渾然之中所謂粲然者, 初未甞亂也.]" 학지(學知)……달려있다 《주자전서》 권43 〈성리(性理)〉에 나오는 말이다. 솔개가……뛰노는 것 《중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물이……타오르는 것 《서경》 〈홍범〉에 "첫 번째 오행으로 말하면, 첫 번째는 수(水)이고, 두 번째는 화(火)이고, 세 번째는 목(木)이고, 네 번째는 금(金)이고,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는 윤하(潤下)이고, 화는 염상(炎上)이고, 목은 곡직(曲直)이고, 금은 종혁(從革)이고, 토는 이에 가색(稼穡)을 한다. 윤하는 짠 것이 되고, 염상은 쓴 것이 되고, 곡직은 신 것이 되고, 종혁은 매운 것이 되고, 가색은 단 것이 된다."라고 하였다. 일원(一原) 《주자대전》 권4 〈재거감흥 20수〉의 제20수에 "내가 전인의 가르침에 어두운 것은, 이 가지와 잎이 무성하기 때문이네. 분발하여 영원히 깎아낸다면, 일원에서 큰 공을 거두리라.[曰余昧前訓, 坐此枝葉繁. 發憤永刊落, 奇功收一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대전차의》의 '일원(一原)'에서 "정자의 〈이천역전서(伊川易傳序)〉에 '체와 용은 하나의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웅씨가 말하기를 '이 편은 천도는 말을 하지 않고 성인은 말이 없는데, 후세에 말을 많이 하는 폐단을 논하였다.'라고 하였다. ○내가 가만히 생각건대, 〈감흥시〉는 처음에는 하나의 리를 말하고 중간에는 흩어져 만사가 되고 끝에서는 다시 합해져 하나의 리가 되니, 이것은 《중용》의 뜻이다.[程子易傳序 體用一原. ○熊氏曰, 此篇論天道不言, 聖人無言, 後世多言之弊. ○愚竊謂感興詩, 首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 此中庸之義也.]"라고 하였다. 기질지성(氣質之性)이란……있는 것 《주자전서(朱子全書)》 권42, 〈성리(性理)〉에 "기질의 성은 단지 이 성이 기질에 떨어져 있는 것이므로 기질에 따라 각각 하나의 성이 된다[氣質之性, 只是此性墮在氣質之中, 故随氣質而自爲一性]"라는 말이 보인다. 사람과……다르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인과 물의 성은 부여받은 형체의 편정이 정녕 본디 같지 않다. 그런데 편정한 가운데 다시 청탁혼명의 차이가 본래 있다.[人物之性, 其賦形偏正, 固自合下不同. 然隨其偏正之中, 又自有清濁昏明之異.」)" 편언(偏言)하면……포괄한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건괘(乾卦) 단사(彖辭)〉에서 "사덕의 원이 오상의 인과 같으니, 따로 떼어서 말하자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의 일이고 통틀어서 말하면 네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다.[四德之元, 猶五常之仁. 偏言則一事, 專言則包四者.]"라고 한 것에 근거하였다. 산수(散殊) 각양각색, 각각 구별이 있다는 말이다. 《예기》 〈악기(樂記)〉에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그 중간에 만물이 각양각색으로 산재하여 예의가 행해진다.[天高地下, 萬物散殊, 而禮制行矣.]"라고 하였다. 기질지성(氣質之性)을……않는다 북송의 유학자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를 이룬 뒤에 기질의 성이 있으니, 본래의 선으로 돌아가면 천지의 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의 성을 군자는 성이라고 하지 않는다.[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不性者焉.]"라고 하였다. 《張橫渠集 卷3 誠明篇》 오행이……갖는 것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오행은 한 음과 양이고, 음과 양은 한 태극이니,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생겨남에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였다.[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라고 하였다. 수윤 화조(水潤火燥) 물이 축축한 곳으로 흐르고 불이 마른 곳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말한다. 사람과……있다 《주자어류》 권4 〈성리(性理)〉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인과 물의 성은 부여받은 형체의 편정이 정녕 본디 같지 않다. 그런데 편정한 가운데 다시 청탁혼명의 차이가 본래 있다.[人物之性, 其賦形偏正, 固自合下不同. 然隨其偏正之中, 又自有清濁昏明之異.]" 기분(氣分) 개인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가지고 있는 원기(元氣)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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