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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낙현【재성】에게 답함 答安樂賢【載性】 일전에 보내신 서신을 열어 본 이래로, 강습(講習)하는 즐거움이 이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저의 정성에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학습 과정이 정명(精明)하고 세밀하여 사람을 발전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저에게 기쁘고 다행스럽기가 실로 어떻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인하여 좁은 소견 한두 가지로 감히 다시 우러러 아뢰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학(下學) 운운한 것을, 노형(老兄)께서는 '상(上)', 하(下)' 2자를 도(道)와 기(器)로 인식하십니까, 아니면 도와 기의 경계를 이르는 것입니까? 만약 곧장 도와 기라고 말한다면 하(下)에는 정녕 형상(形象)과 방위(方位)가 있으며, 다만 도와 기의 경계라고만 한다면 상(上)에 이미 형상과 방위가 없는데 하(下)에만 형상과 방위가 있겠습니까. 성인은 이(理)와 기(氣)를 나눌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형이(形而)'107) 두 자를 쓰고 이와 기가 뒤섞일 수 없는 곳에 대해서는 '상하(上下)' 두 자를 썼습니다. 이것은 《역(易)》에 처음 나타나고 《논어(論語)》에서 반복되었으니108)108) 《논어(論語)》에서 반복되었으니: 《논어》 〈헌문(憲問)〉의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노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실 것이다."라는 말을 가리킨다.그 경계가 매우 정밀합니다. 학자들은 단지 일상적인 인사(人事)에 종사하면서 행해야 하는 의리를 다하는 데 힘써서 격물 궁리(格物窮理)의 깊은 뜻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지극히 비근(卑近)한 곳으로 나가지만 지극히 고원(高遠)한 곳이 생생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어찌 현묘한 곳에 나아가는 것을 미리 근심하여 도와 기의 경계를 어지럽히겠습니까. 부디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日前手存。披閱以還。不惟講習之樂。有以慰此期仰之誠。其盛課之精明詳密。有以開發人處。區區喜幸。實難名喩。因以一二菅見。敢復仰溷。幸見敎也。下學云云。老兄以上下二字。認爲道器耶。抑謂道器之界至耶。若是直說道器。則下固有形象方位。只是說道器界至。則上旣無形象方所。下獨有形象方所乎。聖人於理氣之不可分開處。下形而二語。於理氣之不可混雜處。下上下二字。始著於大易。反復於論語。此其界至極爲精密矣。學者但當從事於日用人事之間。務盡其當行之義。而不失其窮格之蘊。則卽此至近至卑而至高至遠者。躍如矣。豈有預憂玄妙之馳而亂道器之界至哉。千萬諒之。 형이(形而)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형이상의 것을 도라고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한다."라는 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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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 민 참판에 대한 제문 祭沙厓閔參判文 하늘이 현철(賢哲)을 내는 것은 장차 이 세상에 쓰이고 이 사람을 진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순박한 시대 이후로 양(陽)의 덕이 점점 박해져 비록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있어도 능히 이룰 수 있는 지위가 없습니다.오호라! 선생은 채와(菜窩)45)의 조카이고 매문(梅門)46)의 고제로 이른 나이에 뜻을 세워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니, 문로가 바르고 확실하며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습니다. 이윽고 석갈(釋褐)47)하고 조정에 올라서는 명량(明良)48)이 서로 만났고, 만년에 높이 발탁되어 아경(亞卿)49)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도를 행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또한 천년에 한 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배회하며 오래지 않아 인년(引年)50)하였으니, 오호라!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없으면 그만이지만,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있는데 또한 당시에 행해짐이 있지 않았으니, 모르겠으나 하늘이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한번 다스려지는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까?돌아와 전원에 누워 문을 닫고 스스로 함양하며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과 왕복하며 강마하면서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몰랐습니다. 오호라! 이와 같은 희조(熙朝)51)의 명경(名卿)과 유문(儒門)의 장덕(長德)으로 유연히 남쪽 먼 곳 산곡(山曲)의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으나 인심을 감복시키고 세도를 진정시킨 것은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현철이 세상에 쓰이고 사람을 진작시키는 것은 비록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그 이로움과 은택이 미치는 것은 실로 차이가 없습니다.오호라!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이 세상의 무궁한 근심을 어찌하며, 후학들의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어찌하겠습니까! 天生賢哲。將爲需斯世而作斯人也。淳古以降。陽德浸薄。雖有可致之質。而無有能致之位。嗚呼。先生以菜窩從子。梅門高弟。早年立志。出入薰染。門路端的。造詣精深。旣而釋褐登朝。明良相遇。晩際升擢。至於亞卿。此不可謂非行道之任。而亦不可謂非千載之一會也。然逡巡徘徊。非久引年。嗚呼。有其德而無其位則己。有其德有其位。而亦未有見行於時。未知天下使民將復見一治之美耶。歸卧田廬。杜門自養。與蘆沙奇先生往復講磿。不知年數之不足。嗚乎。以若熙朝各卿。儒門長德。悠然歛跡於南荒山曲之間。而所以感服人心鎭定世道者。爲何如哉。然則賢哲之於需世作人。雖不在位。而其利澤之及。固無間也。嗚呼。今焉己矣。奈斯世無窮之憂。奈後學不盡之悲。 채와(菜窩) 민백우(閔百佑, 1779~1851)를 말한다. 호는 교채와(咬菜窩),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저서로는 《교채와유고》가 있다. 매문(梅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하를 말한다. 석갈(釋褐) 천한 자가 입는 모포(毛布)인 갈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함을 이른다. 명량(明良)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으로, 《서경》 〈우서(虞書) 익직(益稷)〉에서 고요(皐陶)가 제순(帝舜)에게 간언하기를 "원수가 현명하면 고굉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수(元首)'는 임금을, '고굉(股肱)'은 신하를 비유한다. 아경(亞卿) 조선 시대 정경(正卿)인 판서(判書)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육조(六曹)의 참판(參判)과 그 동급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인년(引年) 늙어서 관직을 물러나는 치사(致仕)를 뜻한다. 희조(熙朝) 잘 다스려진 왕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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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록 후 소지 信從錄後小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논란하여 말하기를 "일신재(日新齋) 정 선생(鄭先生)이 세상을 떠난 뒤에 친필의 원집(原集)을 바로 간행하였는데, 위로 종유(從遊)한 큰 덕망을 지닌 분으로부터 아래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생도에 이르기까지 성씨와 이름, 지극한 말과 요체가 되는 가르침이 책 속에 환하게 드러나 있어 당대에 두루 유행하고 아래로 먼 후세에까지 전해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직 마땅히 원집을 돈독히 믿어 선생의 학문을 배우고 선생의 마음을 느끼는 자는 이른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지극함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도리어 이 일을 거듭 설행한다면 아름다운 명예를 구한다는 폐단이 있다고 하면서 후세에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말하기를 "아, 태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으니3) 상을 치른 뒤에 짐을 챙겨 각자 돌아갔다. 처음에 다시 돌아와서 집을 짓고 홀로 더 거처한 자공(子貢)처럼4) 하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자하(子夏)처럼5)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인의 의론도 70명 제자의 반열에서 금방 괴리되었는데, 더구나 성인이 떠나고 말씀은 사라져 극도로 괴란(壞亂)된 때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 동문의 벗 박준기(朴準基) 씨가 이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동문들과 함께 해진 문권을 수집하여 행장(行狀) 및 언행(言行) 약간 편을 실어서 서권을 만들어 선사(先師)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을 의탁하였다. 또 후세에 우리 선사의 도덕과 광휘가 온축됨과 제자가 복종하고 믿고 따른 성대함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논란하던 자가 잘 알았다고 하고는 물러났다. 이에 글을 쓴다.정묘년(1927) 동짓날에 문인 풍산(豐山) 홍승환(洪承渙)이 삼가 기록한다. 有人難於余曰。日新齋鄭先生奠楹後。手墨原集在卽剞劂。上自從遊長德。下及親灸生徒。姓氏名啣與至言要訓。昭烈卷中。可以旁行於一時。下達於千世。則惟宜篤信原集。學先生之學。心先生之心者。可曰報答佛恩之至。而乃者疊設斯役。有不以好名要美之弊。議之於後歟。余曰。嗚呼。山樑旣頹。治任各歸。初不得子貢之反築。後未免子夏之離索。聖人議論。將乖于七十子之列。況聖遠言湮。壞亂極矣之日耶。此同門友朴準基氏。爲是之懼。乃與同門諸雅。裒粹摩擦。弁載行狀及言行略干。成編縹緗。以寓江漢無窮之思。且使來世有以知我先師道德光輝之蘊。與夫諸弟子思服信從之盛云爾。難者唯唯而退。於是乎書。丁卯陽復。門人豐山洪承渙謹識。 태산이……꺾였으니 훌륭한 스승의 죽음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일신재 정의림이 세상을 떠난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다시……자공(子貢)처럼 공자가 별세했을 때 모든 문인(門人)들이 심상 삼년(心喪三年)을 치른 다음 모두 짐을 챙겨 떠났으나, 자공(子貢)만은 다시 돌아와서 공자의 묘의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3년을 더 거처하여 6년을 지낸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자하(子夏)처럼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 또한 이미 오래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하였다.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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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107)에 대한 제문 祭鄭致弘文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그 줄이 끊어지고108) 영근(郢斤)에 그 바탕[質]이 없으니,109) 이것은 사물의 이치와 사람의 정이 고르게 하기 어려운 곳이라, 천년동안 흘러 전해져도 오히려 느껴 아파하며 다하지 않는 뜻이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오늘날에 내 몸에서 직접 보았으니 어떠하겠는가.오호라! 나는 형에게 50년의 오랜 친구가 되네. 시절이 춥거나 따뜻할 때, 길흉사에 왕래할 때, 글 짓고 술 마시며 마음대로 놀 때, 상란(喪亂)에 달려가고 숨을 때에 더불어 서로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마치 보거(輔車)110)가 의지하는 것 같고 봉마(蓬麻)111)가 도와주는 것 같았는데, 더구나 지금 노쇠한 나이에 평소의 친구들을 봄에, 열에 여덟아홉이 죽었으니, 외롭게 서로 향하여 마주할 사람이 또 몇 이나 되겠는가. 형은 어찌하여 조금 더 살지 않고 나를 버리고 잊음이 이와 같이 갑작스러운가? 형은 1월 18일의 편지에서 이 달 안에 한 번 방문하겠다는 말이 있었고, 아우는 2월 7일 편지에서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만날 기약을 하였는데, 이 달 안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봄이 다 가기 전이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작별할 때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병들었을 때 부축해 주지 못하였고, 죽었을 때 반함(飯含)112)도 못하였는데, 모습은 이미 감추어 유명 간에 영원히 막혔네. 제문을 지어 슬픔을 드러냄에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니, 영령은 아시는지요? 牙琴之絶其絃。郢斤之無其質。此是物理人情之所難平處。而流傳千載。尙不無感傷不盡之意。況在今日而於吾身親見之乎。嗚呼。吾於兄爲五十年舊要也。時節寒暄。吉凶往來。文酒遊衍。喪亂奔竄。無不與之相須。如輔車之依。如蓬麻之助。況今衰暮之年。見平昔知舊。十亡八九。而煢煢相向。又其幾人乎哉。兄何爲不之少延。而棄我亡我。若是其遽耶。兄元月十八日書。有月內一枉之語。弟二月初七日書。有春暮前一穩之期。誰知月內之約。竟未見就。而春暮之前。爲吾兩人永別之辰耶。病未擧扶。歿未飯含。儀形已閟。幽明永隔。操文泄哀。淸血如注。靈其知否。 정치홍(鄭致弘) 정기현(鄭琦鉉, 1844∼?)을 말한다. 자는 치홍,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백아(伯牙)의……끊어지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영근(郢斤)에……없으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봉마(蓬麻) 봉생마중(蓬生麻中)의 준말로, 좋은 사람과 사귀면 절로 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진흙과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반함(飯含) 죽은 사람을 염습할 때에 입에다 구슬과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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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중에 대한 제문 祭文集仲文 오호라! 헤어지고 합함은 서로 의지하고 모이고 흩어짐은 서로 교대하네. 그러나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기니, 이 속진의 좋지 못한 기능과 덧없는 인생의 빚진 업보가 본래 이와 같은 것인가?지난 병술년(1886, 고종23)에 내가 그대 백씨(伯氏)와 무등산[瑞石山]에서 바람 쐬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와 강론할 집을 마련하여 끊임없이 왕래할 계획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가 나를 버리고 돌아가시어 그 전형이 아우들에게 남아 있었던 것은 오히려 붕우의 바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었네. 이번 을미년(1895, 고종32) 봄에 내가 성동(星洞)에서 가천(佳川)으로 공을 따라 가 이웃을 맺어 노년을 보내며 갚지 못한 오랜 빚을 보상하려 하였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는데 인하여 병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네.오호라! 서로 알았던 날을 손꼽아보니 지금 30여 년이 아니던가? 1년에 한 번 보거나 혹 두 번 보았고, 서로 보았던 시간 또한 하루 이틀에 불과 하였네. 이것으로 계산해 보면 이른바 30년이라는 것은 그 실상은 단지 2, 3개월에 불과할 따름이네. 세상에 살아 있을 대에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더구나 각자 저승과 이승으로 영원히 작별하게 되었으니 어떠하겠는가. 어찌 합하기는 어렵고 헤어짐은 쉬우며 모이는 것은 짧고 흩어지는 것은 긴 것인가?백수의 노쇠한 나이에 벗들은 신성(晨星)152)이 되어, 들어가서는 지낼 곳이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한 처지 이 무슨 신세인가? 근래 보건대 영정(詠亭)153)에서 종유하던 이가 죽은 사람이 20여 명인데 모두 내보다 나이가 적으니, 나는 유독 어떤 사람이기에 오래도록 죽지 않고 있는가? 생각건대 반드시 오래지않아 공의 백씨 중씨와 함께 저승에서 만나 기쁘게 교유하면서 다시는 이별하는 한이 없을 것이니, 누가 저승 또한 인간세상과 같다고 말하는가? 嗚呼離合相倚。聚散相襌。然合之難而離之易。聚者短而散者長。此塵海伎倆。浮生債業。本自如是耶。曩在丙戊。余與尊伯氏。風詠瑞石。歸開講社。爲源源之規。居無幾何。伯氏棄我而逝。其典刑之存於季難者。猶有可以慰朋友之望。是於乙未春。余自星洞從公于佳川。爲結隣終老。以償宿債之未了者矣。未幾公搬移他所。因爲二竪所苦。而竟至不起。嗚呼。屈指相知。今非三十餘年耶。一年而一。或再相見。其相見之頃。亦不過一兩日。以此計之。所謂三十年者。其實只是兩三月而已。生在世間。猶尙如此。況一幽一明而終天爲別乎。何合之難而離之易。聚之短而散之長耶。白首頹齡。知舊晨星。入無所寓。出無所適。踽踽凉凉。此何景色。近見詠亭從遊爲鬼者。二十餘人。而皆吾年下。則我獨何人。久無此行耶。想必非久。而與公伯仲。相遇於泉臺。驩然交遊。無復分離之恨。誰謂泉臺亦如人間世耶。 신성(晨星) 새벽별이라는 뜻인데, 벗들이 잇달아 죽어 마치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송장관부거병인(送張盥赴擧幷引)〉에 "옛날에 함께 급제했던 벗들과 어울려 노닐 적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마치 병풍처럼 대로를 휩쓸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와서는 마냥 쓸쓸하기가 새벽 별빛이 서로들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기만 하다.[嚮所謂同年友, 當其盛時, 聯袂齊鑣, 亘絶九衢, 若屏風然, 今來落落, 如晨星之相望.]"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영정(詠亭) 영귀정(詠歸亭)으로,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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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病中 좁은 도랑 건너는 게 마치 큰 바다와 같고 尺渠涉若大洋洲평지의 위태로움이 흡사 백척 누대와 같구나 平地危如百尺樓육신은 괴로운 매화처럼 되니 온몸이 수척하거니와 身作苦梅全體瘦정신은 짙은 안개에 빠진 듯하니 언제나 수습할꼬 神沈大霧幾時收어찌 생각했으랴 세월 따라 고황261)이 깊어질 줄을 豈料膏肓深歲月모두가 허물과 악행을 산처럼 쌓았기 때문이라네 總緣咎惡積山丘편한 마음으로 저승사자 오기를 기다릴 뿐이니 安心只待符到已서글픈 뜻이 어찌 한 점이라도 일어난 적이 있으랴 怛意何曾一點浮수는 육십육 세에 이르렀는데 壽到六十六병은 사백 네 가지262)를 겸하였다오 病兼四百四세속의 정은 노년인 줄만 알고 世情知老年저잣거리의 도263)는 처자식만 중시한다네 市道見妻子적막한 대문 앞엔 그물이 드리워지고264) 寂寂門羅垂깊고 깊은 정원엔 풀이 푸른빛을 띠네265) 深深庭草翠책 속에 좋은 스승과 벗이 있으니 卷中師友存이내 그리움을 달래줄 만하다오 卽可慰吾思쇠병함은 노인의 상사라고 누가 말했던가 誰云衰病老人常칠순에도 못 이르러 갑자기 이렇게 되었구나 未到稀齡遽此當오래 앓은 중풍으로 반벙어리가 되었고 積歲中風成半啞두 눈의 흐릿함으로 온전한 모습을 못 본다오 雙眸翳霧昧全光삼복 무더위에도 이불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褥衾不離三庚節적은 곡식으로도 수일의 양식을 댈 수 있다네 升合能支數日粮괴이해라 아침 이슬 마르듯이 죽는 게 더디니 怪底猶遲朝露溘정신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노라 神精倘有一毫芒 尺渠涉若大洋洲, 平地危如百尺樓.身作苦梅全體瘦, 神沈大霧幾時收?豈料膏肓深歲月? 總緣咎惡積山丘.安心只待符到已, 怛意何曾一點浮?壽到六十六, 病兼四百四.世情知老年, 市道見妻子.寂寂門羅垂, 深深庭草翠.卷中師友存, 卽可慰吾思.誰云衰病老人常? 未到稀齡遽此當.積歲中風成半啞, 雙眸翳霧昧全光.褥衾不離三庚節, 升合能支數日粮.怪底猶遲朝露溘, 神精倘有一毫芒. 고황(膏肓) 심장과 횡격막(橫膈膜) 사이가 고(膏)와 황(肓)으로 여기에 병이 나면 치료가 어렵다 하여 불치병 또는 고질병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병마(病魔)가 두 아이[二豎]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황 사이에 숨는 바람에 끝내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사백 네 가지 사람은 오장(五臟)에 각각 81종의 병이 있어 그 총수가 405종의 병이 되는데, 여기에서 죽음[死]을 하나 빼면 404종의 병이 된다는 불가어(佛家語)에서 온 말이다. 저잣거리의 도(道) 원문의 시도(市道)는 시정(市井) 상인들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도를 이른다. 적막한……드리워지고 그물은 참새 잡는 그물로, 찾아오는 빈객이 전혀 없어 참새 잡는 그물을 펼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문정(門庭)이 적막하다는 뜻이다. 한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에는 빈객이 서로 찾아오는 바람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가, 파직된 뒤에는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아 대문 앞에 참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門外可設雀羅]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깊은……띠네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贊)〉에 주돈이(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기리기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끝없이 펼쳐지고, 뜰 가운데의 풀은 무성히 푸르렀네.[風月無邊, 庭草交翠.]"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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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경에게 지어 주어 권면하다 贈勉權在炅 내 권재경을 사랑하노니 我愛權在炅명민하여 함께 학문할 만하네 聰敏可與學십리 길을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니 十里來朝夕기특하여라 성의가 지극하도다 奇哉誠亦卓살림이 어찌 이리도 어려운가 調度一何艱긴 낮 오후까지 배를 주리누나 永晝午枵腹부친이 늘 밭을 갈고 있으니 大人常耕田자식을 서숙에 다니게 하고 縱子遊書塾다시 연로한 조부가 있으니 更有重堂老때때로 와서 손자가 송독한 걸 본다오 時來觀誦讀집안에 어진 부친과 조부가 있는 것을 家有賢父祖옛날에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바라 하였네268) 古云人所樂도심은 기한에서 발현되고 道心發飢寒문장은 부옥269)에서 나오는 법 文章出蔀屋이 말 역시 이치가 있으니 斯言亦有理참으로 날마다 반복해 외울 만하네 正可日三復장차 보건대 영가의 집안270)에서 行看永嘉門유속에서 우뚝한 고사가 배출되리라 高士挺流俗이에 한 편의 시를 지어서 爲作一篇詩네가 종신토록 힘쓰도록 격려하노라 助汝終身勖 我愛權在炅, 聰敏可與學.十里來朝夕, 奇哉誠亦卓.調度一何艱? 永晝午枵腹.大人常耕田, 縱子遊書塾.更有重堂老, 時來觀誦讀.家有賢父祖, 古云人所樂.道心發飢寒, 文章出蔀屋.斯言亦有理, 正可日三復.行看永嘉門, 高士挺流俗.爲作一篇詩, 助汝終身勖. 옛날에는……하였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도(道)에 맞는 자가 도에 맞지 않는 자를 길러주며,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진 부형이 있음을 즐거워하는 것이다.[中也養不中, 才也養不才, 故人樂有賢父兄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부옥(蔀屋) 풀로 지붕을 이은 오막살이집으로, 곤궁한 민가 또한 백성을 비유한다. 영가(永嘉)의 집안 영가는 안동(安東)의 고호(古號)로, 권재경이 안동 권씨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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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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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종질 상덕에게 답함 答從姪尙德 떨어져 지낸 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문득 편지를 받게 되니 매우 고맙고 위안이 된다. 근래 부모를 모시면서 어떻게 지내느냐? 걱정이 놓이질 않는다. 편지에서 지난번에 강회에 참여하였는데 그 전부터 집안의 재력이 부족하였다고 탄식하였는데, 강회에 참여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니 이는 우리 집안의 한 줄기 남은 희망이 아니더냐. 근래 네가 종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잡스럽지 않아 항상 어질고 맑은 사람을 가까이 하려 하고 집에 거처하면서 응대할 때 말과 낯빛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니, 이는 사람답게 만드는 본령이다. 내 마음에 어찌 고맙고 다행스러움이 없겠느냐. 다만 이전처럼 한가롭게 지내 문자와 더욱 멀어진다면 이는 작은 병이 아니니, 빨리 마땅히 돌이켜야 한다. 한결같이 촌음을 아끼려고 마음을 먹고서 협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에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만일 의심나거나 잘 모르는 곳이 나오면 부친에게 여쭤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계인과 날마다 서로 어울리면 충분히 너의 의심과 모르는 곳을 풀어줄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넉넉하지 않는 재력(財力)으로 식량을 싸서 과객이 된 이후에 비로소 책을 읽으려 하느냐. 이것은 모두 핑계를 대는 말이요, 성심(誠心)으로 독서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인은 꼴 베는 이에게도 물었고, 189)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190) 비록 나이가 나보다 적거나 지위가 나보다 아래더라도 그 덕업이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으면 참으로 나의 스승이 되기에 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계인은 이웃 마을에 살면서 나이가 너보다 많고 공부도 너보다 나으며 그 가문의 명성과 재주의 뛰어남은 일찍이 우리 고을의 명사이니, 너는 모름지기 경외함으로 대하면서 질문하여야 한다. 우리 집안의 후생으로 훗날 가문의 책임을 부탁할 자가 누구이더냐。너는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깊이 체득하여 더욱 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離阻有日。忽見手滋。感慰多矣。日來侍省若何。溯念無已。書中有言。向參講會。有從前不力之歎。喜事喜事。此是吾家一線餘望耶。觀汝近來從遊不雜。每欲親近賢淑。居家應對。辭色和順。此是作人本領也。於我心豈無感幸。但因循優遊。與文字益疏。不是小病也。亟宜反之。一以惜分陰爲心。淨掃夾室。孜孜矻矻。如有疑晦處。則稟問于家庭可也。又與季仁逐日相從。又足以解汝之疑晦。何必以不贍之力。欲裹糧爲客而後。乃始讀書耶。此皆推托之言。非出於誠心讀書之意也。聖人問于芻蕘。三人行必有我師。雖年下於我。地下於我。而其德業勝於我。則固不害爲吾之師。況季仁居在比隣。年上於汝。功夫上於汝。其門望才華。未嘗不是吾鄕名士。汝須敬畏而待以資問也。吾家後生可付後日家戶之望者誰耶。汝宜深體此意。更加惕念也。 성인은……물었고 《시경》 〈판(板)〉의 "옛날 성현 말씀에 나무꾼의 말이라도 들어 보라 하셨다네.〔先民有言 詢于芻蕘〕"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세 사람이……있으니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내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본받으면서 따를 것이요, 불선한 자에 대해서는 그를 경계하여 고칠 것이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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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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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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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근래 잘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집안일을 맡아하고 집안일을 돌보는 여가에 가끔 책을 읽느냐. 집의 서숙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을의 수재 한두 명과 능력에 따라 글을 읽어야 하니, 이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책을 끼고 밥을 싸서 일이 없는 날에 영귀정으로 와서 책을 읽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다만 이전처럼 한가롭게 지내면서 날을 헛되이 보내고 이 삶을 헛되이 저버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다. 옛말에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요, 조심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절이다."192)라고 하였는데, 이는 훌륭하고 중요한 말이니 마땅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사람이 조그마한 금이나 자잘한 옥을 얻어도 오히려 아끼고 지켜서 혹시라도 잃어버리고 떨어뜨릴까 걱정하는데, 더구나 이 몸은 얼마나 지극히 귀중한 물건이거늘 아끼고 보호하며 온전히 지킬 방법을 다하지 않겠느냐. 한 마디 말과 한 번의 행동도 조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몸을 스스로 잃은 것이며, 한 시나 한 각(刻)193)이라도 조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 몸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다. 스스로 오만한 자는 타인이 반드시 업신여기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사람이 반드시 버리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간절히 바라노니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게으르고 오만한 습관을 경계하며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그 남은 힘으로 학문에 종사하여 네 할아버지의 만년의 마음을 위로하고 네 자신 앞날의 업을 세운다면 대단히 좋은 일일 것이다. 未知日間好在否。幹家視家之餘。頗能種種讀字耶。淨掃家塾與村秀一二人。隨力咿唔固好。不然。挾冊裏飯。以無事日。來讀詠亭亦好。切不可悠泛因循。虛過此日。虛負此生也。古語曰。勤爲無價寶。愼是護身符。此是格言要語。所當服膺者也。人得片金零玉。猶愛之護之。如恐失墜。況此身是何等至重之物。而可不盡愛護保全之方乎。一言一行之不謹。皆自失其身也。一時一刻之不謹。皆自墜其身也。自慢者人必慢之。自棄者人必棄之。豈不可懼。切望夙興夜寐。存恭畏之心。戒惰慢之習。入孝出恭。餘力學文。以慰乃視晩年之情。以立自家前頭之業。好事好事。 부지런함은……부절이다 《명심보감》에 실린 강태공의 말이다. 한 시나 한 각 한 시는 지금으로 치면 두 시간이며, 한 각은 1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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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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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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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편액후제(蘭谷扁額後題)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丙子三月下澣 金益容 丙子三月下澣 1876 金益容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이 종족 김낙곤의 집 처마에 난곡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 1876년(고종 13) 3월에 김익용(金益容)이 종족 김낙곤(金洛坤)의 집 처마에 난곡(蘭谷)이라고 쓴 편액을 달면서 지은 후제(後題)이다. 글의 내용은 같은 시기에 그가 지은 난곡기(1876년 김익용(金益容) 난곡기(蘭谷記) 참조)와 거의 동일하다. 뒷 부분만 조금 다를 뿐이다. 김익용은 이 글에서 김낙곤의 집안이 누대에 걸쳐 여러 효자와 열부를 배출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이는 마치 심산유곡에 홀로 있어도 향기를 품고 있는 난(蘭)의 모습을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김낙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최씨(崔氏), 종조모(從祖母) 박씨(朴氏) 등이 그 효행과 열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아 3효열(孝烈)로 이름이 높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김낙곤의 아버지는 세 번이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 또한 뛰어나 죽을 때까지 선친에 대한 성묘(省墓)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낙곤의 형 김낙진(金洛晉)도 선친을 본받아 문사(文士)로서의 길로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효행도 뛰어났으며, 김낙곤도 77세의 나이였지만 한 겨울에도 삭망(朔望)에 성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한 세상에 숨어 살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김낙곤의 모습이,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해도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는 꽃과 닮았다면서 찬탄하고 있다. 이 후제는 작성연대가 병자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김낙곤이 1911년과 1917년에 부안에 있는 논을 각각 팔면서 작성한 명문들을 통해서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김낙곤(金洛坤)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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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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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蘭谷扁額後題吾宗族中特有孝烈世襲家庭者卽士人洛坤之家余愛其香德而以蘭谷二字扁其楣夫蘭者生於幽谷不爲無人而不芳今乃獨茂與衆草爲伍孔夫子感嘆之辭也生於幽谷竟歲無人採含薰祇自知朱夫子嘆美之詩也公之祖考學生公孝感神明鳥降靈餌晨夕上墓雙膝穿階祖妣孺人崔氏孝烈卓異再嚼血指一家雙行道剡登 聞與公同時 命閭又其從祖母孺人朴氏廬於姑墓殉於夫忌杲洌虎感登聞命閭此三孝烈旣爲闡揚且其先考學生公文辭夙就三中初試又孝行特異朔望省掃且今日公亦追先範而今七十七歲雖風雪中期於朔望不懈且是老境難行之事也孰謂靈芝之無本源哉觀此則其平日所守之規修德之香不待言而知矣今其蘭谷之號不亦宜乎若其遯世不見知而不悔人不知而不慍是可謂不爲無人而不芳者也不求人知不患莫己知亦可謂含薰自知者也余以是每喜讚歎因爲之記矣歲在丙子三月下澣扶寧金益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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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彩相八高祖眞祖興台之祖 重華 眞祖之外祖 全州崔仁弼祖母密陽朴氏之祖 壽程 祖母之外祖 全州李震芳外祖考咸陽趙渭彬之祖 鳳信 外祖考之外祖 全州李益華外祖母密陽朴氏之祖 承宗 外祖母之外祖 全州柳萬發金炳憲八高祖眞祖俊起之祖 義敏 眞祖之外祖 密陽朴枝發祖母咸陽趙氏之祖 守喆 祖母之外祖 密陽朴▣▣外祖考海州崔德東之祖 萬己 外祖考之外祖 仁同張洪鎭外祖母光山金氏之祖 春成 外祖母之外祖 金海金尙文金洛震八高祖眞祖彩相之祖 興台 眞祖之外祖 咸陽趙渭彬祖母海州崔氏之祖 成鶴 祖母之外祖 光山金善才外祖考古阜李源達之祖 善白 外祖考之外祖 淸州韓基旭外祖母耽津安氏之祖 彦孝 外祖母之外祖 南陽洪應河金冕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全州崔順弼之祖 孟述 外祖考之外祖 密陽朴元根外祖母江陵劉氏之祖 昌漢 外祖母之外祖 全州李鎭基金鏡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金堤趙熳斗之祖 命德 外祖考之外祖 朔寧崔性奎外祖母金海金氏之祖載權 外祖母之外祖 海州吳貴載金 述八高祖眞祖炳憲之祖 俊起 眞祖之外祖 海州崔德東祖母古阜李氏之祖 之榮 祖母之外祖 耽津安利濟外祖考金海金自孝之祖 顯輔 外祖考之外祖 全州李花燁外祖母密陽朴氏之祖 昌祚 外祖母之外祖 達城徐振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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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무인생으로, 안장일은 9월 초7일이다. 상주가 4명이지만 갑인(甲寅), 정사(丁巳), 경신(庚申), 을축(乙丑) 등 생년간지만 적혀 있어 망자와의 관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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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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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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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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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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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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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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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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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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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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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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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望金太平本院秋享亞獻官乙卯八月二十二日道溪書院[道溪書院之印](皮封)望帖 道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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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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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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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十二月初七日 前手標右手標事亡夫生時得用錢未報条二十兩每朔五分例限明年九月晦內並本利備報之意如是成標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憑考事標主自筆喪人朴在文 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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