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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송규】에게 답함 答文啓元【頌圭】 지난번 전편(轉便 전전(轉轉)하여 가는 인편)으로부터 산방(山房)에서 지낸다고 들었습니다만, 또한 돌아오셨는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 배장(裴丈)께서 저를 찾아오시고 겸하여 전폭(耑幅 심부름꾼을 시켜 보내는 편지)을 받았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자세한 편지 내용을 통하여 존심(存心), 양성(養性), 궁리(窮理), 격물(格物)을 통하여 하루하루 새로워지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지난번 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 월파(月波 정백언(鄭伯彦)) 두 어른에게 답하는 서한에서 입우(笠友)가 전에는 고원한 곳으로 내닫는 병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평이하고 실질적인 곳에 나아가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대체로 이처럼 아름다운 자질로 만약 올바른 문을 찾아 들어간다면 앞으로의 진보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사이에 의심이 없을 수 없으니 만약 이로 인하여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다면 아마도 현자(賢者)가 저에게 편지를 보낸 뜻이 아닐 듯하여 감히 다시 말씀드립니다. 무릇 산방(山房)에서 조용히 조섭하는 공부가 겨우 열흘이 지나서 갑자기 총명함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효과를 얻었다면 그동안 미리 기대하고 소득을 계산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모름지기 때마다 진작하고 곳곳에서 깨닫는 일이 나날이 거듭되고 다달이 축적되어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확고해지고 자연스럽게 숙련이 됩니다. 어찌 급박하게 판별할 수 있기를 모색하겠습니까. 인용하신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라는 불자(佛子)의 말은 이미 텅 비어 조짐이 없을 때 만상이 빽빽이 갖추어져 있다1)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자(賢者)께서는 또 "형(形)과 기(器)를 초월하여 안과 밖, 정(精)과 조(粗)가 없다."라고 설명하여 허물을 더하고 잘못을 꾸미시렵니까? 불자들은 성(性)을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이 이와 같은데 현자의 말씀도 이와 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성인이 미발한 때의 기상(氣象)을 말씀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미발한 때의 기상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여 학자들에게 보여주더라도 진리를 어지럽히는 학자들의 폐단을 조장하는 데 불과합니다. 그래서 곧 근거하여 지킬만한 형적(形迹)을 얘기해주어 학자들이 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상달(上達)하도록 했을 뿐입니다.서한에서 "근원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고 뿌리를 두터이 북돋우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라는 말씀은 가장 긴요한 요점이니 감히 명심하지 않겠습니까. 의림(義林)이 근래 《절요(節要)》를 보고 부끄러움이 꽤 많았습니다. 이전의 잘못을 돌아보니 뒤미쳐 보완할 계책은 없고 세월은 나를 돌보아(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책을 어루만지며 마음 아파하려니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원(啓元)께서 삼가 경책(警責)해주시기 바랍니다. 向於轉便。聞住山房云。而亦不知返仄與未。謂外裴丈見訪。而兼承耑幅。感感何喩。縷縷足見存養窮格。日新又新之意。可敬可敬。向答大谷月波二丈書。以爲笠友向不無騖遠之病。今却就平實地。做將去云。大抵以若資質之美。苟得其門而入。其進何可量也。但其間不能無疑。若因含黙。恐非賢者勤示之意。敢復仰布。夫山房靜攝工夫。纔踰一旬。遽有聰明自然之效。無乃其間或不無預期計獲之私耶。須時時提撕。處處省覺日累月積。無所間斷。則自然完固。自然純熟。豈以急迫模想所可判耶。所引佛子之言。無古無今。何生何死。已非沖漠無眹萬象已具之意。而賢者又以超於形器之外。無內外精粗之說。增其失而補其過乎。佛子以性爲空無一物。故其言如此。不意賢者之言亦似之也。且聖人不言未發時氣象者。非此意也。雖說出十分氣象示學者。只不過爲學者助長亂眞之敝。故就言形迹可據守處。使之由之。而自然上達耳。所喩發源深者。其流泒長。培根厚者。其枝葉茂。此最切要。敢不銘佩。義林近看節要。頗多感悚。回顧前失。追補無計。而歲月之不恤我與者。已多矣。撫卷悲悵。不知爲喩。惟啓元勤賜警責也。 텅 비어……있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에 "텅 비어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삼연히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미응이 먼저가 아니고 이응이 뒤가 아니다. 이는 100척의 나무가 근본으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관된 것과 같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之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보인다. 미응은 미발(未發) 즉 고요하여 발동하지 않는 때를 말하고, 이응은 이발(已發) 즉 감응하여 마침내 발동하는 때를 말한다. 《근사록(近思錄)》 〈도체(道體)〉에도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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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보냄 與李光彬 전우(田愚)23)의 심설(心說)을 이렇게 저에게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理)는 기(氣)가 하는 일을 따른다."라고 하고 또 "기는 이에 의해 주재된다."24)라고 하였습니다. 상단으로 보자면 이가 기에게 명을 받으니 이는 기의 하인이고, 하단으로 보자면 기가 이에게 통제를 받으니 이가 기의 주재가 됩니다. 상하가 전도되어 매우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는 쓸데없는 물건,"25) "붙어 있는 가련한 사물"26)이라는 선사(先師)의 말씀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습니까. "도체(道體)의 본연(本然)이다."라고 하고 또 주석(注釋)하기를 "이와 기는 한 데 뒤섞여 간극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한 데 뒤섞여 있는 이와 기를 도체의 본연이라고 하겠습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신 "진흙에 물을 타는 것"27)과 "골동갱(汨董羹)"28)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습니까. 근세의 기를 위주로 하는 논의가 대개 이와 같지만, 노형은 이를 정견(正見)으로 채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 문장에서 '심(心)을 이(理)로 인식하는 것은 육씨(陸氏)29)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설이다.'라는 것은 아마도 오늘날 이를 위주로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듯합니다. 그러나 육씨는 궁리(窮理)에 관한 공부가 부족하여 마음에서 발하는 것을 이(理)라고 하였기 때문에 심(心)을 이(理)라고 인식하는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이(理)를 위주로 하는 설은 이(理)와 기(氣), 주(主)와 복(僕), 수(帥)와 역(役)의 분한(分限)을 구별하니 어찌 저것을 끌어다 이것에 뒤섞을 수 있겠습니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田愚心說。荷此寄示。感感。旣曰理隨氣之所爲。又曰氣爲理之所宰。以上段則理聽命於氣。而理爲氣之僕役也。以下段則氣受制於理。而理爲氣之主宰也。上下顚倒。無義甚矣。先師所謂無用之長物。所謂寄寓可憐。非謂此耶。旣曰道體之本然。又註而釋之曰。理與氣。渾淪而無間。安以理與氣渾淪者。謂道體之本然耶。先師所謂和泥帶水。所謂汨董羹。非謂此耶。近世主氣之論。大率如此。而宜不見取於老兄之正見也。下文認心爲理。陸氏畔道之說。似指今日主理而發。然陸氏欠却窮理一段功夫。而以發於心謂之理。故不免有認心爲理之敝。若今日之主理。是分別理氣主僕帥役之分。烏可引彼而混此哉。諒之。 전우(田愚) 1841~1922. 초명은 경륜(慶倫)ㆍ경길(慶佶),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ㆍ추담(秋潭)ㆍ간재(艮齋)이다. 임헌회의 문인으로, 만년에 전라도 계화도(界火島)에서 후진을 많이 길러 냈다. 저서로 《간재집(艮齋集)》, 《간재사고(艮齋私稿)》, 《추담별집(秋潭別集)》 등이 있다. 이(理)는……주재된다 《간재선생문집전편(艮齋先生文集前編)》 권2 〈여유치정 갑술(與柳穉程甲戌)〉에 보인다. 용(用)이……물건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 권16 〈납량사의(納凉私議)〉에 보인다. 붙어있는 가련한 《노사집(蘆沙集)》 권4 〈답권신원(答權信元)〉에 보인다. 진흙에……것 《노사집(蘆沙集)》 권4 〈답권신원(答權信元)〉에 보인다. 골동갱(汨董羹) 남쪽 지방 사람들이 물고기와 살코기를 뒤섞어 밥 속에 두는 것으로 어지럽게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일을 말한다. 《性理大全補註》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 1139~1192)으로, 호는 상산(象山), 자는 자정(子靜),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주자가 정이천의 도문학(道問學)을 존중한 데 반하여, 육구연은 정명도의 존덕성(尊德性)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주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성즉리설(性卽理說)을 제창하였고, 육구연은 치지(致知)를 주로 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상산선생전집》 3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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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에게 답함 答文啓元 말씀하신 사람과 사물의 기질에 관한 주장이 대의(大意)는 그런 듯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온당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기(氣)가 곧 천지의 기이고 사물의 기가 곧 천지의 기입니다. 기화(氣化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변화)의 초기에는 진실로 사람은 기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기의 치우친 것을 얻으며, 형화(形化 형체의 변화)의 과정에서도3) 사람은 형체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형체의 치우친 것을 얻습니다. 다만 사람과 사물의 기를 자기와 관계된 것【私己】과 그렇지 않은 사물【物事】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별도로 외면에 있는 일종의 음기와 양기 중에서 사람에게 주어지고 사물에게 주어진 것을 구해서 찾지 못하면 도리어 유기(遊氣 유동하는 기)는 치우침과 빼어남에 관여하는 것이 없다고 하고, 또 치우친 기나 빼어난 기를 얻는 것은 기화의 초기에 이미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옳겠습니까. 또 지우(智愚), 미악(美惡), 궁통(窮通), 수단(修短 장수와 요절)은 유기(遊氣)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릇 사물이 체단(體段)을 갖추면 곧 자연스럽게 끝없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게 됩니다. 어찌 혈기를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여기고 유기(遊氣)가 작용한 뒤에야 많은 차이가 있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이 이긴다면 아마도 우리 유학의 본지(本旨)를 잃을 듯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유기(遊氣)에 관한 언급은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학설과 다릅니다. 그러나 장자(張子)는 천지(天地)를 주(主)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을 유기로 여겼습니다.4) 여기서는 사람과 사물을 주로 여겼기 때문에 음과 양을 유기로 여겼으니 이것은 무방할 듯합니다. 동정(動靜)으로 말하자면 정(靜)이 체(體)이고 동(動)이 용(用)이며, 태극(太極)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일동(一動), 일정(一靜)이 똑같이 유행합니다. 천지의 동정(動靜) 운운한 것도 역시 온당치 못합니다. 응당 "천(天)은 동(動)으로 정(靜)을 머금지만, 지(地)는 정으로 동을 머금으며, 천(天)은 기(氣)로 형(形)을 포괄하지만 지(地)는 형(形)으로 기를 포괄한다. 만물에 대해서 말하자면 천을 근본으로 삼거나 지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 또한 각각 자신에게 맞는 성향을 따른다."라고 해야 합니다. 所喩人物氣質之說。大意似然。但於鄙意。有未安者。夫人之氣。卽天地之氣也。物之氣。卽天地之氣也。氣化之初。固嘗得其秀得其偏。形化之際。亦無非得其秀得其偏也。只是把來人物之氣。作私已物事看。故別求外面一種陰陽之氣。與人與物者。而不能得。乃謂遊氣無與於偏秀。又謂偏秀之得。已在於氣化之初。可乎。又云智愚美惡。窮通脩短。非遊氣不成。此又不成說。凡物纔有一箇體段。便自然有無限不同處。豈以血氣爲一箇肉塊。而待遊氣然後。乃有許多分數耶。此意若勝。則恐失吾儒本旨。愼之愼之。遊氣之云。與張子之說不同。然張子以天地爲主。故以人物爲游氣。此以人物爲主。故以陰陽爲游氣。此則恐無妨。以動靜而言。則靜爲體。動爲用。自太極而言。則一動一靜。均是流行。天地動靜云云。亦似未安。當曰。天以動含靜地以靜含動。天以氣包形。地以形包氣。至於萬物則本天本地。亦各從其類也。 기화(氣化)……과정에서도 주희에 따르면, 기화는 애초 사람이 아무런 종자 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며, 형화는 사람이 있은 뒤에 낳고 낳아 생겨나는 것이다. 주희는 〈태극도설〉의 "만물을 변화시켜 생성한다.【化生萬物】"를 설명하면서 "사람과 사물이 처음에는 기화하여 생겨나며, 기가 모여 형체를 이루면 형체가 교접하고 기가 감응하여 마침내 형화하는데, 사람과 사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1 太極圖》 장자(張子)는……여겼습니다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동하는 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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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기백】에게 답함 答李光彬【琪白】 뜻밖에 혜서(惠書)와 별폭(別幅 별지(別紙))을 받아 두 손으로 받들고 엄숙하게 읽었습니다. 저를 향한 정이 돈독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익히는 공부가 정밀하고도 활달하여 절대로 속되고 평범한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쓸쓸한 늘그막에 이런 외우(畏友)를 얻었으니 이로 인하여 좋은 영향을 받아 혹시 만년에 조그마한 공이라도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문〕 삼년상 중에는 조문을 하지 않는데, 지금 세속은 상복을 입은 채 조문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찌해야 합니까?〔답〕 공자(孔子)는 "군자는 예(禮)로 정(情)을 꾸민다. 삼년상에 조문하고 곡을 하는 것은 역시 허식이 아니겠는가."5)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자면 상(喪)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조문하지 않는 것이 본래 예입니다. 그러나 증자(曾子)는 자장(子張)의 상에 가서 곡을 하였습니다.6) 그렇다면 정의가 두터운 대상에 대해서는 비록 조문하는 예를 행할 수는 없더라도 곡을 하는 것은 무방할 것입니다.〔문〕 《가례(家禮)》 〈대상장(大祥章)〉에 규정된 참포삼((黲布衫)은 지금 세속에서도 행합니까? 이른바 참(黲)이라는 것은 옅은 청흑색인데 길복의 색에 가깝습니까, 흉복의 색에 가깝습니까?〔답〕 참(黲)은 길복에 가까운 색입니다. 따라서 대상제(大祥祭)를 지낼 때는 약간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흉한 옷을 입으며 담제(禫祭)를 지낼 때는 완전히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길한 옷을 입습니다. 길제(吉祭) 때에는 입지 않는 옷이 없으며 허리에 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문〕 《가례(家禮)》 〈졸곡장(卒哭章)〉에 따르면 졸곡(卒哭)은 반드시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사족(士族)과 서족(庶族)의 집안에서도 반드시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만약 매장할 때까지 소요되는 개월 수를 기한으로 삼아 이같이 한다면7) 또 사(士)는 달을 넘겨 장례를 치른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답〕 《예기》 〈왕제(王制)〉에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은 3일 만에 빈례(殯禮)8)를 행하고 3개월 만에 장례를 치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주석에 "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이고 사는 죽은 달을 포함하여 3개월이다. 이것이 한 달을 넘긴다는 것이므로 '달을 넘긴다【踰月】'라고 하였다."9)라고 하였습니다.〔문〕 물들인 종이로 상여를 장식하고 극도로 화려하게 해서 가는 길을 성대하게 하면 효자(孝子 상주(喪主))의 정이 흡족합니까?〔답〕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 "사람이 죽으면 혐오감을 갖게 되므로 효(絞 수의를 묶는 베로 만든 끈), 금(衾 염한 시신을 감싸는 이불)을 제정하고 류(蔞)10), 삽(翣)11)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색색의 꽃으로 상여를 장식하는 것도 혐오감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 때문입니다. 料外惠翰及別幅。雙擎莊讀。不惟相向之意。極其綣繾。而溫理功夫。精詳展拓。大非俗下常調之比。感領何謝。晩暮離索。得此畏友。未知因仍濡染。或可以少收桑楡耶。三年之喪不弔。今俗多有喪服而行弔者。如何。孔子曰。君子禮以飾情。三年之喪而弔哭。不亦虛乎。以此觀之。有喪者。不弔人固禮也。然子張之喪。曾子往哭之。然則於其情厚處。雖不可行弔禮。而哭之則無妨耶。大祥章黲布。衫今俗亦行之否。所謂黲者淺靑黑色。近吉乎近凶乎。黲是近吉之服。是以大祥着微吉之服。祭後還着微凶之服。禫祭着純吉之服。祭後還着微吉之服。至於吉祭無所不服無所不佩。卒哭章卒哭必俟三月。今士庶家必以此爲準耶。若以葬之月數爲限而如此。則又不曰士踰月而葬乎。王制大夫士庶人。三日而殯。三月而葬。註大夫除死月爲三月。士數死月爲三月。是踰一月。故言踰月耳.大轝染紙雕畵。極其華麗。以榮道路。孝子之情得之歟。禮曰。人死斯惡之矣。是故制絞衾。設蔞翣。爲使人勿惡也。今之綵花雕轝。亦勿惡之義也。 군자는……아니겠는가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보인다. 증자는……하였습니다 《예기》 〈단궁하(檀弓下)〉에 "자장이 죽자, 증자가 모친상 중임에도 자최복을 입은 채로 가서 곡을 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최복을 입고는 조문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증자는 '내가 조문한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子張死, 曾子有母之喪, 齊衰而往哭之. 或曰: '齊衰不以弔.' 曾子曰: '我弔也與哉?'】"라는 구절이 보인다. 매장할……한다면 《가례(家禮)》 〈치장장(治葬章)〉에 "3개월 만에 장사 지내되, 기일 전에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三月而葬, 前期擇地之可葬者.】"라고 규정하고 있다. 졸곡은 매장을 한 뒤 삼우제(三虞祭)를 지낸 다음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빈례(殯禮) 대렴을 마치고 입관한 뒤에 매장 때까지 관을 빈궁(殯宮)에 임시로 안치하는 것을 말한다. 천자는 7일째, 제후는 5일째, 대부와 사는 3일째에 빈례를 한다. 천자는 용으로 장식한 수레인 순거(輴車)를 빈궁으로 사용하고, 제후는 용의 장식이 없는 순거를 사용하고, 대부는 순거 없이 서쪽 담장에 나무를 쌓아 올린 뒤 흙을 바르며, 사는 땅을 파서 관을 안치한다. 대부는……것이다 《예기정의(禮記正義)》 〈왕제(王制)〉의 해당 구절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달을 넘긴다'는 말의 의미는 사망한 달과 매장하는 달 사이에 한 달의 기간을 둔다는 의미가 된다. 류(蔞) 관을 가리는 장식물이다. 류(柳)라고도 한다.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윗부분을 류(柳 윗덮개)라 하고 아랫부분을 '장(牆 옆 덮개)이라고 한다. 전현(錢玄) 《삼례사전(三禮辭典)》 삽(翣) 상여와 관을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이다. 불삽(黻翣 '己' 자가 등지고 있는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운삽(雲翣 구름의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보삽(黼翣 도끼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의 구별이 있다. 《禮記 喪大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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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보냄 與李光彬 "성(性)에는 삼품(三品)이 있다."라는 것은 창려(昌黎 한유(韓愈))의 말인데, 근세의 삼층(三層)13)이라는 말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중용(中庸)》의 성(性), 도(道), 교(敎)는 체용(體用)과 수양의 순서로 말한 것이지 어찌 일찍이 성(性)에 삼층(三層)이 있다고 여겼겠습니까. 일본만수(一本萬殊)14)는 진실로 경계를 구분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수(分殊)로 말한다면 역시 체와 용, 본과 말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이(至異)하지만 지동(至同)한 것이 있고 찬연(粲然)히 구별되지만 혼연(渾然)하게 뒤섞인 것이 있으니 어찌 지동(至同)과 지일(至一)의 오묘함이 다시 발붙일 곳이 없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일본(一本)을 분수(分數)가 없다고 이른다면 일본이라는 것은 반드시 공허하고 아득한 지경으로 떨어집니다. 시험 삼아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난번 올린 율시 2수에서 그 뜻을 대략 말하였습니다. 성(性)은 만물의 일원(一原)이고 만물의 이치는 본래 일원 안에 이미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만물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만약 "본연에 갖추어진 것이 아니라 임시로 배정된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무슨 도의(道義)이겠습니까. 근세의 기(氣)를 위주로 하는 설은 곧 여기에서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性有三品。此是昌黎語。近世三層之語。不其類此乎。中庸之性道敎。此以體用修爲之序言之。何嘗以性爲有三層乎。一本萬殊。固無界分之可言。然若以分殊言之。亦不無體用本末之可言。況至異而有至同者存焉。粲然而有渾然者在焉。則烏可謂至同至一之妙。更着無地耶。若以一本謂無分數。則所謂一本者必墮於空虛冥漠之地矣。試思之如何。向者所呈詩律二首。槪言其義矣。性者萬物之一原。而一原之中。萬物之理固已森然矣。不然。萬物何從而出乎。若曰不具於本然。而爲臨時排定云。則此何道義乎。近世主氣之說。卽於此蹉了故也。 삼층(三層) 한원진(韓元震)이 주장한 학설로, 성삼층설(性三層說)이라고도 하는데, 성을 인간과 사물이 같은 초형기(超形氣)의 성, 인간과 사물이 다른 인기질(因氣質)의 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른 잡기질(雜氣質)의 성으로 구분하여 파악한 것이다. 일본만수(一本萬殊)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자어류》에 "만 가지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되는 것과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은,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나가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와 수많은 가지와 잎이 되는 것과 같다.【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子語類 卷27 論語9 里仁篇下 子曰參乎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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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답함 答李光彬 보내신 서한에서 심성(心性)에 대해 운운하신 것은 하나하나 타당한 말씀이라서 다시 따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한 시대의 뒤얽힌 논의를 타파하기에 충분합니다. 오늘날 사우(士友)들의 논의는 기(氣)를 위주로 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를 위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를 위주로 하는 경우는 진실로 말할 가치가 없고 이를 위주로 하는 경우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심(心)은 기(氣)의 정상(精爽)이고 성(性)은 이(理)의 결과(結裹)입니다. 명의(名義)와 경계가 본래 이와 같지만, 옛 성현들이 입언(立言)을 통하여 전한 교훈은 각각 어세(語勢)로 인하여 크게 달랐습니다.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말한 "심은 성을 검속할 수 있지만 성은 그 심을 검속할 줄 모른다."15)라는 것과 주자(朱子)가 말한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다."16)라고 한 것은 구분하여 말한 것입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17)라는 맹자(孟子)의 말, "심은 태극이다."18)라는 소자(邵子 소옹(邵雍))의 말, "오직 마음은 상대할 것이 없다."19)는 주자(朱子)의 말은 심과 성을 합하여 말한 것입니다. 합하여 말하면 성(性)은 본래 심 안에 있으니 대립시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쪽 사람들은 전체를 말하면 심이고 한쪽을 말하면 성이라고 봅니다. 또 이(理)로 이(理)를 갖추고 이(理)로 이(理)를 묘합한다고 여겨 별도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명명(冥冥)한 곳에 앉아 있는 듯합니다. 이같이 하면서 어떻게 기를 위주로 하는 논의를 굴복시켜 귀일하게 하겠습니까. 형께서는 "성(性)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본연(本然)을 성으로 여기고 심(心)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본심(本心)을 심으로 여긴다."라고 하시고, 또 "'인(仁)은 인심(人心)이고'20) '심(心)은 생도(生道)이며'21) '복괘(復卦)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22)라고 할 때의 '심(心)' 자는 기(氣)인가, 이(理)인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말씀입니다. 기(氣)를 위주로 하는 사람은 나뉘는 것만 볼 뿐이지 합치되는 것을 모르고 이(理)를 위주로 하는 사람은 합치되는 것만 볼뿐이지 나뉘는 것을 모릅니다. 서로 잘못된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형의 논의는 저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또 이쪽에 치우치지도 않는다고 이를 수 있습니다. 示喩心性之云。節節亭當。無容更評。足破一時繳繞之論。近日士友之論。有主氣者。有主理者。其主氣者。固不足言。其主理者。亦不無可疑矣。大抵心者氣之精爽也。性者理之結裹也。其名義界至。本自如此。而從古聖賢。立言垂訓。各因語勢而煞有不同。張子所謂心能檢性。性不知檢其心。朱子所謂性猶太極。心猶陰陽。是分而言之者也。孟子所謂仁人心。邵子所謂心太極。朱子所謂惟心無對。是合而言之者也。合而言之。則性固在中而不必對擧說下矣。然以一邊人以爲全言則心。偏言則性又以爲以理具理。以理妙理。似若別有一箇無位眞人。坐任冥冥之中。如此而何以屈主氣之論。而使之歸一哉。兄謂論性者。必以本然爲性。論心者。必以本心爲心。又曰。仁人心。心生道。復見天地之心。此等心字。是氣乎理乎。此說甚善。主氣家但知其分。而不知其合。主理家但知其合。而不知其分。不其歸於胥失乎。兄論可謂不偏於彼。而又不偏於此矣。 마음은…… 모른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 "사람이 도(道)를 넓히는 것이요, 도(道)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한 경문에 대한 집주에 장재(張載)가 "마음이 성(性)을 다할 수 있으니, 이것은 사람이 도(道)를 크게 하는 것이요, 성(性)은 마음을 검속할 줄 모르니, 이것은 도(道)가 사람을 크게 함이 아닌 것이다.【心能盡性, 人能弘道也, 性不知檢其心, 非道弘人也.】"라고 한 말이 실려 있다. 성은……같다 《주자어류》에 "성은 태극과 같고, 마음은 음양과 같다. 태극은 단지 음양 속에 있으니, 음양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태극을 논할 경우에 태극은 자체로 태극이고, 음양은 자체로 음양이다. 오직 성과 마음이 또한 그러하니, 이른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라는 것이다.【性猶太極也, 心猶陰陽也. 太極只在陰陽之中, 非能離陰陽也. 然至論太極自是太極, 陰陽自是陰陽. 惟性與心亦然, 所謂一而二, 二而一也.】"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5 性情心意等名義》 인은……마음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심은 태극이다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관물외편 하(觀物外篇下)〉에 "도가 태극이 되고, 심이 태극이 된다.【道爲太極 ,心爲太極.】"라는 말이 보인다. 오직……없다《주자어류(朱子語類)》 권5, 권98에 보인다. 인은……인심이고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보인다. 심(心)은 생도(生道)이며 《이정유서》 권21과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 등에 보이는 이천 선생의 말로, "마음은 생도이다. 이 마음이 있어야 이 형체를 갖추어 태어나니, 측은지심은 사람의 생도이다.【心, 生道也. 有是心, 斯具是形以生, 惻隱之心, 人之生道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는 "마음이 생도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데 사람이 이를 얻어서 마음을 삼은 것을 말한다.【心生道也, 謂天地以生物爲心, 而人得之以爲心者.】"라고 하였다. 복괘(復卦)에서……본다 이 말은 《주역》복괘(復卦)의 단사(彖辭)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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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재 김공397) 병주 을 애도하다 悼危齋金公【炳周】 성수산398) 속에는 저문 연기 자욱한데 聖壽山中鎻暮煙어찌 기미성 타고399) 갑자기 승천하셨나 胡然箕騎遽升天전념하여 추환400)처럼 학문을 즐겼으며 專心嗜學如芻豢기운 떨쳐 새매처럼 삿된 무리 공격했네401) 奮氣攻邪若隼鸇지금 세상에 다시는 진실한 선비 없으나 今世更無眞實士후세 사람들은 응당 성명을 전해야 하리 後人應有姓名傳공 생각에 시국 상심한 눈물이 더 나와 思公添發傷時淚뜻을 부친 애사를 모두 펴지 못하겠네 寄意哀詞未盡宣 聖壽山中鎻暮烟, 胡然箕騎遽升天?專心嗜學如芻豢, 奮氣攻邪若隼鸇.今世更無眞實士, 後人應有姓名傳.思公添發傷時淚, 寄意哀詞未盡宣. 위재(危齋) 김공(金公) 김병주(金炳周, 1869~1936)를 말한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위재이다.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으로 알려졌다. 저서에 《위재유고(危齋遺稿)》 7권 2책이 있다. 성수산(聖壽山)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에 있는 높이 876m의 산이다. 기미성(箕尾星) 타고 현인(賢人)의 죽음을 뜻한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은 도를 터득하고서 무정을 도와 천하를 모두 소유하게 하였으며, 죽은 뒤에는 동유성을 타고 기성과 미성을 몰아 열성과 나란히 있게 되었다.〔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而比於列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추환(芻豢) 추는 초식(草食) 가축이고 환은 잡식(雜食) 가축으로, 맛있는 음식을 뜻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와 의이다. 성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나보다 먼저 알았다. 그러므로 의리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 음식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心之所同然者, 何也? 謂理也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새매처럼……공격했네 충성스럽고 용감한 자가 간악한 무리를 처벌해서 죽이는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조에 "그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면 처벌하였는데, 마치 매와 새매가 새와 제비를 쫓는 듯이 하였다.〔見無禮於其君者, 誅之, 如鷹鸇之逐鳥雀也.〕"라고 하는 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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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앉아서 2수 夜坐【二首】 휘영청 밝은 달이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素月揚輝上碧峯들쑥날쑥 대와 잣나무는 그림자가 겹겹이네 參差竹柏影重重먼 길손은 일어나는 향수를 금할 수 없고 難禁遠客鄕愁動서동이 어떻게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겠는가 怎遣書童睡意濃지친 새처럼 높이 날아갈 생각 끊어졌고 絶意高飛同倦鳥신룡을 배워 편안히 수양할 마음 두었네392) 存心穩養學神龍외론 회포와 맑은 경치가 서로 어울린 곳에서 孤懷淸景相將處새벽종 울릴 때까지 홀로 난간 가에 앉았네 獨坐欄頭到曉鍾공자가 즐겼던 도는 정히 능하기 어려우니 宣尼樂道定難能연래에 팔 베고 눕는 것393)에 익숙할 뿐이네 但慣年來枕曲肱이미 몸을 초개처럼 가볍게 보았으나 已視身家輕似芥마음을 얼음처럼 차갑게 하지는 못하였네 不將心地冷爲氷빈산의 나그네 심사는 외로운 달을 맞았고 空山旅思當孤月시장에 널린 새 바람은 일만 등불에 빛나네 列市新風耀萬燈또 다시 우리 유문은 갈 만한 곳이 없으니 亦復儒門無可往얼마나 많이 휘감긴 등 넝쿨을 보게 될까 幾多纏繞見蘿藤 素月揚輝上碧峯, 參差竹柏影重重.難禁遠客鄕愁動, 怎遣書童睡意濃?絶意高飛同倦鳥, 存心穩養學神龍.孤懷淸景相將處, 獨坐欄頭到曉鍾.宣尼樂道定難能, 但慣年來枕曲肱.已視身家輕似芥, 不將心地冷爲氷.空山旅思當孤月, 列市新風耀萬燈.亦復儒門無可往, 幾多纏繞見蘿藤? 신룡(神龍)을……두었네 초야에 은거할 마음을 먹었다는 말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혀 움츠리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숨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는 말이 나온다. 팔……것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도를 누리는 즐거움을 말한다. 공자가 《논어》 〈술이(述而)〉에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나니, 떳떳하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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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부호군 부군 행장 先考副護軍府君行狀 부군(府君)의 휘는 제현(濟玄), 자는 명서(命瑞)이다. 정씨(鄭氏)의 관향은 광주(光州)이니, 고려(高麗) 말기에 찬성사(贊成事) 휘 신호(臣扈)가 비조(鼻祖)이다. 7대를 전하여 휘 태(態)에 이르렀으니,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를 지냈다. 이분이 휘 응규(應奎)를 낳았으니, 절도사(節度使)를 지냈다. 이분이 휘 연(演)을 낳았으니, 부사직(副司直)을 지내고,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모두 현조(顯祖)이다. 증조의 휘는 이도(履道), 조부의 휘는 채(埰), 선고(先考)의 휘는 가석(加錫), 선비(先妣)는 광산 이씨(光山李氏) 덕광(德光)의 따님이다. 순묘(純廟) 계해년(1803, 순조3) 5월 6일에 강진(康津) 월산(月山)의 우거하던 집에서 부군을 낳았다. 을해년(1815, 순조15)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병자년(1816, 순조16)에 현(縣)의 구상리(九祥里)에 우거하였다. 신사년(1821, 순조21)에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를 맞아들였으니, 춘채(春采)의 따님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후손이다. 무자년(1828, 순조28)에 어버이의 명으로 능주(綾州) 망방산(望防山)에 우거하였으니, 이는 소요를 피하여 먼저 조치를 취한 것이다. 경인년(1830, 순조30)에 주(州)의 대덕동(大德洞)으로 이사하였다. 갑오년(1834, 순조34)에 이씨(李氏)가 졸하였다. 을미년(1835, 헌종1)에 다시 진원 박씨(珍原朴氏) 치성(致聖)의 따님에게 장가들었으니, 위남(葦南) 박희중(朴熙中)5)의 후손이다. 갑진년(1844, 헌종10)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정미년(1847, 헌종13)에 백씨(伯氏)와 계씨(季氏)가 강진(康津)에서 주(州)의 묵계리(墨溪里)로 와서 우거하였다. 병진년(1856, 철종7)에 대덕동(大德洞)에서 품평리(品坪里)로 이사하였다. 정묘년(1867, 고종4)에 묵계리로 이사하였으니, 백씨, 계씨와 함께 만년에 서로 의지하면서 지낼 계획이었다. 무진년(1868, 고종5)에 불초 소생을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업하게 하였다. 병자년(1876, 고종13)에 백씨(伯氏)가 졸하였다. 정축년(1877, 고종14)에 박씨(朴氏)의 상을 당했다. 신사년(1881, 고종18)에 장수하였다는 이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올라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부직(付職)되었다. 계미년(1883, 고종20) 2월 25일에 생을 마감하였으니, 향년 81세이다. 4월 2일에 묵계리 화수치(火手峙) 미향(未向)을 등진 언덕에 장사 지냈다. 아, 부군은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웠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여 온갖 일을 다 겪었지만 정성을 다하고 온 힘을 기울여 매우 지극히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마음가짐이 성실하였으며 몸가짐이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남과 담소를 나누는 경우가 적었고, 일을 만나면 꾸밈이 없었다. 집에 있을 적에는 한가롭게 상량(商量)하는 일이 적었고, 박에 나가서는 한가롭게 벗과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고, 의로운 것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았다. 무릇 세간의 바둑, 술자리, 질펀하게 노는 오락에는 한 번이라도 눈길을 둔 적이 없었고, 경박하고 괴이하며 남을 속이거나 허황된 말에는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으며, 이익을 꾀하고 영화를 탐하거나 아첨하고 청탁하는 자리에는 일찍이 한발 자국도 나아간 적이 없었다. 중년에 한번 한양에 가서 성곽, 궁궐, 산천 지리, 인물 풍속을 두루 보고 돌아왔다. 어버이를 떠나 밖에 거처한 적이 있는데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빠뜨리지 않고 부모님을 뵈었다.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먼저 먹은 적이 없고,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에는 백씨(伯氏)를 또한 어버이처럼 섬겼다. 만년에 한마을에서 세 형제가 함께 살았는데 나이가 모두 80세였다. 불그스레한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데도 함께 자고 마주 앉아 종일토록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은 생업이 있는 것이 중요하고 일은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비가 되어 끝내 내세울 만한 공이 없고, 농부가 되어 끝내 의뢰할 만한 재물이 없다면 이는 기물(棄物)이다.'라고 한 적이 있었으니, 이 때문에 매우 독실하게 자식을 가르쳐 일찍이 다른 일로 학업을 방해한 적이 없었다. 평소 숙흥야매(夙興夜寐)하면서 종일 부지런하여 일찍이 나태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고, 또한 편안하고 한가롭게 보내는 때가 없었다. 불초 소생이 매번 아침 문안을 여쭐 적에 늘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지 누워 계신 것을 보지 못했다. 하루는 선친께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자 하여 매우 일찍 갔지만 이미 엄연히 일어나 앉아 계셨으니, 40년 동안 슬하에 있으면서 하루라도 늦게 일어나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평생 각고의 노력으로 분발하고 진작하였기에 가계(家計)를 수립하여 가운(家運)이 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첫째 아들은 한룡(翰龍)이고, 셋째 아들은 상림(祥林)인데 재주가 매우 영특하여 크게 될 가망이 없지 않았지만 모두 요절하였다. 오직 불초 소생만 남아 있는데 지금 노년이 된 나이에 낡은 습관을 따르고 나태하여 당시 아버지께서 바라던 뜻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이 한 몸의 죄를 천지간에 어찌 용납하겠는가. 너무나도 죄송스럽고 죄송스럽다. 바라건대, 세상의 군자는 혹 가련하게 여겨서 그 자식이 불초하다는 이유로 그 아버지의 훌륭한 명성까지 폐하지 않기를 실로 바라 마지않는다. 府君諱濟玄。字命瑞。鄭氏系出光州。麗末贊成事諱臣扈。其鼻祖也。七傳至諱態官弘文應敎。是生諱應奎。官節度使。是生諱演。副司直贈戶曹判書。皆其顯祖也。曾祖諱履道。祖諱埰。考諱加錫。妣光山李氏德光女。以純廟癸亥五月六日。生府君于康津月山寓舍。乙亥丁內艱。丙子僑寓顯之九祥里。辛巳聘夫人全州李氏春采女。孝寧大君補后。戊子以親命寓居綾州望防山中。蓋避擾先着也。庚寅移州之大德洞。甲午李氏卒。乙未繼娶珍原朴氏致聖女。葦南熙中后。甲辰丁外艱。丁未伯氏季氏自康津來寓州之墨溪里。丙辰自大德洞移品坪里。丁卯移墨溪。從伯季爲晩年相依計也。戊辰命不肖受業于蘆沙奇先生之門。丙子伯氏卒。丁丑朴氏喪。辛巳壽陞通政大夫龍驤衛副護軍。癸未二月二十五日考終。享年八十一。四月二日葬于墨溪之火手峙負未之原。嗚乎。府君天性至孝。生長艱難。備經百故。而盡心盡力。備極忠養。立心忠慤。持身勤儉。與人罕笑語。遇事無表襮。居家少閒商量。處世少閒追逐。非其力不食。非其義不顧。凡世間局戱酒致曠蕩流連之娛。未嘗一寓目焉。浮靡乖僻欺誣狂誕之說。未嘗一傾耳焉。聲利繁華趨附造請之地。未嘗一濡跡焉。中年一赴漢師。周見城郭宮室山川道里風土人物而歸。嘗離親寓外。雖相距迃遠。每月朔月望。省覲無闕。有新味。未嘗先食。親歿後。事伯氏。亦如之。晩年同住一巷三昆季。年皆八十。華顔白髮。連床對榻。終日竟夕。笑語怡怡。嘗言人貴有業。業貴有成。爲士而終無可述之功。爲農而終無可賴之資。則是棄物也。是以敎子甚篤。未嘗以他業間之。平居夙興夜寐。終日孜孜。未嘗有懈怠之色。亦未嘗有暇豫之時。不肖每晨省。常見其坐而未見其臥。一日欲先府君起。早早而往。已儼然起坐矣。在膝下四十年。未嘗見其有一朝之晏起也。平生刻勵勤苦。抖擻拮据。至於樹立家計。家運不競。一男翰龍三男祥林。才性通曉。不無可望。而皆至夭折。惟不肖是在。年紀暮大。因循荒怠。未副當日一分之志。此身罪戾。天地安容。痛死痛死。惟世之君子。或爲之哀憐。不以其子之不肖而倂廢其親之令名歟。實有望焉。 박희중(朴熙中) 1364-1446.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박희종(朴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박첨(朴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홍서(朴洪瑞)이고, 아버지는 현감(縣監) 박온(朴溫)이다. 생원으로 1401년(태종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동궁서연관(東宮書筵官) 《海東筆苑》에 오를 정도로 명필이었다. 영암 군수(靈巖郡守), 예문관 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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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희집》86) 부록의 서문 晩羲集附錄序 정씨(程氏)는 중앙에서 활동하고, 영중(瑩仲)은 남동부에서 생장하여 서로의 거리가 먼데도 오히려 〈책심문(責沈文)〉을 지어 자신을 꾸짖었는데87), 나는 같은 고을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한 번도 만희(晩羲) 선생의 문하로 나아가 뵙지 못했으니, 만약 형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찌 단지 자신을 꾸짖었을 뿐이겠는가.아,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바로 내가 성동(成童 15세)이 될 무렵이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선생의 이름을 알았고, 장난치며 뛰어다녔을 때에 선생에 대한 풍문을 들어서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할 뿐만이 아니었지만, 나이가 어리고 몸이 허약하며 질병이 많아서 평소의 생활을 답습한 채 세월만 보내고 말았으니, 어찌 삼성(參星)과 진성(軫星)88)처럼 서로 마주하지 못하고,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을 줄 알았겠는가. 그러나 큰 종은 두드림이 끝나도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소리는 여전히 멀리 퍼지고, 사방을 비추는 촛불은 불이 꺼져도 심지에 남아 있는 불빛은 여전히 오래 탄다. 마을의 장로와 당시 문하에 있던 선비들을 따라 좇으면서 선생께서 주신 가르침을 받는 것이 또한 어찌 매우 얕겠는가.선생의 족손(族孫)인 재경(在慶)이 유고를 편집하고 목판에 새겨 간행하니, 이는 진실로 사림(士林)의 다행스런 일이다. 내가 변변찮은 식견으로 진실로 감히 이 일에 참여하여 들을 수 없지만, 평소의 뜻으로 헤아려보건대 또 한마디 말을 하여 우러러 사모하는 정성스런 마음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을 따름이다. 程氏作於中土。瑩仲生長東南。相去遠矣。而猶作責沈文以自訟焉。義林居在同鄕。一未造謁於晩羲先生之門。若以瑩仲視之。則豈但自訟而已哉。嗚呼。先生卽世之日。卽義林成童左右歲也。孩提知名。遊戱聞風。不啻充然于中。而稚弱多疾。居常因循。豈知參軫不相待。蕪鴻不相及。有若是哉。然洪鍾罷叩。遺音尙遠。旁燭斂照餘輝猶久。其所以從逐於鄕里長老當日及門士。而受先生之賜。又豈淺淺哉。先生族孫在慶。編輯遺稿。鋟繡棗梨。誠士林之幸也。余以無狀。固不敢與聞於斯役。而揆以平素之意。又不可無一言以志慕仰之誠云爾。 만희집부록 《만희집(晩羲集)》은 화순 능주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양진영(梁進永, 1788~1860)의 문집이고, 부록은 저자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12권, 부록 2권, 합 14권 6책이다. 1895년에 후손 재경(在慶)이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두에 기우만(奇宇萬)과 이건창(李建昌)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성대영(成大永)·안철환(安澈煥)·재경 등의 발문이 있다. 정씨(程氏)는……꾸짖었는데 정씨(程氏)는 북송의 유학자인 정호(程顥)로, 낙양(洛陽) 사람이고, 영중(瑩仲)은 북송의 유학자인 진관(陳瓘, 1057~1122)으로, 사현(沙縣) 사람이다. 진영중이 당대의 대학자인 명도(明道) 정호를 몰라보고 범순부(范淳夫)에게 물은 일을 부끄럽게 여겨, 공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몰라서 자로에게 물은 초나라 섭현의 심저량(沈諸梁)의 고사에 견주어 자신을 책하는 내용의 〈책심문((責沈文)〉을 지었다고 한다. 《書言故事》 삼성(參星)과 진성(軫星) 28수(宿) 가운데 하나로, 삼성은 서방에 있고, 진성은 남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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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1) 行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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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 통정대부 부군 행장 祖考通政大夫府君行狀 공의 휘는 가석(加錫), 자는 유경(裕卿), 또 다른 휘는 언복(彦福), 자는 자구(自求)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니, 고려(高麗) 말기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휘 신호(臣扈)가 비조(鼻祖)이다. 7대를 전하여 휘 태(態)가 있었는데, 홍문관(弘文館) 응교(應敎)를 지냈다. 이분이 휘 응규(應奎)를 낳았으니, 절도사(節度使)를 지냈다. 이분이 휘 연(演)을 낳았으니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다. 판서의 5대손 가운데 휘 만철(萬喆)이 있었으니, 바로 공의 고조(高祖)이다. 증조는 유(瑜)이고, 조부는 이도(履道)이고, 선고(先考)는 채(埰)이며, 선비(先妣)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이택(爾宅)의 따님이다. 영종(英宗 영조(英祖)) 갑신년(1764, 영조40) 11월 8일에 낭주(朗州)의 우거하던 집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장수 황씨(長水黃氏) 익채(翼采)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가 다시 김해 김씨(金海金氏)에게 장가들었지만 모두 자식을 낳지 못했다. 다시 광산 이씨(光山李氏) 덕광(德光)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중년에 낭주(朗州)에서 금릉(金陵)으로 옮겨 우거하였다. 정미년(1787, 정조11)에 부친상을 당했고, 무신년(1788)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객지에 떠돌아다녀 외롭고 고달픈 몸 의지할 곳이 없었으니, 자신의 신세가 몹시 처량하여 길을 가다가 눈물을 흘렸다. 공은 질박하고 성실하여 자신의 몸가짐을 단속하고 사람을 응대하며 다른 사람과 교제하고 일을 처리할 때 조금이라도 꾸미거나 자랑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여 성품이 부지런하며 농사일에 힘을 다하였고, 권세와 이익, 화려한 명성에 대해서는 담담하였다. 자손을 가르치고 집안의 여러 사람을 다스릴 적에 일을 분담시키고 맡겼으며1) 과정(課程)을 엄격히 세워서 성공하기를 책면(策免)하였다. 집안의 많은 어려움을 만나 온갖 고생을 다하고, 돌아와 성현의 모훈(謨訓)과 고금의 사적에 대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자세히 살펴보아 그 의리의 지취를 넓혔다. 부인 이씨(李氏)는 온화하고 인자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부인의 도덕과 규범에 대해서 빠뜨림이 없었다. 을해년(1815, 순조15) 7월 11일에 이씨가 졸하였다. 갑진년(1844, 헌종10) 9월 27일에 공이 졸하니, 향년 81세였다. 장수하였다는 이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성산(星山)에 장사 지냈다가 능주(綾州) 어시랑(御侍郞) 안산(案山)의 인좌(寅坐)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모두 3남 1녀를 두었으니 이씨의 소생이다. 첫째 아들은 제철(濟哲)이고, 차례로 제현(濟玄)과 제일(濟馹)이며, 딸은 황상현(黃祥顯)에게 시집갔다. 장방(長旁)의 아들은 종림(宗林)·창림(昌林)·동림(東林)·희림(熙林)이고, 딸은 곽종협(郭宗協)·윤자승(尹滋升)에게 시집갔다. 차방(次旁)의 아들은 의림(義林)이고, 딸은 안모(安模)·이병성(李秉誠)·이광무(李光茂)·김장석(金章錫)·홍승명(洪承命)에게 시집갔다. 삼방(三旁)의 아들은 항림(恒林)이고, 딸은 김규원(金奎源)에게 시집갔다. 증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손자 정의림(鄭義林)은 삼가 기술한다. 公諱加錫。字裕卿。一諱彦福。字自求。系出光州。麗末贊成事諱臣扈。爲鼻祖。七傳有諱態。弘文應敎。是生諱應奎。節度使。是生諱演。贈戶曹判書。判書五世有諱萬喆。卽公之高祖也。曾祖瑜。祖履道。考埰。妣天安全氏爾宅女。英宗甲申十一月八日。生公于朗州寓第。娶長水黃氏翼采女。系娶金海金氏。皆無育。系娶光山李氏德光女。中年自朗州寓居金陵地。丁未丁外艱。戊申丁內艱。流離客土。孤苦無依。其情景懇惻。行路涕零。公質實誠慤。行已酬人。接物處事。未嘗有一毫修飾表襮底意。生長艱難。性勤稼穡。而於勢利聲華。泊如也。敎子孫御家衆。分之以職。授之以事。而嚴立課程。責其成功。遭家多難。辛勤來歸。而於聖賢謨訓。古今事迹。隨暇考閱。以博其義理之趣。夫人李氏溫仁勤儉。閫範無闕。乙亥七月十一日李氏卒。甲辰九月二十七日公卒。享年八十一。壽陞通政。葬星山。移窆于陵州御侍郞案山負寅之原。擧三男一女。李氏出也。長濟哲。次濟玄濟馹。女黃祥顯。長旁男宗林昌林東林熙林。女郭宗協尹滋升。次旁男義林。女安模李秉誠李光茂金章錫洪承命。三旁男恒林。女金奎源。曾孫以下不錄。孫義林謹述。 맡겼으며 일을 맡긴다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주관하는 일과 비상시의 일을 말한다. 《常變通攷 卷3 居家雜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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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 부호군 부군 행장 伯父副護軍府君行狀 우리 선대는 해양(海陽 해남(海南)에서 금수(錦水)2)의 남쪽에 세거하였다. 절도공(節度公) 휘 응규(應奎)에 이르러 한양(漢陽)에 우거하였다. 절도공으로부터 판서공(判書公) 휘 연(演), 사복공(司僕公) 휘 창문(昌門)을 지나 하남공(下南公) 휘 찬(纘)에 이르러 한양에서 가족을 데리고 금수의 남쪽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왔다. 하남공으로부터 장사랑공(將仕郞公) 휘 시한(時罕), 남은공(南隱公) 휘 경통(璥通), 선랑공(善郞公) 휘 만철(萬喆), 학생공(學生公) 휘 유(瑜)·휘 이도(履道)를 지나 휘 채(埰)에 이르러 금수 남쪽에서 낭주(郞州)로 이사하였다. 통정공(通政公) 휘 가석(加錫)에 이르러 또 금릉현(錦陵縣)으로 이사하였다. 정종(正宗) 기미년(1799, 정조23) 3월 29일에 금릉현의 월산(月山) 우사(寓舍)에서 공을 낳았다. 공의 휘는 제철(濟哲), 자는 윤서(允瑞)이다. 천성이 낙천적이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행실이 일찍 드러났다. 9세에 선생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영특함이 남달랐다. 17세에 모친상을 당했는데 이때 집안에 네 번의 상사가 있어 안으로는 부엌살림을 도맡아서 할 여자가 없고 밖으로는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이 없었다. 음식을 장만하고 바느질하는 일, 땔나무를 하고 농사짓는 일을 모두 공이 직접 부지런히 해서 부친을 봉양하고 동생들을 부양하여 은의(恩意)가 매우 돈독하니 향리에서 모두 찬탄하고 칭찬하였다. 18세에 통정공을 모시고 같은 현(縣) 구상리(九祥里)로 이사하였다. 19세에 경주(慶州) 이씨(李氏) 아무개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이씨는 현숙(賢淑)하여 시부모 및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를 섬김에 매우 은의가 있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번번이 눈물을 흘리며 식음을 전폐하였다. 병술년(1826, 순조26)에 이씨가 졸하자 정해년(1827, 순조27)에 김해 김씨(金海金氏) 아무개 따님에게 다시 장가들었다. 갑진년(1844, 헌종10)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복상을 마치고 능주(綾州) 묵계리(墨溪里)에 우거하였다. 기유년(1849, 헌종15)에 장자 종림(宗林)이 죽었다. 경술년(1850, 철종1)에 김씨가 졸하자 일가족이라곤 4세 된 아이와 20세에 과부가 된 며느리뿐이었으니, 객지에서 외롭고 곤궁한 정경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당시 공의 나이는 이미 51세였는데, 며느리 양씨(梁氏)가 후손이 미약한 것을 염려하여 재혼하기를 권유하자, 공이 거절하지 못하고 임자년(1852, 철종3)에 조양 임씨(兆陽林氏) 아무개 따님에게 다시 장가들었다. 장수하였다는 이유로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의 품계에 올랐다. 병자년(1876, 고종13) 8월 6일에 졸하니, 부친의 묘소 계단 아래 장사 지내고 이씨, 김씨를 합장하였다. 공은 체상(體相)이 단아하였고, 풍도(風度)가 훤칠하고 의젓하였다. 마음가짐이 성실하고 남을 대할 적에는 온화하고 너그러웠다. 화목한 정은 친척에게 흡족하게 젖었고, 화락한 기풍은 향리에 두루 퍼졌다. 선을 보면 자신에게서 나온 것같이 하고, 악을 보면 자신의 병인 것처럼 하였다. 온화하고 화순한 자태는 늘 봄바람의 온화한 기상과 같았고, 의리와 사정(邪正)을 판단할 때는 목소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확고해서 동요시킬 수가 없는 점이 있었다. 가난한 형편에서 성장하여 몹시 근검절약하였다. 무릇 화려한 물건은 집안에 들이지 않았고 구휼하는 일에 대해서는 집안 살림이 부족한지 알지 못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요역(徭役)이 있으면 반드시 남보다 먼저 하였다. 경사나 상사, 병문안하거나 조문할 적에는 반드시 제때에 맞추었다. 멀리 떨어진 묘소에 성묘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사방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노쇠해지자 자질(子姪)로 하여금 수시로 대신 행하게 하였다. 동규(洞規)를 만들 적에는 여씨(呂氏)가 향리에 살면서 만든 규약3)을 모방하였고, 문안(門案)을 만들 적에는 정자(程子)가 친족을 통합한 의리4)를 따라서 행하였다. 의지할 곳이 없는 친척은 친분이 소원하더라도 반드시 혼인을 주선하여 가계를 꾸리게 한 자가 10여 인이었다. 손님과 벗이 찾아올 때면 번번이 술자리를 마련하여 매우 환대하였다. 백발에 소년 같은 고운 얼굴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으니, 그 기상과 풍채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하여 잊을 수 없게 하였다. 이씨는 1남 2녀를 낳았지만 모두 요절하였다. 김씨는 2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종림(宗林), 창림(昌林)이고, 딸은 곽종협(郭宗協), 윤자승(尹滋升)에게 시집갔다. 임씨는 2남 1녀를 낳았으니, 동림(東林), 희림(熙林)이고, 딸은 이항무(李恒茂)에게 시집갔다. 손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아, 우리 집안은 몰락한 지 200여 년이다. 게다가 타향에서 떠돌면서 살 곳을 잃어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고 집안을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선백부(先伯父)께서 평상시 길이 탄식하면서 매양 문호를 세울 계책을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권계한 점이다. 백부께서 돌아가신 뒤에 몇 년 되지 않아 사상(死殤)이 잇따라 외롭고 쓸쓸함이 배로 더해졌다. 게다가 독서하는 가풍이 이로 인하여 사라져 조금의 성취도 없었으니, 이 어찌 선백부가 아이들에게 바란 것이겠는가. 선백부의 간절한 뜻을 생각하고 가문이 날로 쇠락해지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위축된다. 아, 우리 선백부의 감추어진 광채와 숨은 덕을 누가 수습하여 드러내서 명주(明珠)와 진완(珍玩 진귀한 기호물(嗜好物))이 푸른 바다 모래사장에 사라지지 않게 하겠는가. 惟我先世。自海陽。世居錦南。至節度公諱應奎。僑寓漢中。自節度公。歷判書公諱演。司僕公諱昌門。至下南公諱纘。自漢中。挈還錦南舊庄。自下南公。歷將仕郞公諱時罕。南隱公諱璥通。善郞公諱萬喆。學生公諱瑜。諱履道。至諱埰。自錦南。移寓郞州。至通政公諱加錫。又移金陵縣。以正宗己未三月二十九日。生公于縣之月山寓舍。諱濟哲。字允瑞。天稟樂易。夙著孝友。九歲就學。穎悟異常。十七歲丁內艱。是時家有四喪。內無主饋。外無執役。炊爨裁線之節。漁樵耕牧之務。無不躬親勤勞以適親體撫養諸弟。恩意甚篤。鄕里莫不嗟異。十八陪通政公。移于同縣九祥里。十九聘慶州李氏某女。李氏賢淑。事舅姑及小郞小姑。極有恩意。家有疾病。輒涕泣廢食。丙戌李氏卒。丁亥系娶金海金氏某女。甲辰丁外艱。服闋。寓居綾州墨溪里。己酉哭長子宗林。庚戌金氏卒。一家百口。只是四歲孩兒與二十歲寡子婦而已。客土孤苦。情景難狀。時公年已望六。子婦梁氏憂嗣續之微。勸之續絃。公不能拒。壬子系娶兆陽林氏某女。壽陞通政大夫副護軍。丙子八月六日卒。葬于考墓階下。李氏金氏合祔。公體相端粹。風度軒雅。立心忠慤。接物和裕。雍睦之情。洽於親戚。愷悌之風。遍於鄕閭。見善如己出。見惡如己病。溫溫愉愉。常如春風和氣。而於義理邪正之際。未嘗不聲氣嚴厲。確然有不可拔者。生長窮約。偏愛儉素。凡華麗之物。不入於家。而於施恤之節。不知家力之不足。公私徭役。必先於人。憂樂問唁。必趁其時。遠處墳墓。省掃無闕。四方知舊。存訊不替。及其衰老。使子姪隨時替行焉。立洞規以倣呂氏居鄕之約。立門案以修程子合族之義。族戚之無依者。分雖疎遠。必爲之昏娶。俾立家計者。十餘人。賓朋至。輒置酒而盡歡。紅顔白髮。言笑款款。其氣象風彩。令人可愛而不可忘。李氏生一子二女。皆夭。金氏生二子二女。子宗林昌林女郭宗協尹滋升。林氏生二子一女。東林熙林。女李恒茂。孫以下不錄。嗚乎。吾家零替二百餘年。加以轉泊失所。不自支存。此先伯父所以平居長歎。而每以門戶之計爲諸兒勉勉處也。伯父歿後。未幾年。死殤相繼。一倍孤弱。且讀書之業。因以汨沒。無有一就。此豈先伯父所望於諸兒者耶。念先志之懇惻。視家戶之日非。不覺哽塞而氣縮。嗚乎。我先伯父潛光隱德。誰能收拾而揄揚之。毋使明珠珍玩。淪落於滄海沙礫之間也耶。 금수(錦水)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과 장동면에서 시작되는 탐진강(耽津江)의 지류인 금강(錦江)을 이른다. 여씨(呂氏)가……규약 송(宋)나라 때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 살고 있던 여대균(呂大鈞)이 제정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이른다. 문중과 향리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약으로 '좋은 일을 서로 권장한다.[德業相勸]', '잘못을 서로 고쳐준다.[過失相規]', '서로 사귐에는 예의를 지킨다.[禮俗相交]', '환난을 당하면 서로 구제한다.[患難相恤]' 등의 조목을 정하였다. 정자(程子)가……의리 정자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의 가법(家法)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족인(族人)을 통합해야 한다. 옛사람에게는 화수회(花樹會)가 있었는데, 위씨(韋氏) 집 안의 종회법(宗會法)을 취할 만하다.[程子曰: '凡人家法,須月爲一會,以合族. 古人有花樹,韋家宗會法,可取也.']" 하였다. 《近思錄 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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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오【규환】에게 보냄 與梁文吾【奎煥】 이장(李丈)에게 나아가 뵙고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안부가 강녕(康寧)하시다는 걸 들어 우러러 그립던 마음에 실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자신을 얽어맨 것을 벗어 버리고 문을 걸어 닫고 주변을 깨끗이 치우셨으니 참으로 우리 형께서 큰일을 하려는 뜻을 품으셨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 성대한 기세는 장차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근래 《삼국지(三國志)》를 소중히 하신다고 하던데, 특별하고 괴이하며 꺼리는 바가 없는 술수에 탐닉하여 좋아하고 아끼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시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력이 미쳐서 득실을 따져서 궁리(窮理)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려고 하시기 때문입니까? 전에 말씀드린 대로라면 이것은 완물 상지(玩物喪志)14)이고 귀로 듣자마자 입으로 말하는 천박한 학문이며, 나중에 말씀드린 대로라면 또한 초학자의 역량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모두가 우리 형에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독서에는 본래 순서가 있습니다. 공자(孔子), 맹자(孟子),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책과 같은 신심(身心)과 일용(日用)에 절실한 것을 우선 읽어서 명백하고 평이하며 더할 수 없이 가깝고 더할 수 없이 절실한 바탕에 근거하여 지키는 것이 있도록 한 다음에 세무(世務)를 처리하고 인물을 헤아려 바로잡을 수 있게 하더라도 늦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손대어 귀착하는 곳이 없기보다는 책 하나에 정밀함을 다하여 한 치 한 자만큼이라도 진보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주자께서 "잡서를 보지 말라. 정신이 분산될까 두렵다."15)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이릅니다. 아우도 바로 이 병에 걸려 부질없이 일생을 허비하는 것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뒤미쳐 생각하더라도 걱정을 떨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보완할 계책이 없어 억지로 들은 얘기를 읊어 삼가 우리 형에게 아룁니다. 혹시 광망하다고 여겨 배척하지는 않으실까요. 卽拜李丈。詢叩省候康寧。實慰瞻耿。今年擺脫絆已。杜門掃却。固知吾兄有大有爲之志。而其所沛然。將有不家禦者矣。但近所尊閣。在於三國志云。以其耽於奇偉縱橫之術。而愛玩不置耶。將以餘力及之。而商略得失以爲窮理之一助耶。如前所云。則是玩物喪志。口耳之學也。如後所云。則又非初學力量所可及處。皆非所望於吾兄者。夫讀書固有次第。先其切於身心日用如孔孟程朱之書。使明白平易至近至切之地。有所據守而後。可以經理世務。商訂人物爲未晩也。與其汎濫閒汨。而無所歸宿。曷若致精一書。得寸得尺之爲有進步處也。朱子曰。勿觀雜書。恐分精力。正謂此也。弟正坐此病。亦未免枉過一生。追念耿耿。塡補無計。聊誦所聞。謹爲吾兄陳之。或不爲狂妄而斥之耶。 완물 상지(玩物喪志) 작은 기예에 탐닉한 나머지 원대한 뜻을 잃는 것을 말한다. 송유(宋儒) 사양좌(謝良佐)가 사서(史書)를 잘 외우며 박학다식한 것을 자부하자, 정명도(程明道)가 "잘 외우고 많이 알기만 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본심을 잃는 것과 같다.【以記誦博識, 爲玩物喪志.】"고 경계한 말이 《정씨유서(程氏遺書)》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잡서를……두렵다 《회암집(晦庵集)》 권39 〈여위응중(與魏應仲)〉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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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부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尹仁夫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첫 번째 절도(節度)이다. 학문과 공부만 그러할 뿐만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것을 만들어내더라도 일찍 잠들고 늦게 일어나면서 공을 이룰 수 있었던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것이 맹자(孟子)가 선을 실천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해서 모두 "닭이 울면 일어난다."120)라고 말한 까닭이다.책(冊)을 마주하면 반드시 단정하고 장중하며 바른 자세로 조용히 앉아 몸을 구부리지 않고 마음을 놓치지 않으며, 보고 또 보아서 그 내용이 마치 자기의 말을 외우는 듯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그 뜻이 마치 자기의 생각을 내놓는 듯하며, 반드시 욕심을 부려서 많이 알려고 힘쓰다가 소홀히 하여 서투르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앉거나 서는 것은 반드시 공경 장엄(恭敬莊嚴)하며 한쪽으로 기울거나 태만하지 말아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은 반드시 말수가 적으며 성급하고 경솔한 말을 하거나 큰 소리로 떠들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반드시 온순함과 공경스러움을 다하여 터럭만큼이라도 오만하고 고집스럽거나 상대를 꺾으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터럭만큼이라도 아첨하며 따르려는 의도가 있어서도 안 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의리(義理)의 가부를 보아야 하고 이해(利害)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 그것을 위해 진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이처럼 거듭하여 하루하루 쌓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치와 익숙해져서 근거로 삼아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그러나 "요(堯)는 어떤 사람이고 순(舜)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이 장부이면 나도 장부이다."121)라는 마음을 북돋아 분발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그 일을 떠맡겠다는 뜻이 없다면, 앞의 저 말들 또한 억지로 안배(安排)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기름으로 그린 그림이고 얼음에 새긴 조각처럼 곧 사라질 뿐이다. 어찌 나의 소유라고 여기고 더불어 형이상(形而上)을 말할122) 수 있겠는가.윤군 인보(尹君仁夫)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데 요체가 될만한 말 한마디를 청하였다. 내가 어리석어 지닌 것이 없는 사람이라서 오직 선현(先賢)들이 이미 한 말을 열거하여 그 마음에 답한다. 인보(仁夫)는 특별히 주의해 주기 바란다. 夙興夜寐。此是日用行己第一節度。不惟學問功夫爲然。雖小小生産作業。未有早寐晏起而能有成者。此孟子於爲善爲利。皆以雞鳴而起。言之也。對冊務要端莊。靜坐不撓體不放心。看來看去。使其辭如誦已言。思來思去。使其義如出己意。切不可貪多務廣。忽略鹵莽也。坐立務要恭莊。不可傾倚怠慢。言語務要簡黙。不可躁妄諠譁。接人務要和敬兩盡。不可一毫有傲頑忮克之心。不可一毫有阿附媚宛之意。處事當見其義理可否。不當問其利害多少而爲之前却也。如是積累。日去日來。自然心與理熟。而有得力可據之地矣。然不有堯何人舜何人。彼丈夫我丈夫。激勵振拔。抵死擔當之志。則彼所云爲。亦不過勉强安排。旋消旋滅。如脂之畵。氷之鏤而已。曷足以爲吾有而與之語上哉。尹君仁夫請一言爲日用顧諟之要。余悾悾無所有。惟是擧先賢已成底說話。以塞其意。願仁夫加意焉。 모두……일어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힘쓰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척(盜跖)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요(堯)는……사람인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성간이 제 경공에게 이르기를 '저들도 장부이며 나도 장부이니 내 어찌 저 성현들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하였고, 안연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으며, 공명의가 말하기를 '주공이 문왕은 내 스승이다고 하였는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더불어……말할 《논어》 〈옹야(雍也)〉에 "중인 이상의 재질을 지닌 사람에게는 차원이 높은 도를 말해 줄 수 있지만, 중인 이하의 재질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런 차원이 높은 도를 말해 줄 수가 없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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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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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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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우에게 써서 주다 書贈安景禹 학자(學者)는 우선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분별을 매우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단정하고 의젓하며 고요하고 전일한 가운데 천리를 기르며150) 빈객을 맞이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체득하여 조금씩 쌓아가 세월이 깊어지면 눈앞의 사물은 이 도리가 아닌 것이 없다. 삼공(三公)의 지위로도 고귀함을 비유할 수 없고 만종(萬鍾)의 녹봉으로도 부유함을 견주지 못하며 천하의 모든 사물도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 이로써 큰일을 처리하고 커다란 변고(變故)에 임하면 장차 그 기세가 패연(沛然)하여 일삼는 바가 없음을 행하게 될 것이다.151) "진정한 대영웅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상황에서 출현한다."152)라는 말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늙도록 무지(無知)한 처지라 감당하지 못하여 부끄럽지만 정의(情誼)를 생각하니 또 그냥 그만둘 수가 없다. 삼가 일상생활에 절실한 학문의 절도(節度)를 적어 주어 이를 대신한다. 學者先須識得天理人欲之分。十分明白。養之於端莊靜一之中。體之於酬酢云爲之際。銖累寸積。日人月深。則眼前物事。無非此箇道理。不以三公而喩其貴。不以萬鍾而較其富。至於擧天下之物而無以尙之。以之處大事臨大變。將沛然而行其所無事矣。所謂眞正大英雄。自戰戰兢兢中出來者。豈欺我哉。白首倥倥。愧無以承當。而撫念事契。又不可以但已。謹述學問節度切於日用者。以塞之。 단정하고……기르며 주자의 《대학혹문》에 "단정하고 의젓하고 고요하고 전일한 가운데 이 마음을 보존하여 리를 궁구하는 근본으로 삼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변별할 때에 이 리를 궁구하여 마음을 다하는 공부를 지극하게 한다.[存此心於端莊靜一之中, 以爲窮理之本, 竆此理於學問思辨之際, 以致盡心之工.]"라는 내용이 있다. 일삼는……것이다 맹자가 "지혜를 미워하는 것은 천착하기 때문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우 임금이 물을 흘러가게 하듯이 한다면 지혜를 미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 임금이 물을 흘러가게 한 것은 일삼는 바가 없이 자연의 형세에 따른 것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또한 일삼는 바가 없음을 행한다면 지혜가 또한 클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진정한……출현한다 《회암집(晦庵集)》 권36 〈답진동보(答陳同甫)〉에 다음과 같은 주자의 말이 보인다. 이를 축약한 것이다. "참으로 정대한 영웅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이라도 조심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는 곳에서 만들어진다.[眞正大英雄人. 然此一種英雄, 却是從戰戰兢兢, 臨深履薄處, 做將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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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용의 자에 대한 설 安子容字說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말과 행동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다."155)라고 하였다. 또 "말과 행동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도구이다."156)라고 하였다. 성현의 수많은 말은 비록 담긴 뜻이 다르고 과조(課條)도 가닥이 많지만, 요컨대 말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일을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참된 뜻을 드러내려면 반드시 먼저 문사(文辭)를 닦아야 하고 인(仁)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하니, 이 두 가지 일에서 공부의 선후를 또 알 수 있을 것이다.안생 규삼(安生圭三)은 자(字)가 자용(子容)이다. 대체로 남용(南容)이 백규(白圭) 편을 세 번씩 되풀이했던 뜻157)을 취하여 말을 조심하는 데 매우 유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을 시작하는 시기와 덕으로 들어가는 초기에 힘써야 할 것을 알아서 핵심을 깨달은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학문을 할 때 또한 '불망어(不妄語)'에서 시작하는 경우158)가 있었는데, 부지런히 7년을 행하자 표리가 서로 호응하여 일마다 평온하였다. 자용(子容)은 날마다 이 사람을 본받아 자신의 명(名)과 자(字)를 저버리지 말기 바란다. 易曰。言行。君子之樞機。又曰。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聖賢千言萬語。雖指意不同。課條多端。而要歸則不越乎言行兩端而已。然立其誠者。必先有以修其辭。求其仁者。必先有以訒其言。則於此兩端。而其工夫先後。又可知矣。安生圭三。表德子容。蓋取南容復圭之義。而深有意於謹言者也。此於爲學之初。入德之始。豈非知所務而得其要耶。古人爲學。亦有自不妄語始者。力行七年而表裏相應。隨事坦然。願子容日鑑于玆。毋負吾名與字也。 말과……추기(樞機)이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보인다. 말과……도구이다 《주역전의(周易傳義)》 권22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보인다. 남용(南容)이……되풀이했던 뜻 《논어》 〈선진(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학문을…… 경우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성의장(誠意章)〉에 "유 충정공[유안세(劉安世)]이 사마 온공을 뵙고는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공은 '성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公曰其誠乎! 又問行之何先, 公曰自不妄語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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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여【승우】에게 답함 答李寬汝【承愚】 적막한 타향살이에 참으로 그리움이 절실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한 폭의 서한이 훌쩍 날아와 서안에 놓였습니다. 손을 씻고 반복해서 읽자니 한 지붕 아래 한자리에 함께 있는 듯하여 이 몸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산을 나서고 산으로 들어온 것이 과연 말씀하신 대로이니 정처 없는 인생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나 쑥대와 같습니다. 예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명(命)'이라는 글자를 벗어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우리 관여(寬汝)처럼 친한 벗만이 지극한 정성으로 가엽게 여기고 앞뒤로 안부를 물어주시는 것이 정중할 뿐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정의(情意)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텅 빈 나머지 새로운 거처의 모든 일이 괴롭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오직 귀댁에 매우 가까워 이전에 견주어 끊임없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위안일 뿐입니다. 서울에 가신 춘부장(春府丈)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지요? 몹시 추운 겨울에 오가는 원로(遠路)가 노년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서 매우 염려가 됩니다. 서석산(瑞石山) 정상과 백암(白巖)으로 가던 길 중간에 두 차례 책망을 받았다고 운운하셨는데, 말의 맥락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혹시 제가 분별없이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지요? "사색하는 공부가 적다.……"고 한 것은 과연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좌우(左右)께서 저를 허물하지 않고 받아들여 자신의 병통으로 여기시니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존경스럽습니다. 자기 잘못에 대한 말을 들으면 기뻐했던 것이 어찌 자로(子路)뿐이겠습니까.33) 대체로 좌우께서는 독실하게 지키는 일은 확실히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일이 매우 쉽지 않지만, 현자(賢者)께서 갖추시기를 기대합니다. 모쪼록 마음을 더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寄寓離索。懷想政切。謂外一幅德音。翩然賁案盥手三復。便若同堂合席。不知身之在遠也。出山入山。果如所喩。人生無根。如飛花飄蓬。前此非不知之。而豈有如今日者耶。要之。一命字出脫不得。順受之外。有何方法。惟親如我寬汝。曲垂矜憐。前後致意。不啻鄭重。此意何可忘。蕩然之餘。新寓凡百。無非辛酸。而惟以貴庄甚邇。從逐較前源源爲慰耳。春府丈洛旆。何時返次耶。嚴冬遠征。非老年可堪之事。殊切關慮。瑞石山上白巖途中。兩次受責云云。不記其語脈云何。或不至於妄發耶。小思索功夫云云。果有此說矣。左右不以爲咎。引以爲病。其受人之量。可敬可敬。聞過則喜。豈獨子路也。大抵左右篤實持守。的有餘地。此在吾儕。甚不易得。然求備之責。於賢者。幸須加意也。 자기……자로(子路)뿐이겠습니까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자로는 사람들이 그에게 허물이 있음을 말해 주면 기뻐하였다.【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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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자후에게 답함 答權子厚 전년에 두 차례 귀중(貴中 상대방이 머무는 지역)의 여러 곳으로 서한을 보냈으나 우리 형에게만 빠트렸습니다. 대체로 뵌 지가 오래되어 갑자기 자호(字號)와 지명(地名)을 잊어버렸습니다. 골똘히 생각하여도 끝내 떠오르지 않아서 함자를 적는 봉투 표면에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내 붓을 잡았다가 도로 놓는 일을 면치 못하고 겨우 순경(舜卿)에게 답한 편지로 인하여 감히 존함을 거론하고 대략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찌 10년 동안 의기가 투합했건만 하루아침에 상대를 잊어버리는 자가 있겠습니까.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마음 안에 있는 것은 잊지 않기 때문일까요. 부끄럽습니다. 뜻하지 않게, 혜서(惠書)가 초지(草枝)에서 왔는데 대략 편지를 보낸 지 이미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어찌하여 지금까지 시일을 끌었고 또 끝내는 지체되지 않고 전달되었을까요. 이어서 또 지난달 4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 인편이 있으면 소식이 없고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없던 것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았으니, 일반적인 인정으로 헤아리자면 누가 버림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잘못을 따지는 일도 없고 망설임도 없이 은혜를 베푸는 마음이 더욱 근실하시니, 이처럼 보잘것없는 처지에 어떻게 이런 대우를 받겠습니까. 아우는 사문(師門)께서 돌아가신 뒤 또 대곡(大谷 김평묵(金平黙))을 잃고 쓸쓸하게 지내며 어울리는 사람이 없고 오직 영남의 몇몇 군자만 멀리서 의지하면서 우러러 받들 뿐입니다. 다만 세상의 변고가 어지럽고 처지가 얽매여 있어 도를 갖춘 이에게 나아가고 덕을 지닌 이에게 묻는 날은 아득히 멀어지고 미천한 모습은 하루하루 심하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이따금 동쪽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허탈한 마음에 한숨이 납니다.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은 부모님 상을 당하고 풍오(豐五 김현옥(金顯玉))와 순경(舜卿 김운환(金雲煥))은 다른 지방으로 이사하였으니 모두가 간절히 그립습니다. 회옹(晦翁 주희(朱熹))이 말한 "생존하여 살아간다.31)"는 일도 오늘날 또한 매우 쉽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前年兩次修貴中諸處書。而於吾兄獨闕焉。蓋奉接之久。遽忘其表德與地名。雖著意思想。終是不起。而於封面標題處。難以下筆。故竟未免握管還停。而只因答舜卿書。敢擧尊啣。略致意焉。豈有十年受契。而一朝相忘者耶。抑所忘在外。而所不忘在內耶。愧愧。謂外惠幅自草枝來。蓋書出已三年。何其沈滯至此。而又竟不沈滯耶。繼而又拜去月初四日書。嗚呼有便無信。有書無答非止一二。揆以常情。孰不棄斥乎。然而不較不猶。施意愈勤。顧此無狀。何以得此。弟自師門逝後。又失大谷。孑然索居。無與爲徒。而遙遙倚仰。惟在於嶺中數君子而已。但世變支離。身事局束。就道問德。茫然無日。而賤狀衰徵。日深一日。有時東望。不覺曠然發喟也。艾山遭故。豊五舜卿搬移他地。俱切關情。晦翁所謂存活得過者。在今日亦甚不易。奈何。 생존하여 살아간다 《회암속집(晦庵續集》 권4 〈답저행지(答儲行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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