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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암318)에서 자다 2수 宿雲門菴【二首】 높고 높은 절경이 상제 사는 곳과 가까우니 絶境高高近帝居처음 붙인 운문이라는 이름 참으로 마땅하네 雲門端合錫名初서로 껴안은 듯한 여러 산은 천년의 좋은 경치요 群山拱抱千年勝외론 달은 온갖 형상의 빈 곳을 배회하네 孤月徘徊萬像虛누가 신령한 구역을 부처에게 온통 맡겼는가 誰遣靈區全付釋도리어 고결한 선비가 조용히 책읽기에 마땅하구나 還宜淸士靜看書기이한 곳 찾는 유람객은 능히 이르기 어려우니 探奇遊客難能到우습게도 구슬은 주고 궤짝만 사는 것과 같네319) 堪笑遺珠買櫝如이십 년 만에 다시 와 절간을 방문하니 廿載重來訪釋居쓸쓸하게 나뭇잎 지고 초겨울이 되었네 蕭條落木入冬初중들은 매우 적고 가을바람이 싸늘한데 僧徒鮮少西風冷전각은 황량하고 밤엔 달도 뜨지 않았네 殿閣荒凉夜月虛본래 흥망성쇠가 있어 많은 세월이 흘렀고 自有盛衰多歲紀연혁에 수레와 글320)이 달라 더욱 서글프네 更悲沿革異車書옛 모습은 오직 청산에 남아있음을 볼 뿐 舊顔惟見靑山在나의 마음속은 한결같음을 느끼네 感我衿期一樣如 絶境高高近帝居, 雲門端合錫名初.群山拱抱千年勝, 孤月徘徊萬像虛.誰遣靈區全付釋? 還宜淸士靜看書.探奇遊客難能到, 堪笑遺珠買櫝如.廿載重來訪釋居, 蕭條落木入冬初.僧徒鮮少西風冷, 殿閣荒凉夜月虛.自有盛衰多歲紀, 更悲沿革異車書.舊顔惟見靑山在, 感我衿期一樣如. 운문암(雲門菴) 전남 장성군 백양사(白羊寺) 소속의 암자이다. 구슬은……같네 원문의 '유주매독(遺珠買櫝)'은 구슬은 돌려주고 상자만 산다는 뜻으로, 근본은 버리고 지말(枝末)만 좇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초(楚)나라 사람이 목란(木蘭) 상자에 주옥을 담아 정(鄭)나라 사람에게 팔자, 그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는 우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매궤환주(買櫃還珠)라고도 한다. 수레와 글 수레는 같은 크기의 바퀴를 달고, 문자는 같은 모양의 글자를 쓴다는 뜻으로 같은 문화권에 있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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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이 부쳐 준 여러 시에 차운하다 절구 9수 次敬山見寄諸韻【九絶】 사람의 눈이 흐리멍덩하여 공과 사에 어두워 夢夢人眼昧私公다 죽어가는데 어찌 혈기가 가슴에 있겠는가 㱡㱡何曾血在胸양이 스승 문하로 내려가고 음이 성하던 때 陽下門墻陰盛日밝고 강함은 유독 소심옹만이 지니고 있네 明剛獨有小心翁소심옹의 일필휘지는 일천 기병보다 나아 心翁一筆勝千騎강한 적도 멋대로 충돌하기 어려우리라 强賊難能任突衝도맥이 생길 때 백성의 목숨에 생기가 있으니 道脈生時民命活마치 좋은 곡식이 흉년에 있는 것과 같다네 有如嘉穀在年凶상당산 높이 솟고 금마산도 높아서 上黨山高金馬又푸르고 푸르게 홀로 옛 모습을 띠고 있네 蒼蒼獨帶舊時形구로330)의 문하에서 정사가 편성되었을 때 臼門正史編成日임금의 포상이 응당 두 사람에게 행해지리 袞褒當從二子行상자 속에 남긴 글을 위조한 것이라 말하나 篋中遺書謂僞造살구나무 아래서 오직 단전331)으로 지었다네 杏下獨命作單傳정령은 저 황천 아래서 답답해하는데 精靈壹鬱重泉下죄악은 끝없이 위로 하늘에 통하네 罪惡無窮上通天정밀하고 간결한 간재의 문장 고금에 드물건만 精簡艮文今古罕개찬332)을 감행하여 하찮은 재주를 바쳤네 敢行改竄呈微才아 저자가 학문 하느라 백발이 되었으나 唉渠爲學頭如雪《대학》의 '친신'333)에 대해 아직 읽지 못했구나 大學親新未讀來을축년 겨울에 하늘의 재앙을 차마 말하랴 忍言乙丑冬天禍품에는 아편이 있고 허리띠에는 글이 있었네 懷有鴉扁帶有書동문을 모함해 죽여 원수의 국면이 되었으니 構殺同門讎局下전고에 없는 흉악한 짓 또한 없었겠는가 行兇前古亦無諸양이 모였으나 잘못 음에게 희롱을 당하였으니 陽集枉被陰手弄탄식하며 우리 당 사람들이 속마음 토로하였네 嘆傷吾黨瀝心肝고생하여 고증하고 변론했어도 말하지 말고 賢勞考辨且休說후손에게 남겨 주어 진본을 보게 해야 하네 留與來齡眞本看같은 말을 무덤에 고함이 어찌 그리도 어긋났는가 齋言阡告一何悖모든 것은 지나친 교만이 병의 뿌리가 되어서라네 總是亢驕爲病根애석하게도 전통 있는 집안의 이름난 선비334)는 可惜故家名下士저의 큰 절개가 부족해 스승의 은혜를 배반했네 虧渠大節背師恩간재가 우암이 되었을 때 김은 윤증이 되었으니335) 艮作尤時金作尹공사336)가 먼저 《기언》 속에 있었네 供辭先在記言中층층이 호법이 생긴 것은 무슨 일 때문인가 層生護法緣何事지금처럼 우리의 도가 궁함을 크게 탄식하네 太息如今吾道窮 夢夢人眼昧私公, 㱡㱡何曾血在胸?陽下門墻陰盛日, 明剛獨有小心翁.心翁一筆勝千騎, 强賊難能任突衝.道脈生時民命活, 有如嘉穀在年凶.上黨山高金馬又, 蒼蒼獨帶舊時形.臼門正史編成日, 袞褒當從二子行.篋中遺書謂僞造, 杏下獨命作單傳.精靈壹鬱重泉下, 罪惡無窮上通天.精簡艮文今古罕, 敢行改竄呈微才.唉渠爲學頭如雪, 《大學》親新未讀來.忍言乙丑冬天禍? 懷有鴉扁帶有書.構殺同門讎局下, 行兇前古亦無諸?陽集枉被陰手弄, 嘆傷吾黨瀝心肝.賢勞考辨且休說, 留與來齡眞本看.齋言阡告一何悖? 總是亢驕爲病根.可惜故家名下士, 虧渠大節背師恩.艮作尤時金作尹, 供辭先在《記言》中.層生護法緣何事? 太息如今吾道窮. 구로(臼老)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가리키는데, 간재의 별호가 구산(丘山)이다. 단전(單傳) 불교 선종(禪宗)의 교리 전수 방식으로, 문자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여 전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개찬(改竄) 문장의 자구(字句)를 고치는 것을 말한다. 대학(大學)의 친신(親新) 《대학장구》 경(經) 제1장 제1절에 "대인(大人)의 학문하는 방법은 밝은 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新民, 在止於至善.]"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름난 선비 원문의 '명하사(名下士)'는 큰 이름을 누리는 선비라는 뜻이다. 당대(唐代) 한굉(韓翃)이 〈송정원외(送鄭員外)〉에서 "아이도 이름난 선비를 알고, 악공은 책 속의 시 다투어 노래하네.〔孺子亦知名下士, 樂人爭唱卷中詩.〕"라고 하였다. 김(金)은 윤증(尹拯)이 되었으니 스승인 간재를 배반한 일을 말한다. 김(金)은 김진사(金進士) 김용필(金容弼, 1876~1943)을 가리키는데,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우당(尤堂)이다. 1891년(고종28)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이다. 공사(供辭)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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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이 부쳐 준 시에 차운하다 次敬山見寄韻 우리들이 벗을 취할 때 무엇으로 취하냐 물으면 吾人取友問何以얼굴과 용모로 취하지 않고 마음으로 취한다 하네 不以顔容在以心마음으로 맺은 것은 한평생 도의를 지킬 뿐이니 心契平生惟道義공부는 두려워하고 조심함338)을 보전함에 있었네 功存氷薄與淵深행실이 정밀하고 강하지 못하니 소견이 밝지 못하고 行未精剛見未明곤궁한 집의 늙은이는 이룬 것이 없어 한스럽네 窮廬白首恨無成경산의 강인한 보필 이제야 서로 얻었으니 敬山强輔今相得쑥대처럼 곧기를 기약하여 평소 마음에 부합하게나 蓬直猶期副素情동짓달에 첫눈이 내려 동산 숲에 가득하니 仲冬初雪滿園林사립문에는 찾아오는 손님을 보지 못했네 不見柴門客到尋만 권의 서책 속에서 지난 일을 생각하며 萬卷書中懷往昔석 잔의 술 마신 뒤 지금 일을 애통해 하네 三杯酒後痛當今해를 지난 뜰의 대나무에 봉황은 소식이 없고 歲經庭竹鳳無信계곡의 솔에 바람부니 용이 크게 우는 듯하네 風入澗松龍壯吟어디선가 아양339)이 와서 나를 일으켜주는데 何處峨洋來起我종자기가 아니라서 절로 부끄러움이 깊어지네 我非鍾子自慙深 吾人取友問何以? 不以顔容在以心.心契平生惟道義, 功存氷薄與淵深.行未精剛見未明, 窮廬白首恨無成.敬山强輔今相得, 蓬直猶期副素情.仲冬初雪滿園林, 不見紫門客到尋.萬卷書中懷往昔, 三杯酒後痛當今.歲經庭竹鳳無信, 風入澗松龍壯吟.何處峨洋來起我? 我非鍾子自慙深. 두려워하고 조심함 원문의 '빙박(氷薄)'과 '연심(淵深)'은 여리박빙(如履薄氷)과 여림심연(如臨深淵)의 준말로,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고 깊은 연못에 임한 듯이 한다는 뜻으로, 행동을 할 때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 시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아양(峨洋) 산과 물을 가리키는데, 지기(知己)가 서로 만난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높은 산을 연주하면 친구인 종자기(鍾子期)가 "태산처럼 높고 높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을 연주하면 '강하처럼 양양하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평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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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의 〈탄치흑〉 다섯 수에 화답하다 和汝重《歎薙黑》五絶 눈 속의 매화가지 홀로 넋을 지키고 있으니 雪裏梅梢獨守魂어찌 춤추는 나비 앵앵거리는 벌을 알겠는가 何知蝶舞與蜂喧꽃은 절로 피었다 떨어지니 의지할 데 없지만 自開自落雖無賴내년 봄에도 구십 일의 흔적과 바꾸지 않으리 不換明春九十痕어지럽게 엎은 비 다시 뒤집은 구름 되어2) 紛紛覆雨復飜雲다투어 취하더니 비린내를 향기인 줄 아네 爭醉腥塵認馥芬우리의 의관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나 持我衣冠何處去유로3)가 천년토록 좋은 이웃이 되었네 兪盧千載好爲隣웅어4)의 바른 훈계를 외우던 사대부들 熊魚正訓誦冠紳변화에 처하여 지금 복건을 쓸 수 있는가5) 處變而今可飾巾한 가닥 《춘추》의 맥 천석만큼 무거운데 一脈春秋千石重어찌 방치하여 내 몸을 버리도록 하겠는가 豈容放過棄吾身전현을 낱낱이 세어보면 큰 성인이 몇인가 歷數前人幾豪聖모두 화복을 기러기 털과 같이 여겼다네 幷將禍福等鴻毛득실과 흥망성쇠의 이치를 보려 한다면 要看得喪乘除理도대체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는지 究竟誰爲太上高하늘이 〈북문〉6)을 짓게 했다 말하지 말라 休道天爲賦北門한겨울이라 한들 어찌 끝내 봄볕이 없겠는가 大冬豈竟不春暄그대에게 감개하여 끝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之君感慨無窮淚변하여 다른 해에는 경하하는 술잔이 되리라 化作他年慶賀樽 雪裏梅梢獨守魂, 何知蝶舞與蜂喧?自開自落雖無賴, 不換明春九十痕.紛紛覆雨復飜雲, 爭醉腥塵認馥芬.持我衣冠何處去? 兪盧千載好爲隣.熊魚正訓誦冠紳, 處變而今可飾巾?一脈《春秋》千石重, 豈容放過棄吾身?歷數前人幾豪聖, 幷將ㅁ福等鴻毛.要看得喪乘除理, 究竟誰爲太上高?休道天爲賦《北門》, 大冬豈竟不春暄?之君感慨無窮淚, 化作他年慶賀樽. 어지럽게……되어 세상의 인정(人情)이 변하기 쉬움을 비유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가 되니, 분분하고 경박함을 어찌 헤아릴 것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라는 말이 나온다. 유로(兪盧) 노(盧) 땅 사람인 편작(扁鵲)과 유부(兪跗)로서 모두 옛날의 명의(名醫)이다. 웅어(熊魚) 웅(熊)은 곰 발바닥 요리를 가리키고, 어(魚)는 물고기 요리를 가리키는데 의리와 이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어물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어물을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복건(服巾)을……있는가 원문의 '식건(飾巾)'은 복건으로 머리장식을 하고 관면(冠冕)을 쓰지 않는 것으로, 대개 벼슬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쓰인다. 《後漢書 趙咨傳 注》 북문(北門) 《시경》의 편명으로, 어지러운 조정에서 벼슬하는 현인의 체념하는 심정을 읊은 시이다. 그 시에 "북문으로부터 나가며, 마음에 근심하기를 많이 하였노라. 끝내 어렵고 또 가난하거늘,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이 없구나. 어쩔 수 없구나, 하늘이 실로 이렇게 만드셨으니, 말한들 무엇하랴.[出自北門, 憂心殷殷. 終窶且貧, 莫知我艱. 已焉哉, 天實爲之, 謂之何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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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6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庚寅 庚寅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에 이어 '곤선명(坤仙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와 여자, 즉 정해생의 남편과 경진생의 아내이다. 상주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2명 등이다. 안장일은 경인년 12월 14일로 되어 있다. 이장(移葬)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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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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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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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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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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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3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무오생으로, 안장일은 10월 20이다. 상주에 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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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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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7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정해생으로, 안장일은 10월 18일로 되어 있다. 상주는 아내와, 맏며느리와 손자, 둘째아들, 둘째아들 며느리, 셋째아들, 셋째아들 며느리, 넷째아들 등이다. 본문에 '구묘(舊墓)'의 방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장(移葬)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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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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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8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丁酉 丁酉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갑진생으로, 안장일은 정유년 2월 30일로 되어 있다. 상주는 망자의 며느리 혼자뿐이다. 처와 자식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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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5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己丑 己丑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경인생으로, 안장일은 기축년 10월 2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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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4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乙未 乙未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임진생으로, 안장일이 을미년 5월 초 7일이므로, 네 살 난 어린 계집아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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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부안 함양조씨(咸陽趙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咸豊七年 咸豊七年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7년에 작성된 부안의 부안김씨가의 며느리 함양조씨(咸陽趙氏)의 장사택일지. 1857년에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의 며느리 함양조씨(咸陽趙氏)의 장례를 위하여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곤화명(坤化命)'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의 망자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이 문서에는 이례적으로 망자가 함양조씨(咸陽趙氏)라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기묘생으로, 안장일은 함풍 7년(1857) 3월 12일이다. 상주는 아들 2명과 손자 5명 등 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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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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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3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扶安金氏 門中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에 이어 '곤선명(坤仙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와 여자, 즉 갑인생의 남편과 을묘생의 아내이다. 상주는 며느리와 손자며느리, 손녀, 증손녀 등이다. 안장일은 정월 24일로 되어 있다. 이장(移葬)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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