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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㱏年辛卯四月初三日幼學金載相前明文右明文事段養父身死後如干稅米辦納無路故勢不得已西十作悚字丁陳荒䖏南長㱏百二十尺東光三十尺価折參十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某人中若有異言之獘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正事柴塲主 喪人 朴羣坪金[喪人]證人 朴良坤[着名]茟執 幼學 金相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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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十年乙亥九月初七日幼學金載相前明文右明文事傳來柴塲悚字陳荒䖏累年禁養矣右人親葬次定限界折價拾參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族屬中若有紛紜之端以此告 官卞正事限界東至朴成良田南至朴春興畓西至朴龍仁田北至趙哥塚柴塲主 幼學 朴乃伯[着名]訂人同姓侄 辰汝[喪人]筆同姓侄 光汝[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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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年丁巳二月初十日李恒瑞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爲如可適有所用䖏故西十作是在悚字畓五斗落只所耕九負八束㐣価錢文二十五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二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或有同生子孫中爭詰之獘是去㝳以持此文告官卞正事畓主自筆趙介賛[着名]訂人 金壽文[着名]訂保 朴今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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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숙부인(淑夫人) 양씨(梁氏)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淑夫人 梁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梁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처 숙부인 양씨에게 내린 고신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처(妻) 숙부인(淑夫人) 양씨(梁氏)에게 내린 고신(告身)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숙부인 양씨는 법전(法典)에 따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되었다.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 依法典從夫職"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2품 문무관의 처는 종부직(從夫職)따라 정부인으로 봉작(封爵)되었다. 김응상이 종2품 가선대부로 임명되면서 그의 품계 따라 두 명의 아내 숙부인 임씨(林氏)와 양씨는 모두 정부인으로 봉작되었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김응상의 호구단자에 따르면, 양씨는 남편 김응상과는 19살 차이가 나며, 김응상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해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후처(後妻)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했던 김양묵(金養默)은 양씨와는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김양묵은 전처(前妻) 임씨의 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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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朴氏贈貞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妣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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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淑夫人梁氏贈貞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依法典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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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유인박씨(孺人朴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朴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朴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어머니 유인 박씨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어머니 유인(孺人) 박씨(朴氏)에게 내린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하면서 그의 어머니 유인 박씨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追贈)하였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妣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를 추증할 때에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렸다.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는 아들과 같은 가선대부로 증직(贈職)되었고 김응상의 어머니 유인 박씨는 그에 걸맞게 정부인으로 봉작(封爵)되었다. 김응상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바로 유인 유씨(柳氏)와 유인 박씨이다. 두 분 모두 이때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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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柳氏贈貞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妣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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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김양묵(金養默) 차첩(差帖) 고문서-교령류-차첩 정치/행정-임면-차첩 道光九年十二月 吏曺判書 文科新及第承仕郞金養黙 道光九年十二月 吏曺判書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參議[着押]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29년(순조 29)에 이조에서 국왕의 구두지시에 따라 '문과 신급제 승사랑' 김양묵을 권지승문원 부정자에 임명하면서 내린 첩. 1829년(순조 29) 12월 12일에 이조(吏曹)에서 국왕의 구두지시[口傳]에 따라 '문과(文科) 신급제(新及第) 승사랑(承仕郞)' 김양묵을 권지승문원(權知承文院) 부정자(副正字)에 임명하면서 내린 첩이다. 김양묵을 신급제라고 한 것은 그가 이 해 실시된 정시(庭試)에서 막 급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권지승문원 부정자의 직에 있었다는 것은 승문원 부정자의 직을 수습(修習)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문서의 배면(背面)에는 '吏吏 安致黙'이라고 적혀 있다. '이이'는 고신을 작성하는 이조의 서리로, 흔히 단골, 단골서리, 단골리로 불리웠다. 즉 김양묵의 고신을 직접 작성한 사람은 안치묵이었다. 이조와 병조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이들 정색서리(政色書吏)들은 지방 양반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김양묵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이 받은 고신들도 다수 전하고 있으며, 김양묵의 홍패(紅牌)와 시권(試券)은 물론, 그의 아들 김기세(金基世)의 시권도 그의 문중에 전하고 있다. 특히 김응상의 호구단자 7건이 전하고 있어서 이들 부안김씨가의 가족생활을 살펴보는데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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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爲差定事道光九年十二月十二日同副承旨臣朴熙顯次知口傳權知承文院副正字未差本養黙弋只進叱使內良如爲口傳施行爲有置有等以合何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帖下文科新及第承仕郞金養黙准此道光九年十二月 日差定判書 參判 參議[着押] 正郎 佐郞[官印](背面)吏吏 安致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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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七月 日 純祖 金養默 道光十二年七月 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 김양묵에게 내려 준 교첩 1832년(순조 32) 7월 이조(吏曹)에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 김양묵(金養默)을 통덕랑(通德郞) 승문원박사 겸 봉상시직장(承文院博士兼奉常寺直長)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교첩(敎牒)이다. 교첩이란 5품 이하의 관직자에게 주어지는 임명장을 말한다. 승문원저작은 홍문관, 승문원, 교서관 등에서 근무하던 정8품직 관리를 말하며, 통덕랑(通德郞)은 정5품 문산계이다. 그리고 승문원박사는 정7품직이다. 따라서 김양묵은 정8품직에서 정7품직으로 승진한 셈이다. 김양묵은 1829년(순조 29)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였다. 한편 문서의 배면(背面)을 보면 '이〃(吏〃) 김정호(金貞浩) '라는 기록이 있다. '이이(吏吏)'는, 이조(吏曹)의 서리(胥吏)를 지칭하는데, 흔히 단골, 단골서리, 단골리로도 불렸다. 즉 김양묵의 고신을 작성해 준 사람이 김정호였다. 김양묵은 김응상(金膺相)의 아들로,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아들 김양묵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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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曹道光十二年七月二十八日奉敎承文院著作金養默爲通德郞承文院博士兼奉常寺直長者道光十二年七月 日 [施命之寶]正郎判書 參判 參議佐郞(背面)吏〃 金貞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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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김양묵(金養默) 차첩(差帖) 고문서-교령류-차첩 정치/행정-임면-차첩 乙丑七月 日 兼任行縣令爲差定事 前掌令金養黙 乙丑七月 日 扶安縣監 金養默 전라북도 부안군 6.7*6.7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65년(고종 2) 7월에 겸임(兼任) 행현령(行縣令)이 전(前) 장령(掌令) 김양묵(金養黙)을 석전제초헌관(釋奠祭初獻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차첩(差帖) 1865년(고종 2) 7월에 겸임(兼任) 행현령(行縣令)이 전(前) 장령(掌令) 김양묵(金養黙)을 다음 달 초5일에 있을 석전제(釋奠祭)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차첩(差帖)이다. 이때의 석전제는 문묘(文廟)가 아니라 향교(鄕校)에서 공자(孔子) 등 선성(先聖), 선사(先師)들에게 행해지는 제사를 가리킨다. 초헌관은 제례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현령이 어느 곳의 현령인지 이 문서로는 확인할 없고, 향교 또한 어느 곳의 향교인지 알 수 없다. 김양묵이 부안(扶安) 출신이지만, 부안은 현령이 아닌 현감(縣監)이 다스리는 고을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부안일 수는 없다. 아마도 부안 인근의 고을에서 퇴직한 원로였을 61세의 김양묵을 석전제의 초헌관으로 초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령이 다스렸던 만경(萬頃), 용담(龍潭), 임피(臨陂) 가운데 어느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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兼任行縣令爲差定事來月初五日行 釋奠祭初獻官差定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 下前掌令金養黙 [準此]乙丑七月 日[官印]差定行縣令[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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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 吏曺 承文院正字金養黙 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8.0*8.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양묵(金養默)을 무공랑(務功郞) 행승문원저작(行承文院著作)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832년(순조 32) 5월 초 6일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양묵(金養默)을 무공랑(務功郞) 행승문원저작(行承文院著作)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발급 일자 위에 이조의 관인이 답인(踏印)되어 있고, 이조 판서(判書)가 서압(署押)하였다. 무공랑은 정7품 문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승문원은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관서로 정자는 정9품, 저작은 정8품이다. 수취자의 품계인 무공랑이 관직인 승문원 정자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亨福'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형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형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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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종 군에게 주다 贈劉君萬鍾 부지런히 송독하는 그대를 아끼니 愛君勤誦讀성실과 근면도 짝할 이가 없구나 誠謹亦無匹한결같이 이리하여 변함 없으면 一此無改易학업 달성은 의당 기필할 수 있네 業成宜可必내가 듣건대 충신하지 않으면 我聞不忠信만사에 모두 실속이 없다네 萬事皆無實이를 면하기 원래 쉽지 않으니 免此元未易젊은 날에 더욱 노력해야 하네 加勉及少日옥을 만약 쪼고 갈지 않으면 玉如不琢磨온율함38)을 어찌 드러내리오 何能著溫栗 愛君勤誦讀, 誠謹亦無匹.一此無改易, 業成宜可必.我聞不忠信, 萬事皆無實.免此元未易, 加勉及少日.玉如不琢磨, 何能著溫栗. 온율함 원문의 '온율(溫栗)'은 따듯하면서도 굳센 옥의 성질을 가리킨다. 《예기》 〈빙의(聘義)〉에 "군자의 덕을 옥에 견준다. 온윤하면서 광택이 있음은 인이고, 치밀하면서 굳센 것은 지이다.[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 仁也;縝密而栗, 知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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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에 올라 우연히 읊다 병인년(1926) 2월 ○아래도 같다. 上望帝峯 偶吟 【丙寅二月○下同】 객과 산이 모두 세상 벗어났으니 客與山俱出世間산은 객 같고 또 객은 산 같구나 山如客又客如山까마득한 세월 부용봉은 푸른데 百千萬劫芙蓉碧마흔셋 나이 귀밑머리 희끗하네 四十三年鬂髮斑궁한 길을 다 거쳐도 끝내 믿을 데 있고 歷盡窮途終有賴폭우에 다 씻긴들 어찌 깎여지랴 洗過暴雨豈能刪종일 서로 보아도 싫지 않으니 相看盡日還無厭귀하고 무거운 우정도 똑같구나 珍重交情也一般 客與山俱出世間, 山如客又客如山.百千萬劫芙蓉碧, 四十三年鬂髮斑.歷盡窮途終有賴, 洗過暴雨豈能刪.相看盡日還無厭, 珍重交情也一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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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종형 김만당428) 어른 희현 이 방문하다 外從兄晩堂金丈【熺鉉】見訪 세밑에 바다에서 산 서재를 찾아오시니 海笻山榻歲闌天눈 내린 달 밤에 정답게 둘이 마주했네 兩對殷勤雪月邊옥동429)의 새로운 취미는 냉담하고 冷淡玉東新趣味두북430)의 옛 임천은 황량하구나 荒凉斗北舊林泉지난 일은 이미 봄밤의 꿈이 되었으나 往塵已屬春宵夢장한 뜻이야 어찌 백발의 나이에 쇠하랴 壯志寧衰白首年다만 자주 만날 날을 길이 가져야 하리니 但得源源長有日그리우면 매화 필 때까지 기다릴 것 없네 相思莫到發梅前 海笻山榻歲闌天, 兩對殷勤雪月邊.冷淡玊東新趣味, 荒凉斗北舊林泉.往塵己屬春宵夢, 壯志寧衰白首年.但得源源長有日, 相思莫到發梅前. 만당(晩堂) '만당(晩棠)'의 잘못인 듯하다. '만당(晩棠)'은 근세 유학자 김희현(金熺鉉, 1872~1951)의 호이다. 자는 정오(定五)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김택술은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고 주고 받은 시 여러 편이 《후창집(後滄集)》에 실려 있다. 옥동(玉東) 옥산(玉山)의 동쪽을 말하는 듯하다. 두북(斗北) 두승산(斗升山)의 북쪽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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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군에게 주다 贈金君基洙 이 학문은 내면의 성신37)을 중시하니 此學貴中孚비유하면 닭이 품은 알과 같다네 譬如鷄抱卵생기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生意須接續참 정기가 끊어질까 두렵다네 眞精怕間斷이십여 일이 되기를 기다려야 待到二旬餘짧디짧은 깃텃을 볼 수 있네 羽毛見短短학문은 어떻게 이루는가 學成問何以진실로 나태를 경계하는 데 있네 亶在戒放懶권컨대 그대는 장년에 이르기까지 勸君迨壯年이십 년의 한도는 잡아야 한다네 把作二旬限얻지 못하면 마땅히 그만두지 말고 不得宜不措빠르게 하지 말며 늦게도 하지 말라 無速且無緩기틀을 갖춰야 물리를 깨닫게 되니 成形證物理묘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것이네 妙諦未可算 此學貴中孚, 譬如鷄抱卵.生意須接續, 眞精怕間斷.待到二旬餘, 羽毛見短短.學成問何以, 亶在戒放懶.勸君迨壯年, 把作二旬限.不得宜不措, 無速且無緩.成形證物理, 妙諦未可算. 내면의 성신 원문의 '중부(中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괘사를 인용한 것이다. 그 괘사(卦辭)에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에 미치면 길하니, 큰 냇물을 건넘이 이롭고 정함이 이롭다.[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한 데 대하여,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믿음이 마음에서 발한 것을 중부라고 한다.[信發於中, 謂之中孚.]라고 하였는데 후에 중부(中孚)는 성신(誠信)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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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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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문인함60) 【재연】에게 보냄 與文仁涵【載淵】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리움과 울적함이 날로 쌓이네. 근래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만복하며, 공부하는 과정은 독실히 하여 멈추지 않는가? 매번 인함(仁涵)이 일찍 아버지를 잃어 집안을 담당하고 거듭 많은 일을 당한 것을 생각함에 나의 가엽고 절박한 정이 없을 수 없었네. 그러나 영고(榮枯)와 통색(通塞) 이것은 실로 천지 사이에 없을 수 없는 일이니, 마치 한서(寒暑)와 주야(晝夜)가 앞에서 서로 교대하는 것과 같아 옮기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네. 다만 마땅히 하늘의 뜻을 들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고, 힘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와 수신(修身)이니, 나의 성분에 진실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일이라, 또 곤궁(困窮)과 불울(拂鬱)함이 두려워하고 힘써 옥성(玉成)61)시키는 바탕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나이가 젊고 기운이 강하여 앞길이 만 리 인데, 어찌 갑자기 스스로 상실하여 한편으로 선장(先丈)62)께서 기대하고 바랐던 무거움을 저버리고 한편으로 사우가 부탁한 부지런함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평소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한 방을 깨끗이 쓸고 《논어》《맹자》 및 《심경》《근사록》등의 글을 가지고 몇 줄을 보고서 의취(義趣)를 궁구하기에 힘써, 마음을 조금이라도 방일하게 하지 않는다면 차츰 쌓은 것이 많아진 뒤에는 절로 마땅히 공효를 보게 될 것이네. 의림(義林)은 비록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선장에게는 일찍이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또 임종 때 슬프고 간절하게 한 부탁을 받은 것이 진중할 뿐만이 아니었네. 오호라! 어느새 여러 해가 흘러 묘목(墓木)이 이미 굵어졌네. 매번 한 생각이 생기면 유명(幽明) 간에 저버림이 무궁할까 두렵고, 만약 하루아침에 덜컥 죽게 되면 또 무슨 말로 저승에서 만나게 될 날에 알리겠는가? 이것이 감히 이렇게 그대에게 경계하는 이유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蒼莽涯用。戀菀日積。未詢邇來侍省百福。鉛槧程曆慥慥不住否。每念仁涵早孤當室。荐遭多故。而不能無區區憫迫之情。然榮枯通塞。此固天地間所不無之事。如寒暑晝夜相代乎前。而有不可以移易者也。只當聽天順受。而所可勉者。惟讀書修身。性分固有底一事而已。又安知困窮拂鬱。不爲惕勵玉成之地耶。少年强氣。前程萬里。而豈可遽自隕穫。一以負先丈期望之重。一以孤士友付託之勤乎。平日幹蠱之餘。淨掃一室。將論語孟子及心經近思等文字。看得多少行。務窮義趣。勿令心少有放逸。則積累多後。自當見功矣。義林雖極無狀。而在先丈。未嘗不是知舊之一。且受其臨終悲懇之托。不啻珍重。嗚乎星霜累變。墓木已拱矣。每一念到。恐負幽明無有窮已。而若一朝溘然。則又以何語而報之於泉下相見之日乎。此所以敢爾奉規於吾友者也。如何如何。 문인함(文仁涵) 문재연(文載淵, 1873~?)을 말한다. 자는 인함,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옥성(玉成)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학문과 인격이 시련을 통하여 귀한 옥처럼 훌륭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선장(先丈) 문재연의 부친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자는 익중(翊中), 호는 오계(梧溪),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자세한 행적은 《일신재집》권19〈오계 문공 행장(梧溪文公行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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