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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陽日與輪巖【宋璟玉】摘菊盈酒 黃花能保節。白髮獨違時。書劍平生志。人知物不知。尊迴龍峀節。客到沛溪時。東籬千古露。黃滿我盃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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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승환】에게 답함 答洪士拯【承渙】 보내주신 편지에서는 단지 공부하는 과정에서의 득실을 예전처럼 면려하여주셨고, 부모와 어른을 섬기는 도로 책망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서로 경계하여주던 뜻을 생각해보면, 과연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실질에 힘쓰자는 뜻을 더욱 우러러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문과 효제(孝弟)는 본디 두 가지의 일이 아니니 존심(存心)은 효제(孝弟)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며, 치지(致知)는 효제의 이치를 이해야 하기 때문이고, 역행(力行)은 효제의 실질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하(子夏)가 이른바,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자신에게 있는 것부터 생각하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100)는 뜻과 같습니다. 어찌 노새를 타고 있으면서 노새를 찾겠습니까? 또 이르기를, "마음 속이 어지러우면 이치를 끝까지 따지지 못하여, 정심(正心)이 격치(格致)의 앞에 있다는 것도 의심하기에 이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그 이전에 거경(居敬)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이 사람을 가르칠 때는 먼저 《소학(小學)》 가운데에서 함양하고 수렴하여 잡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제거한 이후에, 《대학(大學)》에 나아가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이를 일컫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앞의 편지에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권하였던 것은 또한 이러한 뜻이었습니다. 주경(主敬)이 아니라면 치지(致知)를 할 수가 없으며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이 아니라면 마음과 몸 역시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대학(大學)》의 차례이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혼정신성(昏定晨省)101)하지 않고 돌아가시면 밤낮으로 곡하는 자는 비록 거짓된 것 같으나 돌아가시기 전에도 실수하고 돌아가신 뒤에 끝내 헤매는 것은 불가합니다. 示喩只以功程得失。從前勉勵。而未聞以事親事長之道。責之。追念前日相規之意。果有是矣。其內省務實之意。尤可仰認。然學問孝弟。本非兩件物事。存心所以爲孝弟之地也。致知所以解孝弟之理也。力行所以踐孝弟之實也。如子夏所謂博學篤志。切問近思。仁在其中之意也。何其騎驢覓驢乃爾耶。又云。胸次撓亂。不能窮理。而至疑正心之不在格致之先。此則從前無居敬之功故也。古人敎人先有以卽夫小學之中。涵養收斂。以去夫雜亂之心而後。卽夫大學。以窮其天下事物之理者。非謂是耶。愚於前書。勸之以靜坐者。亦此意也。非主敬。不能致知。非知至意誠。則心體亦不可得以正。此大學之序。不可誣矣。生不定省。而死爲朝夕哭者。雖似矯僞。然不可以失於前。而又終迷於後也。 학문을 …… 그 가운데 있다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나오는 말이다.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리며 보살핀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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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한 통의 편지에 위로와 감동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습니다. 이어 어버이께서 병환이 들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오래 묵은 증세인지요? 아니면 별도로 생긴 병환인지요? 성효(誠孝)가 지극하니 신명(神明)이 도우셔서 병환이 낫는 경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에 시탕(侍湯)하는 여가에 예전에 배우 학업을 다시 익히기를 바라니, 아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을 듯합니다. 형제(兄弟)와 숙질(叔侄)이 책상을 마주하여 강습하는 즐거움104)은 어떠한지요? 보내온 편지에서는, "끊어지기는 쉬우나 잇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근심하는 예증(例證)입니다.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여러 선생님도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르렀다."105)고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마땅히 이것에 대하여 용맹하게 정채(精彩)를 발하도록 노력하여 이어질 때는 많게 하고 끊어질 때는 적게 하되, 많은 것은 더욱 많아지게 하고 적은 것은 더욱 적어지게 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106)한다면 안자(顔子)가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은 경지에도 거의 가까워질 것이니 어떠하겠습니까? 의림(義林)은 깨진 항아리와 같아 쌓이기가 어렵고 찢어진 북처럼 울리지 않으나 다만 묵묵하게 세월을 보내며 갑작스레 죽을 날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러한 정경(情景)을 생각하면 어찌 슬프고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우리 벗이 전철로 삼을 경계가 여기에 있으니, 오직 제때에 미쳐 힘쓰고 힘쓰기를 바랍니다. 앞서 선생님의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107)이 다음 달로 정해졌는데 이미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집을 판각하는 일은 영남에서부터 통문(通文)을 보낸 지 이미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장성(長城)의 회소(會所)에서 다시 통문이 이어져서 여러 읍에 돌았고 저희 고향에는 두 차례 글이 도착하였기에 일찍 귀하에게 전하려고 하다가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중용(中庸)》의 「귀신장(鬼神章)」에서 '사(使)'라는 글자는108) 바로 귀신에게 부림을 받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理)의 묘처(妙處)입니다. 게으름은 마음을 두지 않아 생겨나는 병통이고, 어지러움은 마음을 두어 생겨나는 병통이니 이 말이 아마 마땅할 것입니다. 물러난 뒤에 자주 돌아보는 것은 두루 성찰한다는 뜻이고, 손님이 물러갈 때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손님의 예(禮)로써 예의에 맞는 태도【容儀】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一書何等慰感。仍審堂候違和。此是宿證耶。抑別有所愼耶。誠孝之至。神明扶佑。而天和之慶。必有其日。以是祈祝侍湯之餘。溫理一着。想不歇后。兄弟叔侄。聯床麗澤。其樂何如。來諭易間斷而難接續。此是通患例證。在孔門諸子。猶云日月至焉。況吾輩乎。只當於此。猛着精彩。使接續時多。間斷時少。至於多之又多。少之又少。而打成一片焉。則顔子之不違。庶乎幾矣。如何如何。義林敝甕難儲。敗鼓不響只得隱忍捱過。以俟溘然而已。撫念情景。寧不悲歎。吾友前車之戒。有在於此。惟及時勉勉。先先生易名之典。定在來月。想已聞之耶。文集鋟板事。自嶺中發通。已有月矣。其後長城會所。又有繼通。輪於列邑。而吾鄕所到二度文。早欲傳去貴中。姑未之耳。鬼神章使字。是鬼神使之。此便是理之妙處。昏惰爲無心之病。紛撓爲有心之病。此說恐當。退時頻顧。是周旋省察之意也。賓退不顧。是賓禮容儀之則也。 강습하는 즐거움 원문은 '이택(麗澤)'으로,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주는 것을 뜻한다. 《주역(周易)》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고 하였다. 한 달에 한번 인에 이르렀다 《논어》 〈옹야(雍也)〉에서, "안회(顔回)는 그 마음가짐이 석 달 동안 인(仁)의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 그 밖의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쯤 인의 경지에 이를 뿐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는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불교(佛敎)의 용어로, 피아(彼我), 주객(主客), 선악(善惡), 호오(好惡) 등 모든 상대적 대립 관념을 타파하여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로 조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 원문은 '역명지전(易名之典)'으로, 시호(諡號)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시호는 정2품 이상을 지낸 인물의 사후(死後)에 생존 시의 행적을 바탕으로 하여 국왕으로부터 받게 된다. 사(使)란 글자는 《중용장구》 제16장으로, '사(使)'라는 글자는 다음 문장에 나온다.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여 깨끗이 하고 성대하게 차려 입게 하여 제사(祭祀)를 받들게 한다.【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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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성【기경】에게 답함 答金子惺【箕敬】 전일에 그대 아버님께서 찾아와서 감사하는 마음이 무척 큽니다. 돌아가는 길은 평안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편지지에 가득한 긴 이야기는 간절한 질문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떠한 감격이 이와 같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사사로움을 따른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뜻을 세우지 못한 병통입니다. 진실로, "순(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90)와 같이 비상한 큰 뜻을 세워서 분발하고 격려하여, 천 명이나 만 명의 장부도 꺾을 수 없는 뜻을 둔다면 구구한 외부의 유혹에도 자연스레 얽매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경(居敬)이라고 하는 것과 또한 행(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음에 안정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혹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유혹이 있을 때, 한갓 구구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동쪽에서 없어지면 서쪽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날마다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어떠합니까? 나머지는 별지(別紙)에 있습니다.독서할 때에는 먼저 옷깃을 단정히 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상제(上帝)를 대하듯 해야 하니, 그렇게 하면 심지(心地)가 자연스럽게 전일(專一)하게 됩니다. 만약 몸이 흔들리거나 기울어져서 어지러워져서 검속하지 못하다면 그 마음이 전일하고자 하더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혼매(昏昧)하면 반드시 광명(光明)이 필요하고, 나태하고 게으르면 반드시 엄숙함과 공손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광명과 엄숙함과 공손함은 다만 천리(天理)에서 화합하여 이와 같이 되는 것이니 어떻게 뜻을 둠이 있겠습니까? 겨우 뜻을 둔다면 문득 두서가 여러 갈래로 되어 번잡함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보내준 편지에서, "대단히 힘을 쏟는다."고 한 것이니 아마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대저 함양(涵養)이라는 것은 범범하게 붙잡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익숙하게 되고, 힘써 행하고 실천함으로써 길러내야 합니다. 안팎으로 서로 도와주니 그 덕이 있어 외롭지 않을 것이고, 그 근본이 자연스럽게 순수하고 단단해질 것입니다.유능하면서 무능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안자(顏子)가 큰 뜻을 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의리(義理)가 무궁하다는 것만을 알고 물아(物我)의 간격이 있다는 것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았을 따름입니다.무릇 엄숙(嚴肅)한 것은 예(禮)이며, 화평(和平)한 것은 악(樂)입니다. 이것들은 잠깐이라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으니, 예(禮)를 통해 원칙을 세우고. 악(樂)을 통해 덕성을 완성하는 것91)에 이르러서는 사물에서 드러난 절문(節文)과 도수(度數)를 겸하여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이고, 남이 한 번 하면 본인은 백번 하는 것은 근면한 뜻입니다. 성인(聖人)은 원하면서도 욕심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向日春府丈枉顧。感戢良多。未審返旆安寧。馳溯無任。滿幅縷縷。無非切問。何感如之。示諭循私云云。此皆志不立之病。苟能立得舜何我何非常大志。奮迅激勵。有千萬夫不可回撓底意。則區區外誘。自然惹絆不得。而所謂居敬。所謂亦行。亦有所頓放處矣。苟或不然。而徒爾規規於外誘之除。則所謂滅東生西。日亦不足矣。如何。餘在別幅。讀書時。先須正襟肅容。如對上帝。則心地自然專一。若身體搖動攲斜。漫不檢束。而求其心之一。不可得矣。昏昧則須要光明。怠慢則須要肅恭。然光明肅恭。只是天理合下如此。何着意之有。纔着意。便是三頭兩緖。不勝其擾擾矣。來喩所謂大段着力者。恐不得。大抵涵養。不是凡然把捉之謂。須是讀書窮理以浸灌之。力行實踐以培養之。內外交資。其德不孤。而本源自然純固矣。以能問於不能。可見顔子衿懷大處。惟知義理之無窮。不見物我之有間。故如此耳。凡嚴肅抵是禮。和平底是樂。此不可斯須去身者也。至若立於禮成於樂。兼指節文度數著於事物者而言之。欲上人。是驕矜之心。人一己百。是勤勵之意。聖人所謂欲而不貪也。 순 임금은 …… 어떤 사람인가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上)〉에 나오는 내용으로, 안연(顔淵)은,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과 같이 될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예를 통해 …… 완성하는 것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시를 통해서 마음을 일으키고, 예를 통해서 원칙을 세우고, 음악을 통해서 덕성을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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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성에게 답함 答金子惺 지난 편지는 인편이 없어 답하지 못하였는데, 뜻밖에 또다시 보내준 안부 편지를 받았으니 받은 감동을 말로 다 하기 어렵습니다. 삼동(三冬)이라 공부하여 얻은 것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 실마리를 물어볼 길이 없으니 이것이 답답할 뿐입니다. 대저 그대는 타고난 자품(資品)을 확실하여 재능과 품성을 깨달음이 종종 서로 넘어서서 매번 진보함이 있고 물러남이 없었으니 속으로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문인 중에서 젊은 한 무리의 사람들로 뜻을 부칠 수 있는 이는 일찍이 이 사람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절도(節度)에 있어 친절하고 용이하게 해야 할 지점에서 만약 조금이라도 다잡지 않고 범범하게 한다면 일을 해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만약 이 외에 묘한 해답을 별도로 구한다면 또한 아득할 뿐이고 의거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어떤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또한 마땅히 일상생활 속에서 하학(下學)의 공부를 지극히 하고 독서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은 과정을 세세하게 세워서 번거로움을 이겨내며 착실하게 하되 빠르게 이해하기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 보존하고 지키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을 것이니 가까운 공을 계획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계속 축적하여 3~5년 동안 공부한다면 자연스럽게 심의(心意)가 점점 순조로워지고 근본이 대략 서게 되어 근거할 만한 곳이 있게 될 것이다. "92)라고 하였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일찍이 이러한 말을 보셨는지요? 이는 초학자에게 있어서 실로 통행할 법칙이라 할 수 있으니 지금 그대를 위한 모의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이니 어떠한지요? 자그마한 견해로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오직 독실하게 담당하고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야만 도(道)에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의림(義林)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일전에 과연 손자 하나를 얻었는데, 일찍이 만년에 조금은 마음 붙일 만한 곳을 얻었으니 큰 위로가 됩니다.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라는 것은, 다만 지극히 없으면서 지극히 있는 것이고, 지극히 비어있으면서 지극히 채워져 있다는 뜻입니다.어찌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이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 경계로 말한다면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로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천주(天主)가 물(物)을 나게 하고, 지주(地主)는 물(物)을 완성시키며, 인주(人主)는 물(物)에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음양(陰陽)과 강유(剛柔)와 인의(仁義)의 구별이 있게 됩니다.보통 사람의 마음은 어둡지 않으면 혼란스럽고, 대략 사물을 접하지 않으면 미발(未發)한다고 개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연히 순후(淳厚)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물(萬物)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을 때 한 줄기 양(陽)의 첫 움직임을 가장 볼 만한 단서(端緖)는 이 밖에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니 생물지심(生物之心)93)이 아닙니다.【질문】아직 응하지 못함과 이미 응한 것을 선후(先後)로 보지 않고 체용(體用)으로 보는 것은 어떠한지요?【대답】아직 응하지 못함과 이미 응한 것은 진실로 하나는 체(體)이고 하나는 용(用)입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체와 용은 근원이 하나라는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질문】기발(旣發)은 정(情)이라고 이를 만합니다.【대답】기발(旣發)한 것은 정(情)인데 또한 심(心)이라 이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性)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발(未發)한 것은 성(性)인데 또한 심(心)이라 이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정(情)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총괄하기 때문입니다.【질문】횡거(橫渠) 선생이 말하기를, "떠돌아다니는 기운이 어지러이 뒤섞이며 합쳐져 형질(形質)을 이루는데, 이것이 만 가지로 다른 인과 물을 생성되게 한다."94)라고 하였습니다. 천지 사이에는 음양(陰陽)의 기(氣)가 아님이 없으니 떠돌아다니는 기운은 어떤 기입니까?【대답】봄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우며, 가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 추운 것이 바로 음양(陰陽)의 양단(兩端)이며, 천지(天地)의 원기(元氣)입니다. 온갖 만물이 계속하여 생겨나니 이것이 천지의 떠돌아다니는 기운입니다.【질문】'정성(定性)'은 《대학(大學)》에서, "그칠 곳을 안 뒤에 정한다."라고 하였으니 '정(定)'이라는 글자는 어떠한 것입니까?【대답】《대학(大學)》에서의 '정(定)'이란 지(知)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정성(定性)'은 행(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그 얕고 깊음이 같지 않습니다.【질문】대인(大人)은 비록 말에 신용이 없고 행동이 과감하지 않더라도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말의 신용과 행동의 과감성을 얻지 않겠습니까?【대답】의(義)를 위주로 삼는다면 말의 신용과 행동의 과감성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질문】적자(赤子)의 마음은 미발(未發)하여도 진실로 맞아떨어지는 것입니까?【대답】적자(赤子)의 마음은 순일(純一)함과 무위(無僞)함을 취할 뿐이니 맞아 떨어지는 것의 여부는 진실로 논하기에 부족합니다.【질문】"천하에서 성(性)이라고 말하는 것은 발현된 현상을 유추한 것일 뿐이다."95) 발현된 현상이란 이미 그렇게 된 자취이니, 어찌 기(氣)가 아니라고 이르겠습니까?【대답】물(物)은 이(理)가 운행하는 손이나 다리와 같습니다. 물(物)이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이(理)가 그렇게 된 이유와 같으니 어진 이의 뜻을 살펴보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뜻이 있는 듯하다면 당시 선비들의 구기(口氣)를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질문】공자(孔子)께서,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버린다.……"96)라고 하셨습니다.【대답】구하는 것과 잡는 것은 엄연(儼然)하고 숙연(肅然)하여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시절이니 공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向書無便未復。謂外復承委存。感感難喩。三冬所得。想必不少。而無由叩其緖餘。是所紆鬱。大抵左右天姿確實。才性開悟。種種相過。每見其有進而無退。私竊喜幸。以爲吾黨少年一隊人。可以寄意者。未嘗非此人也。然其日用節度親切近易處。如或有小小悠泛。則足以害事。若外此而別求妙解。則又浩浩茫茫。無依據矣。朱子與人書曰。且當就日用間。致其下學之工。讀書窮理。則小立課程。耐煩着實。而勿求速解。操存持守則隨時隨處。收斂省覺而無計近功。如是積累。做得三五年功夫。自然心意漸馴。根本粗立。而有可據之地。未知曾見此語否。此在初學。實爲通行之典。而今爲左右謀。亦恐無過於此矣。如何。小小見解。不濟事。惟篤實擔當。無所間斷者。可與適道也。義林勞劣。姑遣。日前果得一孫。未嘗不是晩景一副寄懷處。慰慰。無極而太極。只至無而至有。至虛而至實之義。豈有太極陰陽互爲表裏之理。若言其界至。則說形而上下可矣。天主生物。地主成物。人主應物。故有陰陽剛柔仁義之別。常人之心。不昏則亂。不可槪以不接物爲未發也。然亦不無偶然回淳底時節。萬物未生。一陽初動。最是可見之端。非謂此外。非生物之心也。未應已應。不是先後看。而以體用看。如何。未應已應。固是一體一用。然須知體用一源之義。旣發則可謂之情云云。旣發情也。而亦可謂之心。但不可謂之性未發性也而亦可謂之心。但不可謂之情。心統性情故也。橫渠先生曰。遊氣紛擾。合而成質。生人物之萬殊。蓋天地之間。莫非陰陽之氣。而遊氣者。是何氣也。春溫夏熱秋涼冬寒。是陰陽兩端。天地之元氣也。品物庶類。化化生生。天地之遊氣也。定性。與大學知止后有定定字。如何。大學之定。是知上說。定性之定。是行上說。淺深不同。大人雖不信果。而在學者。豈不由於信果。所主者義。則信果在其中。赤子之心。其未發則固是中也。赤子之心。取其純一無僞而已。中不中固不足論。天下言性也。則故而已矣。故是已然之跡。則豈非氣乎云云。物是理之運行乎脚也。物之所已然。是理之所已然。觀賢意。似有牽强底意。不免於時儒口氣。孔子曰。操則存。捨則亡云云。求與操。是儼然肅然。不二不三時節。功夫要處。正在於此。 또한 마땅히 …… 있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근사록(近思錄)》 25장 〈교학(敎學)〉에 나오는데, 주자가 손인보(孫仁甫)에게 답한 편지를 인용한 것이다. 생물지심(生物之心) 만물을 낳아 기르는 마음을 가리킨다. 떠돌아다니는 …… 생성되게 한다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근사록(近思錄)》 〈도체(道體)〉에도 소개되어 있다. 천하에서 …… 것일 뿐이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이다.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버린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구절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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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남과 내 집에서 수계할 때 김정재 종락 가 마침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몹시 즐기다가 정재가 비로소 돌아가다 與吳斗南修契弊廬, 金貞齋【宗洛】適到, 歡甚夜久, 貞齋始歸 적적하게 송장처럼 지내 이승이 아닌데 尸居寂寂界非陽고상한 자취가 찾아주어 새벽빛 얻었네 高躅來臨得曙光누가 사문 일으켜 실추된 단서를 전할까 誰起斯文傳墜緖세상 병폐에 좋은 방도 처치하기 어렵네 難將世瘼處良方마음은 늙어서도 서로 더욱 친밀하지만 寸心到老交加密가까운 곳에 약속하기도 형세가 방해하네 尺地留期亦勢妨이제부터 산중의 고사를 남기고 從此山中遺故事달 기우는 매화 길에 바삐 돌아가네 月殘梅徑去歸忙위 시는 정재에게 준 것이다.두남이 봄볕에 유람하러 나와서 斗南遊屐適春陽고맙게도 내 집이 자색 빛을 입었네 感我茅廬被紫光신중하며239) 북학240) 못함을 깊이 한탄하고 木谷深歎無北學진령에서 그리움 간절해 서방을 바라보네241) 榛苓思切望西方눈앞의 풍물은 한결같이 얼마나 좋은가 眼前風物一何好술 마신 뒤의 애환은 둘 다 무방하다네 酒後悲歡兩不妨오늘의 진솔한 모임을 아는가 모르는가 知否今日眞率會벌써 삼기242)가 지났으니 세월이 바쁘네 已經三紀歲華忙위 시는 두남에게 준 것이다. 尸居寂寂界非陽, 高躅來臨得曙光.誰起斯文傳墜緖? 難將世瘼處良方.寸心到老交加密, 尺地留期亦勢妨.從此山中遺故事, 月殘梅徑去歸忙.【右贈貞齋】斗南遊屐適春陽, 感我茅廬被紫光.木谷深歎無北學, 榛苓思切望西方.眼前風物一何好? 酒後悲歡兩不妨.知否今日眞率會? 已經三紀歲華忙.【右贈斗南】 신중하며 원문의 '목곡(木谷)'인데, 높은 나무나 깊은 골짜기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처럼 실수가 없도록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완(小宛)〉에 "우리는 온유하고 공손해야 한다, 나무 위에 아슬아슬 앉아 있는 것처럼. 우리는 무서워하며 조심해야 한다, 깊은 골짜기를 굽어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전긍긍해야 한다, 얇은 얼음을 밟고 있는 것처럼.〔溫溫恭人, 如集于木; 惴惴小心, 如臨于谷; 戰戰兢兢, 如履薄氷.〕"라고 하였다. 북학(北學) 중국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의 "진량은 초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주공과 중니의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중국에 와서 학문을 배웠다.〔陳良楚産也, 悅周公仲尼之道, 北學於中國.〕"라는 글에서 유래하였다. 진령(榛苓)의……바라보네 전성기를 구가한 훌륭한 임금을 사모하여 서울 쪽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시경》 〈간혜(簡兮)〉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습지에는 감초가 있도다.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로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서방의 미인은 서주(西周)의 훌륭한 왕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현자(賢者)가 나쁜 세상의 하국(下國)에서 태어나 주나라가 성할 때의 훌륭한 왕을 그리워하여 지은 것이다." 하였다. 삼기(三紀) 36년이다. 고대에는 목성의 태양 공전 주기인 12년을 기준으로 시간을 이해하였는데, 이 12년이 1기(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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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기 靜齋記 한 번의 동함과 한 번의 정함66)은 천지(天地)가 닫히고 열리는 기틀이고, 음양(陰陽)이 유행하는 자취이며, 인심(人心)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묘리이니, 서로 있어야 하고 서로 없어서는 안 되며, 서로 의존해야 하고 서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덕(德)67)으로 말하면 정(貞)이 줄기가 되고, 본성으로 말하면 의(義)가 바탕이 되며68), 사시(四時)로 말하면 겨울이 갈무리의 시기가 되니69), 이것이 사람의 준칙을 세울 때에 고요함을 주장하는 이유이다.70) 하물며 우리들은 나이와 정력이 이미 저물어 가서 쇠퇴함이 날로 심해져 가니, 이는 천시(天時)에서 한 해의 겨울이 아니겠는가.형체는 동작의 형세를 따를 수 없고, 정력은 사색의 번민을 꿰뚫을 수 없으니, 오직 수습하고 검속하며, 사리사욕을 없애고 말수를 줄여서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철에 바싹 마른 나무가 뿌리를 감추고, 만물이 얼어붙는 엄동설한의 계절에 땅속에 칩거하는 벌레가 자신을 보존하는 것처럼 선천(先天)에서 속세를 잊어버리고 상유(桑楡)에 남아 있는 빛을 되돌려 조용하고 한가롭게 여생이 다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노년을 살아가는 계책일 것이다.나의 벗 박공(朴公) 인여(仁汝)가 고요함[靜]을 한 글자의 부절(符節)로 삼아 집의 편액에 써서 표시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흰 머리를 서로 바라보는 처지로 서로 위로할 길이 없기에 삼가 집에 명명한 뜻을 써서 마음을 부친다. 一動一靜。是天地闔闢之機。陰陽流行之迹。人心生生之妙。可以相有而不可以相無。可以相須而不可以相妨。然以言乎德則貞爲幹。以言乎性則義爲質。以言乎時則冬爲藏。此立人極者。所以主乎靜也。而況吾輩年力已邁。衰替日深。此非天時一歲之冬乎。形體不足以服動作之勢。精力不足以貫思索之煩。惟是收拾斂束。恬澹簡黙。如枯槁之木。晦根於搖落之時。封蟄之蟲。存身於嚴凝之節。忘劫塵於先天。回餘光於桑楡。從容閒暇以俟餘日。此是老年活計也。余友朴公仁汝。以靜爲一字符。而標題於齋顔者。非此意耶。白首相望。無以相慰。謹書其名齋之義以寄情焉。 한 번의……정함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함과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는 말이 보인다. 덕(德) 《주역》 〈건괘(乾卦)〉에 나오는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가리킨다. 본성으로……되며 사람은 태어날 때에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받아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 네 가지 본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시(四時)로……되니 《사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무릇 봄에 생겨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니, 이는 천도의 큰 법이다.[夫春生夏長, 秋收冬藏, 此天道大經也.]" 하였다. 이것이……이유인데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ㆍ정ㆍ인ㆍ의로 정하되 고요함을 주장하여 사람의 준칙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는 구절이 보인다. 《古文眞寶 後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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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으로 읊다 卽事 부슬부슬 비 오고 가벼운 바람 불더니 雨脚纖纖風勢輕한 낮에 보리 향이 한바탕 일어나네 午天麥氣一番生초당에서 반나절 한가롭게 앉았나니 草堂半日悠然坐문득 흉금이 아주 맑아짐을 느끼네 蝢463)覺胸衿別樣淸 雨脚纖纖風勢輕, 午天麥氣一番生.草堂半日悠然坐, 蝢2)覺胸衿別樣淸. 蝢 '頓'자의 잘못인 듯하다. 蝢 '頓'자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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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日雨 微雨祟朝下。胚胎萬物生。淸塵驅沴氣。潤屋報豊聲。古墓莎初濕。高山雪益明。今年春色早。歸雁已離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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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에서 옛 일을 생각하다 望帝峯懷古 저녁 기운 서늘하게 푸른 산 적시는데 夕氣蒼凉滴翠微아득히 지난 일들이 꿈속에 아련하네 渺茫往跡夢依依정충사318) 옛 사우에 찬 안개 깔리고 旌忠祠古寒烟鎖척심정 터에는 어지러이 새가 나네 滌心亭墟亂鳥飛연령의 해골들은 누런 땅에 묻혀있고 鳶嶺髑髏黃瘞土대암의 불탑에는 푸른 이끼 자라났네 臺菴佛塔碧生衣한 통의 술 다 들이킨 청산의 늙은이 一樽酒盡靑山老바위에서 방황하며 곧장 돌아가지 못하네 石上彷徨未徑歸 夕氣蒼凉滴翠微, 渺茫往跡夢依依.旌忠祠古寒烟鎖, 滌心亭墟亂鳥飛.鳶嶺髑髏黃瘞土, 臺菴佛塔碧生衣.一樽酒盡靑山老, 石上彷徨未徑歸. 정충사(旌忠祠)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우로, 송상현(宋象賢)ㆍ신호(申浩)ㆍ김준(金浚) 등을 배향하고 있다. 1632년(인조10) 창건되었으며, 1657년(효종8)에 사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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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한 밤에 짓다 下山夜賦 봄옷으로 산에 올랐다가 가벼운 추위도 두려워 登高春服怕輕寒해질무렵 서둘러 숲 아래 난간으로 돌아왔네 薄暮催歸林下欄세상엔 바람 먼지 일어나고 금수들319) 난무한데 世上風塵交鳥獸산중에 세월 보내며 홀로 의관320) 차려 입었네 山中日月獨衣冠궁박한 길은 운명이 있어서니 때를 따라 즐기고 窮途有命隨時樂명승의 땅은 인연이 남아있어 도처가 편안하네 勝地留緣到處安저물 무렵에 화수의 한321)이 다시 더하는데 向晩更添花樹恨금성의 산색과 이별하는 일도 어렵구나 錦城山色別離難 登高春服怕輕寒, 薄暮催歸林下欄.世上風塵交鳥獸, 山中日月獨衣冠.窮途有命隨時樂, 勝地留緣到處安.向晩更添花樹恨, 錦城山色別離難. 금수들[鳥獸] 오랑캐를 비유한 것이다. 의관(衣冠) 오랑캐의 복장이 아닌 선비의 복장을 말한 것이다. 화수의 한 송파 족숙 및 김태형과 헤어진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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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일452)에 천태산에 올라서 餞春日 上天台山 저무는 봄에 남국의 객이 산을 오르니 春歸南國客登山인사와 천시가 모두 한가하지 않구나 人事天時共未閒짧은 비와 가벼운 바람 어찌 이리 재촉하나 短雨輕風何太促맑은 술과 절창에 돌아가는 것도 잊었네 淸罇絶唱却忘還오늘 밤 뒤엔 마음 아프다고453) 말하지만 傷心縱說今宵後약속처럼 만 겁 동안 다시 돌아온다네454) 如約重回萬劫間아직 풀지 못한 가슴 속의 많은 생각을 未了胸中多少意재잘재잘 우는 숲새에게 모두 전해보네 總傳林鳥語間關 春歸南國客登山, 人事天時共未閒.短雨輕風何太促, 淸罇絶唱却忘還.傷心縱說今宵後, 如約重回萬劫間.未了胸中多少意, 總傳林鳥語間關. 전춘일(餞春日) 봄의 마지막 날, 즉 음력 3월 그믐을 가리킨다. 마음 아프다고 봄이 가는 것을 애상하는 것이다. 약속처럼 …… 돌아온다네 지금 봄이 가지만 봄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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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에게 답함 答曺仲直 영계(令季)13)가 입문(入門)하고 은혜로운 편지가 뒤따랐으니, 떨어져 지내던 차에 얼마나 가슴이 후련한지요. 하물며 어버이를 모시는 상황에 복이 더하게 되셨음을 알게 되었으니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책자(冊子)를 공부하는 것은 사고(事故) 때문에 흔들렸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이 역시 공부를 하는 실제의 장소가 됩니다. 함께 휩쓸려 가면 참으로 안 되며, 공부를 끊어버리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안 됩니다. 공자께서도, "행하고 나서도 여력이 있을 경우에는 학문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마다 도리(道理)를 살피고, 쉽게 지나치도록 하지 말며, 다소 여지가 있음을 따라서 쓸데없는 객들을 만나는 일을 생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줄여야 합니다. 오로지 과거를 위한 책을 보려 하거든,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깊이 빠져들어 세밀하게 연구하며, 날마다 이렇게 하여 잠깐의 끊어짐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치가 분명해지는 경지에 가까워질 것이니, 어떠합니까? 의림(義林)은 젊어서는 뜻에 힘쓰지 않았고, 늙어서는 더욱 황폐해져서 구구하게 슬퍼하고 후회하지만 죽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릴 적에는 자라서 학문에 힘쓸 것을 생각하고, 늙어서는 죽을 때까지 가르침에 힘쓸 것을 생각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죽음을 것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쳐주지 못하였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어찌하여 장성한 뒤에 앞으로 나아갈 만리 길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앞서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뒤에 오던 수레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니, 부디 힘쓰도록 해주십시오. 令季入門。惠函隨之。離索之餘何等慰豁矧審侍省增祉者乎。但冊子功夫。爲事故撓奪云者。此固衆人通患。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也。與之俱往。固不可。絶之不爲。尤不可。孔子不曰行有餘力。則以學文乎。事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隨其多少暇隙。省見得閑人客省說得閒言語。惟將見課文字。夙夜諷誦。沈潛細繹。逐日似此。無容間斷。則庶幾心定而理明矣。如何。義林少不勵志。老益荒廢區區悲悔。有死莫追。孔子曰。幼思其長則務學。老思其死則務敎。吾雖思死。而無以爲敎於人。切願諸君子獨不思長而爲前程萬里之計乎。前車之覆。後車之鑑。勉之勉之。 영계(令季) 상대방의 아우를 높여 부르는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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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뜻밖에 한 폭의 서신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하물며 서신에 담긴 말과 뜻이 모두 지극하여 형식과 실질을 겸비하였으며, 또한 별지(別紙)에 적힌 수십 개의 조항이 모두 스스로 깊이 탐구하여 자세히 풀어내는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근래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세밀하게 힘써 조예가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구하게 위로가 되어 기쁘니, 어찌 남의 일처럼 느끼겠습니까. 다만 여러 조목 가운데, 구두【句讀】를 말함에 자질구레한 뜻은 많고, 핵심을 논설할 때는 중요한 뜻은 적으니 이는 참으로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채찍질하여 내면으로 가까이하여 자기 몸에 붙게 하여야 한다."112)라고 하였는데, 어찌 이를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고,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 격113)이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질문】'존심(存心)'이란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이니, 이것은 배우는 자들이 처음부터 힘써야 할 곳이고, '진심(盡心)'이란 공부의 가장 지극한 경지인 것입니까?【대답】'마음을 다하여 성(性)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의 일이고,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은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는 것에는 다소 여러 가지가 있고, 실행하는 것에도 다소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앎이 진보할수록 행실에 힘이 더하게 되고, 힘써 행할수록 앎이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심을 잃지 않도록 보존하고 기르는 것【存養】이 초학(初學)이 된다고 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이 가장 지극한 것이라고 일괄적으로 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질문】"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114)라는 말에서, '명'은 진씨(陳氏)는 '기(氣)'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막비(莫非)' 두 글자는 마땅히 정명(正命)과 합치되는 듯한데, 정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온전히 기(氣)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대답】명(命)은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 있고 이(理)에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고, 기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그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질문】《맹자(孟子)》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115)라고 하였는데 이는 윗 글에 나온 '진심(盡心)'의 공효(功效)일 것입니다.【대답】만물이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입니다.【질문】"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116)라고 말한 부분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짊과 능함을 보고 자신의 불능을 생각하면, 어느 누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저의 병통은 이러한 마음이 단지 잠깐씩만 있다가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확충(擴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대답】이미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면, 또 성인(聖人)과 같지 못함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확충하는 방법입니다.【질문】"패자(覇者)의 백성은.……"117)이라고 한 부분에서, 먼저 패도(覇道)를 말한 뒤 왕도(王道)에 이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음식으로 비유해 보자면, 패도는 입에 맞는 육류와 같아서, 오래도록 먹으면 물리는 느낌이 있으나, 왕도는 숙속(菽粟)이 입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평이하고 담백하여 별다른 맛이 있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대답】말은 본디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가벼운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가벼운 것을 먼저 말하고 중요한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다음 글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왕자(王者)의 일이 아님이 없음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이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왕자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있어 음식을 줄 것입니다. 패자(覇者)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음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감응한 것과 감응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질문】"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118)라고 한 부분에서,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정사를 먼저 말한 이후에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인지요?【대답】만약,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를 행한다."고 말하면 괜찮지만,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119)과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 형벌을 쓰지 않은 이후120)로 다시는 베풀 만한 정사가 없었던 것입니까?【질문】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 몸은 단지 한 개의 몸통이니, 안과 밖으로 천지 음양의 기(氣)가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몸통만 유독 천지 음양의 기가 아닌 것인지요?【대답】몸통은 음양이 모이는 곳이요, 안과 밖은 음양이 흐르는 곳입니다.【질문】"마음에는 출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비유하자면, 화로에 한 점의 불씨가 숨어 있는데, 불씨가 다해 갈 때 바람을 불어주면 다시 환해지는 것과 같습니다.【대답】출입한다는 것은 곧 존망(存亡)의 뜻이니, 화롯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하나의 이치가 하늘에 있어, 원(元)·형(亨)·이(利)·정(貞)이 되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됩니다. 그러나 천지의 운용(運用)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대답】하늘의 운행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곧 분수처(分殊處)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생각이 생겨남에 사계절의 질서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질문】구사(九思)121)는 보고 듣는 것을 먼저 하니, 앎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구용(九容)122)은 손과 발로 행동을 먼저 하니, 실천의 차원에서 말한 것인지요?【대답】옳은 듯합니다.【질문】천지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고, 성인이 모든 일에 응하는 것이 다 하나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다만 사물에 응할 뿐 만물을 생성하지는 않고, 천지는 다만 만물을 생성할 뿐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하늘과 인간이 상수(相須)한 뒤에야 도리(道理)에 흠결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겠습니까?【대답】이 단락은 매우 좋습니다.【질문】무릇 '치지(致知)'를 단지 성정(情性)에서 구한다면 간략함을 힘쓰는 것이 심한 것 같고, 단지 만물에서 구한다면 이 또한 넘침에 힘쓴 것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정자(程子)는,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라."라고 하였고 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름지기 살펴야 한다.……"123)라고 말한 것입니까?【대답】이른바, "체(體)와 용(用)을 모두 거론하고 사물과 자신을 모두 다한다."는 것은 '치지(致知)'에서 또한 볼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정자(程子)가 어떤 이의 물음에 답하기를, "성인의 말씀은 절로 가까운 곳에 있다가, 절로 먼 곳에 있다.……"124)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멀고 가까움이 두 가지 일인데, 가까운 곳에 있어서는 억지로 파낸다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입니까? 무릇 한 가지 일에는 가까움이 있고 멂이 있으니, 깨끗이 쓸어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지극히 비근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이치는 지극히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대답】정자가 여기서 멀고 가까움을 이야기 한 것은, 각 조(條)에서 이야기한 것이니, 땅과 같이 가깝고 하늘처럼 멀다는 말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질문】정자가 말하기를,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고, 자신을 미루어 사물에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以)'라는 글자에도 또한 미룬다【推】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대답】하늘의 도는 변화하여 각기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니, 이는 천지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 하나의 이치가 혼연하여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으니, 이는 성인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질문】형이상과 형이하의 뜻에 대해 제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니, 원컨대 한 문장으로 상하의 분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대답】【형이상과 형이하의】 상과 하는 형체가 나타나는 상하가 아니니, 바로 이 '형(形)' 한 글자는, 도기(道器)125)의 경계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질문】무극(無極)으로 성(性)을 말하고, 태극(太極)으로 심(心)을 말하니, 고요한 가운데 조짐이 아닌 것이 없음이 무극이요, 유행(流行)하여 방체(方體)가 있는 것이 태극입니다.【대답】무극과 태극은 단지 하나의 이치로, 마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장차 무극이 도성(道性)을 부르거나 장차 태극이 도심(道心)을 부를 수 없으니, 이는 무극과 태극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아울러 마음과 본성의 분별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질문】항상 온후한 생각을 보존하면 자연히 환히 드러날 수 있게 되고, 자연히 참열(慘烈)하게 되며, 자연히 수렴할 수 있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온화함이 환히 드러나게 되면 쉽게 볼 수 있는데, 만약 참열(慘烈)·강단(剛斷)·수렴(收斂)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흔적이 없어 끝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대답】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을 보면, 각자 하나씩 그 시기가 있으니, 봄에 생겨나는 기운이 아닌 것이 없으면서 그 가운데 운행하니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질문】음(陰)이 구괘(姤卦)에서 생겨나 곤괘(坤卦)에 이르러 순음(純陰)이 됩니다. 양(陽)은 복괘(復卦)에서 생겨나 건괘(乾卦)에 이르러 순양(純陽)이 됩니다. 양의 극열(極熱)하고 홍염(洪炎)한 기운이 순양월(純陽月)126)에 있게 되면 반대로 양이 쇠하고 음이 생겨나는 때가 되니, 이것은 어떤 이치인지요? 음 또한 그러합니까?【대답】미세한 양의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면, 궁음(窮陰)127)이 위에서 다하게 되고, 미세한 음의 기운이 안에서부터 생겨나면 항양(亢陽)128)이 밖으로 타오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아교가 꺾이고 손가락이 얼어 떨어지는 추위와129) 쇳덩이가 흐르고 돌이 녹는 열기는 대부분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이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의 주(註)에 의하면,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는데, 초학자에 있어서 어찌 노심초사하지 않고서 자연히 통철(洞澈)하게 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생각하되, 또 거듭 생각해야 한다."130)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대답】이 말은 전적으로 힘써 고심하고 탐색하되 함양(涵養)에 힘쓰지 않는 자를 감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함양이 무르익으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에 모두 힘을 쓰기 쉬워질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131)라고 하였는데, 억지로 마음이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고자 하더라도 잡스럽게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마음이 머리를 내밀어 일정함이 없습니다. 대개 공부를 시작할 때, 먼저 먼저 의관을 가다듬고 용모를 바르게 한 뒤에, 오래도록 느슨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날 절로 묵묵히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대답】이것이 언제나 마음을 불러 일깨운다는 말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궁리(窮理)하는 공부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랫 부분의 문장에 담긴 뜻은 약간 이포새(伊蒲塞)132)의 기미가 보입니다.【질문】사람 마음의 어리석고 막힌 부분을 무심(無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한 '무심'은 그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대답】비록 어둡고 막힘이 극에 달하였더라도 본심(本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러므로 정자가 '무심'은 불가하다고 여긴 것은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하니, 순리대로 나아가면 본심 또한 어렵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저의 생각에 내면에 기품(氣稟)의 구속됨이 있고, 밖으로 사물에 얽매이는 폐단이 있으면, 매번 순리대로 나아가면 어려움이 없다는 구절을 외우며 자신에게서 징험해 보이고자 한들, 제지당하고 모순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어렵지 않은 공부가 가능하겠습니까?【대답】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앎은 창졸간에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참된 앎을 기다리면서 힘써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바를 따르되 지극히 어려운 공부에 이르게 된다면 점차 어렵지 않은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질문】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133)은 반드시 정(靜)을 주로 삼아야 하니, 염려되는 것은 이것이 회암부자(晦庵夫子 주희(朱熹))의 말씀인데 다른 날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의 주정(主靜)을 나무란 것은 어째서입니까? '정'이라는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는지 몰랐던 것입니까?【대답】정을 주로 한다는 것은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이지 상산(象山 (陸九淵))의 말이 아니니, 상산의 학문은 정을 주로 한다는 말과 매우 다릅니다.【질문】《중용》 「귀신장(鬼神章)」의 주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기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천지의 기와 더불어 서로 접속(接續)되지 않아서 끊어짐이 있는 것입니까?【대답】"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134)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몸에서 사체(四體)와 같으니 사물과 닿으면 느끼지 않음이 없으니,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할 때 만약 한 몸이 아니라면, 움직일 때 어찌 능히 서로 느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질문】우진(祐鎭)135)은, "기질(氣質)이 비록 다르더라도 성(性)은 본디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본연의 성(性)은 총명하고 밝으나, 기질(氣質)의 성(性)은 맑음과 혼탁, 순수와 잡됨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理)는 본디 혼연하여 잡됨이 없으나, 형(形)과 기(氣)의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면 선악의 편벽되어 다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같다고 한다면,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설명하는 것이니 어떠합니까? 우진은, "성은 기질에 있어서 물이 그릇에 담긴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릇이 더러워진 것을 가지고 물 또한 탁하다고 하겠습니까?【대답】성(性)은 본디 두 가지가 아니나 기질(氣質) 속으로 들어가면, 단지 이(理)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은 본연의 성(性)이고,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이 됩니다. 총명하고 밝음을 본연의 성으로 삼으면, 이는 곧 심(心)을 성(性)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맑고 혼탁하며 순수하고 섞인 것이 기질의 성이 되니, 이것이 바로 기를 불러 이(理)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모두가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곧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는 다시는 본연의 성이 없는 것입니까? 사증(士拯)의 말은 구절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니, 문녕(文寧)의 말이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니 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질문】마음은 변할 수 있으나 형체는 변할 수 없다는 뜻을 논하였는데, 우진(祐鎭)은, "우리의 몸이 본래 천지에서 난 것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사계절에 통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하나의 빈껍데기요, 사계절은 하나의 도리(道理)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사시(四時)는 1년 동안 변화합니다. 승원(承源)은, "마음이 물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있고, 형체는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승환(承渙)은, "매달아 놓는 거울이 진흙에 묻혀있는 것과 같으니 거울을 닦아서 연마할 수 있으나, 그 갑(匣)도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했는데, 마음은 빛과 같고, 형체는 갑과 같은 것입니다.【대답】형체는 국한되어 정해져 있으니 변할 수 없고, 심체(心體)는 허령(虛靈)하여 변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물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학문에 힘씀이 지극하면, 형체 또한 바꿀 수 있으니, 이른바 수면앙배(粹面盎背)136)요, 이른바 용모와 자발(髭髮)137)이 평소보다 배로 많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녕(文寧)의 말은 타당하지 못한 듯하니 어찌 천지를 빈껍데기라 하고 사계절을 도리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은 비유하면 천지의 주재(主宰)요, 몸은 비유하자면 천지의 형체입니다. 윤심(允深)의 말이 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땅히 말하기를, "마음은 오행의 정영(精英)인 까닭에 변할 수 있고, 몸은 오행의 체질(體質)이니 변할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의 몸을 오행과 짝짓는다면, 흙과 돌이 뼈와 피부요, 기와 혈액은 물과 불입니다. 사증(士拯)이 말한, "거울의 빛은 문질러 닦을 수 있지만, 갑(匣)은 바꿀 수 없다."는 이 비유는 매우 정당합니다. 그러나 줄로 갈아내고, 옻칠하여 윤이 나게 하면 갑 또한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질문】"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138)는 구절을 논함에 승환(承渙)은, "'직(直)'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고, '방(方)'은 사물마다 각기 그 마땅히 구분하여 이른 것을 칭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직'이란 근원을 함양하는 공부라고 하였고, '방'은 마땅히 해야 하는 지선(至善)을 얻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승원(承源)은, "터럭만큼도 사곡(邪曲)이 없어야 '직'이라 하고, 오로지 일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곳을 '방(方)'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대답】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 방미(防微)139)이니, 기미를 아는 공부를 하여 이로써 마땅히 내면을 곧게 하려는 뜻은 잘못되었습니다. 문녕(文寧)이 이른바 근원을 함양하는 것과 윤심(允深)이 이른바 터럭만큼도 사곡이 없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혹 이전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낸 말에 빠지고, 혹은 임시로 안배함이 있으니 모두 실질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한 번 크게 헤아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질문】《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첫째 조목으로 5행을 논한 부분은, 당나라 공씨(孔氏)의 주(註)에서,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140)는 모두 성(性)을 말한 것인데, 토가 오행을 겸하여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질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윤하(潤下)'와 '염상(炎上)', '곡직(曲直)'과 '종혁(從革)'141)은 오행이 나타나 이루어진 체(體)이니, 곧 체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수(水)의 성질은 차고, 화(火)의 성질은 뜨거우며, 목(木)의 성질은 부드럽고, 금(金)의 성질은 강한데, 토(土)도 오행의 하나인데 어찌 홀로 성질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승원(承源)이 말하기를, "공씨(孔氏)의 설은 그 본연을 가리킨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의 본연이요, 위로 타오르는 것은 불의 본연이며, 굽거나 곧아지며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목과 금의 본연입니다. 토는 네 가지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네 가지가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일러 성(性)이라고 한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드러난 당연한 바를 일러 성(性)이라고 이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어서는 오행(五行)은 단지 이(理)일 뿐이지만, 땅에서는 오행은 기(氣)가 됩니다.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원형(元亨)은 보기 어렵고, 봄과 여름은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네 가지는 기(氣)가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는 덕을 말하고 성을 말한 것이 아니니, 본래 그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이 없기 때문입니다.【대답】"체(體)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보면, 사증(士拯)이 성(性)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은 단지 이 기(氣)의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성이 없다면 나무가 어찌하여 곡직(曲直)이 있고, 물이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이지, 성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토의 본성이 '신(信)'이라면, 단지 진실이 인(仁)이 되고 진실이 의(義)가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신(信)'이 인의(仁義) 위에 있는 것이고 예지(禮智) 또한 그러하니, 이는 이른바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입니다. 윤심(允深)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의 만물은 본성 외에도 더하여 어떠한 성이 있다는 것이니, 단지 토(土)가 사행(四行)에 머무르며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을 삼는다는 말이 좋은 듯합니다. 문녕(文寧)은, "그렇게 되는 이유가 성(性)이요, 소당연(所當然)은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소당연은 어떤 물건입니까? 또, 오행(五行)이 하늘에 있으면 이(理)요, 땅에 있으면 기(氣)라는 것 또한 온당치 않습니다. 어찌 천지를 하나의 이(理)와 하나의 기(氣)로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단에서 말한,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이로써 생각해본다면 보기 어려운이(理)가 쉽게 볼 수 있는 기(氣)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어째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겠습니까.142) 一幅書。獲之不意。感感何喩。況其辭義俱到。華實兼至。又有別紙數十條。無非自沈索細繹中出來。可見近日用功之密。造詣之深也。區區慰悅。曷異在己。但於諸條中。說句讀零碎義多。說肯緊要切義少。此固不可不知也。程子曰學要鞭辟近裏。着己而已者。豈不謂是耶。隔靴而爬癢買櫝而還珠。可戒可戒。存心卽操存求放之事。是學者初用力處。盡心則工夫極至地位否。盡心知性。是知之之事。存心養性是行之之事。知有多少般數。行亦有多少般數。知之進則行益力。行之力則知益進。不可槪以存養爲初學。盡心爲極至也。莫非命。此命字。陳氏謂氣。竊恐莫非二字。似當合正命。非正命。安可謂全指氣乎。命有出於氣者。有出於理者。出於理者。固不可帶氣看。出於氣者。固不可謂無其理也。萬物備我。反身而誠。樂莫大焉。便是上文盡心功效。知萬物備我。是盡心知性也。反身而誠。是存心養性也。不恥不若人云云。羞惡之心。人所同有。見人之賢能。思吾之不能。孰無恥之之心哉。但吾病痛。只在乍存乍亡不能擴充耳。旣恥不若人。則不若聖人。亦吾所當恥也。此擴充之方也。覇者之民云云。先言覇而後及王道。何也。比之飮食。則覇道如芻豢之悅口。久則有厭色。王道如菽粟之八口。平平淡淡。非別有異味。久久不厭。言固有先重而後輕者。亦有先輕而後重者。況下文所陳。無非王者之事耶。若以飮食比之。則王者見人之飢。有哀矜之心。而予之食焉。覇者見人之飢。有要譽之心。而予之食焉。則其人之感與不感。可以知矣。善政不如善敎云云。善政立而後。善敎可行。若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矣。故孟子先言政而後言敎耶。若曰善政立而後。善敎行則可。若曰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則不可。然則唐虞時雍成。康刑措之後。更無政可施歟。朱子曰。此身只是箇軀殼。內外無非天地陰陽之氣。然則軀殼獨非天地陰陽之氣耶。軀殼是陰陽團聚處。內外是陰陽流行處。心有出入云云。譬如爐有一點火隱伏。若滅吹之。則復光明。出入卽存亡之義。爐火之譬得矣。一理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然天地運用有序。而人則不然。天運有序。而人則不然者。此便是分殊處。然一念之發。四時之序。無不具焉。九思先視聽。知上說。九容先手足。行上說否。恐得之。天地之生萬物。聖人之應萬事。便是一理。然聖人只應物。而未生物。天地只生物。而不裁成輔相。必天人相須然后。道理無欠缺處否。此段甚好。凡致知。但求之情性。則似涉務約。只求之萬物。則又涉務泛。故程子以爲先求四端之間。又言一草一木。須是察云耶。所謂體用兼擧。物我兩盡者。於致知。亦可見。程子答或問曰。聖人之言。自有近處。自有遠處云。此言遠近爲二事。而於近處。不可强要鑿得深遠也耶。凡一事上。有近有遠。如灑掃應對。雖至近。而其所以然之理。則非至遠耶。程子此言遠近。是各條說。與近如地遠如天之語。恐不同。程子曰。以己及人。仁也。推己及物。恕也。然以字。亦有推去底意。乾道變化。各正性命。是天地自然之推也。一理渾然。泛應曲當。是聖人自然之推也。形而上形而下之義。小子昏愚未瑩。願下一言。以示上下之分。上下非有形底上下。是就一形字。言道器界至如此。以無極言性。以太極言心。則寂然無兆眹者。無極。流行有方體者。太極也。無極太極。只是一理。而具於心者。不可將無極喚道性。將太極喚道心。此不惟不識無極太極之旨。兼亦不識心性之分。常存得溫厚意思。便自然會宣著。自然會慘烈。自然會收斂。三者之中。溫和之爲宣著。可易見。至若慘烈剛斷收斂。無痕迹。終看不出。看春夏秋冬。各一其時。而無非春生之氣。行乎其中。則可以識此矣。陰生於姤。至於坤。純陰也。陽生於復。至於乾。純陽也。陽之極熱洪炎。當在純陽之月。而反在於陽衰陰生之時。何理也。陰亦然也。微陽下生。窮陰上極。微陰內生。亢陽外熾。此所以折膠墮指之寒。流金爍石之熱。多在於冬至夏至之後也。近思錄註曰。不可勞心極慮而强通。其在初學。豈可不勞心極慮而坐待自然洞澈耶。然則思之思之。又重思之。是何意耶。此言爲專務窮索。而不務涵養者發也。涵養熟則讀書窮理。皆易爲力近思錄心潛黙識疆欲潛心黙料。則雜亂紛擾之心。闖發無常。蓋下手之初。先整衣冠正容貌。久久不弛。他日自當有黙識境界矣。此所以有常常喚醒之語。然不可恃此而不務窮理之功。下文語意。些有伊蒲塞氣味。人心之昏愚蔽塞處。不可謂無心。故程子說無心只當云。無私心也。雖昏蔽之極。不可謂無本心。然程子以無心爲不可者。不是此意。近思錄曰。性本善。循理而行。本亦不難云云。顧此愚蠢內有氣稟之拘。外有物累之蔽。每誦循理不難之語。而竊欲驗之於己。則掣肘矛盾。何如可以得不難功夫耶。知不眞。故常苦其難。然知之眞。非倉卒可辦。豈可等待眞知。而不力行乎。但隨所知。而致極難之功。漸見不難之效。立人極者。必主乎靜。恐是晦庵夫子之言。而他日譏陸氏之主靜何也。未知一靜字。有二義否。主靜是周子語。非象山語。象山之學。與主靜之語。大煞不同。鬼神章註云。人心才動。必達於氣。然則人心不動之時。便與天地之氣。不相接續。而有間斷歟。一故神。如人身四體。觸之而無不覺者。一體故也。靜時若非一體。則動時。安能相感也。祐鎭以爲氣質雖不同。而性則固不異。承渙以爲本然之性。聰明睿智也。氣質之性。淸濁粹駁也理。固渾然無雜。而才墮形氣之中。有善惡偏窒之殊矣。若謂之同。則指人生以上說。如何。祐鎭以爲性之在於氣質。如水之在器。豈以器之汚濁。而謂水亦汚濁耶。性本無二。就氣質中。單指理言。則本然之性也。兼氣質言。則氣質之性也。以聰明睿智爲本然之性。則是認心爲性也。以淸濁粹駁爲氣質之性。則是喚氣做理也。又謂同是指人生以上說。則人生以後。更無本然之性耶。士拯之言。節節有礙。而文寧之言。稍長。然亦不是器之汚濁。自無與於水也。論心可變。而形體不可變之義。祐鎭以爲吾身本乎天地。吾心通乎四時。天地一箇空殼。四時一箇道理。天地互萬古不易。四時周一歲變化也。承源以爲心水火所成。故可變。形體木石所成。故不可變也。承渙以爲懸鏡埋塵。光可磨也。匣可變乎。心如光形體如匣。形體局定。故不可變。心體虛靈。故可以變。蓋物理然也。然學問之力至。則形體亦可以變。所謂粹面盎背。所謂容貌髭髮。倍勝平昔者。其非變移者耶。文寧之言恐未穩。豈以天地爲空殼。四時爲道理耶。心比則天地之主宰也。身比則天地之形體也。允深之言。非曰無理。然當曰心是五行之精英。故可變。身是五行之體質。故不可變也。若以一身配五行。則土石是骨肉也。氣血是水火也。士拯之言光可磨。匣不可變。此一節比喩。極正當。然鑢以磨之。漆以潤之。則匣亦可變。如何如何。論敬以直內。義以方外。承渙以爲直是毋自欺也。方是事事物物。各稱其當之分謂。祐鎭以爲直是涵養本源工夫。方是合做得至善處。承源以爲無一毫邪曲。便是直。惟事是是非非處。便是方。毋自欺。是防微知幾底功夫。欲以此當直內之義。則誤矣。文寧所謂涵養本源。允深所謂無一毫邪曲之說。似矣。然或陷前人已成說。或有臨時安排的。皆非實見。更須一番大思量。如何。論洪範一五行。唐孔氏註以爲自潤下至從革。皆以性言。土兼五行。無正位無成性云云之義。承渙以爲潤下炎上曲直從革。是五行見成之體。則指體爲性可乎。竊以爲水之性寒。火之性熱。木之性柔。金之性剛。而土亦五行之一。則豈可謂獨無其性乎。承源以爲孔氏之說指其本然也。潤下水之本然。炎上火之本然。曲直從革木金之本然也。土寓四者中。因其性而性焉。祐鎭以爲四者之所以然。謂之性則可也。其於眼前顯露所當然。謂之性可乎。在天之五行。只是理在地之五行。便是氣理難見。氣易見。故元亨難見。春夏易見。四者非氣之易見耶。土言德而不言性。本無正位。無成性故也。觀指體爲性可乎之語。可知士拯不識性。性只是此氣之不得不然處也。如無此性。木何以曲直。水何以潤下乎。無成性。非是無性之謂也。如土之性信也。而只是眞實爲仁。眞實爲義。則信在仁義上。在禮智亦然。此所謂無成性也。允深所謂本然之性者。恐不必如此說。不然。天下之物。本性之外。更有何性。但土寓四行。因其性而性焉之說。似好文寧以所以然爲性。以所當然爲非性。然則。所當然爲何物耶。又以五行之在天者爲理。在地者爲氣。此亦未安。安有以天地爲一理一氣之別耶。下段有曰理難見氣易見。此語誠是。以此思惟。可知難見之理。不外於易見之氣。何其騎驢而覓驢也。 정자(程子)가 …… 하여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5장의 주(註)에 나오는 정자의 말이다. 신 신은 채 …… 돌려주는 격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준다는 것은, 근본은 모르고 지말(枝末)만 좇는 행위를 비유한 것이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 나라 사람이 초(楚) 나라 사람에게서 궤【櫝】를 사오면서 그 궤에 장식되어 있는 좋은 구슬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 주고 궤만 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무슨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답답해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가 이르기를,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라고 하였다. 만물이 …… 큰 즐거움이 없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하였다.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느 것이 남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하였다. 패자(覇者)의 백성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법령 위주의 선정(善政)보다는 도덕에 입각한 선교(善敎)가 훨씬 낫다. 선정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선교는 백성들이 사랑하게 되나니, 선정은 백성의 재물을 얻게 되고 선교는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된다.【善政不如善敎之得民也. 善政民畏之, 善敎民愛之, 善政得民財, 善敎得民心.】"라고 하였다.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 《서경》 「요전(堯典)」에서, "만방을 화합하여 융화하게 하시니 백성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목해졌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하였다. 성왕과 강왕의 …… 않은 이후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서, "그러므로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는 천하가 평안하여 형벌을 놓아두고 40여 년간 쓰지 않았다.【故成康之際, 天下安寧, 刑錯四十餘年不用.】"라고 하였다. 구사(九思)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는 것【聽思聰】 등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온다. 구용(九容)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을 가리킨다. 정자는 먼저 …… 살펴야 한다 《이정전서(二程遺書)》 권18에서, 정자의 제자가 아는 것을 이루는 데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는 것이 어떤가를 물었을 때, 정자가 답하기를, "성정에서 구하는 것이 실로 몸에 절실하기는 하지만, 일초·일목에 모두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이것을 살펴야 한다.【求之性情, 固是切於身, 然一草一木, 皆有理須察.】"라고 하였다. 성인의 말씀은 …… 유원한 곳에 있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나오는 말이다. 도기(道器)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에 관한 철학적 범주로, 도(道)는 무형의 법칙을 가리키며, 기(器)는 유형의 사물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上」에서,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 한다."라고 하였다. 순양월(純陽月) 4월을 가리킨다. 궁음(窮陰) 음기(陰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겨울을 가리킨다. 항양(亢陽) 양기(陽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여름을 가리키며, 매우 심한 가뭄을 뜻하기도 한다. 아교가 …… 추위와 원문은 '절교(折膠)'와 '타지(墮指)'인데 모두 극심한 추위를 가리킨다. 절교는 활의 재료인 아교가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활이 부러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며, 타지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생각하고 …… 생각해야 한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57에서, 정이(程頤)가 관중(管仲)의 말을 인용하여,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거듭 생각할지니, 이렇게 생각을 해도 통하지 않으면 귀신이 통하게 해 줄 것인데,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기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思之思之, 又重思之, 思之而不通, 鬼神將通之, 非鬼神之力也, 精氣之極也.】"라고 하였다.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침잠(沈潛)하여 묵묵히 알아서 완색(玩索)하기를 오래하면 거의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須心潛黙識, 玩索久之, 庶幾自得.】"라고 하였다. 이포새(伊蒲塞) 불교(佛敎) 용어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중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불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므로 경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 송(宋)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정과 인의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고 하였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一故神】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에, "하나의 물(物)에 두 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기(氣)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고, 둘이기 때문에 변화한다. 이것이 천(天)이 삼(三)이 되는 이유이다.【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此天之所以參也.】"라고 하였다. 우진(祐鎭) 홍우진(洪祐鎭, 1868~?)이다. 자는 문녕(文寧), 호는 희암(希庵)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능주(綾州)에 거주하였다. 정의림의 제자이다. 수면앙배(粹面盎背) 얼굴에 윤택하게 드러나고 등에 가득 차 넘친다는 말로서,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에서,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라고 하였다. 자발(髭髮) 코밑수염과 머리털을 가리킨다. 공경하는 마음을 …… 방정하게 한다 《주역》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나오는 구절이다. 방미(防微)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 막 선악(善惡)이 나뉘는 기미를 보고 방비한다는 뜻이다.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 《서경》 「홍범」에서, "오행은 첫 번째는 수(水), 두 번째는 화(火), 세 번째는 목(木), 네 번째는 금(金),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 만물을 적셔주며, 화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며, 목의 성질은 굽고 곧으며, 금의 성질은 사람의 뜻에 따라 형태가 바뀌며, 토의 덕은 이에 작물을 심고 거둔다.【五行: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라고 하였다. 곡직(曲直)과 종혁(從革) 곡직(曲直)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함을 말하고, 종혁은 쇠가 사람이 만드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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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7 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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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6) 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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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군오【재규】에게 답함 答權君五【載奎】 영남과 호남이 멀리 떨어져 막히고 어긋난 지 오래이던 차에 중간에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으나, 인편이 없어 답을 하지 못하였으니, 구구한 마음의 서글픔과 답답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겨울이 깊어지는데 경체(經體)1)는 건강하신지요. 널리 우러러 못내 그립습니다. 의림(義林)은 날로 쇠함이 심해져서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곧 자연의 섭리입니다. 오직 옛 업과 묵은 뜻을 생각하면,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이룬 것이 없고, 평생 지구(知舊)와 유종(遊從)하던 자들의 뜻을 저버린 것이 많으니, 부끄러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전에 애장(艾丈 정재규(鄭載圭))의 편지에서, "어진 그대는 두문불출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였는데, 바야흐로 진보가 그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세색(歲色)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사문(斯文)의 입장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2) 매번 생각하기를, 남주(南洲) 조장(趙丈 조성주(趙性宙)께서 그대를 칭찬하며, "사람이 그 옥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옥이 그 사람과 같다."라고 하셨는데, 그 딱 맞는 비유에 매우 감탄하였습니다. 한스러운 것은 갈고닦는 학문의 자리에서 만나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대와 애산(艾山)과 함께 신안(新安)에서 모여 셋이 솥의 발처럼 둘러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대는 "주재(主宰)하는 것은 마음이고, 주재되는 것은 본성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주자서(朱子書)》에 있는 글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돌아와서 《주자서》를 살펴보니, 그러한 말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한 쪽의 사람들은 마음의 영(靈)이 주재(主宰)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 사람들은 마음의 이치가 주재(主宰)한다고 하면서, 서로 언쟁하며 서로를 능히 받아들임이 없으니, 오직 그대가 말한 바 한 구절의 말이 가장 두루 정밀하여, 양쪽의 설을 단안(斷案)3)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보고 양쪽에 주재(主宰)가 있다고 여기는데, 대개 그 뜻이 전적으로 심(心)의 이(理)가 주재라고 인식한 까닭입니다. 대개 지금 주기(主氣)의 설은 진실로 말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주기(主氣)의 잘못됨을 보고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또한 지나치게 곧게 하려는 폐해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상세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절실할 따름입니다. 그대가 외웠던 한 구절이 과연 주자(朱子)의 말씀입니까? 혹시 다른 선덕(先德)의 말씀입니까? 이 구절의 출처와 맥락에 대해 수고로움을 잊고 편지 한 통에 적어 부쳐 보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 뵐 날이 아득하니 편지를 마주하여 슬픔이 더합니다. 嶺湖涯角。阻違許久。中間承惠函一度。而乏便稽謝。區區悵菀。有何可旣。未審冬令垂深。經體衛重。溯仰無任。義林衰頹日甚。去死不遠。此固理也。而惟是舊業宿志。百無一就。而以負平生知舊遊從之意者。多矣。愧恨何及。向得艾丈書。以爲賢者杜門篤學。方進未已云。雖在歲色叵測之日。而以爲斯文之地者。可謂不食矣。每念南洲趙丈稱道賢。以爲不是人如其玉。乃是玉如其人之語。而切歎其比擬稱停。恨不得源源於切磋之末也。昔年與賢及艾山會於新安。而鼎坐夜話也。賢以爲主宰者心。主宰底性云云。而謂在於朱子書。愚退而考諸朱書。姑未見其語矣。今一邊之人。以心之靈爲主宰。一邊之人以心之理爲主宰。互相齗齗。莫能相入。而惟賢所言一句語。最爲周遍精切。可以爲兩說之斷案也。或者見此語。以爲有兩主宰。蓋其意專認心之理爲主宰故也。蓋今之主氣之說。固不足言。見主氣之非。而欲矯之者。又不無過直之敝。未知賢者以爲何如。遠莫詳焉。徒切紆菀耳。未知賢所誦一句語。果是朱子語耶。或是他先德語耶。此句出處首尾。忘勞書寫一通。以付示之如何。切望切望。奉際茫然。臨紙增悵。 경체(經體) 경서를 읽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끊이지 않고 …… 것입니다 원문은 '불식(不食)'인데 이 말은, 《주역(周易)》 〈박괘(剝卦) 상구(上九)〉에서,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로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단안(斷案) 원래는 옥사(獄事)의 판결(判決)에 관한 문서를 가리키는데, 이처럼 옳고 그름을 딱 잘라서 판단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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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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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필승】에게 답함 答曺仲直【弼承】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답답하였는데, 지금 편지 한 통을 받으니 어찌 다만 많은 재물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삼가 집안 어른께서 강녕하시고, 곁에서 모시는 상황이 위중(衛重)함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소공(小功)7)의 참담함은 당내(堂內)입니까? 당외(堂外)입니까? 깊은 사랑을 받았던 처지에 비통한 심정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선조고(先祖考)의 난례(灤禮)는 과연 능히 길일을 택해 안장(安葬)하여 효성스러운 마음에 흡족하신지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일을 겪으셨지만 직접 가서 살피지 못하였으니, 부끄럽고 슬픔을 어찌 말하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은 담벼락을 마주한 듯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스스로 살피는 치밀함과 스스로 꾸짖는 절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이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생각함에 근원한다."라고 하였으니, 총명(聰明)함을 개발하고 뜻을 넓게 하여 나아가는 것은 모두 생각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니, 어찌 홀로 공부하는 탄식과 담벼락을 마주한 듯한 근심이 있단 말입니까? 일찍이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에서, "오늘 한 이치를 깨닫고, 내일 한 이치를 깨닫는다."라는 말을 좋아하였는데, 초학자에게 가장 절실할 것입니다. 보여주신 한자(韓子)의 설 또한 어찌 깊이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목(問目)은 제 모자란 견해로 대략 답변을 드렸으나, 결론을 내리지 마시고 거듭 여러차례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자》 「평륙장(平陸章)」에서, "왕을 알현하는 것"8)의 '현(見)'자와 다른 장에서, "왕을 알현한다."는 '현(見)'은 모두 음을 '현(現)'으로 읽는데, 어찌하여 같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까?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9)과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장10)의 두 장 모두 '주(周)'자는 궁핍한 사람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전자에서는 범범하게 백성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을 말하였고, 후자에서는 다만 여러 현인의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대인으로서 자취 없는 화의 경지에 들면 성인이라고 하고, 성인으로서 헤아려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인이라고 한다."는 문장에서, 이 '성(聖)'과 '신(神)'자는 성인이 나아간 지위로써 말한 것입니다. "성인이 지나가고 머무는 곳마다 신령스럽게 된다."11)는 것은 다만 공용(功用)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니, 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행하신 분들이다.……"12)라고 한 것은 평소 인품에 이러한 세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니, 오로지 말구(末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지(身之)'는 '자신의 몸을 돌이킨다'라는 뜻이니, '신(身)'자를 말한 것은 '반(反)'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고, '반'자를 말한 것은 '신'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구구하게 그 같고 다름을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之)'와 '자(者)' 또한 크게 다름이 없을 따름입니다. 久阻悵鬱。此時一書。奚啻百朋。謹審堂候康寧。侍旁衛重。何等願聞。但小功之慘。堂內耶堂外耶。親愛隆深。悲痛何堪。先祖考灤禮。果能卜吉安兆。愜於孝思耶。追遠之感。想益如新矣。所故如是。而未能躬造相省。愧悵何道示喩獨學墻面云云。可見自省之密。自責之切。不然。安能說到此耶。程子曰。學原於思。夫開發聰明。展拓步趨。皆在於思。苟能於此得力。有何獨學之歎。墻面之憂哉。嘗愛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之說。最切於初學也。所示韓子說。亦豈不深可法耶。問目。自以鄙見。略略奉復。勿爲歸宿。更加三思如何。平陸章見王之見。與他章見王之見。音皆作現。何謂不同耶。士之不託諸侯章。及古之君子何如則仕章。兩處周字。皆是周恤窮乏之義。但上段泛言周民之義。下文特言周賢之義。大而化之之聖。聖而不可知之神。此聖神字。以聖人所造之位而言所過所存之神特以功用之著於外者而言。此其微別耳。堯舜性之云云。此是平說人品有此三者。未見其專爲末句說起也。身之。此是反身之義。說身字。包反字義在其中。說反字。包身字義在其中。不必區區辨析其同異也。之字者字。亦且無甚同異耳。 소공(小功) 5개월 동안 입는 상복. 증조부모, 백숙조부모, 종백숙조부모, 형제의 아내, 외조부모, 외숙 등의 상이 이에 해당한다. 왕을 알현하는 것 평륙장(平陸章)은, 《맹자》 「공손추 하」에, '맹자께서 평륙으로 가시어【孟子之平陸】'로 시작하는 장을 말한다. 이 장의 끝에, '맹자께서 얼마 후에 왕을 뵈었다.【他日見於王】'라는 구절이 나온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 해당 구절은 《맹자》 「만장 하(萬章 下)」에 실려 있다.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해당 구절은 《맹자》 「고자 하(告子 下)」에 실려 있다. 성인이 지나가고 …… 신령스럽게 된다 《맹자》 「진심 상」에서, "성인이 지나가는 곳마다 감화를 받고, 머무는 곳마다 백성들이 신령스럽게 된다.【所過者化, 所存者神】"라고 하였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 행하신 분들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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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재206) 여중 의 〈낙요정〉 시에 차운하다 次金危齋【麗中】《樂要亭》韻 백방산207) 동쪽은 별천지이니 栢岳之東別洞天임천의 정자나무가 한 구역 둘렀네 林泉亭樹一區圓금대처럼 푸른 시내가 돌아 흐르고 回流碧澗成衿帶여러 해 된 푸른 솔이 빽빽이 섰네 密立蒼松積歲年서가에 가득한 시서에 참된 즐거움 있고 滿架詩書眞樂在뜨락을 지나는 자제에게 의방208) 전하네 趨庭蘭玉義方傳훈몽재209)가 길이 인근에 있으니 訓蒙齋舍長隣近담로210)의 유풍이 대대로 전해지네 湛老遺風世世連 栢岳之東別洞天, 林泉亭樹一區圓.回流碧澗成衿帶, 密立蒼松積歲年.滿架詩書眞樂在, 趨庭蘭玉義方傳.訓蒙齋舍長隣近, 湛老遺風世世連. 김위재(金危齋) 위재는 김여중(金麗中, 1879~1951)의 호이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이도(以道)이다.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 출생으로, 간재 전우의 문인이다. 저서에 《위재유고》가 있다. 백방산(柏芳山)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와 쌍치면 중안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전에 잣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으로 잣방산으로도 불리며, 순창군 서쪽 끝자락에 솟아 있다. 의방(義方) 집안에서 가르치는 덕의(德義)의 교훈을 말한다. 훈몽재(訓蒙齋)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1548년(명종3)에 지은 강학당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있다. 담로(湛老) 담재(湛齋) 김인후(金麟厚)를 높여 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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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가 찾아와 이전에 지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드리다 3수 元浩來訪, 示以前作, 次韻以呈【三首】 태산보다 높은 그대 의리 감격하니 感君高義泰山低험난한 백리 길에 벽서를 찾아왔네 百里間關訪碧棲삼월 동풍에 봄은 다하지 않았으나 三月東風春不盡천 년 북학은 도가 아주 미약해졌네 千年北學道全微누가 세계를 물처럼 맑게 하겠으며 誰將世界澄如水어찌 근심을 곤드레 취하듯 잊겠나 寧忘憂愁醉似泥한 가지 온후의 노쇠해 가는 한을250) 一種隱侯衰暮恨멀리 중천과 나란한 운수에 보태네 遠添雲樹半天齊은거해 웅크린 건 하늘이 낮아서가 아니니 屛居鞠蹐匪天低물고기는 깊은 못에 있고 새는 둥지에 있네 魚在深淵鳥在棲천지에 당연한 도리가 선함을 믿을 뿐이지 只信乾坤常理善초야에 한 몸이 미미한 것은 한탄하지 말게 莫嘆草野一身微도가 견고해 나는 끝내 돌을 뚫고자 하나니 道堅欲我終穿石세상 혼탁해 다퉈 진흙탕 젓는 저들이 밉네 世濁憎渠競掘泥한 해가 저물 때에 옥전자를 처음 만났으나 歲暮始逢玉田子연이은 산은 그래도 나란히 상대하길 바라네 連峯尙冀對相齊도는 높음을 구하지 않아도 낮지 않는데 道不求高亦不低사람들은 어찌 갈림길에서 오래 서성이나 人胡歧路久棲棲문장의 조그만 기예는 기교를 드러내지만 文章小技呈奇巧성리의 쓸데없는 얘기는 더욱 보잘것없네 性理空談轉渺微행실 힘써도 숫돌에 간 칼이란 말 듣지 못했고 勵行未聞刀出砥마음 다스림에 어떡하면 모래 거른 물처럼 할까 治心那得水澄沙묘체는 간직하여 평소에 사용할 뿐이니 妙諦只藏平日用함께 참으로 닦아 자랑하지 말길 바라네 願與眞修毋伐齊 感君高義泰山低, 百里間關訪碧棲.三月東風春不盡, 千年北學道全微.誰將世界澄如水? 寧忘憂愁醉似泥.一種隱矦衰暮恨, 遠添雲樹半天齊.屛居鞠蹐匪天低, 魚在深淵鳥在棲.只信乾坤常理善, 莫嘆草野一身微.道堅欲我終穿石, 世濁憎渠競掘泥.歲暮始逢玉田子, 連峯尙冀對相齊.道不求高亦不低, 人胡歧路久棲棲?文章小技呈奇巧, 性理空談轉渺微.勵行未聞刀出砥, 治心那得水澄沙?妙諦只藏平日用, 願與眞修毋伐齊. 은후(隱侯)의……한을 서로 늙어가는 처지라 다시 만나지 못할까 한스럽다는 말이다. '은후'는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시호이다. 그의 〈별범안성(別范安成)〉 시에 "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하기 쉬웠지. 이제 그대와 함께 노쇠해 가니 다시는 이별할 때가 아니로세. 한 잔 술 별거냐고 말하지 마소, 내일 다시 이 술잔 잡기 어렵네. 꿈속에 찾아갈 길 알지 못하니 무슨 수로 그리움을 달래보나.〔生平少年日, 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尊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 하였다. 《古今詩刪 卷9 梁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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