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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처사 선생 명촌86)【기현】의 운에 삼가 차운하다 謹次黃處士先生明村【紀顯】韻 산속에 천지가 열려 일월이 밝으니 (山闢乾坤日月明)선생의 고아한 아취 속세의 때가 적었네 (先生高趣世塵輕)숭정87) 이후로 천년의 한이 서렸고 (崇禎以後千年恨)대은88)은 이 사이에서 백세의 맹세를 하였네 (大隱斯間百歲盟)율리89)의 맑은 바람에 도연명은 취하고 (栗里淸風陶老醉)안풍90)의 아침 햇살에 동생은 밭을 가네 (安豐朝日董生耕)춘추대의의 한 맥이 문미에 있으니91) (陽秋一脈楣端在)예사롭게 붙인 이름 아니라네 (不是尋常以寓名) 山闢乾坤日月明。先生高趣世塵輕。崇禎以後千年恨。大隱斯間百歲盟。栗里清風陶老醉。安豐朝日董生耕。陽秋一脈楣端在。不是尋常以寓名。 명촌(明村) 황기현(黃紀顯)의 호이다. 작자가 10세에 황기현 선생에게『소학(小學)』을 배웠다. 숭정(崇禎) 숭정은 명(明)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毅宗)의 연호로 1628년부터 1644년까지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명나라가 망한 이후라는 말이다. 대은(大隱) 몸은 번잡한 세상에 있으면서 뜻은 속세를 벗어나 고원한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진(晉)나라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에 "소은은 산속에 숨고, 대은은 시조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市朝.]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율리(栗里)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지명으로, 진(晉)나라가 쇠망의 길로 들어서자 도잠(陶潛)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의 벼슬을 버리고 율리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쳤다.『晉書 隱逸列傳 陶潛』 은자의 거처를 뜻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안풍(安豐) 당(唐)나라 때 동소남(董邵南)이 은거한 곳이다. 그는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면서 주경야독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韓昌黎文集 卷2 古詩 嗟哉董生行』 춘추대의의……있으니 원문 '양추(陽秋)'는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이 사람의 호가 명촌(明村)으로, 즉 명나라 마을이기 때문에 한 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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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헌115) 양장【상정】께 드리다 呈心學軒梁丈【相鼎】 골짜기 협소하여 우물 안과 같으니 (峽裏小如井底天)때때로 돌아보매 옛 감회에 잠겨 정히 끝이 없네 (時回曠感正無邊)높아서 파도가 미치지 못하니 지주116) 바라보는 듯하고 (屹不逐波瞻砥柱)가난 속에서 지조를 지키니 탐천117)을 따르는 듯하네 (窮加勵操酌貪泉)재능을 숨긴 채118) 다만 허물을 없애려 노력하고 (蘊櫝但勤磨玷力)무리를 떠나니 누가 소금 수레119)를 끄는 채찍을 잡으랴 (漏群誰着服鹽鞭)선생은 근래 무슨 일을 하시는가 (先生近日干何事)바람 불고 달 뜬 한가한 뜰에 우두커니 앉았으리 (風月閒庭坐嗒然) 峽裏小如井底天。時回曠感正無邊。屹不逐波瞻砥柱。窮加勵操酌貪泉。蘊櫝但勤磨玷力。漏羣誰着服鹽鞭。先生近日干何事。風月閒庭坐嗒然。 심학헌(心學軒) 양상정(梁相鼎)의 호이다. 전라남도 화순 능주(綾州) 출신으로 가선대부 부호군을 거쳐 1893년 호군을 역임하였다. 지주(砥柱) 황하(黃河) 중류에 우뚝 서 있다는 돌기둥을 말한다. 역경과 고난에 맞서서 변함없이 버티어 나가는 큰 인물의 지조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탐천(貪泉) 중국 광주(廣州) 땅에 있는 샘이다. 진(晉)나라 오은지(吳隱之)가 광주 자사(廣州刺史)로 부임하였는데, 그곳에는 욕심을 일으킨다는 탐천(貪泉)이라는 샘이 있었다. 그는 청렴한 사람은 탐천을 마셔도 지조를 변치 않을 것이라는 시를 지었다.『晉書 良吏列傳 吳隱之』 재능을 숨긴 채 『논어』「자한편(子罕篇)」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좋은 옥이 여기 있습니다. 독(櫝)에 넣어서 감추어 두겠습니까, 비싼 값을 줄 사람을 구해서 팔겠습니까?' 하였다."라고 하였다. 소금 수레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吊屈原賦)」에 "천리마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 수레를 끌도다.[驥垂兩耳兮服鹽車]"라고 하였는데, 이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인물이 때를 만나지 못하여 천한 역(役)에 종사함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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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386) 3장. 선사 간옹을 추모하다 彌山三章 慕艮翁先師 우뚝한 저 미산이여 節彼彌山바위가 우람하도다 維石巖巖혁혁하신 선생이여 赫赫先生사림이 첨앙하도다 士林所瞻만세의 진택387)이여 萬世眞宅저기에 묻히셨도다 于彼藏焉바라보매 감개 일어 望之興感공경하고 삼가노라 式敬且虔-부(賦)이다.-우뚝한 저 미산이여 節彼彌山산빛이 푸르고 푸르도다 維色蒼蒼선생의 도여 先生有道그 광채 바래지 않았도다 不渝其光소자가 그 가르침 받들었으니 小子守訓어찌 감히 왜곡하겠는가 豈敢邪回시절 오래되어 의리 바꾸면 時久義變저 산이 무어라 하겠는가 彼何謂哉-부이다.-우뚝한 저 미산이여 節彼彌山오를 수가 없도다 不可陟兮아 우리 선생이여 嗟我先生일으킬 수 없도다 不可作兮충심을 아뢰려고 하나 縱欲陳衷그렇게 할 수 없도다 不可得兮근심이 바다처럼 커서 憂心如海헤아릴 수 없도다 不可測兮-부이다.- 節彼彌山, 維石巖巖.赫赫先生, 士林所瞻.萬世眞宅, 于彼藏焉.望之興感, 式敬且虔.【賦也】節彼彌山, 維色蒼蒼.先生有道, 不渝其光.小子守訓, 豈敢邪回?時久義變, 彼何謂哉?【賦也】節彼彌山, 不可陟兮.嗟我先生, 不可作兮.縱欲陳衷, 不可得兮.憂心如海, 不可測兮.【賦也】 미산(彌山)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낭산면, 삼기면에 걸쳐있는 미륵산(彌勒山)을 가리킨다. 참고로 전우(田愚)의 묘소는 현재 삼기면 현동(玄洞)에 있다. 진택(眞宅) 사람이 죽은 뒤에 돌아가는 진정한 집, 곧 무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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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포388)에서 열장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 多佳浦訪悅丈 不遇 고생고생하며 90리를 와서 辛苦來三舍바닷가에 있는 집에서 만나려고 하였네 歸虛會一堂백산엔 구름 그림자 흩어지고 柏山雲影瑣가포엔 물이 유장하게 흘러가누나 佳浦水流長범조를 어찌 문에다 쓸까389) 凡鳥豈題戶백구만 부질없이 마당에 묶었네390) 白駒謾縶場아아 인간 세상만사 吁嗟人世事삼상391)처럼 어긋난 듯하구나 有若錯參商 辛苦來三舍, 歸虛會一堂.柏山雲影瑣, 佳浦水流長.凡鳥豈題戶? 白駒謾縶場.吁嗟人世事, 有若錯參商. 다가포(多佳浦) 전라북도 익산시 만석동에 있었던 포구이다. 범조(凡鳥)를……쓸까 범조는 '봉(鳳)'을 파자(破字)한 것이다.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매우 친하여 서로 생각만 나면 천 리 먼 길이라도 즉시 달려가 만나곤 했다. 한번은 여안이 혜강의 집을 찾았을 때, 마침 혜강은 출타 중이어서 그의 형인 혜희(嵇喜)가 나와서 여안을 맞았으나, 여안은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다 '봉' 자만 써 놓고 가 버렸다. '봉' 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凡鳥)'가 되므로, 즉 혜희를 범인(凡人)이란 뜻으로 우롱한 것이다. 《世說新語 簡傲》 백구(白駒)만……묶었네 백구는 현자(賢者)나 은사(隱士)가 타고 다니는 말인데, 말을 묶어 놓아 어진 이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는 것이다. 《시경》 〈백구〉에 "깨끗한 흰 망아지가 내 밭곡식 먹었다 핑계 대고 발을 동여매고 고삐를 묶어서 오늘 아침 더 오래 있게 하여 귀한 이 손님을 더 놀다 가게 하리라.[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삼상(參商)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을 말하는데 삼성은 서쪽에, 상성은 동쪽에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 별을 함께 볼 수 없으므로, 전하여 친구 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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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남 종일 과 함께 청덕령을 넘으며 2수 同金小南【鍾一】, 踰淸德嶺【二首】 깊은 가을에 먼 길손이 산골을 가노라니 深秋遠客峽中行길은 인심과 같아 갈수록 울퉁불퉁하구나 路似人心轉不平신 신고 두건 쓰고 옛 벗과 함께해 좋으니 堪喜舃巾聯舊友시 한 수를 주고받으매 새 곡조가 있구나 一詩唱和有新聲예전에 몇 번이나 이곳을 지나갔던가 幾度曾年此地行스승을 모시고 치평의 도를 강론했네 爲陪三席講治平스승 죽고 나라 망한 걸 어이 말하랴153) 樑摧社屋那堪說한이 새 시에 들어가니 오열하고 싶네 恨入新詩欲咽聲 深秋遠客峽中行, 路似人心轉不平.堪喜舃巾聯舊友, 一詩唱和有新聲.幾度曾年此地行? 爲陪三席講治平.樑摧社屋那堪說? 恨入新詩欲咽聲. 스승……말하랴 원문의 '양최(樑摧)'는 훌륭한 스승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저자의 스승인 전우(田愚)가 죽은 일을 말한다. 《禮記 檀弓上》 '사옥(社屋)'은 토지신(土地神)을 제사 지내는 곳에 지붕을 덮는다는 뜻으로, 전하여 망국(亡國)을 의미한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망국의 사에는 지붕을 만들어 덮어서 하늘의 양기를 받지 못하게 한다.〔喪國之社, 屋之, 不受天陽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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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준의 〈호석정〉 시에 차운하다 次金□□【致駿】《湖石亭》韻 사람과 정자 둘 모두 기이하니 人幷亭子兩皆奇명성이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으리 應使聲名久不虧난간 두른 비단 호수는 승경을 바치고 繞檻錦湖呈地勝창 앞에 모인 돌은 천연의 자태 드러내네 當牕鍾石見天姿도원을 어디에서 찾을지는 모르지만 未知桃源覓何處청산은 이런 때에 살기에 적합하네 只合碧山棲此時본디 한가한 중에 노력할 일 있으니 自是閒中勤有事경서 연구는 원래 성현 되는 기초네 窮經元作聖賢基 人幷亭子兩皆奇, 應使聲名久不虧.繞檻錦湖呈地勝, 當牕鍾石見天姿.未知桃源覓何處, 只合碧山棲此時.自是閒中勤有事, 窮經元作聖賢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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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등의 〈두어〉 시에 차운하다 次郭登《蠹魚》韻 유독 책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데 偏向書中藏貌形어찌하여 어류의 이름을 덮어썼는가 胡然水族冒之名글 뜻을 전혀 모른다고 비웃지 말라 莫嘲全不知文意그래도 글자 먹으며 일생을 지낸다네 食字猶能度一生 偏向書中藏貌形, 胡然水族冒之名?莫嘲全不知文意, 食字猶能度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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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명 병회 을 찾아가다 절구 3수 訪楊克明【秉晦○三絶】 십 년 만에 그대 얼굴 보았으니 十載見君面이번 행차는 참으로 어려웠네 此行良亦難마음속에 산천이 있으니 心中山水在옛 곡조를 탈 필요가 없네 古調不須彈대견하게 그대는 제 힘으로 먹길 좋아하니 多君力食好감과 밤이 있어 온전히 가난한 것 아니네 柹栗未全貧가족 이끌고 깊이 들어가 살길 경영하니 挈眷營深入맑은 풍도가 다시금 사람을 감동시키네 淸風更動人연원은 낙건149)을 따랐고 淵源從洛建의리는 《춘추》를 본받았네 義理準春秋한 줄기 계화도 문하 학문을 一脈華門學세한에도 힘써 함께 닦으세 歲寒勉共修 十載見君面, 此行良亦難.心中山水在, 古調不須彈.多君力食好, 柹栗未全貧.挈眷營深入, 淸風更動人.淵源從洛建, 義理準《春秋》.一脈華門學, 歲寒勉共修. 낙건(洛建) 정주학(程朱學)을 말한다. 정자(程子)는 낙양(洛陽)에서 살고 주자(朱子)는 복건(福建)에서 살며 강학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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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하루 孟夏初吉 봄 보내고 돌아와 푸른 그늘 정자에 누웠는데 送春歸臥綠陰亭술병으로 무거운 몸 어찌 이리 깨지 않는가 病酒沈沈柰未醒초협에선 책 꾸러미가 아침이슬에 촉촉하고 楚峽書裝朝露濕봉산에선 고향생각이 저녁구름에 깊어지네 蓬山鄕思暮雲冥하목327)의 기이한 재주에 천재인가 놀라고 才奇霞鶩驚天授아양328)의 옛 거문고에 속된 이목 깨우치네 琴古峨洋砭俗聽요즈음 영동329)에는 멋진 일들 많을테니 近日瀛東多勝事가벼운 신으로 새 답청놀이 다시 기약하네 更期輕屐踏新靑 送春歸臥綠陰亭, 病酒沈沈柰未醒.楚峽書裝朝露濕, 蓬山鄕思暮雲冥.才奇霞鶩驚天授, 琴古峨洋砭俗聽.近日瀛東多勝事, 更期輕屐踏新靑. 하목(霞鶩) '낙하고목(落霞孤鶩)'의 준말인데 낙하는 지는 노을을, 고목은 외로운 따오기라는 뜻이다. 왕발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넓은 하늘과 한 빛이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고 하였는데, 강가의 저녁 경치를 절묘하게 표현한 명구로 평가받는다. 아양(峨洋)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로, 여기서는 뛰어난 거문고 연주 솜씨를 가리킨다.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가 높은 산을 연주하면 친구인 종자기가 "태산처럼 높고 높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을 연주하면 "강하처럼 양양하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湯問》 영동(瀛東) 전라북도 고부(古阜) 영주산(瀛州山)의 동쪽,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을 말한다. 영주(瀛州)는 고부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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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중 태일 의 별장에서 김견암 어른 태희 에게 드리다 崔汝重【泰鎰】庄上呈堅菴金丈【泰熙】 요란한 천지에도 하나의 복전464)이 있어 擾攘乾坤一福田북산의 별장으로 봉래산 신선 찾아갔네 北山庄上訪蓬仙역 광장의 연기나는 전차엔 오랑캐465) 바쁘고 驛場烟電奔夷卉땅 위 절의 풍경소리에 불경466)을 외우네 土寺鈴鍾誦佛蓮밤에 홀로 밝은 달 아래 높이 노래하고 獨夜歌高明月下늘그막의 도는 옛 서적 옆에 있었구나 晩齡道在古書邊뜬 인생에 맑은 인연 적어 한스러웠는데 浮生却恨淸緣少삼십년 만에 비로소 새 시를 드리네 始贈新詩三十年 擾攘乾坤一福田, 北山庄上訪蓬仙.驛場烟電奔夷卉, 土寺鈴鍾誦佛蓮.獨夜歌高明月下, 晩齡道在古書邊.浮生却恨淸緣少, 始贈新詩三十年. 복전(福田) 복(福)을 낳게 하는 밭이라는 뜻인데, 부처를 섬기면 복이 생기는 것이 마치 밭에서 곡식이 나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이른 말이다. 오랑캐[夷卉] 원문의 '이훼(夷卉)'는 훼복(卉服)을 입은 오랑캐를 말한다. 훼복은 풀 옷으로, 미개한 섬 오랑캐로 여기서는 일본인을 지칭한 말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섬 오랑캐는 풀 옷을 입는다.[島夷卉服]"라고 하였다. 불경[佛蓮]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말한 것인데 불경(佛經)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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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운을 써서 여안에게 주다 用前韻 贈汝安 요즈음 홀로 문 닫고 그대 생각하니 近日思君獨閉門흰 머리가 몇 가닥 더 늘었는고 幾莖添得鬢霜繁선대의 고향에서 되레 부평초 신세 되어 先鄕還作水萍迹새해에야 서로 고향47)에서 만나는구나 新歲相逢桑梓村옥을 다듬는 공정으로 좋은 기물 이루면서 琢玉工程成美器벌단의 생활48)로 공밥 먹는 걸 경계해야지 伐檀生活戒空飧어느 때나 한 집에서 단란한 모임 갖고 何時一室營團聚상체49) 꽃 앞에서 함께 술잔 기울일까 常棣花前共酌罇 近日思君獨閉門, 幾莖添得鬢霜繁.先鄕還作水萍迹, 新歲相逢桑梓村.琢玉工程成美器, 伐檀生活戒空飧.何時一室營團聚, 常棣花前共酌罇. 고향 원문의 '상재(桑梓)'는 《시경》 〈소반(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부모가 살던 고향을 뜻한다. 벌단의 생활 '공밥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비유한 것이다. 《시경》 〈벌단(伐檀)〉에 "끙끙 박달나무를 베어, 하수(河水)의 물가에 놓아두니, 하수가 맑고도 찰랑이네. 벼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면, 어떻게 벼 삼백 단을 얻을 수 있으며, 사냥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네 뜰에 매달린 담비를 볼 수 있겠는가. 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는도다.[坎坎伐檀兮, 寘之河之干兮, 河水淸且漣猗. 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兮, 不狩不獵, 胡瞻爾庭有縣貆兮. 彼君子兮, 不素餐兮.]"라고 하였다. 상체(常棣) 나무 이름인데 《시경》 〈상체(常棣)〉시에 유래하여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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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하다 自警 내 태어나 삼십 세가 된 지금 (我生三十歲)무슨 일을 하였는가 (問爲何事哉)농사짓는 일 익히지 않았고 (不治農圃業)창검술도 배우지 않았네 (不學弓劍才)다만 문장 짓는 일로 (只以文字事)세월을 보내고 또 보냈네 (經歲又經年)집안에는 권면하는 부형이 있고 (內有父兄責)밖에는 어진 사우가 있으니 (外有師友賢)성취한 것 얕지 않아야 하건만 (所就宜不淺)다시 어찌 이리 어리석은가 (復何倥倥爲)자신을 돌아보며48) 스스로 점검하니 (回光自點檢)그 까닭을 알기 어렵지 않네 (其故不難知)공명은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功名謂可辦)고관대작 사이에서 분주하였네 (奔走槐棘間)이리저리 다니며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49) (營營算甕轉)몇 번이나 스스로 덧없는 꿈50)을 꾸었던가 (幾自槐安還)아름다운 산수 간에 차지하려 하여 (擬占好山水)지팡이 짚고 다니며 잠시도 쉬지 않았네 (笻鞋不暫休)사람을 만나면 풍토에 대해서 묻고 (逢人問風土)나그네 마주하면 산수를 말하였네 (對客談峙流)때때로 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時將花下酒)마음껏 취해 봄 세 달을 보냈네 (荒醉度三春)가련한 것은 황량한 누대의 저녁에 (可憐荒臺夕)끊이지 않고 자주 꿈을 꿨던 것일세51) (未斷夢魂頻)장기바둑 두며 노닐던 곳 (博奕遊戱地)옛일을 생각하니 문득 생생히 떠오르네 (舊念輒復全)남령초52)의 냄새를 몹시도 좋아하여 (偏嗜南靈臭)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은 때가 없었네 (無時不吸煙)강력한 유혹에 빈틈이 없으니 (牽連無暇隙)온갖 방법으로 끊으려 애썼네 (攻之千百端)거울에 때가 끼면 비추지 못하고 (垢鑑索照未)의원에게 숨기면 병을 치료하기 어렵네 (諱醫療疾難)어찌 두렵게 생각하여 (寧不惕然念)낱낱이 자신에게 돌이키지 않으랴 (一一反諸身)공명과 산수를 좋아하는 뜻 (功名山水志)맞닥뜨리는 때에 온전히 맡기네 (全付所遇辰)주색 같은 온갖 욕망은 (酒色各般欲)통렬히 끊어서 싹트지 못하게 하고 (痛剗訾不萌)가난한 상황에서도 학문을 연마한다면 (修息蓬蓽裏)은연중에 날로 성취함이 있으리 (闇然日就程)경을 주장함은 지도리와 굴대처럼 중심을 잡고 (主敬如樞軸)뜻을 세움은 등뼈처럼 곧게 하며 (立志是脊樑)길을 나서선 주저하지 말아야 하니 (登程莫躊躇)이렇게 미혹됨을 경계하는 방법을 드러내네 (著此警迷方) 我生三十歲。問爲何事㢤。不治農圃業。不學弓劒才。只以文字事。經歲又經年。內有父兄責。外有師友賢。所就宜不淺。復何倥倥爲。回光自點檢。其故不難知。功名謂可辨。奔走槐棘間。營營算甕轉。幾自槐安還。擬占好山水。笻鞋不暫休。逢人問風土。對客談峙流。時將花下酒。荒醉度三春。可憐荒臺夕。未斷夢魂頻。博奕遊戱地。舊念輒復全。偏嗜南靈臭。無時不吸烟。牽連無暇隙。攻之千百端。垢鑑索照未。諱醫療疾難。寧不惕然念。一一反諸身。功名山水志。全付所遇辰。酒色各般欲。痛剗訾不萌。修息蓬蓽裏。闇然日就程。主敬如樞軸。立志是脊樑。登程莫躕躇。著此警迷方。 자신을 돌아보며 회광(回光)은 회광반조(回光反照)의 줄임 말로, 불가(佛家)에서는 자기의 본분을 돌아보아 수양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자신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뜻으로 쓰였다.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옛 속설(俗說)에 항아리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그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자다가, 항아리를 살 때 약간 남기고 팔 때 약간 남기면 그 이문이 갑절이 된다고 여겨 마침내 기뻐서 일어나 춤을 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 항아리를 깨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6』 덧없는 꿈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순우분(淳于棼)이 괴목(槐木) 아래서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30년간 남가 태수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괴목 아래에 큰 개미굴이 하나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가련한……것일세 이 내용은 두보(杜甫)의 「영회고적[詠懷古跡]」 두 번째 수의 "강산의 고택에는 부질없이 문장만 남았으니, 황폐한 양대(陽臺)에 운우지정 꿈엔들 생각하랴[江山故宅空文藻, 雲雨荒臺豈夢思.]"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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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에서 창수한 시100)【병서와 10수의 시가 있다】 瑞石唱酬韻【幷序十首】 정해년(1887, 고종24) 10월 16일. 이튿날 내가 벽지(碧池)에서 단양(丹陽)에 들렀다가 생질 이기호(李紀鎬)와 함께 칠송(七松)101)의 안국정(安國禎)102) 집에 도착하여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으로 가려 하였는데, 문봉환(文鳳煥), 양규환(梁奎煥)103), 김규원(金奎源), 이병섭(李秉燮)104), 이태환(李泰煥), 이인환(李仁煥), 문송규(文頌奎)105), 오장섭(吳長燮), 오문섭(吳文變)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출발하여 2, 3리에 이르자 이승우(李承愚)106)가 뒤늦게 따라왔다. 화순(和順)의 유촌점(柳村店)에 이르러 투숙하였다. 그 다음 날 빙치(氷峙)를 넘어 수촌점(水村店)에 도착하였다. 문용환(文龍煥), 김경원(金景源)이 어제 약속을 어기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오직 김장석(金章錫)만은 끝내 오지 않았으니, 너무나 이 유람의 흠결이 된다. 몇 리를 가니 창주동(滄洲洞)이 있었다. 사방에는 산이 우뚝 솟았고 붉게 물든 단풍이 앞뒤에서 비췄으니, 참으로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강산이었다. 이평중(李平中)을 방문하였다. 오후에 이평중이 길을 안내하여 마을 뒤로 오르니 석굴(石窟)이 있었는데 너비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였고, 내부에는 작은 굴 하나가 있었는데 맑은 샘물이 솟았다. 굴 비탈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자 노은곡(老隱谷)이 있었으니, 별천지였다.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달며 몇 이랑의 밭이 있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집을 짓고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게 하였다.이평중과 작별하고 영신(永新)에 도착하여 이문방 언씨(李文方彥氏)의 집에 유숙하였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이 도시락을 싸 주었으니, 이는 산에 올라 요기하라는 계책이었다. 조치량(曺治良)이 길을 안내하려는 뜻이 있었기에 또한 함께하였다. 도원동(桃源洞)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조치량에게 차게 하고 올라 농암(籠巖)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광석대(廣石臺)에 이르렀다. 광석대는 산의 중턱에 있었으니, 대개 옛날의 절터이다. 안에는 석조(石竈)가 있었고, 석조 위에는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평평하고 네모반듯하여 백여 명은 앉을 수 있었다. 광석대의 사면은 층층의 기이한 암석이었으니, 세로로 놓은 것은 병풍과 같고 가로로 놓은 것은 교량과 같으며, 둥근 것은 옹기와 같고 네모난 것은 새장과 같았다. 깎아지른 것은 기둥과 같고 높이 위로 솟은 것은 모자와 같았다. 우뚝 솟은 것은 지붕이 되고 쑥 들어간 것은 방이 되고 빙 두른 것은 담이 되었다. 또 절하는 것, 읍하는 것, 끓어 앉은 것, 단정히 손을 마주 잡은 것, 우두커니 선 것이 있었다. 빙 둘리서 중첩한 것은 귀신이 새긴 듯하여 기뻐 마음이 넓어졌다. 풍혈대(風穴臺)가 있었는데, 대의 가운데가 비어 소라 같았다. 안에서 돌아서 위로 나가 풍혈대 위에 앉아서 아래를 보니 곧장 수백 척 낭떠러지인지라 오금이 저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내려와서 광석대에 앉아서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었으니, 그 참다운 생각과 뛰어난 흥취는 완연히 안기(安期)107)와 적송(赤松)108)이 푸른 구름과 붉은 노을 사이에서 한가롭게 거닐며 거스르지 않는 것과 같았다.도시락으로 요기하고서 산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서 석문(石門)에 이르렀다. 석문 안에는 석실(石室)이 있었는데, 붉게 물든 넝쿨이 석실 밖을 칭칭 감고 있어 마치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석실의 서쪽에는 모두 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돌 사이에 난 오솔길은 물을 건너는 곳과 같아서 걸을 때마다 발밑에는 모두 평평한 돌이었다. 돌길을 따라서 가니 옛 절터가 있었다. 큰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는데,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닌 듯하였다. 담장을 두른 것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지만 이끼와 돌이 오래되어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노라니 슬픔이 문득 밀려왔다.아,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미 이 산이 있었다. 그간에 필시 도인과 승려가 있어 계획하여 만들고 배치하여 한 시대에 가장 성대하게 스스로 뽐내었을 텐데 안개처럼 걷히고 구름처럼 사라졌으니, 또 여기에서 몇 번이나 상전벽해를 겪었는지 모른다. 1리쯤 갔을 때 돌길이 갑자기 끊어졌기에 나무꾼에게 물어 목맥적(木麥磧)에 이르니, 목맥적 가운데 수많은 돌이 우뚝 솟아 부처와 같았다. 절정에 오르니 천황봉(天皇峯), 지황봉(地皇峯)이 있었다. 시야가 시원하여 호남의 산들이 무덤처럼 즐비하였다. 동쪽으로 방장산(方丈山)에 이르고 북쪽으로 계룡산(鷄龍山)에 이르며, 서남쪽은 모두 대해이니, 마치 붉은 구름이 하늘에 잇닿아 있는 듯하였다. 이 산은 바로 한 고을의 종산(宗山)인데도 시야가 먼 것이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한 나라에서 높고 천하에서 높은 산이겠는가. 사람의 식견의 고하와 덕성의 후박은 이것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북쪽 산기슭으로 내려와 입석(立石)에 이르렀다. 돌은 모두 사각, 육각, 혹은 팔각, 십이각으로 수평을 맞춘 듯 평평하고 먹줄을 놓은 듯 곧으며, 서 있는 것이 기둥과 같고, 포갠 것이 삼[麻]과 같다. 기둥 위에 기둥을 얹고 삼 위에 삼을 연결하여 높은 것은 천 길이나 되고 낮은 것도 백 척을 밑돌지 않았다. 혹 두른 것은 병풍과 같고, 혹 늘어선 것은 목책과 같으며, 층이 진 것은 계단과 같으니, 참으로 천하의 절묘한 곳이다. 대저 이 산에는 가시나무가 자라지 않고, 뱀이 나오지 않는다. 돌은 뾰족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고, 봉우리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다. 무릇 천지 사이의 정기가 모인 것이 대체로 모두 이와 같다. 입석을 지나 조치량과 작별하고 내려와서 징심사(澄心寺)에 투숙하였다. 다음 날 사찰을 두루 관람하여 반나절의 유람을 하였다. 화순(和順)에 이르러 관여(寬汝 이승우)를 따라 주암서실(舟巖書室)에 들어갔다.다음 날은 바로 23일이다. 교촌(校村)에 이르러 만화루(萬化樓)에 올라 조금 휴식하고, 만연사(萬淵寺)에 이르니 건물은 허물어지고 잡초는 하늘로 뻗어 있었다. 선정암(禪定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한참 동안 시를 읊조렸다. 저녁에 하동서실(荷洞書室)에 이르자 조인환(曺仁煥), 조동환(曺東煥), 조병길(曺秉吉), 조영환(曺永煥)이 모두 왔기에 만나 보았다. 한밤중까지 강학하고 토론하다가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능저(綾邸)에 이르러 영벽정(映碧亭)에 올랐다. 강물이 불어나 산 빛이 난간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잠깐 읊조렸다. 음강(陰江)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속금봉(束錦峯)에 오르니 지는 해가 산에 걸려 있어 풍광이 흡족하였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조린 다음 기쁨을 다 누리고 떠났다.대저 서석산(瑞石山)은 실로 남쪽 지방의 명승지이고, 벗들은 모두 한 고을의 선사(善士)이다. 평소 좋은 벗과 더불어 평소 노닐기 원하던 곳을 유람하게 되었는데, 더구나 날짜도 길한 데다 절기도 좋아 하늘이 깨끗하고 공기가 맑아 행차는 지체되는 근심이 없고, 길에서는 옷을 걷고 벗는 수고로움이 없었다. 가는 길은 화락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었다. 바쁘지만 어지럽지 않고 조화롭지만 방탕한 데로 이르지 않아 여유롭게 가고 느긋하게 왔다. 원하건대, 벗들은 돌아가 각각 힘써서 덕을 키우고 명망을 무겁게 하기를 이 산처럼 대대로 모두 우러러보게 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유람이 길이 할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고을의 서석산(瑞石山)도 장차 외진 남방의 바닷가에서 더욱 빛나 응당 길이 적막하지 않을 것이다.열다섯 사람이 와서 유람 길에 오르니 (十五人來一路登)오성에 지는 해가 숲을 붉게 물들었네 (烏城落日入林蒸)나한산 앞 객점에 투숙하여 (夜投羅漢山前店)단란히 토론하며 유유히 다시 심지를 자르네 (團討悠悠更剪燈) 歲丁亥仲秋旣望。翌日予自碧池。過丹陽。與李甥紀鎬。至七松安國禎家。將爲瑞石行。文鳳煥、梁奎煥金奎源李秉燮李泰煥李仁煥文頌奎吳長燮吳文燮先來在座。遂發至二三里李承愚追躡而至。至和順柳村店討宿。厥明。踰冰峙。到水村店。文龍煥金景源昨日迂違在此等候。喜不可言。惟金章錫終不至。甚爲此遊之缺望。至數里。有滄洲洞。四山壁立。丹楓紅蘿。照映前後。眞繡錯江山也。訪李平中。午後平中引路登村。後有石窟。廣可容數百人。內有一小窟。清泉湧出。自窟磴。右旋而上。有老隱谷。盖别局也。土沃泉甘。有田數頃。令人有卜築盤旋之意。別平中。到永新宿。李丈方彥氏家。翌朝。主人裹飯菜。盖爲登山療飢計也。曺治良以指路之意。亦與之俱。至桃源洞。沽一壺酒。尾治良而登。至籠巖小憩。至廣石臺。臺在山之中腰。盖古寺遺址也。内有石竈。竈之上。有廣石。平鋪方正。可坐人百餘。臺之四面。層巖奇石。縱者如屏。横者如橋。圓者如甕。方者如籠。削而直者如柱。秀而翹者如帽。穹窿而爲屋。窈窕而爲室。周遭而爲垣。又有拜者。揖者跪者端拱者凝立者。環列重疊。神鑱鬼刻。怡然而心曠。有風穴臺。臺中有空如螺殼。內旋上出。坐於臺上。下見直數百尺。足慄不可久留。下而坐廣石臺。列坐行酒。歌詩一絶。其眞想逸趣。宛然如安期赤松逍遥唯諾於青雲紫霞之間。因畫飯療飢。乃循山而右。至石門。門之內有石室。紅蘿丹薜。縈繞其外。便若一朶花房。石室之西。皆積石漲。漫石間有徑如濟渡處。步步下足皆平石。由石徑去。得舊寺遺址。積貼巨石以爲堦級。似非人力所造。周垣繞墻。依然尙在。而苔久石古。無跡可據。徘徊移時。悲愴旋至。嗚呼自開闢以來。已有此山。其間必有仙翁釋子。經營排鋪。全盛自誇於一時。而烟消雲空。又不知其閱此幾番滄桑也。行里許。石徑忽斷。問於樵夫。至木麥磧磧中萬石。立立如佛。上絕頂。有天皇峰地皇峯。眼界豁然湖省羣山。累累如培塿。東盡方丈。北至雞龍。西南皆大海。如紅雲連天。此山是一方之宗也。而眼界之遠。猶尙如此。況高於一國高於天下者乎。人之器識高下。體德厚薄。見此可以有感矣。下北麓。至立石。石皆四隅六隅。或八隅十二隅。準以平之。繩以直之。竪之如柱。積之如麻。柱上加柱。麻頭緝麻。高者千仞。卑不下百尺。或繞如屛障。或列如樹柵。或層如階梯。信天下絕妙處也。大抵此山不生荆棘。不産蟲蛇石不尖側。峯不偏斜。凡天地間正氣所鍾。類皆如此。過立石。別治良。下宿澄心寺。翌日。歷覽寺刹以成半日之遊。至和顺隨寬汝入舟巖書室。翌日卽二十三日也。至校村登萬化樓。小憩。至萬淵寺。屋宇毀頹。草莽漲天。至禪定菴點心。暢咏久之。暮至荷洞書室。曺仁煥曺東煥曺秉吉曺永煥皆來相見。達夜講討。雞鳴而寢。翌日。至綾邸。登映碧亭。見江水漲滿。山光搖檻。風詠數餉。至陰江。沽一壺酒。上束錦峯。夕陽在山。風光宜人。一觴一詠。盡歡而去。夫瑞石固南方勝區。諸友皆一鄉善士。與平生好友。遊平生所願遊。況日吉辰良。天朗氣清。行無濡滯之患。道無揭厲之勞。行道雍容進退有節繁而不雜。和而不流。于于而去。悠悠而來。願諸友歸各勉焉。使碩德重望。如此山之世皆仰止。則不惟吾儕今日之遊。永有辭焉。一區瑞石。亦將增光於南荒海曲之間。而不應長寂寂也。十五人來一路登。烏城落日入林蒸。夜投羅漢山前店。團討悠悠更剪燈。 서석(瑞石)에서 창수한 시 작자가 1887년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징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萬淵寺) 선정암(禪定庵), 능주의 영벽정, 동귀봉(東歸峯)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이다. 칠송(七松)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를 이른다. 안국정(安國禎) 1854~1898. 자는 순견(舜見), 호는 송하(松下)이다. 양규환(梁奎煥) 1852~?. 자는 문오(文五), 호는 석오(石塢)이다. 이병섭(李秉燮) 1853~?. 자는 봉서(鳳瑞), 호는 백헌(栢軒),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문송규(文頌奎) 1859~1888. 자는 계원(啓元), 호는 귀암(龜巖)이다. 이승우(李承愚) 1855~1919. 자는 관여(寬汝), 호는 난계(蘭溪)이다. 안기(安期) 동해(東海)의 봉래산(蓬萊山)에서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자기는 장생불사의 술법을 알고 있고 또 신선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는데, 그가 "제가 일찍이 해상에서 노닐 적에 안기생을 만났더니, 참외만 한 크기의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臣嘗遊海上, 見安期生, 安期生食巨棗大如瓜.]"라고 하였다.『史記 封禪書』 적송(赤松)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를 이른다. 적송자는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뒤에 권세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史記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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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공 봉남126)을 위한 만사 挽洪公鳳南 남쪽 고을에 고상한 선비가 있었으니 (南州有高士)지금 세상에 누가 짝할 수 있으랴 (今世誰與儔)두세 칸 초가집을 짓고 (草屋數三間)오십 년 동안 금서127)를 즐겼네 (琴書五十秋)우뚝이 태어나게 하신 것 응당 뜻이 있었는데 (挺生應有意)느닷없이 빼앗아간 것 또한 무슨 까닭인가 (挺生應有意)벗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우러러볼까 (朋知誰賴仰)진세의 묵은 빚 끝내 갚지 못하였네 (世債未終酬)예로부터 명철한 이들 (自古諸賢哲)응당 백옥루128)에 많을 것이네 (應多白玉樓)시대를 거슬러 벗으로 삼을 만한 점 이분에게 넉넉하였으니 (尙友於斯足)아, 안타까워할 만하네 (于于可遣憂)다만 가련한 것은 이승에 (但憐暘界上)옛 벗이 몇 사람 남지 않은 것일세 (故舊幾人留)모시고 유람하던 곳을 바라보니 (回視陪遊地)침계는 부질없이 절로 흐르네 (枕溪空自流)정자129) 위의 달은 (未知亭上月)옛 교분을 기억하는가 (能記舊交否)사람은 떠났지만 그림자는 아직 남아 있으니 (人去影猶在)서로 어울려 밤마다 유람하리라 (相隨夜夜遊) 南州有高士。今世誰與儔。草屋數三間。琴書五十秋。挺生應有意。遽奪亦何由。朋知誰賴仰。世債未終酬。自古諸賢哲。應多白玉樓。尙友於斯足。于于可遣憂。但憐暘界上。故舊幾人留。回視陪遊地。枕溪空自流。未知亭上月。能記舊交否。人去影猶在。相隨夜夜遊。 홍공 봉남(洪公鳳南) 홍채주(洪埰周, 1834~1887)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이다. 문집으로는 『봉남집(鳳南集)』이 있다. 금서(琴書) 거문고와 책으로 옛날 선비의 소일거리이다. 『주자대전』 권9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중 「정사(精舍)」시에 "거문고와 책을 벗한 지 40년, 몇 번이나 산속의 객이 되었나. 하루 만에 띳 집을 지어, 어느덧 나도 천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네.〔琴書四十年,幾作山中客?一日茅棟成,居然我泉石.〕"라고 하였다. 백옥루(白玉樓) 상제(上帝)가 사는 곳의 누대를 말한다. 『창곡집(昌谷集)』 외집(外集)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 "어느 날 이하(李賀)가 대낮에 졸다가 갑자기 보니 붉은 관복을 입은 도인이 옥판(玉板)을 잡고 있었는데, '상제(上帝)께서 백옥루를 완성하시고,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려 한다[上帝成白玉樓, 召君作記.]'라고 쓰여 있었다." 하였다. 정자 침수정(枕漱亭)을 이른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보리에 있는 정자로,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 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고, 그의 6세손인 홍채주가 1885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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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청헌의 운에 화운하다 步和樂清軒韻 단계의 수석은 맑아 티끌이 없는데 (丹溪水石絶塵淸)은자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졌네 (賴得幽人更有名)동파의 단방160)을 비밀리에 전수하고 (坡老單方傳授密)잉여옹161)이 남긴 법을 정밀하게 발휘하였네 (剩翁貽法發揮精)몸은 두꺼운 얼음 밟으며 찌는 더위를 식히는 듯하고162) (身如濯熱層踏氷)기운은 양쪽 날개가 생겨 한문에 날아오르는 듯하네163) (氣若羾寒兩翰生)혼연한 우주 속에서 도도하게 공은 일어나지 않으니 (渾宇滔滔公不作)창랑 한 곡조164)는 유독 가슴 아프네 (滄浪一曲獨傷情) 丹溪木石絕塵清。賴得幽人更有名。坡老單方傳授密。剩翁貽法發揮精。身如濯熱層踏氷。氣若羾寒兩翰生。渾字滔滔公不作。滄浪一曲獨傷情 동파(東坡)의 단방 동파는 소식(蘇軾)의 호이다. 소식이 지은 의서 『소학사방(蘇學士方)』을 가리킨다. 잉여옹(剩餘翁) 위명덕(魏命德, 1683~1756)의 호이다. 자는 윤보(潤甫)이다. 낙청헌(樂淸軒)은 위명덕의 후손인 듯하다. 몸은……듯하고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 「초가을 무더위에 시달리는데 문서가 계속 쌓이네[早秋苦熱堆案相仍]」에 "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솔이 골짜기에 걸쳐져 있는데, 어찌하면 맨발로 두꺼운 얼음을 밟아 볼 수 있을까.[南望靑松架短壑, 安得赤脚踏層氷?]" 하였다. 『杜詩全集 卷5』 기운은……듯하네 주자(朱子)가 공풍(鞏豐)에게 답한 편지에, "이 무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것이 마치 한문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에 씻은 듯하다.[當此炎燠灑然, 如羾寒門而濯淸風也.]" 하였다. 『晦庵集 卷64 答鞏仲至』 『초사(楚辭)』 왕일(王逸)의 주에, 한문(寒門)은 북극에 있는 차가운 곳이라고 하였다. 창랑(滄浪) 한 곡조 『맹자』「이루 상(離婁上)」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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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393)의 희성당 시에 차운하다 次鄭國振希成堂韻 크게 이룬 뒤에 또 문을 이루었으니 大成以後又文成지은 방 이름이 희제394)의 뜻과 꼭 부합하네 端合希齊錫室名인을 행하려면 네 가지를 말아야 한다395)는 논의 절실하고 論切爲仁當四勿도로 향하려면 전일하고 성실해야 한다396)는 비결 참되구나 訣眞向道必專誠용화산 아래는 풍진이 깨끗하고 用華山下風塵淨칙덕촌 가운데는 일월이 밝구나 勅德村中日月明바라건대 사문이 기대하는 뜻 잘 알아서 願體師門期待意평생토록 부지런히 심력을 다하게나 孜孜心力盡生平 大成以後又文成, 端合希齊錫室名.論切爲仁當四勿, 訣眞向道必專誠.用華山下風塵淨, 勅德村中日月明.願體師門期待意, 孜孜心力盡生平. 정국진(鄭國振) 정기성(鄭基聲, 1890~?)을 가리킨다. 희제(希齊) 어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지학(志學)〉에 "성인은 하늘을 바라고, 현인은 성인을 바라고, 선비는 현인을 바란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라고 하였고, 《논어》 〈이인(里仁)〉에 "어진 이를 보거든 그와 똑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를 보거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하였다. 인(仁)을……한다 《논어》 〈안연(顏淵)〉에, 안연이 인(仁)의 실천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다. 도(道)로……한다 《중용장구》 제26장에서 천지(天地)의 도(道)를 말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에 "천지의 도는 성실하고 전일하여 변치 않기 때문에 각각 그 성대함을 지극히 한다.[天地之道誠一不貳, 故能各極其盛.]"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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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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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402)에게 충고하다 6절 忠告子貞【六絶】 경서에 상이 있으면 장가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有喪不娶聖經云어찌하여 흩어진 구름과 동등하게 보아 경시하는가 輕視胡然等散雲준엄하고 바른 사마의 가르침403)을 다시 보게나 峻正更看司馬訓나라에 행해지는 정법은 논할 필요가 없다네 國行正法不須論노년에 후사를 잇는 것이 바쁘다고 말하지만 老年嗣續縱云忙이치와 명운 의당 길고 짧음을 따져야 하리 理命宜將較短長하늘의 운수가 앞으로 자신에게 있다면 天運前頭如在我두 달 정도 조금 늦은 들 무슨 문제이겠는가 差遲二朔豈能妨분분하게 난리라고 핑계 대지 말게나 莫以紛紛托亂離난리 중이니 예법을 더욱 지켜야 한다오 亂中禮法益當持삼가의 의절404)은 일찍이 전해져 익혔을 터 三加儀節曾傳講성 포위되고 나라 망할 때도 그치지 말게 不輟城圍國覆時사람이 욕심 이루는 데 걸핏하면 권도라 하니 人於濟慾動稱權도리어 방관자들도 웃으며 아연실색한다오 却使傍觀笑啞然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라야 손으로 건져주는데405) 嫂溺之時方手援어찌하여 하는 일마다 견주어 나란히 보는가 如何事事比幷看누가 말하나 아버지가 죽을 때 유언 남겨 誰云父沒有遺言또한 거상 중에 자신의 손자 장가보낼 수 있다고 亦可乘喪娶我孫예법과 법률을 손수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禮律非惟手自壞어버이를 불의에 빠뜨린 것이니 거듭 한탄스럽네 陷親不義重可歎일은 이치를 따르는 곳이 바로 조화이니 事循理處卽爲和조화로운 기운이 올 때 복록이 더해진다오 和氣來時福祿加상복 벗기를 기다렸다가 혼사 치르는 날 待到服除迎相日많은 자손들 그대 집에 가득하리라 兟兟螽羽滿君家 有喪不娶聖經云, 輕視胡然等散雲?峻正更看司馬訓, 國行正法不須論.老年嗣續縱云忙, 理命宜將較短長?天運前頭如在我, 差遲二朔豈能妨.莫以紛紛托亂離, 亂中禮法益當持.三加儀節曾傳講, 不輟城圍國覆時.人於濟慾動稱權, 却使傍觀笑啞然.嫂溺之時方手援, 如何事事比幷看?誰云父沒有遺言, 亦可乘喪娶我孫?禮律非惟手自壞, 陷親不義重可歎.事循理處卽爲和, 和氣來時福祿加.待到服除迎相日, 兟兟螽羽滿君家. 자정(子貞) 조제원(趙濟元)으로, 자정은 그의 자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사마(司馬)의 가르침 사마는 사마광(司馬光)으로, 그의 저작인 《서의(書儀)》를 가리킨다. 삼가(三加)의 의절 관례(冠禮) 때에 세 번 관을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초가(初加)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재가(再加)에는 피변(皮弁)을 쓰며, 삼가(三加)에는 작변(爵弁)을 쓴다. 형수가……건져주는데 맹자가 "남녀 사이에 서로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 잡아 구원해 주는 것은 권도이다.[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援之以手, 權也.]"라고 하였다. 《孟子 離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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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220)의 병 조리하는 자리에 드리다 呈惺軒調座 몇 번이나 기약하여 먼 유람 함께했던가 幾度爲期共遠遊십 년 간 삼상221)처럼 떨어져 보답 못했네 參商十載未曾酬마음은 깊고 높은 안협으로 치달아 구르고 心馳安峽泓崢轉꿈은 신라 도읍의 세월에 들어 아득하네 夢入羅都日月悠그대 집에서 찾아올 줄 어찌 생각했겠나 豈料仙庄今委訪병이 오래 낫지 않음을 도리어 탄식하네 却歎美愼久彌留이에 좋은 일은 운수에 달렸음을 알았으니 從知好事存乎數내년 봄을 기다렸다가 다시 짝이 되세 第待明春更作儔 幾度爲期共遠遊? 參商十載未曾酬.心馳安峽泓崢轉, 夢入羅都日月悠.豈料仙庄今委訪? 却歎美愼久彌留.從知好事存乎數, 第待明春更作儔. 성헌(惺軒) 김영우(金榮禹, 1871~1941)의 호이다.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범(敬範)이다. 삼상(參商)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삼성(參星)은 동쪽 하늘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다른 관계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春秋左傳 昭公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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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정 족선조 재간당(在澗堂)226)이 유식(遊息)227)하던 곳인데, 아래의 세이암(洗耳嚴)도 이와 같다. 水舂亭【族先祖在澗堂遊息之所, 下洗耳嚴同.】 물결이 뒤집히면서 방아를 찧으니 波濤飜作舂방아에서는 몇 섬 곡식이 나왔을까 舂出幾鍾粟정자 황폐해져 주관할 사람 없으나 亭廢主無人유풍이 시내 골짜기에 남아 있구나 遺風在澗谷 波濤飜作舂, 舂出幾鍾粟?亭廢主無人, 遺風在澗谷.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 1571~1645)의 호이다.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도원(道源)이다. 1603년(선조36)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에 제수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624년(인조2)에 의병을 일으켰다. 유식(遊息) 학문을 하다가 피곤하여 쉴 때에도 항상 학문을 염두에 두는 것을 말한다. 《禮記 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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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15)이 찾아와 주어 기뻐서 喜省菴來訪 일만 솔의 작은 집에 문을 깊이 닫았는데 萬松一室閉門深높은 자취 왕림하니 이 무슨 마음인가 高躅光臨是底心지금 세속의 태도인 염량세태 짓지 않으니 不作炎涼今俗態쇠락한 옛 유림이 유독 가엾구나 偏憐凋落舊儒林국화가 마침 피니 약속 남겨둔 듯하고 黃花適發如留約밝은 달이 광채 더해 옷깃을 흠뻑 비추네 素月添輝剩照衿우리 만년의 절조 지킴을 증명하고 싶거든 欲證吾人持晩節천태의 빼어난 자태가 천길 높이 솟은 것 보게 天台秀色聳千尋 萬松一室閉門深, 高躅光臨是底心.不作炎涼今俗態, 偏憐凋落舊儒林.黃花適發如留約, 素月添輝剩照衿.欲證吾人持晩節, 天台秀色聳千尋. 성암(省菴) 김용선(金容璿, 1865~?)의 호로,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저서에 《성암유고(省菴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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