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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옹16)을 애도하다 悼惺軒翁 남원의 친족 모임에서 가장 공과 친했으니 帶方花樹最親公문아(文雅)한 풍채에 깨끗한 흉중 지녔지 儒雅風標灑落胸마수에서 힘을 합해 도모한 일은 아 이루지 못하였고 麻隧協力嗟未就월성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은 허사가 되었으니 어찌하랴 月城留約柰成空돌아갈 때 일찌감치 천상에서 노닌 듯하더니 歸時早已遊天上저녁에 이른 부고는 꿈속에서 접한 듯하였네 訃夕猶能接夢中죽지 않고 남겨진 나는 지금 되려 부럽나니 後死如今還健羡청산에 아무 탈 없이 묻힌 성헌옹이 靑山無恙惺軒翁 帶方花樹最親公, 儒雅風標灑落胸.麻隧協力嗟未就, 月城留約柰成空?歸時早已遊天上, 訃夕猶能接夢中.後死如今還健羡, 靑山無恙惺軒翁. 성헌옹(惺軒翁) 김영우(金榮禹, 1871~1941)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범(敬範), 호는 성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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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어른의 〈추흥〉에 차운하다 2수 次悅丈《秋興》【二首】 어젯밤 첫서리 내렸으나 흔적이 미미했는데 初霜昨夜見痕微바람이 뜨락 오동나무 흔드니 잎이 드무네 風動庭梧葉正稀시내에 게와 물고기 가득해 그물로 건져내고 溪牣蟹魚鉤網出들녘에 벼와 기장 익어 낫으로 베어 돌아오네 野登稻黍銍鎌歸산골 부엌에 국화 술을 미리 빚어 놓고 山廚豫釀黃花酒마을 베틀은 흰 모시옷을 새로 만드네 村杼新成白苧衣여러 가지가 고루 가을의 흥취가 되니 種種均爲秋日興은자에겐 그야말로 천기95) 보기에 좋다네 幽人正好看天機가을바람 주옥같은 이슬에 청신함을 느끼니 金風玉露覺淸新몹시 무더워 고통스러웠던 때를 차마 말하랴 忍說炎天苦苦辰선명한 산은 푸른 옥홀을 드리는 듯하고 的歷山呈靑玉笏나부끼는 구름은 흰 생선비늘 흩어지는 듯 飄揚雲散白魚鱗반랑96)이 지은 부는 일찍이 감회가 많았고 潘郞作賦曾多感두자97)가 지은 시 또한 마음에 드는구나 杜子題詩亦可人산하를 둘러보면 백성들이 여름을 걱정하리니 環顧山河民病夏어느 날에나 가을철98)이 될지 모르겠네 不知何日是庚辛 初霜昨夜見痕微, 風動庭梧葉正稀.溪牣蟹魚鉤網出, 野登稻黍銍鎌歸.山廚豫釀黃花酒, 村杼新成白苧衣.種種均爲秋日興, 幽人正好看天機.金風玉露覺淸新, 忍說炎天苦苦辰?的歷山呈靑玉笏, 飄揚雲散白魚鱗.潘郞作賦曾多感, 杜子題詩亦可人.環顧山河民病夏, 不知何日是庚辛. 천기(天機) 하늘의 비밀이란 뜻으로, 조화(造化)의 은밀한 기틀을 가리킨다. 《장자》 〈대종사〉에 "기욕(耆欲)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耆欲深者, 其天機淺.]"라고 하였다. 반랑(潘郞) 진(晉)나라 때 시인 반악(潘岳)을 지칭한다. 32세 때부터 귀밑머리가 세기 시작하여, 그가 지은 〈추흥부(秋興賦)〉 서문에 "내 나이 서른두 살에 처음으로 흰 머리칼을 보았다.[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고 하였다. 《晉書 卷55 潘岳傳》 두자(杜子) 당나라의 시인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가 지은 〈추흥(秋興)〉8수는 늙고 병든 작자의 절절한 우수를 잘 표현하였다. 가을철 원문의 '경신(庚辛)'은, 방위로는 서(西)에 해당하고 색깔로는 백(白)에 해당하며 백은 곧 (辛)을 뜻하니, 계절로 가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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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蟄【正月十九日。自去年七月不雨。今夜始雨。】 靈雨順春令。乾坤布好生。飄空初有影。墮地更無聲。怪底朝雲白。胡然夕照明。民情猶未洽。何日滿江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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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준 시에 차운하다 次子貞贈韻 좋은 일은 원래 마음대로 되기 어려우니 好事元難得自由이번 여행에 끝내 그대와 짝하지 못했네 此行竟失與君儔동쪽으로 오니 곳곳마다 명승지가 많아 東來到處多名勝늙으막에 울적함을 풀기에 조금 낫다네 老去差强散鬱幽창해는 망망하여 어느 곳이 끝이런가 滄海茫茫何地限금강산은 우뚝하여 중천에 떠있구나 剛山矗矗半天浮다시 높은 곳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更登高處西回首어쩌랴 오늘 한 사람이 적은127) 슬픔을 其柰今朝少一愁 好事元難得自由, 此行竟失與君儔.東來到處多名勝, 老去差强散鬱幽.滄海茫茫何地限, 剛山矗矗半天浮.更登高處西回首, 其柰今朝少一愁. 한 사람이 빠진 원문의 '소일(少一)'로, 이번 여행길에 자정(子貞) 한 사람이 빠진 것을 말한 것이다. 당(唐)나라 왕유(王維)가 객지에서 산동(山東)의 형제를 그리며 지은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에 "홀로 타향에 나와 나그네 되니, 명절 만날 적마다 어버이 생각 갑절 나네. 멀리서도 알겠도다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모두 수유 꽂았는데 한 사람이 적은 것을.[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遍揷茱萸少一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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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날마다 희숙을 그리며 金剛 日有懷希淑 세상 밖에 있는 금강산 자취를 物外金剛跡조만간 함께 찾아가자 기약하네 聯筇早晩期굳센 용이 어찌 오래 칩거하랴 矯龍何久蟄고달픈 학 또한 높이 날아가네 倦鶴亦高飛구룡연폭포에서 마음 씻어내고 九瀑洗心處비로봉에서 맘껏 내려다보았네 毘峯縱眼時소군128)의 기묘한 이야기를 少君奇絶話머리 돌려 서글피 생각해보네 回首悵然思 物外金剛跡, 聯筇早晩期.矯龍何久蟄, 倦鶴亦高飛.九瀑洗心處, 昆峯縱眼時.小君奇絶話, 回首悵然思. 소군(少君) 이소군(李少君)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이다. 한 무제에게 "단사(丹砂)를 황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황금으로 식기를 만들어 사용하면 장수를 누릴 수 있으며, 장수를 누리면 해중(海中)의 봉래산(蓬萊山)에 사는 신선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라고 미혹시켰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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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7) 【춘식】에게 답함 答權範晦【春植】 일전에 복주(福州)58)의 장(張)·정(丁) 두 소년이 방문하여 우리 범회의 소식을 대략 들었는데 지금 또 이런 편지를 받았으니 그 감사하고 후련함이 어떠하겠는가? 인하여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강녕하시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는 외에 학문을 익힘에 과정이 있는 줄 알았으니, 더욱 듣고 싶은 마음에 부합하였네. 그대의 공부는 바야흐로 《대학혹문》에 있는데 정제(整齊) 및 성성(惺惺)의 설에 묵묵히 계합하는 것이 있고, 또 두세 조목의 문목이 있었으니 읽어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네. 대저 범회(範晦)는 아름답고 좋은 재질로 공부의 조예가 또한 이미 많을 것이네. 다만 학문(學問) 사색(思索)하는 방법에 오히려 첫머리에 힘을 얻는 실마리가 있지 않으니, 항상 서로 향하는 마음에 이것으로 알려주지 않음이 없었네. 지금 이에 한 단계 성장함이 이와 같으니 이로부터 진취를 또 어찌 헤아리겠는가? 이(理)는 형상이 없고 기(氣)는 형상이 있는 것은 이기의 큰 구분으로 말하면 실로 이와 같네. 모든 사물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는데, 형이라는 것은 기의 집이고 기라는 것은 신의 집이고 신이라는 것은 이의 집이니, 신은 바로 허령을 이르는 것이네. 기도 오히려 무형(無形)인 것이 있는데 더구나 허령하면서 형상이 있는 것에 있어서야 어떠하겠는가? 다만 이에 비하여 비교적 드러나네. 허령의 허를 오로지 이로 보는 것은 또한 합당하지 않네. 허령이 뭇 이치를 갖추고 있는 바인데, 만약 허를 이로 본다면 이것은 이로 이를 갖춘 것이니, 가하겠는가? 허령을 말하면 허가 체가 되고 령이 용이 되며, 허령 지각을 말하면 허령이 체가 되고 지각이 용이 되네. 그러나 이 용은 오로지 이 심이 발한 뒤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네. 비록 발하지 않아도 용은 실로 그 가운데 있으니, 이른바 "체와 용이 한 근원[體用一原]"이라는 것이고 이른바 "고요하고 막막하여 아무 조짐이 없을 때 만 가지 형상이 빽빽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라는 것이 이것이네. 소이연(所以然)을 소당연(所當然)의 원두로 삼는 것은 가하고, 소이연을 깨닫는데 각(覺)을 지(知)의 원두로 삼는 것은 불가하니, 지와 각은 단지 이 심(心)의 용(用)이네. 日前福州張丁兩少年之過。槪聞吾範晦信息矣。而今又得此心畫。其爲感豁。爲何如哉。因審重省康寧。晨昏之餘。溫理有程。尤副願聞。盛課方在大學或問。而於整齊及惺惺之說。黙有契焉。又有數三問目。讀之不覺令人動情。大抵範晦以好材美質。功夫所造。亦已多矣。但於學問思索之方。尙未有開頭得力之端。尋常相向。未嘗不以此奉告矣。今乃長得一格者如此。從此進就。又何可量。理無形。氣有形。以理氣大分言之。固是如此。凡物莫不有形氣神理。形者氣之宅。氣者神之宅。神者理之宅。神卽虛靈之謂也。氣猶有無形者。況虛靈而有形乎。但比於理較著矣。虛靈之虛。專作理看。亦未安。虛靈所以具衆理。若以虛作理。則是以理具理。其可乎。言虛靈則虛爲體。靈爲用。言虛靈知覺。則虛靈爲體。知覺爲用。然是用也。非專爲此心發後事也。雖未發而用固在其中。所謂體用一原。所謂沖漠無眹。萬象森然已具者。是也。以所以然爲所當然之源頭則可。以覺其所以然而以覺爲知之源頭則不可。知與覺。只是此心之用也。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복주(福州) 경상북도 안동시의 고려 시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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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옥에게 답함 答鄭士玉 경함(景涵)53)은 주재(主宰)를 이(理)로 여기니, 이것은 주리(主理)가 너무 지나친 소치이네. 무릇 천하의 만사와 만물은 이 이(理)가 아님이 없는데 더구나 주재를 이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말해도 불가하겠는가? 그러나 이 말은 천지조화 상에서 말한다면 가하지만 인심의 운용 상에서 말한다면 의논할 만한 것이 없지 않네. 무릇 천(天)은 무위(無爲)하기 때문에 이가 주재가 되고, 인(人)은 유위(有爲)하기 때문에 심이 주재가 되니, 정자(程子)가 이른바 "도체는 무위하지만 인심은 지각이 있다.[道體無爲而人心有覺]"라는 것이 이것이네. 또 심이 주재가 되는 소이는 무엇인가? 허령지각이 있기 때문이네. 만약 허령지각이 아니라면 마른 나무와 꺼진 재나 다름이 없으니, 말할 수 있는 어떤 주재가 있겠는가? 허령지각은 실로 기의 정상(精爽)이지만 허령지각하는 소이는 이(理)이니, 령(靈)이 아니면 능히 각(覺)할 수 없고 이(理)가 아니면 각(覺)할 바가 없네. 만약 '소이(所以)' 자를 쓰지 않고 곧장 주재를 이라고 이른다면 이는 작용하는 물이 되고 이와 기, 심과 성이 섞여 경계가 없을 것이네. 대저 주기설은 실로 지금의 고질인데 이른바 주리를 주장하는 사람 또한 교왕과직(矯枉過直)의 폐단이 없지 않으니, 매우 탄식스럽네.[문] 공자가 말하기를 "향원(鄕原)은 덕의 적이다."라고 하였는데, 주자가 해석하기를 "덕(德)과 비슷하나 덕이 아니어서 도리어 덕을 어지럽힌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향원과 광견(狂狷)은 서로 머니,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향원은 진취적이지도 않고 또 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성인이 미워했던 것은 유속(流俗)과 함께 하고 더러움에 영합하여 더불어 큰일을 할 수 없었던 까닭 때문입니다. 옛날에 애산(艾山) 선생54)께서 소자에게 한 말씀을 내려 주셨는데 그 뜻이 이와 같았고, 스승의 문하에서 귀에 대고 말씀하고 대면하여 타일러 주신 것 또한 애초에 이런 부류에 귀착될까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소자도 자신에게 절실한 실제의 병통이 되는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병은 쉽게 얻고 고치기는 어려우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답] 사옥(士玉)은 자질이 십분 순근(醇謹)한데 과감하게 진작하는 기상이 부족하니, 한 사람의 근칙(謹勅)하는 선비가 되기에는 족하지만 무거운 책임을 맡아 멀리까지 도달하는 것에는 흠결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애산 선생이 이른바 "병이 없는 병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라는 것은 자못 생각할 만 하네. 오호라! 성인께서 이런 순근한 사람을 취하지 않고 특별히 광견한 사람을 취한 것은 그 뜻을 알 수 있네. 기질을 고쳐서 바로잡는 이것은 사람마다 자신에게 절실한 공부이니, 원컨대 사옥은 힘쓸지어다.[문] 주자가 이른바 "이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한다.[發於理發於氣]"라는 것은 그 발하는 근본이 하나인데 이미 발한 뒤에는 같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발(發)' 자 아래에 이(理) 자와 기(氣) 자를 나누어 둔 것입니다. 퇴계(退溪)가 이른바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분명 이 일변과 기 일변이 상대하고 병립하여 혹 여기에서 발하고 혹 저기에서 발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발' 자를 이 자와 기 자 아래에 두었기 때문에 그 뜻이 서로 현격하게 되는 것입니다.[답] "혹 생겨나고, 혹 근원한다."라고 말하면 본원이 하나가 되는 것에 해롭지 않지만, 다만 발할 즈음에 인심과 도심을 변별했을 따름이네. 만약 "기가 발함에 이가 타고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른다."라고 한다면 분명 머리를 나란히 하여 서로 발한다는 혐의가 있을 것이네.[문] 성(誠)은 일(一)이니, 이른바 성의(誠意)라는 것은 불일(不一)의 사의(私意)를 하나로[一]한다는 것입니까?[답] 일(一)로 성의의 성을 해석하는 것은 주자가 '실(實)' 자로 해석하여 착수할 곳이 있는 것만 못하네.[문] "고요하고 막막하여 아무 조짐이 없을 때 만 가지 형상이 빽빽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라고 하니, 만약 중인으로서 이런 경계를 묵묵히 알려고 하면 새벽녘 사물과 접하지 않아 담연(湛然)하고 허명(虛明)할 때에 가능하겠습니까?[답] 새벽녘 담연할 때 및 우연히 순수함을 회복했을 때가 이것이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뜻이 있으면 문득 무짐(無朕)이 아니고 문득 삼연(森然)이 아니네.[문] 《대학》의 지선(至善)이 바로 《중용》의 중(中)입니까?[답] 지선은 실리(實理)로 말한 것이고, 중은 체단(體段)으로 말한 것이네.[문] 혹 고요히 앉아 수렴하지만 혼매하고 치달려 만족스럽지 못한 때가 있기도 하고, 혹 수렴할 겨를도 없는데도 부지불각 중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때도 있는데, 모두 어렴풋하여 그 실마리를 모르겠으니, 어찌하면 가하겠습니까?[답] 이것은 함양이 미숙하여 실심(實心)이 안정되지 못한 소치이니, 정히 마땅히 더욱 힘써야 하네.[문] 맹자가 말하기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養心莫善於寡欲]"라고 하였으니, 다만 욕심을 적게 하는 곳[寡欲]에서 몇 년의 공부를 쏟으면 천기(天機)가 자연한 본체는 보존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보존되겠습니까?[답]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은 실로 마음을 기르는 제일의 방법이네. 그러나 욕심이라는 것은 단지 식색(食色)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법도에 따르지 않는 모든 곳이 모두 욕심이니, 장차 모름지기 거친 곳에서 정밀한데로 들어가는 것이 가할 것이네.[문] 기(氣)는 볼 수 있는 바탕이 있지만 이(理)는 볼 수 있는 형상이 없으니, 다만 바탕이 있는 기에 나아가 형상이 없는 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답] 이것은 아래 한 절의 설이니 만약 위 한 절에 나아가 말한다면 어찌 일찍이 기를 기다려 이를 말하겠는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네.[문] 다만 마땅히 그 선념(善念)을 보존하기만 하면 악념(惡念)은 자연스럽게 물러납니다. 만약 선념이 생기는 곳에 가서 접속하지 않고 다만 악념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마치 도둑이 동서로 치달려 들어오는 것과 같고 마치 불을 끄려고 하면 더욱 치솟아 번지는 것과 같아 그 형세는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답] 고인의 기허(器虛)와 기실(器實)의 비유55) 또한 이 뜻이네. 이것은 고생스럽게 경험한 속에나 나온 말이니, 어찌 귀하지 않은가? 힘쓰고 힘쓰시게![문] 정자(程子)는 이른바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상태 그 이전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난 이후를 성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고자(告子)는 바로 그 지각운동(知覺運動)을 가리켰기 때문에 맹자가 물리친 것입니다.[답]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라는 것에 정자의 뜻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이 바로 기이고 기가 바로 성이라고 여긴 것이고, 하나는 사람이 태어난 뒤에 바야흐로 성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인데, 고자는 오로지 기에 나아가 말하였네.[문] 수렴(收斂) 제철(提綴)하여 허명(虛明) 정일(靜一)함은 바로 이른바 "이미 놓아 버린 마음을 가져다 돌이켜서 몸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56)입니다. 대저 심(心)과 인(仁)은 본래 두 가지 물이 아니니, 심이 보존되면 인이 보존되고, 심이 달아나면 인이 달아납니다. 그렇다면 방심을 구하는 것은 바로 인을 구하는 공부입니다.[답] 자네 말이 좋네. 景涵以主宰爲理。是主理太過之致也。夫天下萬事萬物。莫非是理。況以主宰謂之理。孰云不可。然此言在天地造化上說則可。在人心運用上說。則不能無可議者。夫天無爲。故理爲主宰。人有爲。故心爲主宰。程子所謂道體無爲。而人心有覺者。此也。且心之所以爲主宰。何也。以其有虛靈知覺故也。若非虛靈知覺。則與枯木死灰無異。有何主宰之可言也。虛靈知覺。固氣之精爽。而所以虛靈知覺者。理也。非靈則不能覺。非理則無所覺。若不下所以字。而直以主宰謂理。則理爲作用之物。而理與氣。心與性。混無界至矣。大抵主氣之說。固今日之膏肓。而所謂主理者。亦不無矯枉過直之敝。可歎可歎。孔子曰。鄕原德之賊。朱子釋之曰。似德非德。反亂乎德。大抵鄕原與狂狷相遠。狂者進取。狷者有所不爲。鄕原者未嘗進取。又無所不爲。聖人所惡者。以其同流合汚。不可與有爲故也。昔艾山先生賜小子一言。其意在此。師門平日耳提面命者。亦未始非恐歸此流。小子亦非不知爲切己實病。而病易得而難瘳。如之何則可。士玉姿質。十分醇謹。而少果敢振作之氣。其爲一箇謹勅之士則足矣。而於任重致遠。不其有欠乎。此艾山先生所謂不病之病。最爲難治者。殊可念也。嗚呼。聖人不取此醇謹底人。而特取狂狷之人者。其意可知。矯捄氣質。此是人人切己之功。願士玉勉之。朱子所謂發於理發於氣者。是其發之本一也。而及其已發之後。有不同者。故一發字下。分着理氣字。退溪所謂理發而氣隨之。氣發而理乘之者。是分明有理一邊。氣一邊。相對竝立。或發於此。或發於彼。盖其着發字於理氣下。故其義相爲懸殊。曰或生或原則。不害爲本原之一。而特於臨發之際。辨別其人心道心之義而已。若曰氣發而理乘。理發而氣隨。則分明有齊頭互發之嫌。誠一也。所謂誠意者。是一其不一之私意。以一釋誠意之誠。不如朱子以實字釋之。而有下手處沖漠無眹。萬衆森然已具。若以衆人而欲黙識此境界。則於平朝未與物接。湛然虛明之時。可乎。平朝湛然。及偶然圓淳之時。是也。然纔有欲識底意。則便非無眹便非森然。大學之至善。卽中庸之中。至善以實理言。屮以體段言。或靜坐收斂。而有昏昧走作不慊之時。或未暇收斂。而有不知不覺自好之時。皆怳惚而莫知其端。如何則可。此是涵養未熟。實心未定之致。正宜加勉。孟子曰。養心莫善於寡欲。但於寡欲上。費得幾歲幾年工夫。則天機自然之體。不期存而自存否。寡欲固養心第一方。然欲非特食色之謂凡心不循軌處。皆欲也。且須由粗入精。可也。氣則有質可觀。而理則無形可見。但就有質之氣。知其有無形之理乎。此是下一節說。若就上一節說。則何嘗待氯而言理。如曰無極而太極。是也。但當存其善念。惡念自然退聽。若於善念處。不之接續。而但欲除去惡念。則如寇之東驅西入。如火之愈撲愈熾。其勢有不可得以除者。古人器虛器實之喩。亦比意。此是辛苦經歷中出來語。豈不可貴。勉之勉之。程子所謂生之謂性。正以其人生而靜以上。不容說。故以爲生以後。謂之性。告子則正指。其知覺運動。故孟子闢之。生之謂性。程子之意。有兩般焉。一則以爲性卽氣。氣卽性。一則以爲人生以後。方說性。告子專就氣說。收斂提綴。虛明靜一。卽所謂將己放之心。反復入身來。大抵心與仁。本非二物。心存則仁存。心亡則仁亡。然則求放心。卽求仁工夫好。 경함(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의 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 "황경함(黃景涵)" 참조. 애산(艾山) 선생 정재규(鄭載圭, 1843~1911)를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 '애산(艾山)' 참조. 고인의……비유 《근사록》 권4 존양류(存養類)에 정호(程顥)가 "빈 그릇을 물속에 넣으면 물이 자연히 들어가겠지만, 하나의 그릇에 물을 채워서 물속에 두면 물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대개 내부에 주가 있으면 실하니, 실하면 외부의 환란이 들어올 수 없어 자연히 무사할 것이다.[虛器入水, 水自然入, 若以一器實之以水, 置之水中, 水何能入來? 蓋中有主則實, 實則外患不能入, 自然無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른바……것 《맹자》 〈고자 상(告子上)〉 '구방심장(求放心章)'의 주석에서 명도(明道)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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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 도중에 鳥嶺途中 비온 뒤 맑은 시내 티끌을 다 씻어내니 雨後淸溪洗點塵나그네는 정신이 맑아짐을 깨닫는다오 行人覺得爽精神바라건대 내 마음도 이처럼 깨끗하여 吾心亦願淨如此오묘한 곳이 무극의 진429)과 간격 없기를 妙處無間無極眞석산에 들러 두 손씨 벗에게 지어 주다 過石山贈二孫友-신재(新齋) 손성철(孫聖徹)과 두봉(斗峯) 손성율(孫聖栗)이다.-석산에 사흘 동안 돌아가는 걸음 멈추니 石山三日住歸筇신재와 두봉 두 벗이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新齋與斗峯시렁 덮은 푸른 등덩굴은 짙은 그늘 이루고 覆架蒼藤成厚蔭동산 가득 긴 대나무는 맑은 바람 일으키네 滿園脩竹動淸風시비 양쪽은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없거니와 是非兩莫微毫錯사정 사이는 어찌 한 터럭이라도 용납하리오 邪正間何一髮容이별할 때 두 벗에게 간곡하게 권면하니 臨別丁寧相勉意추현의 호변430)에 더욱 공력을 들이기를 鄒賢好辯益加功 雨後淸溪洗點塵, 行人覺得爽精神.吾心亦願淨如此, 妙處無間無極眞.過石山, 贈二孫友【新齋聖徹、斗峰聖栗】石山三日住歸筇, 爲有新齋與斗峯.覆架蒼藤成厚蔭, 滿園脩竹動淸風.是非兩莫微毫錯, 邪正間何一髮容?臨別丁寧相勉意, 鄒賢好辯益加功. 무극(無極)의 진(眞)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無極)의 진(眞)과 이기(二氣)·오행(五行)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하고 엉기어 건도(乾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이루어 두 기운이 교감(交感)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천지(天地)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지순(至純)한 이치를 뜻한다. 《近思錄集解 卷1 道體》 추현(鄒賢)의 호변(好辯) 추현은 추(鄒) 땅 사람인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호변은 소위 《맹자》의 호변장(好辯章)을 가리키는 것으로, 맹자가 "내가 또한 인심을 바로잡아 부정한 학설을 종식시키며, 편벽된 행실을 막으며, 음탕한 말을 추방하여 우(禹)임금·주공(周公)·공자(孔子) 세 성인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해서이다. 능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我亦欲正人心, 息邪說, 距詖行, 放淫辭, 以承三聖者, 豈好辯哉? 予不得已也.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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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듣고 개연하여 쓰다 2수 聞人言慨然而題【二首】 기년의 상이 없어야 혼인할 수 있다는 말406) 無朞之喪乃昏娶해와 별처럼 밝게 예경에 실려 있네 昭在禮經如日星그런데 평생 노학자 같은 사람 있으니 有若生平老學者되려 난세와 말세에는 행할 수 없다 하네 乃謂世亂年晩不可行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오히려 모자라 謂不可行猶不足낡은 유자와 고지식한 선비가 예법 지킨다고 기롱하네 拘儒曲士譏守經예는 잠시라도 몸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 禮不可斯須去회옹이 편찬한 《소학》에 실려 있는데407) 載之小學有晦翁오히려 말하기를 말세와 난세는 尙謂晩年與亂世'잠시'라는 말 속에 포함 안 된다 하네 不入斯須中급박할 때는 예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急遽之時禮不貴그 말 가릉408)에게서 나왔으니 어찌 그리 흉한가 言出嘉陵一何凶좌중의 소년들 하직 인사를 하지 않았으니 座中少年不告別그 말 듣고 공경할 게 없다고 여겨서이겠지 聞言不足加敬恭선사께서 이 일을 제자들에게 말하면서 先師擧此語諸子근심 깊고 세상 해침이 맹수 홍수보다 심하다 하셨네 憂深害世甚猛洪금일 노학자의 말과 비교해서 보면 較看今日老學語식견과 사기가 너무나도 서로 흡사하구나 見識辭氣酷相同아아 차라리 나는 낡고 고지식한 선비가 될지언정 嗚呼寧爲吾之拘曲저들이 생각하는 곧음과 통달을 원치 않는다오 不願彼之直與通자신과 혼사 주관자가 기년복이 없어야 身及主昏無朞服성혼할 수 있는 것은 예에 당연하네 乃可嫁娶禮固然노학자가 이미 권하여 사람들 이를 어기고 老學旣勸人冒犯몸소 참최복을 입고서 자식의 혼사 주관하네 身持斬衰主子昏그 자식은 또 지금 조부상에 복을 입고 있으니 其子又是方服祖하나의 일에 두 가지 잘못 저질러 사람들 놀라게 하네 一擧二犯可駭人돌아가신 부친이 유언을 남겨서 謂是亡父有遺敎어쩔 수 없이 달권409)을 썼다고 하네 不得已處用達權자신의 행실에 잘못 없으면 성인에게 질정할 수 있으니 吾行無錯可質聖저 잘못된 선비의 말 어찌 상관하겠는가 彼哉何關曲士言아아 옛날의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 돌렸는데 嗚呼古之君子過歸己지금의 군자는 잘못을 어버이에게 돌리는구나 今之君子過歸親달권이여 달권이여 어찌 이와 같단 말인가 達權達權豈若是한 번 행하면 이적(夷狄)되고 두 번 행하면 만이(蠻夷)되네 一行爲夷再行蠻남자는 나이 삼십에 여자는 나이 이십에 男子三十女二十선왕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연령을 제도로 정하였네410) 先王定制嫁娶年연고가 있으면 이십 삼세에 시집가니411) 有故二十三年嫁남자 또한 어찌 이를 준행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男子亦豈不此遵하물며 아들의 나이가 삼십도 되지 않았는데 子年況未至三十부득이하다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不得已者是胡云가령 임종 때에 유언을 남겼다면 假使臨終有所敎위과의 아름다운 일412)이 이미 과거에 있다오 魏顆美擧已在先문제가 붕어하는 날 단상하라는 조서413)를 文帝崩日短喪詔뒤이은 경제가 경건하게 받들어 행하였네 景帝嗣位奉行虔훗날 천년을 위로 올라가 논하는 선비들은 後來千秋尙論士경제를 크게 죄주고 문제는 죄주지 않았네 深罪於景不於文이 의리 명명백백하여 알기 어렵지 않으니 此義明明不難識일찍이 노학자는 흐리멍덩하다고 생각하였네 曾謂老學矇矇焉모두 '사'라는 한 글자를 제거하지 못해서이니 總爲未除私一字큰길을 버리고 가시덤불로 들어가는 격이네 舍却大路入荊榛노학자의 달권이라는 것이 끝내 이와 같으니 老學達權竟如是도도한 지금 세상 보며 길게 탄식하노라 滔滔今世堪長歎 無朞之喪乃昏娶, 昭在禮經如日星.有若生平老學者, 乃謂世亂年晩不可行.謂不可行猶不足, 拘儒曲士譏守經.禮不可斯須去, 載之小學有晦翁.尙謂晩年與亂世, 不入斯須中.急遽之時禮不貴, 言出嘉陵一何凶?座中少年不告別, 聞言不足加敬恭.先師擧此語諸子, 憂深害世甚猛洪.較看今日老學語, 見識辭氣酷相同.嗚呼寧爲吾之拘曲? 不願彼之直與通.身及主昏無朞服, 乃可嫁娶禮固然.老學旣勸人冒犯, 身持斬衰主子昏.其子又是方服祖, 一擧二犯可駭人.謂是亡父有遺敎, 不得已處用達權.吾行無錯可質聖, 彼哉何關曲士言?嗚呼古之君子過歸己, 今之君子過歸親.達權達權豈若是? 一行爲夷再行蠻.男子三十女二十, 先王定制嫁娶年.有故二十三年嫁, 男子亦豈不此遵?子年況未至三十, 不得已者是胡云?假使臨終有所敎, 魏顆美擧已在先.文帝崩日短喪詔, 景帝嗣位奉行虔.後來千秋尙論士, 深罪於景不於文.此義明明不難識, 曾謂老學矇矇焉.總爲未除私一字, 舍却大路入荊榛.老學達權竟如是, 滔滔今世堪長歎. 기년(朞年)의……말 《가례(家禮)》 권3 〈혼례(昏禮) 의혼(議昏)〉에 "자신과 혼사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기년(期年) 이상의 상이 없어야 성혼(成昏)할 수 있다.[身及主昏者, 無期以上喪, 乃可成昏.]"라고 하였다. 예(禮)는……있는데 주희(朱熹)가 편찬한 《소학》 〈입교(立敎)〉에, 《예기》 〈악기(樂記)〉의 "예악은 잠시라도 몸을 떠나서는 안 된다.[禮樂不可斯須去身.]"라고 한 말이 수록되어 있다. 가릉(嘉陵) 경기도 가평(加平)이다. 이곳 귀곡(龜谷)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의 거처가 있었으므로, 김평묵을 가리킨다. 달권(達權) 상황에 따라 임시로 변통하는 예를 말한다. 남자는……정하였네 《주례주소(周禮註疏)》 권14에 "남자는 30세에 장가를 가고, 여자는 20세에 시집을 간다.[男三十而娶, 女二十而嫁.]"라고 하였다. 연고가……시집가니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여자는 20세에 시집을 가는데, 연고가 있으면 23세에 시집을 간다.[二十而嫁, 有故二十三年而嫁.]"라고 하였는데, 연고란 부모의 상(喪)을 말한다. 위과(魏顆)의 아름다운 일 춘추 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가 아들 위과에게 자기 첩을 개가(改嫁)시키라고 유언하였다가 다시 죽으면서 순장(殉葬)하라고 하였는데, 위과는 차마 서모를 순장하지 못하고 개가하도록 한 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宣公 15年》 문제(文帝)가……조서(詔書) 단상(短喪)은 복상(服喪) 기간을 단축한다는 뜻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삼년 복상(三年服喪)의 제도를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하는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로 고쳐서 36일 만에 복을 벗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뒤로 역대 왕조에서는 모두 그 관행을 따랐다. 《漢書 卷4 文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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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를 개탄하다. 횡거의 시414)에 차운하다 慨世, 次橫渠韻 상사 있어도 힘쓰지 않아 도가 끝내 그릇되니 有喪不勉道終非젊어선 어버이를 늙어서는 쇠함을 핑계한다오415) 少爲親嫌老爲衰온 세상 사람들이 부모를 높일 줄만 아니 擧世但知隆考妣공시416)가 내 비통한 마음을 보지 못하누나 功緦不見我心悲-횡거(橫渠)의 시이다.-상례 버리면 금수이지 사람 아니니 棄喪卽獸乃人非세도가 이토록 쇠해짐을 개탄한다오 世道堪歎至此衰지금 시속은 부모도 높일 줄 모르니 今俗不知隆考妣어찌 공시가 슬퍼하지 않음을 따지리오 功緦豈問不能悲 有喪不勉道終非, 少爲親嫌老爲衰.擧世但知隆考妣, 功緦不見我心悲.【橫渠詩】棄喪卽獸乃人非, 世道堪歎至此衰.今俗不知隆考妣, 功緦豈問不能悲? 횡거(橫渠)의 시(詩) 횡거는 송(宋)나라 학자 장재(張載, 1020~1077)의 호이다. 그의 자는 자후(子厚), 시호는 명공(明公)이다. 송대 이학(理學)을 창시한 오현(五賢) 중의 한 사람으로, 관중(關中)에서 강학하였으므로 그의 학문을 '관학(關學)'이라 부른다. 그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은 왕정상(王廷相), 왕부지(王夫之), 대진(戴震)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고, 인성론(人性論)은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저서에 《정몽(正蒙)》, 《이굴(理窟)》, 《역설(易說)》 등이 있다. 그의 시(詩)는 〈상사(喪事)가 있다[有喪]〉를 가리킨다. 《張子全書 卷13》 젊어선……핑계한다오 사람들이 젊을 때에는 늙은 어버이가 자신의 소복 차림을 보기 싫어함을 혐의한다는 핑계로 상복(喪服)을 입으려 하지 않고, 늙어서는 자신의 몸이 이미 쇠약해짐을 핑계하여 상복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시구에 대한 송시열(宋時烈)의 해설에 의하면, 횡거 때에도 사람들이 예를 소홀히 하여 친척의 초상을 만난다 해도 상복을 입지 않았는데, 횡거가 비로소 친척의 상에 상복을 입기 시작하여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복(緦麻服)에 해당하는 초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복을 입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를 모두 괴이하게 여겼으나 결국에는 모두 횡거를 존신(尊信)하여 따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宋子大全拾遺 卷9 經筵講義》 공시(功緦) 오복(五服) 가운데서 9개월 복(服)에 해당하는 대공(大功), 5개월 복에 해당하는 소공(小功), 3개월 복에 해당하는 시마(緦麻)를 가리키는데, 주로 손자와 종손자 이하의 항렬이나 다소 먼 친족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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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경 見月 너에게 묻노니 푸른 하늘에 뜬 달은 問爾靑天月어쩌면 저렇듯이 밝을 수가 있을까 那能如許明그런데 사람 마음은 무슨 일 때문에 人心緣底事맑지 못하여 항상 괴로워하는가 恒苦未澄淸-달에게 묻다.-이렇게 구름 걷힌 밤을 만나니 値玆雲掃夜정녕 본래 밝은 모습을 본다네 定見本來明사사로운 뜻을 없앨 수만 있다면 但得除私意어찌 마음 맑지 못할까 걱정하랴 何憂心未淸-달이 대답하다.- 問爾靑天月, 那能如許明?人心緣底事, 恒苦未澄淸?【問月.】値玆雲掃夜, 定見本來明.但得除私意, 何憂心未淸?【月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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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의 세 황군 서구, 하영, 건익 이 찾아온 데 대해 사례하다 2수 謝興德三黃君【瑞九河永鍵翼】來訪【二首】 부옥의 봉창이 문득 밝아오니 蔀屋蓬窓忽地明세 현인의 고매한 발걸음 흥성62)에서 왔네 三賢高躅自興城성의에 보답할 수 없는 내가 부끄러우니 愧余無以酬勤意비루한 학문이 예로부터 명성이 없었네 陋學從來乏價聲흰 달과 국화는 참으로 아름답고 밝으니 素月黃花正麗明좋은 시절 고아한 모임에 근심이 사라지네 良辰雅會破愁城신선 나그네 머물러두기 어려움을 싫어 하니 却嫌仙旅留難得어느 곳 구름 속에서 학 소리 들을거나 何處雲間聽鶴聲 蔀屋蓬窓忽地明, 三賢高躅自興城.愧余無以酬勤意, 陋學從來乏價聲.素月黃花正麗明, 良辰雅會破愁城.却嫌仙旅留難得, 何處雲間聽鶴聲? 흥성(興城) 전라도 흥덕현(興德縣)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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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 윤일이 천 리에서 찾아왔기에 아주 기뻐서 주다 吳君允一千里見訪 喜甚有贈 국화 늦게 핀 맑은 날이 마침 소춘66)이니 菊晩天晴適小春천 리에서 찾아온 벗 만나서 기쁘구나 喜逢千里有朋人조심조심 발 내딛는 곳은 연원이 무거웠고 小心脚下淵源重상당67)의 고을은 고아한 명망이 새로웠지 上黨鄕中雅望新주된 적을 밝힐 사문을 얻기는 어렵지만 難得斯文明主賊풍진을 벗어날 법복이 다시 있다네 更有法服出風塵형편없고 노쇠해 강습하는 벗 없어 부끄럽지만 疏衰縱愧無麗澤서로 흉금이 통하니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혹 없으리 相信衿期質鬼神 菊晩天晴適小春, 喜逢千里有朋人.小心脚下淵源重, 上黨鄕中雅望新.難得斯文明主賊, 更有法服出風塵.疏衰縱愧無麗澤, 相信衿期質鬼神. 소춘(小春) 음력 10월의 별칭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시월은 날씨가 봄처럼 화창하고 따뜻하기 때문에 소춘이라 한다.[十月, 天氣和暖似春, 故曰小春.]" 하였다. 상당(上黨)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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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525)의 제군들을 경계하며 주다 戒贈書社諸君 거처 가리지 않으니 거처 없는 것과 같고 有居不擇若無居후진은 끊임없이 서책을 묶어 두고 있네 後進滔滔束置書어질지 못해 삼 년 동안 얻은 것이 없어 不穀三年曾未得하나의 '성' 자도 모두 허사로 돌아갔네 少一誠字摠歸虛형체를 받아 바르게 처하니 가장 신령하고 受形正處靈爲最천성이 온전할 때에 쓰임도 넉넉하다네 稟性全時用有餘간곡한 시를 지어 경계의 말을 더해주니 持贈丁寧兼勸戒청컨대 그대들은 초심을 저버리지 말게나 請君莫負發心初 有居不擇若無居, 後進滔滔朿置書.不穀三年曾未得, 少一誠字摠歸虛.受形正處靈爲最, 稟性全時用有餘.持贈丁寧兼勸戒, 請君莫負發心初. 서사(書社) 일반적으로 글을 읽고 시를 짓는 모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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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그믐날 높이 올라 三月晦日 登高 천시는 동쪽 서쪽 오고 가나니 天時來去自西東인사도 평생 이와 함께 한다네 人事生平亦與同천 점의 눈 내린듯 두 뒤밑머리 희고 雙鬢星星千點雪스무 번 꽃바람289)에 구십일 훌쩍 갔네 九旬遽遽卄番風능력 많아도 장수술법은 얻기 어려우나 多能難得長年術형세를 타면 세상 덮을 공은 이룬다네 乘勢還成蓋世功젊은이들은 오늘의 한을 알지 못하고 少輩不知今日恨푸른 산에서 질탕하게 즐기며 놀구나 遨遊跌宕碧山中 天時來去自西東, 人事生平亦與同.雙鬢星星千點雪, 九旬遽遽卄番風.多能難得長年術, 乘勢還成蓋世功.少輩不知今日恨, 遨遊跌宕碧山中. 스무 번 꽃바람 '입번풍(卄番風)'은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을 말하는 것으로, 이십사절후 가운데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 부는 바람이다. 닷새 만큼씩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그에 응해서 절기의 꽃이 차례로 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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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선사의 〈자경〉 시에 차운하다 謹次先師自警韻 운 막히고 몸 늙어도 슬플 건 없으나 運屯身老不須悲슬렁슬렁 보내다 한 일 없어 한탄할 뿐 只恨悠悠未有爲덕기는 옥석을 다듬듯 하기가 어렵고294) 德器難能磨玉石심전의 잡풀을 어찌 다 제거하리오295) 心田那盡去蒿藜백년 인생 살면서도 보탬이 없다면 百年人世生無益훗날 황천에 죽어서도 위태로우리 他日泉臺死且危억계296)는 오히려 늙어서 지었거늘 抑戒猶能耄耋作지금부터 맹렬히 힘씀이 마땅하리라 從今猛勵亦端宜 運屯身老不須悲, 只恨悠悠未有爲.德器難能磨玉石, 心田那盡去蒿藜.百年人世生無益, 他日泉臺死且危.抑戒猶能耄耋作, 從今猛勵亦端宜. 덕기는……어렵고 덕의 그릇을 완성하는 것은 옥을 다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뜻이다. 심전의……하리오 일반적인 밭에서는 잡초를 제거하기 쉽지만 마음의 밭은 그보다 어렵다는 뜻이다. 억계(抑戒) 《시경》의 〈억(抑)〉 편인데, 95세가 되었던 춘추 시대 위 무공(衛武公)이 이 시를 지어서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경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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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기 에게 차운하여 주다 次贈金【仁基】 영해의 동쪽 궁벽한 집에서 窮廬瀛海東무식한 사람393)에게 묻는 그대 고맙네 感子問空空성로의 세업을 잇는 아들로394) 省老箕裘子상산395)의 문장 풍류로다 商山文藻風욕심으로는 가을 강물처럼 맑고자 하고 慾要秋江淨마음으로는 솟는 해처럼 붉기를 기약하네 心期旭日紅그대는 참된 효도를 아는가 君知眞孝否덕이 성인과 같아지는 것이네 德與聖人同 窮廬瀛海東, 感子問空空.省老箕裘子, 商山文藻風.慾要秋江淨, 心期旭日紅.君知眞孝否, 德與聖人同. 무식한 사람 원문의 '공공(空空)'은 자신을 낮춰 말한 것이다. 《논어》 〈자한〉에 공자가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비루한 사람이 나에게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을 들어서 다 말해주노라.[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고 하였다. 성로의……아들로 김택술이 지은 《성암유고(省菴遺稿)》 〈서문〉을 보면 '성로(省老)'는 성암(省菴) 김용선(金容璿)을 말하고 그 아들 김인기(金仁基)가 글을 요청한 내용이 보인다. 원문의 '기구(箕裘)'는 키와 갖옷으로 선대의 세업(世業)을 잇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훌륭한 야공(冶工)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갖옷을 만들 줄 알고, 훌륭한 궁인(弓人)의 자식은 반드시 배워서 키를 만들 줄 안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고 하였다. 상산(商山) 경북 상주시의 옛이름인데, 김인기의 본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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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운을 거듭 써서 정 병주 에게 주다 疊前韻贈鄭【昞柱】 흰 달이 하늘 동쪽에 떳으니 素月在天東좋은 밤에 흥이 헛되지 않네 良宵興不空영산엔 세속의 일이 드물고 瀛山稀俗事기사396)는 맑은 풍격 지녔네 箕士帶淸風대와 잣나무는 야윈 것이 매우 어여쁘고 竹柏堪憐瘦꽃송이는 붉은 것이 도리어 부럽구나 藻葩却羡紅원컨대 돌아가 묵을 곳 찾아 願尋歸宿地그대와 백년을 함께 했으면 與子百年同 素月在天東, 良宵興不空.瀛山稀俗事, 箕士帶淸風.竹柏堪憐瘦, 藻葩却羡紅.願尋歸宿地, 與子百年同. 기사(箕士) 요 임금이 천하를 양보하려 하자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숨어산 은사(隱士) 허유(許由)를 말한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지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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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로5) 【재동】에게 답함 答吳陽路【在東】 한 통의 편지가 얼마나 위로되고 후련했겠는가? 다만 바쁜 일로 인하여 즉시 답장을 못했으니 더욱 이 때문에 미안하고 서글펐네. 늦은 봄 날씨가 따뜻한데 조부모와 부모님의 체후는 한결같이 왕성하고 평안하신가? 부모님이 모두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으며, 나이는 젊고 기력은 왕성하며, 마을 서당이 있고 이웃에 스승이 있어 학업을 닦음에 방도가 있을 것이니, 이는 급급하게 큰일을 해야 할 날이 아니겠는가? 미적거리며 등한히 보내는 것은 우리 일을 가장 해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쓰시게. 가만히 보건대 양로(陽路)의 자질은 깨우치는 데는 뛰어나지만 침착하고 고요한 의사에는 혹 부족함이 있는데, 이것은 학문과 덕을 축적하는데 실로 작은 흠결이 아니니, 바라건대 돌이켜 살펴 바로잡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의림(義林)은 변변찮고 산란하여 족히 말할 것이 없네. 응수에 겨를이 없고 노경에는 어렵다고 한 말은 실로 나를 아끼고 나를 가련히 여기는 뜻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이 또한 명수(命數)에 관계된 곳이니.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외에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중용》에 대한 문목은 유념하여 궁구하고 탐색하여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뜻을 볼 수 있으니, 어떤 다행이 이만하겠는가? '심(心)' 자는 실로 《중용》의 요지이지만 어떤 경서인들 또한 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겠는가? 주자가 말한 "불편불의(不偏不倚)"는 미발의 중을 설명한 것이고, "무과불급(無過不及)"은 이발의 중을 설명한 것이며, 정자가 말한 "불편(不偏)"은 미발과 이발의 중을 통틀어 말한 것이네. "활발발(活潑潑)"은 연어(鳶魚)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만물막불개연(萬物莫不皆然)"은 아마 훈어(訓語)를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하니, 다시 상세히 살펴보시게. 一書何等慰豁。但因悤故。趁未修復。尤庸斂悵。春暮日暄。重省履況。一直茂謐。俱存無故。年力方冨。村塾隣師居業有方。此其非汲汲有爲之日乎。因循等待。最善吾事勉之勉之。竊覵陽路姿質長於開悟。而於沈靜意思。容有遜焉。此於積學蓄德。實非細欠。幸反省而矯捄之。如何。義也碌碌憒憒。無足云喩。酬應無暇。老境爲難之語。實出於愛我憐我之意。而此亦命數所關處也。順受之外。有何方法哉。中庸問目。可見留心竊索。不欲放過之意也。何幸如之。心字固爲中庸要旨。而何經何書。亦有以外於心者哉。朱子所謂不偏不倚。是說未發之中。無過不及。是說已發之中。程子所謂不偏。是統未發已發之中。而言之者也。活潑潑。就鳶魚而言。萬物莫不皆然。恐非訓語之謂也。更詳之。 오양로(吳陽路) 오재동(吳在東, 1881~?)을 말한다. 자는 양로, 호는 이당(鯉堂),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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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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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권범회에게 답함 答權範晦 강운(江雲) 위수(渭樹)59)에 치달리는 마음 얼마나 되었던가? 멀리 떨어져 쓸쓸히 지내니 나도 모르게 혼이 녹아내렸네. 이런 즈음에 한 통의 편지를 갑자기 받아 어루만지고 읊조리니 위로되고 후련한 마음 어찌 감당하겠는가? 인하여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강녕하시고 어른을 모시는 체후가 좋은 줄 알았으니, 더욱 지극히 듣고 싶은 마음에 흡족하였네. 의림(義林)은 몇 년 동안 하나의 병이 심해지기만 하고 덜하지 않으니, 이 어찌 세상에 오래 살 수 있겠는가? 공손히 저승사자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네. 장차 앞으로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하였는데, 매우 연로한 분을 모시고 있는 처지에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오직 아침저녁으로 어른을 모시는 나머지에 옛날 학업을 익혀서 날마다 좋은 경지에 나아가야 할 것 이것이 문득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이니,60) 어떻게 여기는가? 부모상을 함께 당하였을 때 비록 하루가 차이 나더라도 어머니가 먼서 돌아가셨다면 어머니를 위한 복은 1년이고,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면 어머니를 위한 복은 3년이니, 더구나 어머니상의 3, 4일 뒤에 아버지 상을 당한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복을 입는 기한은 의심이 없을 것이네.[문] 흐린 물에 나아가 이 보주(寶珠)를 닦는다고 하니, 대개 흐린 물은 기(氣)를 비유한 것이고 보주는 이(理)에 비유한 것입니다. 지금 흐린 물을 변화시킨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이 보주를 닦는다고 하니, 이른바 기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장차 어디에 힘을 써야합니까? 단지 그 이를 힘써 밝히면 기질은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답] 흐린 물을 맑게 하는 것은 기질을 다스리는 것을 말하고, 명주(明珠)를 닦는다는 것은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을 말하네. 그 공효가 됨은 실로 서로 바탕이 되니 두 가지 일이 아니네. 그러나 예로부터 성현은 일찍이 두 가지로 상대하여 말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극기(克己)를 말하면 반드시 복례(復禮)를 말하고, 한사(閑邪)를 말하면 존성(存誠)을 말하며, 개과(改過)를 말하면 반드시 천선(遷善)을 말하고, 알인욕(遏人欲)을 말하면 반드시 존천리(存天理)를 말하였네.[문] 옥계(玉溪) 노씨(盧氏)가 말하기를 "지선(至善)은 바로 태극(太極)의 이명(異名)이고 명덕(明德)의 본체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른바 명덕의 본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릇 광명정대(光明正大)를 덕의 본체라고 하니, 지선과 같은 것은 정자는 "의리가 정미한 극치[理精微之極]"라고 하였고, 주자는 "사리의 당연한 극치[事理當然之極]"라고 하였으니, 모두 이가 사물에 드러나 그 지극함을 극진히 한 것으로 말하였는데, 노씨는 유독 지선을 명덕의 본체로 돌린 것은 어째서입니까?[답] 태극은 하나인데 통체(統體)의 태극이 있고 각구(各具)의 태극이 있네. 이미 지선을 태극의 이명으로 여겼으니, 지선 또한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른바 명덕의 본체라는 것은 바로 통체의 지선이고, 이른바 사리의 극치라는 것은 각구의 지선이네.[문] 《혹문(或問)》에서 "물격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가 각자 그 극처에 나아가는 것이다.[物格者 事物之理各有以詣其極]"라고 하였는데, 이 '예(詣)' 자는 이가 스스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내가 나아가는 것으로 보아야합니까? 만약 이가 스스로 나아가는 것으로 본다면 이가 어찌 능히 그 극처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답] 옛날 퇴계 선생이 처음에는 심이 이르는 것[心到]으로 보았는데, 뒤에 주자의 이가 이른다[理到]는 설을 보고 이에 그 잘못을 깨달았네. 대저 이도(理到), 이예(理詣)라는 것은 단지 얼음이 녹고 언 것이 풀려 공효가 자연스럽다는 뜻이네.[문] 옥계(玉溪) 노씨(盧氏)가 말하기를 "혼연히 안에 있어 그 본체는 애초 인(仁)·의(義)·예(禮)·지(智)의 구분이 없고, 감하는데 따라 응하여 그 작용이 비로소 측은(惻隱) 등 네 가지의 구별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이것은 인·의·예·지가 그 속에 있을 때 과연 하나의 물이고 말할 수 있는 분별이 없는 것입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성은 비록 적연히 움직이지 않지만 그 속에 조리가 있고 절로 구조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말하자면 혼연한 가운데 찬연한 구분을 볼 수 있는데 노씨는 구분이 없다는 것으로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또 단(端)이라는 것은 서(緖)이니, 비유하자면 청(靑)·홍(紅)·백(白)·흑(黑)의 실이 한 그릇 가운데 있으면서 밖으로 드러나는 실마리가 절로 네 가지 색깔의 구분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속에 있는 실이 한 색깔인데 밖으로 드러나는 실마리가 네 가지 색이라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화(禾)·마(麻)·숙(菽)·맥(麥)의 네 가지 종자를 혼합하여 한 곳에다 파종했는데 싹이 돋아남에 미쳐서는 바야흐로 이것은 벼의 싹이고 이것은 마의 싹임을 볼 수 있고 숙맥 또한 그러하니 어찌 한 종자에 네 가지 싹이 돋아날 이치가 있겠습니까?[답] 옥계가 이른바 "혼연히 안에 있어 그 본체는 애초 인, 의, 예, 지의 구분이 없다."라고 한 것 이것은 아마 합당하지 않는 듯하네. 근세 주기설(主氣說)은 애초에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네. 그대가 말한 청·홍·백·흑의 비유와 화·마·숙·맥의 설은 지극히 분명하니 매우 좋네. 원컨대 이 뜻을 굳게 지켜 요즘 사람들의 말에 동요되지 않기를 바라네.[문] 유자(劉子)가 말한 "천지지중[天地之中]"이라는 것61)은 일본(一本)의 체(體)는 불편불의(不偏不倚)하다는 것으로 말한 것이고, 정자(程子)가 말한 "자유지중(自有之中)"이라는 것은 만수(萬殊)의 용(用)은 과불급(過不及)이 없다는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답] 실로 좋네. 그러나 또한 모름지기 체용이 일원(一原)이라는 뜻을 알아야 하네.[문] 《대학》의 주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사람의 성이다."라고 하였고, 《혹문》에 "그 본심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성은 심에 갖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작용이 행하는 것은 실로 두 가지가 없는 것입니까?[답] 심과 성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니, 본심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바로 이른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네. 江雲渭樹。馳懷幾時。涯角落落。不覺消魂。際玆一書。翩然入手。摩挲沈吟曷勝慰豁。因審重庭康寧。侍履佳吉。尤咔願聞之至。義林積年一疾。有加無減。此豈久於世哉。恭俟符到而已。前頭一枉之示。在篤老下情地。豈是易事也。惟晨昏之餘。溫理舊業。日就佳境。此便是朝暮遇。如何如何。父母皆喪。雖一日之間。母先喪則服母期。父先喪則服母三年。况母喪三四日後而遭父喪者乎。股期無疑矣。就濁水中。揩拭此珠。盖濁水是比氣。寶珠是比理。今不曰變其濁水。而只云揩拭此珠。則所謂變化氣質者。將何以用力。只務明其理。則氣質可得以變化否。澄淸濁水。是治氣質之謂也。揩拭明珠。是明明德之謂也。其爲功。固相資而非二事。然自古聖賢未嘗不兩下對說。言克己。必曰復禮。言閑邪。必曰存誠。言改過。必曰遷善。言遏人欲。必曰存天理。玉溪盧氏曰。至善。乃太極之異名。而明德之本體。所謂明德之本體。未易解。夫光明正大曰德之本體。若夫至善。則程子曰。義理精微之極。朱子曰。事理當然之極。皆以理之見於事物而極其至者言之。盧氏獨以至善。歸於明德之本體。何。太極一也。而有統體之太極。有各具之太極。旣以至善爲太極之異名。則至善。亦安得不然也。所謂明德之本體。卽統體之至善也。所謂事理之極。卽各其之至善也。物格者。事物之理。各有以詣其極。此詣字。作理自詣看。作我所詣看。若作理自詣看。則理豈能自詣其極乎。昔退溪先生初以爲心到。後見朱子理到之說。乃覺其非。大抵理到理詣者。只是氷鮮凍釋。功效自然之意也。玉溪盧氏曰。渾然在中。其體初無仁義禮智之分。隨感而應其用始有惻隱等四者之别。盖此仁義禮智其在中時。果是一物。無分别可言否。朱子曰。性雖寂然不動。而其中自有條理。自有間架。以是言之。渾然之中。可見粲然之分。而盧氏以無分言之何也。且端者緖也。譬如靑紅白黑之絲。在於一器中。其見於外之緒。自有箇四色之分。若曰在中之絲一色。而見外之緖四色。則是安有此理哉。又如禾麻菽麥。四種渾合。播種於一處土。而及其萌芽。則方見得此是禾芽。此是麻芽。菽麥亦然。豈有一種四芽之理乎。王溪所謂渾然在中。初無仁義禮智之分。此恐未安。近世主氣之說。未始不由於此矣。賢所謂靑紅白黑之喻。禾麻菽麥之說。極其分明。甚好甚好。願牢守此意。勿爲時人口氣所遷動。劉子所謂天地之中。以一本之體。不偏不倚者言。程子所謂自有之中。以萬殊之用。無過不及者言。固好。然亦須知體用一原之義。大學註曰。好善惡惡。人之性也。或問曰。其本心。莫不好善而惡惡。盖性是具於心者。故其用之所行。固無二致否。心與性。一而二。二而一。若曰本心。則卽所謂二而一者也。 강운(江雲) 위수(渭樹) 강동의 구름과 위수의 나무로, 벗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저문 날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이니 시간을 초월하여 지기(知己)를 만나는 기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의 "만세의 뒤에라도 이 해답을 아는 대성인을 만나게 된다면, 이것도 아침저녁 사이에 만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萬世之後, 而一遇大聖人知其解者, 是朝暮遇之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유자(劉子)가 말한 천지지중(天地之中) 천지지중은 천지의 중정(中正)한 기운이라는 뜻이다. 《춘추좌씨전》 성공(成公) 13년에 "인민이 천지의 중정한 기운을 받아 이로 인해 생장하니 이것이 이른바 명이라는 것이다.〔民受天地之中以生, 所謂命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유자는 유(劉)나라 군주인 자작(子爵)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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