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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에 제하다 2수 題藥泉【二首】 이 샘물을 마시는 자로 하여금 能令飮此者온갖 병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면서 百病自退移사람 마음에 거짓이 많은 병은 人心多病詐어째서 함께 치료하지 않는가 胡不幷與治이는 약천에게 묻는 것이다.마음병은 의리로 나을 수 있고 心病義可愈몸의 병은 약으로 고쳐야 하네 身疾藥當移세상 사람들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世人吾其柰자기 마음은 결국 스스로 다스려야지 自心竟自治이는 약천이 대답한 것이다. 能令飮此者, 百病自退移.人心多病詐, 胡不幷與治?【問藥泉】心病義可愈, 身疾藥當移.世人吾其柰? 自心竟自治.【藥泉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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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에서 돌아오던 날 등 적삼269)을 잃어버렸기에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하고 시를 지어 사익에게 부치다 自壽洞歸日 忘却藤衫 遣人覓來 賦寄士益 옛날 운산에서 이별할 때는 古昔雲山別벽라의270)에 눈물이 흥건하였는데 碧蘿衣上淚自淫오늘 영산에서 이별할 때는 今日瀛山別어찌하여 백등 적삼을 잃어버렸는가 胡然忘却白藤衫운산의 이별은 서로 출처가 달라 雲山之別異出處친함 가운데 소원함 생겨 슬픔 금치 못하겠더니 親中有疏悲不禁영산의 이별은 아주 친하여 瀛山之別親無間결국 둘 다 형체 잊는 데271) 이르렀지 乃至乎兩忘形형체 잊는 것이야 그래도 가능하지만 形且忘猶可能등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도 어찌 가능하랴 衫欲不忘豈可能형체는 잊었지만 어찌 뜻을 기름이 없겠는가272) 形雖忘豈無養등삼은 잃어버렸지만 또한 찾을 수 있네 衫雖遺亦宜推아 지금 잃어버린 등삼과 옛날 눈물 젖은 옷 噫今之遺衫古淚衣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극한 뜻은 똑같다오 事則雖殊至意同歸 古昔雲山別, 碧蘿衣上淚自淫.今日瀛山別, 胡然忘却白藤衫?雲山之別異出處, 親中有疏悲不禁.瀛山之別親無間, 乃至乎兩忘形.形且忘猶可能, 衫欲不忘豈可能?形雖忘豈無養? 衫雖遺亦宜推.噫今之遺衫古淚衣, 事則雖殊至意同歸. 등(藤) 적삼 껍질을 제거한 등나무 줄기로 만든 적삼을 말한다. 벽라의(碧蘿衣) 푸른 송라(松蘿) 덩굴로 만든 옷으로, 은사(隱士)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형체 잊는 데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한다. 형체는……없겠는가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고, 형체를 기르는 자는 이욕을 잊으며, 도를 터득한 자는 마음을 잊는다.[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致道者忘心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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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사람의 입추 시276)에 차운하다 2수 次唐人立秋詩【二首】 세월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居諸不暫息문득 다시 초가을이 되었네 忽復遇秋初더위 기세 꺾인 줄 이미 알았고 已覺炎威薄나무 그림자 성긴 걸 점차 보겠네 漸看樹影疏교외에서 맞이하는 옛 의례277)는 상상만 하지만 郊迎儀想舊가래나무 이는 풍속278)은 남아 있으리 楸戴俗應餘내 나이는 회갑이 되었고 賤齒甲周匝천시는 반년이 지났구나 天時年半除세상 소란해 백성들 새처럼 달아나고 世騷民竄鳥날이 가물어 연못에는 물고기 없네 日旱澤無魚온갖 감정 이는 가을바람 속에 百感西風裏송옥처럼 시를 읊는다오279) 賦詩宋玉如가을 기운이 오늘 아침 불어오니 秋氣今朝立은자는 비로소 사물에 느낌 이네 幽人感物初못의 연꽃은 활짝 피고 渠荷花歷亂뜰의 나뭇잎은 무성하네 庭樹葉扶疏세찬 바람이 분 뒤라 농사는 망쳤고 農病大風後극심한 가뭄 뒤라 백성들 고생하네 民勞亢旱餘사시는 분분하게 계절이 바뀌고 四時紛代謝만사는 성하기도 쇠하기도 하네 萬事互乘除국면의 판세는 방휼의 형세280)라 局勢相蚌鷸백성들 모두 어육이 되었어라 生靈盡肉魚수많은 뜻이 있는 선비들 幾多有志士앞으로 마음이 어떠할까 從此意何如 居諸不暫息, 忽復遇秋初.已覺炎威薄, 漸看樹影疏.郊迎儀想舊, 楸戴俗應餘.賤齒甲周匝, 天時年半除.世騷民竄鳥, 日旱澤無魚.百感西風裏, 賦詩宋玉如.秋氣今朝立, 幽人感物初.渠荷花歷亂, 庭樹葉扶疏.農病大風後, 民勞亢旱餘.四時紛代謝, 萬事互乘除.局勢相蚌鷸, 生靈盡肉魚.幾多有志士, 從此意何如? 당(唐)나라……시 사공서(司空曙)의 〈입추일(立秋日)〉을 가리킨다. 《全唐詩 卷292》 교외에서……의례 《예기(禮記)》〈월령(月令)〉에 "입추(立秋)에 천자가 친히 삼공(三公)ㆍ구경(九卿)ㆍ제후(諸侯)ㆍ대부(大夫)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하였다. 가래나무 이는 풍속 《몽화록(夢華錄)》에 "경사에서는 입추에 남녀가 모두 가래나무 잎을 따서 머리에 이고 와서 파는 사람이 저자에 가득하였다.[京師立秋, 男女皆翦楸葉, 戴之賣者盈市.]"라고 하였다. 《淵鑑類函 卷15 立秋二》 온갖……읊는다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楚辭 卷6》 방휼(蚌鷸)의 형세 큰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있을 제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껍데기가 닫히는 바람에 도리어 주둥이를 물리어 서로 마주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혔다는 것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함께 패하여 제삼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戰國策 燕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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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0)의 《이택회첩》 뒤에 쓰다 書權範晦麗澤會帖後 두 연못이 서로 걸려 상호간에 적셔주고, 끊임없이 이어져 다하지 않아 붕우 간에 상관(相觀)51)하고, 상호간에 규계하고 경계하여 순순하게 진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께서 특별히 이 뜻을 《주역》에 드러내어 만세에 벗을 취하는 자의 경계로 삼은 까닭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남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고 남의 입장에서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다면 이것은 마른 연못이다. 마른 연못이 서로 걸려 있다면 말할 만한 어떤 유익함이 있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먼저 그 우물을 파되 구인(九仞)의 수고로움52)을 꺼리지 않아 샘물이 솟아남에 이른다면 이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날로 더욱 깊게 고여 멀리로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고 넓게는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이택회(麗澤會)의 제군들은 힘쓸지어다! 兩澤相麗。互相滋潤。源源不竭。朋友相觀。互相規警。循循有進。此聖人所以特著此義於大易。以爲萬世取友者之戒也。然在我無善可以及人。在人無善可以及我。則是渴澤也。以渴澤相麗。有何資益之可言哉。必須先掘其井。不憚九仞之勞。以至於及其泉焉。則所以因仍相資者。日益渟滀。遠可以達海。廣可以澤物。願麗澤諸君勉乎哉。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상관(相觀) 친구 간에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본받는 것을 말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라고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라고 한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인(九仞)의 수고로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함이 있는 자는 비유하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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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변정세계서〉 뒤에 쓰다 書密陽朴氏辨正世系序後 무릇 윤상(倫常)은 지극히 무겁고 세리(勢利)는 지극히 가볍다. 사해(四海)의 귀함을 들어 천륜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고, 한 가지 일의 그릇된 것을 행하여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있다. 시대가 내려오고 풍속이 떨어져 윤리가 밝지 못하고 인욕이 멋대로 행해져 이익을 사모하여 선조를 잊고 세력을 좆아 어버이를 배신하는 자가 흘러넘치니, 이루 탄식을 감당하겠는가.밀양 박씨(密陽朴氏) 일파가 능주(綾州)에 살면서 잠영(簪纓)과 시례(詩禮)로 호남에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다. 다만 그 중엽의 명휘(名諱)가 영체(零替)되고 실전(失傳)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계보를 인용하여 그 결함을 보충하였다. 대개 그 가문의 한 사람이 세계의 중요함을 강구하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끊어진 것을 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나의 벗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38)은 독행(篤行)의 선비이다. 이것으로 항상 분탄(憤歎)하게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선계는 지극히 엄하여 옮기거나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서술(序述)하여 글을 지어 종족과 향당에 두루 고하여 빨리 되돌렸다. 무릇 효자가 어버이 명에 대해 실로 소홀하거나 어기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불의를 당하여서는 애써 간하고 힘껏 다투어 회초리를 맞아 피가 흐르더라도 그만 두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대개 이치를 따르는 것은 어버이를 따른 것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선대 항렬의 당일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빨리 바른 데로 돌려야 하니, 어찌 자손이 뜻을 계승하는 효가 아니겠는가.내가 보건대, 사람들의 집안에 종종 이러한 일이 있지만 편안히 일상으로 여기고 뻔뻔하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혹 그 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눌러 참고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자도 또한 있을 것이다. 오직 사문 박인진은 안으로 마음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속이지 않아 붕우들과 강론하고 종족과 도모하여 천리의 바름에 합할 것을 생각하여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간 사람이니, 가위 명백(明白) 탄이(坦夷)하고 뇌락(磊落) 정대(正大)하다고 하겠다.오호라! 이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떳떳한 윤리 가운데 제일의 의체(義諦)이다. 나는 원컨대 표시하여 드러내어 한 시대를 밝게 깨우쳐 천부(淺夫)와 소인(宵人)들로 하여금 모두 알 수 있게 한다면 말속의 병폐가 거의 나음이 있을 것이다.나는 서로 아는 처지에서 찬탄(贊歎)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분수에 넘는 것을 잊어버리고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夫倫常至重。勢利至輕。擧四海之貴而易天倫不得。行一事之非而得天下不爲。人之所以爲人而異於禽獸者。正在此處。世降俗下。倫理不明。人欲橫流。慕利而忘先。趨勢而背親者。滔滔焉。可勝歎哉。密陽朴氏一派。居於綾州。以簪纓詩禮。聞於湖省者久矣。但其中葉名諱。零替失傳。而間引他系。以補其缺。蓋其門內一人。未講世系之重。而遽以中絶爲欠故也。余友朴斯文麟鎭。篤行士也。以此常懷憤歎。一日以其先系至嚴不可移易之意。序述爲文。遍告于宗族鄕黨而亟反之。夫孝子之於親命。固不可毫忽違逆。然當不義則苦諫力爭。至於被撻流血而不已。其故何哉。蓋順理所以順親也。敬天所以敬親也。況此事非出於先行當日之本心。則亟爲反正。豈非子孫繼志之孝乎。余見人家種種有此。而恬以爲常。靦不知愧者。固不足道。或有知其非義。而畏難隱忍。不敢下手者。亦有矣。惟斯文。內不欺心。外不誣人。講之於朋友。謀之於宗族。思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者。可謂明白坦夷。磊落正大矣。嗚乎。此是民生彛倫第一義諦也。吾願表以出之。曉喩一世。使淺夫宵人。皆得以知之。則末俗之膏肓。庶其有瘳乎。忝在相知。不勝贊歎之私。忘其僭越。而爲之說如是云爾。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 1846∼1895. 자는 학중(學中), 호는 우인당(愚忍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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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와 박공 가장〉 뒤에 적다 題悔窩朴公家狀後 고인의 말에 이르기를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사우가 없으면서 능히 성취함이 있는 자는 적다."라고 하였는데,42) 지금 회와(悔窩) 박공(朴公)의 유장(遺狀)을 읽고 가만히 부합하는 점이 있음을 알았다. 공의 조카 인진(麟鎭)이 일찍 고아가 되어 집안일을 맡게 되자, 공이 집안일 때문에 학문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경계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운데, 더구나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책임이 너의 몸에 있으니, 그 중요함이 어찌 다만 집안일과 견주겠느냐?"라고 하고, 이에 대소가의 일을 몸소 스스로 주관하여 관리하고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오로지 힘써 어진 사우들과 종유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쌓여 그 학업을 성취하여 마침내 사문(斯文)의 순유(醇儒)와 오당(吾黨)의 위인(偉人)이 되었다. 그러나 회와공의 훈도한 힘이 아니었다면 그 수립한 것이 어찌 능히 이럴 수 있었겠는가. 이 한 가지 일에서 공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나는 그의 조카와 더불어 종유하며 강마한 지 10여 년 동안에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 드릴 수 있었던 것이 또한 자못 자주 있었다. 가만히 보건대 공의 형체와 모습이 풍후(豊厚)하고 의용(儀容)이 장중(莊重)하여 남과 더불어 말하거나 웃는 것이 적었고, 일에 임하여 표시 나게 드러내는 것이 적었으니, 아름답게 옛 선진의 기풍이 있었다.오호라! 공과 조카가 차례로 돌아가신 지 장차 지금 20년이 되어가니, 모시고 따르던 나는 외롭고 쓸쓸하여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다만 그 아들 규진(奎鎭)43)과 종손(從孫) 준기(準基)44)가 경전에 힘쓰고 몸을 신칙하여 바야흐로 진보가 끝이 없을 것이라, 또한 공께서 가르친 방법이 돌아가신 뒤에도 실추되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아, 공경할 만하다. 삼가 가장 뒤에 기록하여 내가 뒤미처 생각하는 만분의 일의 정을 깃들인다. 古人有言曰。內無賢父兄。外無嚴師友。而能有成者少矣。今讀悔窩朴公遺狀。竊有槪焉。公從子麟鎭。早孤當室。公慮其以家務而妨於學問。戒之曰。人而不學。近於禽獸。況父母之望。門戶之責。在於汝躬者。其重豈特家務之比哉。於是大少家務。躬自幹理。使之安心專力。遊從賢士友。積歲積年。以就其業。卒爲斯文之醇儒。吾黨之偉人。然非悔窩公訓迪之力。其所樹立。安能乃爾。於此一事而可以見公之爲公也。余與其從子。遊從講磨十餘年。得以拜公於床下者。亦頗頻頻矣。竊見公體相豊厚。儀容莊重。與人寡言笑。臨事少表襮。偉然有古先進之風。嗚乎。公與從子次第就幽。將二十稔于玆。陪從餘生。踽凉奚依。但其遺胤奎鎭從孫準基。劬經勅躬。方進未已。亦可以見公之敎法。不墜於身後。吁可敬也。謹識狀後。以寓區區追想萬一之情云爾。 고인의……하였는데 《소학》 〈선행(善行)〉에 나오는 여희철(呂希哲, 1039~1116)의 말이다. 아들 규진(奎鎭):박규진(朴奎鎭, 1858~1934)을 말한다. 자는 대규(大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종손(從孫) 준기(準基) 박준기(朴準基, 1864~1940)를 말한다. 자는 경립景立), 호는 겸산(謙山),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저서로는 《겸산유고(謙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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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이 예전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 次百拙舊作【二首】 상전벽해 속의 변고 몇 년이나 지났나 滄桑變劫幾經秋산하를 보기 싫어 누대에 오르지 않았네 厭見河山不上樓조부 자식 손자의 몸은 수치 씻기 어렵고 祖子孫身難洗恥신라 고려 대한 시대에는 뿌리 깊은 근심 있네 羅麗韓代有根愁삼천리 초토에는 백성들 남아 있지 않고 三千焦土無黎首재앙으로 인한 곤경에 백발이 되려 하네 百六難關欲白頭박상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회복이 있으랴290) 未到剝床焉有復우렛소리 나는 곳291)에서 훌륭한 공 거두리라 雷聲發處妙功收상장의 옥사292)는 옛날 어느 때이던가 上章屋社昔何時저들이 정한 처음 계획은 멸종시키는 것이었지 彼定初籌滅種期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오히려 명맥을 이어왔지만 三紀猶能寬命脈결국에는 양식과 숟가락 빼앗아도 괴이할 것 없네 畢場無怪奪粮匙동포가 어찌 차마 응견293)이 되었나 同胞胡忍爲鷹犬살점이 잘려 나가 상해를 입었으니 가련하구나 割肉堪憐作瘇痍하늘이 벌줄 날 만을 기다리노니 待到天公行罰日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음을 그들도 알리라 貫盈渠罪亦渠知 滄桑變劫幾經秋, 厭見河山不上樓.祖子孫身難洗恥, 羅麗韓代有根愁.三千焦土無黎首, 百六難關欲白頭.未到剝床焉有復? 雷聲發處妙功收.上章屋社昔何時? 彼定初籌滅種期.三紀猶能寬命脈, 畢場無怪奪粮匙.同胞胡忍爲鷹犬, 割肉堪憐作瘇痍.待到天公行罰日, 貫盈渠罪亦渠知. 박상(剝床)에……있으랴 재앙의 때가 왔으므로 순환의 원리에 따라 다시 회복되리라는 말이다. 박상은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름이니, 흉하다.[剝床以膚, 凶.]"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재앙이 아주 가까워짐을 말한 것이다. 박괘(剝卦)는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다하는 괘인데, 다시 복괘(復卦)로 순환된다. 우렛소리 나는 곳 복괘(復卦)를 말한다. 《주역》 〈복괘(復卦)〉상전(象傳)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지에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가 다니지 못하고, 임금은 사방을 살피지 않는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장(上章)의 옥사(屋社) 상장은 고대의 간지로 경(庚)이고, 옥사는 멸망한 나라의 사직을 뜻한다. 여기서는 경술년(1910) 일본에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긴 일을 가리킨다. 응견(鷹犬) 사냥하는 매와 개로, 남의 앞잡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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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실248)의 식물을 읊다. 10절 詠不忘室植物 十絶 뒤늦게 시드는 나무 없지 않지만 匪乏後凋樹너와 함께 이웃이 되었구나 與之接爲隣어찌 손때 묻은 것만 하겠는가마는 豈如經手澤심신을 하나로 합할 수 있어 좋구나 好作一心身-소나무[松]-이것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니249) 無此令人俗옛 현인은 이미 먼저 내 마음 알았네 古賢獲已先창 앞에서 날마다 마주하고 있으니 窓前日相對어찌 평안하다는 소식 기다릴 것 있으랴 何待平安傳-대나무[竹]-푸른 수염 늙은이250)와 백중간이니 伯仲蒼髥老깨끗한 향기가 엇비슷하도다 潔香反覆勝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251) 益三竹與幷벗의 덕이 크게 차이 나지 않네 友德不逕庭-삼나무[杉]-예로부터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니 從古爲人愛응당 칠절252)에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應緣擅七絶나는 하나도 능한 것 없으니 一能於我無이 나무만 못함이 부끄럽구나 堪愧不如物-감나무[柹]-마음속에 생각하는 이는 누구인가 所懷伊何人천추의 도이 늙은이253)라네 千秋陶李翁유허가 마을 골짝에 전해 오니 遺墟傳里谷억지로라도 누추한 거처에서 함께 하고 싶네 强欲陋居同-밤나무[栗]-과일이 떨어졌다 말하지 말라 莫說果爲下신선 세계가 일찍이 여기에 있었다오 仙源曾在斯어떻게 하면 땅에 가득 심어서 安能種滿地곧 무릉254)처럼 되길 기약할까 便與武陵期-복숭아[桃]-붉고 둥근 모습 사랑스러우니 紫圓形可愛달고 신 맛이 되려 신선하네 甛酢味還新오릉중자255)를 비웃지 말라 莫笑於陵子지금 시대에 또한 짝할 이 드무니 今時亦罕倫-오얏[李]-궐리에 있는 선니의 행단(杏壇)256)을 尼壇在闕里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는가마는 胡爾效嚬爲이 나무 진실로 싫지 않으니 此固未爲嫌성신을 오히려 기약할 수 있다네 聖神尙可期-살구나무[杏]-꽃이 화사하여 《시경》에 실렸으니 韡韡登周詩천륜으로 만세를 밝혔다네257) 天倫明萬世아 지금 형제들은 嗟哉今弟兄이 나무 대하매 어찌 부끄러움 없으랴 對此寧無愧-아가위나무[棣]-호상258)에는 사람 자취 멀고 湖上人蹤遠도산259)에는 시의 운치 끊겼네 陶山詩韻絶나는 황량하고 적막한 동산에서 而余荒寂園인물이 없음을 함께 탄식하네 俱歎病人物-매화[梅]- 匪乏後凋樹, 與之接爲隣.豈如經手澤? 好作一心身.【松】無此令人俗, 古賢獲已先.窓前日相對, 何待平安傳?【竹】伯仲蒼髥老, 潔香反覆勝.益三竹與幷, 友德不逕庭.【杉】從古爲人愛, 應緣擅七絶.一能於我無, 堪愧不如物.【柹】所懷伊何人? 千秋陶李翁.遺墟傳里谷, 强欲陋居同.【栗】莫說果爲下, 仙源曾在斯.安能種滿地, 便與武陵期?【桃】紫圓形可愛, 甛酢味還新.莫笑於陵子, 今時亦罕倫.【李】尼壇在闕里, 胡爾效嚬爲?此固未爲嫌, 聖神尙可期.【杏】韡韡登周詩, 天倫明萬世.嗟哉今弟兄, 對此寧無愧?【棣】湖上人蹤遠, 陶山詩韻絶.而余荒寂園, 俱歎病人物.【梅】 불망실(不忘室) 김택술이 1944년에 지은 토실(土室) 이름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지사는 자신의 시신이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아니하고,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구절을 차용하였는데, 난세(亂世)에 출처(出處)와 거취(去就)를 절도에 맞게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이것……하니 소식(蘇軾)의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에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수척하게 하지만,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9》 푸른 수염 늙은이 소나무의 별칭이다. 창염수(蒼髥叟)라고도 한다. 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 소식(蘇軾)의 〈유무창한계서산사(遊武昌寒溪西山寺)〉에 "풍천은 양부악이요, 송죽은 삼익우라네.[風泉兩部樂, 松竹三益友.]"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소나무와 삼나무를 동일시하여 말하였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부친의 이름인 '송(宋)'을 휘하여 '삼(杉)'으로 표기하였다. 삼익우는 세 가지 유익한 벗을 말한다. 칠절(七絶) 감의 일곱 가지 좋은 점으로, 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이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이다. 《本草 卷30 果部 柿》 도이(陶李) 늙은이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말하는 듯하다. 무릉(武陵)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 오릉중자(於陵仲子)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오릉에 살았던 진중자(陳仲子)로, 아주 청렴결백하였다. 형이 많은 녹봉을 받는 것을 의롭지 않다고 여겨, 초(楚) 나라의 오릉에 가서 은거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당시 그는 3일 동안이나 굶주려 우물가로 기어가서 굼벵이가 반 넘게 파먹은 오얏[李]을 삼키고 나서야 귀에 소리가 들리고 눈이 보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 맹자는 "나는 제나라 인물 중에서 중자(仲子)를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 할 수 있는가. 중자가 견지하는 지조를 유감없이 지키자면 물만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爲巨擘焉. 雖然, 仲子惡能廉? 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궐리(闕里)에……행단(杏壇) 궐리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선니(宣尼)는 공자를 말하고, 행단(杏壇)은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단을 쌓고 그 둘레에 살구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행단이라고 하였다. 꽃이……밝혔다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아가위의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는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느니라.[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하는 말이다. 호상(湖上)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살았던 안동(安東) 소호리(蘇湖里)를 가리키는 듯하다. 도산(陶山)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만년에 강학했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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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의 '탄식이 있어' 시에 차운하다 次尤菴有歎詩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한스러워할 필요 없지만 不須歲月恨如流봄과 가을 헛되이 보내 스스로 후회되네 自悔枉過春與秋앎은 진실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지혜를 얻겠는가 識未眞時焉得智행동은 실천하지 못했으니 문득 수심 생기누나 行違實處輒生愁삼강의 체용은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전수하였고282) 三綱體用曾傳孔일경의 시종은 부옹(涪翁)이 회암(晦庵)에게 열어주었네283) 一敬初終晦闡涪노년에 공을 이루는 것은 비록 늦었지만 楡暮收功雖晩矣부지런히 하면 일거284)의 무리는 면할 수 있으리 孜孜庶免逸居儔 不須歲月恨如流, 自悔枉過春與秋.識未眞時焉得智? 行違實處輒生愁.三綱體用曾傳孔, 一敬初終晦闡涪.楡暮收功雖晩矣, 孜孜庶免逸居儔. 삼강(三綱)의……전수하였고 삼강은 증자가 지은 《대학》의 세 가지 강령인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체(體)와 용(用)으로 구분하면 명명덕은 체이고 신민은 용이며 지어지선은 전체 대용(全體大用)이다. 증자는 공자의 도통(道統)을 전해 받았다. 일경(一敬)의……열어주었네 부옹(涪翁)은 부주(涪州)에 유배된 일이 있었던 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별칭이다. 이천이 부주로 귀양 가면서 강을 건너는데 풍랑이 심하여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하니,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부르짖으며 울었으나, 이천만은 유독 옷깃을 단정히 하고 편안히 앉아서 평상시와 같았다. 언덕에 정박하자 초부(樵夫)가 묻기를, "배가 위태로울 때에 그대만이 유독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사(舍)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달(達)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하였다. 이천이 대답하기를, "마음에 성경(誠敬)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자, 늙은이가 "마음에 성경을 지닌 것도 진실로 좋은 일이나 무심(無心)함만 못하다." 하였다. 《伊洛淵源錄 卷4》 이천의 사상을 이어 받은 회암(晦庵) 주희(朱熹)는 "경은 성학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다.[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者也.]"라고 하여 경의 일관성을 말하였다. 《朱子語類 卷12》 일거(逸居) 일거무교(逸居無敎)와 같은 말로,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이 편안히 지내기만 해서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고 금수(禽獸)와 가깝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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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옹전〉 뒤에 쓰다 書晩悔翁傳後 지난 계유년(1873, 고종10)에 호부 시랑(戶部侍郞) 면암 선생(勉庵先生) 최공(崔公)이 언사(言事)로 죄를 얻어 장차 제주도[耽羅]로 귀양 가게 되었다. 사림들은 길에 나와 전송하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은 거리에서 모여 구경하였으며 심지어 주막이나 시장 점포의 백정이나 술파는 아낙도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지 않음이 없어 노참(路站)은 시장처럼 북적였고 술상은 비가 내리는 듯 침울하여, 물리쳐도 떠나지 않고 금지해도 중지하지 않았으니, 지나가는 천리 길에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나루터에 도착하자 전송하는 사람들은 돌아가고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져 감히 함께 배를 타는 사람이 없었고,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 또 달려가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대개 제주도는 푸른 바다 만 리 가운데 있어 악어 같은 물결과 고래 같은 파도가 거세고 험하여 조금이라도 역풍이 불면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배를 저어 왕래한 것은 예로부터 매우 드물었다.오직 고 만회 처사(晩悔處士) 최승현(崔勝鉉) 공은 선생과 일면식의 친분도 없는데 힘을 팔아 양식을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선생이 제주도에서 풀려나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흑산도(黑山島)로 귀양 갔는데, 흑산도는 제주도에 비하여 더욱 험하고 멀었지만 공이 또 갔다. 옛날 채명원(蔡明遠)은 안 노공(顔魯公)이 조정에 있었던 날에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지만 강회(江淮)에서 굶주릴 때 쌀을 운반하여 대접하였고,45) 장의보(張毅甫)는 문문산(文文山)이 재상이 되었을 때 나아가지 않았으나 연옥(燕獄)에 구금되었을 때 몸을 맡겨 따랐으니,46) 지금 공의 일은 이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것은 모두 고금의 영렬한 대장부이니, 풍치를 상상함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일어난다. 탁계순(卓契順)이 해남(海南)으로 한 번의 행차를 한 것47)도 오히려 족히 백세토록 불후하였으니, 더구나 공이 힘썼던 것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고 그 마음을 먹고 의에 나아간 것은 또 탁계순이 견줄 것이 아닐 것이다.공은 우리 고을 사람이다. 이 때 나는 묵계(墨溪)의 집에서 어버이 병을 시중들고 있어 선생이 도내를 지난다고 들었으나 문을 나가 전송하지 못하였고, 같은 고을에 있으면서 또 선생을 본 사람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능히 보지 못하였으니, 푸른 바다를 건넜던 사람과 비교하면 어찌 다만 황곡(黃鵠)과 양충(壤虫)48)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그 뒤에 공이 나를 한 번 방문하였고 내가 공을 한 번 방문하였지만 모두 만나지 못하였는데 공은 이미 돌아가셨다. 풍의(風義)를 뒤미처 생각하니 단지 슬픔과 후회만 간절하네.신묘년(1891, 고종28) 봄에 공의 아들 영호(永皓) 씨가 천태 우사(天台寓舍)로 나를 방문하여 집안에 보관하던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여주고 인하여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매몰된 천한 자취로 실로 감히 받들어 응할 수 없지만 다만 평소 향하여 우러르던 처지에 이미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유향(遺響)을 의탁할 수 있을 것인가.아! 인간에게 도리가 있는데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그 본령이 되니, 진실로 이 마음이 없다면 백 가지 행실 만 가지 선을 어디에 붙이겠는가. 공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단지 바다를 건넜던 한 가지 절개에서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 의를 행하였던 상세함 같은 것은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49) 족히 천고에 불후할 공안(公案)이 될 것이다. 往在癸酉。戶部侍郞勉庵先生崔公。言事得罪。將貶謫于耽羅也。士林出送於道。婦孺聚觀於巷。以至店幕市肆屠夫沽媼。無不加額瞻望。路站如市。酒盤如雨。揮之而不去。禁之而不止。所經千里。接屬無間。及到津頭。送者返。聚者散。無敢與之同舟者。在棘中。又寂然奔訊之人。蓋耽羅在滄溟萬里之中。鰐浪鯨波。瀰漫洶涌。少有逆風。性命難保。是以舟楫往來。自古絶罕。惟故晩悔處士崔公勝鉉。與先生無一面之分。而賣力聚粮。冒危凌險而赴之。先生自耽羅解歸。未幾。又謫于黑山。黑山視耽羅。尤爲險遠。而公又往焉。昔蔡明遠無問於顔魯公立朝之日。而在淮飢餓。運米而餉之。張毅甫不就於文文山作相之時。而被燕獄拘幽。委身而隨之。今公之事。不其類此乎。此皆古今烈烈大丈夫。想像風致。不覺興歎。卓契順辦海南一番之行。而猶足不朽於百世。況公之所辦。非止一番。而其設心就義。又非契順比耶。公吾鄕人也。是時余侍親疾于墨溪村舍。聞先生過省內。而未得出門相送。在同鄕。又欲見見先生之人而不能得。視諸越涉滄溟者。奚但黃鵠壤虫之分耶。其後公一過余。余一過公。皆未遇而公已千古矣。追念風義。只切悲悔。歲辛卯春。公胤子永皓甫。訪余於天台寓舍。袖示家藏文字。因請一言。余以埋沒賤迹。固不敢承膺。但平日向仰之地。旣違顔範。則或可因此而托遺響於冥冥耶。噫。人之有道。好賢爲其本領。苟無此心。百行萬善。何所附着也。欲知公者。只於涉海一節。可以槪矣。若其平生行義之詳。勉庵先生已記之。足可爲千古不朽之公案。 채명원(蔡明遠)은……대접하였고 채명원은 파양(鄱陽)의 교위(校尉)고, 안 노공(顔魯公)은 노군공(魯郡公)에 봉(封)해진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 709~784)을 말한다. 이 사실은 안진경이 51세 때에 채명원에게 보답의 의미로 써 준 글씨 〈채명원파양첩(蔡明遠鄱陽帖)〉에 보인다. 《顔魯公集 年譜》 장의보(張毅甫)는……따랐으니 문문산(文文山)은 남송(南宋)의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장의보가 문천상의 해골을 업고 길주(吉州)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렀던 것을 말한다. 탁계순(卓契順)이……것 소식(蘇軾)이 유배를 당했을 때 찾아 주었던 일을 말한다. 《동파전집(東坡全集)》 권23 〈차운정혜흠장로견기(次韻定慧欽長老見寄)〉의 서(序)에 "소주(蘇州) 정혜사 장로 수흠이 그 문도 탁계순을 혜주(惠州)로 보내 나의 안부를 물었다."라고 하였다. 황곡(黃鵠)과 양충(壤蟲) 남만 못한 데 대한 탄식을 말한다. 전국(戰國) 시대의 연(燕)나라 사람 노오(魯敖)가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천하에 자기보다 많은 곳을 유람한 자가 없다고 자부하였는데, 북쪽의 몽궐산(蒙闕山)에 올라 한 도사(道士)를 만나서 천상천하(天上天下)를 다 돌아다녔다는 말을 듣고는 "이 도사는 한 번의 날갯짓에 천 리를 나는 황곡(黃鵠)과 같고, 나는 땅을 기어가는 작은 벌레[壤蟲]와 같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淮南子 道應訓》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 《면암집(勉菴集)》권40〈최만회옹전(崔晩悔翁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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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53)의 《암간우록》 뒤에 쓰다 題黃景涵巖間偶錄後 하나의 태극인데 나누어 말하면 건순(健順)이고, 또 나누어 말하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단지 이 네 가지는 또 무한한 조리를 함축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기(氣)나 물(物)을 말하지 않아도 이(理)의 체단(體段)은 본래 이와 같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이(理)는 같고 기(氣)는 다른 곳을 말함에 한결같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무릇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은 구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곳이 곧 원형이정이고 이곳이 곧 원형이정이니, 성색 모상(聲色貌象)과 운운 직직(云云職職)54)이 하나라도 이 네 가지의 밖을 벗어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이다. 물에 비유하자면, 씻고 빨며, 삶고 마심에 그 용도는 같지 않지만 그것이 물이라는 것은 동일한 것과 같다. 물은 실로 동일한데 씻고 빨고 삶고 마실 수 있는 구분은 이미 물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른바 일(一)이라는 것은 어찌 일찍이 구분이 없는 일(一)이겠는가.그대의 의론은 대체로 모두 좋으나 다만 다섯 째 단락에서 소는 밭 갈고[耕] 말은 달리며[馳] 솔개는 날고[飛]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는[躍] 다름을 말하면서 "이미 형기(形氣)가 같지 않음이 있으면 갖춘 바의 이(理) 또한 다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어찌 형기(形氣)에 떨어진 뒤에서 분수(分殊)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견해가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억양의 사이에 말투가 그러했기 때문일 뿐이네.여덟째 단락에 또 '기질성지기(氣質性之氣)'의 기(氣)를 '기질(氣質)'이라고만 말할 때의 기(氣) 자와 같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의아스럽네. 기질은 단지 기질이니, 어찌 일찍이 두 단계의 기질이 있었던가. 이 말은 선사(先師)55)께서 발명하신 것이 상세하니, 바라건대 취하여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또 입론(立論)은 이치를 발명하는 것일 뿐이니, 세상을 나무라는 불평한 뜻을 그 사이에 두어서는 불가하니, 바라건대 헤아려 주시겠는가? 一太極矣。而分以言之。則健順。又分以言之。則元亨利貞。只此四者。又且涵蓄無限條理在。不須說氣說物。而理之體段。本自如此。然而先覺說理同氣異處不一。其故何耶。夫所謂理同者。非無分之謂也。那底便是箇元亨利貞。這底便是箇元亨利貞。聲色貌象。云云職職。無一出乎此四者之外。此所謂理同也。比如水。漑之濯之。烹之飮之。其用不同。而其爲水則一也。水固一也。而可漑可濯可烹可飮之分。已悉具於水。則所謂一者。何嘗是無分之一耶。賢論大槪皆好。但於五段。言耕馳飛躍之異。而曰旣有形氣之不同。則所具之理亦異。此語豈不是求分殊於隨形氣之後者耶。然非是見不到。只爲抑揚之間。語勢然耳。八段又以氣質性之氣氣。與單言氣質字不同。此言亦可訝。氣質只是氣質。何嘗有兩段氣質耶。此言先師發明詳悉。幸取看之如何。且立論貴乎發明理致而已。不可有譏世不平之意於其間。惟諒之否。 황경함(黃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을 말한다. 자는 경함, 호는 은구재(隱求齋)·중헌(重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기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헌집》이 있다. 운운직직(云云職職) 운운과 직직은 모두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노자》에 "무릇 만물은 무성하다가도 각각 그 뿌리에 복귀한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고 하였고, 《장자》 〈지락(至樂)〉에 "만물이 번성하나, 모두 무위로부터 자라는 것이다.[萬物職職, 皆從無爲殖.]"라고 하였다. 저본의 '운운(云云)'은 '운운(芸芸)'의 오류로 보인다. 선사(先師)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서경덕ㆍ이황ㆍ이이ㆍ임성주ㆍ이진상과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꼽힌다. 저서로는 《노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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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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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당명 養性堂銘 하늘이 주고 사람이 받았으니이루어진 본성을 잘 보존해야 하네56)태극은 전체이고만물은 한 근원이네천연적으로 절로 있어순함이 있고 억지로함이 없네닦음을 기다리지 않으니어찌 기르기를 일삼으랴그러나 기질은그 부곽57)이네마음을 놓아버리면 없어지고정이 성하면 뚫리게 되네가까운 곳으로부터 들으면어느 곳인들 이르지 못하랴까닭에 성인께서기르는 도를 두었네그 도는 무엇인가경이 진전이네장중 정숙하여상제를 대하는 듯하네사서와 오경이그물이 벼릿줄에 걸려 있는 것 같네58)백 가지 행실 만 가지 선이마치 집에 들보가 있는 것 같네여기에 종사하여혹시라도 폐하거나 옮기지 말아야 하네탕임금은 날로 오른다 하였고59)문왕은 계속하여 밝힌다 하였네60)덕산의 기슭에집이 날개를 펼친 듯하네편액을 양성이라 하니그 뜻이 깊고도 깊네내 명을 지어그저 소식 전하네인하여 절차탁마하여날로달로 매진하세 天與人受。成性存存。大極全體。萬物一源。天然自有。有順無强。無待於修。何事於養。然而氣質。是其郛郭。心放則亡。情熾則鑿。聽其自爾。何所不到。所以聖人。有養之道。其道維何。敬爲眞詮。齊莊整肅。對越在天。四書五經。若網在綱。百行萬善。如屋有樑。從事於斯。毋或廢移。湯云日躋。文曰緝熙。德山之趾。有室翼然。顔揭養性。其義淵淵。我作銘詩。聊以寄聲。因仍切磋。日邁月往。 이루어진……하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나오는 말이다. 부곽(郛郭) 외성을 말하는데, 울타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자서(自序)〉에 "심은 성의 부곽이니, 심이 상하면 성도 따라서 상한다.[心者性之郛郭也, 心傷則性亦從之矣.]"라고 하였다. 그물이……같네 옛날 성현의 말씀이 하나하나 가닥이 잡히며 마음속으로 명료하게 이해된다는 말이다. 《서경》 〈반경 상(盤庚上)〉에 "그물은 벼릿줄이 걸려 있어야 가닥이 잡혀 헝클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若網在綱, 有條而不紊.]"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탕(湯)임금은……하였고 《시경》 〈상송(商頌) 장발(長發)〉에 "탕왕의 탄생이 늦지 않으시며 성경의 덕이 날로 오르시네.[湯降不遲, 聖敬日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문왕(文王)은……하였네 《시경》 〈대아(大雅) 문왕지십(文王之什)〉에 "거룩하신 문왕이여, 아, 경을 계속하여 밝히셨도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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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순61) 자명 吳景純字銘 천지의 덕은지극히 정성스러워 쉼이 없네사람이 그 마음을 얻어이 사는 이치 바르네기품에 구속되고 외물에 가려사욕이 만 가지로 생기네왕도와 패도 한 길이고사람과 귀신 서로 관련 있네슬퍼하고 두려워하여몸을 돌이켜 반성하길 생각하네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동정에 경으로 해야 하네안팎의 빈주가 되어한 치를 얻고 한 자를 얻네여유롭게 쌓고 쌓아차례로 깎아내네털끝만큼이라도 남기지 않아야심덕이 이에 순수하네순수하여 또한 그치지 않은 것이문왕이 문왕 된 까닭이네62)오씨의 아들관례를 함에 특출나네순으로 자를 삼고덕으로 의를 제어하네오직 덕과 순은그 뜻이 매우 드러나네부지런히 힘쓰고 따라우리 문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네 天地之德。至誠無息。人得其心。之生也直。氣拘物蔽。私欲萬端。王覇一途。人鬼交關。惻硏瞿然。反身思省。懲忿窒慾。動靜以敬。賓主內外。得寸得尺。優遊積累。次第刊落。毫芒不留。心德乃純。純亦不已。文王爲文。吳氏之子。冠而騰異。純以表德。德以制義。維德維純。其意孔彰。勉勉循循。師我文王。 오경순(吳景純) 오재덕(吳在德, 1874~?)을 말한다. 자는 경순, 호는 제월(齊月),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순수하여……까닭이네 《중용장구》 제26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아, 깊고도 멀어 잠깐의 그침도 없다네.'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을 말한 것이며, '아, 어찌 밝게 드러나지 않으랴. 문왕의 덕, 그 순수함이여.' 하였으니, 이는 문왕이 '문'이란 시호를 받은 이유가 순수하면서 잠시도 그치지 않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詩云維天之命, 於穆不已, 蓋曰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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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에서 비에 길이 막혀 배율 한 편을 짓다 箕山阻雨 賦排律一篇 기산의 관사에 빗소리 오래도록 들리는데 箕山舘裏雨聲長5일 동안 못 돌아가 공연히 애간장 끊어지네 五日未歸空斷腸바람은 동남쪽에서 살랑살랑 불어오고 風自東南來習習구름은 서북쪽에서 아득하게 흩어지네 雲從西北?茫茫행색은 흡사 외딴 섬에 갇힌 듯하고 行裝恰似囚孤島고을은 되려 큰 바다 너머에 있는 듯하네 鄕邑還如隔大洋음식 먹음은 계옥처럼 곤란하여343) 안타까운데 憫爾供飧艱桂玉누가 적료함 깨뜨릴 거문고와 술을 보내 줄까 有誰破寂送琴觴한밤중에는 모기 굴에 있어 몹시 두렵고 中宵絶怕棲蚊窟긴 낮에는 무료하여 좀 먹은 책상을 쓰네 永晝無聊掃蠹床형악에서 하늘 감동시킨 이부344)를 생각하고 衡岳感天思吏部예천에서 날이 개길 빈 구양수345)를 생각하네 醴泉祈霽憶歐陽가고 멈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님을 비로소 알겠으니 始知行止非吾致모든 근심과 기쁨을 둘 다 잊으리라 都把憂欣付兩忘담헌이 있어 이 괴로움 함께 하기에 爲有澹軒同此苦시 지어 서로 위로하며 높은 당에서 읊노라 題詩相慰詠高堂 箕山舘裏雨聲長, 五日未歸空斷腸.風自東南來習習, 雲從西北?茫茫.行裝恰似囚孤島, 鄕邑還如隔大洋.憫爾供飧艱桂玉, 有誰破寂送琴觴?中宵絶怕棲蚊窟, 永晝無聊掃蠹床.衡岳感天思吏部, 醴泉析霽憶歐陽.始知行止非吾致, 都把憂欣付兩忘.爲有澹軒同此苦, 題詩相慰詠高堂. 음식……곤란하여 계옥(桂玉)은 계수나무 땔나무와 옥으로 지은 밥이라는 말로, 물자가 부족하여 생활하기 곤란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초(楚)나라 왕에게 "초나라의 밥은 옥보다도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보다도 비싸다. 지금 내가 옥으로 지은 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 今臣食玉炊桂, 不亦難乎?]"라고 불만을 토로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戰國策 楚策3》 형악(衡岳)에서……이부(吏部)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가 형산(衡山)을 지나갈 적에 형악묘(衡岳廟)를 배알하면서 시를 지어 기원하자 날이 청명해졌다는 고사가 있다. 《韓昌黎集 卷3 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 예천(醴泉)에서……구양수(歐陽脩) 1056년 여름에 큰비가 내리자, 구양수가 송 인종(宋仁宗)의 명을 받고 예천궁(醴泉宮)에서 기청제(祈晴祭)를 지낸 고사가 있다. 《古文眞寶後集 卷6 鳴蟬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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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가운데 '만육의 유허297)를 지나다' 시를 보고 화운하여 그 뜻을 뒤집다 3수 見梅泉集中過晩六遺墟詩 步韻而反之【三首】 행영에서 개가 마치자 일곡이 꺾이니298) 凱罷行營日轂摧소매의 도서를 정신 차리고 정리하였네 袖中圖畵倩神裁노년에 풍월 읊는 중대산의 밤에 暮年風月中坮夜우산을 매입하기를 청한 일299) 후회하리라 應悔牛山乞得來-매천의 시-만육옹의 높은 절의 누가 꺾을 수 있으랴 六翁高節孰能摧응당 근거 없는 말은 이치로 분별해야하네 合把齊東以理裁만약 우산을 매입하기를 청했다고 한다면 若謂牛山曾乞得선생이 어떻게 천년토록 법이 될 수 있겠는가 先生何足範千來근거 없는 말은 바로 한 마디로 꺾을 수 있으니 齊東卽可一言摧정밀하게 가려 분별하기를 귀하게 여길 필요 없네 不待精詳貴擇裁오히려 행영에서 신하가 되었다면 尙作行營臣子日어찌 국토를 남에게 팔 수 있었으랴 豈將國土賣人來매천 시의 예봉은 꺾기 어렵다 말하니 梅詩鋒鏑道難摧아주 정밀한 문장은 귀신이 재단한 듯 精切措辭神鬼裁나는 신중히 생각하는 학문 없이 我惜其無愼思學어느덧 옛 현인을 저버려 애석하네 居然枉了昔賢來 凱罷行營日轂摧, 袖中圖畵倩神裁.暮年風月中坮夜, 應悔牛山乞得來.【梅詩】六翁高節孰能摧? 合把齊東以理裁.若謂牛山曾乞得, 先生何足範千來?齊東卽可一言摧, 不待精詳貴擇裁.尙作行營臣子日, 豈將國土賣人來?梅詩鋒鏑道難摧, 精切措辭神鬼裁.我惜其無愼思學, 居然枉了昔賢來. 만육(晩六)의 유허(遺墟) 만육은 최양(崔瀁, 1351~1424)의 호로,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이다. 외삼촌인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보문각 대제학을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진안의 중대산(中坮山, 현 팔공산)에 들어가 3년을 은거하였으며,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그를 친구로 대우하여 재상 자리에 불렀으나 거절하였다. 행영(行營)에서……꺾이니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됨을 말한다. 일곡(日轂)은 해 바퀴로, 흔히 임금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우산(牛山)을……일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할 마음이 있음을 알고 최양(崔瀁)이 우산을 매입하도록 청하여 그에게 절개를 굽힌 일을 가리킨다. 《後滄集 卷13 買牛山論》 우산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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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본 것을 기록하다 9수 道中記見【九首】 세 봉우리 마치 하늘의 삼태319)와 같으니 三峰有若天三台천고의 좋은 이름 조금도 어긋나지 않네 千古嘉名不少差별의 형상과 산악의 신령이 함께 모인 곳 星象嶽靈同溱處어떤 사람이 이곳에 상공을 모았나 何人鍾得相公來-천태산(天台山)-삼신산을 여섯 마리 자리가 이고 있다 들었는데320) 聞道三山戴六鼇어찌 고개 이름을 다시 오현이라 하였나 那能有峴更名鼇자라의 골각이 높은 언덕 이뤄 가련하니 可憐骨殼成高阜무겁게 눌러 죽게 된 자라 결국 보노라 壓重終看致死鼇-오현(鼇峴)-이름만 들어도 하늘과 나란함을 알 수 있으니 聞名可識與天齊오마321) 타고 오는 새 수령은 무척이나 걱정하였네 愁煞新官五馬蹄-새로 제수된 고부 군수(古阜郡守)가 어떻게 천치(天峙)를 넘을까 한탄하였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직접 보고서야 작은 언덕임을 알았으니 親見方知爲小阜사람의 헛된 명예와 같아 부끄럽구나 如人虛譽可羞兮-천치(天峙)-영주산 위에 신선이 있으니 瀛洲山上有仙靈명실상부하여 사람들 다른 말 않네 人不異辭符實名한 말 한 되와 바꾼 이 누구 집 자식이던가 換却斗升誰氏子부질없이 세속에다 마음만 길이 두게 하였네 空令長帶俗塵情-두승산(斗升山)-우뚝하도다 기암절벽의 선인봉 卓哉奇絶仙人峰옥부용322)을 깎아 푸른 하늘 지탱하였네 玉削芙蓉拄碧穹선인이 없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若道仙人無則已그렇지 않다면 정히 이곳에 자취 숨겼으리 不然定在此藏蹤-선인봉(仙人峰)-휴암의 손자가 들어가 숨은 해에323) 休菴肖抱入藏年옛날 전해지던 이름이 백갑산으로 바뀌었네 白甲山名變舊傳땅은 사람으로 인해 중해짐이 원래 이러하니 地因人重元如此매몰되어 어질다고 일컬어지지 않을까 두렵다오 沒不稱賢可瞿然-백갑산(白甲山)-흉년만 지속되면 풍년이 오는 법 無年偏得有年來흥덕이라는 방죽 이름 좋도다 興德堤名可矣哉수리 시설은 본래 위정의 방법인데 水利本爲爲政術우리들 일찍이 신경 쓰지 않았구나 我人曾不用心來-흥덕제(興德堤)-우뚝한 소요봉이 진세를 벗어났으니 逍遙峰屹脫塵區나 또한 소요하며 물외에서 노닌다오 我亦逍遙物外遊상칠 -흥덕현(興德縣)의 고호(古號)가 상칠이다.- 이라는 고을 이름 응당 까닭 있을 터 尙漆縣名應有以이곳에 이르니 장주를 생각나게 하누나324) 令人到此憶莊周-소요봉(逍遙峰)-화봉이 화살 모양 이루어 문명을 상징하니 火峰成矢像文明남쪽 고을 비춰 땅의 영험함을 길렀네 照得南州毓地靈다정하게 석묘를 조회하는 이 산을 늘 사랑하였는데 常愛多情朝席墓-석동산(席洞山)의 선묘(先墓)는 이 봉우리가 정면의 안산(案山)이다.-오늘 아침 이곳 지나매 두 눈이 청안이 되었네 今朝過此眼雙靑-화시산(火矢山)- 三峰有若天三台, 千古嘉名不少差.星象嶽靈同溱處, 何人鍾得相公來?【天台山】聞道三山戴六鼇, 那能有峴更名鼇?可憐骨殼成高阜, 壓重終看致死鼇.【鼇峴】聞名可識與天齊, 愁煞新官五馬蹄.【新除古阜郡守者, 歎何以踰天峙云.】親見方知爲小阜, 如人虛譽可羞兮.【天峙】瀛洲山上有仙靈, 人不異辭符實名.換却斗升誰氏子, 空令長帶俗塵情?【斗升山】卓哉奇絶仙人峰, 玉削芙蓉拄碧穹.若道仙人無則已, 不然定在此藏蹤.【仙人峰】休菴肖抱入藏年, 白甲山名變舊傳.地因人重元如此, 沒不稱賢可瞿然.【白甲山】無年偏得有年來, 興德堤名可矣哉.水利本爲爲政術, 我人曾不用心來.【興德堤】逍遙峰屹脫塵區, 我亦逍遙物外遊,尙漆【興德縣古號尙漆】縣名應有以, 令人到此憶莊周.【逍遙峰】火峰成矢像文明, 照得南州毓地靈.常愛多情朝席墓,【席洞山先墓, 此峰爲正案.】今朝過此眼雙靑.【火矢山】 삼태(三台) 삼태성(三台星)으로, 삼정승을 상징하는 별자리이다. 삼신산(三神山)을……들었는데 동해 바다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이 물에 떠 있는데, 여섯 마리의 자라가 산을 머리로 떠받들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列子 湯問》 오마(五馬) 한(漢)나라 때 태수(太守)가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부임하였던 데에서 유래하여 지방 수령을 뜻한다. 옥부용(玉芙蓉) 깨끗한 산봉우리를 형용하는 말이다. 휴암(休菴)의……해에 휴암은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이고, 그의 손자는 갑산공(甲山公) 백현민(白賢民, 1583~1654)이다. 백현민의 부친 백유함(白惟咸)이 정쟁(政爭)으로 부안(扶安)에 유배되자 함께 따라왔다가 덕흥(德興) 향반인 문경(聞慶) 송씨(宋氏)와 결혼하였는데, 처가에서 성내면(星內面) 당덕리(棠德里) 엄동(奄洞)에 있는 땅을 마련해주어, 정계 은퇴 후에 엄동에 정착하였고 훗날 엄골 백씨 문중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하누나 장주(莊周)가 〈소요유(逍遙遊)〉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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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고을 고부의 향교를 지나다 느낌이 일어 過古阜廢邑鄕校有感 우리 대한제국이 나라를 잃기 7년 전 我韓無國前七年이때 문화가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지 于時文化未全滅거듭 이 고을의 어진 태수 만나니 重逢玆邑賢太守문옹325)의 정치가 온 경내에 넘쳐났다오 文翁政治闔境溢향교 관원이 향약례를 크게 설치하니 校官大設鄕約禮좋은 때인 천중절을 마침 만났다오 嘉辰適値天中節많고 많은 선비들 수천 명이 오니 濟濟多士來千數박대아관326)이 어찌 그리 정결한가 博帶峨冠何鮮潔노소 구분하여 질서정연하게 절하고 읍하니 拜揖秩秩分老少위의가 의젓하여 흐트러짐이 없었네 威儀蹌蹌無闕失정히 구경하는 자가 교문 에워싼 것327)과 비견되니 定擬觀聽圜橋門위차 정해 예의 익히는 것328)을 어찌 논할 것 있으랴 何論肄習爲綿蕝이때 참석한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어려 時余參會年最少몸소 예식 행하는 홀기(笏記)가 되었네 能以身作行禮笏구경하는 사람들 입이 닳도록 크게 칭찬하니 見者嘖嘖頗賞歎선친은 자리에 계시면서 내심 기뻐하셨네 先君在座內喜悅못난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참석하였겠는가 不才何曾與有力다행히 올바른 방법으로 끊임없이 교육 받은 덕분이지 幸蒙義方敎不輟예의를 다 마치고 연례를 파한 뒤 禮儀告成樽俎罷선친 모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초승달 따라왔지 陪親歸家趁初月아아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嗚呼日月曾幾何사십일 년이 그야말로 빨리도 지나갔구나 四十一年正忽忽옛날 예식을 행하며 모인 뜰을 차마 보겠는가 忍見昔時禮會庭한 길 높이의 무성한 풀을 베는 사람 없네 草深一丈無人掇산하의 모습이 변해 속이 타들어가고 山河異觀心已腐관과 신의 위치 뒤바뀌어329) 이가 더욱 갈리네 冠屨到置齒更切이날 이곳을 지나며 비로소 시 지으니 此日過此始有詩나이 먹고 난리 극에 달해 더욱 수심겹노라 年衰亂極益惙惙 我韓無國前七年, 于時文化未全滅.重逢玆邑賢太守, 文翁政治闔境溢.校官大設鄕約禮, 嘉辰適値天中節.濟濟多士來千數, 博帶峨冠何鮮潔?拜揖秩秩分老少, 威儀蹌蹌無闕失.定擬觀聽圜橋門, 何論肄習爲綿蕝?時余參會年最少, 能以身作行禮笏.見者嘖嘖頗賞歎, 先君在座內喜悅.不才何曾與有力? 幸蒙義方敎不輟.禮儀告成樽俎罷, 陪親歸家趁初月.嗚呼日月曾幾何? 四十一年正忽忽.忍見昔時禮會庭, 草深一丈無人掇.山河異觀心已腐, 冠屨到置齒更切.此日過此始有詩, 年衰亂極益惙惙. 문옹(文翁) 한 경제(漢景帝) 때 촉군 태수(蜀郡太守)가 되어 교화를 펼치고 학교를 일으켜 문풍(文風)을 크게 떨친 사람이다. 《漢書 循吏傳 文翁》 박대아관(博帶峨冠) 헐렁한 띠와 높은 관을 뜻하는 말로, 고대 유생이나 사대부의 복장을 가리킨다. 구경하는……것 교문(橋門)은 주위에 물이 흐르고 다리를 통해 네 개의 문으로 들어가는 태학(太學)을 가리킨다. "향사례가 끝나고 천자가 정좌하여 직접 강을 하면 제유가 경서를 지니고 그 앞에서 토론을 벌이는데, 관대를 한 진신들로 교문을 에워싸고 구경하는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饗射禮畢, 帝正坐自講, 諸儒執經問難於前, 冠帶搢紳之人, 圜橋門而觀聽者, 蓋億萬計.]"라고 한 말이 《후한서(後漢書)》 〈유림열전(儒林列傳)〉 서문에 보인다. 위차(位次)……것 한(漢)나라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조정의 의례(儀禮)를 제정하기 위해 노(魯)나라의 유생(儒生) 30여 인을 불러들여서 그들과 함께 야외(野外)에서 띠풀을 묶어 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해 놓고 예(禮)를 강론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叔孫通列傳》 관과……뒤바뀌어 머리에 쓰는 갓이 아래에 있고 발에 신어야 할 신이 위에 있다는 말로, 상하(上下)와 존비(尊卑)의 위차가 뒤바뀐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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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신천 민군 유사 新川閔君遺事 종족(宗族)들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향당(鄕黨)에서 공손하다고 칭찬한다는 그 말을33) 나는 들었고 나는 그러한 사람을 보았다. 유유자적함을 법도로 삼으며 어진 이를 사모하면서도 여러 사람을 포용한다는 그 말을34) 나는 들었고 나는 그러한 사람을 보았다. 고(故) 신천(新川) 민군(閔君) 우식(祐植) 세중(世仲)이 그 사람이다. 군은 가학과 법도가 있는 집안35)에서 태어나 간난신고를 겪으며 자랐고, 몸소 밭 갈고 손수 호미질하며 어버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올렸다. 한가한 날에는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섭렵하고 옛사람의 위기지업(爲己之業)36)에 종사하였다. 그 후 최면암(崔勉庵)37)ㆍ 정애산(鄭艾山)38)ㆍ정월파(鄭月波)39)ㆍ기송사(奇松沙)40)를 종유하며 왕복강마(往復講磨)하면서 그 의리의 지취를 넓혔다. 아름다운 천부의 자질로 가정에서 전한 것을 이어받고 사우(師友)의 도움에 젖어서 그 마음을 세우고 처신하며, 사람을 응대하고 사물에 대처하는 데에 찬연(粲然)히 조리가 있고 의연(毅然)히 절도가 있었다. 평소에 조용하고 묵묵하여 함부로 말하거나 웃지 않고 함부로 출입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고는 먹지 않았고, 의리가 아니면 취하지 않았다. 세속을 따라 영합하지 않았고 시류를 좇아 아첨하지 않았다. 오직 한 표주박의 마실 것41)과 한 책상의 서책이 그 필생(畢生)의 살림살이였다. 몸을 숨기고 자취를 거두어 암연(闇然)히 스스로 닦으면서, 안으로는 그 환심(歡心)을 잃지 않았고 밖으로는 그 훌륭한 명성을 잃지 않았으니, 군을 알건 모르건 이구동성으로 추켜세우지 않음이 없었다. 임인년(1902, 고종39) 3월 28일에 생을 마쳤으니 태어난 계해년(철종14, 1863)과 거리를 따져보면, 향년 겨우 40세였다. 국수봉(菊秀峯) 자좌(子坐)의 언덕에 안장하였다. 민씨(閔氏)의 선계는 여흥(驪興)에서 나왔다. 신라에서 고려까지 저명한 석학이 이어져서 동방(東方)의 거족이 되었다. 휘 회삼(懷參)은 호가 의암(義庵)이니, 이분이 남쪽으로 낙향한 조상으로 군에게는 15세가 된다. 증조의 휘는 치록(致祿), 조부의 휘는 사호(士鎬)이다. 부친의 휘는 영곤(泳坤)이요, 모친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모(某)의 따님이다. 생부(生父)의 휘는 영석(泳碩)이요, 생모(生母)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종수(棕秀)의 따님이다. 군은 의령 남씨(宜寧南氏) 모(某)의 따님에게 장가들었고, 계취(繼娶)는 제주 양씨(濟州梁氏) 모(某)의 따님인데 2남 병하(丙夏)와 병엽(丙燁)을 두었다. 나는 군과 나이를 잊은 막역한 교분을 맺었었는데 유명(幽明)을 달리한 지 8, 9년 되었을 때 병하(丙夏)가 벌써 관례(冠禮)를 하고 찾아와서 그 가장(家狀)을 가지고 나에게 글 한 편을 써줄 것을 청하였다. 오호라! 군을 못 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이제 그 외롭게 남았던 아이가 부쩍 자라서 관례(冠禮)42)까지 한 것을 보게 되니, 서글픈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또 어린 나이에 선친의 미덕을 천술(闡述)할 줄 알고 게다가 선친의 벗을 방문하였으니 기특하고 기특한 일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뜻은 장차 끝을 성대히 할 날이 있으리라. 宗族稱孝焉。鄕黨稱悌焉。吾聞其語矣。吾見其人矣。優遊以法。慕賢而容衆。吾聞其語矣。吾見其人矣。故新川閔君祐植世仲。其人也。君生於詩禮法拂之家。長於艱難辛苦之中。躬耕手鋤。以供親旨。餘日涉獵經史。從事於古人爲己之業。旣而從崔勉庵鄭艾山鄭月波奇松沙往復講磨。以博其義理之趣。以天資之美。承襲乎家庭之傳。擩染乎師友之助。其立心行已。酬人處物。粲然有條。毅然有節。平居恬靜簡黙。不妄言笑。不妄出入。非其力不食。非其義不取。不俯仰於世。不趨附於時。惟一瓢之飮。一床之書。其畢生家計也。潛身斂迹。闇然自修。內而不失其歡心。外而不失其令聞。知不知無不一口推詡。壬寅三月二十八日考終。距癸亥寅降。得年纔四十。葬菊秀峯子坐原。閔氏系出驪興。自羅至麗。名碩相望。爲東方鉅族。至諱懷參。號義庵。是爲落南之祖。於君爲十五世。曾祖諱致祿。祖諱士鎬。考諱泳坤。妣南平文氏某女。生考諱泳碩。妣全州李氏棕秀女。吾娶宜寧南氏其女。繼娶濟州梁氏某女。二男丙夏丙燁。余與君爲忘年莫逆之契。而幽明一別爲八九年。丙夏旣冠而來。以其家狀。請爲一言之役。嗚呼。不見君久矣。今見其孤孩漸長。至於突弁。悲愴之感。不覺潛涕。且以稚妙之年。能知闡述先徽。又能訪問先友。奇事奇事。未就之志。其將有大終之日也歟。 종족(宗族)들이……말을 선비다운 인물이라는 뜻이다. 《논어》 〈자로(子路)〉에 선비의 자격을 묻는 자공(子貢)의 질문에 공자가 "일가친척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마을 사람들이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유유자적함을……말을 여유 있고 관대한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예기》 〈유행(儒行)〉에 "(유자는) 유유자적함 법도로 삼으며, 어진 사람을 사모하면서도 여러 사람을 포용하고 모난 점을 버리고 원만하게 지내니 그 관대함이 이와 같다.〔優游之法, 慕賢而容衆, 毁方而瓦合. 其寛裕有如此者.〕"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가학과……집안 원문의 '시례법필(詩禮法拂)'로, 유교 경전에 대한 지식과 예의범절을 이어오는 가문을 '시례지가(詩禮之家)'라 한다. 《논어》 〈계씨(季氏)〉에, 공자가 아들인 이(鯉)에게 "시(詩)를 배웠느냐?〔學詩乎?〕" 하고 묻고, 또 한 번은 "예(禮)를 배웠느냐?〔學禮乎?〕"라고 하였다. '법필(法拂)'은 법도가 있는 세신(世臣)과 보필하는 현사(賢士)를 뜻한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안으로 법도 있는 세신과 보필하는 현사가 없고,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으면 이런 나라는 항상 망한다.〔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라고 하였다. 위기지업(爲己之業)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말한다. 오직 자신의 덕성을 닦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였는데,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위한 공부만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하였다. 최면암(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으로 면암(勉菴)은 호이다. 자는 찬겸(贊謙)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74세의 고령으로 태인(泰仁)과 순창(淳昌)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에 유배 중에 세상을 떠났다. 정애산(鄭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로 애산(艾山)은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정월파(鄭月波) 정시림(鄭時林, 1839~1912)으로 월파(月波)는 호이다. 자(字) 백언(伯彦),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기송사(奇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으로 송사(松沙)는 호이다. 자는 회일(會一),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이다. 한……것〔一瓢之飮〕 안빈낙도의 삶을 뜻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구나, 안회여!〔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관례(冠禮) 원문의 '돌변(突弁)'으로, 20세가 되어 관(冠)을 쓰는 것을 가리킨다. 《시경》 〈보전(甫田)〉에 "예쁘고 아름다운 머리 딴 총각을 얼마 후에 보면 돌연 관을 쓰고 있다.〔婉兮孌兮, 總角丱兮, 未幾見兮, 突而弁兮.〕"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박공즙 자명 朴公楫字銘 고종이 내를 건넘에오직 부열이 노가 되었네63)계옥64)하고 도용65)하여공훈을 드리운 것이 빛나고 빛나네박생 제동이삼가66)를 마쳤네공즙으로 자를 지으니사모하는 바가 부열이네이미 그 사람을 사모하려면먼저 그 학문을 배워야 하네그 학문은 무엇인가유적에 실려 있네사랑을 세우되 어버이로부터 하며공경을 세우되 어른으로부터 하네67)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에 뜻을 두면68)도가 그 몸에 쌓이리라이것을 따라 가면무엇을 건넌들 이롭지 않으리오이름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여오직 부열을 닮도록하라 高宗濟川。惟說作楫。啓沃陶鎔。垂勳煒曄。朴生濟東。三加告畢。字以公楫。所慕惟說。旣慕其人。先學其學。其學惟何。載在遺籍。立愛惟親。立敬惟長。終始典學。道積厥躬。率是以往。何涉不利。顧名思義。惟說是似。 고종이……되었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일찍이 현상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큰 냇물을 건너려거든 그대를 사용하여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일 해가 큰 가뭄이 들거든 그대를 사용하여 장맛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 用汝, 作舟楫; 若歲大旱, 用汝, 作霖雨.]"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書經 說命上》 계옥(啓沃) 정성을 다 바쳐 임금을 인도하며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재상으로 삼고는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내 마음에 대도록 하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書經 說命上》 도용(陶鎔)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는 것처럼 인재를 배양해서 육성한다는 뜻으로, 보통 대신이 나라를 다스리는 비유로 쓴다. 삼가(三加) 삼가례(三加禮)로, 관례를 말한다. 관례에는 관을 세 차례 갈아 씌우는데, 맨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는 피변(皮弁)을 씌우고 마지막에는 작변(爵弁)을 씌운다. 이하는 관례로 풀이하였다. 사랑을……하네 《서경》 〈이훈(伊訓)〉에 나오는 말이다. 처음부터……두면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가르침은 배움의 절반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학문에 뜻을 두면 그 덕이 닦여짐을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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