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임우경80) 자명 任宇卿字銘 상하 사방을우주라 하네크기로는 밖이 없고멀기로는 다함이 없네군자는 이것을 본받아더불어 체를 함께하네요임금의 성덕은 광대하게 운행 되고81)증자의 현철은 넓고 굳세었네82)되와 말 부와 곡83)을종정과 강해처럼넓은 도량으로 포용하고합하는 것 가려서 수용하네경계가 어긋나면일곱 군데로 배어들고 여덟 군데로 새게 되네울타리를 가르고 부수어물과 나를 공평하게 하네확연히 크게 공평하면천지가 문안에 있네아, 우경이여이 자를 볼지어다 上下四方。是之謂宇。大則無外。遠則不禦。君子是則。與之同體。堯聖廣運。曾賢弘毅。升斗釜斛。鍾鼎江海。以量而容。擇合而受。畦畛逕庭。七滲八漏。剖破藩籬。蕩平物我。廓然大公。八荒在闥。嗟乎宇卿。視此表德。 임우경(任宇卿) 임태주(任泰柱, 1881~1944)를 말한다. 자는 우경, 호는 성재(誠齋),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성재집》이 있다. 요임금의……되고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익(益)이 제순(帝舜)에게 "요제(堯帝)의 덕이 광대하게 운행되어 거룩하고 신묘하며 무와 문의 덕을 모두 구비하자, 황천이 돌아보고 명하여 사해를 다 소유하고 천하의 군주가 되게 하였습니다.[帝德廣運, 乃聖乃神, 乃武乃文, 皇天眷命, 奄有四海, 爲天下君.]"라고 제요(帝堯)를 찬미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증자의……굳세었네 《논어》 〈태백(泰伯)〉에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니 무겁지 않겠으며, 죽은 뒤에야 그만두니 멀지 않은가.[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부(釜)와 곡(斛) 부는 6말 4되, 곡은 10말이 들어가는 그릇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이경84) 자명 梁而敬字銘 상제가 충을 내려주니이것을 명덕이라 하네하늘이 만물을 주관하여이 인극을 세우네기품에 구속되고 외물에 가리니치우침이 없을 수 없네그대로 따르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으면서로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네학문하는 도는먼저 그 덕을 밝히는 것이네덕에 들어가는 방법은경을 위주로 하여 곧게 하는 것이네경으로 덕을 모으고덕으로 도를 응집시키네이 관건을 열면분명히 단서가 있네양씨의 아들나이가 이미 17세이네아름다운 아이에게순서대로 관례를 하였네그 이름 회덕이니이경으로 자를 짓네그 뜻이 서로 기다림이마치 체에 용이 있는 것과 같네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엄숙히 하여연못에 임하듯 얼음을 밟는 듯하네마음이 어둡고 게으르지 않으면이치가 절로 흘러 통하네이름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여마치 어깨에 짐을 진 듯이 하네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85)밝은 명이 이에 온전할 것이네오호라 이경이여성인의 시작이니어찌 힘써 노력하지 않겠는가앞길이 만 리이네 上帝降衷。是曰明德。參天宰物。立此人極。氣拘物蔽。不能無偏。因循不省。相去愈遠。爲學之道。先明厥德。入德之方。主敬以直。敬以聚德。德以凝道。啓此關鍵。的有端緖。梁氏之子。年已十七。婉變丱角。三加有秩。其名會德。字以而敬。其義相須。如體有用。正冠尊膽。臨淵履氷。心不昏怠。理自流通。顧名思義。如擔在肩。日乾夕惕。明命斯全。嗚乎。而敬。成人之始。豈不勉力。前程萬里。 양이경(梁而敬):양회덕(梁會德, 1874~?)을 말한다. 자는 이경, 호는 용강(龍岡)이다. 종일토록……두려워하면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无咎.]"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황경함에게 답함 答黃景涵 신령(神靈) 및 부곽설(郛郭說)을 다시 이렇게 제기하니,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뜻23)이 얕지 않다는 것을 족히 보겠네. 나는 가만히 다음과 같이 생각했네. 령(靈)을 오로지 말하면 신(神)이 령 가운데 있고, 신을 오로지 말하면 령이 신 가운에 있어, 실로 말할 만한 계분(界分)과 시절(時節)이 없네. 만약 '신령(神靈)' 두 글자를 상대하여 거론해서 말하면 령은 체(體)와 가깝기도 하고 용(用)과 가깝기도 하니, 령은 비교적 실(實)하고 신은 비교적 허(虛)하네. 령은 비유하자면 거울의 밝음과 같아 연치(姸媸)와 대소(大小)를 갖추어 다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신이네. 기가 아니면 능히 령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령할 곳이 없으며, 기가 아니면 능히 신(神)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신할 곳이 없으니, 령과 신은 실로 모두 이기가 합한 것이라, 그대의 논의에서 신을 형이상(形而上)으로 여기고 령을 형이하(形而下)로 여겨 령의 밖에서 별도로 묘용의 신을 구하여 이 심의 주재로 삼은 것과는 같지 않네. 이와 같다면 령 밖에 신이 있고 심 밖에 이가 있어, 령은 무용(無用)의 장물(長物)이 되고 이는 작용의 별사(別事)가 되니, 이것은 작은 병통이 아닌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대가 이미 나의 설을 믿지 않고 정자와 주자의 설이 만약 이와 같은 것이 있으면 당연히 따르겠다고 여기니, 여기에서 선현을 돈독히 믿고 또한 책을 오로지 의지하지 않음이 없는 뜻을 볼 수 있겠네. 그러나 또 정자와 주자의 설로 증명해 보건대, 《중용》에서 지성(至誠)의 도를 말하면서 귀신의 덕을 인용하여 밝혔네. 귀신이라는 것은 음양의 령이니, 이것은 령이 이의 묘용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학》의 주에 "허령불매(虛靈不昧)……"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령이 문득 능히 주재묘용 하여 중리(衆理)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정자와 주자의 설이 이와 같이 분명한데 오히려 보고 살피지 않으니, 다시 어떤 설이 이것보다 분명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곽설 또한 그렇지 않네. 심이 주재가 되는 것은 능히 응하기 때문이네. 이것으로 부곽의 뜻이라고 한다면 가하지만, 곧장 부곽을 주재한다는 뜻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가하네. 또 《주자어류》는 문인이 기록한 것이니, 어찌 친필의 《주자대전》이 더욱 믿을 만한 것과 같겠는가? 그렇다면 부곽이 심통성정(心統性情)과 같다고 말한 것은 마땅히 너무 가볍게 본 것 같으니, 다시 상세히 살펴보기를 바라네. 神靈及郛郭說。復此提起。足見不得不措之意。有不淺淺。妄竊自謂。專言靈則神在靈中。專言神則靈在神中。固無界分時節之可言。若以神靈二字。對擧而言。則靈近體近用。靈較實。神較虛。靈比如鑑之明。具姸媸大小無不畢見。此神也。非氣不能靈。非理無所靈。非氣不能神。非理無所神。靈與神。固皆理氣之合者也。非若賢論以神。爲形而上。以靈爲形而下。而於靈之外。別求妙用之神以爲此心之主宰也。如此則靈外有神。心外有理。靈爲無用之長物。理爲作用之別事。此非小病。奈何奈何。賢旣不信鄙說。以爲程朱說若有如此。則當從之。此可見篤信先賢。亦不無專靠書冊之意也。然且以程朱說證之。中庸言至誠之道。而引鬼神之德以明之。鬼神者。陰陽之靈也。此非靈爲理之妙用處乎。大學註曰。虛靈不昧云云。此非靈之便能主宰妙用。且衆理應萬事處乎。程朱說分明如此。而猶不見省。更安有何說分明於此者乎。郛郭說亦未然。心之爲主宰。以其能應也。以此而謂郛郭之義則可。直以郛郭看作主宰義則不可。且語類是門人所記。豈若大全親筆之爲尤信乎。然則郛郭與心統性情同云者。似當輕輕看。更詳之爲望。 터득하지……뜻 《중용장구》 제20장의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생각할진댄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有不思, 思之, 不得, 不措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선친의 원고 중에 '불초를 경계하다' 시에 삼가 차운하다-3수- 敬次先子稿中戒不肖韻【三首】 무척 한스럽네 도유221)의 봄이 막 열린지 恨切屠維春始開벌써 35년이나 지났구나 忽焉三十五年來많은 재물로 당시에 서적 천 권과 바꾸셨는데 籝金當日換千卷수레 가득한 불을 지금 한 잔의 물로 끄는 것 같네222) 車火如今救一盃저승에서 몇 번이나 남몰래 은혜 베푸셨을까 泉下幾施冥佑惠집안에서 재능으로 칭찬받지 못해 끝내 부끄럽네 家間終愧不稱才평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품속의 편지 平日最是懷中簡고송을 기대하고 버들 매화를 경계하셨지 期待高松戒柳梅일념으로 바른길 인도해 학문 성취 기대했는데 一念義方期學成인간 세상에 큰 소리로 울게 하였구나 須令人世放聲鳴처음에는 토대가 학문에 전념하기를 구하였고 初頭基址要專志결국에는 공부가 지극히 성실함에 이르렀으면 하셨지 究竟工夫到至誠풍수지탄 있으니 끝내 은혜 갚지 못함을 어이하랴 風樹其如無卒惠조롱박을 본떴으니223) 평생을 저버려 한탄스럽네 畵葫堪歎枉平生그래도 무첨과 결신의 책임224) 남아 있으니 尙餘毋添潔身責속세 끊고 물고기 새와의 맹약 홀로 찾으리라 絶俗獨尋魚鳥盟자나깨나 우리 선친 잊지 못하여 不忘寤寐我先人천지 사이에서 살며 애통한 마음 새롭구나 俯仰乾坤痛若新아이는 성취한 것 없이 이제 백발 되었으니 兒子無成今白髮옛날 청춘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구나 光陰枉度昔靑春여생에 그저 스스로 마음 바탕 수양하리니 餘生只自治心地이 세상에서 누구와 함께 덕으로 이웃할까 此世誰同接德隣맹세컨대 평소 간곡한 가르침을 받들어 誓將平日丁寧訓남겨주신 몸 조심하며 일생을 마치리라 敬行遺體待歸眞 恨切屠維春始開, 忽焉三十五年來.籝金當日換千卷, 車火如今救一盃.泉下幾施冥佑惠? 家間終愧不稱才.平日最是懷中簡, 期待高松戒柳梅.一念義方期學成, 須令人世放聲鳴.初頭基址要專志, 究竟工夫到至誠.風樹其如無卒惠, 畵葫堪歎枉平生.尙餘毋添潔身責, 絶俗獨尋魚鳥盟.不忘寤寐我先人, 俯仰乾坤痛若新.兒子無成今白髮, 光陰枉度昔靑春.餘生只自治心地, 此世誰同接德隣.誓將平日丁寧訓, 敬行遺體待歸眞. 도유(屠維) 태세(太歲)가 기년(己年)에 있는 것을 이른다. 여기서는 기유년인 1909년을 가리킨다. 수레……같네 선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맹자가 "인(仁)이 불인(不仁)을 이기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기는 것처럼 뻔하다. 그런데 오늘날 인을 실천하는 자는 한 잔의 물로 한 수레 가득한 땔나무의 불을 끄려고 하는 꼴인지라 꺼지지 않으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仁之勝不仁也, 猶水勝火. 今之爲仁者, 猶以一杯水救一車薪之火也, 不熄, 則謂之水不勝火.]"라고 한 표현을 원용한 것이다. 조롱박을 본떴으니 주관이 없이 옛사람의 글만 흉내냄을 말한 것이다. 송(宋)나라의 학사 도곡(陶穀)이 글을 쓴 것을 보고 태조(太祖)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자못 들으니 한림이 지은 글은 모두 전인(前人)의 구본을 말만 바꾼 것이라 하니 이것은 곧 세속에서 이른바 '조롱박을 본뜬 것[依樣畫葫蘆.]'일 뿐이다. 어찌 힘쓴 것이 있겠는가."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東軒筆錄 卷1》 무첨(毋添)과 결신(潔身)의 책임 무첨은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너를 낳아주신 분을 욕되게 하지 말라.[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결신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남이 부채를 읊은 시에 차운하다 次人詠扇 늘 더운 날에 쓰여 쌀 소금과 가치가 같아 常用炎天等米鹽혹리에게 통렬히 칼을 씌우네175) 却將酷吏痛加鉗장식은 제나라 비단176)을 짜서 내었고 衣粧織出齊紈柚뼈대는 위수 대나무177)를 베어 이루었네 骨質斬成渭竹鎌때로 남의 집에 들어갈 때 얼굴 가리기 좋고 時入人家遮面好밤에 귀찮은 모기 휘둘러 몸을 엄히 방비하네 夜揮蚊賊防身嚴백우와 청포178) 누가 다시 있는가 白羽靑蒲誰復在분분한 진세의 요기가 공연히 더해져 한스럽네 紛紛塵祲恨空添 常用炎天等米鹽, 却將酷吏痛加鉗.衣粧織出齊紈柚, 骨質斬成渭竹鎌.時入人家遮面好, 夜揮蚊賊防身嚴.白羽靑蒲誰復在? 紛紛塵祲恨空添. 혹리(酷吏)에게……씌우네 부채로 큰 더위를 물리쳤다는 말이다. 오대(五代) 때 범질(范質)이 벼슬하기 전에 다점(茶店)에 들어갔는데, 마침 여름이므로 손에 부채를 들었다. 그 부채에 글쓰기를 "큰 더위에 혹리가 가고, 맑은 바람에 고인이 온다.[大暑去酷吏, 淸風來故人.]"라고 하였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한 사나이가 앞에 와서 말하기를, "혹리(酷吏)를 어찌 큰 더위에만 비할 것이겠소. 상공(相公)께서 다른 날에 이 폐단을 깊이 살피시오." 하고는 가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28 鬼擕扇去》 제(齊)나라 비단 제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으로, 보통 둥근 부채를 가리킨다. 반 첩여(班婕妤)의 〈원가행(怨歌行)〉에 "지금 막 제나라의 흰 비단을 자르니, 희고 깨끗하기가 서리와 눈 같아라. 재단하여 합환의 부채를 만들었나니, 둥글고 둥근 것이 밝은 달과 같아라.[新裂齊紈素, 皎潔如霜雪. 裁爲合歡扇, 團團似明月.]"라고 하였다. 《文選 卷27》 위수(渭水) 대나무 위수는 섬서성(陝西省) 부근에 있는 강으로, 기수(淇水)와 더불어 대나무가 많이 자라기로 유명한 곳이다. 백우(白羽)와 청포(靑蒲) 백우는 백우선(白羽扇)으로, 흰 깃털로 만든 부채이다. 《어림(語林)》에 "제갈량이 사마의(司馬懿)와 위수(渭水) 가에서 싸울 적에 흰 수레에 올라 갈건(葛巾)을 쓰고 백우선으로 삼군(三軍)을 지휘하였다."라고 하였다. 청포는 청색(靑色)의 부들자리[蒲席]를 말하는데, 옛날 임금의 내정(內庭)에만 이것을 깔았던 것으로, 간(諫)할 일이 있는 신하가 그 자리 위에 엎드려 간언(諫言)을 올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석전184)에게 화답하다 2수 和石田【二首】 보배로운 시편 바람에 날려 홀연 문에 들어오니 瓊什颺風忽入門음식을 보내온 것 못지않게 감사하네 感珍不讓餽饛飧정교한 솜씨는 거의 오묘한 이치 전할 수 있지만 精工庶可傳三昧나의 서툰 솜씨는 한 마디 말도 보태기 어렵구나 拙手難能贊一言석전은 세속 선비 아님을 비로소 알겠고 始識石田非俗士구동은 이름난 마을임을 이미 들었다네 已聞龜洞有名村더운 여름철 천 리나 떨어져 있는 듯하니 炎天阻隔如千里어느 날 밤에나 달 아래 집에서 함께 읊을까 何夜同吟月下軒농사와 독서 겸하고 하나만 하지 않으니 兼治耕讀不專門〈하단〉을 여러 차례 읽고 소찬을 경계하네185) 三復河檀戒素飧거현처럼 늙어가니186) 비로소 잘못을 깨닫고 老去蘧賢方覺誤석분처럼 몸소 실천하니187) 어찌 말 많이 하랴 躬行石奮豈多言산수를 노래한 옛 곡조 유독 사랑스러우니 獨憐古調歌山水세상 사람들 촌스럽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何妨時人道野村그대 흉중에 이러한 뜻 간직함을 알고 있으니 知君胸中藏此志시 한편 힘써 완성하면 벽에 걸어두리라 一詩勉就揭楣軒 瓊什颺風忽入門, 感珍不讓餽饛飧.精工庶可傳三昧, 拙手難能贊一言.始識石田非俗士, 已聞龜洞有名村.炎天阻隔如千里, 何夜同吟月下軒?兼治耕讀不專門, 三復河檀戒素飧.老去蘧賢方覺誤, 躬行石奮豈多言?獨憐古調歌山水, 何妨時人道野村?知君胸中藏此志, 一詩勉就揭楣軒. 석전(石田) 황욱(黃旭)을 가리킨다. 하단(河檀)을……경계하네 하단은 《시경》 〈벌단(伐檀)〉편으로, 벼슬아치가 공로도 없이 나라의 녹을 먹어 군자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소찬(素飧)은 하는 일이 없이 공밥만 먹는 것을 말한다. 그 시에 "끙끙 박달나무를 베어, 하수(河水)의 물가에 놓아두니, 하수가 맑고도 찰랑이네.……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는도다.[坎坎伐檀兮, 寘之河之干兮, 河水淸且漣猗.……彼君子兮, 不素餐兮.]"라고 하였다. 거현(蘧賢)처럼 늙어가니 거현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현대부(賢大夫)인 거백옥(蘧伯玉)으로,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나이 50이 되어서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석분(石奮)처럼 몸소 실천하니 석분은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만석군(萬石君)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자손이 잘못하면 굳이 말로 꾸짖지 않고 식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깨달아 고치게 하였다. 이를 두고 황태후가 "유자(儒者)는 꾸밈이 많고 질박함이 적은데, 지금 만석군의 집안은 말하지 않고 몸소 실천한다." 하였다. 《史記 萬石君列傳》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선사의 기일에 익부201), 사익202)과 함께 밤새 추모하다 先師諱辰 與翼夫士益 達夜追慕 뜰의 오동잎 떨어져 가을 기운 새로운데 葉落庭梧秋氣新스승 돌아가신 지 22년이 되었구나 山頹二十二周辰오늘 밤은 백발의 노인 세 사람 한스러운데 今宵白髮三人恨옛날에는 성대한 문하에서 하나같이 스승 섬겼네 昔日華門一事身누가 다시 심의로 회암(晦庵)을 계승할 수 있을까203) 誰復深衣能繼晦공경히 향불 피우기 좋으니 진사도(陳師道)에게 부끄럽지 않네204) 端宜瓣敬不慙陳이곳은 일찍이 스승께서 소요하던 곳이니 此爲杖屨曾經地두악205)이 높고 높아 그 모습 스승 닮았네 斗嶽巖巖像肖眞 葉落庭梧秋氣新, 山頹二十二周辰.今宵白髮三人恨, 昔日華門一事身.誰復深衣能繼晦? 端宜瓣敬不慙陳.此爲杖屨曾經地, 斗嶽巖巖像肖眞. 익부(翼夫) 오해룡(吳海龍)의 자이다. 사익(士益) 오해겸(吳海謙)의 자이다. 누가……있을까 스승을 계승할 훌륭한 제자가 없다는 말이다. 회암(晦庵)은 주희(朱熹)의 호이다. 주희가 병이 들어 위독해졌을 때, 심의(深衣)와 저서(著書)를 제자 황간(黃榦)에게 넘겨주면서 "내 도(道)의 부탁이 여기에 있다. 이제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附錄 卷6 年譜副本庚申》 공경히……않네 스승을 연모하는 정성은 다른 사람에게도 부끄럽지 않다는 말이다. 송(宋)나라의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스승 증공(曾鞏)을 위해 지은 시에 "예전 한 줄기 향을, 증남풍을 위해 공경히 사르노라.[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고 하였다. 증남풍은 증공을 이른다. 《後山集 卷1 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 두악(斗嶽)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 소재한 두승산(斗升山)을 가리킨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여안191)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노역으로 아주 고달프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어 그 때문에 안타까워서 시를 지어 위로하고 면려하다 汝安書來 有勞役甚苦人生幾何語 爲之憫然 詩以慰勉 말세에다 또 잔약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生於末刦又孱門먹고 사는 데 죽과 밥인 들 어찌 싫어하랴 食力何嫌供粥飧책 속의 스승과 벗은 끝내 의지함이 있고 卷裏師朋終有賴꿈속의 권세와 이익은 또한 할 말을 잊었으리 夢中勢利亦忘言모습은 초췌하니 창주의 노인192)이요 形容憔悴滄洲叟인생살이 쓰디쓰니 옹정의 마을193)이라 味況辛酸甕井村나도 병을 앓아 지금 염려하는 것이 같으니 善病而今同所慮한가한 날 기헌194)을 강독하는 게 참으로 좋으리 端宜暇日講岐軒 生於末刦又孱門, 食力何嫌供粥飧?卷裏師朋終有賴, 夢中勢利亦忘言.形容憔悴滄洲叟, 味況辛酸甕井村.善病而今同所慮, 端宜暇日講岐軒. 여안(汝安) 김택술의 막내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의 자이다. 창주(滄洲)의 노인 창주는 전라북도 고부군 궁동면 창동리로 작자가 태어난 곳이자, 김억술(金億述)이 태어난 곳이다. 주희(朱熹)가 만년에 고정(考亭)에 살 때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짓고 자신을 창주 병수(滄洲病叟)라고 칭한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宋子大全 隨箚 卷1》 옹정(甕井)의 마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甕中里)를 말한다. 기헌(岐軒)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신하인 기백(岐伯)과 황제 헌원씨를 지칭하는데, 이들은 중국 의약(醫藥)의 시조로, 의약서를 가리킨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황경함에게 답함 答黃景涵 전후의 심설(心說)은 장황하게 반복하여 개오(開悟)한 뒤에 그만 두기를 기약하니, 나를 아끼고 나에게 은혜로운 것이 지극하여 매우 감사하네. 무릇 심은 어떤 물인가? 기가 있는 것을 심이라 한다면 천하에 기 아닌 물이 없고, 이가 있는 것을 심이라 한다면 천하에 이 바깥의 물이 없네. 이것을 심으로 여기지 않고 반드시 심을 심으로 여기는 것은 단지 기의 신령한 곳으로 말하기 때문이네. 령(靈)은 심 자의 본래 면목이니, 신령하기 때문에 능히 갖추고 능히 응하고 능히 주재하고 능히 신묘하네. 만약 완준(頑蠢)하여 신령함이 없어 마른 나무와 꺼진 재와 같다면 어찌 능히 갖추고 능히 응하고 능히 주재하고 능히 신묘하겠는가? 그렇다면 심 자의 경계를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이가 아니면 능히 신령하지 못하니, 신령함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네. 이 때문에 나누어 말하면 기의 정상(精爽)이라 하고 합하여 말하면 이의 주재(主宰)라 하네. 그 어세를 따라 뜻이 각각 마땅한 것이 있으니, 지금 이에 각자 하나의 견해를 잡고서 서로 대립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지금 능히 낱낱이 거론하여 세세히 진술하지는 못하지만 그대의 의론은 대개 영명(靈明)과 묘용(妙用)에 정추(精粗)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는 기에 속하게 하고 하나는 이에 속하게 하니, 이것이 가장 온당하지 못하네. 기의 령이 바로 이의 묘용이니, 어찌 기 스스로 하나의 령이 있고 이 스스로 하나의 신(神)이 있어 서로 점거하고 있겠는가? 또 "이 몸이 있어 이 이를 갖추고 있어서 성(性)이라는 이름이 있고, 이 이를 갖추어 이 신이 있어서 심(心)이라는 이름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 또한 온당하지 않네. 이 설과 같다면 이 성을 갖추고 있는 시절에 이 심을 말할 만 한 것이 없고 이 신(神)이 있은 뒤에 바야흐로 이 심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무슨 물인가? 내 생각은 처음에 애장(艾丈)의 설을 그렇지 않다고 여긴 것이 아니네. 다만 그 가운데 나아가 심성과 주재의 의를 깊이 밝힌 것일 뿐인데, 점점 설을 펼쳐 나감에 이렇게 장황하게 된 것은 실로 처음의 의도가 아니네. 대저 나의 뜻은 평소 주기론을 깊이 싫어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 그러나 우리 주리를 주장하는 사람 또한 혹 교왕과직(矯枉過直)11)의 폐단이 없지 않기 때문에 감히 말한 것이지, 고의로 옛날 견해를 버리고 저 주기론에 나아간 것은 아니네. 어떻게 여기는가? 前後心說。張皇反復。期欲開悟而後已。其所以愛我惠我者至矣。感感萬萬。夫心是何物。以有氣而謂之心。則天下無非氣之物。以有理而謂之心。則天下無理外之物。不以此爲心。而必以心爲心者。特以氣之靈處言故也。靈是心字本來面目。靈故能具能應能主宰能神妙。若頑蠢無靈。如姑木死灰。則何以能具能應能主宰能神妙乎。然則心字界至。斷可知矣。然非理則不能靈。靈非自爲。乃理之使然。是以分以言之。謂之氣之精爽。合以言之。謂之理之主宰。隨氣語勢。而意各有當。今乃各執一見。互相圭角可乎。今不能枚擧細陳。而賢論槪以靈明與妙用。謂有精粗。而一屬之氣。一屬之理。此最未穩。氣之靈。卽是理之妙用。豈氣自有一靈。理自有一神互相占據乎。且曰有此身。具此理。而有性之名。具此理。有此神。而有心之名。此亦未穩。如此說。則具此性時。節無此心之可言。而有此神而後。方有此心耶。然則具此性者。是何物耶。鄙意初不以艾丈說爲不然也。但就其中。深明心性主宰之義而已。轉輾說去。至此張旺。實非初意也。大抵鄙意。平日非不深惡主氣之論。然吾輩主理之人。亦或不無矯枉過直之敝。故敢有云云。非故欲舍舊見而趨於彼也。如何。 교왕과직(矯枉過直)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하는 것으로, 곧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어 오히려 나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 11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종교/풍속-민간신앙-택기 癸巳 癸巳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에 부안의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 부안(扶安)의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장사택일지(葬事擇日紙)이다. 장사택일지는 지관(地官)이 장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망자의 가족에게 건네준 것이다. 지관은 일시를 선택하면서 망자의 사주와 시신이 묻힐 장지, 무덤의 방향과 방위, 지세(地勢) 등을 고려했기 때문에 관련된 사항들이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하관 시 안될 사람들의 간지와 자손들의 간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주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다. 장사택일지는 통상 안장(安葬)의 날짜, 하관(下棺)의 시각, 개토(開土), 방금(放金), 혈심(穴深), 취토(取土), 납폐(納幣), 파빈(破殯), 발인(發引), 정상(停喪) 등의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장례를 치르면서 장지와 장례일을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그 선택이 자손의 화복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효(孝)를 강조하였던 조선왕조의 유교적 관습이 어우러지면서 뿌리깊은 관습으로 남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예법은 중국보다도 훨씬 더 유교적이었으며 더 엄격하였다. 그 중 상제에 관한 것이 특히 심하였다. 조선 후기의 당쟁은 이 상제를 둘러싼 예송(禮訟)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건화명(乾化命)'으로 시작하고 있다. 장사택일지에서 망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는데, 건곤(乾坤) 즉 하늘과 땅으로 달리 표시하였다. 건은 남자를, 곤은 여자를 각각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망자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계축생으로, 안장일은 계사년 3월 초7일로 되어 있다. 상주는 망자의 동생과 아들이다. 문서의 맨앞에는 안장일을 적은 다음에 '極祝安葬'이라고 적고 있다. 편안하게 장례를 지내기를 간절히 축원한다는 뜻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5년 김응상(金膺相)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 1855 金膺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작성하여 부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855년(철종 6)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膺相)이 작성하여 부안현(扶安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80세였으며 아내와는 사별하고 큰아들 양묵(養黙, 51세)과 큰며느리 개령심씨(開寧尋氏, 46세), 이들의 두 아들부부 기욱(基煜, 22세)과 기욱의 처 고령신씨(高靈申氏, 25세), 기찬(基燦, 17세)과 기찬의 처 연안김씨(延安金氏, 19세), 그리고 둘째아들 천묵(天黙, 41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40세), 세째아들 원묵(元黙, 32세) 세째며느리 월송황씨(越松黃氏, 23세), 그리고 셋째아들 원묵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 기혁(基爀, 11세) 등 아들 및 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문서의 상단부 기록이 없어 작성년대를 알 수가 없지만 김응상의 현존 호구단자 가운데 작성연대가 기재된 것들이 있어서 그 기록들을 통해 나이를 비교하여 이 문서의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南下面遯溪里戶籍單子苐 統苐三戶幼學金應相年四十七丙申 本扶寜父學生 命河祖學生 道明曾祖學生 德濂外祖學生柳壽期本高興妻梁氏歲二十八籍南原父學生 應澤祖學生 履元曾祖學生 斌信外祖學生朴啓東本密陽率子童蒙貴黙年十八乙丑外祖林命燁本沃溝賤口秩小娘一所生奴有辰年五十三逃己卯戶口相凖者[周挾無改印]行縣監 [着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南下面遯溪里戶籍單子第 統第二戶幼學金應相年四十四丙申 本扶▣(寧)▣…父學生 命河祖學生 道明曾祖學生 德濂外祖學生柳壽期本高興妻梁氏歲二十五乙卯籍南原父學生 應澤祖學生 履元曾祖學生 斌信外祖學生朴啓東本密陽子日甲年十五乙丑行縣監[着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9년 김응상(金應相)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幼學金應相 1819 金膺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19년(순조 19)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9년(순조 19)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應相)이 부안현(扶安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44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25세)와 아들 일갑(日甲)(10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의 나이로 미루어 볼 때 양씨는 후처(後妻)로 추정된다. 김응상은 그 뒤 1837년에 작성한 호구단자에 따르면 김응상(金膺相)으로 개명한 것으로 나온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오늘날 김응상의 호구단자가 7건 전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44세인 1819년부터 68세인 1843년까지 이곳에서 내내 살았던 것으로 나온다. 문서는 하단부가 절단되어 훼손된 상태이며, 현감의 착압(着押)은 있으나 작성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다행히 김응상의 호구단자들 가운데 작성연대가 기재된 것들이 있어서 나이를 통해 이 문서의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김응상의 또다른 호구단자들을 보면 그에게는 김양묵(金養默), 김천묵(金天黙), 김원묵(金元黙) 등 3명의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이들 중 김양묵은 1829년(순조 29)에 정시(庭試)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관련 고신(告身)들이 다수 전하고 있다. 이 김응상의 호구단자에 아들로 나오는 일갑은 생년간지로 미루어 볼 때 세 아들 중 김양묵으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罪民宋鎭澤右謹言切迫情由段罪民慈母墳山在於 治下南▣…測之人心乎若此不已遠居孤弱之▣…參商敎是後同韓哥移文捉致嚴囚督▣…行下向敎是事泰仁城主 處分丁巳閏五月 日山在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全州▣…▣▣▣(宋鎭澤)右謹言月前罪民與古阜▣…▣性浩山訟事至承六月晦內堀移之 嚴題而同性浩不遵 官題小無顧忌晏▣…動念究厥所爲則無乃挻拖不堀之計也若此乃已則訟理難施 官令莫售緣由更陳特加 洞察所謂韓性浩偸葬▣…官卽刻堀去一以明法理▣…▣官令爲只爲行下向敎是事泰仁城主 處分丁巳七月[題辭]…▣更爲…▣來▣…▣(背面)更以▣…▣掘移▣庭定限如過此限是去等更▣…七月初五日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