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頓首昨年枉唁至今哀慰居然獻發伏惟新正兄候茂納百福區區不任攢賀心制人居諸迅邁奄過終祥且當送舊迎新之節益切痛隕之懷而已泊於許多憂患不得見湖南榜眼聞 兄發解云在弟切姻沈契之誼憂反大於喜未知老那亦同此心否不知者以試官之不憎公爲言而弟則以爲修人事後待天命盖試官殊所極天道若文好筆多有醜拙則何可望天數耶今番則兄須極力善觀收之桑楡如何此處有賣文賣筆者且有場中塾手者又重之泮吏卽弟之主人也弟亦當爲兄指導 兄以量宜處之也餘在奉姑留只此不宣狀式庚子元月七日 心制人 鍍 狀上(皮封)礪山 場巖 龍洞謹候狀宋 生員 宅入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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阻餘拜承惠詢旣感且賀謹從審歲色如紗仕候萬重閤節均泰仰祝且溯弟惄候恒在靡寧中近又室人吟病不起一方公擾繞身以若衰弱之質兼在數憂殆難支吾悶人悶人耳就示事謹悉而出勤卽時詳考民籍如未處理使卽手續矣以此下諒亦爲轉告于杆城長如何如何以民籍事務取扱者言之昨年以來辛善慶爲始交迭爲三四回而申告提出爲三個年云如無申告書之何等不備点而尙未處理則甚可痛歎處也其決未決第爲考籍計料耳餘心擾不備謝禮舊臘十二日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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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相浩之來奉覽 名牒如對 淸儀喜先於慰慰先於感而悵想不已夫何愼節連月支難雖因便探問未得一番晉慰情禮未安憧憧在心今聞調候漸至復常云自當快覩健康何慮何憂悲劇而喜否往則泰來天時人事當然底理也萬望益加調將自慰自重如何大病之後最要善攝而寬心養眞爲良劑也望勿毫忽爲希爲希弟狀老衰之物身世勞碌只切吁歎也已耳餘都留不備候禮陰四月旬一日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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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者惠復慰感慰感謹詢漢落仕候更若何仰溸區區弟狀家故未霽愁悶難堪耳就悚示意謹審而面長區長之間理勢固然矣然以弟思之則弟之於兄易地則似不然也區長許雖當於議其結果在於郡不在於面則事後必有對彼發明之言且吳區長所作農土雖非此土本無不足之歎況是弟之山直所耕者新舊作名替之權能在於兄之掌握者乎如非吾兩間不敢以此等無難之句語冒瀆於明鑑之下矣更加之思期圖惠施千万切仰切仰如係弟之小作關係則不當如是縷縷矣下諒回示焉餘如此不備謹候禮卽弟辛圭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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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안홍선(安鴻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丑九月十七日 安鴻善 金生員 乙丑九月十七日 1865 安鴻善 金生員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을축년에 안홍선이 김생원에 보낸 서간. 을축년(乙丑年) 9월 17일에 당복(堂北) 제상(堤上)에 거주하는 안홍선(安鴻善)이 김생원(金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을축년은 1805년(순조 5)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안홍선으로부터 본 편지를 받았던 김생원이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본 편지가 부안김씨 부안 문중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또한 부안에 거주하던 부안김씨의 일원이었음을 분명하다. 또 비록 수신인을 김생원이라고 지칭하였다고 그가 실제로 생원시 합격자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소과(小科)의 최종 시험에 합격하지 않고, 다만 생원시 혹은 진사시 초시에 합격한 자라 할지라도 생원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편지에서 안홍선은 우선 가을을 맞이하여 날씨가 차가워지고 있음을 언급하고 김생원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본인 어머니께서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지만, 본인은 그렇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한편 본 편지를 받았을 때 김생원은 집을 떠나 있음이 분명하다. '여중(旅中)'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말이 끝난 후 안홍선은 본 편지를 보내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김병헌(金炳憲)이라는 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김병헌을 잘 알고 있으며, 김병헌이 올해 여름 전주(全州)에 있는 희현당(希顯堂)에서 공부할 때, 전라도 관찰사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러면서 복시(覆試)가 공정하게 운영된다면 김병헌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안홍선이 김생원에게 김병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바는 알 수 없지만, 김생원에게 뭔가를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뭔가는 분명 과거와 관련이 있었을 법하다. 부안에서 치러지는 어떤 시험에 김생원이 관여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시험에 응시하는 김병헌에게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그 시험은 어떤 시험을 말하는 것일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김병헌이 희현당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희현당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은 문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김병헌은 문과를 준비하였던 것인데, 부안에서 치러지는 문과라면 당연히 초시를 의미한다. 아울러 안홍선이 본 편지를 보낸 시기가 9월 중순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안홍선이 언급한 문과는 을축년 9월 하순 혹은 10월 초에 부안에서 치러지는 문과 초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문과가 어떤 문과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1806년(순조 6) 10월 하순에 복시와 전시를 치렀던 을축증광시(乙丑增廣試)의 초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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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問原丁未十月 日行縣監趙[官印](皮封)單子 一道堂北下里金 碩士炳憲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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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月前 惠䟽尙此慰玩便後易月謹問侍奠體上神扶萬支 允友安侍耶區區溯仰之至 記下身病之經刦後餘祟尙多兒子間又重病今才出脚苦海滋味之若是辛酸耶咄咄先事之入啓甚慰荷且賀而其後事當另念仰副爲計以此信諒如何如何五筆之惠謹領多謝多謝許多說話信聞於雲巢兄企之撓甚不備上謝庚午餞春日 記下 安榏 謝䟽(皮封)扶 棠北 哀座執事回納磚洞安生謹謝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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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朱晉之佳約今申尹之芳緣謹請小春尊體百福仰慰且祝苐事星帖依 敎書呈下領如何餘續后源源不備伏惟尊照上謝狀甲戌十月二十三日申哲秀 再拜謝(皮封)謹拜上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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令祖父丈喪事復夫何言苐春府丈衰齡居憂必多損節以是獻慮卽拜 先施惠狀謹審秋涼侍中服候連護萬相堂上諸節萬支仰慰斗大弟今月五日之內以痘憂六歲瓦二歲璋俱見敗此何身數此何貌樣寧欲無言 示事行悉而以道査下去矣姑未知末稍事狀而以此周旋如何從此當有卽通于營門計耳十柄筆謹領多謝甚手戰不備謝狀上家伯則間作東峽之行姑未還次故惠書留置耳己巳八月二十二日 弟 安榏 答拜上(皮封)金碩士 朞服座前 回納安洞安生謝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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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卯九月 日 扶安金氏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丁卯九月 日 1867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전라북도 부안군 7.0*5.5(장방형) 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 응산보청에서 나주 종중에 보낸 통문.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에서 나주 종중(羅州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모든 계파를 망라한 대동보를 만들기 위하여 각 종중에 수단(收單)과 전래(傳來) 문첩(文牒) 등 관련 문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대동보를 편찬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각파에서 파보(派譜)만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종의(宗議)에서 회동한 뒤에 지난 무술년과 계해년에 교정 작업을 하였으나 일이 있어서 중지되었고, 그 뒤에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자료들이 망실되었다. 그러나 각 종파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남남처럼 된 형편이어서 소목(昭穆)을 밝혀 매해마다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백세일실(百世一室)의 문중을 되살릴 필요성도 그만큼 절실해졌다. 그리하여 작년 가을에 종중에서 발의하여 보청(譜廳)을 설치하고 수단(收單)을 하고 오는 3월 그믐까지는 족보를 편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문서는 나주의 종중에 이러한 내용을 다시 알려 관련 자료를 속히 보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통문의 작성연대는 정묘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으나, 통문에 서명한 도유사 김홍제(金弘濟)의 호구단자(戶口單子)들이 호남권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에 탑재되어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 정묘년을 1867년으로 추정하였다. 호구단자에 따르면 김홍제는 1822년생으로 부안현 상동면 상리에 거주하였는데, 1867년부터 1885년까지 그가 작성한 6건의 호구단자들이 현존하고 있다.(1867년 김홍제(金弘濟) 호구단자(戶口單子)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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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九年庚午十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䖏自己買得伏在西道秩再字畓六斗落所耕十負八束㐣価折錢文參拾玖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以新舊文三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朴執中[着名]證筆 幼學 金炳孝[着名](背面)金局明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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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十一年丁未十二月初一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䖏故花洞前坪七斗落顙字畓西道秩所耕拾肆負㱏束庫乙折価錢文柒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一張果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后若有異說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 張京仅[着名]證筆 李守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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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年甲申二月二十六日 明文右明文事移去他邑次伏在堂後里前坪悚字畓五刀落只所耕㱏負㐣価折錢文貳兩依數捧上是遣新旧文貳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則以此文憑告爲乎乙事明文主 幼學 金敬文[着名]登筆 幼學 申元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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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者道光十四年四月二十日[官印]吏吏金貞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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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司諌院正言者同治三年四月二十一日[官印]吏吏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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