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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者同治三年五月 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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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三年五月二十九日 純祖 金養黙 道光十三年五月二十九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3년(순조 33) 5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조경묘령(行肇慶廟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33년(순조 33) 5월 29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조경묘령(行肇慶廟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조경묘는 전주 이씨 시조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으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경기전 내부 북쪽에 있다. 영(令)은 종5품 관직이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조경묘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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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六年五月 日 憲宗 金養黙 道光二十六年五月 日 憲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6년(헌종 12) 5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통례원좌통례(行通禮院左通禮)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46년(헌종 12) 5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통례원좌통례(行通禮院左通禮)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통례원은 조회(朝會)의 의례(儀禮)를 관장한 관서이다. 좌통례는 통례원의 정3품 당하관직이다. 정3품 당하관의 품계를 지니면서 같은 당하관직에 임명되었는데도 관직 앞에 행(行)자를 표기한 점이 특이한데,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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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通禮院左通禮者道光二十六年五月 日[官印]吏吏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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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肇慶廟令者道光十三年五月二十九日[官印]吏吏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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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5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十二月二十日 純祖 金養黙 道光十二年十二月二十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 12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조봉대부(朝奉大夫) 행(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32년(순조 32) 12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조봉대부(朝奉大夫) 행(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의 품계이다. 성균관전적은 정6품 관직이다. 조봉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성균관전적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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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朝奉大夫行成均館典籍者道光十二年十二月二十日[官印]吏吏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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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正月 日 哲宗 金膺相 咸豐五年正月 日 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 정월에 국왕이 김응상(金膺相)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55년(철종 6) 정월에 국왕이 김응상(金膺相)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 하계의 품계로 가정대부(嘉靖大夫)·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초기에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관계로도 사용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정호, 김형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정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응상은 이 교지를 포함하여 모두 여덟 차례 고신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의 처와 부, 조부와 조모, 증조부와 증조모 등이 법전(法典)의 규정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추증교지(追贈敎旨)를 받았다. 특히 그는 임씨(林氏)와 사별했는데, 후처(後妻) 양씨(梁氏)는 물론, 전처(前妻)도 함께 교지를 받았다. 김응상 관련 고신을 모두 합하면 20점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편 김응상의 아들 김양묵(金養默)은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남아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그의 후손가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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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인명>金膺相</인명>爲嘉善大夫者<연도>咸豐五年</연도>正月 日朝官年八十依定式加資[官印]<관직명>吏吏</관직명><인명>金貞益</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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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司憲府掌令者道光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官印]吏吏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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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同治三年四月二十一日 高宗 金養黙 同治三年四月二十一日 高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64년(고종 1) 4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간원정언(行司諌院 正言)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64년(고종 1) 4월 21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간원정언(行司諌院 正言)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간원은 사헌부(司憲府)와 함께 대간(臺諫)이라 불렀고, 홍문관(弘文館)과 함께 삼사(三司)라 하였고, 형조(刑曹)·사헌부와 함께 삼성(三省)이라 하였다. 정언은 사간원의 정6품의 관직이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간원정언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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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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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34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四年四月二十日 純祖 金養黙 道光十四年四月二十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4년(순조 34)에 4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지평(行司憲府持平)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34년(순조 34) 4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지평(行司憲府持平)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헌부장령은 사헌부의 정5품 관직이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헌부장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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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憲宗 金養黙 道光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憲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6년(헌종 12) 11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46년(헌종 12) 11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헌부장령은 사헌부의 정4품 관직으로 감찰(監察) 업무를 담당하였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헌부장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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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월호의 '국화를 읊다' 시에 차운하다 次月湖詠菊韻 네 꽃들이 번개 같은 달빛 쫓음이 부끄럽지만 愧汝羣芳逐電蟾꽃 중의 은일자17)로 가장 고결하다오 花中隱逸最高尖아침에는 오류18)와 함께 서사를 베끼고 朝同五柳謄書史저녁에는 삼려19) 위해 장과 소금 바꾸네 夕爲三閭替醬鹽꽃 피우니 언제 봄 신에게 아양 떨었던가 色笑何曾媚靑帝기상 늠름하니 원래 바람의 신도 두려워하지 않았지 氣稜元不怕飛廉참으로 어울리네 와서 비추는 가을밤 달이 正宜來照秋宵月어떨 때는 보름달도 됐다가 초승달도 되는 것이 或作圓輪或作鎌 愧汝羣芳逐電蟾, 花中隱逸最高尖.朝同五柳謄書史, 夕爲三閭替醬鹽.色笑何曾媚靑帝? 氣稜元不怕飛廉.正宜來照秋宵月, 或作圓輪或作鎌. 꽃 중의 은일자(隱逸者) 국화를 형용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 菊花之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오류(五柳)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 은사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자호하고, 울타리 밑에는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삼려(三閭) 삼려대부(三閭大夫) 벼슬을 지냈던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모란의 떨어진 이슬방울을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는 구절이 있다. 《楚辭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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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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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선사의 기일에 자정76)과 함께 밤새도록 있으면서 先師諱辰 同子貞達夜 지금은 대의를 변모77) 보듯이 하는데 大義如今視弁髦선생께서 당시에 높은 공적을 드러냈네 先生當日見功高유언은 백세토록 떳떳한 법이 되었고 遺言百世爲經法서업을 계승한 어떤 사람이 호걸인가 繼緖何人是傑豪이 밤은 목성이 한 바퀴 돈 기일인데78) 此夜諱辰周木宿밤새운 제자들은 두 귀밑머리가 허옇네 達晨門弟兩霜毛신명의 도움으로 누 끼침이 없길 바라니 庶望冥佑無貽累저승과 이승이 감응하는 이치 멀지 않으리 相感幽明理不遙 大義如今視弁髦, 先生當日見功高.遺言百世爲經法, 繼緖何人是傑豪.此夜諱辰周木宿, 達晨門弟兩霜毛.庶望冥佑無貽累, 相感幽明理不遙. 자정(子貞) 간재 문인 남갑원(南甲元, 1871~?)의 자로 보인다. 변모(弁髦) 변(弁)은 치포관(緇布冠)으로 관례(冠禮)를 행하기 전에 잠시 쓰던 갓이고, 모(髦)는 총각의 더벅머리이니, 관례가 끝나면 모두 소용없게 되므로 전하여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뜻의 비유로 쓰인다. 목성이……기일인데 스승이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목성은 12년을 주기로 하늘을 한 바퀴 도는데 그 궤도가 태양의 궤도인 황도(黃道)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별이 궤도대로 잘 운행하면 임금에게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질병이 많거나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史記 卷27 天官書 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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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시월 오일에 가석의 별장에서 十月五日可石庄上 그대가 옛날 이때에 태어났다지 認君庚降昔玆辰거백옥이 그릇됨을 안 지303) 또 오년이네304) 蘧子知非又五春구로305)를 추억하면 갑절이나 애통할 것이고 追感劬勞應倍痛공경히 몸과 모발을 유지함이 바로 참됨이네 敬持體髮是爲眞일편단심으로 옛것 지킨 이 지금 세상엔 드물고 丹心守舊稀今世백발에도 경서 연구하니 더욱 멋진 사람이로세 白首窮經更可人아들들 또한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릴 줄 아니 諸子亦知輕重數뜻을 봉양하는게 맛난 음식 드리는 것보다 낫네 養親志意勝供珍 認君庚降昔玆辰, 蘧子知非又五春.追感劬勞應倍痛, 敬持體髮是爲眞.丹心守舊稀今世, 白首窮經更可人.諸子亦知輕重數, 養親志意勝供珍. 거백옥(蘧伯玉)이……지 거백옥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나이 50이 되어서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거백옥(蘧伯玉)이……오년이네 가석(可石)의 나이가 55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구로(劬勞) 낳아서 길러 주느라 애쓰신 부모의 은덕이라는 말이다. 《시경》 〈소아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우리 부모여, 나를 낳아 기르느라 얼마나 애쓰셨나.[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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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신뢰받지 못함을 탄식하며 歎言不見信 누가 자웅을 알고 검은 까마귀를 판별하는가 誰認雄雌辨黑烏모두 내가 성인의 도와 글을 부지했다 하네 皆云余聖道文扶어두운 방에 구슬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고309) 投珠暗室看持劒제문에서 비파 잘 탐이 피리 좋아함과 어긋났네310) 工瑟齊門乖好竽다만 옳고 그름은 본디부터 그대로 있거니 但見是非元自在어찌 의리와 이끗을 함께 갖출 수 있으랴 豈容義利一幷俱참으로 남을 믿기 어렵고 말에 믿음 없으니 誠難孚物言無信다만 이제부터 말없이 나를 지킬 뿐이라네 只可從今黙守吾 誰認雄雌辨黑烏? 皆云余聖道文扶.投珠暗室看持劒, 工瑟齊門乖好竽.但見是非元自在, 豈容義利一幷俱?誠難孚物言無信, 只可從今黙守吾. 어두운……노려보고 사람들이 까닭 없이 오해하여 미워함을 뜻한다.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 같은 좋은 보배를 암암리에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 주면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까닭 없이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문(齊門)에서……어긋났네 자신이 세상과 서로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진상(陳商)에게 답한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 피리[竽]를 좋아하는 제 선왕(齊宣王)의 문에 비파를 가지고 가서 벼슬하기를 구했으므로, 끝내 벼슬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시대에 맞지 않는 난해한 문장을 즐겨 쓰던 진상에게 충고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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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여러 학생에게 주다 贈書社諸生 백발로 창동에서 학문을 근심하는데 白頭憂學滄之東그대들이 찾아온 뜻이 같아 감사하네 諸子相尋感志同본디 노력하면 상성을 바랄 수 있지만518) 自有有爲希上聖원래 무식하면 영웅호걸이 될 수 없네 元無無識作豪雄원중519)이 주자에게 잘 전수했다 들었으니 曾聞愿仲能傳晦강성이 마융520)만 못하다고 누가 말하겠나 誰道康成不勝融함부로 공담을 하려는 건 좋은 계책 아니니 妄擬空談非計得진실로 정성과 공경 통해 총명함이 나오네 亶由誠敬出明聰 白頭憂學滄之東, 諸子相尋感志同.自有有爲希上聖, 元無無識作豪雄.曾聞愿仲能傳晦, 誰道康成不勝融?妄擬空談非計得, 亶由誠敬出明聰. 본디……있지만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원중(愿仲) 주자(朱子)의 스승인 이동(李侗, 1093~1163)의 자이다. 송(宋)나라 학자로, 호는 연평(延平),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나종언(羅從彦)이 양시(楊時)에게 낙학(洛學)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종언에게 가서 배워 양시와 나종언과 함께 '검남 삼선생(劍南三先生)'으로 불렸다. 이정(二程)의 학문이 주희에게 이어지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 강성(康成)이 마융(馬融) 강성은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 127~200)의 자이며, 마융(馬融, 79~166)은 정현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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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의 〈탄세음〉에 화답하다 和玄狂《歎世吟》 천지에 중화의 의관을 용납하기 어려우니 難容天地漢冠衣어디든 깊이 숨어 오래도록 돌아오지 말게나 何處深藏久莫歸예로부터 도원532)은 전하는 말이 이미 황당했고 從古桃源傳已誕오늘날에는 금화533)를 만나기가 응당 드물겠지 如今金華見應稀그 누가 큰 솜씨로 정치 운수를 담당하여 誰將巨手當治運백성이 금수로 변하는 것을 면케 하겠는가 免敎群生化走飛오직 마음 밭이 한 조각만 남아 있으니 惟有心田餘一片몸을 세워 하늘을 어기지 않을 수 있으리 安身卽可不天違 難容天地漢冠衣, 何處深藏久莫歸.從古桃源傳已誕, 如今金華見應稀.誰將巨手當治運, 免敎羣生化走飛?惟有心田餘一片, 安身卽可不天違? 도원(桃源)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일컬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다. 진(秦)나라 화를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이 살았던 세상 밖의 별천지이다. 금화(金華) 중국 진대(晉代) 사람으로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선인(仙人) 황초평(黃初平)을 가리킨다. 나이 열다섯에 양을 치다가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가서 수도(修道)하였다. 그 후 40년 만에 그의 형 황초기(黃初起)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만났더니 양은 보이지 않고 흰 돌들만 있었다. 황초평이 "양들은 일어나라."라고 소리치자, 흰 돌들이 모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 한다. 《神仙傳 黃初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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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오370) 동선 군에게 주다 贈孫君昌午【東宣】 그대의 관례를 축하한 지 오년 남짓 祝子冠階五祀餘오늘 아침에 함께 머물며 수레에 책을 실었네 今朝同住載書車순임금의 소악 듣고 고기맛 잊음을 어찌 양보하랴371) 聞韶何讓不知肉칼자루 치며 또한 항상 고기반찬 탄식하지 말라372) 彈鋏且休常歎魚계곡에 흐르는 물 맑으니 마음도 함께 깨끗해지고 石澗流淸心共潔뜨락에 가지와 잎 없어지니 지역 온통 빈 듯 하네 庭柯葉盡境全虛세한의 좋은 친분은 원래 쉽지 않으니 歲寒相好元非易반드시 참된 마음으로 시종일관 꿰뚫어야 하네 須把眞情貫末初 祝子冠階五祀餘, 今朝同住載書車.聞韶何讓不知肉? 彈鋏且休常歎魚.石澗流淸心共潔, 庭柯葉盡境全虛.歲寒相好元非易, 須把眞情貫末初. 손창오(孫昌午) 창오는 손동선(孫東宣, 1918~?)의 자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정읍에 거주하였다. 김택술의 문인이다. 순(舜)임금의……양보하랴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 임금의 소악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시며 이르기를 '음악을 만든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라는 말이 나온다. 칼……말라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의 고사로, 객지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제 나라 사람 풍환(馮諼)이 가난하여 맹상군(孟嘗君)에게 의탁해 있었는데 채소 반찬만을 먹게 하였다. 그러자 풍환이 기둥에 기대서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을 찬 사람아 돌아갈지어다, 식탁에는 고기 반찬이 없구나.[長鋏歸來乎食無魚]'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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