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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김채상(金彩相)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寅三月 金彩相 丙寅三月 金彩相 扶安守令 전라북도 부안군 일도면 당북중리 7.0*7.0(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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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村面下鍮村居化民金致休右謹言遐土禁葬之習雖曰成風豈有如本面發龍村居金正玄之不關處行悖禁葬者乎民昨冬奄遭兄嫂喪趂未過葬而同面屈峙南麓適有互相入葬處故今月二十七日用山次率五六役丁往彼山役矣初不關之隣里是在發龍村金正玄四兄弟丁哥本是浮浪雜技之類符同其附近店幕漢數十名亂到役處不問是非曲直各執機杖群棒亂下民之兄被打無數呼吸有難所着衣冠裂破無餘是乎旀五六役丁擧皆被傷流血狼藉分叱除良以至伐喪破碎祭器等物而敗敀銧伊六件亦爲見頉是如乎設或可禁處以理禁止當然不暇況於一無渠塚而村亦無逼則有此駭擧卽一昧法愚至之漢是如乎憤迫緣由玆敢仰籲爲去乎 參商敎是後上項金正玄四兄弟發猛校捉致依 律嚴懲事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壬申正月 日官[着押][題辭]摘奸▣決處事初八日將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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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卯三月十八日到付…▣在囚罪人李秉德右謹言▣▣寃情事山有可禁不禁之地法有從輕從重之律而權衡輕重民恃法而所安也昨年十一月良生之亡妻葬于泰仁南村面古堂山東麓而與泰仁崔永大置標處越谷各嶝坐立不見數百餘步之外也葬時逢石患權且安厝而歸稍待解凍緬禮矣逮至開春八十老母宿患添重朝夕侍湯不遑遷移之際噫彼崔永大以挾富怙勢茹弱之習誣訴山在官家捉致生而方枷囚督掘是乎乃以愚迷所見越谷各嶝坐立不見數百步之置標若是强禁實非法意且葬事遷動月家大忌中又況生之老親日迫西山氣息奄奄次傳聞囚報宿患尤重莫保朝夕故烏鳥私情願乞寬限歸養之意呈訴于山在官家矣斯速掘移之意爲題因囚嚴督是乎則他境殘民訴寃無地緣由仰籲特 燭崔永大恃勢肆㷔非理禁葬之習論下 嚴題敎而卽使白放歸養以保人子終孝而生之妻塚待舒忌移葬之地千萬至懇至祝行下向 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卯三月 日使[着押][題辭]標與塚有異且數百餘步之地不可强掘在囚者卽爲▣釋後形止報來事山在官十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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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송인옥(宋寅玉)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申四月日 宋寅玉 泰仁城主 丙申四月日 宋寅玉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96년(고종 33) 4월에 송인옥(宋寅玉)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 올린 소지(所志). 1896년(고종 33) 4월에 송인옥(宋寅玉)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 올린 소지이다. 전주에 사는 송인옥은 태인현 남촌면 반룡촌에 증조모의 산소를 썼는데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누군가가 이미 전에 투장을 파낸 적 있는 곳에 투장을 하였다. 그러나 총주를 찾지 못한 송인옥은 무덤을 굴개(掘漑)할 수 있도록 제음(題音)을 내려 달라고 관에 호소하였다. 이에 산재관(山在官)인 태인현감은 굴개는 법 밖의 일이니 총주를 찾아낸 뒤에 와서 고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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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전라도 유생 등 상서(上書) 초(抄)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同治七年戊辰三月 同治七年戊辰三月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전라도의 유생들이 작성한 상서의 초안. 전라도의 유생들이 김채상(金彩相)과 그의 동생 김우상(金祐相)의 처 박씨(朴氏)의 정려(旌閭)를 요청하는 상서의 초안(草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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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民宋鎭澤右謹言民之親山於 治下南面盤龍村前麓而定山直守護矣不意去年九月良中本縣居金堯欽爲名人偸葬於民之親山內白虎逼近之地故呈訴于 兼城主則題內詳査摘奸後金哥捉囚報來行下故往示 題音則洞堯欽自知理屈當年十月晦內掘去之意萬端懇乞成手標以給故爲寬限矣不掘故更訴于 本縣城主則題內査宲捉來行下故卽爲到付則同堯欽已知其罪累累哀乞今年正月晦內掘去之意更爲成標故又爲寬限矣又過限不掘故更訴于 兼城主則題內査宲督掘次捉來行下故又到付則同堯欽去九月晦內丁寧掘去之意又成標是去乙民未知渠之奸猂更爲寬限矣尙今不掘始覺此人之凶獰而忿民之見欺也且累次 嚴題之下一向頑拒釀以奸計是可忍也孰不可忍也緣由帖連仰籲於 新莅之下細細垂察後同堯欽捉囚偸葬卽爲掘去千萬祈懇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甲子十月 日泰仁官[着押][題辭]捉來事初五日告宋柾植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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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3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未十一月日 宋鎭澤 泰仁官 辛未十一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2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1년(고종 8) 11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1년(고종 8) 11월에 전주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진택의 친산(親山)은 태인현 남촌 반룡촌에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지켜오다 최근 투장(偸葬)을 당하였다. 그곳은 이전에도 송사를 하여 투총(偸塚)을 파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송진택은 투장자인 순창의 윤가(尹哥)를 찾았으니 잡아다 가두고 독굴하여 달라고 관에 호소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지금은 독굴을 못하므로 내년 봄에 다시 정소(呈訴)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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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未至月十三日 安榏 辛未至月十三日 1871 安榏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1년(고종 8) 12월 13일에 안익이 모친상을 당한 부안 당북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 1871년(고종 8) 12월 13일에 한양(漢陽) 전동(磚洞)에 사는 안익(安榏)이 모친상(母親喪)을 당한 부안현(扶安縣) 당북리(棠北里)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북리는 부안 당북산 북쪽에 있었던 마을로, 지금의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수신자의 성명은 적혀져 있지 않다. 안익은 한겨울에 뜻하지 않게 어머니를 잃은 상대방을 위로하면서 아드님의 안부도 묻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근래 적기증(積氣症)으로 자주 고생을 하고 있으나 다행히도 요즘은 뜸해졌다고 말하면서, 자세한 사정은 운소(雲巢)에게 들으라고 하였다. 운소는 이번에 안익의 편지를 지니고 상대방을 찾아간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전에 상대방이 부탁한 선사(先事)는 계획대로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요즘 상황이 순조롭지 못해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사는 아마도 선대의 묘역 관리에 관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적기증은 오랜 체증으로 배 속에 덩어리가 생기는 병을 가리킨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미년으로 나오는데,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미년을 1871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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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八月初九 安榏 金碩士 炳憲 甲子八月初九 安榏 金炳憲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4년(고종 1) 안익이 부안의 김병헌에게 보낸 서간. 1864년(고종 1) 8월 초9일에 안익(安榏)이 부안(扶安)의 김병헌(金炳憲)에게 보낸 서간이다. 지난번에 작별하고나서 얼마 전에 덕유(德裕) 형제를 통해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긴 여름을 지내면서 항상 몸이 건강하지 못해 고민이 많다고 하였다. 한편 김병헌이 부탁한 일은 이달 15일 능행(陵幸)을 담당한 이재원(李載元) 대감이 얼마 전 기꺼이 승낙하였으니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편지를 보는 즉시 한양으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한편 조정의 소식도 알려주고 있는데, 덕유백씨(德裕伯氏)의 정배(定配) 건으로 사람들이 다행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아들이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니 기쁘다고 하였다. 편지에 등장하는 이재원은 흥완군 이정응(李晸應)의 아들로, 흥녕군 이창응(李昌應)에게 입양되었으며, 고종의 종형이다. 1853년(철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대원군이 집권한 뒤에 중용되어 공조와 예조, 형조, 이조,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 의하여 영의정에 추대되었으며, 정변이 실패한 뒤에도 이조판서로 등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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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庚午四月五日 坡平尹氏大宗約所 庚午四月五日 坡平尹氏大宗約所 서울특별시 종로구 3.9*3.9(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30년 4월 5일에 경성부의 파평윤씨 대종약소에서 경주에 있는 선조의 위토와 임야를 공동 등기하는 일과 관련하여 성금을 보내달라며 각 문중에 보낸 통문. 1930년 4월 5일에 경성부(京城府) 장사동(長沙洞)에 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에서 경주(慶州)에 있는 선조의 위토(位土)와 임야(林野)를 공동 등기(共同登記)하는 일과 관련하여 성금을 보내달라며 각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대종약소는 이미 여러 차례 선조의 임야와 위토를 공동 등기하는 문제로 각 문중에 통문을 보낸 적이 있는데, 이달 20일에는 그 중에서도 경주의 위토와 임야를 공동 등기하기로 결정하고, 각 문중에서 통문을 보냈다. 그러나 사업을 착수하기 위하여 필요한 성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자 다시 통문을 보내 성금을 보내달라고 독촉한 것이다. 대종약소는 2년 뒤인 1932년 9월에도 공동 등기 문제로 각 문중에 통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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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閏月卄三日 安榏 扶棠北 戊辰閏月卄三日 安榏 扶棠北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8년(고종 5) 안익이 보낸 서간 1868년(고종 5) 윤4월 23일에 안익(安榏)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늦봄에 이별한 뒤 윤달 여름에 부모님 모시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전과 같아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보내준 삼필(三筆), 단저(端苧)는 긴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의 부탁은 잘 알았으며 예조(禮曹)에 상세히 탐문해 보니, 해당 도(道)의 상언(上言) 90여 장(張) 내에 70장은 내려 보냈고 20여 장은 남겨두었다고 하니 의아하다고 하였다. 자세하게 곡절을 탐문해 보니 격식을 어기는 일은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나 상세히 알 수는 없고 다시 탐문한 뒤에 상세히 고하겠다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분하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가을 행행(幸行) 때에 다시 소장을 올려도 무방하니, 조금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안익(1812~?)의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지(敬之)로 1834년 식년시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 피봉의 소안동은 현재 종로구 안국동・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대안동의 동쪽에 있었다. 안국동의 자연마을의 하나로서 작은안동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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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교빈(金敎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三月念八日 金敎彬 三月念八日 金敎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28년 김교빈이 보낸 서간 1928년 3월 28일에 김교빈(金敎彬)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남천(南天)에 있으면서 그리워하지 않은 때가 없었는데 여러 번 편지를 받으니 한량없이 감사하다며 봄을 맞아 상대방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작년에 연이어 참혹한 일이 발생하였다니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고해(苦海)의 인생에 풍파가 있긴 하지만 죽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니 부디 슬픔을 억제하여 상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작년 가을 이후로 어머니의 병환이 쾌차하지 못하여 안타깝다고 하였다. 아들의 공부는 세월만 버리더니 지금에야 학교에 입학하였으니 성공이 요원(遙遠)하여 탄식스럽다고 하였다. 숙부는 그사이 이사하였는지 묻고 모든 것이 점차 예전만 못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하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대종교(大宗敎)가 근자에 크게 발전하고 교당(敎堂)을 계동(桂洞) 101번(番)으로 이사하여 크게 희망이 있다며, 천곡(天穀) 대금을 보내는 것은 실행의무라고 하였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羅喆)이 조직한 종교로 1928년 1월에 남도 본사를 계동에 설립하였다. 대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루 세 번 식사때마다 쌀 한 숟가락씩 떠 모아서 그 기관에 바치는 것을 천곡(天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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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신규석(辛圭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元月卄七日 辛圭錫 庚元月卄七日 1920 辛圭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20년 신규석이 보낸 서간 1920년 1월 27일에 신규석(辛圭錫)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그저께 보내신 답장을 보니 또 새롭게 청의(淸儀)를 대(對)하는 듯하다며 관직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가 만중(萬重)하다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상황은 공요(公擾)로 매우 괴롭고, 집안에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고 탄식하였다. 상대방이 부탁한 민적(民籍) 등본(謄本)을 올려보낸다며 담당 서기(書記)가 음력 1월 이후로 오래 결근을 하여 김정성(金正成)의 입가신고(入家申告)가 장부에 정리되지 못하였고, 입가신고와 경성부 민적 등본에 입가된 자와 호주(戶主) 사이의 소목(昭穆)이 자세하지 않아 자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민적에 등재된 것을 뒤에 베껴 보낸다고 하였다. 상세히 살펴본 뒤에 만일 잘못 기록된 곳이 있으면 즉시 지적하여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이미 처리하였다면, 경성 부윤(京州府尹)에게 통지(通知)하는 일은 담당 서기가 출근(出勤)하면 즉시 수속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신규석은 1919년에서 1922년 사이 부안군 동진면장(東津面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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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경상도(慶尙道) 김생원(金生員)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十二月初二日 金生員 盤龍村洞中 戊申十二月初二日 金生員 盤龍村洞中 경상남도 산청군 金生員[着名]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48년(헌종 14) 12월 2일에 경상도(慶尙道)에 사는 김생원(金生員)이 반룡촌(盤龍村)의 동중(洞中)에 보낸 서간. 1848년(헌종 14) 12월 2일에 경상도(慶尙道)에 사는 김생원(金生員)이 반룡촌(盤龍村)의 동중(洞中)에 보낸 서간이다. 김생원은 산청(山淸) 사람으로 일찍이 반룡촌 사람에게 산소를 매득하였고, 그 사실이 적힌 문서가 분명하게 있는데도 반룡촌 사람인 권가(權哥)가 자기의 땅이라며 이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런데도 반룡촌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공론(公論)이 없으니 전라도 인심은 그러냐고 김생원은 반문하면서, 자신이 한번 가서 추심(推尋)하려 하는데 권가가 이를 거부한다면 관청에 정소(呈訴)할 것이라고 하였다. 반용촌은 태인현 서촌면 고당산(姑當山)에 있었던 곳으로,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장명동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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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巳八月二十二日 安榏 金碩士 己巳八月二十二日 安榏 金碩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고종 6) 8월 22일에 안익이 김석사에게 보낸 서간. 1869년(고종 6) 8월 22일에 안익(安榏)이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서간이다. 조부의 상을 당한 김석사를 위로하면서, 노년에 부친상을 당한 춘부장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석사가 지난번에 보낸 편지도 잘 받았다고 하였다. 안익은 자신의 집안에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도 전하고 있다. 안익은 이 달 초 당시 유행하던 천연두(天然痘)로 인하여 이제 겨우 여섯 살 난 딸과 두 살 박이 사내아이를 잃어버렸다. 그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면서 자신의 불행한 신수를 한탄해 하였다. 그리고 그 전에 김석사가 지시한 일은 다 마무리하였으며, 조만간 도사(道査)가 내려 갈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도사는 관찰사가 사람을 보내 특정한 사안을 조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일을 주선(周旋)하는 결과를 보고 나중에 영문(營門)에 이를 알리겠다고 하였다. 또한 김석사가 보낸 붓 10 자루를 잘 받았으며 고맙다고 하였다. 끝으로 백부가 동협(東峽)에 가셔서 아직 돌아 오지 않았기 때문에 김석사가 보낸 편지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협은 충청도 단양 지역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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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 坡平尹氏大宗約所 簽宗氏 始祖降生一千三十二年壬申九月 日 坡平尹氏大宗約所 서울특별시 종로구 3.8*3.8(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32년 9월에 경성부의 파평윤씨 대종약소에서 선조의 위토와 임야를 공동 등기하는 일과 관련하여 각 문중에 보낸 통문. 1932년 9월에 경성부(京城府) 장사동(長沙洞)에 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종약소(大宗約所)에서 선조(先祖)의 위토(位土)와 임야(林野)를 공동으로 등기하는 일과 관련하여 각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대종약소는 각 문중에서 부담하기로 한 금액을 보내지 않아서 공동 등기 소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하고, 우선 중시조(中始祖) 태사공(太師公)의 임야 등기만 인쇄하여 보내고, 다른 곳은 점차 송달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각 문중에서 속히 부담금을 보내어 사업이 완결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파평윤씨 대종약소는 2년 전인 1930년에도 선조의 위토와 임야 가운데 특히 경주(慶州)의 토지를 공동등기하는 일로 각 문중에 통문을 보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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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奴回惠履迨今慰浣伏惟重熱比酷兄侍體一例衛豚兒婦漸臻蘇惺之域否胤友亦復常出接聞極喜幸何等獻賀弟省狀依昨渾眷粗遣私幸私幸而愁惱溢目如何盡喩向 敎婚議當初指示者吾兄也今更提敎者亦兄也彼此凡百之熟知者亦兄也 勤敎之下弟焉有他意也兄須全其始終某處報益幸望完定探回示而柱草亦當從近便送去爲計而但彼家之中間相持或不無觀望逗遛諸意此則大事決定之際或不無其例此則不足爲嫌兄意以爲然乎三盃之緣亦自不任望須周章另念焉改已參定於此則前所云云處亦在吾兄善處乍自弟所云云者從今以後勢將置之耳今前聞京報則左揆十七已膺命右揆終不出至有譴罰之命方在始興胥命咸悅身死李胤愚爲之石城遭艱其代河百源爲之云而是外別無可聞者耳餘揮汗姑留不備謹候狀上辛五四日 弟 膺鎬拜拜(皮封)正村 侍座 執事閒美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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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정식(禎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二月初七 禎植 戊子二月初七 禎植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무자년에 정식이 보낸 서간 무자년(戊子年) 2월 7일에 정식(禎植)이 척종(戚從)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일전에 보낸 편지에 아직 답장하지 못했는데 다시 편지를 받았다며 초봄의 상대방 안부를 물었다. 부탁한 종이는 상품(上品)은 1냥 5전씩, 지차(之次)는 1냥씩이며 장암(場巖) 형(兄)이 부탁한 장리(張吏)의 시지(試紙)는 하질(下秩)로 사 보낸다고 하였다. 도합 26질 내에 상품은 9질이고 지차는 17질이며 값은 27냥 5전이고, 유지값은 3전으로 종씨댁의 흥성전(興成錢) 21냥 4전과 합하면 49냥 2전이고 나머지는 20냥 6전인데 나머지 20냥을 변통하기가 어려워 몽땅 부쳐 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20냥을 척종이 마련하면 사또가 나오기를 기다려 보고하겠다고 하였다. 종씨댁 흥성물은 무사히 도착하였으며 마음에 드는지 묻고, 월전(月前)에 보내준 마늘은 제대로 도착하여 일전에 씨를 뿌렸으며, 지난번 사서 보낸 역서(曆書)값은 바빠서 기록해 보내지 못했고, 안경은 이곳에서 고쳐 보낼 예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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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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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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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慧書尙未覆而又承惠札謹審春峭靜履連護增勝何等達慰戚從應候姑依前狀餘無匕可聞系處書簡雖曰信傳試發別入待定而切嚴故不得相議事不如諸爲父兄之道其所落莫預先沓沓勢也奈何示紙依胎紙貿送而上品五秩一兩五戔式云之次一兩式而依場巖兄主所敎使張吏試紙下秩貿送而張吏許在錢三兩餘而五兩因此備給則合爲二十六秩內上品九秩之定十七秩價本則二十七兩五戔而油紙價三戔從氏宅督慮興成錢文二十一兩四戔兩條合爲四十九兩二戔餘爲在錢二十兩六戔則自然犯用猝難變通故不得沒數付送甚愧甚愧二十兩錢戚從備報則以待出宰當及報諒施之如何若非到我官則豈如是書報乎可呵期於高中參榜矣時時爲面之期預切先企餘姑不宣謝式戊子二月初七戚從禎植頓謝從氏宅興成物無事到付而果是合意也否未得報覆甚鬱耳月前所付上有本蒜依到而日前落種耳向者曆書貿送價忙未錄送此後回示也眼境自此改送計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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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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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김교빈(金敎彬)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七月七日 金敎彬 七月七日 金敎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김교빈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 7월 7일에 김교빈(金敎彬)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오래 소식이 끊겨 서글퍼하던 차에 먼저 편지를 보내주니 매우 위로되며 멀리하지 않으시는 정을 알 수 있다고 서두를 뗀 후에 늦더위에 벼슬살이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지난해 손주 얻은 것을 축하하였다. 상중(喪中)의 자신은 목숨을 구차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온갖 일이 모양새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스럽고 민망하다고 하였다. 상대방 지역의 농사도 흉년을 면치 못하고 본인의 지역도 큰 흉년이어서 걱정된다고 하였다. 돌아가신 큰 형님의 회갑(回甲) 다례(茶禮)를 엊그제 지내게 되니 슬픈 감회가 더욱 새롭다고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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