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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박춘실(朴春實)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二年壬辰二十日 朴義仲 朴春實 道光十二年壬辰二十日 朴義仲 朴春實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박의중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박춘실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32년(순조 32)에 박의중(朴義仲)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박춘실(朴春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의중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지만 급히 사용할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십작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5냥이다. 거래 당시 본문기(本文記) 3장을 넘겨주면서 이후 만약에 자손 가운데 잡담을 일으키면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의중(朴義仲)과 증인(證人) 윤광필(尹光弼), 필(筆) 박창길(朴昌吉)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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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병헌(金炳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幼學金炳憲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金炳憲 喪不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김병헌이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3월 12일에 김병헌(金炳憲)이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병헌은 이 논을 긴급히 쓸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원래 서도질에 있는 재자답(再字畓) 5두락지이며, 복수로는 9복(卜)이 되는 곳인데, 이곳을 같은 서도질의 동자답(同字畓) 1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과 맞바꿔 팔면서 3냥을 주기로 하였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이후에 만약에 잡음이 일어나면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당시 답주(畓主)인 김병헌(金炳憲)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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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장경의(張京仅)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十一年丁未十二月初一日 張京儀 大韓光武十一年丁未十二月初一日 張京儀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07년(순종 1)에 장경의가 화동 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순종 1) 12월 초1일에 장경의(張京儀)가 화동(花洞)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장경의는 긴급히 사용할 데가 있어서 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화동 전평에 있는 상자답(顙字畓) 서도질(西道秩) 7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4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75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각각 1 장씩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차후 일어날 말썽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장경의(張京儀)와 증필(證筆) 이수경(李守京)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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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집중(朴執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十月初三日 幼學朴執中 同治九年庚午十月初三日 朴執中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박집중이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10월 초3일에 박집중(朴執中)이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집중은 이 논을 매득하여 경작하여 오다가 긴급히 사용할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질에 있는 재자답(再字畓) 6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9냥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3장을 매입자에게 함께 넘겨주면서 이후에 말썽이 일어나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집중(朴執中)과 증필(證筆) 김병효(金炳孝)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문서의 뒷면에는 김국명(金局明)이 왔다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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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김경문(金敬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年甲申二月二十六日 金敬文 光緖十年甲申二月二十六日 金敬文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84년(고종 21)에 김경문이 당후리 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884년(고종 21) 2월 26일에 김경문(金敬文)이 당후리(堂後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경문은 이 논을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당후리 전평에 있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각각 1장씩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차후 일어날 말썽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명문주(明文主)인 김경문(金敬文)과 증필(證筆) 신원문(申元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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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조개찬(趙介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二年丁巳二月初十日 趙介賛 李恒瑞 嘉慶二年丁巳二月初十日 趙介賛 李恒瑞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97년(정조 21)에 조개찬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이항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97년(정조 21) 2월 초10일에 조개찬(趙介贊)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이항서(李恒瑞)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개찬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하며 먹고 살다가 마침 쓸데가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가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25냥이며, 본문기(本文記) 2장을 넘겨주면서 이후에 혹시라도 자손들이 서로 다툴 시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조개찬(趙介贊)과 증인(訂人) 김수문 증보(訂保) 박금봉(朴今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기는 답주인 조개찬이 자필(自筆)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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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四年辛亥三月初二日 幼學金洛坤 明治四十四年辛亥三月初二日 金洛坤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11년 일제 강점기에 김낙곤이 부안군 일도면 당후리 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1년 3월 초3일 일제 강점기에 김낙곤(金洛坤)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당후리(堂后里)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낙곤은 긴히 사용할 곳이 있어서 일도면 당후리 후평에 있는 논을 매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국자(鞠字) 17호답(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3부(負)되는 곳으로 매매가격은 300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 3장과 신문기 1장을 함께 넘겨 주면서 이후 만약에 다른 말썽이 있으면 이 문기들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일도면 당후리가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김낙곤(金洛坤)과 증인 최진환(崔震煥)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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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영수(朴永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朴永秀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朴永秀 [着名]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박영수가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3월 12일에 박영수(朴永秀)가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영수는 이 논을 긴급히 사용할 데가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원래 서도질에 있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 5속(束)이 되는 곳인데, 이것을 재자답(再字畓) 5두락지로 바꿔 매매하였다. 거래가격은 13냥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이후 만약에 서로 엇갈리는 말이 나오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영수(朴永秀)가 혼자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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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김준기(金俊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肆拾玖年甲辰十月十四日 金斗應 金俊起 乾隆肆拾玖年甲辰十月十四日 金斗應 金俊起 [喪人],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84년(정조 8)에 김두응이 진황처에 있는 밭을 김준기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84년(정조 8) 10월 14일에 김두응(金斗應)이 진황처(陳荒處)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밭을 김준기(金俊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두응은 이 밭을 조상한테 물려받아 계속 경작하여 왔으나 생활이 빈궁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진황처 서십작 간자전(簡字田)으로, 길이가 서쪽을 지나 남북으로 30척(尺)이고, 크기가 동서로 35척(尺)이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6냥이다. 이 거래에는 구진전주(舊陳田主)인 김두응(金斗應)과 증(證) 홍하찬(洪夏讚), 필집(筆執) 박인봉(朴仁鳳) 등 3명이 참여하였다. 이 때 박인봉은 상중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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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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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6년 최상엽(崔相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二月二十八日 崔相燁 光武十年丙午二月二十八日 崔相燁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06년(고종 10)에 최상엽이 염소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6년(고종 10) 2월 28일에 최상엽(崔相燁)이 염소질(塩所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상엽은 이 논을 직접 매득하였으나 매매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이자답(異字畓) 9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7(負)가 되는 곳으로 가격은 90냥이다. 염소질 이자답이 어느 지역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지 관련 문서로 볼 때 부안현에 속하는 지역이라고 추정된다. 거래 당시 구문서 1장이 유실되어 새로운 문서 1장을 작성하여 주면서 다른 말들이 오가면 관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최상엽(崔相燁)과 증필(證筆) 김형술(金瀅述)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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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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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55년 김명하(金命河)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의 관직을 내리면서 발급한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자 그의 아버지도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이는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증직된 사유이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종2품 가선대부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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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3년 박덕유(朴德裕) 차용내역서(借用內譯書) 고문서-증빙류-차용증 경제-회계/금융-차용증 癸亥十二月十四日 癸亥十二月十四日 1863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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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1916년 이승호(李承鎬) 부동산매매계약서(不動産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五年陰二月二十八日 朴敬烈 李承鎬 大正五年陰二月二十八日 朴敬烈 李承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16년에 이승호가 부안군 상서면 거석리에 있는 논 2필지를 박경렬에게서 매입하면서 작성한 부동산 매매계약서. 1916년에 이승호(李承鎬)가 부안군(扶安郡)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논 2필지를 박경렬(朴敬烈)에게서 매입하면서 작성한 부동산 매매계약서이다. 거래 대상은 논 4두락과 논 1두 5승락 짜리 2곳이었으며, 거래가격은 백원(百円)이었다. 작성연대는 일본 연호 대정(大正)를 사용하여 표기했으며, 본문은 한문과 일본어 가타가나를 혼용하였다. 그리고 이 문서에는 매도인과 보증인이 각각 주소와 성명을 적고 날인하였으나, 매수인은 이름만 적어 놓았다. 한편 매매 대상 부동산의 위치를 '賦三三三'와 같이 지번(地番)을 쓰면서도 동서남북에 산천(山川)이 있다고 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섞어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박경렬은 이때 매매계약서와 함께 이승호에게 영수증 2장을 함께 건네주었다. 이를 보면, 2필지를 각각 50원에 거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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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계약서

不動産賣買契約書不動産ノ表示 左記目錄通り此賣渡代金 百円や右不動産ヲ貴殿ニ賣渡シ前記代金正ニ領受候事確實也依テ后日該不動産ニ對シ他ヨリ異議無?ハ勿論ノ義ニ候處萬一異議相起リ候張合ハ拙者ニ於テ處辨シ毫モ貴殿ニ御迷惑相掛ケ申問敷其ノ爲メ本證書差入候也大正五年陰二月二十八日扶安郡上西面擧石里一,十戶賣渡人 朴敬烈(印)扶安郡上西面露積里一,一戶保證人 朴章燁(印)李承鎬 殿不動産表示扶安郡上西面擧石里 賦三三三畓四斗落畓一斗五升落三,七束餘白東 川 西 山南 山 北 川(皮封)領受證與賣買證書在中擧石里朴敬烈畓文券(別紙)領收證一金五拾円也右本郡上西面擧石里前坪畓肆斗落價로領受홈大正五年陰二月卄九日領受人擧石里朴敬烈李承鎬 殿(別紙)領收證一金五拾円也上西面擧石里畓價로正히領受홈大正五年陰三月十五日領受人 朴敬烈李承鎬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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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위치명【혁기】에게 답함 答魏致明【赫基】 저는 비루하게 살아서 그저 깊은 산속에서 땔나무를 하고 목축하는 일에 얽매인 부류일 뿐인데, 그대가 어떻게 알고서 이렇게 먼저 편지를 보내주게 된 줄 모르겠습니다. 칭찬하는 것이 사실과 어긋나고 비유하는 것이 실재에서 벗어나, 편지를 받고서 등의 땀이 발바닥까지 흘렀습니다. 들어보니, 그대는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고 성대한 덕이 있는 스승의 문하에서 종유해서, 좋은 소문과 좋은 덕망이 멀고 가까운 곳에 자자하여 솥과 냄비도 귀가 있어 들었을 정도였으니, 항상 매우 공경하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독서하는 곳에 한번 가서 조금이라도 쌓인 감회를 풀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이를 수 없었는데, 어떻게 오늘날 도리어 그대의 편지가 이곳에 보내지도록 하는 과실을 저지르게 할 줄 알았겠습니까? 편지를 받고서, 부모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는 생활이 때에 따라 성대한 줄 알았으니, 매우 위로되고 고마워 실로 듣기 바라던 말에 부합했습니다. 저는 본래 타고난 자질이 좋지 못하고 세운 뜻이 견고하지 못해서, 그럭저럭 지내는 사이에 젊고 혈기 왕성할 시기를 놓쳐버려서 마침내는 단지 한낱 못난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말을 하자니 슬프고 한탄스러우나 뒤미처 보완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 그대께서 나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버리지 않아서 혹시라도 포용해주는 은혜를 내려주신다면, 이로 인해 영향을 받아서 남은 생애에 조금이라도 공효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람을 맞아 그리움이 치달리니 잊지 못하겠습니다. 義林陋生也。碌碌局束於窮山樵牧之列。未知執事何而知之。而有此先施之擧哉。獎詡失實。比擬不倫。受言惶悚。背汗流跖。伏聞執事承襲家庭之訓。遊從長德之門。令聞令望。藉藉遐邇。鼎鐺有耳。常切欽艶。而期擬一造於讀書庄。以償積懷之萬一。而不可得。豈知今日而坐屈寵牘至此之過哉。因審侍傍經體震艮。對時茂謐。慰沃感豁。實叶願言。義林素稟不美。立志不牢。因循之頃。蹉失少壯光陰。而畢竟成就只是一箇無所肖似之物而已。興言悲歎。無計追補。若有如左右不鄙不棄。或賜包納之惠。則因以擩染以觀餘日一分之收否。臨風馳想。不任耿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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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오보경【치상】에게 답함 答呉輔慶【治相】 사성(士誠)이 찾아올 때 그대가 직접 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겸하여 별지의 문목(問目)도 그 안에 들어 있었네. 봉투를 열어 살펴보고서 무한한 감회가 일었네. 오호라! 이 어찌 다만 안부를 묻는 편지이어서 그렇겠는가. 그대는 나에게 실로 집안 대대로 친하게 지내온 정의(情誼)가 있으니, 일반적으로 서로 아는 것에 비교할 것이 아니네. 더구나 그대의 현재 처지는 실로 타인과 다른 점이 있으니, 항상 못난 나는 걱정하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다네. 자네가 지금 이미 각오를 다지고 뜻을 세워 외부의 한가로운 일을 물리치고서 문을 닫고 휘장을 내려서 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이전 배운 학업에 침잠하여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연마하였기에 편지 폭에 가득한 의문과 질문의 문목을 보니,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대저 그대의 자질은 말이 적으면서도 온화하고 신실하며 생각이 트이고 영특하니, 참으로 이를 발판으로 나아간다면 어찌 끝내 여항의 평범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덕스런 가문의 영광이요, 우리 유림의 다행이라네. 한마음으로 굳게 견지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나. 士誠來.得奉手書。兼有別紙問目。披閱以還。感感無量。嗚呼。此豈但以書尺寒暄而然哉。君於我。實有通家之誼。而非尋常相知之比。況君今日情地。實有以異於人者。每不勝區區慰戀之私。今旣覺悟立志。謝絶外間悠悠之事。杜門下帷。養親幹蠱之餘。沈潛舊業。慥慥不休。疑難問目。滿紙盈幅。此是何等好消息耶.大抵君之姿質。沈黙溫良.開悟秀爽。苟能率是以進。豈終爲閭巷尋常人而止也。德門之光也。吾林之幸也。一心牢着。勉之又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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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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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정자성【복현】에게 답함 答鄭子成 【福鉉】 편지를 받고 여러 날이 지났는데 일이 바빠 정신이 어지러워 아직까지도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으니 매우 마음이 편치 않네. 지난 번 경보(敬父)가 돌아갈 때 부친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가 조금 차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네만 그 후에 점차 건강을 회복하여 평소처럼 크게 웃고 경쾌하게 다니시는가. 걱정스러움에 좋은 소식 듣고픈 바람을 그칠 수 없었네. 나는 쓰러져 기운이 없음이 날로 심하여 붙들어 잡아 일으킬 방법도 없으니, 다만 스스로 불쌍하게 여길 뿐이네. 이번 봄에 대은(臺隱) 어른이 찰촌(札村)의 서당에 갔으니, 그가 새벽부터 밤까지 가르치고 날과 달로 학문을 연마함이 반드시 옅지 않을 것이네. 다만 '독실각고(篤實刻苦)' 네 글자가 적절한 법도이네. 옛 사람의 시에 "지극한 보물은 높고 깊은 데 있으니, 사다리를 오르고 배를 타는 노고를 꺼리지 말라. 비유하면 천리마와 같으니, 멍에 메고서 방황하지 말라."143)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우리 벗은 힘쓸게나. 承書有日。而坐於悤撓。尙爾稽謝。不安多矣。向於敬父之還。謹聞堂上有不安之節而至於少間云。未審其後漸復天和。而矧翔如常否。馳溯區區。不任願聞。義林頽塌日甚。扶竪沒策。只自悶憐而已。今春䑓隱丈住札村塾。其所以晨夕薰灸。日月刮磨。必不淺淺。惟篤實刻苦四字。是其節度。古人詩曰。至寶在髙深。不憚勤梯航。譬猶千里馬。駕言勿彷徨。願吾友勉之。 지극한……말라 양시(楊時)의 〈차일불재득시동학(此日不再得示同學)〉이란 작품에 보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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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병기】에게 답함 答曺明叔【秉冀】 병들어 버려진 한 친구를 잊지 않고 진중한 신년의 편지를 보내주시니 마음이 감동스러워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받았을 때 매우 분주한 일로 답장을 드리지 못하고 그 뒤에 손아(孫兒)가 가는 일이 있었으나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기에 서글프고 서운한 마음이 평소에도 풀리지 않습니다. 편지를 받은 뒤에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고요히 함양하며 지내시는 기거가 더욱 다복함을 누리고 계신지요?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지없습니다. 저는 2년 동안 앓고 있는 병이 하나 있는데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마 머리를 들고 밖을 나갈 날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운명에 맡길 따름입니다. 매양 그대가 속세를 벗어나 만첩의 깊은 산속에서 은거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君子)가 그 덕을 크게 쌓는 때일 것입니다. 멀리서 풍모를 그리워하자니 어찌 제 마음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조용히 한가롭게 묵묵히 수양(修養)하여 신명(神明)을 안에서 살찌우고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더욱 쌓는다면 하늘에서 크게 행해지는 날이 없음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연초에 성묘하러 가는 길에 형문(衡門)98)을 찾아가 그대와 묵은 회포를 풀고자 하였는데, 질병이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으니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대의 풍모를 우러러 그저 간절히 슬퍼할 따름입니다. 不忘病廢一友生。致此珍重新年之問。情私感戢。謂復何如耶。承書時。緣忙逋謝。其後孫兒有行。而又未之焉。茹悵抱缺。尋常不釋。未審信后多日。靜養起居。履元增休。瞻溯罙至。義林一病二載。去益甚焉。恐無擡頭出場之日。只當任之耳。每念左右出於俗塵之外。而隱於萬疊深山之中。此正君子大畜其德之日也。馳仰風韻。曷勝情係。惟從容多暇。闇修黙養。使神明內膄。嘉美中積。安知無天衢大行之日也。初擬以歲初省楸之行。歷扣衡門。以敍宿懷。病不饒我。此計歸於差池。瞻望風際。只切悵恨。 형문(衡門)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보잘것없는 문으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시경》 〈진풍(陳風)〉에 "형문의 아래에서, 한가히 지낼 만하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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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함【태경】에게 주다 與林士涵【泰敬】 천태산(天台山)과 작약산(芍藥山)에는 새봄에 꽃이 피고 새가 우니, 아마도 그곳에는 이미 녹음이 무성할 것 같습니다. 여관에서 꿈을 꾸며 하루라도 그 마음속에서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뜻하지 않게 편지가 왔으니, 위로 되고 감사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을 모시며 일상생활을 살펴보고, 또 이원(彛元)과 함께 책장을 나란히 하고 서로 보며 공부하는 줄 알았으니, 더욱 듣기 바라던 말에 부합합니다. 그대는 타고난 본성이 순수하고 신중하니, 사랑스럽고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만 문자 한 가지에 있어서는 개척하려는 뜻이 적어 끝내 예전의 기량일 뿐입니다. 근래에 이 병통을 보고 깨우쳐서 약석(藥石)을 써서 애써 고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책을 가지고 글자마다 그 뜻을 구하고 구절마다 그 의미를 구하여, 간절하게 정밀하고 자세하게 반복해서 익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말을 외우듯이 하고 자기의 뜻을 내듯이 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전에 누누이 당부했던 말입니다. 부디 더 유념해 주십시오. 天台芍藥。新春花鳥。想已葱籠矣。旅窓夢魂。未嘗一日不憧憧於其中。不意書來。慰感可知。矧諳侍省視常。且與彛元。聯榻相觀。尤副願言。大抵吾友資性醇謹。非不愛艶。而但於文字一着。少開拓底意味。終是舊日伎倆未知近日看得此病痛。痛加藥石耶。自今爲始。將一冊子。字求其義。句求其義。切要熟複精詳。使終始首尾。如誦己言。如出己意如何。此是前所累累仰溷者也。幸加留意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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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에게 답함 答文啓元 미발(未發)한 때를 기뻐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 때라고 하는 것은 옳지만, 기뻐함도 없고 화냄도 없는 때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무릇 중(中)이라는 것은 이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저쪽에 기울지도 않는 것을 이릅니다. 만약 기뻐함도 없고 화냄도 없다면 이것은 공(空)이지 중(中)이 아닙니다. 이발(已發)에 대해서 말하자면 역시 기뻐할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다고 한다면 옳지만 기뻐함이 있고 화냄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듯합니다. 구산(龜山)2)의 문하에서 '미발한 때의 기상을 체인(體認)한다.'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존양(存養)이 쌓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효과이며 의식적으로 안배함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줄곧 이와 같이 한다면 억지로 빨리 이루려다가 일을 그르치는 병폐를 벗어나지 못할 듯합니다. 더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물의 변화에 응하는 것은 조용하고 한가로워야 한다.'라는 주장 또한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함양(涵養)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법도에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리어 조용하고 한가로움에 곤란을 겪게 됩니다. 未發時。爲之不喜不怒則可。謂之無喜無怒則不可。夫中者不偏於此。不倚於彼之謂。若無喜無怒。則是空也。非中也。至於已發。亦謂之能喜能怒則可。謂之有喜有怒則恐涉過重。龜山之門。雖有體認未發氣象之說。此是存養積累自然之效。非着意安排之謂。一向如此。恐未免有偃苖之患也。幸加察焉。應物淸閒之說。亦然。須從涵養中自然中節可也。不然則反爲淸閒所困也。 구산(龜山) 송나라 학자 양시(楊時, 1053~1135)의 호이다. 자는 중립(中立),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정이(程頤)의 문인으로 사양좌(謝良佐), 유작(游酢), 여대림(呂大臨)과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불렸다. 그는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정좌(靜坐)하여 마음을 맑게 해야 하며, 고요한 가운데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발하기 전의 기상(氣象)이 어떠한지를 보고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구산어록(龜山語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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