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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직부에게 보냄 與朴直夫 그대가 떠나고부터 배나 외롭고 쓸쓸하여 단지 서쪽 구름만 바라보며 때로 마음만 보냈을 뿐이었네. 가뭄과 더위가 바야흐로 치성한데 다시 생각건대 조모와 모친은 강녕하시며, 어른을 모시는 체후는 진중하며, 집에 돌아가 집안일을 주관하는 나머지에 옛 학업을 다시 익혀 이어나가는 것에 과정이 있는가? 천하에 좋은 책은 《근사록》만한 것이 없으니, 이 책을 읽고서 학문이 진보하지 않으면 이른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네. 다만 보건대 직부(直夫)는 마음이 침착하고 고요하며 순박하고 진실하여 별다른 종류의 병통이 없네. 이것은 실로 전날에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인데 근래 함께 지내면서 전날보다 더 좋은 줄 더욱 깨닫겠으니, 위로와 기쁨이 많네. 다시 분발하여 격려(激勵)할 곳에 깊이 생각을 지극히 하고 매번 사색하여 연구하는 공부를 더한다면 그 진보를 헤아릴 수 없는 점이 있을 것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自君之去。一倍孤索。只有瞻望西雲。以時送情而已。旱炎方熾。更惟重堂康寧。侍履珍重歸家幹蠱之餘。舊業溫理。接續有程否。天下好書。無如近思錄。讀此書而學不進。則所謂吾末如之何矣。但覸直夫心地沈靜。淳實無他。種種病痛。此固前日所稔知。而近日相處。尤覺其勝似前日。慰悅多矣。更於振發激勵處。深致意焉。而每加思索硏窮之功。則其進有不可量。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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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언【만원】에게 답함 答金明彦【萬源】 세초(歲初)에 만나지 못한 허전함은 나중에 생각해봐도 가슴에 맺힌 듯합니다. 뜻하지 않게 보내주신 편지를 받드니 감격스러움이 더욱 지극합니다. 삼가 체후가 편안하고 순조롭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제가 듣고 싶던 바에 부합합니다. 아우는 10일 동안 감기를 독하게 앓느라 아직도 글을 짓지 못하여 고민스럽습니다. 송사(松沙)의 답서(答書)는 아직도 받아보지 못하셨습니까? 어디에서 지체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월파(月波)의 편지는 보셨습니까? 제게 물으신 전실(前室)과 후실(後室) 운운한 것은 선사(先師)의 정론(定論)이 있는데 남편의 전실로 칭하셨으니 살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歲初失遇之悵。追念如結。謂外拜承惠存。感戢尤至。謹審體節。履泰萬勝。實副願聞。弟患感毒十餘日。尙未擡頭。苦悶。松沙答書。尙未關聽云。未知何處濡溯。月波書得見否。俯問前後室云云。此有先師定論。而以夫前室稱之矣。諒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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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용에 대한 만사 挽鄭在庸 향리의 교유 점점 줄어듦을 깨달으니 (鄕里交遊漸覺稀)누가 오늘 우리 공이 죽을 줄 알았으랴 (誰知今日我公歸)하동의 문벌은 온 호남에 명망이 드러났고 (河東門閥全湖望)둔촌 노인의 가풍은 후손들 대대로 빛내네 (遯老家風奕葉輝)태곳적 정신 신야232)에 뜬 달에서 보겠고 (太古精神莘野月)백년동안 안식함은 부춘233)의 사립문에 남았네 (百年棲息富春扉)저승으로 가는 길 막혀서 찾기 어려우니 (泉臺一路遮難得)노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닦고 또 닦네 (老淚涔涔揮復揮) 鄕里交遊漸覺稀。誰知今日我公歸。河東門閥全湖望。遯老家風奕葉輝。太古精神莘野月。百年樓息富春扉。泉臺一路遮難得。老淚涔涔揮復揮。 신야(莘野)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들판을 이른다. 부춘(富春)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고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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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 양 어른께 올림 上泉川梁丈 계절이 따뜻해지니 삼가 정양하심에 여가가 많고 체후는 강녕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계씨(季氏) 어른은 근래 안부는 어떠하십니까? 아름다운 얼굴 백발의 나이에 책상을 마주하고 기뻐할 것이니, 융숭한 광휘가 어찌 한갓 한 가문의 복이겠습니까. 매양 삼가 우러러보고 송축합니다. 소생은 인척이면서 친구 사이로 두세 세대에 걸쳐 교유하였으니 한 가문의 우의가 존문(尊門)과 같은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선친과 교유한 분으로 지금까지 생존하여 이 사람이 의지하며 앙망하는 분 가운데 존장(尊丈)과 같은 분이 또 누가 계시겠습니까. 외로운 여생은 이치상 마땅히 종종 찾아뵙고 구구한 제가 미치지 못한 한을 달래야 하지만 근년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마치 말이 채찍 끝에 있듯이 조금도 멈추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풍모와 위의를 우러러 그리워하니 다만 슬픈 마음 간절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더욱더 몸을 아끼고 보중하여 언제나 강건하시어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에 부응해 주십시오. 時令向和。伏惟靜養多暇。體候康寧。季氏丈近節何如。華顔白髮。對床怡悅。其隆重輝光。豈徒一門之福。每切瞻祝。生姻戚故舊。二三世源源。一室之誼。孰有如尊門在。先人遊從。至今在世而爲此生依仰者。又孰如尊丈哉。孤露餘生。理合種種趨謁。以慰區區靡逮之恨。而年來身事。流離無常。未得少頃停息。如馬在鞭頭。瞻望風韻。只切悲悒。餘祈加愛保重。竹柏長春。以副此慕想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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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도【선묵】에게 답함 答梁致道【善默】 편지 속에서 얼굴을 뵈니 놀랍고 감격스러운 마음이 세속을 벗어난 선경(仙境)의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형의 체후가 안정되고 쾌적하며 신이 장수의 복을 돕고 아들이 태어나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그막에 지난날을 회상하며 젖는 감회와 기쁨과 경사가 뻗어나가기를 축원하는 마음이 끝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러러 그리운 마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아우는 한 번 병이 들더니 넉 달이 지났고, 이로 인하여 이불 속의 물건이 되어 그저 저승사자가 당도하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고통을 겪는 것이 이와 같더라도 우리 형의 수연(壽筵)에 모인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뻐서 어깨가 들썩이는 심정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병든 몸을 일으켜 억지로 길을 나서려고 생각합니다만 저를 조롱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모르겠으니 과연 계획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承書中顔面。驚感之情。如得世外空靑。矧審兄體安重。而神相壽祿。懸弧周期。老境追感之懷。覃上歡慶之祝。想無涯極。篤之仰溯。曷任情悰。弟一病四朔。因爲衾中物。只俟符到而已。所苦雖如此。聞吾兄壽筵之會。不勝喜聳之情。有力疾强策之意。未知事不有戱。而果能如料否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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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성【인형】에게 답함 答姜士性【仁馨】 뜻하지 않게 영랑(令郞)이 저를 찾아오고 혜서(惠書)가 함께 이르러 체후가 편안하고 집안의 묵은 근심이 차례차례 잘 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화락한 군자를 위로하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제 마음의 위안이 어떠하겠습니까. 의림(義林)은 노쇠함이 나날이 심해지고 평생에 걸쳐 품었던 뜻이 날로 어긋나 애타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늘 미치지 못한 데 대한 탄식만 절절합니다. 어찌 한 조각이라도 남은 힘이 있어 다른 사람을 위한 계책을 내겠습니까. 다만 영랑은 자질이 뛰어나고 재주가 총명하며 학문을 향한 노력이 대단합니다. 다른 집안에서는 이러한 젊은이를 찾기가 매우 쉽지 않으니 특별한 행운입니다. 하물며 정의(情誼)가 두텁고 세의(世誼)가 독실함을 또 어찌 다른 사람에 비하겠습니까. 제가 좌우(左右)를 친근하게 여기는 마음은 실로 다함이 없습니다. 이러저러한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영랑이 돌아가면 자세히 아뢰리라고 생각합니다. 謂外令郞見過。惠緘伴之。備審體候晏重。眷內宿憂。次第大和。神勞愷弟。固應如此。私情慰仰。爲何如耶。義林衰索日甚。宿心日負。無念耿耿。常切美逮之歎。安有一半餘力。可以爲人謀哉。惟是令郞質美才悟。向學甚力。人家少年如此人。甚不易得。奇幸奇幸。況有使契之重。世誼之篤。又豈餘人比哉。區區相厚之意。實無涯量也。多小見狀。令郞自去想詳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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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윤【석재】에게 답함 答曺大允【錫在】 늦봄의 강회를 기다린 지 오래 되어, 마침내 꿈결에 발자국 소리를 들으니 구구한 나의 우울한 심정을 몹시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그대의 편지가 오니 위로되고 상쾌하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편지로 말미암아 어른을 모시고 기뻐하며 평안히 지내고 예전에 배운 것을 익히고 날마다 진보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의 좋은 소식이 이것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매우 즐겁고 기쁩니다. 저는 용렬함과 쇠약함이 늙어서 더욱 심해졌으나, 이치가 그런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한번 정침의 말을 해 달라고 하는데, 어리석인 제가 어찌 적합한 사람이겠습니까? 뜻을 세워서 그 지향하는 목표를 정하고 경(敬)을 보존해서 그 본원(本源)을 기르며 이치를 깊이 연구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실천에 힘써서 실제 일에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학자의 바꿀 수 없는 법도입니다. 이같이 하면서 별도로 구하는 것은, 이른바 '나귀를 타고 있으면서 나귀를 찾는다.【騎驢覓驢】'라는 격입니다. 暮春講會。佇待久之。竟寐跫音。區區紆菀。殊難堪遣。惠書之來。慰豁不可言。仍審侍歎寧適。溫理日就。知舊好消息。此外何有。實切欣悅。義林碌碌頹塌。老而彌劇。理也奈何。一言頂針。愚豈其人乎。立志以定其趨向。居敬以養其本源。窮理以明其取舍。力行以踐其實事。此是學者不易之程式。是而別求焉。則所謂騎驢覓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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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수【시풍】에게 답함 答邢士綏【時豐】 봄날이 깊어 가는데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좋은 지 안부를 묻지 못하였네. 연초에 방문해주었는데, 뒤미처 듣고서 대단히 고마웠네. 다만 길이 어긋난 것이 한스럽네. 그대의 근면함과 조심스러움, 온화함과 신실함은 참으로 이미 익히 알고 있었는데, 지금 그대의 스승에게 들으니 그 마음을 세우고 행동을 조심하며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는 방정함은 현재의 다른 젊은이가 따라갈 수 없다고 하니, 더욱 깊이 감탄하네. 안으로 어진 부형이 있고 밖으로 어진 스승이 있으니, 현재 우리 벗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때에 미처 더욱 노력하여 날로 성취하고 달로 발전한다면 사귐의 끝자리를 차지하는 나에게도 영광이 되리라. 春候向深。未詢省衛增祉。歲初委訪。追聞感感。惟以交違爲恨耳。賢之謹勅溫良。固已棯知。而今聞於賢之師長。其立心飭躬。讀書硏理之方。有非今日年少所可齊班。尢庸欽賞萬萬。內有賢父兄。外有賢師長。其爲吾友今日之幸。爲何如哉。迨此加勉。使之日就而月將。則區區從遊之末。亦與有榮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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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一日 충청도 공주(公州)의 계룡산(鷄龍山) 동학서원(東學書院)1)은 포은(圃隱) 정 선생(鄭先生,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 선생(李先生,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 선생(吉先生, 길재(吉再)) 및 단종조 삼상(三相)2)과 육신(六臣)3)의 영령이 모셔진 곳이다. 우리 선조 충강공(忠剛公)4)을 이 서원에 배향할 생각으로 화양서원(華陽書院)과 돈암서원(遯巖書院) 두 서원에서 동학서원에 통문을 보냈고, 동학서원도 흥양 향교(興陽鄕校) 에 통문을 보냈다. 그러므로 향교에서 지난번 통문에 답을 하였고, 우리 문중 또한 일이 되어가는 상황을 가서 알아보라는 뜻으로 나와 윤경(允卿), 이찬(而贊)을 보냈다. 그러므로 10월 1일에 두 사람이 출발하여 낙안의 고읍(古邑)5) 마을 앞에 이르러 윤경과 이찬은 고읍으로 들어가고, 나는 혼자 죽판(竹坂)의 김 곡성(金谷城) 집으로 왔다. 곡성은 정등문(旌門登)에서 이곳으로 와서 우거한 사람이다. 내외가 그지없이 정성껏 대접해 주었다. 이것은 실로 오랜 이웃의 정의이니 참으로 고마웠다. 밤에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번 일로 초겨울에 먼 노정에 올랐으니(這事初冬啓遠程)선조를 위한 깊은 뜻 이 행차에 달려있네(爲先深意在斯行)우리 선조의 높은 충정과 참된 행실이 아니면(若非吾祖危忠實)어떻게 호남의 유현이 예악을 이루었겠는가(胡奈湖儒樂禮成) 忠淸道公州鷄龍山東學書院, 卽圃隱鄭先生、牧隱李先生、冶隱吉先生曁端廟朝三相、六臣妥靈之所也。 以吾先祖忠剛公配享是院之意, 華陽、遯菴兩院發通于學院, 學院, 亦以發通于興陽鄕校。 故校中頃以答通, 吾門中, 亦以余及允卿、而贊, 往探事機之意起送。 故十月之初吉, 仍與兩人發程, 抵樂安古邑村前, 允卿與而贊入于古邑, 余則獨來竹坂金谷城家。 谷城卽自旌門登來寓此土者。 而內外款待不已。 此實舊隣之誼也, 可感可感。 夜吟一絶曰: "這事初冬啓遠程, 爲先深意在斯行。 若非吾祖危忠實, 胡奈湖儒樂禮成。 " 동학서원(東學書院) 본래 동학사(東鶴寺)였다.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초에 도선(道詵) 국사가 중창하였다. 고려의 건국 공신 유차달(柳車疸)이 박혁거세의 사당을 봉안하고 동학사라고 하였다. 1457년(세조 3) 김시습(金時習) 등이 초혼각(招魂閣)을 세워 단종(端宗)에 대한 제사를 봉행하였다. 1814년(순조 14)에는 주지 월인(月印)이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전각을 중수하고 세조의 초혼기를 봉안하기 위해 혼록봉장각(魂錄奉藏閣)을 새로 지었다. 왕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으므로 유자(儒者)들이 강제적으로 절의 간판을 내리고 동학서원(東學書院)으로 바꿨다. 1836년(효종 2) 서원을 관리하던 유생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서원을 몰수하여 다시 사찰로 환원시켰다. 삼상(三相) 계유정난 때 죽은 정승 삼상신(三相臣)으로 황보인(皇甫仁)ㆍ김종서(金宗瑞)ㆍ정분(鄭苯)을 가리킨다. 육신(六臣) 병자년(1456, 세조2) 단종 복위 사건으로 죽은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ㆍ하위지(河緯地)ㆍ이개(李塏)ㆍ유성원(柳誠源)ㆍ유응부(兪應孚)를 말한다.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 1405~1480)이다. 호는 서재(西齋)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세종ㆍ문종ㆍ단종의 3조를 섬겨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3년상을 마치고,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서 은거하였다. 고읍(古邑)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이다. 옛날에는 낙안 현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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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4일 初四日 ○아침 전에 또 비가 내렸다. 그러므로 이에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여 원동(院洞) 앞에 이르렀다. 일행은 곧바로 광청(廣淸)6) 객점에 이르고, 나는 원동 이 상인(李喪人) 집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담제(禫祭) 중이었다. 먼저 제때 와서 위로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잠시 얘기를 나눈 뒤에 나와 객점으로 왔다. 거기서 요기를 하고 출발하였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밤에 다음과 같이 절구 1수를 읊었다.집 떠난 지 나흘 만에 용계에 도착하였으니(離家四日到龍溪)채찍질 바투 해 말을 몰아도 해는 이미 서산이네(促鞭長驅日已西)주인집엔 특별히 천하절색의 인물이 있으니(主家別有奇觀物)아름답고 교태로운 자태의 출가하지 않은 처자라네(美貌嬌態年未笄)이찬이 〈초하루〉 시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일이 의심나는 부분이 있어 묻고자 출발하였으니(事逢疑處問發程)세 사람 중 반드시 내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네(三人必有我師行)호남 유현은 다행히 우리 선조의 아름다움 천명하였는데(湖儒幸闡吾先美)언제쯤 동학서원에 배향될 수 있으려나(東學何時享禮成)윤경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예전에 우리 동지가 앞서 노정을 떠난 적 있으니(昔我同志有前程)지금 사람은 그에 힘입어 이런 행차가 있는 게지(今人賴力在斯行)곧은 절개는 오랜 세월 응당 사라지지 않을 테니(苦節千秋應不昧)제현과 더불어 예를 반드시 이루리라 기약하네(期與諸賢禮必成)윤경이 '계(溪)' 자 운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어둑어둑 찬 기운이 날 즈음 용계에 도착하였으니(冥色生寒到龍溪)사람은 수척하고 말도 지치고 해는 벌써 서산이네(人瘦馬困日已西)우리 종중에 애타는 어린 처자가 하나가 있으니(吾宗斷腸一少娥)나이 열여섯이 되도록 아직 비녀를 꽂지 않았네(年可二八未爲笄)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맑은 시내 건너 용계에 이르렀으니(淸溪果渡到龍溪)며칠 만에 우리 행차 호서로 들어섰네(幾日吾行入湖西)꽃을 보고 어찌 나비가 향기를 탐하지 않겠는가만(看花孰非探香蝶)자기 마음속에 먼저 혼인할 뜻이 있어야지(自家心中先有笄) ○朝前亦雨。 故仍朝飯發程, 抵院洞前。 同行則直抵廣淸店, 余則入院洞李喪人家, 尙在禫中矣。 先謝其趁未來慰, 暫話後出來酒店。 仍爲療飢發程。 抵龍溪留宿。 行六十里。 夜吟一絶曰: "離家四日到龍溪, 促鞭長驅日已西。 主家別有奇觀物, 美貌嬌態年未笄。" 而贊次《初一日》韻曰: "事逢疑處問發程, 三人必有我師行。 湖儒幸闡吾先美, 東學何時享禮成。" 允卿次曰: "昔1)我同志有前程, 今人賴力在斯行。 苦節千秋應不昧, 期與諸賢禮必成。" 允卿次溪字韻曰: "冥色生寒到龍溪, 人瘦馬困日已西。 吾宗斷腸一少娥, 年可二八2)未爲笄。" 而贊次曰: "淸溪果渡到龍溪, 幾日吾行入湖西。 看花孰非探香蝶, 自家心中先有笄。" 광청(廣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昔 저본은 '借'로 되어있으나 앞뒤 문장의 호응과 문맥의 흐름에 따라 '昔'으로 수정하였다. 八 저본은 '人'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八'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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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 전에 출발하여 묘치(猫峙)7)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곡성 읍내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중주원(中周院)을 넘어 나루터 객점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였다. 도중에 절구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제 가서 배를 기다리지 않기를 어찌 바라겠는가(幸何今行不待舟)뱃사공이 나를 강 가운데로 떨어뜨려 놓았네(梢工敎我阻中流)순강8)을 건너 다급하게 객점을 빌렸으니(蓴江利涉蒼店借)제날짜에 동학서원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겠지(趁日可參學院遊)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가는 길 재촉하여 작은 배에 올랐으니(促我征鞭登小舟)남쪽 회수(淮水) 한 줄기 동방으로 흐르네(南淮一帶大東流)용성 북쪽에는 계룡산이 우뚝 서 있으니(鷄山屹立龍城北)제현과 함께 단란하게 모여 유람하길 기약하네(期與諸賢欒會遊)운경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빛나는 모래섬으로 달려가 배를 타고 건너(馳入光渚利涉舟)한낮에 순강에서 중류로 내려갔네(蓴江日午下中流)우리 선조의 일을 꼭 이루리라는 뜻을 가지면(有志必成吾先事)호서로 나선 오늘 행차가 헛된 유람이 아니리라(西出今行非浪遊)창화(昌華)에 이르러 길에서 유둔(油屯)9) 시장 변두리 사는 오재권(吳在權)이 전주에서 내려오는 편에 만났다. 길 가는 도중인 관계로 집에 편지를 부칠 수가 없어서 다만 말로 소식을 전하였다. 저물녘에 운교(雲橋)10)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밤에 빈대[蝎]가 많을까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어 몹시 짜증이 났다. ○朝前發程, 抵猫峙店朝飯。 抵谷城邑內暫憩。 越中周院, 中火于津頭酒店發程。 路中吟一絶曰: "幸何今行不待舟, 梢工敎我阻中流。 蓴江利涉蒼店借, 趁日可參學院遊。" 而贊次曰: "促我征鞭登小舟, 南淮一帶大東流。 鷄山屹立龍城北, 期與諸賢欒會遊。" 允卿次曰: "馳入光渚利涉舟, 蓴江日午下中流。 有志必成吾先事, 西出今行非浪遊。" 抵昌華, 路上逢油屯市邊吳在權之自全州下來便, 以路中之致, 不得付書于家中, 只傳口傳消息。 暮抵雲橋店留宿。 行六十里。 夜多蝎患, 不能秪枕, 憤憤。 묘치(猫峙)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서 곡성읍으로 가는 고개로 '괘재'라고도 부른다. 순강(蓴江) 전라남도 곡성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의 옛 이름으로 순자강(鶉子江)을 말한다. 저자는 '순강(蓴江)' 혹은 '순자강(蓴子江)'으로 썼다. 유둔(油屯)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이다. 옛날 동강 장터가 있던 마을로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운교(雲橋)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운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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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6일 初六日 ○출발하여 사동(蛇洞)11)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도중에 밤사이 지은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날 저물녘 운교에 투숙하였는데(雲橋此日暮投身)낡은 주막은 쓸쓸하여 이웃이 적네(廢幕蕭條小結隣)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을 꿈꾸니(就寢不成鄕里夢)빈대가 우리 두세 사람을 물어대네(蝎虫侵我兩三人)윤경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만물 가운데 너는 몸이 가지고 있는데도(萬物之中爾有身)평생 미워하며 가까이 이웃하지 못하였네(平生可憎不近鄰)그놈은 살갗도 피도 없고 부르기도 더러운데(渠無膚血喚亦醜)아무 때나 품속에 들어와 몰래 사람을 무네(時入懷中暗噬人)이찬은 병으로 화답하지 못하였다. 국평(菊坪)12) 앞에 이르러 서울에서 내려오는 배덕손(裵德孫)을 만났다. 서서 몇 마디 나누고, 다만 입으로 소식을 전하였다. 평당(坪塘)13) 앞에 이르러 일행은 곧바로 객점으로 가고, 나는 평당의 일가 송필동(宋必東) 씨 집에 들러 잠시 얘기를 나누고 거기서 요기를 하였다. 하서(夏瑞)가 사는 마을을 상세히 묻고 객점으로 나와 일행과 출발하였다. 두치(斗峙)14)를 넘다 중도에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세 사람 중에 나만 유독 쫓아갈 수 없어서(三人我獨不能從)번번이 일행과 뒤처져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가네(每後行裝但一笻)천천히 걸어서 오르고 올라 두치에 이르니(緩步登登臨斗峙)눈앞에 천만 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네(眼前羅列萬千峰)굴암(屈岩)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도마교(逃馬橋)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 60리를 갔다. 이날 밤에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發抵蛇洞店朝飯。 路吟夜間韻曰: "雲橋此日暮投身, 廢幕蕭條小結隣。 就寢不成鄕里夢, 蝎虫侵我兩三人。" 允卿次曰: "萬物之中爾有身, 平生可憎不近鄰。 渠無膚血喚亦醜, 時入懷中暗噬人。" 而贊病未和。 抵菊坪前, 逢裵德孫之自京下來。 立談數語, 只傳口傳消息。 抵坪塘前, 同行直往酒店, 余則入坪塘宗人必東氏家暫話, 仍爲療飢。 詳問夏瑞所居村名出來酒店, 與同行發程。 越斗峙, 路中吟一絶曰: "三人我獨不能從, 每後行裝但一笻。 緩步登登臨斗峙, 眼前羅列萬千峰。" 抵屈岩暫憩。 抵逃馬橋留宿。 是日行六十里。 是夜雨達夜。 사동(蛇洞)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평당(坪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군평리 평당 마을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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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0일 初十日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적었다. 밤에 〈성묘〉 시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우리 선조의 산소에 성묘를 하면서(省拜吾先墓)어찌 근본에 보답하는18) 마음 없으리(孰無報本心)때는 서리 이슬 내리는 계절이니(時維霜露節)추모의 감회를 서글퍼 억누르기 어렵네(追感愴難禁)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듣기로 선조의 산소를 돌보는 계절이라는데(聞得先壠守護節)산소에 들어서니 후손의 마음 부끄럽기 그지없네(入山多愧後孫心)사패지의 경계가 칠 리라는 유언이 남아있기에(環封七里遺言在)조서가 언제쯤 대궐에서 내려졌는지 생각하네(思詔何時降紫禁)윤경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우리의 관향은 호산이니(吾人貫鄕是壺山)어제 저물녘 투숙함은 근본에 보답하는 마음에서네(昨暮投宿報本心)귀두가 떨어져 나간 옛 유적 남아 있건만(龜頭剝落遺古蹟)묘소 모양은 새롭게 변해 한탄을 금치 못하겠네(墓貌維新恨不禁)이에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소로(小路)를 거쳐 대로(大路) 객점에 이르니 심천(深川)에 사는 일가 철(澈)과 필(泌) 두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터에 오늘 이렇게 만나니 기쁘고 행복하였다. 그 산송(山訟)에 대해 듣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분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닭과 술을 내와서 참으로 고마웠다. 출발하여 올정(兀項)에 이르기 전, 내려가는 사람이 길보가 사교(沙橋)19)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그래서 급히 사교로 갔는데, 길보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말을 재촉하여 전당(錢塘)의 길보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학동(學洞) 소식을 물으니, 재회(齋會)가 20일로 정해졌다고 하여 몹시 기대되었다. ○書名《省墓錄》。 夜間吟《省墓》韻一絶曰: "省拜吾先墓, 孰無報本心。 時維霜露節, 追感愴難禁。" 而贊次曰: "聞得先壠守護節, 入山多愧後孫心。 環封七里遺言在, 思詔何時降紫禁。" 允卿次曰: "吾人貫鄕是壺山, 昨暮投宿報本心。 龜頭剝落遺古蹟, 墓貌維新恨不禁。" 仍朝飯發程。 由小路抵大路酒店, 則深川居宗人澈及泌兩人來待, 而積年阻面之餘, 今此逢面 忻幸。 聞其山訟事, 憤不勝言。 移時談話。 仍進鷄酒, 可賀可賀。 發程, 未及兀項, 下去之人, 傳吉甫留待沙橋之奇。 故急來沙橋, 則吉甫入去其家矣。 仍促鞭, 得達錢塘吉甫家留宿。 問3)學洞消息, 則齊會以十二日爲定, 故苦待苦待矣。 근본에 보답하는 원문의 '보본(報本)'은 조상의 은혜를 갚는 것으로 제사를 이른다. 옛날 가을에 서리가 내려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조상을 추모하여 제향을 올렸다. 사교(沙橋)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이다. 問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問'으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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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3일 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 재실에 회의석을 마련하였다. 모두 자리에 모여 논의를 낼 적에 먼저 회의 안건의 조목을 적었다. 매월당(梅月堂) 김 선생(김시습(金時習))과 서재(西齋) 송 선생(송간(宋侃)), 망월암(望越菴) 이 선생(李先生) 축(蓄)24)을 추배할 생각으로 당장(堂長) 3명, 공사원(公事員) 1명, 색장(色掌) 1명을 정하였다. 이에 논의를 만들기 위해 공사원이 먼저 의견을 내니, 당장 이하 모두가 말하기를 "여러분의 의견과 서로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오촌(鰲村) 장석(丈席)25)에게 정품(呈禀)하고, 감영에 정서(呈書)하고, 원장에게 정품할 뜻으로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의를 하였다. 자리를 파한 뒤에 어떤 사람은 가고 어떤 사람은 남았다.오후에 일행과 광정(廣亭)의 김계원(金啓源)과 동학사(東鶴寺)로 갔다. 초혼각(招魂閣)을 둘러보았는데 전각 안의 단종이 쓴 어휘(御諱)와 궤(櫃) 안에서 나온 《초혼록(招魂錄)》을 다 보고 나서, 그길로 절 안에 들어가 월인(月仁) 스님을 불러서 만났다. 스님은 이 절을 중창한 스님으로 당시 나이가 83세였는데, 아주 많은 고적을 전해 주었다. 조금 쉬고 나서 서원 밑으로 내려와 유숙하였다. ○朝飯後, 設齋會席。 濟濟會座, 發論之際, 先書會議事節目。 而梅月堂金先生、西齋宋先生、望越菴李先生蓄追配之意, 定堂長三人, 公事員一人, 色掌一人。 仍爲成議, 而公事員先爲發論, 則堂長以下皆曰: "僉議詢同。" 呈禀于鰲村丈席, 呈書于營門, 呈禀于院長之意, 爛熳商議, 而罷坐後, 或去或留。 午後與同行及廣亭金啓源, 往東鶴寺。 玩招魂閣, 則閣內書端宗御諱, 自櫃中出《招魂錄》, 皆玩後, 仍入寺中招見月仁僧。 僧卽此寺重創之僧, 而時年八十三, 頗傳古蹟。 小憩後, 下來院底留宿。 이 선생(李先生) 축(蓄) 1402~1473. 자는 윤보(潤甫)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색(李穡)의 증손이다. 장석(丈席)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이다. 자는 기옥(奇玉)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송시열의 6대손으로 김정묵의 문인이다. 당시 오촌에 살아 '오촌 선생(鰲村先生)'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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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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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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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67년 홍성초(洪聖楚) 세음기(細音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丁卯四月五日 洪聖楚 丁卯四月五日 1867 洪聖楚 地主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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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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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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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717년 정유식년(丁酉式年) 사마방목(司馬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정치/행정-과거-방목 合格者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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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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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03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애감록(哀感錄)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종교/풍속-관혼상제-조객록 癸卯十二月二十七日 癸卯十二月二十七日 1903 扶安金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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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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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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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간례휘찬(簡禮彙纂) 목록(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서목 교육/문화-출판/인쇄-서목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간례휘찬의 목록. 고종 연간에 간행된 서식집 간례휘찬(簡禮彙纂)의 목록(目錄)이다. 간례휘찬은 통상 간찰서식집을 가리키지만, 여기에 제시된 목록에서는 각종 축문과 제문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여지는 각종 문서의 투식을 기록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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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부안군(扶安郡) 동도면(東道面) 향약법문(鄕約法文)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乙亥七月 乙亥七月 1875 留鄕所 전라북도 부안군 동도면 7.4*7.4(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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